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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50화 (250/573)

< 2부 1장 7화 – 풍속이 변했네(2) >

뒷간에서 뱃속의 모든 것을 게워내도 머리가 어지럽고 복통이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집안 식구 모두가 난리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했으나 외할아버지는 내 배를 어루만지시면서 차근차근 물어보셨다.

“성룡아, 네가 무얼 어떻게 하였기에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소상히 말해보아라. 나도 의서를 탐독한 일이 있으니 의원을 부르기 전에 알고 싶구나.”

“소손 오늘 하루 동안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새참으로 옥수수팥죽을 먹은 것이 특별한 일입니다.”

“옥수수는 잘 말려 보관하니 배가 아플 연유가 없다. 혹여나 다른 무언가를 섭생하였느냐.”

감자도 먹긴 했는데 감자 맛은 조금 아려서 그렇지 평상시 그대로였는데. 일단 나의 말로 누군가 피해를 입으면 안 되니까 적당히 둘러대며 말했다.

“감자를 먹었습니다. 단 하나를 먹었는데 맛이 고소하고 좋아서 문제가 없다 여겼습니다.”

“지금 감자를 먹었다 하였느냐! 감자는 수확한 직후에는 별미지만 수확하고 한 달만 지나도 소의 여물이 아니면 사용할 방도가 없게 된다!”

“소······ 소손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감자와 수확하고 한 달이 지난다는 말을 곱씹어보니 이 시대에는 냉장 시설이 없다. 감자를 캐서 광에 널어둘 것이며 햇빛을 받아 싹이 트고 껍질이 초록색으로 물들고 솔라닌이 생겼겠지.

현대의 회색 감자라면 먹기 전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감자는 보라색이다! 결국 나의 병명은 솔라닌 중독이다. 외할아버지는 한숨을 쉬면서 말씀하셨다.

“감자는 중미국(멕시코) 남쪽의 잉가(잉카)국의 토산물이었다. 경음당(鯨飮堂 - 홍윤성의 호) 대감 이후 중미국에 들린 무령군(武靈君 - 유자광의 군호) 대감이 높은 산의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라 하여 흉년을 대비하여 들여오셨지.”

경음당은 누구고 무령군은 누구란 말인가. 여하튼 조선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 이런저런 물건을 가져온 사실은 잘 알겠는데 다음 이야기가 문제이다.

“감자를 주식으로 삼는 잉가국 사람들은 수확한 감자를 짓이기고 얼려 십 년은 두고 먹을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북방을 제외한 고장에서는 이런 방식을 사용해도 보존할 수 없더구나.”

“결국 생감자를 보관하면 독이 생겨서 저처럼 앓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싹이 트지 않더라도 한 달이 지나면 감자에 독이 들어차 사고가 빈번하였다. 결국 감자는 빈 땅에 길러서 수확한 직후 새참 거리로 쓰이다가 보름이 지나면 여물에 섞이는 채소로 쓰인다.”

감자가 퍼지긴 퍼졌는데 북방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구황작물이 아니고 빈 땅을 놀리지 않으려고 대충 심어 대충 쓰는 작물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나마 소 사료로 쓰이는 이유는 독이 있는 감자라도 소에게 먹여서 이상이 없다는 발견을 한 덕분이겠지. 외할아버지는 읽던 의서를 덮어두고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어린 나이에는 쇠도 녹여 먹는데 감자를 먹을 수도 있지. 약을 쓸 정도의 증세가 아니니 치료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얘야! 가서 물을 한 말(약 6리터) 끓였다가 식혀 미지근하게 만들어 오너라.”

불안해하시던 어머니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눈을 부라리시며 물을 손수 끓여 오셨다. 현기증이 올라와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지만 잠시 뒤 내 앞에 세숫대야에 가득 담긴 물이 놓였다. 외할아버지는 손수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며 말씀하셨다.

“성룡아, 아무리 궁금한 일이 많아도 세상의 법도를 온전히 알기 전에는 함부로 행하면 아니 되느니라. 다들 염려하지 말거라, 성룡이가 감자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를 몸으로 체득할 것이다.”

몸으로 체득한다? 세숫대야에 가득 담긴 미지근한 물에 소금 여러 술을 넣더니 휘저은 할아버지는 온도를 가늠하시더니 내 눈을 보시고 설명하셨다.

“감자독은 백약이 무효하지만 소금물을 마셔 감자를 모조리 씻어내면 약을 쓰지 않아도 효험이 있다. 옅게 탄 소금물 한 말을 들이켜면 뱃속의 감자가 쓸려 내려가 다음 날이면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느니라.”

소금물을 잔뜩 마셔서 배출하자고? 말 그대로 내 위장 전체를 식염수로 채워서 인체의 신비를 경험한다는 말이지? 하지만 닷새 동안 복통에 시달린다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겠지. 외할아버지는 나무잔을 건네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네 몸은 장정보다 작으니 다섯 되를 마시면 될 것이다. 물이 식으면 배탈이 날 수 있으니 어서 들이켜라.”

“소······ 소손 다시는 아무 음식이나 주워 먹지 않겠습니다.”

소금물 반 말, 약 3리터를 쉴 새 없이 들이켰는데 물 중독이 일어나지 않게 대충 만든 식염수를 마셨으니 물은 위장을 흐르고 흘러내렸다. 이후에 일어난 참극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일이었다.

“그나저나 소금물을 마시라 했으면 생리식염수 개념도 안다는 소리인데! 아흐아으아악!”

오늘 일어난 일은 평생 잊지 않으리라! 형님이 닭을 개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혈을 기울여서 취미 삼아 감자 종자를 개량할 것이다! 내 평생 반드시 개량하고 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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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눈이 쌓인다. 덕분에 식단도 변했다. 채소라고 해야 말린 나물이나 시래기 그리고 고추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백김치가 전부였다. 고추? 어머니에게 여쭈어보니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고초(苦椒 - 고추의 어원, 쓴 산초라는 뜻)는 중미국에서 전래된 신초(辛草 - 매운 풀)가 분명하구나. 음식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간혹 주당(酒黨 - 술꾼)들이 약지보다 작은 고초 하나로 소주 한 병을 비운다 하였다.”

“그렇게 매운 것이 고초입니까?”

“산초의 몇 배는 매운 녀석이 고초이다. 보통 사람은 먹다가 속이 상하니 된장에 넣어 향을 우려내고 젓갈에 조금 넣어 젓갈이 상하지 않게 보하는 것이 전부이다.”

아마 원산지에서 갓 전래된 고추라 지독하게 매운 것이 분명했다. 이런 계절에는 맵고 칼칼한 찌개를 먹으면 좋은데 감자 다음 품종개량 대상으로 정했다. 관료가 되면 텃밭을 만들어서 계속 길러봐야겠다.

물론 눈이 오면 생활체육은 불가능해진다. 아무리 날랜 어린아이라 해도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이 쌓이면 대부분의 놀이는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하나의 놀이는 가능했다.

입김을 거세게 내뿜으며 눈덩이를 집어 던지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눈싸움을 즐기는 기분이 되었다. 간만에 모든 일을 잊고 눈을 신나게 집어 던졌지만 현대의 눈싸움을 상상한 내가 바보였다.

“성룡이가 혼자서 앞으로 나왔다! 마구 던져라!”

어느새 눈싸움은 열 명이 넘게 모인 아이들이 패를 나눠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쯤 되니 눈을 넉가래로 뭉쳐 눈으로 방어벽을 만들고 인원을 분배해 패싸움을 방불케 하는 싸움이 되었다.

앞으로 나서서 신나게 눈을 던진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누가 석전이 풍습인 조선시대 아니랄까 봐 눈덩이가 수십 발씩 쏟아졌다. 삽시간에 머리와 얼굴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본진으로 돌아왔다.

“악! 성룡아 너는 던지는 일이 서투니까 어서 방벽 뒤로 숨어라!”

“형님! 생각하여 보니 세 명이 모여 눈을 만들면 던지기 편하지 않겠습니까! 수진아! 영배야! 지금부터 우리 셋은 눈을 만든다. 내가 눈을 대충 뭉치면 수진이가 다듬어서 걷을 굳히고 영배가 단단하게 만들어줘.”

생산의 기본은 분업이었고 이건 눈덩이를 뭉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불현듯 떠오른 나폴레옹의 일화를 되새기며 셋이 정신없이 눈을 만들고 나머지가 던져댔다.

상대는 기세에 밀려 방벽 뒤에서 움직이지 못했고 오히려 눈이 남을 지경이었다. 상대보다 우리가 화력에서 앞서니 전황은 삽시간에 기울었다. 여기에 내가 쐐기를 박아야겠지.

“형님! 넉가래에 눈덩이를 담아서 던지면 적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규칙에는 손으로 뭉친 눈덩이보다 큰 것을 던지지 못한다 했었지 수십 개를 한 번에 던지지 못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형님이 기세등등하게 넉가래를 잡은 순간 적진에서는 거대한 눈 덩어리가 굴러왔다.

“이건 반칙 아니야?”

“눈덩이를 던지지 말라 했지 굴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애들 참으로 창의력 대장이네. 내 신장보다 거대한 눈 덩어리가 굴러와 진영을 무너뜨렸고 눈싸움은 우리의 패배로 끝났다. 이런 사소한 사건 사고를 제외하면 겨울의 생활도 매우 충실하게 보냈다.

아침이 되면 외할아버지에게 이미 익힐 대로 익힌 사서삼경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점심을 먹고 신나게 논 다음 저녁을 먹고 들어와 안평대군의 라마국연행기를 읽어나갔다. 자기 전에는 형님 몰래 나의 지식을 공책에 옮겨 적었고.

외할아버지도 라마국연행기는 처음 보신다며 내가 읽은 서적을 가져가서 탐독하셨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는지 몇 번 읽으시다 돌려주셨다. 그렇게 겨울도 끝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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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년 3월, 봄에서 늦봄이 넘어갈 무렵에 향교에서 빌려온 서적을 모조리 읽었다. 안평대군이 로마 일대만 다녀오지 않고 피렌체에도 다녀왔으며. 구단배라는 조선식 이름으로 적힌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를 조선으로 데려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인쇄술이 활성화되고 한글 보급도 활성화되었겠군. 구텐베르크 인쇄기에 한자는 전혀 맞지 않으니 정음이라 불리는 한글로 인쇄했을 것이 분명하니까.”

책은 읽을 만큼 읽었고 안평대군이 남긴 자료 원본을 보려는 욕망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본래 역사에서는 많이 소실된 안평대군의 자료는 후손의 손에 남아 있을 테니까. 외할아버지가 대문에서 나를 부르셨다.

“성룡아, 준비는 모두 되었느냐?”

“네 외조부님! 소손 책을 모두 준비하여 두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봄날을 맞이하여 읽은 서적을 반납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자 하셨다. 어차피 다녀와야 할 향교로 출발하니 모내기철인지 논에 들어찬 사람들을 보고 외할아버지가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만물이 생장하는 봄에는 하체를 단련하기 좋은 시기이지.”

만물이 생장하는 봄에 하체라니 그냥 보디빌딩 아니 입신체비는 사시사철 하면 좋은 거 아니야? 들판을 보니 외가에 속한 농지에서도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품앗이를 하는지 소작농과 농민들이 허리를 구부리며 모를 심어나갔다. 하지만 주변에 보이는 도포 자락은 뭐란 말인가? 외할아버지는 수염을 쓰다듬으시며 말을 이어나가셨다.

“모내기를 하며 수백 번 공좌(스쿼트)를 행하면 하체가 저절로 단련되기에 마련이지. 참으로 좋은 시기가 아니더냐?”

이 무슨 개······ 가 아니고 외할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저게 말이 되면 보디빌더들 모두가 모내기로 하체를 단련하려 농촌 일손 돕기에 나설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한마디 거들었다.

“모내기에 입신체비를 병행한다니. 그러하면 백성들 모두가 하체가 단련될 것입니다.”

“저 자세를 보거라. 다른 이들은 허리를 구부리지만 유생들은 공좌의 자세를 따라 하체를 움직이지 않느냐.”

이웃에 사는 김 진사, 나이 스물여덟의 대과 지망생이 모를 들고 한 걸음을 떼더니 정확한 스쿼트 자세로 몸을 숙여 모를 심고 벌떡 일어섰다. 저게 가능한지 궁금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길옆의 수차를 돌리는 이도 선비였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몰라도 가뭄으로 인해 낮아진 물골이 물을 대지 못해 수차를 설치하여 모내기가 한창인 논에 물을 대는데 전신의 힘을 동원하여 힘차게 수차를 밟아대고 있었다. 중년의 선비는 외할아버지를 알아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송은 선생님! 향교에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이제 가는 길이라네. 자네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수차를 돌리며 하체를 단련하고 있으니 참으로 보기 좋은 일이네.”

“그렇습니다. 백성들의 고충을 알아야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하니 이런 고생도 훗날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웃음을 숨기지 않는 외할아버지를 보면서 이 나라가 얼마나 입신체비에 미쳐 있는지 다시 알 수 있었다. 봄이 되면 하체 근육이 샘솟나? 그냥 하체 하고 싶은데 공부 안 하면 주변에서 눈치를 주니까 명분 삼아서 입신체비를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나는 입신체비를 필요한 만큼만 할 것이며 적당히 근육을 갖춘 몸이 되면 그만둔다. 이런 다짐을 하며 오늘도 땀 냄새가 가득할 거라 여긴 향교에 도착했지만 고성(高聲)만 들려올 뿐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당나귀에서 내려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어허. 본디 향교에서 입신체비를 거르는 날은 중니(공자)를 비롯한 사현(四賢 - 공자시기의 학자들)과 송대의 오현(五賢 - 송나라 시대의 유학자들)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날 외에는 없는데 이상한 일이로구나.”

바꿔 말하면 일 년에 열흘을 제외하면 모두 입신체비를 한다는 말이니까 심각한 일이 벌어졌나? 외할아버지를 따라 향교에 들어서니 선비들 모두가 명륜당 마당에 모여 목소리를 높여 떠들고 있었다.

“역적 윤가놈이 이끌던 서원(西原)상회에서 값싸게 사들여 패용하였던 내 귀걸이요. 미주인들의 피로 만들어진 금이라 하니 역겨운 물품이 아니겠소!”

“윤가놈의 일이 어디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일이겠소? 분명 뒷배가 있을 것이 아니겠소!”

윤가놈? 윤가놈이면 역적의 이름조차 부르기 아깝다 하여 성씨인 윤만 부르는 것이 분명하며 이 시대의 범죄자를 할 법한 윤 씨면 윤원형이 분명하다. 그런데 미주가 정확히 어디일까? 외할아버지의 소매를 잡고 여쭤보았다.

“외조부님. 미주가 대체 무슨 고장입니까?”

“미(迷)주는 대양도에서 동쪽으로 한 달 하고 보름을 내리 항해해야 도달하는 고장이다. 아국 사람들이 고을을 만들고 미주인(迷州人 - 아메리카 원주민)과 어우러져 산 일이 육십 년이 넘은 곳이지. 그나저나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구나.”

그래 뭐 멕시코에 다녀오고 잉카에도 다녀왔는데 북아메리카에 고을 만들어서 식민지는 아니고 거점 만들고 금 캘 수도 있지. 그런데 윤원형이 북아메리카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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