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1장 20화 – 관례 (12:25 수정) >
이지함은 파직당한지 이 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꾸준히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였고. 덕분에 농조(農曹 - 예조와 공조가 분할되어 만들어진 농업 전담기관)의 종5품 정랑(正郎)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그는 풍구를 돌려보며 감탄을 늘어놓았다.
“이는 참으로 좋은 물건이구나. 족답(足踏 - 밟아서 동력을 보냄)으로 바꾸면 장정 둘이서 스무 섬은커녕 어린아이가 일백 섬의 쭉정이를 거르고도 남을 지경이다.”
그냥 족답식탈곡기의 축을 가져와서 조금 개조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 다음 개선점으로 삼아야겠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정반대였다.
“그러하니 쓸 방법이 없구나.”
“지함아, 쓸 방법이 없다 하니 그게 무슨 이야기더냐.”
“스승님, 다른 무엇도 아니고 쭉정이를 단번에 걸러내는 기물이 아닙니까. 이런 기물이 지주의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령군은 이지함의 말을 듣더니 아차 하는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고 행랑아범도 신나게 부어대던 쌀을 멈출 지경이었다. 이지함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탄하듯 말했다.
“이 기물은 모두 사용하거나 모두 사용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니 안타까울 뿐이구나. 네가 이걸 만들 적에 무슨 생각을 하였느냐.”
솔직하게 말해서 유성룡의 좋은 머리로 박물관에서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풍구를 기억해 냈고 재현하려는 생각 외에는 없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장간에서 본 풀무와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를 보며 바람을 넣어 쭉정이를 모조리 날리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좋은 기물을 창안하였으니 이를 널리 퍼뜨려 이롭게 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풍구를 널리 퍼뜨리면 심각한 논쟁이 생겨날 것이다.”
풍구를 만들면 문제가 생길 이유가 있나? 수확한 곡식을 모조리 풍구로 걸러내서 키질이 사라지면 일손이 줄어드는 법인데? 이지함은 내 표정을 보면서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만약 소작농을 거느린 지주가 풍구를 사용한다 생각해 보거라.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
풍구를 사용하면 쭉정이를 한 번에 골라낼 수 있으니 소작농을 시켜서 풍구를 돌릴 것이고······ 이지함의 속뜻을 이해한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 시대는 기술이 미비해서 곡식에 쭉정이가 1할이나 섞여 있다. 이지함은 설명을 보충하려는지 걸러진 쭉정이를 한 줌 집으며 말했다.
“소작농은 지주에게 사 할에 해당하는 소작료를 내놓으며, 이후 각종 세금을 절반으로 분할하여 납부한다. 하지만 풍구질을 하면 쭉정이가 걸러지며 수확이 줄어들지 않느냐. 지주가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
“쭉정이가 걸러져도 이전과 같은 소작료를 내놓으라 하며 소작농을 윽박지를 것입니다.”
“그나마 소작농과 지주는 서로 합의를 보아 세율과 방법을 정할 수 있으니 나은 편이지.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환곡(還穀)과 사창(司倉)이다.”
나는 좋은 물건을 만들려 하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풍구가 있어 쭉정이를 단번에 걸러낼 수 있으면 분쟁 거리가 생겨나는 격이다.
백성들이 환곡을 받을 적에는 쭉정이가 섞인 곡식을 받고. 다시 환곡을 낼 적에는 쭉정이를 걸러낸 곡식만 낸다면? 무조건적으로 1할의 곡식이 백성의 부담이 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에는 곡창의 부담이 되겠지. 회령군도 혀를 차며 이지함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네 말이 맞구나, 나야 워낙 부유하게 살았으니 풍구질을 한 곡식을 돌려줄 것이지만 세상 사람 가운데 나처럼 부유한 이가 몇이나 되겠느냐.”
내가 아무리 천재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 무얼 하겠는가. 사회 구조를 모르고 발명품을 뱉어내니 유성룡의 좋은 머리를 낭비하였다는 자괴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이지함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네가 생각한 바는 뛰어나지만 세상 이치가 단순하지 않으니 이를 퍼뜨림에 험난함이 있어 아쉬울 뿐이다. 그나마 백성들을 위할 방도를 찾아내고 이에 응할 분을 떠올렸구나. 남명(南冥 - 조식의 호) 선생님이시다.”
남명이면 유학자로 손꼽힌 남명 조식의 호이다. 평생 지방에 살며 학문을 수양하고 많은 제자를 두어 훗날 임진왜란 의병장은 물론이요 일대 학파를 만든 사림파의 거두였다.
그가 관직에 있음은 몰랐지만 본래 역사와 성품이 동일하다면 수많은 논쟁과 정치적 싸움을 거쳐 풍구를 보급할 수 있으리라. 이지함의 입에서 남명 조식의 이름이 언급된 덕분인지 회령군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조식 그 친구라면 백성을 위한 일에 심혈을 기울이지. 하지만 조정에서 일어날 일을 눈을 감아도 알 수 있겠구나. 당연히 정치로 얽힌 일에 아이가 끼어들면 아니 되니 이 기물은 지함이 네가 창안한 것으로 하여라.”
인력거를 개발했을 때에는 회령군이 개발했다 말하고 훗날 진실을 공표한다 하였지만 풍구는 아니었다. 이지함은 아직도 자괴감을 걷어내지 못한 내 얼굴을 보더니 풍구를 집어 인력거를 개조한 수레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복직하면 논쟁과 시비로 조정이 들끓을 것이다. 아마 다시 탄핵당하여 외방으로 물러날지도 모르지만 네가 창안한 기물이 창고에서 썩어가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겠지.”
“차라리 창고에 넣어두면 될 일이 아닙니까?”
“이미 보는 눈이 많은데 어찌하겠느냐.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논한 물건을 머리가 뛰어난 네가 만든 것으로 이야기하면 될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회령군조차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이지함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며칠이 지나자 이지함의 말대로 조정이 발칵 뒤집혀서 무계정사에 머무는 빈객에게도 소문이 퍼질 지경이었다.
-남명 대감께서 풍구라는 기물을 가져와서 조세 제도를 뒤엎으려 하더군.
-풍구는 여기를 오가며 회령군 대감님께 배움을 청하던 아이가 만든 기물 아니었나?
-아니야, 실제로 생각한 이는 토정이고 성룡이란 아이는 사물의 이치를 알려고 그 기물을 설계한 것에 불과하다 하였어. 그러니 토정이 농조에 소개한 것이지.
이후 단순한 조세제도 논쟁에서 지주 계층의 밥그릇 싸움이 되었고, 보름 정도 지나 다음 해가 되자 이미 풍구논쟁이라 이름까지 붙여질 지경이었다.
이지함과 남명 조식은 사방에서 이어지는 지주 출신 관료들의 맹공에 탄핵당할 위기라 하였으며 가슴에 다시 대못이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회령군은 내 모습을 알아차리고 애써 위로하려 하였다.
“자고로 세상의 이치를 알아도 사람의 속을 모르는 일이 허다하였는데 마음에 둘 일은 아니다. 그저 학문에 힘쓰면 될 일이지.”
세율 조정, 풍구의 사용과 관련한 곡창과 사창의 분쟁 그리고 지방 토지를 소유한 관학파와 외방에서 소득을 거두는 훈구파의 분쟁이 줄을 이어갔다. 사소한 발명품이지만 생각하지 않고 퍼뜨리면 이런 결과가 발생하는 법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오기가 생길 지경이다. 더 이상 어린아이로 남아 세상 물정도 모르고 철부지 노릇을 하며 주변 어른들을 고생시킬 이유가 있나. 눈에 불을 켜고 회령군을 보았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그러하면 되었다. 네가 관례를 올리고 입신체비와 학문을 좋은 스승에게 배우며, 훗날 장성하여 관료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을 뿐이구나.”
그놈의 입신체비는 좀 빼고! 이후 몇 년 동안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 낮에는 사부학당에 나가 공부하고 점심 이후에는 도면을 그리고 필체를 연습하며 실력을 쌓아나갔다. 당연히 고추와 감자의 개량도 진행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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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세월이 흘러 1556년 3월 말이 되었다. 내 나이도 15세에 도달해 사춘기가 시작되었으며 키도 부쩍 크고 체형도 다부지게 변했다. 오늘은 관례를 올리기 닷새 전이라 무계정사에 드나드는 마지막 날이지.
비록 회령군의 몸이 제법 노쇠해지긴 해도 무계정사는 이전과 같이 북적거렸다. 머물던 아이들은 관례를 마치거나 집이 이사하며 바뀌었지만 여전히 열다섯 명 이상의 아이들이 학문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회령군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선생님의 품을 벗어나게 되어 미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성룡아, 내가 네 관례에 참가할 연유는 없지만 좋은 사람 여럿을 소개하였으니 관례의 격식을 맞출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부디 무계정사에서 배운 일을 마음속에 새겨두면 좋겠구나.”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놈의 풍구논쟁에서 백성의 편을 들어준 대가로 남명 조식이 정치적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어디인지 모를 외방 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아버지의 친구인 이지함이 저 멀리 연해주로 발령되었는데. 얼굴에 힘을 주고 회령군에게 답했다.
“절대로 잊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좋은 태도로구나. 그리고 다른 일은 다 좋은데 네 외모가 왜 이리······.”
“마음이 성숙하여 얼굴에 드러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만심에 넘치는 말이었지만 회령군은 오히려 웃음을 참느라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마흔 살이 넘은 아저씨가 빙의한 효과인지 유성룡의 얼굴은 엄청난 속도로 성숙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형보다 나이가 들어 보일 지경이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그나마 어린 시절에 얼굴이 삭으면 나이가 들어서 오히려 얼굴이 삭지 않는다 하였으니 그것만 노려봐야겠다. 하나하나 짐을 챙기니 눈물이 울컥 샘솟았다.
“형! 성룡이 형! 이제 관례 올리러 가는 거야?”
“그렇지. 원익이도 몇 년이 지나면 나처럼 관례를 올리고 스승님을 찾아가도록 해. 너에게는 동고(東皐 - 이준경의 호) 대감님이 괜찮을 것 같거든.”
“동고 대감님? 그분은 지금 성균관에 계시지 않던가?”
원래 역사에서 이원익 너는 동고 이준경에게 배우거든.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자는 임진왜란의 공신이자 빼어난 관료인 오리(梧里) 대감이 아니고 열 살 나이의 천방지축 어린아이인 이원익일 뿐이다. 이원익의 머리를 쓰다듬고 도면을 하나씩 챙겨나갔다.
“도면이 너무 많아서 도면 보관함이 모자랄 지경이네. 그래도 여기 머물면서 기름먹(잉크) 사용법을 다 파악해서 다행이야. 아이들은 잘 있겠지.”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이순신은 본래 역사대로 아버지를 따라 지방으로 내려갔으며, 임차손도 사서삼경은 배웠으니 충분하다면서 할아버지가 사는 양주에서 힘을 기르겠다 하였고. 폭삭 늙어버린 행랑아범에게 다가가니 흠칫 놀라며 말했다.
“난 또 네 형이 돌아온 줄 알고 깜짝 놀랐구나.”
“댕기 머리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저는 아직 상투를 틀지 않았습니다.”
“세월 참 빠르기도 하구나.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어엿한 성인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부탁한 물건들은 모두 챙겨놓았다.”
고추야 고작 사 년의 개량으로 충분한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추운 한양에서 억지로 길렀으며. 매운맛이 적은 녀석을 골라 심었기에 화학병기에서 고문도구로 개선되었을 뿐이다.
감자는 색이 연한 녀석의 싹만 뽑아내 재배하고, 다시 씨를 모아 색이 연한 녀석의 싹으로 재배하길 두 번 반복하니 제법 연해진 것이다. 이대로 개량을 반복하면 충분한 효과가 있겠지. 감자 씨와 고추씨를 담은 주머니를 건네준 행랑아범은 푸념하듯 말했다.
“너도 참 독한 아이로구나. 다른 아이들은 한 번 농사를 짓고 혀를 내두르며 행하지 않으려 하였는데 사 년 동안 꾸준히 농사에 손을 대었어.”
“형님이 닭을 애지중지하시며 기르시는데 동생이 움직이지 않는 작물에 심혈을 기울임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형님의 업적이 대단하지. 형님의 이론과 임차손의 결합한 결과? 형님이 기르던 닭이 주세붕의 마음에 들어 백운동 서······ 아니, 백운동 입신체비장에서 알을 받아가 기른다 하였다.
챙길 물건은 다 챙겼고 나도 열다섯이 되었으니 인력거를 개조한 수레를 밀며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이 제법 멀었지만 중간에 형님을 만났다. 아까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내가 오기도 전에 성큼성큼 뛰어오셨다.
“다 큰 녀석 혼자서 수레를 끌고 오다니. 다른 이들이 보면 손가락질을 할까 염려되는구나.”
“하체를 단련하는 일이 법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형님도 들으셨습니까? 이번에 제 관례에 방문하는 주례(主禮 - 예식을 맡아 진행하는 자)께서 저희의 스승이 된다 하였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놈의 근육! 근육! 근육! 억지로 웃고 있지만 내 속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오는 것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다. 형님은 이미 이야기를 들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물론 알고 있다. 내 스승이신 쌍취헌(雙翠軒 - 권철의 호) 대감께서 군기시 도제조로 임명되시며 업무가 많아진 덕분에 제자를 둘 수 없다 하였지.”
“쌍취헌 대감께서는 본디 판서로 계시면서 형님을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나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명망이 높으신 분이 새로운 스승이 되니 대감께서는 나랏일에 충실하시면 될 일이 아니겠느냐.”
이 시대는 조정에 나서서 일하고, 다시 어느 정도 한직으로 물러나 제자를 육성하며 자문위원 노릇을 하다 일하기를 반복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니 15세에 모신 스승이 20세 경 물갈이 되는 일은 흔하다 하였고 이지함도 회령군을 스승으로 모시다 서경덕을 스승으로 모셔서 스승이 둘이라 했었지. 형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관례를 기다리며 짐을 정리하였다.
닷새가 지나고 관례를 올리는 날인 사월 초하루가 되었다. 인근에 있는 사당을 빌려 두었으며 내 관복(冠服)도 준비를 마쳤다. 내 친구이자 한양에 있는 이순신의 큰형 이희신도 관례에 참가하였다.
“네가 관례를 올린다 하여 저 멀리 북악산 너머에서 찾아오게 되었다. 아직 관례를 올리지 않은 아이이니 어른들에게 읍(揖)하여 예를 표하여라.”
“예를 표하라고? 내가 너보다 먼저 관직에 진출할 것이니 그러한 말일랑 관직에 가서 하자.”
서로 껄껄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나머지 형제들도 착실히 성장한다 하니 다행이었다. 이윽고 예식에 초대된 이들이 속속들이 등장하였다.
사람들 대부분이 당도한 것 같았는데 예식이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난처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오가며 사람을 보내셨는데 예식을 주도하는 주례가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미안하네! 이런 중요한 날에 예를 지키지 못하여 낯을 들 면목이 없군.”
호탕한 목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사당의 문간채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있었다. 이 사람이 여기 왜 있어?
천 원짜리가 있었다. 지폐 말고 말 그대로 천 원에 있는 퇴계 이황이 조금 주름이 줄어들고 젊어 보이는 얼굴을 드러낸 채 사당의 문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몸이 완전히 달랐다.
“길을 지나치다 인력거가 부서진 이를 만나 잠시 도움을 주었다네. 그리하여 이 경사에 늦게 되었으니 다들 양해하여 주게나.”
도포자락으로도 감추지 못하는 거구, 하체는 몰라도 상체만 따지면 순흥군과 비견하여도 부족함이 없으니 근육의 역삼각형 그 자체가 현현(顯現)한 모습이 아닌가.
내가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이황과 견줄 사람이 손에 꼽힐 정도이며 주세붕조차도 왜소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이황은 당황한 내 얼굴을 보더니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역삼각형 근육이 내 앞에 서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쩔 줄을 몰라 시선을 두지 못하는데 이황은 내 몸을 훑어보더니 아버지를 돌아보고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일전에 들었던 말이 옳았어. 눈에는 총기가 넘치고 사지의 근골에 부족함도 없고 성함도 없으니 입신체비와 학문을 동시에 행하면 될 것 같군. 얘야,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더냐.”
“좌······ 좌찬성(左贊成 - 의정부의 종1품 벼슬)으로 재직하시는 퇴계 선생님이십니다.”
“앞으로 스승님이라 칭하여라. 주상전하께서 다년간 외방에 다니며 고생한 나의 노력을 어여삐 여기시어 제자를 육성하며 업무에 종사하라 하였으니 너희 형제가 내 제자가 되었구나.”
예식을 올렸지만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었다. 대체 왜 내 스승이 이황이란 말인가. 남명 조식이 스승으로 올 가능성이 높았는데 어찌하여 이황인가.
이황은 율곡 이이와 사이가 안 좋다! 정확히는 까마득한 대선배인 이황에게 이이가 덤빈 꼴이지만 여하튼 사이가 좋지 않다고! 나는 율곡 이이와 어울려야 하는데 왜 이황이야! 차라리 다른 스승을 모시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