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1장 2화 – 나는 누구인가(2) >
옆에 펼쳐둔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中庸)을 펼쳤는데 더듬거리며 읽는 수준도 아니고 다 외우지 못했을 뿐 술술 읽어 나가니까 어처구니가 없다. 형과 외할아버지가 듣고 있어서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조금만 배우면 어지간한 대학 교수······ 그냥 천재의 몸에 들어왔는데?”
기분은 좋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경상도 의성 출신에 외가에서 살면서 둘째로 태어난 사람에 어마어마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면 딱 하나밖에 없지 않나?
“서애 유성룡······.”
내가 과거로 떨어지기 직전에 결정된 출장 장소는 병산서원이었다. 당연히 출장 나가기 전 기초 자료 조사는 필수이니 서원의 주인공인 유성룡의 신상명세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조사했었고.
어린 시절부터 사서삼경을 술술 외울 정도로 엄청난 기억력과 지능을 소유한 유씨 가문 자제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복잡한 마음을 숨기며 책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니 외할아버지와 형의 공부도 끝난 모양이었다.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으니 서책을 덮어두어라. 생각하여보니 내일인 시월 초하루가 아혁이의 아홉 번째 생일이 아니더냐.”
이 아이의 생일이 내일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내일은 아버지가 휴가를 내고 잠시 오시는 날이라는 기억이 있었다. 나는 외가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관직에 계셔서 각지로 돌아다니시는지라 일 년에 한 번만 방문하신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소손의 기억이 맞는다면 아버지께서 잠시 돌아오시는 날이라 하셨습니다.”
“본디 너의 아홉 번째 생일에는 네 아비인 중영(仲郢)이 급가(給暇 - 조선시대의 휴가)를 내어 생일을 축하하고 본명을 지어주려 하였다. 공교롭게도 송포(松浦)군에 구풍이 불어 여전히 피해를 수습하지 못하였다는 서신이 얼마 전 당도하였구나.”
외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는 자식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주려 하셨던 것 같지만 나는 송포가 어디인지 생각하느라 한참 고민하다가 외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내 입에서는 얼떨결에 그럴싸한 말이 새어 나왔다.
“피해가 막심하다 함은 아버지께서 계시는 고장의 백성들이 도탄(塗炭)에 빠졌음을 뜻합니다. 아버지께서 자리를 비우심은 백성들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혁이가 이러한 말을 할 줄은 몰랐구나. 네가 어지간한 선비보다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뿌듯하니 마음이 놓인다. 다만 네 아홉 번째 생일은 중요한 날이다. 네 형과 마찬가지로 본명을 받을 시기가 되었지 않더냐.”
본명을 받을 시기라 하셨나? 조선시대에는 위생관념이 부족하고 항생제도 없어서 여덟 살 이전에 죽는 아이들이 많으니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부모님이 호적에 올리며 본명으로 바꿔주었지. 골똘히 생각하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운룡이와 네 본명은 한양에 계시는 너의 조부 유재(裕裁 – 유성룡의 친할아버지 유공작의 자)가 지어 놓았었다. 그러하니 내일 아침 나와 같이 향교로 나아가 옛 성현에게 예를 표하고 본명을 받도록 해야겠구나.”
생각해 보니 친할아버지가 멀쩡히 살아계시니 친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시면 될 것 같았지만 한양에 계시는 데다가 너무 청렴하신 분이셔서 재산도 별로 없으시다. 일흔이 넘은 외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외조부님께서 저를 아껴주시니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여, 조부님께서 정해 주신 성명에 걸맞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혁이 다운 대답이구나. 오늘의 학업은 끝났으니 점심을 먹고 벗들과 마음껏 놀도록 하여라. 내일은 하루 종일 읍내에 나가 있을 것이 아니더냐.”
점심을 먹으면 대충 오후 한 시쯤 될 거고 하루에 공부를 고작 세 시간만 해도 충분하단 말인가? 형님은 거리낌 없이 책을 덮고 두꺼운 짚신으로 갈아 신었고 내 기억으로도 오후에 노는 일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아홉 살이 되어 소꿉놀이나 하라니 차라리 바둑을 두지!
-----
생각 같아서는 아이들과 놀지 않고 그냥 방 안에 틀어박혀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살아온 인생을 비슷하게 살아가야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지.
이미 점심을 챙겨 먹은 아이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나왔다. 이 아이의 기억 속에 있으니 누가 누구인지 쉽사리 알 수 있었고 형과 나도 금세 놀이에 끼어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마부다! 다들 엎드려! 운룡이 이제 왔어?”
“공부가 조금 길어져서 말이야. 마부놀이 하면 나도 아혁이도 잘하는 놀이니까 좋은데?”
마부놀이가 뭔가 했더니만 어린 시절에 즐겨 했었던 말뚝 박기이다. 물론 조선시대이니 과격해서 아예 맨 뒤에 탄 사람을 짓밟고 날아올라 엉덩이로 짓뭉개는 것이 보통이었다. 형님은 뜀박질을 할 준비를 하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아혁아, 네가 체격이 가장 작으니 가장 마지막에 올라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형도, 안동 김씨 출신의 김사원이라는 형과 동갑의 아이도 그 외에 대여섯 명이 올라타니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발돋움을 두어 번 하고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지난번에 내 위에 엉덩방아를 찧은 사람은 누구더냐!”
“너 너무 빨리 달리는 거 아니냐?”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본래 나의 거대한 지방덩어리 몸과 8살 어린아이의 몸은 괴리감이 심각하였고 내가 예상한 발돋움도 아니었다. 기세 좋게 뛰어 발을 박찼지만 떠오른 정도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으아아악!”
“저렇게 욕심을 부리더니만!”
엉덩방아는커녕 맨 뒤에 있던 아이에 등에 부딪힌 내 몸은 바닥에 뒹굴며 흙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화끈한 통증이 올라오고 부끄러움이 솟구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형님이 오더니만 나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냐? 기세는 좋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항시 조심하여야지.”
“저는 괜찮은 것 같은데······ 이건 피네!”
가벼운 몸이니 충격은 적었지만 연약한 어린아이의 피부인지라 팔이 쓸려서 피가 송골송골 올라오기 시작했다. 굵은 모래가 박힌 팔을 보면서 울상을 지었지만 여기서 운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겠는가. 형님은 혀를 차더니 나를 부축했다.
“어머니께 말씀드려 약재를 바르자꾸나. 다들 미안해! 이만 들어가 봐야겠어!”
형의 부축을 받았지만 왼팔에서는 핏물이 송송 솟구쳐 손을 따라 흘러내렸다. 생각보다 큰 상처인데 걱정이 되었다. 만에 하나 감염이라도 되어 패혈증으로 죽으면 어떻게 하지?
“혀······ 형님, 먼저 우물가에서 팔을 씻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피를 닦아내고 상처를 줄여야 어머니께 심려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를 놀라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물론이요. 조선시대의 의술에 대한 불신도 있었다. 기껏해야 상처를 물로 닦고 된장 좀 발라서 목면으로 감싸두겠지. 집에 돌아가니 머슴도 헛숨을 삼키며 나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
“아혁아! 어디 언덕에서라도 넘어졌더냐. 운룡이 너도 함께 있지 않았느냐?”
“아혁이는 마부놀이를 하다가 넘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다듬이질을 하고 계시지. 어서 안마당으로 들어가 보거라.”
똑딱똑딱하는 다듬이 소리가 아니고 살벌하게 뭔가를 두들겨 패는 소리가 들려온다. 궁금한 마음으로 안뜰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분명 다듬이질을 하고 계시다 내 팔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달려오셨다.
“아혁아! 어쩌다가 이렇게 다친 것이니?”
“제가 욕심이 과하여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하니 소자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다 했지만 질문거리가 아주 많았다. 어머니가 떨어뜨린 다듬이 방망이는 홍두깨 크기가 아니고 몽둥이로 사용해도 될 크기였고 어머니의 팔뚝을 보니 왜 이리 크지? 여기에 어지간한 남자보다 크고 단단한 근육이 있다!
외가 풍속이 여성의 완력을 단련하는 특이한 풍속이 있나? 아니면 체격이 좋으신가? 마루에 앉아 멍하니 다듬이 방망이를 보는데 어머니가 비단으로 장식한 함을 가져오시더니 내 상처를 살펴보시고 한숨을 쉬셨다.
“살가죽이 모조리 쓸려 나갔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보통 아이라면 대성통곡을 하였을 것인데 우리 아혁이는 장하기도 하지. 앞으로 조금 많이 아플 것이니 꾹 참어라.”
함 속에는 도자기로 만든 약병 여러 개가 있었다. 기껏해야 기름 성분이나 고약을 바를 것이라 예상했지만 손바닥보다 조금 큰 자기병 입구를 밀랍을 뜯고 여니 알싸한 향이 느껴졌다.
“본래 상처가 작으면 고약을 발라도 충분하지만 혹여나 덧나거나 고름이 찰 수 있으니 주정(酒精 - 고농도 에탄올)으로 겉을 닦아 소독해야겠구나. 아플 것이니 이 목면을 물어라.”
지금 뭐라 했지? 주정으로 소독? 냄새로 보니 알코올인데 이걸로 상처를 소독한다고? 조선시대에 소독 개념이 존재한다고? 대체 문종은 무얼 하였기에 세계 의학의 개념을 선도하는 소독 개념을 창시하였단 말인가!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꺼낸 솜에 찍어 바른 주정을 보자 소름이 돋아왔다. 소독 효과를 보려면 최소 60% 이상 순도의 알코올일 것이며 알코올은 작은 상처에만 닿아도 쓰라려서 현대에는 요오드팅크로 소독한다.
“본디 소독은 상처 깊숙이 주정을 스며들게 하여 말끔히 씻어내야 하니 참는 것이 도리이다.”
“끄아으아아아악!”
솜에 묻은 알코올이 상처에 스며들며 화끈하다 못해 타들어 가는 통증이 끝없이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팔을 빼려 하는데 내 손목을 잡은 어머니의 손길을 피할 방법이 없다. 힘의 차이가 몇 배는 되는 것 같다.
평상시의 자상한 어머니는 무슨 보디빌딩을 한 여성처럼 악력과 완력 모두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참으며 상처를 다 소독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혹여나 독이 깊숙이 스며서 고름이 차고 흉이 질까 염려되는구나. 집안에 봉교(蜂膠 - 프로폴리스)가 없으니 건너에 있는 생원 댁에 가서 얻어올 것이다. 잠시 기다리도록 하여라.”
어머니가 안채를 빠져나가고 식은땀을 닦는데 의문이 샘솟았다. 봉교는 이 아이의 지식에 의하면 벌집에서 추출하는 약재이며 화농에 효과가 있는 것이니 프로폴리스가 분명하다.
옛날부터 약재로 쓰였으니 한자가 있었으니 이건 그렇다 치자. 가장 큰 의문은 어머니의 힘이다. 어머니의 힘은 보통 여성의 범주를 한참 넘어섰다. 현대인인 내 아내가 체격은 커도 저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힘을 기르는 것이 법도라도 되는 세상인가? 세종대왕님도 그렇고 다들 왜 이러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어머니가 읽고 계셨던 서적이 있었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라는 서적인데 손때가 타지 않은 것이 비교적 최근에 구매한 것 같았다.
서적을 보니 타자기 활자와 비슷한 은근슬쩍 뒤틀린 한글을 사용했고 띄어쓰기도 문장부호도 현대와 비슷하게 정립되어 있어서 읽기 쉬웠다. 역사가 변하면서 활자 인쇄술을 적극 사용한 게 분명한데 책을 넘겨보다가 특이한 대목을 찾아냈다.
<진주의 입신체비장에서 왜구를 격퇴하다>
입신체비? 듣지 못한 이상한 단어이지만 해석은 가능하다. 여하튼 왜구를 격퇴했다는 대목을 읽었는데 상상조차 하지 못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축(己丑)년 계유(癸酉)월 사천 일대에 왜구가 침략하여 약탈을 일삼다 격퇴되었다. 왜구의 잔당은 진주로 향하여 유생을 사로잡아 구주(九州 - 큐슈)로 돌아갈 야욕을 품었다.
-왜도와 둔기를 패용한 왜구 열 명이 흉흉한 기세로 쳐들어와 하인들을 공격하였으나 입신체비장의 주인인 하포는 소역기를 집어 던지고 몽둥이를 들어 격렬히 맞서 싸웠다.
“이게 무슨 소리야. 몽둥이를 들고 있는 왜구들이 열 명이나 덮쳤는데 혼자서 격퇴했다고? 하포라는 사람은 역사에 남을 무인인가? 그럼 무인이라고 소개되어야 하는데 웬 사(士)가 붙어? 선비라는 뜻인가?”
위에 묘사된 회화를 보니 거대한 근육을 자랑하는 남성이 왜구를 향해 아무리 봐도 아령과 유사한 쇳덩어리를 집어 던지는 모습이 남아 있었고, 화풍도 내가 아는 동양화와 사뭇 달랐다. 위화감을 뒤로하고 다음 장을 넘기자 더욱 무시무시한 내용이 있었다.
-하포가 왜구를 추포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왜구의 두목 심조(甚助 - 진스케)가 기절한 척을 하고 하포의 부인 청산 정씨를 인질로 잡으려 하였다. 하지만 청산 정씨는 군부인 한씨 아래에서 수학(受學)한 입신체비의 달인이었다.
-청산 정씨 부인에게 완력으로 밀린 심조는 역으로 두들겨 맞아 승산이 없다 여겼고 도주하다 마침 돌아온 하포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는 길이 기록되어야 할 일이니 첫 증보판에 수록한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회화가 있었다. 눈에 핏발을 세운 여성이 양손에 홍두깨를 들고 왜구를 두들겨 패는 모습이. 완력 차이를 표현하려 했는지 청산 정씨의 몸이 거구로 묘사되었고 아래의 주석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청산 정씨 부인의 삼대 운동(三大運動)의 합은 450근(약 288㎏)이다.>
“삼대······ 운동?”
삼대 운동은 보디빌딩에서 기본으로 여기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스쿼트, 벤치프레스 그리고 데드리프트다! 설마 역사가 변한 이유가 어떤 보디빌더가 나처럼 세종대왕에 빙의해서인가? 세종대왕은 아닌가? 혼란에 빠져 있는데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다행히도 생원 댁에 봉교를 비축해 둔 것이 있구나. 봉교는 매우 쓴 물건이나 꼭꼭 씹어 삼키도록 하여라.”
어머니가 내민 갈색 덩어리를 씹었는데 지독한 향과 엄청난 쓴맛이 밀려왔다. 치료가 끝나고 잘 삶아 말려둔 목면으로 상처를 감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약을 먹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하루 종일 충격적인 일이 너무 많았으나 앞으로 조선시대에 살아야 하다니. 자리에 누워서 생각해 보니 어린아이라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스물 무렵에 아내도 있고 관직에 있는 상황에서 빙의했다면 끔찍한 일이니까. 생판 남인 처자식 데리고 인간관계도 다 초기화되어서 어떻게 세상을 사냐고.”
어린아이의 몸은 잠이 많은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내일은 외할아버지와 같이 향교에 다녀와야 하니 푹 자고 내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