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61화 (261/573)

< 2부 1장 18화 – 농사는 힘들다 >

밭이야 당연히 있다. 회령군은 재산이 많았으니 인근에 자신이 원하는 작물을 기를 용도로 밭을 몇 결 가량 두고 있었으며. 평소에는 소작농을 고용하여 농사 수익만 거두고 있었다.

작년에는 여름이 지난 이후 배우기 시작했으니 작물을 기를 수 없었지만 올해는 이미 아이들에게 원하는 작물을 심는 것도 공부라며 각자 한 마지기(약 150평)의 땅을 사용하라 하였다.

여기에 한발 앞서 음력 2월이 될 무렵부터 어머니에게 밭을 구하면 감자와 고추를 심어볼 것이라 이야기하였고 어머니는 흔쾌히 수락해 주시면서 한마디를 보탰다.

“사람 사는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혹여나 실각(失脚)당할 일도 있으며, 외방에 나아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더냐. 작금에 이르러 텃밭에 작물을 기르는 일은 풍속이 되었으니 좋은 일이구나.”

“그러하면 소자가 작물을 기름을 허(許)하여 주시는 겁니까?”

“다만 아쉬운 일이 있구나. 감자는 북변에 사는 이들도 먹기를 꺼려 하며 고초(苦草 - 고추)는 쓰이지 않는 채소인데 이 두 가지를 기른다 하니 아쉬울 뿐이구나.”

“평범한 작물은 많은 사람이 기르는 법이니 배우기도 쉬울 것이 아니겠습니까. 혹여나 제가 외방(外邦 - 외국)의 관직을 얻으면 나머지를 배워 앞가림은 하고자 합니다.”

어머니도 외가에서 텃밭을 일구셨는데 고구마, 순무 그리고 들깨를 기르셨지. 아마 이 시대의 양반가 사람들은 손이 덜 가는 반찬거리를 취미 삼아 기르는 게 전부인 것 같다.

어머니의 지시를 받은 머슴은 시장을 돌며 기르기 좋은 중닭(털갈이를 시작한 병아리), 고추, 그리고 감자 종자를 구했고. 마침내 한 달이 지나자 모든 재료가 갖춰졌다.

하지만 청계천에서 돌아온 머슴의 상태가 이상했다. 눈이 시뻘겋게 부어 있으며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소매에서 천주머니를 건네주며 말했다.

“고초는 일대에서 기르는 이가 없어서 구하는데 시일이 제법 걸렸다. 고초 씨앗은 위험한 물건이니 손으로 만지면 석감으로 닦는 일을 잊지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된다.”

“대체 무슨 일을 겪으셨습니까?”

“고초의 매운맛은 알지만 씨가 매운 줄 모르고 눈을 긁다 변을 당했구나. 이런 작물을 기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머슴의 말대로 고추씨앗을 담은 천주머니에서 아릿한 향이 느껴지니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머니를 열고 젓가락에 묻힌 침으로 고추씨 몇 개를 입에 넣으니 후끈한 맛이 올라왔다.

씨앗 몇 개를 씹었더니 현대의 평범한 고추를 통째로 먹은 수준의 매운맛이 올라왔다. 이걸 길러서 품종개량을 하려니 앞길이 막막하다. 한편 형님은 중닭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가져온 닭은 월국(越國 - 베트남) 출신 닭인데 다 자라면 발길질이 날쌔 고양이가 닭을 사냥하려다가 눈을 잃는 일이 허다하며, 사람을 보고도 겁을 먹지 않으며 겁을 먹으면 집 한 채는 훌쩍 뛰어넘는 녀석들이지. 너도 각별히 조심하여라.”

내가 시골 외가에 자주 내려가서 방생해서 기르는 토종닭도 아는데 이 시대의 닭이 이렇다고? 품종개량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형님은 우리에 담겨 있는 중닭들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한양 인근에는 여전히 논밭이 많았는데 우리에게 배정된 회령군 소유의 땅은 산비탈에 있는 밭이었다. 평소에는 보리와 다른 채소를 기르는 장소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이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회령군 대감께서 소유하신 일대 땅의 마름이며 제······ 아니, 아이들이 농사를 통하여 배울 것이 많다고 가르치라 하셨지.”

소작농이지만 이 시대에는 양반집 자제들도 관직을 얻기 전에는 어른을 보고 존댓말을 하는 것이 예절이다. 양반은 귀족처럼 영구 세습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고 아이들을 대표하여 가장 나이가 많은 형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올렸다.

“대감님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밭에서 작물을 길러볼 것이니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가르침이라, 흙을 파먹고 사는 무지렁이가 양반가 자제들에게 가르침을 줄 것이 무엇이 있을까. 대감께서는 그저 세상사는 일이 녹록지 않음을 알려주라고 하셨다.”

여기 모인 아이들 가운데 농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지방에서 살다 가족 전체가 한양으로 이주한 몇몇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였지만 마름은 이미 한차례 정리한 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농사를 지을 적에는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이 하늘이요, 그다음은 땅이다. 아직 날이 추운지라 씨를 뿌려도 소출이 좋지 않을 것이니 준비할 것이 있다.”

마름은 밭 구석에 있던 농기구를 담은 수레를 가져와서는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개중에 튼튼한 괭이를 집어 든 마름이 괭이를 치켜들며 말했다.

“밭을 일구기 전에 먼저 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먼저 이랑을 만들어야 하니 밭을 파헤쳐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무나 고구마를 비롯하여 뿌리를 수확하는 작물은 한 가지 과정을 더 거쳐야 하지.”

괭이로 땅을 후벼 파버리니 땅이 헤집어지면서 흙과 함께 잔돌이 섞여 나왔다. 잔돌을 주워 양손 가득 담은 마름을 보자 내가 할 일을 알 수 있었다.

“잎사귀를 수확하는 작물을 심은 아이들은 괭이로 땅을 뒤엎고 커다란 돌만 골라내면 될 것이다. 하지만 뿌리를 수확하는 작물을 심었다면 엄지손톱보다 큰 돌은 모두 골라내야 한다.”

“그러하면 저희가 이 넓은 땅을 모두 헤집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다. 가급적이면 밑거름을 먹여야 하니 땅을 모두 헤집고 돌을 골라내는 일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밑거름을 먹이지 않으면 보리는 몰라도 다른 작물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

다들 부족한 머리는 아닌지라 상황을 파악했고 선생님이 신나게 흙장난을 할 기회를 주었다고 기뻐하였다. 그리고 30분 정도 지나자 신나서 땅을 헤집는 목소리는 사라졌고 죽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지? 기껏해야 다섯 걸음밖에 못 파헤쳤잖아!”

“까마득하게 남았네. 어르신께서는 몇 명을 두고 일하고 계십니까?”

“나는 이십 년 동안 이 땅을 경작하였는데 이제는 한 결의 땅을 열흘 안에 모두 뒤집고 밑거름을 먹여 다시 뒤집는다. 잔돌이 많아 보이더냐? 처음에는 돌이 반이요 흙이 반이었다.”

열흘 안에 혼자 한다는 말을 듣자 아이들 모두가 잠시 침묵하였다. 하지만 다시 한 시간이 지나자 허리가 뻐근해진 아이들의 푸념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어머니······ 밥 한술이 이렇게 힘들게 나오는지 몰랐어요.”

“나 절대 농사 안 지을 거야. 차라리 십삼 경을 모조리 독파해서 관직에 오르고 말지!”

힘들게 농사를 지을 바에는 관직에 오른다는 소리를 들으니 회령군의 속셈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 모두가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나도 푸념할 거리가 있었다. 이놈의 감자 수확량을 늘리려고 새끼손톱만 한 돌까지 모조리 골라내니 고생이 두 배다.

“아이고 힘들다. 감자를 길러서 뭔 고생인지 모르겠네.”

“더 이상 괭이질을 해도 효험이 없을 테니 나도 힘을 보태겠다. 내가 큰 돌을 골라낼 것이니 네가 작은 돌을 골라내라.”

형님은 괭이질을 하다 내 모습을 보고 도와주려 했는지 괭이질을 관두고 흙을 호미로 까뒤집고 있었다. 묵묵히 땅을 헤집으니 옆에 있던 아이가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훗날 관직에 오르면 백성들의 고충을 이해했으니 절대 탐관(貪官)이 되지 않을 거야. 성룡이도 그렇게 생각하지?”

땀과 흙으로 범벅된 이순신의 큰형 이희신이 콧잔등을 훔치며 나에게 농담을 건넸다. 이순신 이전에 이희신을 자주 만나서 친해졌으니 나도 손톱 아래에 박힌 흙을 긁어내며 답했다.

“선생님께서 내가 농사를 지어보겠다 하니 우리 모두에게 농사를 지을 기회를 주신 이유를 알 것 같아. 사람 셋이 있으면 배울 점이 있다 했는데 여기서 많은 걸 배우네.”

“선생님은 훌륭하신 분이시니까. 너희 형은 닭을 기른다 했는데 너는 뭘 기를 생각이니?”

“고초에다가 감자. 너희 형제들은?”

“우리는 배추랑 무를 심으려 했는데 김장 한번 하려면 몇 명이 고생하는지 모르겠어. 순신이는 처음 올 적부터 고생하니까 내가 열심히 해야겠다.”

저 뒤의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어린아이가 이순신이라니. 올해 아홉 살이라 했는데 얼핏 보면 댕기 머리를 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밭을 헤집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님처럼 중학생에 근접한 아이들이 섞여 있어도 아이들의 노동력은 보잘것없었다. 회령군에게 배우지 않는 날에는 흙에 파묻혀 살았는데 닷새가 넘어갈 무렵에야 가까스로 밭을 갈아엎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일이 끝나지 않았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밑거름도 잔뜩 뿌리고 다시 밭을 뒤엎고 잔돌을 골라내니 열흘이 흘렀다. 아이들이 끝없는 일에 지쳐갈 때쯤 마름이 싹을 틔운 작물을 가져왔다.

“인근의 농부들을 모두 데려왔으니 각자 기르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각자 농부들과 함께 작물을 심어보자꾸나. 그리고 성룡이라 하였느냐? 네가 기르는 작물은 인근에서 기르지 않는지라 농서를 참고하여야겠구나. 잠시 집으로 오려무나.”

손을 씻고 세수를 한 다음 대청마루에 앉아 기다리니 마름이 농서 두 권을 가져왔다. 하나는 한문으로 된 복잡한 농서이고 하나는 한글 아니 정음으로 기록된 얇은 농서였다.

“일단 감자는 되었고 문제는 고초이다. 주변 사람들 모두 길러 본 적이 없다 하더구나.”

“도성 인근에서는 고초를 기르는 이가 없습니까?”

“삼남에서는 소출이 제법 나오고 대양도(대만)까지 내려가면 소출이 많다 하였지만 이외에는 소출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적혀 있구나.”

마름이 내민 서적에는 농사직설 증보판이라 정음으로 적혀 있었고 고초 항목을 보았는데 마름이 말한 그대로 언급만 된 형편이다. 마름은 한숨을 내쉬더니 회령군이 찾아준 것 같은 다른 농서도 보여주었다.

“내가 정음은 어린 시절 떼었지만 한문을 뗄 기회가 없어서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구나. 미안하지만 대감께서 내려주신 서적은 네가 읽어서 알려주려무나.”

“읽어보니 전라도에서 삼백 결의 토지를 소유한 소문진(少文振)이라는 분이 남긴 서적입니다. 하지만 성씨가 이상합니다. 본래 성씨에는 소(蘇) 씨를 쓰지 않습니까?”

“소? 적을 소(少) 씨라면 귀부한 왜인의 성씨이다. 둘로 파가 갈렸는데 한 계파는 전라도 일대의 간척지를 소유하여 부유한 가문이며, 다른 계파는 대를 이어 비군(肥郡 - 히젠) 일대의 토관으로 지내지.”

전라도 일대가 간척되었다고? 얼마나 땅을 늘렸으면 왜인에게 삼백 결을 떼어줄 정도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여기에는 고추를 기르는 법에 대해 적혀 있었다.

“심는 시기는 음력 오월이 적합하다. 반 자가량 자란 싹을 심되 모래가 섞인 땅이 좋고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땅에 파종할 것이며······.”

뭐 이리 조건이 많은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냥 하지 마라 하지 마라의 연속이다. 심지어 벌레가 스미면 삽시간에 말라 죽는다 하니 농약도 없는 시대에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 마름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물을 적게 주어도 아니 되고 많이 주어도 아니 되며 한기가 스며도 아니 되고······ 김매기나 벌레를 잡는 일은 내가 할 것이나 나도 돌봐야 할 작물이 많구나. 절반 정도는 소출을 거두지 못한다 생각하여라.”

마름의 말을 듣자니 오기가 생겼다. 현대에서 먹었던 매운맛이 적고 향이 풍부한 고춧가루도 그립고 텁텁하면서 중독성 있는 맛인 고추장도 그립다.

-----

음력 6월의 불볕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밭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다른 아이들은 인근 농부의 도움으로 작황이 좋았으며 수확이 빠른 작물을 거둬들였지만 나는 아니다. 마름도 내 밭을 보더니 푸념을 늘어놓았다.

“참으로 독한 작물이다. 너무 빠르게 자라 지탱할 수 없는 작물이라니 대에 붙여놓지 않으면 넘어지는 꼴이 딱하기 그지없구나.”

고추의 생존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추워서 얼어 죽고, 비가 내려서 뿌리가 썩어 죽고, 그리고 어제 몰아친 비바람 덕분에 줄기가 꺾여 버렸다.

종자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직 새끼손톱 크기의 고추를 하나하나 따내어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입 먹어보니 끔찍하게 매운맛이다.

감자는 그럭저럭 잘 자라는데 흙을 파헤쳐서 덩이줄기가 얼마나 생겼는지 알아낼 방법도 없다. 오늘도 형님을 도와 닭을 돌보려는데 형님의 비명이 들려 서둘러 달려갔다.

“악! 잠깐만! 내가 너희들 주인이잖아! 으악! 잠깐! 네 몸이 이상하니까 치료를! 아악!”

오늘도 형님은 닭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품종개량 이전의 닭이니 자라는 속도도 더디고 크기도 작은데 성격 하나는 제대로 흉포하다.

형님은 사방에서 협공하는 닭들을 작은 빗자루로 밀어내며 볏이 뜯겨 피를 흘리는 닭을 데려와 치료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날아올라 머리를 쪼아대기 시작하니 겁에 질린 얼굴로 나에게 고함을 쳤다.

“내 손! 성룡아! 닭이 나오지 못하게 빗자루로 밀어내거라!”

“네 형님! 어서 나오십시오!”

쏜살같이 도망친 형님의 뒤를 추격하던 수탉을 빗자루로 후려쳐 닭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형님은 머리를 보호하려고 큰 바가지를 덮어쓰고 나왔는데 바가지에는 부리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병아리에서 중닭 사이의 녀석들은 넉 달 사이에 흉포함을 드러냈다. 특히 가장 무서운 놈이 아무리 보아도 투계(鬪鷄 - 싸움닭)로 보이는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녀석이다.

“오늘도 어머니께서 걱정이 많으시겠구나.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월국의 닭을 기를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제가 가장 걱정하는 일은 저 닭이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닭이 성숙하여 새끼를 치려면 여섯 달이 걸리지 않습니까?”

“성숙하지 않았는데 저렇게 피를 튀기며 싸운다는 말이더냐. 어머니께서 상처를 입으신 연유가 있으니 내가 저 닭을 기를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언제 협공을 했냐는 듯이 닭장 안에는 파벌싸움이 한창이었다. 볏이 뜯긴 채 베트남 출신 투계에게 두들겨 맞는 수탉을 보니 저 닭도 죽어나갈 것 같았다.

형님이 기르기 시작한 스무 마리의 닭 가운데 네 마리는 병들어 죽고, 두 마리는 실종되었으며 지금 또 한 마리의 수탉이 죽어가고 있었다. 형님은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희신이처럼 배추와 무나 기를 것이었어. 희신이와 형제들은 벌써 무를 수확하여 편하게 지내고 있지 않더냐.”

수확이 빠른 아이들은 석 달 만에 농사의 절반이 끝나 근처 아이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형은 두 마리의 닭이 담비에게 물려 갔다 생각했지만 이 집에는 개를 길러서 담비가 함부로 다가올 수 없었다. 사람을 보고 짖지 않는 개이지만 담비를 잡은 적이 있어서 그 공으로 복날을 넘긴 개였으니까.

그렇다면 형님의 닭 가운데 두 마리가 실종된 이유는 사람의 소행이다. 혹시나 마름의 큰아들? 하지만 들키면 마름에서 잘릴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나설 이유는 없다.

“성룡아? 그 닭은 죽었으니 그만 포기하여라. 꺼내서 치료하여도 다시 두들겨 맞을 것이다.”

“혹여나 몸에 고추를 바르면 매운 기운 때문에 싸우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봤자 조류는 매운맛을 못 느끼니 소용이 없지만,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일어서지 못하는 닭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닭장에 손을 넣어 쓰러진 닭의 몸에 짓이긴 고추를 발라놓았다.

만에 하나 우리 가운데 범인이 있다면 가장 약한 닭을 서리할 것이고, 그렇다면 죽어가는 이 닭을 채어가다 고추가 손에 묻어 눈이 퉁퉁 부을 것이다. 제발 서리한 범인이 이순신은 아니길 빌어야지 방법이 있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