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1장 14화 – 선생님을 찾아보자(2) >
문이 열리고 머슴의 대장인 행랑아범(행랑채에서 더부살이하는 나이 많은 머슴)으로 보이는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전에 주인어른과 말씀하시던 바를 들었습니다. 다만 주인어른께서는 잠시 회화를 그리시며 마음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제법 높은 계단을 올라 대문에 들어서니 담쟁이가 얽힌 영롱담(玲瓏檣 - 기와를 이용하여 틈을 만든 담장)이 수풀과 어우러져 있었다. 외형만 보아도 안평대군의 별장답게 보통 공을 들인 건물이 아니다.
아버지는 무계정사의 외형을 보며 적잖이 감탄했지만 할 일이 있었다. 이런 집에는 집안 어른이 여럿 있는 법이니 인사를 올려야 하는 법이다. 아버지는 눈을 찌푸리고는 평상에 털썩 주저앉은 이지함에게 말했다.
“토정 자네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다른 집안 어른에게 인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나. 어서 일어나도록 하게.”
“무계정사에는 스승님을 제외하고 행랑아범과 잡부 몇 명이 전부이지. 그러하니 스승님께서 나오시기 전에는 편히 있게나.”
얼핏 보아도 칠십 칸이 넘는 거대한 저택인데 고작 몇 명이 거주한다니? 아버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지금 뭐라 하였나? 그러하면 집안사람 누구도 없이 회령군께서 혼자 거주하신단 말인가.”
“나도 모를 일이라네. 예전에는 빈객과 배움을 청하는 이들로 북적거렸던 곳이건만 치사하신 이후로는 빈객도 맞이하지 않으시니 연유를 모르겠군.”
이지함의 말대로 머슴 몇 명과 우리를 맞이한 행랑아범 이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멀뚱히 서 있는 나와 형을 보더니 한숨을 쉬고 말씀하셨다.
“잠시 기다려야 하니 정원을 살펴보고 오거라. 혹여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행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명심하겠습니다.”
예술의 정점인 안평대군은 어떠한 저택을 만들었을까. 당장 정원만 하여도 인왕산의 산세를 본떴으니 하나의 예술작품이나 마찬가지이리라. 형님은 주변을 돌아보다 정원으로 향하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불렀다.
“성룡아, 저 건물은 참으로 특이하게 생겼구나. 모두 다 기와집인데 저 움집만 초가로 되어 있다. 심지어 완만한 지붕에 판재를 올려놓았으니 어떠한 용도인지 알 길이 없구나.”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창고가 아닐까요?”
실은 알고 있는 건물이다. 세종대왕 시절에 만들어진 온실인 동절양채(冬節養菜)이자 세계 최초의 온실이다. 아마 겨울에도 꽃을 그리려는 안평대군의 욕심이 이런 건물을 도입한 계기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잠시 뒤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정원에 있는 화초는 이 시기의 한반도에 자생하지 않는 식물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현대의 것보다 훨씬 작고 슬슬 시들어가는 튤립도 있었으며, 로즈마리로 보이는 허브도 있었다. 하나같이 서양에서 들여온 식물인데 행랑아범이 은근슬쩍 다가와 헛기침을 하는 모습이 말하고 싶은 게 많아 보였다.
“이 기화요초(琪花瑤草)들은 제가 여태껏 본 적이 없습니다. 어디서 들여온 물산입니까?”
“모두 라마국(신성 로마제국)에서 들여온 화초이며 기르는 방식이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어서 어려움을 겪었지. 동절양채도 화초가 겨울을 보낼 용도로 만든 것이다.”
행랑아범의 입에서는 각종 화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자신이 수십 년 동안 무계정사에서 일하면서 달인이 되었다는 자랑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북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함이 거기 있느냐? 어서 안채(조선 초에는 남녀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로 들어오너라.”
형님과 나는 아버지를 따라 안채로 들어섰다. 회령군은 일흔 살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혈색이 좋은 노인이었는데 안경을 쓴 채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체격과 혈색은 다부졌지만 눈가에는 깊은 피로와 짜증이 드러나 있으니 아이러니한 모습이었다. 이지함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얼마 전에 파직당한 네가 찾아와서 처음에는 관직에 천거하기를 원하는 줄 알았다. 나에게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더냐.”
“제가 올바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면 주상전하께서도 저의 정성을 어여삐 여길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름 아니고 제 벗인 입암의 자제들이 이곳을 오가며 학식을 쌓기를 원합니다.”
이지함의 말을 들은 회령군은 구부정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안경을 거칠게 벗더니만 분노를 숨기지 않은 얼굴로 수염을 푸들푸들 떨며 말했다.
“주상께서 내가 종심(從心 - 70세)에 들어설 무렵부터 기력이 쇠함을 염려하여 부르지 아니하셨다. 가까스로 이 년 동안 주상께서 부르지 아니하였는데 아이들을 돌보면 기력이 남아 있음을 입증하지 않는가!”
이지함이 대놓고 면박을 당하자 아버지도 쭈뼛거리며 회령군의 눈치를 살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지만 기세가 대단해서 누구도 나설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분노는 허탈함이 섞인 푸념으로 돌변하였다.
“내가 황희 정승처럼 아흔이 되어서도 일하는 꼴을 보고 싶은가? 끝끝내 증조부님보다 늦게 졸(卒)하신 효령대군 어른처럼 백팔 세를 살아갈 몸이면 모르겠지만 그럴 몸도 아니지 않나!”
효령대군은 왜 108세까지 살아? 효령대군이 보디빌딩을 해서 수명을 연장했나? 말을 마친 회령군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이지함은 옛 스승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여댔다.
“스승님께서 언제나 편안하다 하시기에 제자가 이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안락함은 홀로 지낼 적에 제대로 느끼는 법이지. 안사람도 칠 년 전에 세상을 등지고 증손(曾孫)들도 장성할 시기이니 이제 내가 편해지는 일이 당연하지 않더냐.”
분노와 허탈함이 사라진 회령군은 별다른 욕구도 드러내지 않고 탈진한 환자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가 다시 억지로 쥐어짜듯 어색한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다들 말이라도 좀 하여 보거라. 무엇이 그렇게 궁금하더냐? 내가 왜 중영 자네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지 연유라도 말하여 보게. 세상에 명사(名士 - 이름난 선비)들이 그리 없던가?”
아버지도 이지함도 입을 다물고 어쩔 수 없이 눈만 굴리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족자에 걸려 있는 제법 익숙한 도면이 보여서 고개를 숙이고 물어보았다.
“대감님께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저 족자에 걸린 회화는 라마국연행기에서 본 적이 있는 회화입니다. 청이 있으니 여기서 학식을 쌓지 못하더라도 회화만큼은 직접 보고 싶습니다.”
“무어라 했느냐? 라마국연행기를 네가 읽었다 하였느냐?”
족자의 회화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콜로세움이다. 내가 읽은 인쇄본에는 대충 뭉뚱그려졌지만 안평대군이 그린 원본은 세필과 먹을 이용하여 콜로세움의 형태를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당연히 기반 지식은 대학생 시절 다녀온 로마 여행이었지만 회령군은 내가 오로지 인쇄본만 보고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는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나이가 열 살에 불과하거늘 정녕 완독하였단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의성향교에 계신 유생분이 읽어보라 권하셨고 마음속에 절절이 와닿는 서책이기에 여섯 달에 걸쳐 읽었습니다.”
“라마국연행기의 원본이면 몰라도 판본이면 회화를 동판에 못으로 새겨 억지로 인쇄하였는데 알아볼 방법이 있더냐. 네가 눈이 좋아 인장(印章)과 이름을 알아챈 것이 분명하구나.”
회령군은 둘둘 말린 족자들을 가져왔다. 그리고 하나를 벽에 걸어 펼치더니 글귀를 손바닥으로 가린 채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특유의 기둥 배열을 보니 확실히 알 수 있는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무엇이더냐.”
“백다록 대성당(베드로 대성당)이 아닙니까. 연행기에 나오길 조만간 새 건물로 고쳐 지을 것이라 하였는데 얼마나 웅장할지 모르겠습니다.”
회령군의 손이 치워지자 내 예상과 마찬가지로 베드로 대성당의 도면이었다.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옛 베드로 대성당의 도면을 직접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음 회화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둥근 성이니 답은 뻔하다.
“이것은 어느 건물이더냐?”
“산단잔로(산탄젤로) 성입니다.”
회령군이 안평대군의 유산을 대다수 물려받았는지 도면들이 끝을 모르고 튀어나왔다. 현대의 지식과 과거의 지식이 결합하였지만 유성룡의 뛰어난 두뇌는 대부분의 건물을 조합하여 정답을 도출해 냈다.
열일곱 개의 족자 가운데 열네 개는 적중했다. 회령군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족자를 정리하고 내 앞에 걸터앉아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네 나이가 열 살이라 하였는데 식견이 대단하구나. 여기 라마국연행기의 원본이다. 증조부님께서도 집필한 서책이니 부디 소중히 읽어라.”
“대감님이 저를 어여삐 보시니 열심히 읽어 많은 것을 배우겠습니다.”
당장에라도 족자를 풀어 회화를 보고 싶었지만 어른이 준 서적이니 인사를 올리고 품에 안았다. 그 모습을 본 회령군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마당을 서성거렸다.
“내가 열 살 무렵에 증조부님께서 라마국연행기의 원본을 건네주셨다. 책을 완독하니 증조부님께서는 일흔이 넘으셨음에도 크게 기뻐하시며 잔치를 열어 빈객들을 융숭히 대접하였지.”
내 행적이 과거 자신의 행적과 일치한 것이 기묘했는지 회령군은 흥미를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안마당을 거니는 회령군은 한탄하듯 말했다.
“본디 이곳은 수많은 문인을 초대하고 함께 서적을 논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지금은 쓸쓸하다 못해 황량할 지경이구나.”
행랑아범의 손길로 잘 정돈된 정원이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즐길 사람이 없었다. 이지함은 위로하는 말을 건네며 뒤를 쫓았다.
“스승님께서 그간 너무 많은 고초를 겪으셔서 심신이 무뎌지셨다 들었습니다.”
“심신이 무뎌졌다. 무뎌져도 너무 무뎌져서 즐거움도 모르고 살 지경이 되었는데 저 아이가 나에게 가르침을 준 격이구나.”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회령군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종친이니 일탈조차 즐기지 못하였으리라. 처음 모습을 돌이켜보니 주변에서 보았던 번아웃 증후군과 유사해 보였다. 하지만 회령군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빈객을 맞이할 것이며. 서고에 쌓인 서적도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다. 그리하여 무계정사를 증조부께서 만드실 당시로 되돌릴 것이다.”
그럼 우리의 배움은? 수많은 손님이 와서 학문을 논하는데 우리가 있을 자리는? 회령군은 한참 생각하다 이지함을 꾸짖듯이 말했다.
“하지만 경종대왕께서 정하신 법도를 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학문만 가르치지 않을 것이며 빈객들의 힘을 빌려 다양한 것을 가르칠 터이니 이는 명심하여라.”
안평대군의 증손자이면 세종대왕의 고손자이고, 세종 – 문종 – 세조 – 환종 – 경종으로 이어지는 변화한 왕실 족보에서 같은 항렬인 경종과 함께 많은 일을 했으리라. 이지함이 멍하니 있자 아버지가 나서서 물어보았다.
“제 자식들만 가르쳐서는 빈객들에게 무례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하니······.”
“중영 자네의 집 근처에 있는 연배에 맞는 아이들 모두를 가르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자고로 나무를 숨기려면 숲속에 숨겨야 하는 법이라네.”
기왕 가르칠 것이면 통 크게 사람을 불러 잔뜩 번성시키겠다는 말이다. 이지함은 감동받았는지 큰절을 올렸고 아버지도 웃어른에 대한 예절로 우리와 함께 절을 올렸다.
가장 좋은 것은 아버지의 집 근처에 있는 아이들이라 하면 이순신의 형제들도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합법적으로 이순신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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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정사에 다녀오고 한 달이 흘렀다. 1552년 음력 7월, 지독한 여름 더위에 이마에 땀이 맺혔으며 귓가에는 지루한 서적 읽는 소리와 늦여름의 매미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아버지는 다시 관료로 부임하셔서 새벽같이 궁궐로 나서셨고 나와 형은 같이 사부학당에 출석하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사부학당의 수준은 평범하였다.
“그리하여 후일에 맹자께서 왕을 뵙고 말씀하셨다. 왕의 읍을 다스리는······.”
예조에서 파견된 서른 무렵의 관료는 효령대군의 5대손이자 자는 공거(公擧), 이름은 이량인데 하였는데 내 기억에 남지 않은 인물이지만 학식이 깊은지 정성껏 가르치려는 태도가 엿보였다.
하지만 교육 기자재가 칠판과 분필이었고 우리도 지급받은 칠판과 분필을 사용한다. 덕분에 손에 분필가루가 묻어 새하얗게 변할 지경이었다. 판서(板書)를 마친 이량은 책을 한 장 넘기며 지시를 내렸다.
“다들 언해(諺解)한 내용을 암기하도록 흑판에 열 번 판서(板書)하여라.”
열다섯 살 아래의 아이들을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기관이니 교육의 질이 높은 편은 아니다. 어차피 조선시대의 학구열을 생각해 보면 양반집 자제들은 수업이 끝나고 다른 스승, 아니 선생님을 찾아 오후에도 배움을 이어가리라.
지루한 수업은 저 멀리서 들려온 관상감의 북소리로 끝났다. 한 시진(2시간)을 내리 배우고 15분을 쉬니 다들 기진맥진하여 밖으로 나왔다. 백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오니 장관이었지만 형님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나 보다.
“나는 외조부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식이 아니면 맹자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수십 명이 칠판 하나만 보고 배우니 답답하여 견딜 줄을 모르겠다.”
“저도 여러 번 배워야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서 열다섯이 되어 스승님을 모시고 많은 학식을 쌓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열다섯 이후에 입신체비를 하는 끔찍한 사태가 기다리고 있겠지. 내 미래의 스승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선생님이 계신다.
평소라면 주변 친구들과 어울려 돼지 오줌보를 차며 족구(足球)를 하거나 각종 놀이를 즐겼겠지만 오늘부터 닷새에 한 번씩 무계정사에서 배움을 얻기로 정한 날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우마차에 오르니 빼곡하게 들어찰 지경이었다.
개중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이순신의 큰형인 이희신이 자신과 닮은 아이를 데려온 것이다. 집들이한 날부터 친해진 덕분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혹시나 이 아이가 이순신이 아닐까?
“희신아! 옆에는 얼굴이 닮았는데 네 동생이야?”
“내 동생인 요신(堯臣)이야. 순신이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무계정사에는 다녀오지 못할 것 같았거든. 그래서 내년부터 다니기로 했어.”
이런 아쉬운 일이 있나. 생각해 보니 이순신은 1552년 현재 여덟 살이다. 가까스로 소학을 떼었을 나이인데 배움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일 년만 기다리면 될 일이니 염려할 일은 아니다.
이지함이 모는 소달구지를 타고 무계정사에 도착했는데 이전과 달리 집 앞의 대로가 어수선할 지경이었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잔뜩 들뜬 행랑아범이 계단을 달려 내려와 이지함을 맞이했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주상전하께서 사람을 보내 입신체비기구를 하사하셨습니다.”
또? 여기서 웬 입신체비야! 하지만 이지함은 당연한 일이라 여겼는지 껄껄 웃으면서 답했다.
“자고로 사람이 모이면 삼대운동을 겨루는 일은 예사가 아니겠는가. 종친과 연관된 일이니 혹여나 내수린꾼도 보내주셨는가 궁금하네.”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수양대군의 후예이신 경원군 대감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이들과 순흥군 대감이 잠시 뒤에 당도할 예정입니다.”
수양대군의 후손이 내수린을? 내수린이 레슬링과 같은 형식이면 가능은 한가? 회령군만 하여도 72세의 고령이고 같은 이 이후 항렬인 고손자는 종3품 부정(副正)이다. 즉 군이라는 군호를 받은 수양대군의 후손은 70대 노인임이 분명하다.
내가 볼 광경이 근육질의 70대 노인이 레슬링을 하는 몰골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군호를 받은 40대 중년이 레슬링을 하는 몰골인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직접 봐야 아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