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1장 3화 – 내가 유성룡이라니! >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마당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평상시에 기어가다시피 회사에 출근하는 나였지만 어린아이의 몸의 활발함은 적응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서적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집에는 마방(馬房 - 마구간)을 두어 무관은 자신이 타고 다니는 말을 기르고 문관은 출장용 말 조금과 당나귀를 기른다 하였다.
외가는 재산이 많으니 당연히 당나귀를 여러 마리 기르고 있었다. 대문을 넘어 밖에 나오니 당나귀 세 마리가 안장이 얹혀 있었는데 외할아버지는 가장 작은 녀석의 고삐를 잡고 끌고 오시면서 말했다.
“알다시피 당나귀는 사람을 여럿 태울 수 없다. 운룡이는 당나귀를 탄 적이 있지만 아혁이는 없지 않느냐. 하지만 영리한 녀석으로 골랐으니 고삐를 잡고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이다.”
현대에서는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당나귀를 직접 탈 기회가 생겼다! 할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당나귀에 올라타니 녀석도 가벼운 내 몸을 올려서 신이 났지만 할아버지는 조금 울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예순만 되었어도 말을 타고 돌아다녔을 것인데. 늙고 쇠한 몸이 되어 당나귀를 타고 다니니 젊음이 그리워지는구나. 향교까지는 당나귀를 타고도 한 시진(2시간)이 걸릴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몸이 늙고 쇠했다고? 머릿속의 기억을 떠올리니 이 아이의 외삼촌도 건장한 준마를 타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며 집에 들른 일이 있었지. 그냥 외가 사람들이 무골(武骨) 기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당나귀는 고삐를 느슨하게 잡아도 영리한 녀석들인지 알아서 외할아버지의 꽁무니를 쫓아 따라다닌다. 등짐을 짊어진 농부가 외할아버지를 만나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송은 선생(先生 - 학문이나 기예가 뛰어난 이들의 존칭)님! 어인 일이십니까?”
“손자들과 같이 향교에 다녀오려 한다네.”
외할아버지가 명망이 높은 선비라 하셨지만 생각보다 뛰어난 분이신 것 같다. 내가, 정확히는 이 어린아이의 기억에 남은 길보다 훨씬 멀리 내려왔는데 큰 개천이 있었고 튼튼한 돌다리가 있었다.
[영귀교(詠歸橋)]
시를 지으며 돌아가는 다리라는 뜻인가? 조선시대에 주요 길목에만 설치되었던 홍예(虹蜺 - 석재 아치) 교량이 있는데 길이는 대충 30미터에 튼튼하기는 이를 데 없어서 진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외할아버지는 내 궁금증을 알아차렸는지 천천히 말씀하셨다.
“영귀교는 내가 어릴 적에 세워진 다리이다. 말년이 되어 은퇴를 결심한 백옥헌(白玉軒 - 이개의 호) 대감께서 은퇴하신 이후에도 꾸준히 전국팔도를 돌아다니시며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하신 분이시다.”
백옥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튼튼한 교각을 지방까지 세웠으니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여름 장마철에 현대 교량도 가끔 파손되는데 칠십 년 이상을 버틴 교량이 아닌가.
겉보기에 좋으라고 도로를 만들었으면 십 년도 지나지 않아 망가졌겠지. 이놈의 한반도는 겨울철의 혹한으로 동결심도가 깊어 도로 기초 자체가 붕괴해 버리니까. 다리를 건너 산길에 이르니 의외로 멀쩡한 오솔길이 나 있었다. 이건 어떻게 유지하지?
“외조부님. 소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장마가 질 적에 쓸려간 오솔길은 누가 메웁니까?”
“인근의 농민들이 얼마 전에 메웠다. 처음에 다리가 생기고 소로(小路)를 만들 적만 하여도 투정을 부리며 노역에 불평을 가지던 이들이었지만 삼십 년이 지나니 누구보다 먼저 나서 길을 관리하고 있구나.”
다리가 세워지고 어설픈 오솔길이 세워지니 생활이 변한 것이다. 어지간한 짐을 소달구지로 옮길 수 있게 되었으니 도로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고 백성들이 스스로 나선 것이지.
잠시 뒤. 가을임에도 푸르른 소나무 숲을 보시며 시조를 읊던 외할아버지에게 가장 결정적인 질문을 시작하였다.
“소손(小孫)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아국을 세우신 분은 태조대왕이라 알고 있지만 아국이 세워진 지 얼마나 걸렸는지 궁금합니다.”
“아국이 세워진 것은 백오십구 년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개성을 개경이라 칭하였으나 태조대왕께서 결단을 내리시어 한양으로 천도하였지.”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1392년에서 159년이 흘렀다면 지금은 1551년이다. 형의 이름으로 보건대 내 이름은 분명 유성룡일 것이며 조만간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나는 역사의 한복판에 서겠지.
잘만 하면 임진왜란 자체를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니 읍내에 도착하였는데 사람들의 면모가 내가 상상한 조선시대와 뭔가 다르다.
“대마도 토굴에서 삭힌 젓갈 사십시오! 겨울이 되기 전에 장만하시면 겨우 내내 드실 수 있습니다!”
“염장 명태 팝니다! 경원에서 염장한 명태입니다!”
대마도라니. 역사가 변해 세종대왕의 대마도 정벌 이후에 추가 정벌이 있었나? 나는 능청맞게 나무통에 담긴 젓갈을 가리키며 외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대마도 토굴에서 젓갈을 삭힌다니. 대마도는 어디입니까?”
“대마도는 문종대왕께서 상왕인 시절에 복속한 왜국의 옛 영토이다. 수십여 년 전에 왜국 출신 토관이 꾀를 짜내어 은을 캐던 토굴에서 젓갈을 담그니 젓갈로 으뜸가는 고장이 되었다.”
“소손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대마도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 것입니까?”
“듣자 하니 토질이 거칠어 메밀 약간을 제외하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하더구나.”
대마도가 조선에 복속하고 농사를 짓지 못하니 젓갈을 만들어 판다고? 그럼 지금 조선의 해양 물동량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조선은 내가 알던 조선이 아니다.
의성 촌구석까지 튼튼한 돌다리를 놓고. 외국의 물산을 수입하여 활용하는 조선이라니. 규모를 억지로 짐작하려 했지만 저 멀리 향교가 보였다. 외할아버지는 기쁜 마음에 목소리를 높여 말씀하셨다.
“드디어 향교에 도달하였구나. 의성향교는 태조대왕께서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봉안하며 백성들을 교화시키라 하여 창건한 장소이니라. 오 년 전에 중수하였으니 참으로 훌륭한 일이 아니겠느냐.”
당나귀 등에서 외할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말을 들었지만 향교는 현대에서 죽도록 다녀와 본 사람이다. 지방 문화재인 향교의 수리사업은 내가 일하던 문화재 업계의 수입원이었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하마비에 도달해서 당나귀 등에서 내렸다. 멀리서 보아도 이 층으로 구성된 누각이 보였으나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느껴졌다.
“땀 냄새?”
“그렇지, 향교는 본디 오찬을 먹기 이전에 입신체비를 행함이 근본이 아니겠느냐. 오전에는 입신체비를 행하는 유생들의 땀 내음이 물씬 풍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외할아버지가 말한 입신체비가 대체 무엇이기에 현대에서 몇 번 가보지 않은 헬스클럽과 같은 땀 냄새가 난단 말인가. 향교 안으로 들어가자 보인 광경은 내 상상을 넘어서도 한참을 넘어섰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군자를 찾는 유생들이 가득할 줄 알았던 의성향교 안마당에는 거대한 쇳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근육 덩어리들이 있었다. 개중 한 근육 아니 사람이 고개를 꾸벅 숙여 외할아버지께 인사를 올렸다.
“송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입신체비를 한창 하는 와중에 미안하네. 일전에 말한 대로 둘째 외손의 본명(本名)을 정하는 때가 되어서 당도하였는데 조금 이르게 온 것 같네. 계속 입신체비를 하게나.”
입신체비를 하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쇳덩이에 달라붙은 이들은 재차 몸을 놀렸다. 향교에서 들려야 할 경전을 읊는 소리 대신 조선시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역기에서 끽끽거리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먹물 냄새? 먹물 냄새는커녕 음력 시월의 찬바람 속에서 조금 두꺼운 티셔츠와 같은 상의와 칠 부 바지와 유사한 하의를 입은 이들의 땀 냄새가 진동했다. 이들은 전신이 땀에 절어 거친 숨을 내쉬며 짐승과 같이 몸을 놀리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마흔 살은 되어 보이는 어른이 스물 정도 된 젊은이의 몸을 툭툭 치며 자세를 바로잡게 만드니 복장만 조선시대지 현대의 헬스클럽을 방불케 하였다.
“공좌(스쿼트)의 자세가 틀어졌다! 잘못하면 요추가 손상을 입을 수 있으니 유념하라 하지 않았는가!”
“죄송합니다!”
무게로 보아서 70㎏은 될 법한 거대한 역기를 짊어진 유생이 사력을 다해 몸을 놀렸다. 땀에 전 상의 아래로 뚜렷한 상체근육과 바지를 찢을 듯이 부풀어 오른 대퇴근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스쿼트만 하겠는가?
“부와도약(버피) 20회 실시!”
“하나! 두울! 세엣! 네엣! 하나!”
흔히 PT체조 4번이라 불리는 운동을 각을 맞춰서 하는데 부와도약의 뜻은 엎드린 개구리가 뛰어오른다는 뜻이 분명하다. 여기가 향교인지 헬스클럽인지 분간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의 몸에 근육이 알차게 들어 있다.
외할아버지는 유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운 눈빛을 보이고 계셨다. 외할아버지도 젊은 시절에 운동을 하셨는데 연세가 많아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내 추측이 맞는지 외할아버지는 작은 역기를 들어 보이며 말씀하셨다.
“이 할아비도 예전에는 삼대 운동 칠백 근(약 430㎏)에 달하였다. 그놈의 백호풍(白虎風 - 통풍)만 아니었어도 지금도 역기를 들고 입신체비를 행할 것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구나.”
백호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관절염이나 보디빌딩의 부작용으로 생겨난 질병이 분명한 것 같지만 삼대 운동으로 400 이상이라고? 영직이가 분명 이런 말을 했었지.
‘삼대 운동 합 400 이상의 몸을 이 년이면 완성한다고? 본래 체육을 열심히 하던 사람이나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면 몰라도 보통 사람은 삼 년은 걸린다. 평범한 사람이 보디빌더의 몸을 갖추려면 오 년은 걸려. 나처럼 되려면 십 년은 걸리지.’
조선시대이니 십 년이 아니고 십오 년이 될 수도 있다. 부상 회복도 더딜 것이며 기본적인 기술력이 부족해서 각종 기구를 활용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기구도 있다!
“직흉강(랫 풀 다운)은 체중으로 억지로 내렸다가는 손목에 무리가 간다! 상체를 뒤로 넘기지 말고 등과 어깨의 힘으로 정자세를 찾아 힘을 전달하거라!”
역기 덩어리와 연결된 삼베 끈을 잡아당기는 젊은 유생이라니. 정신이 멍해질 지경이었지만 조선시대의 기술로 헬스 기구를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 한참을 지켜보니 운동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시월이어도 입신체비를 마친 이후 세신(洗身)은 거르지 말게! 김 서방은 물을 준비하였는가?”
“염려하지 마십시오. 물을 섞어 미지근하게 하여 나무통에 담아 두었으니 세신하기에 충분한 양을 준비했습니다.”
운동 다음엔 샤워라니. 고직사(향교 소속 하인들이 머무는 장소) 옆에는 목판으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세신장, 아마 샤워장일 건물이 있었고 유생들은 다시 근육을 꿈틀거리며 나무통을 쉴 새 없이 옮겨 물을 채웠다.
사람의 힘이 많이 들어가고 투박하지만 현대의 보디빌더들과 똑같은 방식이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 외할아버지의 소매를 잡고 물어보았다.
“저것이 입신체비입니까?”
“그렇다. 수양대군께서 창안한 학문이며 효심을 몸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올바른 몸을 만들고자 하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유생들은 입신체비를 익힘을 당연히 여긴다.”
농담이겠지. 설마 외할아버지가 나를 입신체비의 길에 빠뜨리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여겼지만 말이 안 된다. 세상에 자기 손자를 보디빌더로 만들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대체 어떤 흉측한 마음을 먹은 빙의자가 조선을 보디빌더의 나라로 만들었단 말인가!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자 형님은 내 등을 팡팡 치면서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쇠붙이를 들어 무얼 하는지 궁금하더냐? 듣자 하니 자질이 부족한 이도 입신체비와 함께 서책을 외우면 술술 외운다 하였고. 출세하여도 관료로 나아가도 고된 정무에도 몸이 축나지 않게 보한다 하였다.”
마음으로는 ‘그게 무슨 미친 짓입니까! 학문과 근육이 비례하는 법도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습니까!’라며 발악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저 유생들이 나를 근육으로 박살 낼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싱글거리면서 형님의 말에 답했다.
“그렇게 좋은 학문이면 저도 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역시 내 동생이구나. 나이가 차면 같이 입신체비와 학문을 같이 가르쳐주실 훌륭한 스승을 찾자꾸나.”
어디까지나 대충, 적당히 그리고 그럴싸하게 외형만 만들 정도로 하면 충분하겠지. 잠시 기다리니 몸을 씻은 선비들이 의복을 갖추고 도열하였다. 아무래도 외할아버지는 이 향교에서 학문을 익힌 사람 중에 손꼽히는 분인 것 같았다.
“의복을 정돈하였으니 다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송은 선생님께서 외손자의 본명을 짓기로 정하셨으니 이를 명륜당에서 공표할 것입니다.”
“참으로 고맙네. 내 외손이 아비가 직무에 임하느라 외방에서 돌아오지 못하던 와중에 이렇게 배려하다니 잘된 일일세.”
“아닙니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빼어난 학자인 유재 어르신의 손자이니 향교의 유안류(儒案類 - 향교에 속하는 유생의 이름을 기입한 책)에 적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평소에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에서 내 이름이 정해졌다. 예상과 마찬가지로 나의 이름은 유성룡(柳成龍)이며 본래 역사에서 전시 재상이자 정치인으로 역사의 위인이었다.
내가 유성룡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는 내 노력에 달린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입신체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보디빌딩은 가급적 하지 않겠다! 아니, 가급적 안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