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39화 (239/573)

< 현대 외전 12화 – 많이 이상한 세계대전 >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서 설명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나름 유명한 일화였는지 상세한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일시와 장소까지 정확히 나와 있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날뛰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1942년 12월 11일, 모스크바 탈환전에 참전한 대한 공화국 육군 제 12 기동군단 병사들은 필사적인 각오로 싸웠다. 이미 스탈린그라드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함락당한 상황에서 돌출부를 마련하기 위한 전투였다······.]

독소전쟁의 핵심 전선 세 곳이 모조리 붕괴해 버렸다. 본래 역사에서 800일 이상을 버틴 레닌그라드가 함락당하면 러시아의 역사적 수도가 함락당한 것이며, 스탈린그라드가 함락당했다면 소련의 공업 체계가 붕괴당한 것이다.

일단 역사적인 상황은 넘어가자. 왜 독일이 저렇게 기세등등하게 날뛰었는지는 나중에 전쟁사를 확인하면 될 일이고 중요한 것은 설명을 읽어서 전황을 확인하는 것이다.

[당시 공화국군은 시베리아 철도를 통한 불안정한 보급으로 인해 충분한 대전차 병기를 보유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김일옥 소대장은 기지를 발휘하여 시가지에서 퇴각하는 적의 전차에 올라타 쇠지레와 수류탄으로 격파하는 데 성공하였다.]

[계속된 탈환전에서 김일옥 소대장과 유사한 방식으로 파괴된 적의 전차는 26대에 달하며 40여 명에 달하는 용사들이 희생되었다. 이후 대전차 화기의 보급으로 이러한 육탄전은 중단되었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기개를 발휘한 김일옥 소대장의 용기는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전차를 잡는 데 출입구 역할을 하는 해치를 뜯어내서 파괴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본래 역사의 외할아버지가 해준 경험담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다음과 같았다.

‘낙동강 전선에서 한창 인민군을 막아내고 있었는데 승전 소식이 전해졌었지. 인민군 전차가 대전차 로켓을 맞고 궤도가 끊겨 버렸단다. 당시 6사단에 속해 있던 장병 일곱 명이 달려들어 전차를 맨손으로 때려잡았지.’

당시 열여섯에 불과해 학도병으로 참전한 외할아버지의 증언이어서 신빙성이 없다 생각했었다. 나중에 심심한 마음에 자료를 찾아보니 정말 신녕(新寧) 전투에서 단 한 건이지만 맨손은 아니고 쇠지레로 전차를 잡은 사례가 있었다.

- 신녕 전투에 나선 장병들은 대전차 로켓과 수류탄 그리고 휘발유를 넣은 화염병으로 인민군의 전차를 제압하였다. 한 전차는 쇠지레를 이용해 해치의 틈을 벌려 위협하였으며 그 전차는 한국전쟁 최초로 보병에 의해 나포되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상황이 다르다. 6.25 전쟁의 사례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북한 전차병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으니 궤도를 터뜨릴 수 있었고 호위를 받지 못하는 전차를 제압할 수 있었다.

교육 수준도, 전차병의 능력도 뛰어날 전쟁 초기의 독일군에게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전시된 티거는 대구경 고폭탄에 휩쓸린 듯이 전면이 엉망이다. 망가진 티거를 가져올 이유가 없으니 당시 증언을 바탕으로 고증대로 망가뜨린 것이 분명하다.

소련의 KV-2 같은 대구경 고폭탄을 사용하는 전차에게 두들겨 맞고 퇴각하던 와중에 변고를 당했던 것 같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여겼지만 맞은편에 전시된 전차가 범인이었다.

<대한 공화국 41식 중전차, 1942년 5월 양산>

[41식 중전차는 대전 초기에 양산된 중전차로 포르쉐 박사가 개발하였던 혼합(混合 - 하이브리드) 전차의 고질적 문제점인 험지가동 성능을 개선하기 위하여 양산한 전차이다. 초기형은 포방패 문제로 약점이 있었으나 후일 개수되었다.]

[74톤의 중량이지만 만천(滿天)공업에서 설계한 화서(華西) 26형 엔진의 960마력에 달하는 출력으로 기동성능이 우수했으며. 전면 30도 경사장갑 120㎜, 포탑 장갑 240㎜의 방어체계와 초기 형부터 130㎜ 주포를 사용하였다.]

130㎜ 구경이면 동구권이든 서구권이든 쉽사리 사용하지 못하는 구경이다. 대부분 이러한 대구경 주포도 장전 보조기구를 사용해서 10초당 1회 발사속도를 유지하려 하지만 카탈로그 스펙은 초기 발사 기준 분당 6회 발사이고 다른 내용은 없었다.

“3 대 400 정도 하면 장전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포탑 내 탄약이면 허리만 돌려서 장전할 수 있고. 포탑도 큰 녀석이니 10발까지는 어떻게든 될지도 몰라.”

[초기형은 130㎜ 주포 34구경장을 사용하였으며, 이후 2회에 걸쳐 개수되어 최종적으로 60구경장까지 개수되었다. 후기 형은 엔진 출력 부족으로 49식 중전차로 개수되었다. 첫 전투인 모스크바 공방전에는 240대가 참가하였다.]

초기 양산품이어서 구경장(주포 직경과 길이의 비, 주포의 길이를 규정한다)이 짧은 녀석이지만 전체적인 형상은 미군에서 도입하지 못한 M6전차의 최종 모델인 M6A2E1과 흡사하고 차체 능력도 거의 비슷하다.

주포만 조금 손보면 티거2와 대등한 전투가 가능한 녀석과 싸웠을 나치 독일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을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상세한 일을 알아보려면 기록을 봐야겠지. 2차 세계대전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서 단독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입구에 있는 거대한 사진은 이전에 보았던 한양의 경복궁, 옛 황실의 심장부를 방문한 나치당의 간부들이었으며 대표는 나의 투쟁의 공동 저자인 루돌프 헤스였다. 서열만 높고 권력은 없는 자이지만 고위 간부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리라.

[1934년 총통의 자리에 오른 아돌프 히틀러는 대한 공화국에 대한 우호 의사를 드러내며 대한 공화국에 대한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독일을 안정시킨 히틀러는 당대의 위인으로 꼽힌 인물이기에 대한 공화국도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당시 연설에는 ‘완벽한 학문과 완벽한 몸’이나 ‘동양 유일의 육체적 초인(Übermensch, 위버멘쉬)’도 들어 있었으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치즘의 핵심은 우생학이며 대한 공화국을 최고의 육체적 능력을 지닌 우생학적으로 완성된 집단으로 여긴 것이다.

[대한 공화국의 7대 총리 조만식은 나치 독일의 태도에 대하여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전체주의와 팽창정책에 대한 깊은 염려를 보내며, 그들이 내세우는 극단적 인종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반면 아돌프 히틀러는 이러한 염려 섞인 시선에 대하여 ‘민족의 틀을 벗어난 위대함’이라는 미사여구를 섞어가며 입신체비에 대한 찬사와 옛 속령의 교화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양국은 우호 관계를 맺었으나 이는 전쟁 이전의 배후 정리의 일환이었다.]

변한 역사에서도 여전히 역겨운 이론이라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대한 공화국은 스스로 학문을 통해 뛰어남을 쟁취하였으며, 속령에 있던 사람들은 대한 공화국에게 계몽되었다 여긴 것이다.

쓸모없어 보였지만 히틀러의 야욕을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설명에서는 대한 공화국과 독일이 외교 회담을 가지자 영국과 소련이 병력을 이동하는 등 경계의 눈초리를 보였다 하였다.

근대 역사를 배웠으니 알 수 있었지만 영국은 오랜 호적수였다. 본래 역사의 [그레이트 게임] 이상의 분쟁을 거듭하였고. 소련은 성립부터 대한 공화국과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두 주적을 대한 공화국을 통해 견제하려는 의도는 확실히 통했다.

[대한 공화국은 전쟁 초창기에 중립을 표방하며 기존의 군사적 동맹을 계승한 자유 프랑스 세력을 후원하고 참전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942년 1월 유럽에서 급보가 전해지며 여론이 급변하였다.]

[독립신문 특파원이 전한 내용은 대한 공화국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나치당의 당수 히틀러의 명령으로 유대인을 비롯한 열등 민족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었으며, 장애인을 말살하는 T4 작전의 실시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다른 나라랑 우호 관계를 맺는데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나? T4 작전과 홀로코스트를 대한 공화국 사람들이 우호적인 시선으로 볼 것 같았어?”

당시 윤리 기준으로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대한 공화국에 전해진 홀로코스트는 근대사에 길이길이 남을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치 독일은 대한 공화국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으며 이는 대한 공화국의 헌법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 있다. 입신체비가 불가능한 선천적 장애인은 양반들이 챙겨 줄 정도로 후한 대접을 하였으며 이는 현대에도 이어오고 있었다. 장애인 시설? 대한 공화국은 1950년에 생겨났으니 말 다했지.

다른 국가도 아니고 대한 공화국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입신체비를 찬양한 국가가 형언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를 일삼으니 수많은 자원입대자가 생겨났다. 결국 대한 공화국은 1942년 6월 참전을 결의하였다.

“단선(單線)인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닥치는 대로 병사를 투입하다다니. 대한 공화국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명백하게 드러났군.”

거대한 사진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착역인 평양역에 군집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북방 부대에 도착해 삼 개월의 훈련을 마치고 바로 파병될 예정이었다.

솔로몬 제국이 속국 이집트를 통해 점거하는 수에즈 운하는 대한 공화국에게 무제한적으로 개방되었으며, 한창 내전 중인 일본과 언제나 으르렁거리는 중국의 세 국가를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한 모든 병사가 파병된 것이다.

거리상, 시간상으로도 본래 역사보다 불리한 싸움이 시작되었지만 대한 공화국과 옛 대한 제국의 국력은 그런 불리함을 뒤엎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모스크바 공방전에 대한 자료는 군사 박물관이니 거대한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개중에 한 전투는 전차와 전차 간의 시가전의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바로 옆에는 걸레짝이 된 전차에 올라탄 병사가 온 힘을 다해 해치를 뜯어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전시물품을 보며 상상에 젖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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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7월 독일에게 함락된 모스크바에 포성이 빗발쳤다. 이미 끝난 전쟁이라 생각하고 안심하였던 나치 독일은 다섯 달 만에 새로운 적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련의 겨울 공세는 예정된 일이었지만 110만 명에 달하는 모스크바 수비군의 상대는 되지 않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새로운 적은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괴물들이었다. 80만에 불과한 소련 잔존부대의 구원병으로 35만에 달하는 대한 공화국군이 참전한 것이다.

나치 독일에게 점령된 크렘린 궁의 첨탑에 거대한 포연이 치솟아 오르며 굉음이 울렸다. 이윽고 시가지에 거대한 포연이 솟구치며 대한 공화국의 공세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Scheiße! 저놈의 공화국군 새끼들은 지 몸을 자주포에 쑤셔 넣어서 쏘아대나!”

“듣자 하니 구경이 24㎝라더군요. 우리가 쓰는 베스페(vespe)는 10.5㎝인데 위력 차이가 몇 배인지 궁금합니다.”

“닥치고 무전이나 들어! 빌어먹을! 이러다가 귀가 나가게 생겼네. 저딴 괴물딱지 때문에 벌판에 나서지 못하고.”

중부집단군 휘하 제4기갑사단에 소속된 35 전차연대 소속 막스 하사는 끝없이 이어지는 공세에 치를 떨며 전장을 살폈다. 전투가 시작되고 여드레가 지났지만 재구성한 방어선은 속속들이 붕괴되고 있었다.

대공포와 폭격기 그리고 전투기가 어지러이 수 놓인 하늘에서 한 대의 Bf109가 연기를 내며 추락하였다. 무전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황을 알려주었다.

“전방에 적 윌슈바인(Wildschwein – 멧돼지) 다섯 대 확인! 보병과 같이 적의 돌격을 돈좌시키랍니다!”

명령이 하달된 티거 전차가 천천히 전방으로 전진하였다. 본래 너른 벌판에서 전투를 벌여야 할 전차들은 시가지로 바짝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는 400대에 달하는 대한 공화국의 자주포로 인한 전략의 변화였다.

대한 공화국의 야포와 자주포는 끔찍한 위력을 자랑했다. 큰 놈은 추정 사거리 27㎞에 불발된 탄환으로 추정한 구경은 240㎜, 이런 녀석을 전차보다 많이 끌고 왔으며 40초당 1발을 발사하는데 전차 대열을 노려 쏠 정도로 정확도가 뛰어났다.

구경이 작은 녀석도 만만치 않았다. 180㎜의 구경이지만 사거리는 대등했고 발사 속도도 대등했다. 가뜩이나 자주포와 야포가 부족한 독일군 입장에서는 시가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윌슈바인 발견! 정차!”

당당하게 전면으로 나아가 압도적인 공격력과 든든한 장갑으로 적을 분쇄하던 6호 전차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담장 틈새에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살아남기 위해 숨을 죽이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초탄! 차체 전면 관측창으로 쏴!”

41식 중전차 특유의 거대한 포탑은 높은 관측성능과 130㎜ 주포를 수용할 공간을 마련했지만 시가전에서 쉽사리 발각되는 단점이 있었다. 수많은 전차를 고철로 만들었던 라인메탈 사의 역작 8.8㎜ 56 구경장 주포가 불을 뿜었다.

차체 전면의 경사에 불룩 튀어나온 관측창을 노렸지만 41식 중전차도 전방으로 기동 중이어서 조준이 빗나갔다. 두꺼운 전면장갑에 흠집이 나고 차체가 정지하며 포탑이 부드럽게 돌아 티거를 조준했다.

“도탄 되었습니다!”

“300m 거리인데 이거 하나를 못 맞추나! 온다! 차탄 준비해! 운전수 죽이고 빠진다!”

41식 전차의 고폭탄이 발사되고 굉음과 함께 티거가 숨어 있던 벽돌담이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며 먼지를 피워 올렸다. 차탄을 쏘고 바로 퇴각하면 되리라 여겼지만 다음 탄환은 동시에 발사되었다. 고폭탄이 적중하며 티거의 포방패를 뒤틀어 버렸다.

“으아아아아악!”

“닥치고 빨리 빠져! 상황보고!”

“놈이 추격하지 않습니다! 명중했습니다!”

접근하던 41식 전차의 포방패 하부에 탄환이 적중하며 둥그런 포방패에 도탄(跳彈)되어 차체 상부, 운전수의 머리 위의 얇은 장갑에 틀어박혔다. 샷 트랩이라 하는 물리 현상을 응용한 유효 사격이었지만 티거는 전속력으로 후진하였다.

운전수 한 명만 죽었다는 뜻은 나머지 인원 모두가 살아 있다는 뜻이며. 조향장치를 파괴하여도 주포와 포탑은 멀쩡하게 가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티거가 후퇴하기도 직전 발사된 세 번째 탄환이 다시금 티거의 차체 전면에 쑤셔 박혔다.

“미친놈들! 130㎜를 쓰면서 20초 만에 세 발을 쏴? 상황보고! 적진에서 물러났으니 저속으로 후퇴하며 손상 부위를 점검한다.”

주포를 조정하던 포수는 해치를 열어 밖을 보더니 울상을 지으며 보고를 시작하였다. 130㎜ 고폭탄에 두 대를 얻어맞았으니 부품 대부분이 파손되어서 전투는커녕 퇴각도 불투명할 지경이었다.

“주포 가동 불가, 포방패가 완전히 틀어진 것 같습니다. 포탑 링에도 파손이 있는지 회전 속도가 매우 느려졌습니다.”

“차체 상부 기관총 가동 불가, 전면 기관총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퇴각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적의 보병 돌격을 막을 수 없으니 제4지점으로 일제 퇴각하라는 명령입니다.”

적 병사 한 명을 죽인 대가로 전차가 고철더미나 다름없이 변해 버렸다. 이대로 남아 있으면 온갖 방법으로 개죽음을 당하니 후방으로 대피하여 여유분의 전차를 수령하여 나서야 하리라. 차체를 돌려 퇴각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전차 꽁무니에 달라붙어 비명을 질러댔다.

“뭐야?”

“우리 병사인데 공화국군 돌격에 도주하는 모양입니다. 전차에 달라붙어서 태워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차피 죽을 거니까 신경 꺼.”

막스가 심드렁하게 말하는 순간 가냘픈 진동이 전차에 전해지고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잠망경을 돌려 저 멀리 있는 건물을 확인하니 팔 층 건물의 중간에서 기관총을 쏘아대는 대한 공화국 군인이 보였다.

“미친놈들. 어느새 중기관총을 짊어지고 계단으로 올라가서 쏘아댄다고? 저런 괴물들을 상대로 어떻게 이기란 말이야? 애초에 우리랑 왜 싸우는데?”

50m쯤 후방에서는 퇴각하던 와중 보병의 화염병에 맞았는지 아니면 전차포에 맞아 폭발하는지 몰라도 전차 탄환 유폭이 분명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몇 번이고 보아온 일이지만 주변에는 대한 공화국 군인들이 거침없이 돌격하고 있으리라.

다시 둔한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이틀 전에 퇴각하던 보병이 죽기 살기로 삼 층에서 뛰어내려 포탑을 움켜쥔 일이 있었다. 막스는 잠망경으로 얼굴이라도 보려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개 같은 놈이 떨어지면서 잠망경을 걷어차? 넌 복귀하면 죽기 직전까지 처맞는다!”

큐폴라를 통해 볼 수 있는 시야는 극도로 제한적이었고. 독일 전차는 포수 잠망경이 없기에 정체불명의 인물의 얼굴도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 빠직

“자동차라도 밟았나?”

“전방에는 별다른 장애물이 없습니다. 혹시 대한 공화국 놈이 올라탄 거 아닙니까?”

“그랬다면 화염병을 던져 엔진을 불태우거나, 수류탄을 묶어 터뜨려서 엔진이 터졌을 거다. 지금까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데 만약 대한 공화국 놈이면 다른 전차가 쏘아 죽이겠지.”

제대로 된 대전차 장비가 있는 병사라면 진작 이 전차를 터뜨리고 남았으리라. 기껏해야 수류탄 두 개와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잠망경과 같은 치장물에 파손을 입히는 것이 전부이다. 아니, 전부여야 했다.

쇠가 우그러지는 소름 돋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본래 밀폐되어 측면의 관측구만 열려 있어야 할 전차장용 해치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양팔로 온 힘을 다해야 열리는 해치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은 점점 더 늘어났다.

“이 미친놈! 큐폴라를 뜯어내고 있다! 포탑 회전시켜!”

“회전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일단 제가 나서겠습니다! 젠장! 이 개새끼 출입구 위에서 힘을 주고 있습니다!”

포수가 황급히 보조해치에 달라붙었지만 너무 늦었다. 측면으로 돌려 여는 후기형 해치와 달리 전기형 해치는 상부로 밀어 여는 형태이니 부품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며 주먹 하나가 드나들 틈이 열렸다.

“아······.”

막스의 얼굴에 떨어진 수류탄은 데굴데굴 굴러 차체 하부. 포탄을 보관한 장소로 빨려 들어갔다. 포탑 위에 있던 병사가 쏜살같이 달려 도주한 순간, 수류탄이 폭발하며 모든 포탄을 유폭시켰고 티거의 포탑은 들썩거리다 허공으로 치솟고 불길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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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런 방식으로 격파한 것이 분명하다. 130㎜ 고폭탄에 맞아 가까스로 도주하는 적 전차를 대전차무기로 요격하고, 대전차무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이런 기지를 발휘하면서 마무리를 지었겠지.

인명 손실은 독일에 있어서 치명타나 다름이 없다. 육성이 힘든 전차병이 속속들이 죽어나가면 전쟁 수행능력은 급감할 것이다. 아직 2차 대전에 대한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지만 쉬다 가라는 듯이 전시관이 끝나고 정원으로 이어져 있었다.

정원에는 2차 세계대전에 사용한 전차들이 보였다. 앞서 언급되었던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뒤틀린 욕망이 만들어낸 33식 전차부터 각종 하이브리드 전차들이. 41식 중전차도 있었고 특이하게도 경전차가 있다.

“이건 실실 쪼개는 모습이 요동포탑(주포와 포탑이 일체화된 포탑)이네, 규격으로 보면 경전차이고······. 호주에서 생산한 부운(浮雲) 경전차? 낭만적인 이름이네.”

한때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요동포탑과 자동 장전장치를 활용한 경전차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 어린이공원에서 보았던 셔먼 전차보다 조금 작은 경전차였다.

아마 대한 공화국 체격 분류 기준으로 탑승하기 힘든 녀석이라 경전차로 분류했으리라. 수십 대에 달하는 전차를 차근차근 보면서 지나가는데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자주포가 있었다.

<흑룡 자주포. 구경 240㎜ 표준형>

본래 역사에서 미군이 M1 블랙 드래곤 야포라 하였고 잠시 T92라는 임시명칭을 받고 자주포로 사용되었던 흉악한 물건을 대한 공화국에서는 정식 제식명칭을 붙이고 자주포로 사용하고 있었다.

흑룡이라는 얄궂은 이름이 붙은 이유? 놀랍게도 이 자주포의 공식 장전수는 160㎏ 포탄을 장전하기 위해 5인 1조로 40초에 1발을 발사하였지만 4인이 운용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본래 흑룡 자주포의 공식 명칭은 38년식 팔준(八駿) 자주포였지만 흑룡세를 하는 이는 능히 넷이서 장전할 수 있다 하였고, 실제로 통용되었기에 국군 장병들의 투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누가 올려두고 갔는지 사진이 하나 있었다. 현대에 인화한 컬러 사진이었는데 포병으로 보이는 병사들 여럿이 부대에 전시된 자주포에서 흑룡세를 보여주고 있으니 갑자기 흑룡세가 마려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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