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273화
2부 3장 1화 유 생원
그나마 시험을 보름 앞둔 시점에서는 더 이상 간섭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게 하였다. 근손실이고 뭐고 시험에 합격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시험에 응시하는 이들은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다 했는데 다들 긴장한 눈치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한성시 소과 초시는 이백 명이 정원이고, 전국인원을 다 합치면 칠백 명인데, 응시자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 천오백 명이 본시를 본다니. 이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인구도 늘어나고 영토가 넓어졌으니 시험 내용도 추가되었고 시험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다.
그나마 응시생이 한정된 대과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소과에는 제법 차이가 생겨났다
십여 년 전부터는 수학에 해당되는 산학 문제와 세상 이치를 묻는 이학 문항이 추가되었다던가.
한참 책을 읽다가 가상의 시험문제를 떠올리고 수능 시험을 볼 때의 경험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렸다.
“수능이라고 생각해. 수능, 수능시험 볼 때의 긴장감을 되새겨서 실수 없이 정확하게! 아는 지식을 글로 옮기면 무조건 합격이야.”
이황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했을 때에 세 번을 낙방하여 고배를 마셨다 했다. 그것도 성균관에서 공부하며 두 번을 낙방하였으며 가까스로 합격했을 때에는 실수를 저질러 장원을 놓쳤다 하였고.
그런 과정을 겪었으니 제자들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모의고사 형식으로 배워 어떤 유형이 나올지는 훤히 꿰고 있었지만 나는 이황의 가르침을 더욱 높은 경지로 승화시키고 싶었다.
나에게는 명백한 약점이 있었다.
현대인의 감성이 남아 있기에 논리적으로 요약하거나 글의 앞뒤를 맞추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고, 이 덕분에 서적을 모두 암기하여도 장원에 오르기 힘들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극복할 방법이 있다!
“그놈의 근육기억, 아니, 근면육연화기억술로 몸을 혹사시켰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이게 성공하면 소과 합격은 물론이고 반드시 장원 급제다. 이걸 이기려면 율곡 이이쯤은 데려와야 할 거다.”
한 시진 내내 붓이 아닌 우모필, 현대로 따지면 깃펜을 사용하니 끝이 닳아 뭉그러져 버렸다.
익숙한 일이기에 깃털을 꺾어 폐기시키고 다음 우모필을 들었다.
아마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특히 생원시의 논리 자체를 뒤엎어 버릴 준비는 마쳤다.
이제 보름 동안 배운 내용을 되새겨 머릿속에 다시 박아 넣으면 모든 준비는 끝난다.
* * *
결국 시험 당일이 되었다.
새벽같이 눈을 뜨니 긴장감이 엄습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한 뒤에 가볍게 밖을 뛰다 돌아왔다. 아직 음력 4월이라 해가 짧았지만 소과 시험은 오전 7시부터 시작된다.
형님은 소과가 아닌 대과 응시생이라 보름 뒤에 시험을 보지만 내 뒷바라지를 하려 작정했는지 이런저런 준비물을 챙겨주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소과를 볼 적에는 앞가림도 하지 못하여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는데 성룡이는 몇 번이고 과거시험을 본 사람 같이 행동하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스승님께서 낙방하신 일을 말씀하시니 오히려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하니 제 실력을 발휘하여 충분한 성과를 거둘 것입니다.”
내가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면 지금쯤 겁에 질렸겠지만 경험은 충분하다. 수능시험도 보았고 매 학기마다 피가 터지는 건축과의 크리틱(과제 비평)을 경험하였으며 문화재청 위원들 앞에서 발표도 해보았으니까.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 시험장으로 나오니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단순히 계산해도 생원시에 응시하는 사람이 750명이요, 내가 시험장으로 배정받은 예조에 있는 이가 375명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내암(정인홍의 호) 자네도 생원시에 응시하였다 하였는데 같은 시험장에서 만나게 되었군.”
“서애 아닌가? 스승님과 인연을 맺으려고 소과 장원을 노린다 하였지. 서로 덕을 볼지도 모르겠으니 옆자리에 앉으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어허! 지난 초시에서 정권분답(답지를 바꿔치기 함)으로 곤욕을 치른 이들이 있는데 어찌 부정한 일을 논하는 것인가.”
“자네가 내 덕을 볼 일이 아닌가! 이 친구 농담을 농담으로 알면 좋겠군.”
정인홍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나를 넘어서고 싶은 마음에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예조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관리가 나와 큰소리로 외쳤다.
“차례차례 들어가되 입구에서 시권(試券: 답지)을 받아가시오! 오른쪽 위에 호패로 인장을 찍어 신분을 증명함을 잊지 말고!”
호패는 정말 요긴하게 쓰였다. 일종의 주민등록번호는 도장으로 쓰이며 관청에 탁본을 떠서 두는 덕분에 위조도 쉽지 않으니까.
답안지를 받아들고 안으로 들어가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펼쳤다.
금란관(禁亂官)이 돌아다니며 시험지 귀퉁이의 날인을 확인하며 호패의 인적사항과 외모를 대조하였다.
호패에 적힌 나이보다 많이 들어서 감독관이 몇 번이고 확인하였지만 이미 익숙하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 부정행위를 방지한다며 급작스럽게 사람들을 섞어대기 시작하였다.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잠자코 자리를 옮기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저 멀리서 큰 북소리가 들렸다.
“진시(오전 7시)가 되었으니 시문(試問)을 공지하겠소!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시문을 시권에 옮겨 적고 실시하시오! 한 시진마다 북을 울려 알릴 것이며 유시(오후 7시)가 제출 기한이오!”
소과의 내용은 이미 마르고 닳도록 들어서 알고 있으니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문제의 난이도가 중요하니 시험의 첫 문제이자 가장 배점이 높은 사서의(四書義)를 확인하였다.
-논어의 미자(微子)에 의하면 성현들이 관직에 있을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며. 맹자의 만장(萬章)에는 인도와 도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를 통틀어 중용의 성(誠: 정성)의 마음으로 풀어 해설하라.
사서의는 논술과 유사한 문제이며 가장 많은 지식을 요구한다.
당연히 경전의 내용을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하며 이황도 첫 생원시에서 여백이 부족하여 줄 간격을 뭉개면서 도합 900자를 적는 것이 한계라 했었지.
경전 지식을 충분히 갖추어도 여백이 부족해 글을 적지 못하는 것이다.
머릿속의 지식이 많아도 물리적으로 기입할 공간이 부족하니 축약하는 시간도 많이 소모된다.
하지만 해결책이 있다. 신상명세 기입을 위해 꺼내놓았던 붓을 귀퉁이에 두고 잘 깎아둔 깃펜과 작은 자기병에 담긴 잉크를 꺼냈다.
주변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더니 광인을 보는 것처럼 시선이 집중되었고, 부정행위라 여긴 감독관은 내 모습을 보더니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규정을 어기고 말을 걸었다.
“자네 지금 무얼 하는 것인가? 본디 붓의 종류를 규정하지 않지만 우모필(깃펜)로 답안을 적으려다가는 제출 시한을 넘기거나 여백이 남아돌아 합격하지 못할 것이네.”
연필과 우모필은 아주 세밀하게 적을 때에 사용된다.
대충 엄지손톱 크기 이하의 한자를 적을 때에만 사용하니 이 시험지를 가득 채우려면 삼천 자를 적어야 하리라.
삼천 자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답했다.
“저는 모조리 적을 자신이 있기에 우모필을 꺼낸 것입니다.”
“어허! 설령 자네가 사서의에 통달하였다 하여도 문제가 하나만 있던가? 오경의도 세 문제나 출제되고 산학(算學: 수학)과 이학(理學: 화학을 비롯한 기타 학문)도 있다네!”
걱정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하고 글을 다듬느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걱정할 일이지, 나는 아니다. 이미 연습 삼아 열 시간 동안 경전을 되새겨 적는 일에 성공했었으니까.
수학 문제는 이차 방정식이니 공식을 아는 나에게는 오 분 이내에 해결할 문제이다.
오경의? 오경의는 단순한 내용을 적는 것이라 삼십 분이면 끝난다.
이학 문제는 인쇄기에 대한 지식을 적으라는 것인데 이건 회령군의 자택에서 배우고 익힌 안평대군의 저서를 바탕으로 쓰면 삼십 분 이내에 끝나겠지.
이미 계산을 마친 상태라 감독관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한 시진 동안 육백 자를 적을 수 있으니 사서의에 다섯 시진을 투자해 삼천 자를 적고 나머지를 한 시진 이내에 답을 내놓을 수 있으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니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네.”
감독관은 자만심에 넘치는 젊은이가 헛된 짓을 벌인다고 여겼는지 더 이상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방해하는 이가 없었으니 오와 열을 맞추기 위하여 연필로 가는 선을 그리고 깃펜에 잉크를 잔뜩 채워 넣었다.
“논술시험에 글자제한을 두는 이유가 있는데 아직 나 같은 사람은 없었나 보네.”
현대의 논술시험에서 글자제한을 두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작문능력과 이해력을 판단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근거를 제시할 때에 양으로 밀어붙이지 못하게 제한을 두는 것이다.
그런 제한이 없다면?
나 같은 괴물딱지가 와서 3,000자를 빼곡하게 채운 답안지를 제출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아마 이번 시험이 끝나면 글자제한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게 뭐가 대수인가.
옳은 말과 옳은 근거를 제시하면 제시할수록 점수는 올라가게 마련이 아닌가.
머릿속에서 되새긴 사서의 내용을 조합하는 대로 글귀로 옮기니 무아지경에서 손만 움직였다.
말 그대로 손가락이 부르틀 지경으로 답지를 채워나갔지만 쇠질로 생긴 굳은살은 부르틀 줄을 몰랐고 팔의 힘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 유생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며 내 모습을 보았는지 혀를 내두르듯 말했다.
“퇴계 대감의 제자라 하였는데 팔 힘이 어찌 저리 좋을 수가 있는가. 저런 완력이 있으니 남들을 뛰어넘은 답안을 적을 수 있는 것이겠지.”
그냥 입신체비로 다져진 완력으로 적는다 생각하면 서로 편한 일이다. 그 완력을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근면육연화기억술로 암기했다 여기고 있겠지.
점심 대용으로 챙겨온 엿을 대충 먹어 끼니를 때우고 정신없이 손을 놀렸다.
다른 답안도 모두 채워 넣으니 이미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기입할 내용도 없으니 바로 답지를 제출하였다.
“이토록 기괴한 시권은 본 적이 없네. 자네 팔은 괜찮은지 모르겠군.”
“스승님께서 불초제자를 심혈을 다 하여 가르쳤으니 가르치신 일을 되새겼을 뿐입니다.”
시험을 주관하는 예조판서 이탁이 내 답안지를 보더니 소매에서 안경을 꺼내 재차 확인하였다.
까마득하게 적힌 글귀를 몇 번이고 확인하는 모습을 보니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이걸 보면 사동관과 자동관이 피를 토하겠군. 자네 스승인 퇴계 대감도 도합 일천이백 자를 넘게 기입하여 사람을 고단하게 하였는데 그 두 배가 넘을 것이네.”
채점 과정에서 답안지를 직접 채점하지 않고 읽고 기입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확인한다 하였던가.
정말 읽는 이가 피를 토할지도 몰랐지만 무엇이 대수란 말인가.
* * *
며칠 동안 푹 쉬고 양송정에 나아가 이황 아래에서 입신체비를 다시 시작했다.
기껏해야 20일간 몸을 놀리지 않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이황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나에게 잔소리를 시작하였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품었기에 삼천 자에 달하는 시문…… 시문도 아니고 사실상 서책을 쓴 것이냐. 이를 정음으로 풀어쓰면 삼만 자가 넘는 분량이 아니더냐.”
“제자가 실력이 부족함을 염려하여 모든 내용을 암기하였습니다. 혹여나 불초제자가 실례를 범하여 낙방하게 된 것입니까?”
“내가 많은 것은 알지 못하여도 낙방이 아님은 확실하다. 너보다 상세하게 적은 답안이 없지만 내용이 너무 장황한지라 해석하는 일에도 한참 걸린다 하더구나.”
내가 걱정한 요소는 너무 많은 분량을 적은 나머지 무례함으로 인식되어 불합격 처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황이 낙방이 아니라 하였으니 낙방은 아니겠지.
머슴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이황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대감님! 문 앞에 예조의 사람이 당도하였습니다. 듣자 하니 합격자가 셋이 모인 장소라 직접 찾아왔다 하였습니다.”
“합격자가 셋이라. 너희 모두가 소과에 합격한 것이 분명하구나.”
입신체비를 중단하고 마당에 도열하니 얼핏 보아도 불쾌함이 가득해 보이는 젊은 관료가 이황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태도로 보건대 이황의 옛 제자였음이 분명한 것 같았다.
“좌찬성 대감님을 뵙습니다. 본디 집으로 찾아가야 할 일이지만 한 스승 아래에서 세 명이 합격하였기에 예조정랑(正郎: 정5품 관직)인 제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양원 자네가 그러한 말을 하니 내 얼굴을 들지 못하겠네. 성룡이가 제출한 시문도 아닌 서책을 읽은 이가 고생을 많이 하였겠군.”
“가뜩이나 업무량이 늘어나는 형국인데 어지간한 합격자의 다섯 배나 되는 분량을 제출할 줄을 예상하지 못하였지요. 먼저 유성룡 자네가 앞으로 나서게.”
아마 불쾌함의 원인은 내 시험지를 검수하며 생긴 분노가 분명하리라.
이양원은 소과에 합격하였다는 증거인 백패(白牌)를 주면서 말하였다.
“내 반드시 주상전하께 건의하여 자네와 같은 행위를 벌이지 않도록 만들 것이네. 앞으로 생원시에 나서는 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수천 자를 적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제가 경험이 없어 미처 몰랐습니다.”
“미처 몰랐으니 마음에 새겨두게나. 일단 자네의 등위는 생원시의 장원이며 앞으로 유 생원이라 부르겠네. 본래 내 사제지간이나 다름이 없으니 축하하여야 할 일이지만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군.”
나에게는 쌀쌀맞게 굴던 이양원은 정구와 이덕홍에게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합격을 축하하였다.
아마 예조 관원들에게 제대로 찍혔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훗날에 고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합격증을 보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하는 일은 흔해도 장원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가보로 남아 보존된다. 내 답안도 보존되어 훗날 박물관에 전시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앞길은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
다음 날, 호패를 갱신하고 바로 혼담을 위해 조식의 집을 방문하였다.
조식 또한 나의 합격 사실을 전해 들었는지 기쁜 얼굴로 아버지와 나를 맞이하였다.
“사위 왔는가. 생원시를 발칵 뒤집어 놓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놓이는군.”
“대감께서 사위라 칭하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생원에 불과하며 관직에 오를 일이 한참 남지 않았습니까.”
“첫 시험에서 급제하였으니 앞으로 자네를 우러러보는 이들이 생겨날 것일세. 자네는 잠시 나와 대화를 하되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안면이라도 트게 함이 어떠한가.”
이야기는 끝내놨으니 은근슬쩍 안채로 들어가 신부의 얼굴이라도 보라는 뜻이겠지.
조심스럽게 안채로 들어가니 무언가 절구를 찧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에게 들은 대로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은근슬쩍 기침을 하여 안면을 트고 간단한 인사를 올리면 충분하다 하였다.
하지만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절굿공이가 불안하니 돌을 괴어야겠구나.”
나를 위해 떡을 만들려 했는지 절구를 찧던 미래의 내 아내는 거대한 돌절구를 사뿐히 안아 들더니 천천히 안마당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적게 잡아도 50㎏은 될 법한 돌절구인데?
#작가의 말
이황의 과거시험 답안입니다.
1527년 시행한 향시 답안인데 줄 간격이 점점 좁아지는 게 공간이 없어서 아는 내용도 다 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출처 인사혁신처 공무원 채용역사관 http://www.mpm.go.kr/historyofex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