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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60화 (260/573)

< 2부 1장 17화 – 의도하지 않은 결과 >

회령군은 도면을 한참 살피더니 내 눈을 쳐다보았다. 덜컥 겁이 나서 억지로 벌벌 떠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혹여나 제 도면에 문제가 있습니까?”

“네 어머니가 우거 위에 가마를 올린 덕분에 고생하였다 하는데 이건 우거와 가마의 장점만 합친 기물이다. 하지만 문제도 있으니 네가 찾아내지 못하였구나.”

첫 계획은 철물을 사용하고 위에도 천막을 얹어서 최대한 가볍고 편하게 만들려 했었지만 어린 나이인지라 포기했지. 결국 전부 다 목재를 사용했다.

무게가 무거워서 문제지 기능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회령군은 행랑아범을 불러서 지시를 내렸다.

“행랑아범 있는가? 아래 널골에 사는 소목장을 불러오게.”

행랑아범이 쏜살같이 문밖으로 뛰쳐나가고 회령군이 상념에 잠겼다. 아마 내가 설계한 인력거를 머릿속으로 그리나 본데 나도 같이 생각에 잠겼다. 바로 내 미래에 관한 일이다.

현대인으로서 발달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데다 서애 유성룡으로 태어나 뛰어난 두뇌를 받았으니 이걸 활용해야지. 결국 관직을 얻어 출세해야 일이 풀리지만 참으로 흉험한 세상이다.

황희가 90세까지 일하고, 칠순 나이의 회령군이 복직하길 원하여 궁궐에서 선물을 보내왔다. 결국 관직에 나서면 최소 60까지는 죽도록 일만 하는 신세지만 이건 각오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으니 바로 근육이다.

향교에서도 근육! 서원에서도, 아니, 서원도 없고 입신체비장에서도 근육! 환갑까지 몸을 놀리며 쇠질을 하는 것이 내 인생이라니! 여기에 레슬링은 보너스다! 당연히 싫다!

다른 좋은 것도 많은데 왜 보디빌딩을 하는가! 건강 유지는 식습관 조절과 적당한 운동이면 충분하지 왜 입신체비를 해서 근육덩어리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영직이가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생활체육으로 보디빌딩을 하면 보통 체격으로 삼대운동 300㎏이고 400㎏부터는 작은 피트니스 센터에서 코치 정도는 가능해. 나처럼 500㎏을 넘기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고.’

지금 조선에서? 삼대운동 500근(약 320㎏)이면 면피(免避)용이나 체격이 작은 사람의 표준이며 이게 영직이 기준 생활체육 이상이다. 보통 600근(약 384㎏)은 해야 정상적인 유생으로 보는데 이게 준 코치 수준이고!

다른 것은 몰라도 죽어라 쇠질 하는 인생은 싫다! 건전한 인생을 살며 편안히 여생을 마쳐야 하지 않는가. 해결책으로 율곡 이이와 학파를 만들려고 작정했는데 일이 잘 풀릴지는 모르겠다. 계속 머리를 굴리는데 대문이 열리고 소목장과 인부들이 도착했다.

“대감님. 이런 겨울에 무슨 일로 소인을 부르셨는지요.”

“간단한 기물 하나를 만들어보게나. 상세한 도면이 있으니 만들기는 편할 것이네.”

회령군은 도면을 건네주려다가 연필로 도면에 적힌 한자 옆에 한글을 적어주었다. 소목장은 한참 더듬거리며 한글을 읽고는 되물었다.

“이게 무엇에 쓰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마인데 초헌(軺軒 - 종2품 이상이 타는 바퀴 하나 달린 가마)도 아니고 대체 무엇인지요. 이건 소달구지도 아닌 것이······.”

“염려하지 말고 도면에 표시된 대로 만들어 보게. 혹여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 아이에게 물어보도록 하고. 나무는 뒤뜰에 금봉치목(金棒治木 - 죔쇠건조)한 은행나무를 사용하게. 잠시 손이 비는 사람은 이 소목장을 도와주게!”

유생 여럿이 뒤뜰로 달려가서 대충 길이가 10미터에 둘레가 30㎝는 될 법한 은행나무를 가져왔다. 그런데 은행나무에 죔쇠로 묶인 물건은 역기봉이다. 금봉치목이 뭔가 했더니만 죔쇠건조였다!

죔쇠건조는 17세기 말에 도입된 건조방식이며 기존 자연건조보다 더욱 단단한 목재를 만들 수 있으니 없으면 퍼뜨리려 했는데 잘된 일이지. 소목장은 도면을 보며 나무에 연필로 자를 곳을 그리다가 되물었다.

“대감님께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가마 틀을 만드는데 도본을 따라 판재(板材)를 사용하면 품이 너무 많이 드니 외를 엮어서 임시로 형태만 잡아도 되겠습니까?”

“처음 만드는 것이니 형태를 보고 싶을 뿐이네. 다만 판재 외에는 모두 도본 그대로 만들게.”

“이게 잘 될까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처음 만들어보는 기물인지라 부러질지도 모르니 도본보다 두껍게 만들 것입니다.”

솜씨가 제법 좋은 소목장인지 삽시간에 톱질을 끝내고 겉면을 대패로 미는 작업까지 마쳤다. 다만 인력거 바퀴는 바로 만들 수 없었는지 자신이 만들던 다른 바퀴를 억지로 끼워버렸다. 두 시진(4시간) 가량 작업을 한 사람들은 빗자루로 뒷정리를 하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았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다듬으면 좋겠지만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잘했네. 혹여나 손을 볼 일이 생길지 모르니 미리 은자 두 냥을 주도록 하지.”

소목장은 돌아갔고 설계도와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두꺼운 인력거가 완성되었다. 어찌 보면 소달구지와 비슷할 지경이다. 헛기침을 한 회령군은 목소리를 높여 사람을 불렀다.

“지함아! 잠시 나와보아라.”

입신체비가 끝난 다음 몸을 씻고 상투를 풀어헤쳐 머리를 말리던 이지함이 갑자기 불려 나왔고 회령군은 다짜고짜 방석 하나를 집어오더니 인력거에 탑승했다. 앞으로 슬쩍 기울어진 인력거를 본 이지함은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되물었다.

“이게 무슨 기물입니까?”

“성룡이가 창안한 인력거라는 물건이다. 가마와 우거를 합친 물건인데 네가 한번 움직여 보거라.”

“이걸 마소(馬牛)가 아닌 사람이 움직인다는 말씀이십니까? 옛적에 경인년에 왜인을 벌한 일이라도 읽어 보고 만든 물건입니까? 그런데 제법 무거운 기물이군요.”

“경인년의 일은 우거에 무턱대고 밧줄을 엮어 당긴 일이고 이것은 아예 사람의 힘으로 끄는 것이 아니더냐. 네가 삼대운동 육백 근에 달하는데 제법 버거운 것 같구나.”

삐걱 기리는 소리를 내며 인력거가 움직였다. 이지함은 처음에는 힘을 주는 법을 몰라서 허우적거렸지만 몇 걸음을 떼고 나니 입신체비를 했던 몸을 자랑하며 힘차게 마당을 돌아다녔다.

물론 처음에만 힘차고 그 이후로는 꾸지람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인력거의 손잡이는 사타구니쯤 와야 하는데 허벅지 높이인지라 이지함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쭉 나아가서 바로 제자리에서 돌도록 하여라. 그리고 뒤로 기울이면 사람이 다치지 않더냐.”

“스승님께 송구합니다만 아래로 낮추면 제 손가락의 힘만 사용하여 밀어야 하며. 위로 올리면 스승님이 뒤로 넘어지실 것 같습니다.”

“내가 앞을 잡고 있을 것이니 편한 자세를 찾아보아라. 제 자세를 갖추어도 힘에 부치느냐?”

“제힘으로는 기껏해야 두 다경(30분)을 끌고 나면 기진(氣盡)할 것입니다.”

설계보다 두꺼운 목재를 사용했으니 인력거 무게만 따져도 60㎏에 회령군의 체중까지 합치면 120㎏은 되겠다. 몇 시간만 투자해 만든 물건이니 이래저래 문제가 많을 것을 예상했는지 회령군은 바짝 긴장한 채 이지함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리저리 마당을 십 분 정도 움직였을 뿐인데 이지함은 땀을 흘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고 회령군은 혀를 차며 말했다.

“역시 치목을 덜 한 것이야, 내가 보았을 적에는 구십 근(58㎏) 정도가 나올 물건이었는데 내 몸과 합치면 이백 근(128㎏)이 넘어가겠군.”

“이대로 움직이면 순흥군께서도 힘에 겨울 것입니다. 손가락의 힘으로 움직이는 기물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네 행색을 보니 무게도 무겁고 축도 어긋나 있구나. 그럼 해야 할 일은 뻔하지 않느냐.”

회령군은 건물 설계의 달인이기도 하였지만 역학과 관련해서 제법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연필로 몇 군데 표시를 한 회령군은 인력거 위에 거적을 덮고는 말했다.

“손을 볼 곳이 제법 있구나. 다른 일은 몰라도 소목장이 치목(治木 - 목재를 다듬음)을 할 적에 처음 만든 기물이라 너무 두껍게 다듬었으니 손을 보면 될 것이다. 오늘은 들어가고 닷새 뒤에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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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가 지나고 무계정사에 다시 방문하니 인력거는 말 그대로 날렵해졌다. 오히려 내가 설계한 인력거보다 얇아졌는데 아마 한계까지 무게를 줄인 것 같다.

심지어 위에 얹어둔 틀도 경량화를 위해서 나무로 만든 상자 형태의 틀에서 대나무로 만든 틀에 엮어둔 천으로 바뀌었다. 회령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설명하였다.

“인력거 위에 네 어머니가 타고 온 가마를 올렸다 하였지. 나무틀로 벽과 지붕을 가린 가마를 옥교(屋轎)라 하여 당상관과 그 가족 외에는 탈 수 없느니라. 주상전하께서 네 아버지에게 허(許 - 허가)한 물건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제가 결례를 저지른 것입니까?”

“어허, 내가 당상관이었음을 잊었느냐. 법도에 어긋나지도 않았으나 무게를 줄이고 혹여나 옥교와 같다 하여 벌을 받는 이들이 생겨나지 않게 하려고 장보교(帳步轎 - 천막 형태의 가장 낮은 가마)를 올렸지.”

건축에 대해서 알지 통사(通史 - 종합적인 역사)에 대해 모르는 나의 무지가 화를 불러올 뻔했다. 더욱 날렵해지고 균형도 맞는 인력거를 보니 가슴이 뿌듯해질 것 같았다.

법을 어기지 않고 더욱 가벼워진 인력거를 만들었으며, 어린 나이라서 발상이 대단할 뿐 미숙하다는 평가 덕분에 견제를 당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익숙한 근육, 아니, 얼굴이 보였다. 순흥군이 여기 왜 있어!

왜 여기 있는지 몰라도 첫날 만든 인력거와 비슷한 녀석을 성큼걸음으로 끌고 다니다 대문 앞에 세웠다. 나를 알아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 순흥군에게 인사를 올렸다.

“순흥군 대감님을 뵙습니다.”

“성룡이를 또 보는구나. 네가 무계정사에서 많은 일을 배운다 하였는데 참으로 진기한 기물을 만들어서 내 하체가 튼튼해질 지경이다.”

순흥군은 사람 대신 태운 쌀가마니 두 개를 번쩍 내리더니 감탄하면서 말했다. 왜 저렇게 표정이 밝은가 했더니 이걸 운동 기구로 사용했었나? 의문을 품었는데 맞는 것 같다.

“참으로 훌륭한 기물이다. 사람을 태우고 걷기만 하여도 악력은 물론이거니와 오금부터 둔부까지 모든 근육이 자연스럽게 긴장한다. 자고로 하체를 할 적에 가장 중요한 일은 꾸준히 하중을 가하는 것이다.”

나의 출세도구를 거리낌 없이 근육 단련을 위해 쓰는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이어지는 말은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또한 늙어서 부모님을 봉양할 적에 업고 다니면 부모님께서 기뻐하시지 아니할 것이다. 하지만 인력거에 부모님을 태우면 도로가 온전한 경기도까지는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으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다시 내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나는 입신체비도 싫고 내수린도 싫으며 그냥 건강한 몸으로 적당히 일하면 충분하다. 대체 왜 세상이 나를 근육의 길로 이끄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편 새로운 인력거는 이지함이 몰고 회령군이 탑승한 채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삼대운동은 순흥군의 절반에 불과한 이지함이지만 거뜬하게 몰고 다니니 저게 표준형 인력거가 되겠지. 회령군은 인력거에서 내려오더니 웃음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개량하니 참으로 좋은 기물이 아니더냐. 인력거에 대해서는 내가 공조판서로 일하는 반곡(盤谷 - 송세형의 호)에게 이야기를 전해주겠다.”

“선생님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은혜라? 예진원 대제학이 입신체비기구로 사용할 물건이라 정하였으니 세상에 퍼져나감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지금 알리지 않으면 인력거가 몸을 단련하는 도구로 알려질 것이다.”

회령군과 순흥군이 서로를 보면서 계면쩍게 웃는데 나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둘 다 적중할 것이라 상상하지도 못했다.

3개월이 흐른 1553년 음력 3월, 도성 길거리에서는 흔할 정도로 인력거가 많이 보였다. 한 달 동안 쉰 대가 팔려 나갔다 하며, 머슴 단 한 명이 몰고 다니니 가마 가운데 가장 낮은 녀석이라 백성들도 돈만 있으면 타고 다닐 수 있었으니까.

회령군의 예상이 적중했지만 순흥군의 예상도 적중했다. 아버지는 업무를 끝마치고 보름가량의 휴가를 받으셨는데 그동안 도봉산 인근에 살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모셔왔다.

“저 중영이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솜털같이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체격이 있으니 편하실 때에 언제라도 서신을 보내주시면 제가 직접 모셔오겠습니다.”

입신체비에 몰두한 유생 사이에서 인력거의 사용법은? 경기도 인근에 있는 부모님을 한양 구경시켜 드리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도성 안에 살면 경기도 구경 보내는 용도고. 실제 목적은 효행 겸 하체단련이지만 알게 뭐람. 내 앞의 문제가 더 중요한데.

파종시기가 다가오니 각종 채소 씨앗이 시중에 풀려나왔고 가까스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있었다. 드디어 감자와 고추 씨앗을 입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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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수양대군의 자택이자 수양대군의 직계 후손들이 머무는 집은 세조 이홍위가 친히 하사한 장충원(奬忠院)이라는 현판이 매달려 있었다. 늦은 밤임에도 사랑채의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유중영 자네의 아들이 큰일을 해냈네.”

“저는 어린 나이에 재능을 과신하여 태만한 자가 될 것이라 고심하고 있습니다.”

술 대신 차를 나눠 마시는 네 사내는 이 집의 주인인 경원군과 후계자인 순흥군, 안평대군의 직계인 회령군과 평범한 관료인 유중영이었다. 유중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회령군이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인력거가 좋은 물건인데 이를 좋아할 사람 둘 다 도성에 없으니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아직 고쳐야 할 곳이 많은 물건이 아닙니까.”

“고친다? 더 고친다면 철물로 만드는 방법 외에는 없다네. 기껏 하여야 중미국에 있는 철죽(鐵竹)으로 만드는 것이 조금 더 나은 방도이겠지.”

장안의 화제는 인력거였다. 열두 살의 어린아이가 만들었다 하면 믿을 이가 없으니 회령군이 만든 물건이 되었지만 알 사람은 알고 있었으며 훗날 유성룡이 관직에 오르면 만천하에 공개되리라. 유중영의 빈 잔에 차를 채워 넣은 순흥군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인력거를 가장 좋아하며 가장 필요로 할 이에게 서신을 보냈으니 자네 아들의 출세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이 없네.”

“너도 보냈더냐? 퇴계에게는 나도 서한을 보냈는데 같은 편지를 두 번 받게 생겼구나. 퇴계는 하체를 단련해야 하는 법인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야.”

“상체만 놓고 보면 수양근도 거뜬하신 분이십니다만 하체를 잘 하지 않으시니 가장 적합한 입신체비기구가 아니겠습니까.”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퇴계 이황의 우람한 상체 근육을 떠올리면서 차를 홀짝였다. 이윽고 회령군이 아쉬움을 담아 푸념을 늘어놓았다.

“퇴계는 하필 공조판서가 될 무렵에 여송도 관찰사로 임명되었군. 조정에 인물이 그렇게 없다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네. 퇴계가 인력거를 보았으면 참으로 기쁜 일이라 여겼겠지.”

“퇴계 어르신이 공조판서로 내정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종친사환제한법(종친의 품계를 정2품으로 제한하는 법) 덕분에 정2품 공조판서로 십 년 가까이 재직하였으니 아직 내 안방이나 다름이 없지. 인력거는 퇴계의 하체를 단련하는 일에도 좋으며 퇴계가 일할 공조에서 관리할 기물(器物)이 아닌가. 정녕 아쉬운 일일세.”

본래 역사에서 잦은 탄핵과 관직 사퇴를 반복하여 출세가 늦었던 퇴계 이황은 변한 역사에서 공조 참판을 성공적으로 역임하였고, 이후 예조를 거쳐 다시 공조판서로 내정된 자였다.

윤원형의 범죄로 인하여 외방 관원들이 모조리 물갈이되는 사태가 아니었다면 공조판서의 자리는 이황으로 내정되었으리라. 그런 이황에게 전직 공조판서와 예진원 대제학의 서신이 동시에 닿은 것이다. 경원군은 호탕하게 웃으며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성룡이가 장성하여 퇴계 아래에서 수학하면 얼마나 대성할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 나도 그 생각을 하였다네. 퇴계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구가 퇴계에게 선물 하나는 주어야겠네.”

유성룡의 생각과 다르게 그의 미래는 퇴계 이황의 제자이자 공조의 인재로 내정되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려면 몇 년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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