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270화
2부 2장 7화 남명 조식(1)
날이 기울어 12월이 되었다.
음력이니 아마 양력으로는 1558년 1월이 되었겠지만 여기서는 음력을 사용하니 정사(丁巳)년 계축(癸丑)월이다.
고작 한 달이 흘렀지만 바둑과 입신체비를 결합한 무언가, 운동도 놀이도 아닌 정체불명의 새로운 놀이는 알음알음 이황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런 좋은 현상…….
“기왕 좋은 스승을 모신 덕분에 열심히 한 거지만 본래 목적은 아니지 않아?”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혹여나 누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가 어느새 이런 꼴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어. 어느새 근육에 미쳐서 오 년만 열심히 하면 칠백 근이니 구 년이면 팔백 근이니 진지하게 계산하고 있잖아. 그냥 적당히 건강한 몸이면 충분한데.”
장님 나라에서는 외눈박이를 이상하게 본다 하였다.
마찬가지로 근육적, 아니, 보디빌딩의 마수에 빠진 조선에 나 홀로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영향을 알음알음 받은 것이다.
기왕 좋은 몸이 만들어졌으니 목표를 수정했다. 삼대운동 700근만 찍고 현상유지만 하며 적당히 버티면 충분하겠지.
그나저나 사람도 몇 없는 양송정에 버티고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이황은 관청에 나가 오늘도 세자시강원의 인원 구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며 큰 제자인 박승임은 이황의 처가에 일이 생겨 하인들 대다수를 데리고 일손을 도우러 나섰다.
창고가 무너졌다던가 뭐라던가.
김성일은 집안일을 하러 나서고 형님은 혼담을 진행 중이라 장인어른의 집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장남이라서 아버지도 각별히 신경을 썼는지 병조참판 가문 손녀와 혼인할 예정이라 하던가.
“서애 거기 있는가? 잠시 물어볼 것이 있다네.”
덕분에 어린 제자 셋이 이황의 사택인 양송정을 지키고 있었다.
이런 날에는 토의를 진행할 박승임도 없으니 오로지 자습의 연속이고 서로에게 질문을 할 뿐이다.
내 실력이면 내년에 있을 과거시험 소과는 가볍게 합격할 수 있고 장원도 노려볼 수 있다 하였던가.
다른 공부를 시작해도 될 일이지만 조선시대에 얻은 인연이니 다른 두 제자와 한창 서적에 대해 해석하고 있을 참이었다.
“제자 분들, 어떤 분이 도착하였는데 퇴계 어르신을 아는 분이 분명합니다.”
“스승님을 알고 있는 분이라 하셨소?”
“그렇습니다. 어르신의 호를 부르시며 친숙하게 말씀하는데 저는 도통 본 적이 없는 분인지라 대처할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하인들 가운데 대다수가 자리를 비웠으니 대문을 담당하고 있는 머슴도 우리와 비슷한 연배의 젊은 머슴이었다.
서로 눈치를 주고받다가 손님을 맞이하기로 정하고 대문으로 향했다.
“퇴계 있는가? 오랜 벗이 찾아왔는데 어찌하여 보이지 않는 겐가?”
하지만 조금 늦었다. 우리 셋이 대문을 열고 나서서 맞이하려 하였는데 상대가 먼저 들어왔다.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 한 두 명을 대신하여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올렸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저는 퇴계 스승님의 제자인 풍천 유씨의 성룡이라 합니다.”
“풍천 유씨의 성룡이라 하면 차남이고 별호가 서애(西厓)라 하던가. 풍문은 들었지만 퇴계의 제자일 줄은 몰랐네. 다들 어디에 있기에 자네가 나왔는가.”
“스승님께서는 시강원과 관련된 업무로 논의를 거듭하시며, 사형(師兄)들은 사정이 생겨 자리를 비웠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와 다른 둘이 양송정에 남아 있습니다.”
퇴계 이황의 친구쯤 되는 사람 같은데 외모가 독특했다.
어디까지나 근육적으로 변질된 조선에서 독특한 것이었다. 볕에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이야 흔하지만 몸이 차이가 있다.
상체가 제법 발달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제법이고 나보다 부족한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본래 50대 후반 정도의 연령이면 이황보다는 못해도 상체가 담대하게 마련이니까.
또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옷고름에 방울을 꿰어놓았으며, 허리에는 얼핏 보면 칼로 착각할 수 있는 길이의 짧은 대역기봉을 좌우로 차고 있었다.
손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를 내며 사랑채로 향하며 말했다.
“내 방울은 성성자(惺惺子)라 하여 스스로를 깨우치기 위한 방울이며, 허리에 찬 역기봉은 스스로의 경(敬: 공경하다)과 의(義: 의롭다)를 되새기기 위하여 패용한 경의봉이다. 혹여나 나를 아는 이가 없더냐.”
성명은 몰라도 별호(別號)조차 이야기하지 않으니 정체를 알 방법이 없다.
내가 머뭇거리자 정구가 고개를 숙이고 질문을 올렸다.
“저희의 배움이 부족하여 어르신을 알고 있지 못하니 별호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이 노부의 별호는 방장노자(方丈老子)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조국의 산천을 떠나 외방을 다니다 얼마 전에 돌아왔으니 너희가 모를 연유가 충분하지. 오랜 벗인 퇴계가 퇴청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니 내 제자와 안면을 트게나.”
방장노자라는 별호를 들었지만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제자들 모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눈치를 보니 노인은 허탈한 웃음을 내며 사랑채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고 제자도 따라왔다.
하지만 제자의 피부색이 확연히 다르다.
“저는 선생님의 제자인 신주랑(申走狼)이라 하며 별호는 창산(蒼山) 입니다. 명망 높으신 퇴계 선생님의 제자들을 뵙게 되어 분에 넘칠 뿐입니다.”
“어르신…… 이분은 혹여나 미주인이 아닙니까?”
아버지 친구인 폴리네시아인도 보았고 아무리 보아도 동남아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은 처음 보았다.
다들 처음 보았는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손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미주에서 일할 적에 역적 윤가놈의 난행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를 거둬들여 제자로 삼았다. 다른 제자들은 퇴계와 면식이 있지만 새로 얻은 제자이기에 소개하고 싶었지.”
아마 주랑이라는 이름은 달리는 늑대의 뜻을 한자로 옮기며 만들어진 이름이겠지.
내가 악수를 청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째서인지 몰라도 입을 가리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미주인들이 질병에 취약함은 상식이나 마찬가지로 퍼져 있던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신주랑은 우리의 염려를 이해하였는지 자신의 팔뚝을 걷어 보여주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윤가놈의 난행 이후 질병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셨습니다. 스승님께 청하여 수묘법(水苗法)을 행한 덕분에 두창을 앓지 않는 몸이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감탄하였지만 나는 손님과 신주랑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이 시대에는 우두를 통한 예방법은 없어도 중국에서 전해진 인두법이 존재하였고 시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신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사용하니 2할가량은 정말 본래 그대로의 천연두가 발병해 목숨을 잃는 일이 있어서 위험 부담이 공존하는 예방법이다.
자세히 보니 신주랑의 팔에는 흉터 자국이 있었고 아마 인두법이 성공하여 큰 질병을 겪지 않았으리라.
이덕홍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말했다.
“방장노자께서는 참으로 학식이 풍부하시며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높으신 분이 분명합니다. 수묘법은 물론이고 미주인이 아국의 말을 배워 유학자로 나서는 일이 극히 적다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부족한지라 스승님께 폐를 끼쳤지요. 여러분들도 퇴계 대감님의 제자인지라 체격이 담대하시니 제가 배울 것이 많아 보입니다.”
상대를 평가할 때 체격을 먼저 평가하다니.
변질된 풍토에 쓴웃음이 나왔지만 배울 것이 많아 보인다는 말에 서로 서재로 돌아가 경전에 대한 논의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둘 다 상체는 확연히 발달해 있지 않았다. 변질된 조선시대에서 내 목표인 적당한 입신체비를 하려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니 손님이 궁금한 얼굴로 서재로 들어왔다.
“잠시 몸을 풀고 있는데 신성한 입신체비장에서 어찌하여 잡기(雜技)인 바둑을 행한단 말인가? 바둑판이 다섯 개나 있으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스승님께서 창안하신 입신체비법입니다. 바둑을 두며 입신체비를 행하지요.”
이건 설명이 필요하겠군.
말로 표현하기보다 몸으로 나타내는 것이 빠르니 이덕홍과 함께 빈 바둑판에서 바둑을 두며 가볍게 입신체비를 하였다.
서로 바둑과 입신체비를 주고받는 모습을 본 손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으로 기발한 방식이군. 바둑이 잡기에 불과하지만 속기(速棋)로 두면 입신체비를 행하고 휴식하는 간격과 일치함을 이용하다니. 서애 자네가 나를 조금 가르쳐 주지 않겠나?”
왜? 아까 전부터 나를 계속 찾던데 어째서 나란 말인가.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일을 잠시 해결해 주는 것이 방법이 아닐까.
갑자기 역기를 모조리 치운 손님은 내 하체를 뚫어져라 보다가 말했다.
“내 스승은 아니지만 자네에게 가르침을 주려 하네. 지금부터 오로지 대역기를 두지 않은 공좌(스쿼트)를 행하며 바둑을 두세나.”
“공좌라 하셨습니까? 하필 대역기를 두지 않은 공좌라니요.”
“하체는 만물의 근원이자 입신체비의 기반이 아닌가. 자네가 아무리 보아도 퇴계의 가르침을 받아 상체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니 내 근본을 다시 잡아주고 싶네.”
상체의 비중이 늘어나긴 했지. 노인의 발달하지 않은 몸을 보건대 기껏해야 나와 비슷한 수준이고 수십 수를 나누다 보면 제풀에 지쳐 떨어지리라. 이 시대의 노인들은 입신체비의 부작용으로 관절염을 많이 앓으니까.
바둑은 제법 두는 사람이었는지 대국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고 손님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젊은 사람이 몸을 놀리는 법이니 생각하는 동안 공좌를 정자세로 20회 시행했다.
“공좌 자세가 제법이로군. 조금 요추를 앞으로 밀어내면 더욱 좋을 것이네. 이번에는 내가 시행할 것이니 천천히 두게나.”
손님도 천천히 몸을 내려 공좌를 시행하였는데 자세가 칼 같아서 놀라웠다. 관절염을 앓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봐줄 이유도 없고 서로 열심히 한 수를 두고 공좌를 반복하였다.
하체 지구력을 실험하려고 맨몸으로 공좌를 했을 때는 50회 시행 후 휴식 기준으로 600회를 억지로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휴식이 길고 시행횟수가 적으니 700회도 가능하겠으니 내가 더 오래 버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25수를 두었다. 500회에 도달하니 전신에서 땀이 솟구쳐 오르고 허벅지에서 불길이 올라오는데 노인은 땀이 맺혔을 뿐 태연히 공좌를 반복하였다.
“역시 퇴계의 제자들은 하체가 부족해. 고작 오백 회를 행하였는데도 벌써 땀이 솟는단 말인가. 하체는 근본이어서 숨 쉬듯 다뤄야 하는데 턱없이 부족하군.”
“제 배움이 부족하여 벌어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노인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아무리 맨몸 스쿼트라지만 체중만큼의 하중이 실리니 횟수가 늘어날수록 부담은 제곱으로 늘어난다. 아마 정구를 비롯한 이들은 버티지 못했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하체를 단련한 덕분에 버틸 지경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워 입신체비장에 비치된 소금물을 마셔 속을 달랬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손님도 사람은 사람인지 땀이 올라와 복장이 몸에 달라붙는데, 이게 사람의 하체란 말인가.
“저기 어르신…… 그 대퇴부는…….”
“내 대퇴부 말인가? 내 단련의 상징이지 무엇이겠는가?”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 손님의 하체는 양송정에 있는 어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현대의 130㎏ 시절 내 몸의 허벅지와 비슷한 굵기이리라.
같은 것은 굵기가 전부이다. 지방은 거의 없고 근육의 결이 드러날 지경이라 이렇게 발달한 하체를 본 적이…… 있었다.
이황의 상체가 순흥군과 동일한 수준이라면 이 손님의 하체도 순흥군과 동일한 수준이다.
순흥군이 공좌 일천 회의 위업을 달성하였으니 이 노인도 일천 회를 거뜬히 행하리라. 오히려 발달하지 않은 상체 덕분에 부담이 적으니 이천 회도 가능하겠지.
두툼한 대퇴근에 질려 뒤로 물러나며 주춤거리니 손님은 혀를 차며 일어났다.
“역시 하체가 부족해. 하체가 근본인데 자네처럼 상초충(上礎充: 상부의 기초를 채우다)은 근본을 찾지 못하는 일일세.”
영직이도 하체가 근본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하였고 입신체비서에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시행해야 효행이라 하였으니 논리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손님이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가자 덜덜 떨리는 다리로 쫓아 나갔다.
“퇴계의 퇴청이 늦어지니 내일 돌아오겠네. 아침 일찍 오면 같이 입신체비를 행할 수 있으니 자네들에 대해 차분히 논해보도록 하겠네. 주랑아, 이만 돌아가자꾸나.”
지금 생각하니 일종의 도장 깨기를 당한 기분이 들어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뭐라 말하려 하였는데 대문이 열리며 이황이 돌아왔다. 이황은 손님의 얼굴을 살피더니 분노와 기쁨이 섞인 표정으로 외쳤다.
“자네가! 자네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가!”
“왜 있기는! 임기가 종료되었으니 찾아왔지! 미주 관찰사 기한이 연장되어도 올해 대보름까지가 아니었는가. 후임자가 빨리 온 덕분에 빨리 돌아올 수 있었네.”
이황이 푸들푸들 수염을 떨며 방장노자라는 손님을 노려보았다.
서로 친구 사이는 맞았는지 성큼성큼 다가가 악수를 나눴지만 내 몰골을 확인한 이황은 다시 분노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남명(南明) 자네는 나를 무엇으로 보는 겐가! 내 제자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친다 하며 하초충(下礎充: 하부의 기초를 채우다) 짓을 행한 것인가?”
사람의 호는 여럿 존재한다.
보통 관례를 올리며 자신의 별호를 정하고 이후 행적에 따라 새로운 호가 생겨나 여러 별명으로 불리지.
덕분에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 손님은 이황의 동년배의 친구이며 호적수이자 역사상에 북인의 시조로 전해진 남명 조식이다!
그렇다면 이 노인이 나에게 왜 이리 관심을 보였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자네가 빼어난 재능을 가진 이를 허투루 다뤄서 내 할 말이 없을 지경이네. 인력거와 풍구를 어린 나이에 창안한 아이를 상초충으로 만들어?”
“효행은 두툼한 등판과 드넓은 대흉근으로 정해지는 법일세!”
“어허? 봉양하기 좋은 도구가 인력거인데 어찌하여 상초만 단련한단 말인가!”
두 거근, 그 거근 말고 거대한 근육을 지닌 두 유학자는 서로 눈을 부라리며 이를 갈아댔다.
오십이 넘은 노인의 모습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근육이 양립하여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서로 눈을 부라렸지만 여기는 이황의 집이었다.
조식은 눈을 내리깔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차근차근 말했다.
“이러다가 젊은 시절처럼 내수린이라도 행하려 하는가? 나이가 마흔이 넘고 내수린을 행하면 크게 다치는 일은 모른단 말인가.”
“미주에서 돌아왔으니 잘 되었네. 삼대운동의 합이 같았으나 내 자네와 결단을 내기 위하여 승경도(陞卿圖)를 변용한 놀이를 만들었으니 입신체비를 겨루세.”
삼대운동 합이 같다고?
대체 이 둘은 어떤 삶을 살아왔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