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271화
2부 2장 8화 남명 조식(2)
역사에 대한 지식이 건축에 관련된 내용 밖에는 없었지만 남명 조식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고 있다.
사림의 계보에서 북인의 시조로 손꼽히는 자이며 관직에 나서지 않고 제자를 육성하던 자이다.
관직에 나서지 않았지만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려 명성을 떨쳤으며, 중앙 정계와 인연이 없는데도 훗날 일본의 침략을 예측하는 모습을 보면 뛰어난 인재는 확실하다.
그래도 본래 역사에서 관직에 나서질 않았는데?
-다른 이들은 산림지사라 하며 받들어 주지만 실상은 세상만사를 알지 못하고 오로지 학문에 파고들어 정체된 이들이지.
어린 시절 들었던 외할아버지의 서글픈 목소리가 떠올라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세상이 변할 대로 변했으니 남명 조식도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관직에 나선 것이리라.
조식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승경도라 하였는가? 혹여나 자네가 즐기는 상체운동만 가득 담아 두었는가?”
“나를 어떻게 보는 것인가. 입신체비서에 기록된 내용 가운데 지나치게 쉬운 동작이나 너무 난해한 동작을 제외하여 골고루 배치하였다네.”
“자네를 무엇으로 보기는. 성균관에서 처음 내수린 대결을 벌일 적에 덥다 하며 멋대로 상의를 찢어버려 나를 곤란하게 하지 않았는가.”
이황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비겁한 행동이 들통 난 것일까.
하지만 잠시 생각한 이황도 당당하게 말했다.
“자네야말로 젊은 시절 목멱산(남산)을 오를 적에 하초를 단련한다며 옥대(玉帶: 허리띠)에 철물을 덧대더니만 중턱 즈음에서 철물을 빼내지 않았는가.”
“철…… 철물이 허리에 박혀서 복근에 흠집이 갈까 염려하였을 뿐이네!”
“그러한가? 나는 자네의 복근이 그렇게 부드러울 줄 몰랐는데.”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하는데 아마 성균관에서 만난 이후 호적수가 되었을 것이고, 이후 삼십 년 넘게 싸워온 것이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서로 부끄러운 일을 차곡차곡 쌓아갔겠지.
본래 역사에서 서신으로 싸웠던 이들이 만났으니 이 정도로 끝나면 나은 일이리라.
서로의 과거를 파헤치면 한도 끝도 없다 여겼는지 조식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척 하늘을 바라보더니 말하였다.
“승경도를 본떠 자네가 창안한 방식이나 피투(避鬪: 피하고 싸운다) 체조에 관련된 내용은 없겠지. 다른 일은 되었고 피투체조를 조금 섞으면 형평성이 맞을 것 같네.”
피투 체조는 임차손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수양대군이 창안한 병사 훈련법인 훈영제식법의 일부이며 아무리 보아도 현대의 PT체조를 변형한 녀석이지.
이황도 일리 있는 말이라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하면 일시를 정하도록 하세.”
“주상전하께 인사를 드린 것이 어제이며 자네를 비롯한 여러 권신들의 집을 방문한 것이 오늘일세. 이제 친가와 처가에 다녀와야 할 것이니 정월 대보름 다음 날은 어떠한가.”
세부 사항을 정한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훈훈한 분위기를 내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바보가 아니라면 이 훈훈한 분위기는 나중에 일어날 경쟁의 예고임을 알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건 싸울 필요도 없이 이황의 승리가 아닐까. 조식은 체격 자체가 달랐는지 이황과 비교하면 대략 두 치(약 7㎝)정도 클 것이며, 기본 체중도 10㎏ 가까이 차이 날 것이다.
더군다나 이황은 상체에 집중해서 삼대운동 합계를 한 부위인 의압(벤치프레스)로 무게를 올리는데 조식은 하체에 집중하니 두 부위인 공좌(스쿼트)와 시거(데드리프트)로 무게를 올린다.
이래저래 불리한 상황에서도 삼대운동 합이 같다면 이황의 판정승으로 결정되지 않았을까?
다른 제자들을 기다리는데 여전히 착잡한 표정으로 잠긴 이황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제자 스승님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삼대운동의 합이 구백 근이라 하였는데 스승님께서는 상체를 위주로 단련하시니 성과가 더욱 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명은 젊은 시절부터 의압을 일백 근 이상 들지 아니 하였으며 이는 은연중에 자신을 낮추기 위한 방안이라 하였다.”
의압을 일백 근 이상 하지 않았다면 나머지 두 부위에서 팔백 근을 달성했단 말이야? 이게 사람이야 하체 괴물이야!
이황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둘 다 한창일 적에는 진양근(삼대운동 1,000근)을 달성하고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남명도 이길 수 없어 몸이 많이 쇠하였구나.”
조금 덜 쇠약해졌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사람 네 명을 짊어지고 운동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남명 조식이 굳이 여기를 찾아와 시비 아닌 시비를 건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남명 선생님이 어찌하여 스승님을 찾아왔는지 모를 일입니다.”
“네가 인력거를 만들고 풍구라는 기물을 창안하지 않았더냐. 일전에 풍구를 보급하기 위하여 남명이 큰 손해를 본 일을 잊었느냐. 네가 내 제자가 되었다 하였으니 관심을 가짐은 당연한 일이 아니더냐.”
그런 일이 있었지.
나는 중앙 정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조식이 탄핵을 당하는 데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어린 시절의 나를 똑똑히 기억한 조식이 이황의 제자가 된 나를 찾아올 이유가 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양송정으로 돌아왔다. 형님은 오늘 돌아오지 않는다 하였으니 집에 가서 이야기해야 하리라.
이황은 제자들을 방 안으로 불러들이고는 말했다.
“너희에게 할 말이 있으니 잘 들어라. 내 오랜 벗이자 호적수인 남명이 오늘 낮에 양송정에 당도하여 나와 일전을 벌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승경도를 개량한 방식으로 승부를 보고자 한다.”
승경도는 알고 있었다.
문화재청과 업무를 추진해서 이런저런 물건을 많이 받았는데 개중에 홍보를 위해 준비한 상품도 있었고 한글로 번역한 승경도 놀이판도 있었지.
흔히 이야기하는 인생게임. 정확히는 출생은 따지지 않고 관직에 나서는 순간부터 은퇴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드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이걸 쇠질로 바꾼다고? 가장 나이 많은 제자인 박승임이 판을 가져오고 이황이 설명을 시작하였다.
“승경도(陞卿圖)를 개량하였으니 승근도(陞筋圖)라 명명한 놀이이다. 본래 승경도는 여덟 명이 서로의 구별을 나누고 행하지만 승근도는 여덟 명이 두 패로 나뉘어 행한다.”
칸의 내용을 몇 개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영압(밀리터리 프레스) 12회로 4회차(세트), 상체기(윗몸 일으키기) 200회.
김성일은 규칙과 내용을 살피더니 별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횟수가 너무 많아 보였지만 넷이 같이 하면 불가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삼대운동을 기준으로 행하라 명시되어 있군요.”
기본 규칙은 세 가지였다.
자신의 삼대운동을 기준으로 행할 것, 칸에 들어 있는 운동은 편을 먹은 사람들이 알아서 분할할 것 그리고 실패한 사람은 세 번에 걸쳐 휴식을 취할 것.
무작위로 배치된 운동 같아 보였지만 초반부에는 큰 근육 위주의 운동이, 후반부에는 작은 근육 위주의 운동이 배치되었다.
그런데 상체의 비중이 지나치게 많아 보이는데?
“스승님 혹여나 상체의 비중이 많은 것은 스승님의…….”
“내가 그러한 소인배로 보이더냐. 엄연히 입신체비서에 기록된 운동을 적어 나간 것이다.”
본래 상체는 하체에 비해 가동능력이 뛰어나 근육이 세분되어 있으며 운동 방법도 다양하다. 당연히 운동 하나하나를 적으면 상체의 비중이 많겠지.
솔직하게 말해서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서로 힘만 쓰다 끝날 것 같아서 불안하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결국 정월 대보름이 되었다.
* * *
가장 큰 명절인 정월 대보름이라 한양 전체가 떠들썩했지만 양송정은 적막감이 흘렀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모두 승근도를 대비하여 몇 번이고 훈련을 거듭하였으며 이는 상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오늘은 정월대보름이니 경사가 아닌가. 이 승근도의 승패를 결정할 순흥군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서로 제자들의 안면을 트는 자리를 마련함세.”
역사가 변했지만 이황의 제자 대부분이 이황의 제자로 들어왔듯이 조식의 제자도 그의 휘하에서 배우고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이라 집에서 사자소학이나 읽고 있을 곽재우를 제외하면 내가 아는 사람은 단 하나였지만.
“서산 정씨의 덕원(德遠: 정인홍의 자)이라 합니다. 호는 내암(來庵)이지요.”
“풍천 유씨의 이견이라 합니다. 호는 서애이지요.”
오랜 세월 입신체비를 하였던 박승임보다 담대한 체격을 지녔으며 오뚝한 콧날을 자랑하는 젊은이와 악수를 나누었다. 정씨에 나보다 일곱 살 많은 제자라면 유성룡 평생의 숙적인 정인홍 외에는 없지 않은가.
한창 제자들의 면모를 살피는데 순흥군이 도착하였다. 본래대로면 오지 않을 사람이었지만 오십이 넘은 노인들이 죽을 지도 몰라 일정을 뒤틀어가며 당도하였다더라.
순흥군은 실망한 표정을 드러낸 채 말하였다.
“두 대감께서는 제가 어린 시절부터 다투시더니 불혹을 넘어 지천명까지 다투심이 참으로 불민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일전에 내수린을 행하다 크게 다치셨던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하니 여럿이 패를 나누어 행하는 승근도로 승패를 정하려 하네.”
“익히 알고 있지만 너무 과도한 입신체비를 행하면 제가 즉각 중단시키겠습니다. 자고로 경쟁은 과도하면 화를 불러오는 법이니 늘 여유를 가지고 입신체비를 행하라 하였지요.”
순흥군을 포함하여 승근도로 겨루기로 한 아홉 명의 근육덩어리들이 입신체비장으로 쓰이는 창고 안에 들어가자 건물 전체가 꽉 들어찬 것 같았다.
중앙에 승근도를 놓고 이황과 조식이 나란히 서서 말하였다.
“일전에 정한대로 피투체조 열네 개를 도판에 마음대로 올려놓게.”
조식은 한참 고민하다 피투체조를 적은 쪽지를 승근도 위에 올려놓았다.
이황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이내 윤목(輪木: 주사위 대신 쓰이는 각진 나무)을 꺼내더니 판 위에 굴렸다.
“첫 운동부터 훈영제식법이구나! 피투 팔 번 삼십 회 반복이다!”
이미 피투체조에 대해 배웠지만 이 녀석은 흔히 군대 관련 영상에 나오는 그 체조가 맞다!
승근도에 참가하는 이황, 박승임, 김성일 그리고 나는 바닥에 털썩 드러누워 팔다리를 허공으로 뻗고 사지를 뒤틀었다.
“자고로 심부근육(코어 근육)과 복근은 중매와 마찬가지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이황의 말을 듣는 나는 말 할 새도 없이 배에 힘을 주며 안간힘을 썼다!
이 단련법은 해본 적도 있고 효과도 확실했다. 아주 확실하게 복근과 주변 근육을 단련하니까!
몸에 열이 올라오고 조식이 윤목을 들어 던졌다.
윤목이 멈추자 조식은 슬쩍 눈을 찡그리며 한탄하듯 말하였다.
“시거였으면 좋았을 것을 광시거(스모 데드리프트)라니. 수양대군께서 진양근(삼대운동 1,000근)을 달성할 적에 행하였다 올바르지 못한 자세라 하여 행하지 아니하셨는데.”
“시거는 어떠한 형태라도 몸을 단련할 수 있지 않은가. 자네가 말한 대로 하체 운동의 방식을 많이 늘렸으니 불평불만은 가지지 말아야지.”
225근의 거대한 대역기를 완성한 조식이 다리를 쩍 벌려 준비 자세를 잡고 광시거를 시작하였다. 엉덩이의 힘을 이용할 수 있어서 많은 중량을 달성할 수 있다지만 거침없이 15회를 시행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른 제자들도 자신의 무게에 맞게 광시거를 시행했다.
무게 제한? 근생도에 적힌 삼대운동을 기준으로 순흥군이 판단하는 것이라서 오히려 무게를 줄이라 하고 있지.
광시거가 끝나고 윤목이 굴러갔는데 하필 영 좋지 않은 자리에 멈췄다.
“이번에는 엄신(딥스)일세!”
이후로도 한참 몸을 놀렸다.
6까지의 눈금이 있는 윤목 두 개를 던지니 평균값은 7이 나오고, 승근도의 전체 칸수는 150칸에 달하니 평균적으로 20회의 입신체비를 행하는 것이다.
이게 무게가 지정되어 있다면 모르겠지만 무게는 오로지 자신의 삼대운동을 기준으로 삼는다.
바꿔 말하면 실력이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근지구력 차이를 제외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몸에 부하가 가해진다.
“이런! 자네 괜찮은가? 어서 앉아서 쉬도록 하게.”
“저는 아직 괜…… 대감께서 말씀하시니 옳을 것입니다.”
조식의 미주 출신의 제자인 신주랑이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휘청거리면서 순흥군의 부축을 받아 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리 준비한 꿀물을 마셨지만 잠시 동안은 나서지 못하리라.
다들 지칠 만했다.
땀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벽이 축축해질 지경이었으니 어느 누구라도 털썩 주저앉아 몸을 쉬고 싶으리라.
조식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앞으로 나서 말했다.
“잠시 쉬면 아니 되겠는가? 제자들이 너무 힘에 겨워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나.”
“그러하면 한 다경간 쉬면 충분할 것이네. 다들 휴식을 취하도록 하게.”
어느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고 적당한 데에 걸터앉아 호흡을 고르고 소금과 꿀을 섞은 물을 마셔 몸을 추슬렀다.
다들 지쳐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나를 포함한 이황의 제자들이 멀쩡했다.
이번 승부에서 승리 전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체를 해 와서 근지구력이 남아 있어서 다른 제자들이 위태로울 때마다 한 번씩 하체운동을 대신 수행하였다.
반대로 상체는 부족했지만 그거야 김성일이나 이황이 알아서 보충해 줄 일이지.
반면 조식의 제자들은 이런 계획을 세우지 못했는지 모두 피로를 공유하였고 한 명씩 지쳐가는 와중이었다.
“참으로 대단하군. 어린 시절부터 입신체비 대신 산천을 주유하였다 하는데 이런 결과로 돌아오다니.”
“남명 선생님께서 저를 칭찬하여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조식은 아까 전부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체를 잘하니 자신의 제자가 되라는 말을 하겠지만 절대 사양이다! 상체 했던 것도 아까운 데 하체까지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