근육조선 274화
2부 3장 2화 전쟁 같은 사랑
생각해 보니 다루기 편하게 아래를 깎아 무게를 최대한 줄인 돌절구겠지.
대충 신장을 확인하니 신장이 좀 커서 165㎝에 달하는 장신이었다.
슬쩍 헛기침을 하였다.
“어흠! 게 아무도 없습니까?”
“귀인(貴人)께서 방문하셨군요. 부친을 통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채로 들어서는 문을 사이에 두고 내 미래의 아내를 마주하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다소곳한 종종걸음으로 내 앞에 다가왔는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남명 조식이 자랑할 만한 딸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팔뚝을 살펴보니 어머니보다 훨씬 근육이 적은 평범한 체형이다.
조식의 막내딸은 고개를 숙여서 나도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풍천 유씨의 성룡이라 하오, 자는 이현이오.”
“창녕 조씨의 윤이라 합니다. 부족한 몸으로 소과에 장원급제한 분을 뵙습니다.”
“학식이 드높은 남명 대감께서 가르치신 분이니 내가 부족하지 않겠소. 앞으로의 인연이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서로의 손을 보고 싶구려.”
풍습도 변해서 혼약을 맺으려는 남녀가 처음 만나면 서로 손을 보며 굳은살을 확인한다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얼마나 많은 쇠질을 했는지 간접적으로 알아보려는 의도가 분명하지만 풍습이라 방법이 있나.
내 손바닥은 수많은 쇠질을 해서 생겨난 굳은살이 알차게 박여 있었다. 더군다나 이황 특유의 대나무 역기봉을 사용한 덕분에 굳은살이 울퉁불퉁해져서 몇 배는 거친 손이 되어버렸다.
반면 내 아내 될 사람이 부끄럽게 내민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굳은살이었다.
조식이 다행히도 입신체비를 많이 시키지 않았다 안심하고 있는데 상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 그러시오. 혹여나 내 손이 부족한 일이 있소?”
“아…… 아닙니다, 제 오라버니보다 손이 매서우시니 얼마나 많은 입신체비를 행하였는지 모를 일입니다.”
“남명 대감께서는 하체를 위주로 단련하시니 역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손이 매섭지 않소. 반면 내 스승이신 퇴계 대감께서는 상체를 위주로 단련하시니 손이 매섭게 변한다오.”
조금 걱정되지만 학식이 빼어나다 했으니 경전에 대한 지식도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기대감으로 약간의 잡담을 나누다 보니 뒤에서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너무 오래 대화를 나눴나 보구려. 내 취미가 농사인지라 혼인을 행하면 텃밭을 일굴 것이었는데 작물을 기르는 법을 알고 있다니 참으로 마음이 놓이는구려.”
“사실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하여 학업에만 몰두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 부족함을 다시금 일깨워 주신 분이셔서 마음이 놓입니다.”
“다음 만남도 기대해 보겠소. 이만 대감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니 또 뵙시다.”
아버지와 조식은 서로 논의가 끝났는지 이미 옷을 차려입고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아버지는 관직에 있는 사람이니 오후에 형의 혼사를 정하러 다른 곳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조식은 밝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였다.
“만나 보니 어떠하던가?”
“대감께서 부족한 저에게 혼사를 논하여 주셨으니 참으로 훌륭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조식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크게 웃어댔다.
평소에는 몸가짐을 올바로 하는 이였지만 내가 혼사에 나서기로 하였으니 한 가족으로 인정한 것이라 마음이 풀렸으리라.
“그렇다면 좋은 일이지, 암 좋은 일이고말고. 하면 물을 것이 있는데 자네가 소과에 합격하였으니 길이 열리지 않았는가. 어떠한 길을 택할 것인가?”
“길이 열렸다니요.”
“어허, 장원이니 성균관에 바로 입학할 수 있을 것이며 훈도(訓導)로 지방에 부임하여 경험을 쌓을 수도 있지 않은가. 혹은 퇴계의 제자로 남아 있던가.”
성균관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으니 갈 이유도 없다.
퇴계 이황보다 빼어난 스승이 올 것 같지도 않으며 서로 입신체비와 학문을 경쟁하는 풍조가 있으니 절대 피할 장소이다.
심지어 입신체비를 포함한 내부 시험에서 성적 우수자에게 홍두깨살과 안심을 먹을 권리를 주고, 성적이 부족한 이는 차돌박이를 먹인다 하더라.
하지만 훈도라?
“훈도에 대한 이야기는 스승님께 들은 적이 없습니다.”
“과거에 합격한 이가 관직에 나서기 전 일 년 동안 각지에 나아가 백성들의 고충을 겪어보는 일일세. 훈도 생활을 하면 관직에 나설 적에 반 품계를 올린다네.”
쉽게 말해서 조선시대의 인턴 사원이 아닌가.
역시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라서 고개를 저었다.
퇴계 이황 아래에서 대과에 합격하기 전까지 계속 학문을 쌓으면 충분한 일이다.
“성균관에 나설 일은 없으며 훈도는 혹여나 마음이 움직이면 행하여 보겠습니다.”
“이 또한 틀린 선택은 아닐세. 그러하면 입암 자네에게 묻겠네. 혼약을 행하는 시일은 십일월이 어떠한가? 분가할 집도 마련해야 하며 장남의 혼사가 이번 달 말이 아닌가.”
“남명 대감님께서 저를 이토록 배려하여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오면 분가할 집은 제가 힘을 써보겠습니다.”
“나는 혼수를 장만할 것이며 사람을 불러 모으겠네. 생각하여 보니 성룡이가 회령군 어르신의 아래에서 수학한 일이 있었으니 대목장과 합을 맞추면 좋은 일이겠군.”
건축과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내가 살 집을 설계할 수 있다 생각해서 기대감에 차 있었지. 현실을 접하니 그런 기대도 무너졌지만 지금은 조선시대니 가능한 일이다.
고개를 숙이며 조식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대감께서 저를 배려하여 주시니 혼신의 힘을 다하여 보겠습니다.”
“대감이라 하지 말게. 이미 혼사는 정해진 일이니 빙부(聘父)라 부르게나.”
“알겠습니다. 빙부님.”
혼례도 올리지 않았는데 자신을 장인어른이라 불러달라는 조식에게 응하니 조식은 평상시답지 않게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다음 날, 양송정에서 입신체비를 행하는데 이황은 여전히 하체를 하라 하였다.
“혼사가 정해졌으니 더더욱 하체에 매진하여라.”
“대체 왜 하체입니까? 일 년 내내 상체가 아닌 하체를 행하니 허벅지가 두툼해지고 복근이 여섯 갈래를 넘어 여덟 갈래가 될 지경입니다!”
오늘도 이황 옆에서 공좌(스쿼트)를 반복하니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죽역기를 새로 만든 것이 세 번이니 내 삼대운동의 합도 600근에 도달하여 어엿한 전문가의 반열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황은 만족하지 않았다.
“성룡이 네가 어린 시절부터 하체를 단련하여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가 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 일 년 넘게 고난을 겪을 것이 분명하구나.”
“불초제자가 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나 보니 학식이 빼어날 뿐이지 입신체비를 많이 행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에는 몰랐다. 정말 내 미래에 대하여 일체의 불신감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새로 살 집을 설계하고 아내를 만나기를 반복하여 마침내 혼례를 올렸다.
* * *
내가 설계한 집에서 꿈결과 같은 첫날 밤을 보냈다.
정말 꿈이었으면 좋을 일이어서 도저히 현실 같지 않았다.
밤일이라 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이건 일이 아니고 전쟁이다!
전쟁도 나의 처참한 패배로 끝날 전쟁이지!
곤하게 잠자고 있는 아내를 돌아보니 소름이 다시 돋아 올랐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추슬러 대청마루로 나서니 머슴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주인어른 기침하셨습니까? 곧 세안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머슴이 뭐라 하던 멍한 표정으로 마당을 돌아보았다.
예전에 결혼했던 친구 녀석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체조선수와 결혼했다 하던데, 바로 피트니스 센터 일 년 회원권을 끊고 운동에 전념했다 하였지.
세수를 하여 정신이 맑아지니 옆구리에서 아릿하게 통증이 올라왔다.
아내의 허벅지는 흉기나 마찬가지다! 단련을 소홀히 했다면 어디 한 군데가 망가져서 의원을 불렀으리라.
“내가 바보였지. 장인어른이 오 년 동안 가르쳐서 학문에 빼어나다 할 때부터 눈치챘어야 하는데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학문이 빼어나다는 말은 입신체비를 수행했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내 아내는 지난 오 년 동안 하체에 전념한 입신체비의 달인이고 나를 넘어서는 것이다!
세수를 마치니 아내가 뒤늦게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늦게 일어나 죄송합니다. 낭군(郞君)께서 학문에 힘쓰시는 데 불편을 끼쳐 드린 것 같아 죄송할 뿐입니다.”
“아…… 아니오, 그저 편하게 지내면 될 일이 아니겠소.”
아내의 얼굴을 보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대로라면 하체가 단련되기 이전에 내가 말라 죽는 것이 빠를 지경이다. 적어도 하체를 단련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성균관에 입학할 방법도 없다. 성균관의 정원은 5월에 모두 들어찼으니 내년을 기다려야 하며 유일하게 남은 길은 훈도였다.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생각하여 보니 스승님께서도 환갑을 넘기지 않았소. 제자로서 언제까지 스승님 아래에서 폐를 끼칠 수 없는 노릇이니 훈도로 나설 마음도 드는구려.”
“훈도라 하셨습니까? 하지만 혼약을 맺은 직후인데 훈도로 나선다 하심은…….”
“염려하지 마시오. 훈도로 나서는 이는 삼월 초하루에 부임하니 그 사이에 아이가 들어서지 않겠소. 근방에 친가도 있으며 처가도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닐 것이오.”
미안하지만 나도 살고 봐야겠다.
훈도는 거리가 멀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집에 올 수 있게 한다니까 어떻게든 버티면서 몸을 꾸준히 단련해야지.
“또한 예조 정랑인 분이 나의 사형(師兄)이오. 그러하니 좋은 장소로 배정하여 도성으로 자주 올라올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 아니겠소.”
아내를 안심시키려 하였지만 그럴 가망성은 없어서 마음이 놓였다.
예조 관원 대다수가 나와 척을 진 사람이니 최대한 험지로 배치할 것이라 여기고 서신을 작성하였다.
* * *
지난 4월 실시한 소과 생원시 이후 예조에는 문의 서신이 이어졌다.
대부분 유력가의 자제들이 소문을 듣고 보내온 서신이었으며 오늘도 출근 직후 쌓여 있는 서신을 뜯어 확인하였다.
[일전에 소과 생원시에 급제한 의주목사 유언우(彦遇: 유중영의 자)의 둘째 자제에 관하여 문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모필을 이용하여 삼천 자가 넘는…….]
“또 우모필과 관련된 서한이군. 참으로 귀찮은 일이 아닌가.”
내년에 예조판서 이후 이조판서로 부임할 심통원에게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붓을 들어 서신을 작성하였다.
[주상전하께서 하교하시길 삼천 자가 넘는 장문의 답안을 작성할 이는 흔치 않으며. 설령 작성하여도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역으로 손해를 볼 것이라 하였습니다…….]
법적으로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니 허가한다는 답장이 작성되었고 쌓여 있는 서신을 확인한 심통원은 관원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모두 동일한 내용의 서신들일세. 사소한 일에 힘을 쓸 연유가 없으니 자네가 내 서신을 베껴서 돌려보내도록 하게.”
서신을 이양원에게 넘긴 심통원은 다음 업무에 전념하였다.
예조는 십조로 전환되어 외교 업무를 분할하였어도 국가 교육과 제사를 전담하기에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신을 베끼던 이양원은 한 글자를 적을 때마다 분노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예조에 부임하였으니 앞으로 몇 년간은 예조에서 일할 입장에서는 다음 과거시험이 눈에 선명했다.
“어중이떠중이들도 죄다 우모필을 들고 날뛸 것이 아닌가. 주상전하께서는 어찌 이러한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보름 동안 수백 개가 넘는 답안을 확인하며 대조하고 옮겨 적어 채점한 그의 입장에서는 다음 식년시의 상황이 눈앞에 선했다.
한 달에 걸쳐 답안을 적는 고난이 이어질 것이며 수많은 관원들이 탈진하리라.
결국 자신들의 희생이 있던 뒤에야 경국대전이 개정될 것이다.
한숨을 내쉬며 붓끝을 정돈하던 그에게 다음 서류가 건네졌다.
“내년에 훈도로 부임하길 원하는 이들이 마지막 서신을 보내왔으니 목록을 작성하고 배정을 완료하게나.”
“알겠습니다. 몇 명입니까?”
“이번 서신은 스물여섯 명이 보내왔다네. 정랑 셋의 의견을 모아 충분히 행할 것이라 믿겠네.”
열 개가 넘는 서신을 모조리 베낀 이양원은 한숨을 쉬며 다른 방으로 동료 정랑들을 불러 모았다.
세 명의 정랑은 주변을 확인하더니 사람이 없는 것을 알아채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가 올해 정랑으로 부임하였으니 다음 식년시를 치르고 다른 관직으로 옮겨갈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 년 뒤에 벌어질 일이 눈에 들어올 것 같이 선하다네.”
“그러게 말일세. 노저(鷺渚: 이양원의 호) 자네는 이 일의 원흉과 밀접한 관계라 하지 않았는가.”
“나와 나이 차이가 십육 년이나 나는 애송이이니 일전에 스승님을 뵈러 갈 적에 만난 것이 전부라네. 그나저나 올해 마지막 훈도 대상자가 포함되었으니 목록을 작성하세.”
이백 명이 넘는 훈도의 배정도 문제였다. 가급적 상피제(相避制: 고향을 피하는 제도)를 지켜야 한다. 그 외에는 사실상의 무작위 배치라 목패를 흩뿌려 배정한다.
이름을 목패로 옮겨 적던 와중에 특이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의주목사의 둘째 자제의 신청서가 아닌가?”
자신들을 괴롭힐 사태의 원흉인 유성룡의 신청서를 확인한 이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았다.
사심을 잔뜩 담은 손길이 유성룡이라는 석 자가 적힌 목패를 대마도 위에 올려놓았다.
“퇴계 대감 아래에서 수학하거나 성균관에 들어갈 것이지 훈도를 신청한 연유를 모르겠군. 얼마 전에 혼인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대마도에서 고생을 하면 우리의 마음도 풀리겠지.”
“훈도가 아국 영토에 배정된다는 제한만 아니었어도 미주로 보낼 것인데 어쩔 수 없지.”
이양원은 머릿속에서 유성룡의 신상명세를 되새기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밀접한 관계가 없기에 신상명세를 모르지만 이양원은 이황을 통해 그의 정황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성균관을 마다한 자가 훈도로 나선다 하면 원인은 정해져 있었다.
이양원의 손은 유성룡의 목패를 집어 한양 인근의 강화도로 옮겼다.
다른 두 정랑이 눈을 부라리며 이양원의 멱살을 잡을 듯이 화를 내며 말했다.
“자네 지금 사형제 간이라고 너무 많은 배려를 하는 것이 아닌가! 성균관도 마다한 자가 오만하게 훈도로 나선다 하는데 변방으로 보내야 할 일이라네!”
“이 친구는 얼마 전에 남명 대감의 여식과 혼례를 올렸다 하더군. 얼마 전에 혼례를 올린 두 남녀를 머나먼 고장으로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다른 두 정랑이 생각을 거듭하더니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을 참기 시작하였다.
남명 조식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노저 자네의 뜻을 이해할 수 있으니 내 생각이 부족하였네.”
“남명 대감의 여식과 혼인을 행한 자를 어찌 머나먼 변방으로 내쫓는단 말인가. 훈도가 경기도까지 배정될 수 있었다면 광주군에 보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
“그나마 강화도가 도성과 가장 가까운 고장이니 혼례를 올린 부부를 배려해야 하지 않겠나. 열흘마다 사흘 동안 도성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할 수 있으니 어찌 뜻깊지 않은가.”
훈도의 배정이 끝났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관원들도 이양원의 설명을 듣고 적극적으로 추천하였고, 예조판서의 날인이 매겨진 서류는 궁궐로 올라갔다.
당연히 궁궐에서도 이백 명이 넘는 훈도의 신상명세를 일일이 파악할 여력이 없었기에 단순한 상피(相避) 문제만 확인한 이후 배정을 확정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