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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65화 (265/573)

< 2부 2장 2화 – 첫 수업(2) >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이황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론을 제시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욕을 먹는 세상이다.

당연히 근육적, 아니, 논리적으로 완성되었기에 저런 소리를 하겠지. 이황은 뒤로 돌아 옷 사이로 울룩불룩 튀어나오는 등 근육을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중에 부모가 나이가 들어 봉양을 할 적을 생각하여 보아라. 두툼한 등판으로 모신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느냐. 그러하니 입신체비의 근본은 상체가 아니겠느냐.”

조선의 유학의 한 획을 그은 퇴계 이황의 입에서 이기이원론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아니고 저런 말이 나와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실로 옳은 말씀이십니다!”

“입신체비에는 목표가 중요하다 하였습니다! 단번에 핵심을 잡아주시는 스승님을 모시게 되어 불초 제자의 마음이 놓입니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황의 근육논리에 빠져들어 있었다. 장님 나라에서 애꾸가 왕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놀림 받는다 하였는가.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얼굴을 억지로 숨기니 이황은 당당하게 대문을 열면서 말했다.

“다들 조반을 먹고 반 시진은 지났을 것이니 입신체비를 실시하겠다. 입신체비의 근본은 심부와 폐부의 단련이니 성저십리의 경계까지 가볍게 뛰어 보자꾸나.”

성저십리면 성에서 떨어진 한양의 외곽이며. 경계까지 뛰어간다는 말은 최소한 왕복 10㎞의 질주를 시작한다는 말과 같았다. 김성일이나 형님은 당연한 일이라 여겼지만 나를 비롯한 입신체비 초보자들은 쉬운 일이 아니리라.

퇴계 이황이 길거리를 가로지르자 제자들도 뒤를 이었다. 이미 익숙한 광경이었는지 목례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오히려 스승님이 고개를 숙이는 이들도 있었다.

한 덩어리의 사람들이 저 뒤에서부터 쏜살같이 뛰어오더니 스승님을 확인하고 나란히 질주하였다. 서른 정도 되는 이들이었는데 대열의 맨 앞에는 순흥군이 있다.

가끔 길거리를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올렸는데 관례를 올리고 처음 만나는 이가 순흥군이라니! 순흥군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인사를 마친 이황이 먼저 말을 건넸다.

“순흥군(順興君) 대감을 뵙습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좌찬성께서 저에게 존대를 하시니 제가 낯을 들 면목이 없습니다.”

“입신체비의 으뜸이신 분이며 예진원의 대제학이니 제가 먼저 예를 표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제자들을 가르친 것이 오늘 처음인지라 번잡함이 많을 뿐입니다.”

“제자들이라 하니 하나같이 명성을 떨칠 자질이 보이는군요.”

두 거대한 근육이 맨 앞에서 나란히 질주하니 인체 비례에 대한 잘못한 지식이 전해질 지경이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는지 이황의 상체와 순흥군의 상체는 동일한 수준 같았다.

문제는 제자들의 수준 차이이다. 순흥군의 제자들은 김성일보다 덩치가 작은 이가 없었으며 십 리(4㎞)는 더 뛰어왔을 것이 분명한데 숨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를 비롯하여 입신체비 경험이 없는 셋은 본격적인 운동을 하지 않았기에 벌써부터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이황은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알아차렸는지 귀신같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벌써부터 숨이 차오르면 어떻게 하느냐! 이십 리를 돌아오는 일도 아니고 아직 오 리도 나아가지 못했구나.”

그거야 걸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 최소한 시속 12㎞로 뛰어가는데 이걸 계속한다고? 끝없는 것 같은 뜀박질은 현대의 신촌 일대를 지나 한참 더 뛰어가다 멈추었다. 미곡을 옮기는 행렬이 보이자 이황은 서서히 뜀박질을 멈추고 말했다.

“광흥창까지 왔으면 올 만큼 온 법이다. 다들 숨을 고르되 바닥에 주저앉아 체통을 어지럽히는 모습은 보이지 말거라.”

광흥창은 조선시대 창고이고, 광흥창 인근에 세워진 공민왕 사당을 기억하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뛰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충 5㎞ 거리를 30분 이내에 뛰었으니 신물이 올라오고 숨이 가빠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

“역시 입신체비로 명망이 높으신 스승님이시다. 저런 담대한 상체를 지니셨음에도 하체 단련에 심혈을 기울이시니 모범이 따로 없구나.”

아 그러겠죠 형님. 조선시대를 살면서 몸을 많이 움직였지만 이만큼 뛴 적은 없어서 숨을 고르느라 대답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발도 문제이다.

아무리 튼튼한 가죽 신발을 신어도 거의 경보(競步)에 가까운 속도로 뛰었으니 두꺼운 굳은살이 박인 발바닥에서 불이 올라오는 것 같았으며 물집도 생겼으리라. 하지만 돌아가는 길도 남았다.

잠시 쉬는 사이 물집이 생겼는지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이황의 집에 돌아가 절대 가볍지 않은 본 운동에 들어갈 것이다. 두려움이 앞섰지만 어차피 이게 내 인생이다.

다시 양송정에 돌아오니 양발에 물집이 생기고 종아리와 허벅지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그래도 운동을 하였던 보람이 있는지 몸살이 생길 지경은 아니지만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황은 마당에 제자들을 모은 다음 대역기를 가져왔다.

“이것이 무엇이더냐. 수양대군께서 창안하신 입신체비의 근본으로 삼는 대역기이다.”

당연히 알고 있었는지 제자들 모두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역기는 쇠로 만든 것인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이황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양대군께서는 학문의 근본을 세우셨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점이 있으셨다. 종친으로 학문을 일궈냄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나 종친이기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이 있었지.”

“대체 무엇을 알아차리지 못하셨습니까?”

“입신체비에 항시 사용되는 대역기봉에 철물이 얼마나 들어가더냐? 대역기봉은 잘 벼려낸 물건 하나가 강철 쉰 근(32㎏)이 소모되며. 공령(플레이트)은 수백 근의 철을 사용하여야 원하는 무게를 맞출 수 있다.”

다들 한양에 사는 양반가 자제들인지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수백 근의 철이면 양반가에서나 다룰 물건이 아니겠는가. 이황은 형님을 보며 질문하였다.

“운룡아, 네가 의성에서 살다 왔는데 의성에 있는 이들 가운데 제대로 된 대역기를 가진 이들이 있더냐?”

“제가 어린 시절에 의성을 떠난지라 제대로 알아보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의성향교에 입신체비기구와 대역기가 모두 갖추어져 있었으며 마을에 사는 이들 가운데 절반은 완비하지 못하였습니다.”

“보아라, 도성을 벗어나면 아무리 유생이라 하여도 입신체비기구를 완비하지 못하는 일이 많은 법이다. 하지만 외방(外邦)이나 변방(邊方)에 나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

당연히 조선처럼 철이 풍부한 고장이 아니면 대역기는커녕 소역기도 만들기 힘들 것이다. 제자들 모두가 뜻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황의 의견에 빠져들었다.

“너희가 외방의 수령으로 부임하여 대역기를 마음껏 휘두른다 생각하여 보아라. 외방에 속하는 이들이 무슨 마음을 품겠느냐. 성일이가 답하여 보아라.”

“부친께서 연해주의 군수로 계신 적이 있었는데 공령 도둑이 있다 하였습니다. 듣자 하니 쇠솥도 없는 백성들이 귀물(貴物 - 귀중한 물건)로 여겨 훔쳐가 녹여서 솥으로 만들었으니 가벼운 벌만 내렸다 하였습니다.”

“그러하다. 본디 도둑이 생기는 연유는 배를 곪아서도 있지만 귀물이 보여서 헛된 마음을 품은 것도 있다. 도성과 아국 내에서야 대역기와 공령이 귀한 줄은 모르나 외방은 아니지 않느냐.”

80년대까지만 해도 철은 제법 귀한 물건이었기에 도둑질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공원에 있는 역기는 시멘트로 대충 형태와 무게를 맞춰 만들었지. 이황은 여기에 마무리를 하려는지 한마디를 더 보탰다.

“혹여나 훔칠 마음이 없어도 귀한 철물 수백 근을 단지 몸을 단련하는 데 사용하면 백성들이 수령을 볼 적에 불만을 품을 것이다. 그리하여 죽역기봉(竹力器棒)과 회령(灰鈴)을 만드는 법부터 익혀야지.”

이황이 가져온 물건은 내가 현대에서 보았던 녀석이다. 정확히는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동네 뒷산에 놓여있던 역기와 흡사하게 생겼다. 영직이도 군대에서 저런 녀석을 사용해서 몸을 단련했다더라.

이황은 죽역기라 불린 물건을 하나하나 분해하더니 제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대나무 안에 다 닳은 옷감으로 틈을 메꾼 철근이 있었으며 대나무 또한 한반도 특유의 수종(樹種)이 아니었다.

“죽역기는 겉에 튼튼한 대나무를 두고 안에 얇은 대역기봉을 두었으나 제대로 만들면 이백 근을 버틸 수 있는 물건이다. 또한 회령은 말 그대로 회(灰 - 재, 여기서의 의미는 석회)를 사용하여 만든 공령이다.”

나보다 한 살 많지만 안면이 있던 이덕홍(李德弘)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생석회로 만든 공령 사이에 박힌 자갈을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하오면 회에 자갈과 모래를 섞어 틀에 굳혀낸 물건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회는 건물을 만들 적에 흔히 쓰이는 물산이니 이것이 귀한 물건이더냐. 앞으로 행할 삼대운동을 정하고 스스로 회령을 만들 것이니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마.”

이황은 준비할 물건이 있었는지 안으로 들어갔고 이황을 대신하여 중년의 남성이 앞으로 나왔다.

“나는 자네들보다 칠 년 일찍 스승님의 제자가 된 박중포(重圃 - 박승임의 자)이며 호는 소고(嘯皐)일세. 배움이 부족하여 몇 년간 관직에서 일하다 잠시 물러나 있었는데 스승님께서 불초제자를 부르셔서 여기에서 자네들을 가르치게 되었다네.”

“사형(師兄)을 뵙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소역기와 대역기를 사용하기 전에 사지의 근골을 풀어낼 것이네. 수양자께서 입신체비의 시작을 거르면 모든 일이 어긋난다 하였으니 다들 육질(단백질)을 보충할 미수를 들이켜고 동작을 따라 하게.”

영직이 녀석도 운동 전에 단백질 보충제를 마시고 운동을 하더라고. 고소한 콩냄새가 올라오는 미숫가루를 보충제 대신에 마시고 몸을 푸는데 기분이 울적해지다 못해 바닥을 뚫고 내려갈 것 같았다.

자신의 족쇄를 스스로 만드는 노예의 꼴이 아닌가? 하지만 이게 인생이니 어쩌겠는가. 사지의 관절이 풀리고 근육이 움직일 준비를 마치자 박중포라는(나는 이름을 모르겠다) 코치 아니 사형은 대역기에 공령을 끼워 넣으며 말했다.

“이미 입신체비를 행하였던 이는 기존의 중량에 비례하여 회령을 만들면 될 것이네. 나머지 셋은 내가 근골을 감안하여 삼대운동을 정하여 줄 것이니 사력을 다하여 한 번을 완료하게.”

두 명이 결사적으로 몸을 놀리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난생처음 역기로 운동을 하는지라 착잡한 기분이 들었는데 박중포는 내 몸을 한참 지켜보더니 공령을 이리저리 바꿔 끼우며 한도를 정하였다.

“자네의 근골을 보아 삼대운동을 정하였으니 단 한 번만 전력을 다하여 행하게. 순서는 공좌(스쿼트)와 의압(벤치프레스) 그리고 시거(데드리프트)라네.”

내 체격과 발달 정도를 꿰뚫어 보았을 것이 분명하니 꾀를 부릴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지시에 맞추어 스쿼트를 한 번 하였지만 여유가 있었다. 박중포는 내 표정을 보고 놀란 눈으로 역기를 바라보았다.

“공좌는 150근(96㎏)으로 짐작하였는데 여유가 있군. 혹여나 하체를 단련한 적이 있던가?”

“무계정사를 다녀오며 인력거를 응용한 수레를 끌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인력거를 창안한 인재가 있다 하였는데 자네였군. 내가 아직 학문이 부족하니 스승님께서 호통을 치시겠군. 자네의 공좌는 170근(109㎏)일세.”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다. 내 행적 하나하나가 근육적으로 되돌아오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어느새 높아진 나에 대한 평가는 더욱 높은 삼대운동 중량으로 되돌아왔다.

이황이 가져온 수십 개의 들통이 거대한 저울에 올라갔고. 반대편에는 각자 정해진 삼대운동의 10회 반복 중량과 동일한 공령이 올려졌다. 조선시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유사 시멘트를 삽으로 떠서 들통에 채워 넣었다.

이윽고 마당 구석에는 들통 안에 담긴 수십 개의 고문도구 아니 운동기구가 생겨났으며 이황이 대나무를 꽃을 정중앙에 나무막대를 하나씩 꽂아 넣고 뚜껑을 덮었다. 이황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보름이 지나 틀을 벗겨내면 무게가 조금 줄어들 것이며, 다시 죽역기봉을 꽂으면 무게가 늘어날 것이지. 자고로 입신체비를 처음 행할 적에는 여덟 번을 반복하여 근육량을 늘려야 하는 법이니 당분간 대역기로 시행하곘다.”

영직이가 그렇게 이야기했던 근비대 목적이라니. 이황은 이미 계획을 세워 놓았는지 대역기봉에 공령을 끼워 넣고는 가장 처음으로 나를 불렀다.

“성룡이는 앞으로 나오도록 하여라. 네가 가장 어리며 배움이 없으니 내 직접 지도하도록 하겠다.”

억지로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벤치 아니 평상 위에 자세를 잡으니 이황이 한 손으로 대역기를 건네주었다. 팔을 쭉 편 채 대역기를 잡으니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입신체비는 처음 행하는 여섯 달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수양자께서도 이 기간을 중요히 여기라 하였으니 의압을 시행하여라.”

이황의 지시대로 숨을 내쉬며 팔을 천천히 내렸다. 우람한 대역기봉 옆에 공령은 자그마하게 달라붙어 있지만 내 몸이 초보자인지라 낑낑거리며 팔을 아래로 내렸다 다시 제자리로 돌렸다. 하지만 이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것은 한 회로 치지 않겠다. 자고로 의압은 가슴팍에 대역기봉이 스치듯 닿아야 하는 법인데 네 가슴과 대역기봉은 한 치가 벌어져 있구나.”

초보인데 조금 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지만 형님부터 김성일 심지어 박중포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실수를 지적하였다.

그날 나는 의압 8회 반복 3세트를 마치는데 42회를 행했다. 한 세트에 10회가 넘게 되면 이황도 손가락 단 하나를 보태서 약간의 힘을 주어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다음 날 아침 팔과 가슴 전체에 알이 박혀 끔찍한 통증으로 세수조차 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문제는 이게 이황에게 가르침을 받는 첫날이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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