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1장 1화 – 나는 누구인가(1) >
갑작스럽게 잠이 달아나 온몸의 감각이 살아났다. 보드라운 차렵이불이 아닌 어린 시절 시골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을 때 덮어보았던 매끌매끌한 목화이불의 감촉이 느껴졌다. 옷은 왜 이리 꺼슬꺼슬한지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동이 터 오를 무렵의 미명이 새어 들어와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내 옆에서 곤히 자는 젊은, 아니 어린아이가 있었다. 입맛을 다시면서 몸을 뒤척이다 잠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입을 꾹 다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
고개를 내려 나 자신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을 보니 어린아이의 손, 대충 열 살 아래의 자그마한 손이 있었다. 분명 내일 출장을 생각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는데 상상하지도 못한 어린아이의 몸으로 깨어났단 말인가.
혹시나 꿈은 아닐까 싶어 몇 번이고 손등과 뺨을 꼬집었지만 꿈이 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며 사지가 벌벌 떨리는데 머릿속에서 이 아이였을 누군가의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 이름은 아직 아명(兒名 - 본명 이전에 쓰는 이름)인 아혁(阿侐)이며 형의 이름은 장남인 유운룡이다. 기억을 계속 더듬어보니 여기가 의성의 사촌(沙村)이라는 사실은 떠올랐지만 그게 전부다.
현대에도 풍천 유씨와 안동 김씨의 집성촌이 사촌마을이다. 즉 내가 누구인지 특정할 방법이 없는데 하필 올해의 기준도 서력이 아닌 육십갑자 기준이라 문제다.
“작년이 경술(庚戌)년에 올해는 신해(辛亥)년의 구월 그믐날(마지막 날)이라고? 정작 중요한 정보는 없잖아? 대체 나는 누구야, 여기는 또 어디야.”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이 거칠어져서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나는 대한민국의 38세 김성원이며 여기는 아마 조선시대일 것이다. 경술년? 경술년이 대체 뭐란 말인가.
아이의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사촌마을 밖으로 벗어난 일은 아주 어린 시절에 한 번밖에 없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건물의 형태로 시기를 파악하려 해도 익공(翼工 - 조선 특유의 간소화된 공포 양식) 양식이 보이니 조선 중기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경술년이라는 단어에 경술국치가 떠올랐다. 1910년에 일어난 대한제국의 멸망이라니.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옆에 자고 있는 형이 깨어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어이쿠! 아혁이가 일찍 일어나다니. 어제 동무들과 노느라 피곤하지 않더냐.”
“꿈자리가 뒤숭숭해 일어나 보았습니다.”
방문을 열자마자 마당에서 풀을 뽑고 물골을 파내던 머슴이 별일이 다 있다는 듯이 눈을 굴리며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일에 몰두했다. 현대에 살던 27평 아파트는 온데간데없고 번듯한 양반가의 마당이 있었다.
이 아이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버지가 외방(外方 - 서울 외의 지방)에서 근무하는 동안 머무르는 외가라는 기억도 떠올랐다. 형은 어린 시절 도성에서 내려왔고 ‘나’이자 아혁은 여기서 나고 자랐다.
짚신을 신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는 문화재 건축을 하였으며 역사에 대한 지식도 보통 사람보다는 많으니 건물을 통해서 연대를 측정할 수 있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落水)가 마당을 손상시키지 않게 깨진 기와를 깔아 놓았는데 이것도 좋은 흔적이다.
[가정(嘉靖) 12년]
기와 가운데 가장 두툼하고 커다란 용마루 망와(望瓦 - 용마루 끝에 설치하는 장식용 기와)에는 기와를 만들 당시 연대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가정이 언제의 연호이지? 국내역사는 알아도 중국 역사는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일할 때 필요한 사건 중심 역사만 공부하지 말고 전체적인 상황을 알도록 통사(通史)를 배워둬야 했는데.”
아마 영직이 녀석이면 연호와 갑자를 보고 즉석에서 연대를 역산했겠지. 보디빌딩을 한 다음 몸이 휴식해도 머리는 움직일 수 있다면서 사학과 시절 배웠던 책을 복습하는 놈이었으니까.
뒤뜰로 돌아 나서는데 서까래에 길게 매달려 있는 무언가에 머리를 부딪쳤고 누런색과 보라색이 섞인 덩어리를 만져보니 질겅거리는 촉감이 느껴졌다. 혹시 몰라 냄새를 맡아보니 고구마 냄새다.
“내가 알기로 고구마는 18세기 말에 보급되었는데.”
운이 좋다면 영조나 정조 시절이 아닐까 하며 주변을 돌아봤는데 주변 산은 울창한 수림이 들어차 있다. 분명 영조 시기부터 폭증한 인구로 화전(火田)이 성행해서 산이 민둥산이 되었다 하는데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르다.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조선 말기에는 목재가 부족해서 소나무는커녕 각종 잡목을 건물에 사용하였다. 하지만 기둥은 든든한 소나무도 아닌 참나무를 사용했는데 색상이 이상하다. 조금 만져보니 이건 들기름을 쓰지 않았다!
“들기름이나 오동유가 아니고 아마인유(亞麻仁油)를 사용했다고?!”
조선시대에 목재를 보호하기 위해 바르는 건성유는 들기름과 오동유 두 종류만 사용했다. 하지만 이 집의 기둥은 아마인유로 바른 것이 분명하다.
내가 비록 문화재 설계를 하지만 문화재 설계를 하며 간간이 일반적인 목조 주택 설계도 담당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비싼 들기름 대신 아마인유로 목재에 기름칠을 했었다.
“아마인유가 조선에 유입된 시기는 구한말인데. 최악의 경우에는 1911년에 그나마 희망적으로 보아도 1851년인가. 뭐 이런 시기에.”
“아혁이가 일찍 일어난 것 같아서 좋아했더니만 이상한 일을 하는구나. 꼭두새벽부터 뒤뜰에 무슨 일이더냐.”
걸걸한 목소리에 몸이 돌아갔지만 자동적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 어린아이의 기억에서 깊게 박혀 있는 사람. 외조부인 김광수(金光粹)이자 호는 송은(松隱)이라는 분이 계셨다. 반사적으로 인사를 올렸다.
“외조부님, 기침하셨습니까.”
“이미 일어나 잠시 주변을 산보하다 왔구나. 그런데 얼굴을 씻지도 않고 무얼 그리 찾는 것이냐. 혹여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말하여보거라.”
이 아이의 외할아버지가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연세가 여든셋이라는 기억이 올라왔지만 몸매가 두툼한 것이 젊은 시절에 제법 운동을 했던 사람이 분명했다.
생각 같아서는 올해가 조선이 건국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꼭두새벽에 엉뚱한 질문을 하면 정말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 외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기둥을 짚은 다음 말했다.
“소손(小孫)이 문득 생각하니 기둥이 멀쩡히 서 있는 것이 궁금하였습니다. 본디 나무는 베어지면 한 해가 지나면 썩게 마련인데 기둥은 여러 해가 지나도 쇠하는 일이 없으니 궁금하였습니다.”
“오호라, 아혁이가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하였구나. 목재를 썩지 않게 하려면 기름이 필요하다. 기름으로 표면을 보하고 초석 위에 소금을 두면 목재가 십 년은 거뜬히 유지된다.”
“제가 알기로 기름은 값이 비싸다 하였습니다. 하오면 모든 목재에 기름칠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를 알면 둘을 생각하는구나. 본디 값비싼 들기름을 칠하였지만 문종대왕께서 수양대군을 오사만국으로 보내 아마라는 진귀한 작물을 가져왔느니라.”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수양대군이 오사만국은 또 뭐고 아마는 또 뭐고? 외할아버지는 기둥을 쓰다듬으면서 껄껄 웃으시더니 멍하니 입을 벌린 내 얼굴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마는 척박한 땅에서도 소출이 좋아 백성들이 빈 땅에 기른다. 줄기는 옷감을 만들고 씨앗은 볶아 기름을 내어 여러 군데에 쓰이지. 작금에 이르러 명문가와 궁궐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마기름을 바른다.”
수양대군은 자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해서 세조가 된 인물 아니야? 대체 내가 어디에 왔단 말인가. 대체 여기는 무슨 세상이란 말인가.
외할아버지의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기름을 태워 먹을 만들며 줄기를 짓이겨 옷감과 종이를 만든다는 등. 설명이 계속되었지만 마당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리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서면서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하다 해가 중천에 뜨게 생겼구나. 어서 세안을 하러 가자꾸나.”
외할아버지를 따라 마당으로 돌아갔지만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올 것이면 그냥 조선시대에 떨어질 것이지 어떤 변수로 인해 뒤틀린 역사에 떨어지다니.
아마 문종이 장수하며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할 틈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덕분에 문종의 재능이 극단적으로 발휘된 세상이 아닐까. 마당으로 나오니 곤히 자고 있던 형도 눈을 비비더니 말을 건넸다.
“일찍 일어났구나. 잠자리가 뒤숭숭하더냐?”
“네 형님,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무슨 꿈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형님도 나도 웃으며 머슴이 가져온 놋쇠 세숫대야에 손을 씻는데 형님은 회색 덩어리를 매만지더니만 거품을 내서 얼굴에 비벼댔다. 아무리 봐도 비누여서 손에 비벼보니 제법 쓸 만한 녀석 같다.
상상하지도 못할 조선시대 비누 세수를 마치니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지만 잠시 아침상을 준비하는 와중에 형님이 옆구리를 슬쩍 찌르더니 귓속말을 하였다.
“뒤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수를 하지 않고 외조부님을 뵙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네가 무엇이 궁금해서 나섰는지는 몰라도 다음부터 그런 결례는 하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조선시대를 비롯해서 한반도 문화권에서는 몸을 씻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예의였다. 어지간한 양반가에 가면 세숫대야를 두는 세면대가 여러 개 있었으니까. 앞으로 이런 일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는데 밥상이 들어왔다.
“이게 닭이야?”
소반상 위의 밥과 산나물 그리고 백김치는 그렇다 쳐도 탕국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거대한 닭다리라니. 거대한 크기에 주눅이 들었지만 외할아버지의 말이 들려왔다.
“닭은 역시 천축계(天竺鷄 - 브라마 종 닭)가 제일이 아니겠느냐. 자라는 시일이 길고 손이 많이 들어 문제이지만 맛은 제일이구나.”
천축계라니 천축이면 인도고. 오스만 제국 들리며 인도에서 닭도 가져왔었나? 국물은 드시지 않고 닭가슴살을 천천히 음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더 이상 놀라지 않기로 했다.
밥상을 보니 밥이 잡곡밥인데 뭔가 톡톡 씹히는 녀석이 느껴졌다. 지금이 음력 9월이면 곳간 가득 흰 쌀이 있을 텐데 양반가에서 잡곡밥이라니. 그리고 톡 터지고 질겅거리는 껍질을 보니 밥 안에 옥수수가 섞여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냥 조선시대도 아니고 얼마나 번창했는지 알아내는데 어린 시절을 다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고 소금과 멧돼지 털로 추정되는 칫솔로 이까지 닦은 다음에 이 아이의 기억대로 공부시간이 시작되었다.
“아혁이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기봉우서(修己奉佑書 - 자신을 갈고닦는 일을 돕고 다듬는 책)를 독파하고 중용을 읽거라. 운룡이는 나와 같이 서경을 읽도록 하자꾸나.
수기봉우서는 또 뭔가 했는데 아이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떠올랐다. 세종대왕님이 돌아가실 무렵에 편찬하셨던 왕손과 어린아이들을 위한 교육 서적이라니 세종대왕님의 수명도 늘어났나? 하지만 내용이 좀 이상하다.
-모름지기 사람이 뜻을 품을 적에는 뜻에 거침이 없어야 하나 주변을 살핌이 필요하다. 임금은 신하를 생각하며 신하는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옳다.
-인(仁)과 의(義)는 사람 간의 신의를 위하여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나 세상의 일은 다르다. 이 세상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다.
뭔가 성리학적이면서 아닌 것 같은 애매하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다음 쪽으로 넘어가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국이 세워지기 천 년 전에 성세를 이루었던 대진(大秦 - 로마 제국)국 시인이 말하기를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하였다. 참으로 옳은 말이며 이는 대학(大學)의 8조목에도 일컬어진 것이니 온 세상의 뜻이 하나와 같았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모두 병자라면 나라도 병든 것이다. 군주와 관료 그리고 유생과 백성에 이르기까지 만인이 근골을 단련하고 용기를 기르도록 하라. 건전한 신체를 이룩하여 모든 일을 막힘없이 이룩하는 것이 제일이다.
“세종대왕님이 뭘 하신 거지? 영직이 녀석과 비슷한 소리를 왜 하시지.”
이 아이는 사서삼경에 대한 이해가 끝난지라 술술 읽혔다. 전체적인 내용은 유교 경전과 겹치지 않고 현실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니 훌륭한 서적이라 할 수 있겠지. 잠깐 이 꼬맹이가 아홉 살인데 유교 경전을 다 읽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