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40화 (240/573)

< 현대 외전 13화 – 조금 이상한 현대사 >

전차 이후에 전시된 대구경 야포의 향연에는 하나같이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 이론인 종심 돌파 작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개발하였다.] 라고 적혀 있었다. 대한 공화국의 무기체계가 화력 중심인 이유가 여기서 드러났다.

“제파(諸波)식 전술로 대표되는 종심 돌파 작전은 공격제대의 연속 투입으로 방어선을 돌파하는 게 목적인데 포병 화력에 집중해서 방어선 자체에 도달하지 못 하게 한다. 요동 일대는 포탄과 시체로 뒤덮였겠는데.”

나도 군사 이론에 빠삭한 편은 아니지만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인간의 파도로 대한 공화국을 노렸고. 그에 대한 반발로 압도적인 야포 세례가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문자도 아니고 지정된 벨소리로 쌀톡이 울려서 열어봤다. 놀랍게도 성원이 녀석은 다른 장소로 출장 나와 분노가 묻어나는 쌀톡을 보내왔다

- 망할 수양대군! 수양대군 때문에 미주에 있다가 바로 사모아로 내려가게 생겼다!

“성원이 이놈은 자기 직장이 문화재 회사면 타히티이건 사모아건 애꿎은 수양대군을 욕해. 수양대군이 발견했어? 한명회가 발견한 거지?”

다시 전시관으로 들어서자 모스크바 탈환전 이후의 전선이 나열되었다. 대한 공화국의 참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려 하였지만 갈 길이 험난했고. 대한 공화국은 가느다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보급선 하나에 의지하고 있었다.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대한제국의 참전에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였지만 빈약한 보급과 연이은 나치독일의 역공으로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였다. 결국 흑해 연안을 통한 보급을 위하여 남부의 스탈린그라드 탈환을 목표로 삼았다.]

[대한 공화국의 참전으로 중립을 표방하던 터키와 미온적인 지원을 지속하던 솔로몬 제국도 본격적인 전쟁에 나섰다. 바야흐로 유럽의 전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북아프리카 전선이 열렸군. 이탈리아는 하는 일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겠네. 애초에 얘들은 전쟁을 벌일 역량조차 없었잖아.”

소련의 멸망으로 끝날 것 같았던 전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중립국을 표방하던 터키가 급작스럽게 소련을 지원하기로 하였으며. 관망하고 있던 솔로몬 제국도 터키와 함께 독일의 점령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 솔로몬 많이 컸다. 따깊되(따서 갚으면 된다. 채무를 전쟁 배상금으로 이행하는 방식) 세 번 성공해서 저렇게 컸으니 얼마나 좋아.”

솔로몬 제국은 19세기 초반부터 급격한 발전을 거듭했다. 영국이 오스만 제국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솔로몬 제국을 지원 대상으로 삼았으며. 조선은 오스만 제국과 앙숙이나 마찬가지여서 양국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대한 제국의 속령인 호주에 대한 영향권을 과시하려던 영국은 뒤통수를 맞는다. 솔로몬 제국이 영국의 정책에 반발하며 대한제국의 우방임을 표방하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대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줄루족을 포함하여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하나씩 참전하였고. 결국 영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배하는 선에서 솔로몬 제국과 협상을 맺고 종전하였다. 결국 인도 식민지는 본래 역사의 절반으로 축소되었다.

솔로몬 제국은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이탈리아와 전쟁을 벌였으며. 이탈리아는 원정군 다수가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에 묻힌 모래맛 파스타가 되어버리고 이집트를 속국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독일은 그들이 상대하기 힘든 강국이었다.

[터키와 솔로몬 제국은 전면전을 벌일 역량이 없었지만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 그들의 희생을 통해 흑해로 보급함대가 드나들 틈이 생겨났으며 대한 공화국의 보급함대가 조지아에 상륙하며 진격이 시작되었다.]

[이에 힘입어 미국과 아메리카가 손을 잡고 함대를 파견하여 영국에 병력을 파병하였으며. 대한제국시절의 속령이었던 호주와 무진 합중국도 함대를 동원하여 군수품을 보급하였다 바야흐로 전 세계와 독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942년 3월 2차 영국 본토 항공전이 벌어졌고 영국은 패배하였다. 본래 역사의 미국은 영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지만 변한 역사에서 미국은 반으로 나뉘었으니 이런 차이가 생겨나 버렸다.

미(美)국이 아니고 미(迷)국이니 익숙하지 않지만 변한 역사에 적응해야 하니 불편해도 참아야겠다. 여하튼 국가가 설립될 당시부터 앙숙이었던 두 국가가 힘을 합쳤으니 전황은 급속도로 기울었다.

“한 달만 늦었어도 영국은 쑥대밭이 되었겠지. 아메리카 입장에서는 오랜 앙숙인 미국과 오랜 간만에 뜻이 맞았으니까. 그나저나 저지른 짓을 덮으려고 안간힘을 쓰니 웃음이 나오네.”

뒤늦게 대한 공화국의 참전 사유를 이해한(대한 공화국은 선전포고문에서 명백히 민간인 학살이 참전 사유라 하였다) 히틀러는 명령을 정지하고 책임자를 사형시켰지만 나치 독일의 범죄는 너무나 많았다. 소련 영토를 진격할 때마다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바비야르 학살의 증거 사진>

<동부전선의 독일군 성 범죄 증거품>

<독일 친위대의 벨라루스 민간인 학살 작전>

종전기자의 힘으로 증거 사진은 전 세계로 퍼졌으며 1943년 2월 한양은 다시 참전 여론이 득세했다. <지옥의 악마들도 몸서리 칠 끔찍한 학살> 같은 헤드라인과 성난 군중의 흑백사진이 신문 1면에 박혀 있었다.

대한 공화국에서 독일의 수뇌부는 물론이고 군인 또한 인간이 괴물들이며 모조리 쓸어버려야 할 대상이 되었으며 40대도 참전하고자 입영신청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불 붙은 전쟁 의지에 진군이 계속되었다.

“와 이거 실화냐? 이렇게 분노한 상태에도 전쟁 범죄를 칼 같이 제지한다고?”

대한 공화국 군인들도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독일군 포로가 잡히면 국방군이면 상관없었지만 슈츠슈타펠(친위대) 소속은 구타가 기본이고 아인자츠그루펜, 나치 독일의 대량 살상 조직에 속하면 끔직한 일이 기다렸다.

[육군 원수 김상옥의 특별 명령에 의해 147명의 대한 공화국 병사들이 본국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들은 포로로 잡힌 아인자츠그루펜 병사들의 체격이 좋다며 내수린을 벌여 일방적으로 구타하여 살해한 이들이었다.]

[검찰총장과 병무청장이 주관한 조사와 재판 결과 이들은 군법에 의거 25년의 징역이 구형되었으며. 이를 대법원장 김병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이들이 저지른 과오를 올바른 법의 심판대에 올려 단죄하고. 이를 역사에 남겨 같은 행위를 저지를 자가 나타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보아온 이들의 분노가 당한 이들의 분노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사법계의 틀을 만든 인물이자 인권 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에 걸맞은 발언이었다.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대한 공화국과 소련의 진군은 계속되었고 1944년 7월 동부전선은 원 상태로 복구되었다.

본래 역사보다 느리고 굳건하게 수복하였지만 애초에 독일이 강하고 영국이 약한 상황이니 오히려 빠를지도 모를 일이다. 처절한 패배를 거듭하던 독일군은 발악적인 항전을 거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윽고 1946년 1월. 베를린이 함락되었으며 히틀러는 지하벙커에서 수류탄을 터트려 자살하였다. 훗날 추종자가 생길 것을 염려한 각국 수뇌부의 결정으로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태평양 한복판에 몇 차례에 걸쳐 뿌려지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카틴 숲 대학살이 1947년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이지. 전쟁 와중에 발견되었으면 대한 공화국의 압박으로 소련도 승전국 반열에서 물러나 조용히 침묵해야 했을 텐데.”

종전 회담 결과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여섯 구역으로 갈라졌다. 소련, 영국, 아메리카, 대한 공화국, 프랑스 그리고 대한 공화국에 전권을 위임한 미국으로. 결국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겨났다.

본래 역사처럼 극단적인 냉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동유럽의 위성국가들도 소련에 합류하기를 주저하였으며 소련은 대한 공화국을 온전히 적대할 수 없었으니 애매한 냉전이 시작되었다. 변한 역사로 결정적인 기술 발전 차이가 발생했다.

“냉전이 우주 경쟁을 촉발시켰는데 온전한 냉전이 아니니 우주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잖아? 그런데 대한 공화국은 유인 우주선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게 이상하네. 과학 수준은 세계 정점인데 유인 우주선만 이러네.”

유인 우주선을 피하는 이유는 말 하지 않지만 무중력 공간에서 일어나는 근손실이 분명하다. 아닌가? 설마 과학 발전보다 근손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려고. 그냥 미국에서 열심히 하니 굳이 따라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

남은 무기 체계는 그럭저럭 강대국다웠다. 광적인 포병 신뢰는 대전 이후 폭격기와 항공모함으로 이어졌으며. 본래 역사의 미국보다 부족해도 세계 1위의 국방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과연 이 기반은 무엇일까?

“이제는 나와 형님이 이룩한 성과를 확인하고 싶은데. 조선 전기 전시관은 어디에 있지? 삼국시대나 고려야 사료가 좀 더 많아진 것을 제외하고는 차이가 없겠지만 조선 전기는 꼭 보고 싶네.”

조선 군사 관련 전시관도 휘황찬란했다. 옛 모습보다 훨씬 잘 차려입어 오히려 투박한 맛이 없는 훈련도감군 특유의 쑥색 철릭이나 얇게 잘 뽑아낸 투구를 보니 어색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최초로 시험한 두치총이 아직도 남아 있었어?”

세종대왕님 앞에서 시연해 보았던 두치총, 훗날 자모포의 원형이 되는 녀석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로 만든 녀석이라 군기시 장인이 병(丙)이라 쪼아낸 흔적마저도 남아 있었다.

화포에 매달린 일도 제법 되었으니 눈에 띄는 녀석들이 여럿 보인다. 천축산 화약을 사용했다 자랑스럽게 표시된 작렬신기전부터 후기에 개수되었는지 더욱 듬직해진 총통기화차까지.

대부분 후기에 개수한 모습이어서 17세기 무기 변천사를 확인하려 하였는데 화포가 보였다. 그런데 화포의 구경은 거의 비슷했지만 길이가 줄어들었고 화포 측면에 무게추를 매단 실이 보이는데 이게 뭐지?

<1613년 군기시 제조 천호준포(天虎蹲砲)>

[16세기 말엽부터 기존의 저각 사격 체계를 벗어난 포물선을 활용한 곡사 사격 체계를 시험한 조선군은 17세기 초부터 이를 전군에 확대 보급하였다. 기존의 천, 지, 현 그리고 황의 체계를 유지한 채······.]

설명을 요약하면 유럽에서 1750년경에 일어난 7년 전쟁에서 고안한 간접사격. 고각으로 발사해 숲이나 둔덕을 넘어 사격하는 방식을 16세기 말에 도입한 것이 조선군이었다.

유구한 역사를 뛰어넘은 포방부의 전통이라니. 대체 누가 어떻게 도입했는지 몰라도 설명에는 명장에 반열에 들어가는 장수들의 기본 소양이라 하였고. 이순신이 왜변(倭變)에서 적극 사용하여 명성을 떨쳤다는 기록도 남아 있었다.

“왜변이 일어났다 하면 왜란(倭亂)은 아니니 왜구의 대규모 침공이 있었고 이걸 이순신이 격퇴했단 뜻인가? 훨씬 더 많은 화약을 쓰는데다 시대를 백 년 이상 앞서 간접사격을 즐기는 이순신이라. 이걸 누가 막아?”

조선이 전혀 발전하지 않고 인구와 병사의 수만 늘어나고. 일본이 정말 미쳐서 전국시대 전력을 고스란히 복원해도 큐슈가 함락당하는 사이 결집한 병사들이 역공으로 밀어버릴 것이라 예상했었다. 여기에 이순신도 활약했으니 할 말은 다 했다.

박물관에서는 덤덤하게 적어뒀다 해도 간접사격은 쉬운 사격술이 아니다. 철저히 규격화된 화포는 필수이며 엄선된 정예병을 훈련하여 사표(射表 - 화포 조준에 있어 모든 조건을 망라한 표)를 완성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역시 변한 역사에서도 위인은 위인이었는지 홍윤성과 마찬가지로 밀랍인형으로 만든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있었다. 보디빌더와 다르게 두정갑 아래의 체격이 울퉁불퉁 한 것이 입신체비로 다져진 체격은 아니었다.

“아이고 우리 장군님 삼대 400은 치고도 남으시겠네. 조선시대니까 한 칠백 근은 하셨겠지. 훈영제식법을 바탕으로 몸을 만들었으니 저렇게 병사로서 최적의 체격이 나왔겠고.”

이징옥의 지적 덕분에 개발하였던 훈영제식법. 군인들이 가져야 할 코어근육과 하체 그리고 전체적인 지구력 향상을 위해 창안한 훈련법을 이순신 장군도 빠짐없이 지키고 있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함선을 확인하려고 안쪽으로 쭉 들어갔다. 기술의 결정체인 함선 모형을 보려 했는데 군함의 변천사라 하는 함선 모형이 있는 장소에 기이한 함선이 하나 있었다. 사극에서 주구장창 보아온 평저선이다.

“이게 왜 여기 있지? 판옥선이 만들어질 이유가 있나? 풍역선과 상무선이 있는데 왜 연안항해용 수비선인 판옥선을 만들었지? 함대를 말아먹어 급조한 것 같지도 않은데.”

전시된 모형 함선은 순서대로 대방선, 방패선, 풍역선, 상무선 그리고 풍역선의 후계 함선이자 크기가 더욱 거대해진 순주선(順州船 - 여러 고장을 다니는 함선)은 기존의 설계를 개선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첨저선이 대부분인 함선 가운데 유독 바깥에 떨어져 있는 녀석이 판옥선이다. 역사와 달리 매끈한 카벨(외판을 맞대는 방식)이음에 모형으로도 느껴지는 튼튼한 구조를 자랑하였는데 크기가 너무 컸다. 심지어 별칭이 판옥선이었다.

<1559년 선공감 제조 평전선(平戰船) 1/4 복원모형, 별칭 판옥선, 추정 배수량 320톤>

[평전선은 서해 대부분과 남해 일부분에서 첨저선인 풍역선과 순주선이 수비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기에 진도 만호였던 정걸(丁傑)의 고안으로 설계한 함선이다. 설계 한계 덕분에 대양으로 나설 수 없는 함선이었지만 연안 전투선으로 탁월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기본 설계가 다용도 함선인 풍역선과 순주선의 경우와 달리 판옥선은 오로지 해안 수비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오래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뛰어난 조향성능과 화력은 후기함선 설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선 특유의 평저선 선체에 나무를 아낌없이 사용한 두툼한 구조체가 보였다. 영화에서 보여줬던 비교적 날렵한 모습과 달리 투박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판옥선은 해상의 성이자 불벼락을 퍼붓는 괴물의 모습이었다.

밧줄이 많은 범선에서 사용하기 힘들었던 신기전기화차나 작렬신기전도 고스란히 적재되어 있으니 당시의 수군에서 화력 보강을 위해 추가로 사용했으리라. 그렇지만 크기가 커도 너무 크다.

“판옥선이 초기 제작된 녀석은 배수량 100톤에 후기에 가서 250톤이 넘어갔다 하던데 초기에 만든 녀석이 320톤이면 그냥 베네치안 갤리어스 수준인데?”

생각해 보니 판옥선이 등장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명나라의 큐슈 점령지가 암군인 가정제의 즉위 이후 통제 불능의 사태에 접어들었겠지. 본래 역사에서 북로남왜(北虜南倭)라 칭하며 변방이 흐트러졌던 시기가 가정제 무렵이었다.

왜구들이 쳐들어와도 동래를 비롯한 경상도 일대로 쳐들어 올 멍청이는 없었을 것이며. 멀리 우회해서 전라도 일대를 공격했을 것이다. 거대한 첨저선은 사방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추격할 수 없으니 판옥선을 설계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정걸 이 양반 너무 거대한데. 훈영제식법을 얼마나 했으면 몸이 이렇게 비대해지지? 화풍 때문에 살이 쪘는지 근육이 많은지 구분할 수 없잖아?”

백발이 성성한 정걸 장군의 모습이 옛 조선 화풍으로 남아 있었다. 어깨를 크게 그리고 선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모습이라 구분할 수 없었지만 설마 비만은 아니겠지.

슬슬 폐관시간도 다가와서 오랜 간만에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부대끼고 싶다. 독립해서 살고 있지만 휴식월인데 보름 동안 내 할 일만 하면 너무 눈치 보이지 않는가.

집 주소야 가족등본 떼면 바로 알 수 있었는데 거주지도 예전과 같은 수원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내려가 아파트에 갔는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지 불이 켜진 방은 단 하나였다.

“비밀번호가······. 예전처럼 내 생년월일 맞나?”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집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다. 새어나온 위치를 보니 건넌방에 누가 있었나본데 본래 역사보다 조금 건장해진 동생이 쭈뼛거리며 나왔다.

“형 왔다.”

“혀······. 형? 형이 웬일이야?”

동생은 오타쿠이지만 능력 없는 오타쿠가 아니었다. 국내 모 게임사에 익명으로 헐벗은 일러스트를 만들어 납부하고 있었는데 이 역사에서 그런 게임사가 있을까? 하지만 동생의 표정이 이상하다.

“미안한 일인데 방 없애고 돌아왔어. 내가 돈을 좀 못 벌어서 독립해서 사니 집값이 너무 비싸서 어쩔 수 없더라고. 지방으로 내려가서 독립하는게 나을 것 같아.”

“버는 만큼 살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냐. 이거 몸 키우는데 쓰라고 주는 용돈.”

동생한테 백 원 지폐 두 장(본래 역사기준 36만원)을 쥐어주니 눈이 동그래져서 뒷주머니에 우겨넣는데 힘들게 사나? 은근슬쩍 방 안을 돌아보니 녀석은 한창 그림을 그리는지 헐벗은 여성이 모니터에 있었다.

“형! 미안해 이런 일 하는 게 부끄럽지만 내가 배운 것이 이런 거라서 일본 애들 취미에 맞춰서 그릴 수밖에 없어. 가급적이면 빨리 방 구해서 나갈 테니······.”

“누구냐? 복장을 보니 명나라 옷 같은데 야시시해서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이 역사에서의 나는 동생의 행동을 못마땅해 하는 나쁜 형이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과거의 ‘나’의 희생자이니 어느 정도 챙겨줘야지. 동생은 내 얼굴을 한참 돌아보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양옥. 명나라 말기의 여성 장수야.”

그러니까 팔 근육선이 살아있고 복근도 여섯 갈래로 갈라진 저 장수가 진양옥이라고? 이게 말이 되나? 녀석이 그리던 헐벗은 그림들은 죄다 근육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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