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36화 (236/573)

< 현대 외전 9화 – 근대인데 근대가 아님(2) >

미스터 카폰이자 알폰즈(Alphonse) 가브리엘 카포네, 본래 역사에서 알 카포네라 불리게 될 마피아 간부는 이은의 한국어 가운데 단어 하나를 알아들었다. 황제라는 단어의 의미도 발음도 확실히 들려오자 고민에 빠졌다.

‘내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면 대한 공화국 말로 황제폐하라 했어. 체격도 장난 아니고 복장도 최고급 연미복인 것을 봤을 때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귀족 출신을 잘못 건드렸군.’

근육의 힘으로 찢어진 상의가 손길에 북북 찢겨나가는 광경에 다른 이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한 공화국의 귀족은 어지간한 기업의 회장과 맞먹는 직위이며 알폰즈 같은 일개 마피아 간부가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

‘나름 귀족이었던 자들이니 일대일 결투에서 졌다고 뭐라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잖아. 도망치느니 싸워서 이기고 부끄러운 일이니 이야기를 말자 하면 큰 문제는 없겠지.’

결투가 공식적으로 금지된 것은 백 년 전이지만 사적으로 빈번히 벌어졌다. 아직도 영국 귀족들은 권투로 서로의 코뼈를 부수고,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는 칼로 결투를 벌이며 대한제국 연방국은 내수린이라는 방식으로 공식적으로 허용된 결투를 벌인다.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최악이자 최선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은의 찌르는 것 같은 시선을 받은 알 카포네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문을 닫고 슬쩍 목례를 하며 말했다.

“사나이답게 주먹으로 겨루겠습니다. 기습을 한 제가 잘못이니 처음 한 대는 양보해 드리지요. 주먹을 뻗으실 때까지 가만히 있겠으니 마음껏 한 방 날려보십시오.”

“지금 무어라 했는가? 일대일로 겨룬다고?”

알폰즈는 세력 간에 벌어지는 일대일 싸움에서 무패행진을 이어왔다. 그의 상대로 아메리카 출신은 물론이고 복싱 선수. 심지어 당시의 대한제국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 상대로도 모조리 승리를 거두었다. 알폰즈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보았다.

‘대한 공화국 출신이면 근육이 산더미처럼 많아도 주먹에 안 맞으면 그만이고, 턱에 근육을 붙일 방법도 없으니까 맷집이 좋아도 한도가 있지. 처음 한 방을 피하고 턱을 한 대 세게 후려치고 몇 대 더 후려갈기면 뻗겠지.’

그들의 몸은 근육 덩어리이니 답이 없었지만, 아무리 근육이 많아도 뇌진탕을 이겨낼 방법이 없었으니 첫 주먹을 피하고 턱이나 관자놀이를 세게 한 방 먹이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반면 이은은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괴상한 자세를 잡았다.

“그게 뭐요?”

“자네 제안대로 맨손으로 싸우겠네. 이 자세는 태껸꾼 임호(林虎)가 만든 새로운 자세지.”

아직 권투가 정립되기 이전의 시대이니 서로 맨손으로 악다구니를 겨루는 것이 기본이라 여기고 손으로 뭔가를 막는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은이 취한 자세는 양 주먹을 관자놀이 위치에 올려두었다.

현대 권투에서 철저한 안면방어가 가능한 하이 가드 자세이니 이은의 거대한 근육은 얼굴에 근육 갑옷을 씌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모습에 알폰즈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건들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대한 공화국 사람은 당한 만큼 되갚아주는 일이 당연하다 여겼으니 조금만 더 다가서면 특유의 힘이 넘치는 주먹이 날아오리라. 이윽고 이은의 몸이 움직였고 알폰즈는 피할 준비를 하였지만 예상외의 공격이 날아왔다.

왼손이 날아올지 오른손이 날아올지 고민하던 찰나 이은이 택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태클이었다. 충분한 하체운동과 어마어마한 근육의 폭발력은 알폰즈가 반응할 틈을 주지 않았다.

신장 189㎝, 체중 121㎏에 달하는 이은이 알폰즈의 허리를 움켜쥐고 바닥을 박찼다. 거대한 근육의 파도를 막아낼 방법이 없었지만 근육의 파도는 벽에 가로막혔다. 아니 가로막혔어야 했다.

“FU*K!”

창고를 개조하여 임시로 만든 술집의 벽을 구성하는 나무판자는 근육의 힘을 이겨내기에 너무나 미약한 재료였다. 임시로 만든 각목과 회반죽을 덧댄 목판이 단번에 박살 나버렸다.

“미친! 누가 술집에 황소를 풀어놨어!”

굉음과 함께 거대한 덩어리 둘이 튀어나왔다. 거대한 물체의 질주에 홀에서 끼리끼리 밀주를 마시던 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상황을 파악하느라 애썼다. 잠시 뒤 한 노신사가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도망치며 외쳤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 한 명을 매달고 벽을 뚫어! 아니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대한 공화국의 근육 괴물이다! 근육에 휘말린다! 어서 도망쳐!”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태클은 양탄자가 찢어지며 멈추었다. 하지만 지나친 충격을 받은 알폰즈는 바닥을 뒹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큰 충격을 받아 폐가 짓눌렸는지 숨을 들이켤 수도 없었으며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베이브 루스는 이은의 괴력을 놀랜 눈으로 쳐다보았고. 바닥에 뒹굴고 있던 조직원이 발작적으로 리볼버를 꺼내 들었지만 이형은 리볼버를 잡아채 손으로 뒤틀어 박살 내버렸다. 칠순에 가까운 노인에게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자 이형은 허탈하다는 듯이 말했다.

“유길이는 막내인 데다 다른 형제들과 나이 터울이 제법 있는 녀석이라네. 덕분에 입신체비를 배워도 다른 형제들을 뛰어넘을 방법이 없어서 다른 길을 택했지.”

“다른 길이라 하셨습니까? 혹시나 근육만 키우는 길은······.”

“아니라네. 장남인 선(墡 - 본래 역사 완친왕)이가 입신체비기구에, 차남이자 적자인 척(坧 - 본래 역사 순종)이가 입신체비 그 자체에, 셋째인 강(堈)이가 식이에 관심을 보였지만 저 아이는 내수린과 택견을 익히는 것이 시작이었지.”

이은은 타고난 몸으로 입신체비를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난 열일곱부터 내수린을 시작하였다. 이후 내수린조차 부족하다고 여겼으니 대한제국에 있던 태껸을 비롯한 격투기 선수들의 교육을 받기에 이르렀다.

비록 기술을 익힐 시간이 부족했지만 이은의 타고난 몸과 수십 명의 사람들의 경험과 연구는 그를 최고의 내수린꾼이자 이종격투기라는 새로운 무술을 익힌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베이브 루스는 이름을 듣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선, 이척 그리고 이강이면 대한제국의 황······ 황족이 아닙니까! 수양자라는 인물의 직계 후손인 황족 중의 황족이요!”

“틀린 말은 아니네. 나는 입신체비를 창안한 수양자의 직계 후손이며 일 년 전까지만 하여도 종친으로 많은 대접을 받았었지.”

이형의 말이 끝나자 다른 마피아들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기껏해야 대한제국 시절의 귀족이라 여겼던 상대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의 경영진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한 공화국 옛 황실 규모가 방계만 해도 포드와 비슷한 수준이라던데 우리가 헨리 포드의 조카를 총으로 쏘려던 거잖아! 연장 버려! 함부로 손대지 말고 기회 보아서 붙잡고 진정시켜!”

다른 이들이 뭐라 하건 이은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막으려는 알폰즈의 멱살을 잡고 내던진 다음 두툼한 왼손으로 목을 휘어잡았다. 오른손을 높게 치켜들자 팔근육이 꿈틀거리며 힘을 축적하였다.

“드므 가르기!”

주먹도 발길질도 아닌 오른손 손날이 정수리에 내리 찍혔다. 사람의 머리에서 났다고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소리가 나며 알폰즈의 코에서 코피가 솟구쳤다.

입신체비를 배운 사람이라면 주먹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이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며 섬세한 손뼈가 지나치게 강력한 근력으로 인해 박살 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손날은 전력을 다해도 뼈가 잘 상하지 않으니 마음껏 내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네 번째 드므 가르기는 내려쳐지던 와중에 가로막혔다. 부하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이은의 몸을 사로잡았다. 흉기로 위협할 수도 없는 신분이니 완력으로 막아내려 했지만 넷이 달라붙어도 이은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자와 나의 일대일 대결이다! 잡것들은 꺼지지 못할까!”

부하들이 달라붙은 사이 알폰즈는 정말 살기 위해 도망치려 하였지만 도저히 도망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술병을 내리쳐 깨뜨려서 마구 휘둘렀고. 이은도 흉흉한 기세에 잠시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만둡시다. 이러다가 두개골이 쪼개져서 죽겠으니 무승부로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구나! 참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흉기를 들었으니 나도 흉기를 들겠다!”

상대가 술병을 들어봤자 맨몸이니 스쳐도 피부가 찢길 것이니 자신이 더 유리하다 여겼다. 하지만 이은이 흉기라 칭한 물건은 흉기(凶器)가 아닌 가구(家具)였다.

20㎏은 될 법한 테이블이 쏜살같이 내리쳐지며 알폰즈의 몸을 강타했다. 하지만 이은의 분노는 끝날 줄 몰랐다. 그는 바닥에 자빠진 알폰즈의 목을 잡고 질식투(초크슬램)를 날리더니 다른 흉기, 아니, 가구를 들이밀며 말했다.

“네놈과의 대화는 역시 다른 대화 수단이 필요하구나! 접이식 의자!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잠깐 그건 쇳덩어리잖아아아아악!”

더 이상 싸움은 없었다. 자신에게 모욕을 가하고 흉기까지 들어 위협을 한 건방진 자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접이식 의자로 사람을 치는 신명 나는 소리에 조직원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찰 불러! 저러다가 죽겠다고!”

“지금 우리가 뭘 했는지 어떻게 알고 경찰을 불러! 그냥 튀자고!”

십오 분 뒤, 뒤늦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피투성이가 된 알폰즈 가브리엘 카포네를 병원으로 옮겼으며. 이은과 이형을 폭력 혐의로 형식상으로 구속하고 다음 날 석방하였다.

신문 기사에는 ‘대한 공화국 출신 사업가 두 명, 우연히 불법 주점을 발견하고 육박전을 벌여 제압하며 사태 수습을 위해 경찰이 출동’이라는 짤막한 기사가 실리는 것으로 끝났으며 알폰즈는 자신의 조직에서 제명당하게 되었다.

조지 허먼 루스는 뉴욕 양키즈와의 계약을 3년 뒤에 재개하기로 정하고 이에 대하여 이형이 10만 달러 규모의 배당금을 내놓기로 하였다. 그는 대한 공화국의 수도 한양에서 입신체비를 기반으로 한 훈련을 체험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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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수양대군이 만들었던 입신체비장은 네 배나 넓어졌으며 십오 층 규모의 거대한 건물과 드넓은 체육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베이브 루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입신체비장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오래전 나의 직계 조상이신 수양자께서 만드신 진고개 입신체비장에 온 것을 환영한다네. 자네는 아직 대한의 말을 익히지 못했지만 대부분 영어 정도는 할 줄 아는 이들이니 말을 익히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것이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저에게 당신들이 연구한 지식을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자고로 모든 일은 경쟁하지 않으면 쇠락하게 마련이 아닌가. 지난 올림픽도 조만간 열릴 올림픽도 모두 대한 공화국을 비롯한 옛 조선의 땅이던 곳이 기록을 독식하지 않는가.”

대한 공화국은 입신체비는 물론이고 각종 운동경기에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나치게 뛰어난 나머지 부작용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국제 경기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오랜 우방인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이 창안한 올림픽은 본래 전 세계의 축제였지만 대한제국과 그 연방이 올림픽 메달의 7할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윽고 선수들이 나서지 않을 지경이니 인기가 식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인재를 양성해 전 세계 운동경기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답이라 여겼으며, 의회에서도 이를 국책사업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베이브 루스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하니 저에게 대한 공화국의 모든 지식을 가르치려 하시는군요. 이대로 운동경기가 대한 공화국의 독식이 되면 인기도 사라지고 수준도 퇴화할 것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이네. 자네와 같이 뛰어난 자질을 지닌 자가 충분한 지식을 축적한다면 얼마나 많은 성과를 거두겠는가? 그러니 먼저 신체 능력 측정을 시작하여 자네에게 어떤 운동이 적합한지 알아보도록 하지.”

가장 먼저 나선 이는 이형의 장남인 이선이었다. 본래 역사에서 어린 나이에 죽은 완친왕이지만 여기서는 체격이 담대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건강한 몸이었다.

가볍게 몸을 푼 베이브 루스의 신체 점검이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엄청난 자질을 타고 난 사람답게 이선은 안경을 벗고 기록을 살피며 감탄하였다.

“여섯 달 동안 폭식과 폭음을 하였다는 것이 사실인가? 이 정도면 조금만 다듬어도 어느 운동경기에서도 대성할 수준인데.”

“제가 절제를 모르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여섯 달 동안은 더욱 심했지요.”

“그렇다면 더욱 놀랍군. 보통 사람이면 신체 능력이 3할은 줄어들었을 것이네. 자네의 몸은 부모께서 내려주신 보배나 다름이 없네.”

이선의 호를 따 완화(完和)라는 상표명이 적힌 입신체비기구를 통한 측정이니 오차는 거의 없었다. 베이브 루스의 신체 능력은 감퇴한 지구력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입신체비사를 가볍게 능가하고 있었다.

다음 순서는 식단 점검이었다. 본래 역사에서 의친왕이라 불렸던 이강(李堈)을 만난 베이브 루스는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43세면 슬슬 손자를 볼 나이였지만 그는 30대 초반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네의 식단을 분석했는데 육질(단백질)이야 충분하다 못해 다소 과도하게 섭취하니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질(지방)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것이지.”

“제가 기름을 많이 먹는다니요? 제가 많이 먹기는 하지만 본래 힘을 기르려면 기름진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답이 아닙니까?”

“과도하면 부족함보다 못하다네. 조금 불편하더라도 식생활을 바꾸어서 세견물(비타민)을 풍부하게 섭취하고 체중을 조금 줄여서 95㎏에서 머물도록 하지. 체지방률을 줄이고 근육량을 늘리면 될 것이네.”

다음 날 아침부터 베이브 루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평상시에 먹는 식단처럼 계란 10개 이상을 사용한 오믈렛, 손바닥보다 거대한 햄 세 조각, 버터를 잔뜩 바른 토스트 여섯 개, 그리고 맥주 두 병이 아니었다.

계란은 15개나 있었지만 10개는 흰자였으며, 평소에 입에 대지도 않는 바나나와 포도가 있었다. 여기에 토스트도 있었지만 버터는 얇게 발라져 있었고 햄 대신 석쇠에 구운 닭가슴살이 나왔다.

“이걸 먹고 힘이 난단 말입니까? 평소에 먹던 식사량의 절반이 조금 넘는데요.”

“나를 믿어보게, 자네 정도의 체격과 운동량이면 열량 기준으로 6,500㎉ 정도면 적당할 것이고 한창 훈련을 할 때에 8,000㎉이면 적합하다네.”

“일단 믿어는 보겠습니다만······.”

평소처럼 기름진 식사를 배가 터지도록 먹고 싶었지만 베이브 루스는 식후 휴식시간에 회화를 보았다. 일전에 보았던 이은의 체격과 흡사한 모습이었지만 회화는 한눈에 보아도 고풍스러운 회화였다.

“한 달만 참아 보게. 이것은 사백칠십 년 전 입신체비를 만들어내신 수양자께서 창안한 식단을 세월의 흐름에 맞게 수정하여 만든 것이라네. 수양자께서는 이러한 식단보다 못한 것을 먹고 삼대 운동 1,350근을 달성하셨지.”

1,350근이면 870㎏이니 어중간한 장정 네 명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리라. 별소리 없이 식이조절을 하고 한 달이 지나자 정말 예전보다 기름지지 않고 적은 식사에도 훈련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후 베이브 루스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입신체비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인 기초 훈련이었다. 적서차별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차남인 이척(본래 역사의 순종)의 입신체비는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입신체비사가 아닌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힘입니다!”

“그렇지! 삼대 운동으로 발달하는 큰 근육이 가장 중요하며,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척추 기립근을 비롯한 심부 근육(코어 근육)이라네. 자네들도 입신체비의 외식(外飾 - 외형)은 알고 있지만 본질은 다르다네. 앞으로 몸이 녹아날 걸세!”

대한 공화국의 입신체비 관련 연구는 본래 역사의 70년대에 근접하였다. 전자기기를 통한 분석이 불가능하니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지만 신체 부위의 협응성(協應性)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단순무식한 훈련을 반복하던 베이브 루스에게는 고문과 마찬가지의 일이었다. 팔의 힘과 어깨의 힘이 전부라 여겼지만 집중적인 하체와 복근 운동을 하니 정말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

“대체 왜 공을 던지는데 어깨만 다루지 않고 허리와 허벅지도 중요하다 하십니까!”

“입신체비를 통해 분석하니 상투(오버헤드)로 던지는 이는 팔과 어깨가 절반, 나머지 몸이 절반이라네.”

전신을 쥐어 짜내는 훈련은 시즌 외는 훈련도 없이 방만한 생활을 하는 그에게 끔찍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식단조절이 끝나자 군살이 사라졌으며, 훈련을 거듭할수록 몸이 나날이 변해갔다.

드럼통 같은 허벅지는 근육의 결이 살아났으며, 팽만한 뱃살은 근육이 드러나지 않아도 평평한 뱃살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전성기 이상의 몸을 완성한 베이브 루스는 승부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간혹 교정 훈련을 받는 다른 야구선수와 쉴 새 없이 경쟁하였고, 지구력에서 아쉬운 패배를 거듭하자 가장 큰 적인 담배와 술을 사실상 끊어버렸다. 그렇게 일 년 반이 지나고 본격적인 실전 훈련이 시작되었다.

“자네는 본래 포수로 시작해서 투수가 되었다 했지. 좌완으로 세게 던지는 투수라면 대흉근을 팔아서라도 데려오라 하였는데 이참에 귀화할 생각은 없나?”

“계약 조건이 있지 않습니까. 오래간만에 공을 던져 사구가 나올지도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오랜 휴식 기간 끝에 던진 첫 공은 높게 떠서 포수의 안면 보호구를 강타해 버렸다. 포수가 뒤로 자빠지고 타자 또한 질겁하여 공을 바라봤지만 베이브 루스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야! 살살 안 던져! 아니지 내가 이걸 왜 못 봤지?”

“지금 공 보였나? 빨랫줄이 지나간 것 같은데?”

속도 측정기구가 있는 시대도 아니니 감각에 의한 측정이 전부인 시대였다. 하지만 베이브 루스가 평소와 같이 던진 공은 너무 강하고 너무 빨랐다. 몇 번 공을 던져보았지만 느릿느릿한 커브의 구속마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잠깐! 나 잠깐만 타석에 서보고 싶어!”

평소에 사용하다 시즌 후반부가 되면 교체하였던 46온스(약 1.3㎏) 야구 방망이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매서운 눈빛을 보이며 구질을 판단하던 루스는 전력을 다해 방망이를 휘둘렀고, 공은 쏜살같이 저 멀리 하늘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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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삼 년간의 공백기와 본래 역사와 비슷한 시기의 은퇴를 감안하여도 기록은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1928년 71홈런 달성, 이후 이 기록은 2000년 달성되었음. 1925~37년까지 총 13회 홈런왕, 7회 타점왕, 아메리카 리그 9회 우승. 이게 사람이냐 괴물이냐!”

전성기 시절 3년을 쉰 덕분에 홈런은 820개에 머물렀지만 출루율 1위에 삼진이 1,100에 불과했다. 여기에 방어율이 2.3이니 간단히 말하면 투수로 전설을 찍고 타자로 전설을 찍은 것이 이 역사의 베이브 루스이다.

그리고 단편영화에 나온 것이 사실이면 이 역사에서 외할아버지가 예전부터 사용했던 대역기는 수양대군의 후손이 만든 회사에서 생산한 제품이다. 그리고 코어머슬? 협응력? 내가 막 운동 시작할 때에 대세가 되었던 이론이다.

“입신체비 박물관과 황실 박물관은 내가 휴가를 써서라도 가보고 만다.”

이러다가 휴식월이 끝나도 휴일마다 박물관을 돌아다녀야 할 수도 있다. 규모가 얼마나 거대할지 모르겠지만 다 돌아보는 게 가능이나 할까.

생각해 보니 대한 공화국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주변 국가의 상황도 중요하자. 듣자 하니 큐슈를 1919년에 일본에 돌려주기로 했는데 큐슈 관리가 그때까지 가능이나 했을까.

경인왜변으로 큐슈를 할양받았을 때, 정확히는 명나라 2 : 조선 1로 나눠 먹었을 때에는 백 년을 버티면 잘 버틴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백 년도 아니고 사백 년이 넘는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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