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51화 (251/573)

< 2부 1장 8화 – 아버지가 오셨다 >

외할아버지는 유생들 사이를 파고들어서 목소리를 높이셨다. 봄이 되면 사방의 길이 통하며 상인들이 오간다 하였지만 향교에 소식이 전해졌다면 아직 백성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양반가에 알음알음 전해지는 소식이 분명하다.

“지금 무슨 일인가. 대체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으니 누가 상세히 설명이라도 해보게.”

“이틀 전에 소식이 전해져 선생님께도 알리려 하였습니다. 서원상회를 만들어 미주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던 윤원형이 형언할 수 없는 패악을 일삼다 적발되었다 합니다.”

“형언할 수 없는 패악이라니. 혹여나 미주인을 살해하였단 말인가?”

선비들 모두가 외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고 형과 나의 눈치도 살피더니만 분통을 참으시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가 나왔다.

“미주인은 두창(痘瘡 - 천연두)을 비롯한 돌림병에 취약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닙니까. 윤가 놈은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고 악용하였습니다.”

“설마 두창을 고의로 퍼뜨렸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미주인이 살던 고을에서 사금(砂金)이 소출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홍역과 두창에 걸린 이의 고름을 묻힌 무명과 비단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이런 흉악한 족속을 보았나! 본디 미주인들이 가죽을 팔면 무명과 비단으로 값을 치르는 일이 상례이며! 광물을 캘 적에는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충실히 조사한 후에 시행하는 일이거늘 고작 사금에 눈이 멀어 역병을 퍼뜨려!”

외할아버지가 분통을 터뜨렸지만 나도 화가 올라왔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쫓아내기 위해 질병을 퍼뜨린 행각은 본래 역사에서 미국을 개척하였던 이들이 자행하던 짓이다. 외할아버지는 뒷목을 잡으시더니 다시 고함을 치셨다.

“아무리 상인들이 돈에 눈이 멀었다 한들 역병을 퍼뜨리다니! 도대체 인두겁을 쓴 자가 할 짓이던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역병을 퍼뜨리고 사금을 캐는 짓은 미친 짓으로 여겨지겠지만 본래 영국 개척민들이 뻔뻔하게 했던 짓거리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천연두로 쫓아내고 개척지라 말한 국가 단위의 수작질이다.

반응을 보니 조선에서는 절대 용인할 수 없는 흉악한 행위인 것이 분명하였으며 아메리카 원주민을 조선 사람은 아니더라도 같은 사람으로 대접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젊은 선비는 분통을 터뜨리며 답했다.

“주변의 미주인들이 촌락에 역병이 퍼졌다는 소식을 듣고 도주하면 사람을 보내 마음대로 사금을 캐내었습니다. 하지만 두창이 두 번이나 발생하자 수상히 여긴 명보(明甫 - 실제 암행어사였던 박공량의 호)라는 어사가 진상을 파악하였다 합니다.”

“주상전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시는가.”

“이미 주상전하께서 동고(東皐 - 이준경의 호) 대감을 판의금부사로 임명하여 의금부(義禁府)의 관원을 끌고 상세히 조사하신다 하였습니다.”

이미 조정에 보고가 들어갔으니 끝난 일이라 여겼지만. 하지만 유생들이 격분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는데 젊은 선비가 갑자기 단상 대신 의자 위에 올라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성을 냈다.

“윤가놈이 악행을 저질렀으니 이는 미주 관찰사 홍지상이 뒷배를 서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찌하여 홍지상의 죄악은 성토하지 않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홍 대감의 호가 아닌 존함(尊銜)을 함부로 부르다니! 자네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게나. 중미국의 악습을 끊어낸 경음당(홍윤성의 호) 대감의 손자가 아니겠는가.”

“예의를 지킴은 무고함을 입증한 이후에 행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탐광자를 보내건 개천에서 사금을 캐건 모든 일은 관찰사의 허가 하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까!”

젊은 선비가 격정을 내니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 동조하였다. 그래 관리직인 관찰사가 침묵하였다면 뇌물을 먹였거나 윤원형이 교묘하게 상황을 속인 것이다. 어느 쪽이건 관찰사인 홍지상이라는 자에게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조선 유생들의 특기인 ‘전하! 아니 되옵니다!’ 하는 상소가 시작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변한 역사의 상소는 내 상식을 뛰어넘었다. 붓을 놀려 상소문을 작성하지 않고 즉각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다들 무얼 하고 있나! 어서 도성으로 올라갈 채비를 갖추지 않고! 평소에 사용하던 대역기 무게의 도끼를 서둘러 지참하도록 함세!”

“그러하면 지력(力)상소를 행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지력상소라는 말에 외할아버지의 얼굴이 창백해지셨고 형님도 궁금했는지 여쭈어보았다. 대체 상소에 력(力)자가 들어가는지 이유가 뭘까? 하지만 정말로 힘을 쓰는 상소라서 지력상소였다.

“외조부님, 지력상소가 대체 무엇입니까?”

“지력상소는 지부상소보다 더욱 무서운 상소이니라. 지력상소는 대역기만큼 무거운 도끼를 패용하여 궁궐 앞에서 거대한 도끼로 입신체비를 행한다.”

“그러하면 좋은 일이 아닙니까?”

“휴식도 없이 무게중심도 맞지 않는 도끼로 입신체비를 행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 근손실은 물론이요 이틀만 지나도 척추가 틀어지며 닷새가 지나면 폐인이 되는 일이 빗발친다. 참으로 흉흉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근손실과 근육파열을 미끼로 임금이 나서게 하는 문화가 더욱 흉흉하지 않은가. 유생들이 궁궐 앞에 모여 거대한 도끼로 보디빌딩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이 시대에 관료생활을 하려면 삼대 운동 400, 아니, 무게 단위가 다르니 700근이 기본 아닐까.

향교의 젊은 유생들은 삽시간에 짐을 챙겨 한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쉰이 넘은 노인들만 남은 향교가 텅텅 비어 있으니 외할아버지는 터덜터덜 걸어 의자에 앉으면서 말씀하셨다.

“유생으로서 의를 행함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나저나 이번 일로 너희 아비의 임기가 짧아질 것 같아서 차라리 다행이구나.”

임기가 짧아질 것 같다고? 하긴 한 관료체계에서 허점이 드러나면 다른 관료를 일제 소집해 점검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니 일어날 수 있지만 차라리 다행이라고? 외할아버지는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운룡아, 고직사에 들러서 냉수라도 한 잔 얻어오려무나. 사특한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가 어지럽고 목이 타는구나.”

“알겠습니다!”

형님이 고직사로 뛰어가니 외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셨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씀하셨다.

“성룡아. 네 재능이 대단한 일은 알고 있었지만 네가 라마국연행기를 거침없이 읽으니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구나.”

“아닙니다. 외조부님께서는 저를 가르치실 적에 언제나 훌륭한 가르침을 내려주셨습니다.”

“라마국연행기에 쓰인 어휘는 입신체비서보다는 못하여도 사서삼경을 능숙히 읽어야 해석할 수 있는 서적이다. 지금껏 네 형의 배움을 넘어서지 않으려고 이미 익혔던 내용을 반복하던 것이 아니더냐.”

외할아버지의 눈빛을 보니 변명할 수 없었다. 내가 빙의할 무렵의 유성룡은 사서삼경을 완벽히 익혔으나 형을 단숨에 앞지를 수 없어서 반복학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손 배움에는 지름길이 없다 여겼습니다.”

“지름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네가 도성에 올라가 더욱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면 너의 재능을 마음대로 뽐낼 수 있었거늘 이런 시골에서 부족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구나.”

숨겨온 사실을 들키니 할 말이 없었다. 어느새 형님이 물을 한 바가지 떠서 외할아버지에게 드렸다. 냉수를 들이켜고 한숨을 내쉰 외할아버지는 우리 둘을 보며 말씀하셨다.

“본래 너희 아비는 올해 동지에 임기가 끝난다. 하지만 윤가놈의 악행으로 지방 수령들에 대한 고과(考課 - 근무를 보고함)를 일제히 실시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하니 아마 한가위 이전에 도성으로 올라올 것이다.”

“하오나 부친께서는 송포군을 다스리심에 사심이 없으시고 언제나 백성들을 생각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나도 성품을 알고 있으니 헛된 일을 저질러 죄를 받지 않고 오히려 상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하니 나와 같이 지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나.”

솔직하게 말해 내가 알고 있는 조선이면 윤원형 일당과 홍지상에 대한 처벌을 내리고 나머지는 유야무야 덮어둘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역사가 변한 덕분에 어마어마한 행정력을 자랑하는 조선이니 모를 일이다. 외할아버지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몰랐지만 얼마 뒤에 진상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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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5월 단오가 다가오자 집안은 물론이고 온 동네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모내기 이후 약간의 휴식기이며 보리 수확이 끝나 보릿고개가 완전히 지나갔음을 알리는 명절이 단오이다. 현대에는 의미가 없어서 쇠락하였지만 이 시대에는 의미가 깊은 명절이다.

물론 어린아이들에게는 놀 거리가 하나 더 생겼으니 좋았다. 오늘도 실컷 비석치기를 하며 몸을 놀리고 쉬니 인부들이 은근슬쩍 모여서 나무로 무대 같은 것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런 일에는 호기심이 생기니 슬쩍 다가가 물어보았다.

“실례지만 지금 만드는 것이 무얼 행하려 만드는 것입니까?”

“저쪽에 있는 기둥은 그네뛰기를 하러 만드는 것이고 이건 내수린(耐守躪 - 인내하고 지키며 짓밟다)을 위한 무대이다. 사촌에서는 칠 년 만에 내수린을 행하게 되니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구나.”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운동이다. 내수린? 가만히 보니 현대의 프로레슬링과 비슷한 무대를 만들기는 하였다. 튼튼한 통나무를 바깥에 세우고 바닥에는 대나무와 버드나무를 깔아 어느 정도의 탄성을 보완하니까.

그럼 내수린이 내가 아는 레슬링이 아닐까. 보디빌더이자 빙의자인 수양대군이 레슬링도 조선에 퍼뜨린 것인가? 끔찍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집에서 일하던 머슴이 뛰어오며 외쳤다.

“성룡아! 너희 아버지께서 오셨다!”

“아버지께서 오시다니요!”

유성룡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 유중영이 난데없이 외가에 들른 것이다. 예전에 외할아버지께서 임기가 짧아질 것 같다 하셨지만 정말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머슴과 함께 서둘러 집에 돌아오니 집에는 없던 준마와 짐을 잔뜩 담은 함(函)이 있었다.

“형님! 아버지께서 돌아오셨습니까?”

“이미 집 안에 계신다. 동무들과 함께 노느라 너도나도 정신이 팔렸구나.”

문으로 들어가니 마당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껴안고 말없이 해후(邂逅)를 나누고 계셨다. 아버지가 돌아서시니 형님이 먼저 나서 크게 절을 올렸고 나도 절을 올렸다. 긴 여행길에 지치셨는지 유중영, 아니, 이 시대의 나의 아버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오셨다.

“그간 외가에서 지내느라 고단하였겠구나. 임기가 여섯 달이나 일찍 끝났으니 모두 주상전하의 은혜가 아니겠느냐. 장인어른께서는 어디 계시더냐.”

“사위 왔는가? 나야 서적을 고치고 있었다네.”

“장인어른을 뵙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마당에 나오시자 아버지가 큰절을 올리시는데 밖에서 얼마나 일하셨는지 손과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더군다나 체격 또한 향교에서 흔히 보았던 유생들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으니 입신체비를 꾸준히 하신 것이 분명하리라.

곧이어 집안 식구들과의 인사가 끝나고 함을 가져오신 아버지는 하나씩 선물을 전해주셨다. 우리 형제를 위한 선물은 향낭(香囊)이었는데 다른 진귀한 선물이 있는지 함의 가장 아래에서 나무상자를 꺼내며 말씀하셨다.

“장인어른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남여송(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들여온 해파극(海巴戟 - 노니 열매) 입니다. 백호풍(통풍)에 좋다 하여 조금 구해 보았습니다.”

“남여송에서 들여왔다 하였는가? 그곳은 파리국(巴利國 - 브루나이의 음차) 해적들이 들끓어 소란이라 하였는데 참으로 힘들게 구했겠군. 이미 칠순이 넘은 내가 무엇을 하라고 이런 귀한 물건을 가져왔는가?”

“해파극은 백호풍은 물론이고 관절에 효험이 좋은 약재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몸을 보하는 데 쓰시면 좋을 것입니다.”

해파극이 뭔지 가만히 지켜봤는데 현대에서 본 적이 있는 물건이다. 아내가 내 몸을 걱정해서 아침마다 차로 만들어 먹였던 노니라는 녀석이다. 동남아시아 작물인데 이걸 수입한다고?

외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물을 가져오셔서 말린 노니를 넣었다.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진귀한 작물이라 여기고 계셨는지 그 지독한 맛의 노니차를 들이켜시고 말씀하셨다.

“젊을 적에 백호풍에 시달렸을 때 나를 어여삐 여긴 스승님께서 해파극을 구해다 탕약에 넣으셨지. 하지만 해파극도 백호풍을 완화시킬 뿐이지 치유하지는 못하였어. 스승님이 생각나서 눈물이 스며 나올 지경이네.”

“장인어른께서 제 아이들을 돌봐주셨는데 이렇게 미진한 효를 행하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송구할 것은 따로 있지 않은가? 운룡이와 성룡이의 자질이 남다르고 조숙하여 내가 가르치기 힘들 정도이니 그것이 송구하겠지. 그러니 좋은 스승을 구하도록 하게.”

아버지는 우리를 돌아보면서 웃음을 감추느라 애쓰셨다. 내 재능이야 할아버지가 감탄할 지경이고 형님도 부족한 수준은 아니다. 아버지는 기쁜 기색을 감추고 말을 이어갔다.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쳐주신 장인어른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행히도 주상전하께서 부족한 제 모습을 치적(治績)이라 여기시니 외조(外曹 - 예조가 분리된 십조 소속 기관)의 아문인 외사원(外事院 - 신설, 외교문서 관리)의 첨정(僉正)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자네는 외직으로 종4품 군수로 재직하였으니 실질적으로는 한 품계가 상승한 것이군. 하지만 조금 더 승진할 수 있지 않은가”

“외방 관원들이 줄줄이 불려와 고과를 평가하는 바람에 파직과 승진이 엇갈려 제대로 된 관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아마 내년이면 정4품의 관직에 오를 것입니다.”

형님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외할아버지의 입이 쩍 벌어지셨다. 아버지의 나이가 올해 38세이고 실질적인 정4품이면 승진을 거듭하여 정승은 힘들더라도 종1품 찬성(贊成)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관직 제도가 변했는지 외조는 또 어디고 외사원은 또 어디란 말인가. 그나마 첨정이라는 관직명을 보면 관직명까지 뜯어고친 것 같지는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차를 들이켜고 말씀하셨다.

“주상전하께서 명하신 시일이 얼마나 남았는가?”

“명을 받기를 한 달간 여독을 풀고 가족을 보살피라 하셨습니다. 이미 내려오면서 여드레가 소모되었으니 한양으로 올라가면 열흘 정도는 더 쉴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바빠지겠군. 의성으로 내려올 적에 세간살이를 많이 가지고 왔으니 한양으로 올라가는 일도 고되겠네.”

난데없이 외가에서 한양으로 올라가게 생겼지만 형님은 한양이라는 말에 설렜는지 양손을 움켜쥐셨고 어머니도 기쁜 얼굴을 숨기지 않으셨다. 외할아버지는 일어나셔서 우리를 한 번씩 껴안아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디 가서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 것이나 항상 명심하여라. 세상은 넓고 한양 또한 더욱 넓다. 수없이 많은 인재가 있는 곳이니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말고 항시 남에게 모범을 보이며 철저히 수양하여라.”

외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고 감사하다 말했는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육로보다 해운이 우선시 될 정도로 산길이 많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한양까지 올라가는 것일까. 하지만 의문은 다음 날 아침 풀렸다.

“군수 나리 계십니까? 주문하신 대로 우마차 한 대와 당나귀 두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외가 입구에는 어느새 건장한 청년이 우마차와 당나귀 두 마리를 데려와서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람을 불렀는데 어떤 방식인지 모르겠다.

청년은 익숙한 손길로 머슴들이 꺼내는 세간 살림을 우마차에 척척 올려두고 어머니가 타라고 우마차 앞에 합판으로 만든 가마를 조립하더니 맨 앞에서 소의 고삐를 잡았다. 외할아버지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올렸다.

“외조부님! 그간 소손을 돌봐주셔서 은혜를 마음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나름 많은 정이 들었던 서촌마을을 떠나니 어린 시절 지냈던 시골집을 떠나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울적해졌다. 하지만 울적한 기분은 엉덩이와 허벅지에서 올라오는 아릿한 통증으로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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