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1장 12화 – 이 사람들이 왜 여기 있어 >
토정 이지함과 어울려 있던 두 사람도 고개를 돌렸는데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면모도 보더니 황당하다는 듯이 말씀하였다.
“금호(錦湖 - 임형수의 호)에 해준(海濬)까지? 자네들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각자 참상관(參上官 - 정6품 이상의 관료)들이 백주대낮에 술을 마시고 거리를 왜 활보하는지 알 길이 없군.”
이지함이 관직에 나섰다고? 하긴 을사사화 같은 대사건이 없었으며 나라 자체가 부강하게 돌아가니 출사(出仕)할 수도 있지. 아버지의 질문을 들은 이지함은 술에 취했지만 눈을 부라리며 답했다.
“내가 삼 년 전에 윤가놈의 상회 건물을 미주에 만들도록 허가를 내주었던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네! 덕분에 주상전하께서 감싸주실 수 없는 일이라 하시며 나를 파직하셨지!”
윤원형 사태가 불러온 파장으로 이지함이 파직당했다고? 조선시대에는 역적을 알게 모르게 도와도 최소 귀양이었으니 파직 정도면 온건한 처벌이리라. 하지만 옆에 있는 장난기 넘치는 얼굴의 사내는 이지함의 목을 휘어잡더니 아버지에게 말했다.
“토정은 그나마 덜 억울하다네! 나는 칠 년 전에 윤가놈이 상회를 타지에 설립할 적에 허가하였다고 파직을 당했네! 내가 사약을 받아도 금부도사와 한 잔을 나눌 생각이 있는데 윤가놈에게는 줄 것도 없지!”
염소수염을 한 덩치가 우람한 사내는 주량이 엄청난지 하나도 취하지 않은 표정으로 장난스럽게 농담을 건넸는데 금부도사와 사약을 나눠 먹는다 하다니?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일화인데 유성룡의 머리 덕분에 기억이 났다.
본래 역사에서 윤원형에게 대들었다가 역적으로 몰려 사약을 먹은 조선시대의 괴짜 임형수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덩치가 큰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에게 다가오자 형도 나도 바짝 얼어버렸다.
“둘 다 억울할 것 없네! 나는 사용이 끝난 군선을 양도할 적에 담당자였다고 파직당하지 않았나! 내가 가장 억울하지 않겠나! 얘들아! 내가 얼마나 억울하게 생겼느냐! 신농도인으로 태어난 이후 가장 억울한 일을 겪었다!”
조선시대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현대의 레슬러인 더 록과 흡사한 체격과 피부색의 사내가 도포 자락을 휘두르며 피를 토하듯 말하니 위압감이 엄청났다.
아무리 얼굴이 볕으로 타들어 가도, 아니, 얼굴 형태 자체가 다르니 분명 외국인이리라. 이 사람은 어디 사람이지? 아버지의 말을 듣자 알 수 있었다.
“자네가 억울하게 생겼다 했는가? 애꿎은 아이들에게 묻지 말고 자네 고향인 기천군도(幾千群島 - 솔로몬 제도)에 가서 억울하다는 소리를 하게! 섬이 오백 개는 있으니 오백 번은 탓해도 될 거라네.”
“생각해 보니 참으로 좋은 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고향을 돌아가야 하는데 오늘은 송별연(送別宴)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도 같이 마시고 죽어보세!”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곱슬머리와 갈색 피부 그리고 팔뚝과 가슴에 보이는 문신과 입신체비를 했다지만 어마어마한 덩치. 이 사람은 아마 본래 역사에서 폴리네시아인으로 불린 사람이리라.
또한 오백 개가 넘는 섬이라 하였는데 폴리네시아의 섬이 한두 개일까? 결국 신농도인은 폴리네시아인이다! 태평양에 사는 사람이 한양에서 관료를 하니 법도고 뭐고 없는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이마를 짚으시며 말했다.
“자네들 제발 체통을 지키게. 파직당하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하니 차라리 압구정에 가서 술이라도 한잔······.”
“압구정? 압구정까지 가면서 마시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여기! 주안상 하나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주시오!”
아버지도 힘은 장사겠지만 폴리네시아인의 어마어마한 체격과 근육은 아버지도 감당할 수 없었음이 분명하리라. 입구에 있던 시종은 깜짝 놀라서 아버지와 친구들을 안내하였다.
“술을 많이 자셨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여기 어른 넷에 아이 둘이다! 어서 모셔라!”
“자······ 잠시만 금호! 입암! 나는 더 이상 버틸 길이 없으니 술을 깨고 저녁에 다시 마시겠네. 얘들아! 조금 이르지만 식사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바가지를 긁힐 것을 예상했는지 안색이 창백해져서 친구들과 억지로 술을 마셨고 형과 내 앞에는 본래 역사에서 기인(奇人)으로 이름난 토정 이지함이 술에 취해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주모가 꽃게탕국을 가져왔다.
“여기 꽃게탕국 세 개 왔습니다. 나리는 고초를 썰어 넣으라 하셨지요?”
반으로 토막 난 두툼한 꽃게가 들어 있는 탕국을 들이켠 이지함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더니 뚝배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뭐가 저렇게 고통스러운 표정이지? 고추가 매운가?
“토정 선생님께서 이러하신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고초가 탕국을 얼마나 맵게 하였기에 이렇게 표정을 찡그리십니까?”
“고초가 매운 것도 있지만 내가 미주에 몇 년 살다 돌아와 보니 손바닥만 한 꽃게가 비루하게 보여서 이러한 것이다. 미주에는 머리통만 한 게가 지천에 널려 있으니 이 정도 게는 바다로 던져버렸지.”
형님도 나도 서로를 돌아보더니 서로의 머리 크기와 탕국 속의 꽃게를 가늠하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유성룡의 기억 속의 게는 기껏해야 게장을 만드는 참게가 전부였으니까. 이지함은 우리의 모습을 보았는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미주는 사람이 적은 덕분에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 머리통만 한 게만 있겠느냐? 내가 미주에서 사 년을 일하였는데 그곳의 풍속에 길들여지니 도성의 먹거리도 비루하게 보여 어쩔 수 없구나.”
“미주에서 일하셨다 하셨습니까? 정녕 한 달 보름을 내내 배를 타고 나아가야 하는 고장입니까?”
“아주 머나먼 고장이다. 듣자 하니 이 땅에서 이만오천 리나 떨어진 고장이라 하였는데 그만큼 먼 곳을 재려면 이만오천 리가 넘는 명주실이 필요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명주실을 어서 구했는지 모르겠구나.”
이지함에 걸맞은 농담이었지만 의외로 뼈 있는 답이어서 놀라웠다. 조선이 미국까지의 길이를 잴 만큼 천문이나 측량이 발달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이지함은 내 얼굴을 보더니만 생각을 알아차리고 바로 본론을 시작하였다.
“성룡이라 하였느냐? 네가 미주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이 빛나는 것이 관심이 아주 많은 모양이구나. 혹여나 물어볼 것이 미주에 관한 이야기더냐?”
“옳은 말씀이십니다. 미주는 어떠한 고장입니까? 대체 어떠한 고장이기에 윤가놈이 악행을 저지를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혹여나 강가에 금이 넘치는 부유한 고장입니까?”
“강가에 금이 넘친다 하였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일단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어떤 것을 물어보고 싶은 것이냐.”
“미주에 아국 사람들이 살기 시작할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조선에서는 미국 개척을 어떻게 진행하였을까. 대서양과 비교할 수 없이 머나먼 태평양을 통한 개척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지함은 기억을 더듬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미주의 개척은 신유년(辛酉年 - 1502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중미국에 경음당 홍윤성 대감이 발을 들인 이후 이십 년 가까이 흐른 뒤의 일이지. 당시에는 천오백 석을 운반할 수 있는 함선(배수량 약 240톤급) 함선으로 사람이 움직였다.”
“하지만 사십오일 동안 항해하면 물이 모자라고 식량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러하니 신농도인들이 거주하는 섬을 따라 징검다리 건너듯 중미국에 사람을 모아둔 다음 단번에 미주로 많은 이주민과 물자를 보냈다. 처음 상륙한 선단은 열두 척에 병졸과 농민을 포함하여 육백여 명에 달하였지.”
조선에서도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나 보다. 말이 육백 명이지 필요한 화물과 인원을 운송하는데 연 단위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였으리라. 이지함은 어느새 품에서 연필을 꺼내서 목판에 간단한 그림을 그렸다.
“처음 정착한 곳은 거대한 만(灣)의 한가운데였다. 주변에는 미주인 가운데 처음으로 접촉한 호파(浩派 - 후파 족)라는 이들과 마이두(麻理竇 - 마이두족)라는 이들이 있었지. 말은 통하지 않아도 튼튼한 움집을 짓고 가죽옷을 입은 이들이었다.”
“일전에 들은 바가 있습니다. 대양도 사람들이 옛적에 그렇게 살았다 하더군요.”
“그래, 대양도와 풍속이 유사하나 난폭한 성정이 없이 삼베 한 필만 받아도 숲을 내어주니 첫 정착민은 몇 년 동안 논밭을 만들고 이들에게 여러 물산을 나누며 편히 지냈지.”
이지함이 그린 지도는 아무리 봐도 샌프란시스코 일대이다. 남북으로 거대한 만이 있는 미국 서해안의 지형은 여기 하나 외에는 없을 것이다. 형도 나도 이지함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자 이지함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미주는 정말 좋은 고장이었다. 미주인들은 숲을 벌채하여 건물을 만들고 옥토를 개간하여 농지를 만드는 일을 좋게 보지 않았지만 여기서 옷감을 만들 수 있다 하며 선물을 주니 자신들의 땅을 내어주기에 이르렀지.”
“토정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요순(堯舜)시대의 풍속이 살아 있는 고장인 것 같습니다.”
“요순이라? 그래 처음에 당도한 유 대감(유순정 - 柳順汀)은 고장의 이름을 요주(遼州 - 먼 고장)이자 요순의 요주라 하였지만 이는 훗날이 되자 금주로 변하게 되었다.”
미국의 초기 개척기를 보는 것 같았다. 유리구슬에 맨해튼 섬을 구매했다는 이야기나 양복 수십 벌에 농장으로 쓰일 초원을 구매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이지함은 캘리포니아에 있을 당시를 떠올렸는지 그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방에 물산이 넘쳐나고 강가에서 사금을 캐내며. 사람이 없이 땅이 넓으니 한낱 농부들도 소주를 마시고 노비들도 매일 고기를 먹을 지경이었다. 모두 머나먼 고장이지만 즐겁게 살게 되었다.”
“그러하면 사람들이 수없이 찾아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좋은 세월도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당시의 요주가 개척되고 십 년이 흐르자 비극이 시작되었지, 두창이 일대에 퍼진 것이다.”
조선인이 아무리 우호적으로 접근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배려한다 하여도 신대륙의 빈약한 면역체계는 구대륙의 전염병에 취약하니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비누를 사용하는 풍습이 정착되어 전염을 최대한 막아낸 것이다.
비위생적인 서양 선원들은 전염병 덩어리나 마찬가지였고 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데려간 콘키스타도르는 전염병을 무기로 휘두르며 아메리카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지함은 한숨을 쉬고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두창이 처음 퍼졌을 때 미주에 이주한 우리 백성들도 많이 죽었다. 당시 이주한 이들이 칠천 명에 달했는데 예순 명이 죽을 지경이었지.”
나는 몰라도 형은 천연두에 걸렸다 살아남은 전적이 있다. 당시의 기억이 생생했는지 형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매일 손과 얼굴을 석감으로 닦으며 보름에 세 번은 몸을 석감으로 씻지 않습니까. 또한 두창에 배에서 퍼졌다면 애초에 미주에 당도하지도 못할 것이 아닙니까.”
“아국 사람들이 중미국에 머물다 금주로 향하는 사이에 두창에 걸린 이들이 섞인 것이다. 하지만 이주한 백성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창에 약한 체질이 대다수인 미주인들이 문제였지.”
면역체계의 빈약함을 체질이라 설명한다고? 하긴 천연두는 바이러스니까 현대에 와서야 실체를 확인할 수 있고 이 시기에는 실체를 잡을 수 없으리라. 이지함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
“내가 알기로 아국의 사람들은 두창을 앓으면 이 할 가까이 죽고, 북인(여진족)과 신농도인은 오 할 가까이 죽는다 하였다. 하지만 미주인은 팔 할이 죽어나가니 끔찍한 일이 아니겠느냐.”
“당시에 미주에 파견된 관리들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국 사람들의 질병을 다스리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약재를 챙겨 미주인들을 치료하였으며 의원들 가운데 다수가 두창에 걸려 명을 달리하였다더구나. 하지만 필사적으로 나서도 미주인 삼천여 명이 죽고 말았다.”
삼천 명이면 피해가 없다시피 하다. 본래 미국 개척자들이 전염병을 퍼뜨렸다 하면 만 단위는 순식간에 죽어나가고 아예 부족 자체가 소멸한 사례가 넘쳐났으니까.
조선에서 시작된 천연두, 정확히는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멕시코를 통해 다시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전염된 천연두치고는 사람이 많이 죽지 않았다.
아마 조선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 아메리카 원주민을 치료한 덕분이겠지. 형님은 이지함의 설명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했다.
“그러하면 미주인들이 아국 사람들이 고의로 역병을 퍼뜨렸다 여겼을 것입니다.”
“네 말 대로 미주인들이 마을을 공격했다. 당시 금주에는 훈련원에 속하는 정병을 많이 보냈기에 미주인들은 일방적으로 아국을 공격함에도 소득이 없고 오히려 다시 아국 사람들과 싸우다 병에 걸려 쓰러지는 이들이 생겨났다.”
본래 역사에서 미국을 개척한 콘키스타도르였다면 공격을 당한 즉시 모든 부족을 쓸어버릴 기세로 역공에 나섰을 것이다. 그나마 이성적인 판단을 한 조선인들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