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2장 1화 – 첫 수업(1) >
복잡한 예식이 이어지며 상투를 올리는 단계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이황이 내 댕기 머리를 정리하고 가위로 썰어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구 뒤틀어지는 표정을 관리하기 위하여 얼굴에 힘을 잔뜩 주었다. 내 굳건한 표정을 보고 착각하였는지 이황은 감탄을 늘어놓으며 상투를 완성하였다.
“자고로 상투는 계란의 절반만 한 크기여야 입신체비를 행하기 좋은 법이지.”
“배코머리는 행하지 않을 작정이십니까?”
“그야 이 아이가 얼마나 땀이 많은지 알 길이 없어서 만들지 않는 법이네. 자네를 보면 땀이 스며들지 않을 것이니 길이가 짧고 숱을 덜 치면 되는 법일세.”
상투는 본래 조선시대보다 훨씬 작았다. 머리숱을 많이 친 덕분에 상투 크기가 줄어 탁구공 크기로 뭉쳤으니 입신체비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더듬더듬 예식을 진행하며 술도 한잔 마시고, 미리 준비한 관복으로 갈아입으니 나도 어엿한 성인의 신분이 되었으며 아이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발돋움하였다. 이윽고 이황은 미리 준비한 내 자(子)를 공언하였다.
“유중영의 차남 유성룡의 호는 이현(而見)이라 정할 것이다. 혹여나 네가 마음에 둔 별호(別號)가 있더냐?”
“제······ 제······ 제 별호는 서애(西厓)입니다.”
“서쪽의 언덕이라는 뜻이더냐? 수학한 곳이 무계정사이니 도성의 풍수에서 우백호이며 서방을 보하는 인왕산에 빗대어 정한 것이구나. 훌륭하다.”
훌륭하고 뭐고 간에 이게 본래 역사 유성룡의 호니까 내가 정해야지! 혹여나 내 호가 흉근이니 복근이니 정해지면 억울해 죽을 것이다. 마지막 예식인 자관자례(字冠者禮)는 내가 이황에게 절을 올리며 끝났다.
아버지도 형님도 그리고 이희신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내가 퇴계 이황에게 관례를 받았음을 진심으로 축하하였다.
대체 이 역삼각형 근육에게 무엇을 배울지 눈앞이 깜깜해졌다. 하지만 이황은 호탕한 목소리로 내가 가장 염려하던 일을 확정 지었다.
“자고로 자관지례까지 마쳤으면 어엿한 성년이 된 것이며. 너를 가르친 회령군 어르신과 네 형의 스승인 쌍취헌(권절의 호) 대감을 대신하여 내가 스승이 되기로 정하였다.”
혹시나 다른 스승이 오지 않을까. 퇴계 이황이 예식을 주관하였을 뿐이며 다른 스승을 모시지 않을까 하였는데 이미 끝난 이야기인지 이황은 당당하게 말을 이어갔다.
“내일부터 나의 사저(私邸)에서 학문과 입신체비를 수학할 것이다.”
복잡한 마음이지만 정해진 일이라 어쩔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니 머슴이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오늘부터 성년이 되신 작은 도련님에게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지나친 존대를 하지 않으셔도 될 일입니다. 하루 만에 세상이 변한 것 같군요.”
“그래도 법도는 법도이지요. 이제야 유음자제(有蔭子弟 - 양반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4대 이내의 후손)로 대접을 받으실 것이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성인이 되었음을 인정하려는지 어머니도 돼지고기 수육을 비롯하여 각종 음식을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주셨다. 이윽고 밤이 되어 아버지는 형님과 함께 간단한 주안상을 차려 나에게 술을 한잔 내려주셨다.
“너도 관례를 올렸으니 풍산 유씨의 일원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몸가짐에 항시 조심하여라.”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독한 소주가 목을 타고 흘러내려 알딸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자리에서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대체 내가 왜 퇴계 이황의 제자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본래 역사에서는 지방으로 낙향한 이황이 제자를 모았고 유성룡이 제자 중 한 명이 되었지만 여기서는 한양에 거주하는 수 없이 많은 스승 중에 이황을 택하지 않았는가.
형님은 퇴계 이황에게 배울 기회를 얻었다 생각하여 잔뜩 흥분하였지만 나는 여전히 냉정하였다. 술이 몇 순배 오가고 잠시 생각에 잠긴 아버지에게 잔을 올리고 물어보았다.
“소자 궁금한 일이 있습니다. 퇴계 선생님은 학식이 드높기로 명성이 자자하신 분인데 어찌하여 형님과 저의 스승님이 된 것입니까.”
“실은 오래전부터 정해진 것이다. 회령군 대감께서 공조판서로 망명이 높았으며, 퇴계 대감께서도 공조로 치적을 쌓아오셨으니 네가 행한 일을 대부분 알고 계셨지.”
“회령군 대감께서 제자도 아닌 저에게 은혜를 내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피식 웃으시며 소주를 채워주셨다. 고개를 들어 한 잔을 받았는데 술기운이 올라오지 않아도 내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 지경이었다.
무계정사에 다닌 순간부터 퇴계 이황의 제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하다못해 이황을 피할 마음을 먹었으면 그의 근황에 대해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는데 내가 멍청했지.
이현전에 들어가겠다고 인력거도 만들고 도면도 잔뜩 그려댔는데 그게 역효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내 모습을 보더니 껄껄 웃으시며 형님과 내 잔을 채우시며 말씀하셨다.
“사람은 의기와 학식이 있으면 되는 법이다. 하지만 학식을 쌓는 좋은 방법은 훌륭한 스승에게 배우는 것이지. 이 점을 명심하고 헛된 일을 행하지 말거라.”
피할 수 없으면 이황을 거쳐 율곡 이이와 함께하던 해야겠지. 아버지의 당부에 형님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답했다.
“소자 반드시 퇴계 대감님의 제자로 학문을 갈고닦아 입신양명의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형님께서 뜻을 정하셨으니 동생으로서 부족함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술이 일제히 목으로 넘어갔다. 내일이면 좋든 싫든 이황의 제자가 되어야 하며 이는 피할 수 없으리라. 아버지는 형과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나저나 안면만 보면 성룡이가 형으로 여겨질 지경이구나. 자고로 외모가 조숙(早熟)하면 마흔이 되어서도 젊을 적의 외모를 유지한다 하였는데 훗날이 기다려지는구나.”
이놈의 얼굴은 왜 이리 삭았는지 몰라! 정말 내 영혼이 사십 대 아저씨의 영혼이라 삭았다면 조만간 더욱 삭아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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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람들은 입신체비가 학문이며 학문이 입신체비라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했지만 어떻게든 버텨나갈 수 있다 여겼다.
하지만 아침 밥상부터 문제였다. 내 밥상도 형님과 마찬가지로 단백질 덩어리, 정확히는 수란(水卵)과 간장에 졸인 닭다리가 추가되었으며 양이 줄어들었다. 식사를 마친 형님에게 물어보았다.
“입신체비를 하려면 식생활도 변해야 합니까?”
“입신체비를 입문할 적에는 하루 네 끼를 먹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아침은 입신체비를 과하게 할 경우 구토를 일으킬 수 있어서 적게 나눠 먹어야 한다.”
형님과 같이 성큼성큼 걸어 스승님의 집으로 향했다. 숭례문과 덕수궁 사이에 거주하시니 2㎞에 달하는 먼 거리지만 스승을 모시는 첫날이니 눈에 힘을 바짝 주고 집중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군사부일체라 하여 임금과 사부, 그리고 부모를 하나같이 여기라 하였다. 죽으나 사나 내 일생은 퇴계 이황의 제자라는 꼬리표가 달라붙을 예정이었다.
퇴계 이황의 집에 당도하여 양송정(養松亭)이라 적힌 현판을 보니 아마 퇴계 이황이 태어났던 노송정(老松亭) 고택을 본떠 한양에 만든 저택이리라. 형님은 잔뜩 긴장한 나의 모습을 보고 몸을 가볍게 털며 말하였다.
“나는 입신체비를 이 년간 하였지. 네가 본격적으로 입신체비에 나선 일은 처음이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다만 형님이 학문을 닦으면서 몸이 담대해지는 것을 보고 부러운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효심을 가득 담은 담대한 몸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몸이 담대해진다 하였느냐. 네가 입신체비를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는구나. 내가 그동안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잘 알지 않느냐.”
물론 알고 있다. 형님이 권철의 제자가 되었을 때에는 한 달 동안 아침마다 죽는소리를 하며 기어 나왔으며 이후 여섯 달이 될 때까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눈빛을 보여줬으니까.
대신 형님의 몸은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2차 성징시기와 맞물려 목소리가 굵어지는 것보다 어깨가 굵어졌으니까. 결국 일 년쯤 지나자 근육적으로 세뇌라도 당했는지 군소리 없이 입신체비를 하였다. 그러니 동생으로서 당당하게 말해야겠다.
“차라리 좋은 기회라 여기고 있습니다. 비록 입신체비가 고난이라 하여도 어디까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덤덤하게 말했지만 조금 걱정되긴 한다. 관례를 올릴 적에 보았지만 이황의 가슴팍은 넓다 못해 광활한 벌판과 같았으니 현대의 보디빌더인 영직이와 비교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황이 평생 내 뒷바라지를 하며 살 것은 아니지 않는가. 관직에 진출하고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바로 율곡 이이와 어울려야지. 형님과 함께 양송정의 문을 두드리니 머슴이 나와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번에 학문을 배울 제자 분들이 아니십니까. 앞으로 두 다경(30분) 후에는 입신체비를 시작할 것이니 어서 들어와 의복을 갈아입으시지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다. 양송정은 퇴계 이황 고택인 노송정을 조금 축소하고 지세(地勢)에 맞게 변형한 이황의 사택이었으니 건물 구조를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문간채의 방 안에 들어오니 미리 준비한 입신체비용 복장이 있었다. 신발은 가죽 샌들과 유사해서 달리기 편한 모습이고 바지 또한 튼튼한 칠 부 바지이며 상의도 탄력이 있어서 운동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망건을 풀고 목면 수건을 두른 다음 패랭이(대나무를 쪼개 만든 갓)를 쓰면 입신체비 준비가 끝난다. 형님을 따라 복장을 정돈하였는데 제법 활동성이 좋았다.
이미 아침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입신체비사를 여러 번 보았는데 복장이 사극에 나오는 보부상 같은 복장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슬쩍 형님을 돌아보고 농담을 건넸다.
“이대로 등짐을 짊어지고 외가까지 한달음에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이 편합니다.”
“그러하더냐? 관직에 오르면 외조부님에게 인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 입신체비를 겸하여 두 발로 걸어가 보자꾸나.”
가능할까? 하긴 뒤틀린 역사를 감안하면 하체를 단련한다면서 정말 뛰어 내려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농담 같으니 농담으로 받아쳐야지.
“형님. 저희가 관직에 오르면 준마를 타고 내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보로 내려갔다가는 외조부님께서 저희가 출세하지 못한 줄 알고 경을 치실 것입니다.”
웃음을 참느라 끅끅거리는 형과 밖으로 나서니 퇴계 이황은 없고 형님의 친구이자 나와 면식이 있던 김성일이 팔다리를 놀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이미 5년간 입신체비를 하여 삼대운동 600근(384㎏)의 반열이라던가.
“겸암(謙唵 - 유운룡의 호) 자네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군.”
“물론일세! 학봉(鶴峰 - 김성일의 호)을 여기서 보게 되어 기쁘군. 지난번에 만났을 내 동생인 이현이라네.”
김성일이면 유성룡의 친구이자 정치 파트너이다. 인맥 둬서 뭘 하겠는가, 세상 살면서 편해지지. 관례를 올리기 이전과 이후는 다르니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제대로 예의를 표시했다.
“퇴계 스승님 아래에서 수학(受學)하게 된 서애 유성룡이라 합니다.”
“도움이라 하여도 내가 스승님에게 직접 배운 시일은 여송도 관찰사로 임명되기 이전의 일 년이 전부라네. 차라리 나보다는······.”
“다들 준비는 되었느냐? 내 아래에 있던 제자가 둘이었는데 넷을 더 거둬들이게 되어 기쁜 일이로구나.”
퇴계 이황의 웃옷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고 쉰이 넘은 나이에도 대흉근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입신체비복과 관복이 다르다 하지만 몸매가 이토록 담대하게 드러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상대적으로 얇은 종아리도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스승님은 여섯 제자의 면모를 하나씩 훑어보더니 껄껄 웃고는 조용하게 말했다.
“주상전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몇 년 동안 좌찬성으로 편히 지내며 학문을 가르치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너희의 모든 마음가짐을 바로잡는 스승일 뿐이다.”
마음가짐을 바로잡는 스승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황은 차근차근 말했다.
“본디 학문이라 함은 사람마다 재능도 다르며 관점도 다르니 나는 스승으로서 너희의 의문을 풀어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하니 마음껏 배우고 마음껏 물어보아라.”
생각 외로 강압적인 사람이 아니고 자신이 배울 거리를 스스로 찾아 먹으라는 뜻이어서 안심했다. 하지만 완전한 착각이었다. 본론인 입신체비로 들어갔는데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분위기부터 달라졌다.
“하지만 입신체비로 넘어가 보자. 입신체비가 무엇이더냐? 여기서 가장 나이가 어린 이현이 대답해 보거라.”
아무리 싫어도 기초 상식이나 다름없는 입신체비서를 읽어보았기에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였다.
“자신의 몸을 갈고닦아 부모님에 대한 효심을 드러내기 위한 학문입니다.”
“그러하면 효심은 무엇으로 드러낼 수 있는지 대답할 수 있느냐.”
그냥 자식이 덩치가 크고 건강하면 효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예전부터 이황 아래에서 배웠던 두 제자는 알고 있었지만 새로 들어온 네 제자는 알지 못하였는지 나와 비슷하게 궁금한 눈으로 이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황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입신체비의 근본은 효심이며. 효심을 드러내기 가장 확실하며 쉬운 방법은 상체를 단련하는 것이다. 도포 자락 사이로 보이는 두툼한 흉부와 드넓은 등판이 징표나 마찬가지이지.”
그래서 상체를 단련하셨군요······ 가 아니고 이게 퇴계 이황이라니! 유학적 완성에 이바지한 성현 퇴계 이황이 저런 소리를 하다니. 그렇다면 이황의 라이벌인 남명 조식은 드러내지 않는 효도가 진심이라 여겨 하체라도 단련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