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272화
2부 2장 9화 내 사위가 되게
승경도, 아니, 승근도의 절반을 넘어설 무렵이 되자 우리 여덟 명 모두 피로와 탈력감에 시달리며 점차적으로 몸이 둔해졌다.
우리가 원하는 운동이 아닌 무작위적 운동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신의 근육이 사정없이 고난을 겪는 와중에 순흥군은 우리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한계점을 가늠하고 있었다.
지금도 상향의압(인클라인 벤치프레스)을 시도하던 정인홍의 손이 휘청거리자 순흥군이 개입했다.
“그만! 휴식을 취하게. 이러다 대역기에 짓눌려 죽을 수도 있다네.”
정인홍이 분노를 씹어 삼키며 역기를 내려놓자 조식이 정인홍을 대신하여 회차(세트)를 채웠다.
조식은 대단한 경지에 올랐지만 다른 제자들의 부담을 짊어진 상황이라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다시 윤목이 굴러가고 편수궁악(크록 로우)에 멈추었다. 양손으로 각각 역기를 당기는 운동이라서 자신 있었지만 내가 쉴 차례이니 김성일에게 떠넘기고 가만히 있었다.
사지를 풀며 다음 차례에 대비하니 조식의 제자 가운데 가장 젊은 신주랑이 내 모습을 보며 슬쩍 질문을 시작하였다.
“혹여나 어린 시절부터 입신체비를 행하였습니까? 저도 어릴 적에는 미주의 산천을 거닐며 몸을 단련하였는데 하체가 저보다 튼튼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인왕산을 돌아다녔으며 농사를 할 적에 인력거를 끌고 다니며 알음알음 하체를 단련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이황에게서 상체 위주의 교육을 받았지만 사 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하체의 지구력은 남아 있었다.
내 겸손한 모습을 본 조식은 신주랑을 꾸짖듯이 말했다.
“미주에 알리니 너 나 할 것 없이 사용하던 인력거를 기억하더냐. 인력거를 열한 살에 만든 사람이 있다 이야기하였더니 믿지 않았지. 네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성룡이가 창안한 물건이다.”
“정…… 정말입니까? 그 신묘한 물건을 창안하시다니요.”
“신묘할 것이 있습니까. 저는 생각 없이 소달구지 위에 가마를 얹은 녀석을 창안하였는데 회령군 대감께서 다시 손보셔서 사람이 쓸 수 있게 고치셨습니다.”
“제가 보았던 물건은 통나무로 엮어 만든 녀석이었는데 고쳐 만든 물건이 있다니요?”
조식의 하체 사랑을 감안하면 자신을 단련하는데 통나무 덩어리나 마찬가지인 인력거를 사용했으리라.
서로 훈훈한 미소를 짓는 와중에 운동이 끝난 이황이 조식에게 윤목을 건네며 당당하게 말했다.
“앞으로 서른 칸만 나아가면 이길 수 있다네. 이제 자네 차례이니 어서 던지게나.”
“그만두겠네. 내가 만용을 부려 뒤쪽에 사지를 모두 사용하는 운동을 넣었으니 자칫하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네.”
그나마 양심적인 전반부 운동과 달리 후반부의 40칸은 전신운동인 부와도약(버피)은 물론이요, 역도 용상과 동일한 동작인 전체승압(파워클린)을 포함한 악랄한 운동으로 채워져 있었다.
자신의 꾀에 자신이 넘어간 조식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윤목을 돌려주었고 이황은 난데없이 웃옷을 벗어 던지더니 전신의 근육을 움츠리고 팔을 위로 뻗어 올리며 말했다.
“보게나! 이것이 승리의 흑룡세가 아니겠나! 내가 삼십여 년 동안 자네와 다퉈 왔는데 환갑이 되기 이전에 가까스로 완승을 거두었다네!”
흑룡세(黑龍勢: 빅토리 포즈)라 했는데 대체 어디가 흑룡이지. 수양대군의 모습을 남긴 수양팔근도에도 기록되어 있는 자세였지만 솔직하게 말해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감상은 남달랐다.
“흑룡의 눈두덩을 제대로 표현하였으니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나 다름이 없네!”
“역시 스승님의 흑룡세는 장절함이 남다르시지. 용면세(龍面勢: 백 더블 바이셉스)도 탁월하시지만 최고는 흑룡세가 아니겠는가.”
“동쪽 산의 위대한 신이시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너무 희미해서 그런지 유성룡의 기억력으로도 되새길 수 없어 안타까웠다.
박승임을 시작으로 우리 모두도 웃통을 벗고 흑룡세를 따라 하였고 상대도 보디빌딩 포즈가 분명한 자세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다음번에는 이길 것이라는 의지를 담은 호표세(虎彪勢: 업도미널 앤 타이즈)일세. 아마 다음은 없을 것이지만 제자들의 학식이 우리를 넘어설 것이네.”
자세마다 의미를 담으니 경건함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마지막 자세가 끝나고 서로 옷을 갖춰 입으니 순흥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황과 조식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어릴 무렵부터 그토록 다툼을 벌여 오시던 두 분이 마침내 환갑이 되기 전에 끝을 내시다니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일은 좋은 일이지. 앞으로 제자들의 시대가 될 것이니 주연(酒宴)을 행함은 어떠한가?”
“주연이라? 그렇지 않아도 내 승리를 기념하여 자네에게 선물할 미주의 수많은 엽차(葉茶)를 모아 왔으니 차나 실컷 마시도록 하세.”
이황이 술이나 마시고 시름을 잊자는 말을 하니 다들 동의하며 샤워를 준비하라 시켰다. 겨울철에도 몸을 씻을 수는 있지만 뜨거운 물을 잔뜩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한창 뒷정리를 하는 와중에 순흥군은 승근도를 벽에 걸어두고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꼽아 가며 계산하며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려는지 궁금하였는데 소름 돋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중앙을 비워 각 자세를 표현하고. 바깥을 한 바퀴 돌도록 마흔 칸을 두면 맨몸으로 행하는 입신체비만 골라 두루두루 적용할 수 있겠군. 평범한 이들과 아녀자도 즐길 수 있겠어.”
순흥군의 역할 중 하나가 입신체비의 보급이라 하였는가.
민속놀이조차 본래 역사와 엇나가 버린 것 같은데 바둑이 엇나간 시점에서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 * *
이황은 주연을 잘 열지 않는다.
남들 모두가 술을 마시는데 자신 혼자서 차를 마시면 분위기를 흐트러트린다 하였으며, 간혹 주연에서 술을 마셔도 청주 한 잔 정도가 전부이다.
그런 이황에게 같이 차를 즐기는 친구가 달라붙었으니 주연이 성립되었다.
양송정에 있던 수많은 술이 창고에서 밖으로 나왔으며 다들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창산(신주랑의 호)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네. 내가 듣자 하니 미주에는 기름이 흘러넘치며 맛이 고소하여 수유(酥油: 버터)와 흡사한 과실이 있다 하는데?”
“있습니다. 악어와 같은 껍질을 가졌다 하여 악리(鰐梨: 악어배)라 불리는 과실인데 잘 익어 시커먼 색으로 변하면 따내어 요리하였습니다. 입신체비를 익힌 지금은 접하기 힘든 과일이 되었습니다.”
우리 제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신주랑이었다.
미주에 대해서는 상세한 일은 외방 관원을 통해 전해질 뿐이고 생생한 생활상을 알 길이 없으니까. 지금 하는 이야기는 아보카도에 대한 소문이리라.
문제는 대화가 오가면 술이 한 잔 오간다는 점이다.
신주랑은 소주를 몇 잔 받더니만 취기가 올라 얼떨떨한 얼굴이 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술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 하던데 신주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 그러니까 북쪽에 사는 이들은 정말 단풍나무 가지를 잘라 물을 받아서 졸인다 합니다. 졸이면 조청보다 단맛…… 이 난다 하는데.”
“고로쇠의 물에 약간의 단맛이 나는데 그러한 일은 처음 들어보는군.”
“미주의 소는 힘이 세고 성질이 난폭하며 체격이 거대하다 하던데 자네는 본 적이 있나?”
더 이상 마시다가는 술에 취해 쓰러질 것 같아서 은근슬쩍 끼어드니 다들 신주랑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나를 은근슬쩍 도와주었다.
달을 보러 가자면서 뒤뜰로 옮기니 신주랑은 허우적거리면서 술주정을 시작하였다.
“달이 참 밝…… 습니다. 듣자 하니 달처럼 둥글고 둥근 곳의 반대편에 왔다 합니다.”
“취했구려.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셔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어찌하여 이렇게 많이 마셨는지 모를 일일세.”
이러다가 알코올중독자가 된 미주인을 볼 것 같아서 염려하였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온몸에 넘쳐나는 근육 덕분에 알코올의 소모가 빠를지도 모르지.
한참 잡담을 나누며 미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선인의 유입은 미주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신주랑은 사지를 놀려 술기운을 몰아내며 말했다.
“쌀이라는 작물을 처음 접한 이후로 생활이 많이 변했습니다. 아직 논을 만들지 못하여 밭에 쌀을 기르는 풍속이 있지만 옥수수와 동일한 취급을 받으니 이 또한 풍속이 아니겠습니까.”
“쌀을 기르는 풍속이 있다 하였는가? 하지만 쌀농사를 가르친 이가 대체 누구인가?”
“스승님이시지요. 미주 관찰사로 부임하신 직후부터 저희를 위하여 많은 힘을 쓰셨습니다. 다만 아직 술을 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지 않으셨지요.”
“아국에서도 흉년이 발생하면 금주령부터 내린다네. 그러한 형편인데 술을 만드는 법을 쉬이 전해줄 수 없지 않은가.”
조식이 농업을 전담하는 농조판서로 재직하였던 사람이라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쌀농사를 가르치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으리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니 술자리가 한창인 곳에서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룡아! 내 벗이 네게 할 말이 있다더구나!
신주랑에게 미주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스승님의 부름이니 갈 수밖에.
둘을 위해 따로 마련된 주안상, 아니, 다과상에 다가서니 이황 대신 조식이 나에게 잔을 건넸다.
“자네를 보니 젊을 적의 내가 생각나는 것 같아 대견하네. 일단 한잔 받게나.”
“남명 선생님께 차를 받을 기회를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댓잎차는 어디서 구해 왔단 말인가.
잘 덖은 대나무 잎이 잔뜩 들어간 차를 마시니 떫은맛과 대나무 향이 아릿하게 올라왔는데 보통 대나무 향이 아니었다.
내 표정을 살핀 조식은 껄껄 웃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옛사람이 중미국(멕시코)에서 자라는 철죽(鐵竹)을 금주(今州: 샌프란시스코)에 옮겨 심었는데 이십 년이 지나니 무성히 자라 댓잎차를 만들어보았다네. 맛이 참 특이하지 않은가?”
“향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머나먼 미주에도 대나무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농조의 외농사(外農司: 외래 작물 육성 기관)에서 일하면 수많은 작물에 대하여 알며 견식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네. 그나저나 자네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까울 지경이네.”
이황이 은근슬쩍 눈치를 주었지만 조식은 눈웃음을 지으며 이황의 시선을 받아넘기고 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인력거의 창안이나 풍구의 발상을 예로 드니 이황도 눈이 가늘어지면서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푸근한 미소 속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현대에서 일하며 눈치만 잔뜩 생겨났으니 보통 일은 아니리라.
조식은 칭찬을 끝내고 본론을 시작했다.
“그러하니 내 제안할 것이 있네. 내 막내딸이 자네보다 한 살 많은 연배인데 혼사를 추진함은 어떠한가?”
혼사? 혼사라고?
이 시대의 혼인은 장남과 장녀에 한해서는 가문의 격식을 맞추고 가장의 의견을 반영하지만 차남부터는 인연을 맺은 사람이 중매를 서는 방식을 택한다. 당연히 내 중매를 서는 사람은 이황이다.
연예결혼은 이 시대에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난데없는 조식의 막내딸과 혼인하자는 제안을 하다니.
급작스러운 일이라 말을 더듬으며 대꾸를 하지도 못했다.
“그러하면 제가 처가살이를 함이 당연하니 남명 선생님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생각해 보니 이것도 문제다.
처가의 힘이 세면 처가살이를 하는 사위들이 많으니 남명 조식의 집에 가서 신혼생활을 하며 그의 제자가 될 것이다.
조식 또한 이런 상황을 계산했는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처가살이는 행하지 않아도 좋네. 오히려 내가 편의를 보아 자네가 내 막내딸인 윤(贇)이와 지낼 집을 마련해 줄 것이니 퇴계 아래에서 계속 수학할 수 있다네.”
이황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고 나도 마음이 오락가락해서 어찌할 도리를 모르겠다. 본래 있었던 아내와 아들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었지만 만날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조선시대에 독신생활을 하면 외로움을 어찌 견디란 말인가. 결국 상대를 정해 결혼해야 할 일이지만 대체 왜 나란 말인가.
조식은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자네와 같이 학식이 빼어난 이가 퇴계의 문하에 있으니 조정이 자네를 시작으로 퇴계의 제자로 들어찰지 모르겠네. 기껏해야 인홍이가 자네와 비견할 수 있지만 부족함이 느껴지는군.”
“제 나이는 지학(15세)을 넘긴 지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자네의 나이는 열일곱에 불과하지. 하지만 외모는 이립(30세)에 가까우며 행동은 불혹(40)에 가깝지 않은가. 훗날 대성할 것이 분명하니 자네를 조금이라도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제자들이 낯이라도 들지 않겠는가.”
일단 내 알맹이는 50세에 가까운 중늙은이니까 조식의 평가 또한 틀린 것도 아니며 제자 사이의 분쟁이 벌어질 적에 중간에서 분쟁을 완화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어차피 형님이 결혼한 이후 적당한 상대를 찾아 결혼할 게 분명한데 아는 사람의 딸이라.
하지만 이황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으며 나도 제자로 오래 있어 보았으니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넙죽 받아들이면 크게 후회할 것이니 가급적 네가 이루기 힘든 고난을 이겨낸 이후에 받아들인다 하여라.’
대충 명망 높은 이의 딸과 결혼하기에는 내 수준이 너무 부족하다는 경고겠지.
조건으로 삼대운동 700근을 제시하려 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오 년은 걸리니까 그동안 혼담을 나누지 말라 하면 말이 안 된다.
식년시 생원과의 장원을 걸면 충분한 일이 아닐까. 다른 이들은 장원은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하였지만 잘해야 갑(甲)과인 5위 이내에 들 실력이지 장원은 더욱 힘들다.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명망이 높으신 남명 선생님과 혼담을 나누는데 제가 너무 부족한지라 다른 이들이 질시할지도 모릅니다. 소과의 장원에 오른 뒤에 혼담을 확정함이 어떠합니까.”
“소과의 장원이라 하였는가? 가만 생각해보니 내 너무 성급하였는데 좋은 방안이 분명하군. 그러한 조건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혼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네.”
다시 차가 한 잔 오가고 조식은 막내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아래에 삼남 사녀가 있는데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가장 인내심이 뛰어나며 학식 또한 풍부하다고.
어느새 통금 시간이 다가왔고 조식은 제자들과 함께 돌아가려 하였다. 이미 나를 사위로 여기는지 밝은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자네가 아마 장원을 할 것이나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게. 아직 관직에 오르지 못한 내 제자들 모두가 자네에게 이기기 위해 소과에 전력으로 응하라 하겠네.”
“선생님께서 당부하셨으니 제 마음속에 새길 것입니다.”
조식과 달리 이황은 깊은 시름과 고뇌에 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한숨을 쉬길 반복하였다.
대체 이 혼담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이미 동의한 내용이 아닌가?
“내일부터 하체를 집중적으로 행하겠다.”
“네? 하체라 하셨습니까? 제가 막 상체를 집중하여 단련하지 않습니까?”
“내가 혼담을 말릴 연유는 없었지만 혼인한 이후에 벌어질 일을 불 보듯 알고 있으니 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체를 집중적으로 단련할 것이니 단단히 각오하여라.”
다음 날부터 말 그대로 하체를 박살 내기 시작하였다.
평소에는 느슨하게 근지구력과 균형감각을 기를 목적으로 시행한 공좌가 내 근육의 한계치에 도달할 정도의 하중이라니.
“어허! 반동을 주지 말거라! 요추가 무너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여섯!”
두 달 내내 하체를 위주로 입신체비를 시행하니 죽을 것 같았지만 이황의 눈빛은 내 하체에 집중되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돌아오자 아버지도 한숨을 쉬시고 나에게 말하셨다.
“이미 남명 대감과 이야기가 끝났다. 대감과 혼담을 나누는 네가 대견하지만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혼담을 넙죽 받아들였는지 모를 일이다. 당분간 하체에 집중하고 또 집중하여라.”
내가 아무리 소과 합격이 떼놓은 당상이라지만 너무한 일이 아닌가?
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시험공부 대신 하체에 집중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
#작가의 말
이황과 조식이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황 : 내 제자들의 혼인은 적당한 사람을 찾아주면 될 일이지. 뜻은 제자들이 정할 일이라네.
조식 : 그럼 성룡이가 내 막내딸과 혼인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이황 : 지금 그걸 말이라 하는가!
조식 : 제자들이 정한다면서! 그럼 물어봐서 허락하면 될 일이잖아!
입니다. 즉 성룡이가 거절했으면 혼담이 끝날 일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