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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67화 (267/573)

근육조선 267화

2부 2장 4화 절육이 뭐란 말인가

내 나이도 16세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충분한 영양섭취는 물론이고 산야를 뛰어다니며 몸을 단련하였으며 마무리로 입신체비까지 하였으니 지난 일 년 동안 체격이 급격히 성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장을 재니 부쩍 성장하여 5척에 조금 미치지 못했다.

머슴은 내 키와 자신의 키를 비교하더니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본디 입신체비를 행하면 몇 년간 부쩍 크는 일이 많은데 작은 도련님은 벌써 네 척 하고 아홉 치에 달하니 놀라울 뿐입니다. 이러다 큰 도련님보다 신장이 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4척 9치면 171㎝이니 목표보다 조금 부족한 수준이다.

흔히 사용하는 영조척(건물을 사용할 때에 사용하는 자, 30㎝ 내외)으로 과장을 섞어 육 척 장한이라 불릴 정도이다.

하지만 내 목표는 더욱 높았다.

“조금만 더 자라면 황종척으로 다섯 척에 달할 것인데. 가급적 다섯 척을 채우고 싶습니다.”

“아이고. 다섯 척이면 양반이 아닌 평범한 이들에게는 충분히 체격이 아니겠습니까.”

목표는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의 상징 180㎝, 5척 2치이지만 여기까지는 조금 무리일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충분한 체격?

“충분한 체격이라 하셨습니까?”

“평범한 이들은 기껏 네 척 일곱 치(163㎝)면 적당한 신장이고 북인(여진족)이나 함경도 장정 정도는 되어야 양반과 어깨를 견줄 수 있습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174㎝가 대한민국 평균 신장이고 양반들의 평균을 내면 저 정도에 수렴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시대에는 양반과 평민 간의 체격 차이가 존재했다.

양반가 자제들은 집안에서 반강요로 운동을 하게 만들며 영양섭취도 적절한 수준이어서 현대 한국인과 유사한 체격이지만 백성들 모두가 영양섭취를 골고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아마 전체 평균 신장을 계산하면 165㎝ 정도가 나오겠지.

이 정도만 하여도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했다. 아마 조선의 평민조차 다른 나라에서 장신으로 취급받을 것이 분명하니까.

기쁨도 잠시였고 뒤에서 우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룡이가 부쩍 자라는 데다 학문도 입신체비도 조만간 나를 넘어설지도 모르겠구나. 형으로서 면목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형님은 어느새 방에서 나와 죽어가는 표정으로 마당을 훑어보았다.

이틀 전에 치러진 증광시(增廣試: 나라에 경사가 일어나 비정기로 실시되는 과거) 대과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하였다.

장남인 어린 세자가 병으로 사망한 지 삼 년이 지나 차남을 세자로 책봉한 기념이라던데 초시(初試)는 통과했어도 복시에서 처참히 박살 나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형님 혼자서 낙방한 것이 아니다. 형님을 포함하여 이황의 제자 세 명이 응시하였지만 모두 낙방했고, 이황은 마음이 부족한 상황에서 입신체비를 하면 상한다 하며 며칠간 입신체비를 쉬라 하였다.

너무 우울해 보이기에 생각에도 없는 말로 위로하려 했다.

“증광시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치러지는 시험이 아니겠습니까. 형님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때를 놓친 것입니다.”

“네 말이 맞아도 이율곡이라는 자가 문제이다. 세상에 열셋의 나이로 과거를 보아 장원을 네 번이나 하였으면서 대과를 또 본단 말이더냐? 내가 마흔여섯 번째 등위(等位)여서 떨어졌을지 누가 안단 말이냐.”

형님은 대과 초시는 360명(본래 240명인데 인원이 증가하였다) 이내에 들며 합격하였지만 복시에서 45명 이내에 들지 못하고 낙방하였다. 출세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한 것이다.

하필이면 본래 역사의 행적과 마찬가지로 매 시험의 장원을 노리는 율곡 이이와 같이 시험을 봐서 억울함이 몇 배가 되었으리라.

계속 울분을 토하는 형님을 어르고 달래려 하였으나 누군가 집에 방문하였다.

“큰 도련님, 학봉(鶴峰)이라는 분이 도련님을 찾아왔습니다.”

“내 친구이니 어서 문을 열어주게.”

김성일은 억지로 웃으면서 형의 손을 맞잡았다.

“겸암(謙菴) 자네도 낙방하였나? 나는 초시도 통과하지 못하였으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게.”

“서운할 일도 없다네. 애초에 운이 좋아 초시를 넘겼고 복시의 주제를 보자 눈앞이 깜깜했었네. 자네가 설령 초시를 통과했어도 복시에서 낙방하였을 것이야.”

“역시 배움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네. 입신체비의 길은 더더욱 험난하고.”

갑자기 훈훈한 분위기로 넘어가며 서로 대화를 나누기에 빠져나왔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김성일은 친구라 할 수 있지만 엄연히 형의 친구라서 내가 함부로 대하기 힘들다.

한동안 싹이 돋은 고추를 돌보고 있으니 대화가 끝났는지 김성일이 뛰어왔다.

어느새 우울한 표정은 사라지고 조급함이 보일 지경인데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자고로 마음이 우울할 적에는 산천을 거닐며 천렵(川獵)을 하는 일이 제격이 아닌가. 스승님께 말씀드려 며칠 동안 천렵을 다녀올 것이라 하면 흔쾌히 허하여 주실 것이네.”

천렵이라? 어린 유성룡의 기억에도 천렵을 한 적은 있지만 냇가에서 물고기나 잡으며 놀던 것이고 본격적인 천렵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시대의 천렵은 어른들도 즐기는 풍속이지만 한양에 살면서 시골에 갈 기회가 없었으니까.

반면 현대에는 어린 시절 시골에 사시는 외할머니댁에 방학 때마다 내려가 천렵을 즐겼지.

나이를 먹고 못 하게 되었지만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기에 바로 답했다.

“마침 잘된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 시절 벗들과 산천을 주유하던 일이 생각나는데 등산으로 만족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짐을 챙겨 바로 양송정으로 향하도록 하세. 다른 이들에게 미리 연락하였으니 중포 사형을 제외하면 모두가 천렵에 나서겠군.”

짐을 챙기고 이황에게 안부 인사를 올리려고 찾아갔는데 양송정에 당도하자 커다란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생소한 일이었는지 김성일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윽고 다시 고함이 들려왔다.

-자네는 지금 제정신인가? 사도(私道: 공명하지 못한 방법)를 행하는 것이라 여겼건만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군. 당장 그만두게!

대체 누구와 대화를 나누기에 저렇게 분노를 담은 말을 내뱉을까. 이황의 성격상 화가 나도 조용히 타이르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김성일은 문간채에 있던 머슴을 불러 물어보았다.

“스승님께서 대체 누구와 대화를 나누기에 저리 격분하신단 말인가.”

“조금 전에 율곡이라는 분이 들어가셨는데 갑자기 저러십니다. 처음에는 훈훈하게 대화를 나누셨던 것 같은데 알 길이 없습니다.”

“율곡이라 하였는가? 관직에 출사한 직후 스승님께 조언을 구하던 이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스승님을 격분하게 만들다니. 연유를 알 길이 없군.”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이 언쟁을 벌였나? 하지만 언쟁이라도 이황의 성격이라면 서로 논리를 주고받으며 훈훈한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지 왜 저렇게 성을 낸단 말인가.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데 대문이 열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청년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 나왔다.

아무리 보아도 유생답지 않은 평범한 체격이니 이자가 율곡 이이리라.

더군다나 행색이 파리한 것이 신체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가장 먼저 김성일이 나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 올렸다.

“명성이 자자한 분을 뵙습니다. 저는 퇴계 대감님의 제자인 학봉이라 합니다.”

“이현전에서 박사(博士: 정7품 관직)를 역임하는 율곡이라네. 퇴계 대감께 폐를 끼쳐드려 송구할 뿐이며 제자들 앞에서 결례를 범하였으니 낯을 들 겨를이 없군.”

인사를 마친 이이는 잰걸음으로 어디론가 떠났고 안도의 한숨을 쉰 우리는 이황을 만나러 안채로 들어갔다.

이황은 방금 전의 분노를 삭이려 하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하다 우리를 보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늘까지 입신체비를 궐한다 하지 않았느냐. 너희 모두 무슨 일로 예까지 왔느냐.”

“다름이 아니고 증광시에서 탈락한 일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천렵을 행하고 돌아오려 합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구나. 자고로 산천에 파묻혀 벗들과 시구를 읊으면 세상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법이지.”

김성일의 말을 흔쾌히 수락하는 이황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언제나 입신체비로 귀결되지만 퇴계 이황의 학식과 인품은 뛰어난 유학자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김성일이 잡다한 도구를 챙기는 동안 잠시 시간이 생겼다.

혹시 방금 전에 언쟁에 대하여 물어볼 수 있을까?

슬쩍 눈치를 보다가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물어보았다.

“혹여나 방금 전에 율곡이라는 이가 스승님께 무례를 범했습니까?”

“무례라? 나는 후배가 저러한 마음을 품는 일이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구나. 만약 대성하면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요, 실패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하지만 염려하지 말고 네 길을 걷도록 하여라.”

대성하면 새로운 길이요 실패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설마 입신체비를 하지 못해 학문적인 업적을 일궈내려고 무리를 하나?

하지만 관직에 오르지도 못한 일개 유생이 관여할 일은 아니니 마음속에 담아두자.

* * *

천렵이 양반들도 즐기는 행위라 하였지만 우리의 행색은 전혀 양반 같지 않았다.

입신체비를 즐기고 몸을 놀리기 좋아하니 머슴이나 노비를 짐을 옮기는데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쇠솥이 무겁지 않더냐. 작은 솥을 가져왔건만 네 짐이 너무 많은 것 같구나.”

“별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지게를 처음 짊어진지라 어깨가 쓸려서 귀찮을 뿐입니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선비들이 봇짐도 아니고 지게를 짊어진 모습이 어색했지만 어느 누구도 내색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겼다.

교통수단? 말을 왜 타는가? 튼튼한 다리가 있는데.

걸어서 마포나루까지 움직였고 마포나루에서 나룻배를 빌려 조금 강을 거슬러 올라오니 어느새 울창한 산이 보였다.

산세는 모르겠지만 아마 남양주 인근이리라. 이 시대에 보존된 자연을 보니 마음이 놓였지만 조선시대의 재앙인 호랑이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몇 번이고 이 지역에 다녀온 김성일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산세가 웅장하고 수풀이 우거져 있으니 산군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산군은 오십여 년 전에 도성 인근에서 자취를 감추었네. 세종대왕께서 백정들을 도성 인근의 산골에 두고 소와 돼지를 기르라 한 이후로 씨가 말라 버렸지. 지금은 태백산이나 지리산 같은 울창한 산에서만 볼 수 있다네.”

백정들이 경기도 일대의 산골에 거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들이 호랑이의 씨를 말려 버릴 줄은 몰랐다.

이 시대의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그리고 전쟁 대신 과도한 입신체비를 무서운 재앙으로 여기지 않을까.

김성일은 혹시나 호랑이가 있을까 염려하였는지 산을 쭉 훑어보다 지시를 내렸다. 자고로 천렵은 많이 해본 사람이 방법을 알고 있다.

“겸암은 나와 같이 물고기를 잡으면 될 것이네. 한강(寒岡: 정구의 호) 자네는 근처 민가에 들러 찬거리를 좀 얻어오게. 몇 번 다녀봤으니 내 호를 대면 알아서 준비해 줄 것이네.”

찬거리를 얻어오라는 말에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가 들리니 촌구석 민가도 화폐를 사용하고 있으리라.

김성일은 멀뚱멀뚱하게 눈을 굴리는 나와 이덕홍을 보면서 말하였다.

“자네들은 식사 준비를 하며 꿩이나 토끼를 잡아 오면 충분할 것 같군. 혹여나 멧돼지를 만나면 무리하지 말고 도망치게.”

산골은 야생동물의 천국이었다. 우리가 발을 옮기자마자 저 멀리서 고라니가 놀라 달아났고 꿩이 날아올랐다. 입신체비를 하며 등 근육을 단련할 목적으로 활을 배운 보람이 있었다.

대충 쏜 활이지만 두 명이 사방을 거닐며 꿩을 사냥하니 네 마리의 꿩을 잡아들였다.

현대라면 하루 종일 산을 돌아다녀야 꿩을 잡을 수 있었지만 이 시대의 환경은 제대로 보존되어 있으니 쉬운 일이었다.

삽시간에 꿩 구이와 매운탕, 아니, 민물고기로 만든 어죽(魚粥)이 완성되었다. 한양에서 가져온 청주병을 열어 잔을 돌려 술을 들이켜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형님은 빈 술잔을 보면서 말하였다.

“오늘 스승님과 율곡 간에 어떠한 논쟁이 오고 갔을 것 같은가? 학봉 자네는 스승님께서 이토록 진노하신 일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네. 잠시 진노하신 적은 있지만 내가 입신체비를 처음 행할 때에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에 잠시뿐이었네.”

이황이 분노하는 일은 수제자인 김성일도 목격한 적 없는 일임이 분명하였다. 잠시 눈치를 보다 이황과 나누었던 대화를 전했다.

대체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 무엇일까?

“스승님께 여쭈어보니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라 하였습니다. 대체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 무엇일지 궁금한데 혹여나 알고 계십니까?”

목숨이 연관된 일이지만 형님과 김성일은 서로를 바라보고 한참 생각하다가 답을 내렸다.

“권세를 누리는 이도 아니고 정 칠 품의 관료이니 정쟁(政爭)에 나설 일도 없을 것이 아닌가. 입신체비를 행할 적에 목숨이 위태롭다 하면 과도한 절육(커팅) 외에는 없네.”

“과도한 절육이라니요?”

“앞으로 자네가 행할 일이지만 입신체비의 경지를 올리려면 수양대군께서 행하였던 방식대로 양생(벌크업)으로 몸을 늘리고 절육으로 근육만 남기는 일을 반복한다네. 하지만 과도한 절육을 행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전에 영직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디빌딩 대회에 나서려면 지방을 절제하는 일은 당연하며 어마어마한 감량은 물론이며 수분을 절제하기 위해 염분 섭취도 하지 않는다고.

영직이도 무리한 대회준비를 하다 실신한 적이 있었는데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약품도 없는 조선시대라면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리라.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김성일은 손사래를 치며 애써서 말하였다.

“혹여나 율곡이 지나친 절육을 행하여 몸을 위태롭게 할까 염려하고 있는가. 오늘 직접 만나보니 어떠하던가? 절육을 행할 지질(지방)이라도 존재하는 체격이던가?”

도포자락 안에 두툼한 근육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이리라.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마주쳤다. 내 코가 석 자이니 조용히 몸을 기르고 훗날을 기대해야 하리라.

하지만 형님은 나에게 염려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나저나 너도 양생과 절육을 반복하며 근육을 키울 시기가 되었구나. 지금까지의 입신체비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시작에 불과하다니요? 제 삼대운동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 근생부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400근으로 시작하여 두 달마다 20근씩 꾸준히 증가하여 500근에 도달하였으니까.

하지만 형님은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자신의 손목과 비교하며 말하였다.

“네 골격은 나의 골격과 거의 동일하다. 입신체비를 처음 행할 적에 꾸준히 근육이 자라나는 정도는 모두 골격과 연관되어 있으니 너도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삼대운동 오백사십 근에서 정체되어 한동안 고난을 겪었지. 지금 오백구십 근을 행하던가?”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내 근육이 갑자기 증가하지 않고 정체하는 시기가 찾아온단 말인가?

이대로 꾸준히 증가하면 식년시와 동시에 600근을 달성할 수 있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의 말

드디어 주인공의 고생길이 시작됩니다. 본래 보디빌딩 시작하면 처음 일 년 정도는 꾸준히 근육도 늘고 지방도 줄며 중량도 증가하니까요.

하지만 일 년이 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하죠. 정말 지옥 같은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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