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외전 2화 – 체육생활국가 >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결정적 문제가 있었다. 내가 아는 지하철은 서울이지 한양의 지하철이 아니니 한참을 헤맬 것이다.
몸도 튼튼한데 걸으면 운동도 되고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편해진다. 아침에는 입신체비장을 찾아가기 위해 휴대전화만 보며 움직였지만 이제는 변한 세상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눈을 사방으로 돌리며 약간 빠르게 걸어갔다.
[걷기 좋은 도시, 한양]
가로등에 붙은 안내판을 보니 동의할 수 있었다. 서울 길거리는 언제나 번잡하고 공기도 좋지 않으며 발이 쉽게 피로해지는 보도블록이 깔려 있지만 한양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성큼성큼 걸어 다니고 있었다.
“걷기 좋은 도시 한양이라. 이런 환경이니 정말 걷기 좋은 도시이네. 실제로 걸어 다니는 사람도 많고.”
서울 특유의 텁텁한 공기가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도로에서 지나다니는 차들이 매연을 뿜어대지 않는다. 정확한 것은 찾아봐야 알겠지만 차량의 절반 정도는 전기차로 보인다.
포르쉐 마크가 가장 많은데 대한 공화국에서 성공한 것인지. 아예 대한 공화국에서 포르쉐를 사들였는지 모를 일이다. 주택가로 들어와 걷고 있는데 젊은이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 야! 뚫렸어! 막아! 동준이 막으라고!
- 삼대 500 치는 놈을 내가 막겠냐!
공원 한편에 길거리 농구를 위해 반쪽짜리 농구 코트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바삐 몸을 놀리고 있으며. 반대편에는 정구채를 내려놓은 노인들이 한가로이 담배를 피면서 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조선에 우모구와 정구만 배급한 일이 아쉬웠는데 농구는 어디서 들어왔을까.”
조선시대에 현대 스포츠를 배급하려 하였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테니스와 배드민턴이 전부였다. 구기 종목 가운데 농구와 배구는 고무를 구할 길이 없어서 아예 포기했고 나머지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축구는 애써 공을 만드니 거대한 가죽덩어리가 되었고. 이를 걷어차는 것도 힘들어 축국(蹴鞠)과 비슷한 괴상한 놀이라 하며 하는 이가 없었다. 결국 폴로와 유사한 격구(擊毬)에서 쓰이며 갑사들의 마상 훈련용 종목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야구는 석전을 대신할 운동이라 하여 소개해 봤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규칙도 문제지만 석전꾼들이 공을 잡으면 본능적으로 사람의 몸으로 던져대는 바람에 경기가 진행되지 않을 지경이었고.
하지만 내가 실패한 일이 현대에는 성공했다. 주택가의 골목에서 서로 모여 운동하니 생활 스포츠의 발전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잠시 선수들의 몸놀림을 보는데 덩크슛이 들어갔다.
- 봤냐? 봤어! 꽂아 넣기(덩크 슛) 또 들어간다!
- 너 이시꺄 절육(커팅) 안 해? 또 덩치만 믿고 지방으로 밀어버리지!
- 밀리기 싫으면 너도 근육을 기르던가!
체격이 우람한 대학생이 닥치는 대로 치고 들어가 덩크 슛을 성공시켜 버렸다. 혹시 내가 길거리 농구 프로선수들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덩크슛을 꽂아 넣는 모습을 본 노인들은 껄껄 웃으며 코트로 돌아갔고 대학생들도 전혀 놀라지 않은 채 다시 공을 튀기며 경기를 이어간다. 그냥 좀 잘하는 동네 청년들이 분명하다.
“생활 체육 맞아?”
접근성, 빈도 그리고 수준 모두 원래 역사의 생활 체육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 아무리 가치관이 변해도 삶이 여유로우니 저런 여가 활동도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저런 잡념을 물리치면서 걸어가는데 현수막 거치대가 보인다.
같은 동네 이야기도 아니니 슬쩍 훑어 보고 지나는데 내 눈길을 사로잡은 물건이 있었다. 현수막 거치대를 보니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내수린의 근본이 돌아온다! 최초의 내수린극 광왕 궁예(弓裔)가 양상도(사모아)의 내수린꾼 두와인(杜窪因)을 통해 재현될 예정! 2019년 1월 3일 장충 체육관]
솔직하게 말해 내수린은 사장될 줄 알았다. 부상 위험도 심각하며 어지간히 단련된 입신체비사들이 오히려 서로의 완력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 있다 여긴 것이다.
포기하려 했던 내수린이 진짜 문화유산으로 남아서 장충 체육관에서 재현될 지경이라니. 더군다나 내수린꾼의 몸을 보니 조선시대의 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현수막이 하나가 아니었다.
[대한 프로 농구 올스타전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개최]
[당신도 할 수 있다! 아마추어 탁구 대회 예선 개막!]
[(구)대한제국배 야구 예선 2회전 대한 제국 대 러시아 2월 11일]
“운동에 미친 나라네. 미친 것 보다는 열광적으로 반응한다는 말이 맞겠지. 그런데 러시아 애들이 야구를 하나? 그리고 국제대회도 아닌 (구)대한제국배(杯)에 왜 러시아가 끼어들어?”
휴대전화를 켜고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직전 꾹 눌러 참았다. 자고로 서적보다 정확하고 폭넓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까. 다시 정신없이 발을 놀려 원래 역사의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는데 할 말이 없었다.
“이런 미친. 세종로와 사직로 모두를 지하로 묻어버렸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다. 12차선의 세종로는 모두 지하에 파묻혀 버렸으며 공원이 세워진 것이다. 아마 주변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겠지. 그렇지만 이곳은 공화국이지 조선이 아니다.
시대가 변하며 건물 근처에 설치된 비석이 육조(六曹)가 아닌 십(十)조가 있었음을 나타낼 뿐이며 광장 중앙에는 이순신의 동상은 없었지만 세종대왕님의 동상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의 퉁퉁한 몸도 아니며 나이가 들었을 때의 노쇠한 몸도 아니다. 쉰 살 무렵 형님에게 양위할 당시의 세종대왕님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역사를 바꿔서 뿌듯한 마음도 들었지만 성웅(聖雄) 이순신이 사라진 사실은 아쉽다.
“조선이 너무 강해져서 활약 할 방법이 없었겠지. 그래도 위인전에 나옴직 한 인물인데 너무 강직한 성품 덕분에 주목받지 못했나? 그건 그렇고 사람들이 왜 저리 고개를 숙이고 있나?”
광화문을 통해 옥당 국립도서관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광화문 월대(月臺) 입구에 설치된 비석에 인사를 올리고 지나가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 인사를 올리니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인사를 올리며 훑어보았다.
- 공화정이 되었으니 궁궐은 옛 이름이 된 황가에서 사사로이 소유할 물건이 아니다. 외전(外殿 - 외부 업무 공간)과 모두와 내전(內殿 - 왕족의 생활공간) 가운데 필요가 없는 곳을 자유롭게 써도 좋으니 이를 모두를 위하여 사용하라.
공화 혁명이 아니고 어떠한 사유에 의해 황실이 스스로 해산했으니 황실의 사유재산은 고스란히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재산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가에 헌납한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세금도 내지 않는 왕실이 14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부풀리느라 혈안이고. 보조금을 받아먹으면서 더 받아먹기 위해 궁전 수리를 정부에게 요청하는 판국인데 모범이 따로 없군. 광화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뇌가 정지해 버렸다.
너무나 거대한 근정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시대를 살면서 매번 보아왔던 건물이니 차이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언제 근정전이 삼층 전각이 되어버린 것이지? 그리고 청자기와는 다 어디로 사라지고 황동 기와가 올라가 있어? 아, 아니다 이런 것은 넘어갈 일이야. 조선이 너무 발달했을 수도 있잖아?”
오백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같은 건물을 계속 사용할 이유는 없다. 혹시라도 근대화가 되면서 권위를 살리기 위해 증축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 성장한 근정전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옥당 도서관은 홍위가 만든 홍문관 위치가 아닌 원래 역사의 고궁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 신분증을 제시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가장 궁금한 역사는 역시 임진왜란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임진왜란의 발발 유무이지. 역사적 사건이 그대로 일어났는지 검색해보자.”
도서 검색용 컴퓨터에 제목으로 ‘왜란’을 입력하니 80년대 서적인 [일본 문화 침입은 왜란이다]와 [끝나지 않은 문화의 습격 : 왜란]이다. 세상이 변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성진국일 가능성이 높았다.
왜변으로 검색하니 내용을 참고했는지 너무 많은 도서가 나와서 생략. 혹시 몰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이름을 입력했지만 역사가 변했는지 아예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임진왜란은 없었으니 다음 순서로 가장 많은 자료를 담은 책을 찾았다.
“한국 통계연감······. 아니 대한 공화국 통계연감이지. 이건 매년마다 나오는 책이니 그대로 있네. 이거만 빌리면 이상하니 다른 서적도 두어 권 더 빌려야지.”
대한 공화국이 얼마나 거대한 나라일까, 인구는 몇 명이며 평균 임금은 얼마나 될까, 군사력에 관한 정보는 어떠한가. 직원이 내가 부탁한 세 편의 서적을 가져왔고 가장 한적한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쳤는데 맨 첫 장에는 세계 지도가 있었다.
북방으로 넓어지다 못해 중국을 넘어 원래 역사의 러시아 땅 까지 집어삼킨 대한 공화국의 영토를 보고 한참 동안 지도를 쳐다보았다.
“대한 공화국이 원래 역사 기준으로 아무르 주 까지 먹었나? 그런데 큐슈는 언제까지 먹었던 거지? 바로 뱉어내 버렸나 아니면 근대까지는 유지하고 뜯어 먹었나.”
한참동안 지도에 홀려 있었지만 이런 거대한 국가라면 얼마나 번성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가장 먼저 경제 규모를 알아보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 역사의 화폐 가치를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우회할 방법도 얼마든지 있어서 잠시 기억을 떠올렸다.
“본래 역사에서 아버지 환갑에 사드린 금 100g 가격이 710만 원이니 순금 가격을 보자. 뭐? 금 100g에 3,750원?”
역사가 변했으니 금의 가치가 완전히 같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얼추 비슷하다 생각할 수 있으니 대한 공화국의 1원은 원래 역사의 2,000원보다 조금 모자라는 가치이다.
계속 충격적인 정보가 내 머리로 밀려들어와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대한 공화국 총 경제 규모가 8조원에 육박하니 달러로 따지면 약 14조 달러, 인구는 2억 9천만에 달했다.
경제규모는 유럽연합의 뒤를 이어 세계 2위, 군사력 세계 1위, 국방비 또한 세계 1위이다. 이것만 해도 원래 역사 미국과 경쟁할 만한 패권 국가인데 더욱 소름 돋는 사실이 있었다. 지금이야 각 국가가 분열하였지만 원래 하나의 거대한 국가였으며 상호 동맹 관계이다.
“말 그대로 근육으로 만들어진 합중국이군. 거대한 내해를 소유한 합중국.”
원래 역사 미국은 다섯 개의 눈이라 칭하는 국가가 있었다. 영연방 소속 5개 국가의 동질성을 이용한 동맹으로 긴밀한 정보 공유 관계를 구축한 상호 최우선 동맹국인 것이다.
이런 동맹을 대한 공화국도 가지고 있었다. 남아메리카를 제외한 태평양 연안의 모든 국가. 정확히는 일본을 제외한 6개국의 뿌리가 같으니까. 당장 대한 공화국의 수출입 총액의 50%는 이 블록 경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숨도 쉬지 않고 책을 읽어 내려갔지만 덮을 때가 되었다. 단순히 수치만을 따지면 될 일도 안 되고 앞으로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몸으로 익혀야 하니까. 다음으로 펼친 책은 가장 걱정하던 내용을 담은 녀석이다.
[수양대군, 왕이 되려 하지 않은 사내]
전반부를 훑어보니 나의 생애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에서 거의 완벽하게 다루고 있었다. 몇 항목을 제외하면 틀린 점이 없다.
[무력은 비범하였으나 이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철령 전투에서 적장 마오나하이를 쏘아 죽인 일이 있었으나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면 자리를 보전할 수 없다 여긴 것이 분명하다.]
“그건 정말 우연의 일치라니까. 두 발이나 적중한 것은 기적이었는데 이걸 이렇게 포장하네. 하긴 빙의하기 전의 수양대군은 사냥만 하면서 돌아다니는 한량이었으니까.”
[수양대군은 오이라트의 침공에 맞서기 위하여 스스로 하르빈으로 나아가 여진족들을 규합하려 하였다. 이러한 뜻을 들은 문종은 수양대군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하르빈으로 파견하였다.]
“이건 형님이 나에게 어명을 내린 것인데 잘못 해석했군. 하긴 이 서적 자체가 나를 호방하고 권력에 욕심을 두지 않은 초탈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으니. 그나저나 평가가 너무 후한걸.”
내 자신이 평가한 나의 행적은 위인으로 삼기에는 부족하고 평범한 학자로 삼기에는 충분하다 여겼다. 하지만 이 서적에서 수양대군은 세종과 문종과 같은 수준의 위인이 되어 있었다.
[수양대군은 제도를 정비한 조선의 방향성을 제시한 인물이었다. 제도를 정비하고 기틀을 만들어 둔 세종, 이후 왕위를 물려받아 적극적인 확장에 나선 문종. 이 둘을 보좌한 인물이 수양대군이었다.]
[그는 종친의 신분을 활용하고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학문의 연구에 쏟아 넣었으며. 이를 입신체비라는 학문으로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이는 이념적 학문에 매몰될 뻔 했던 성리학의 새로운 기조를 불러오게 되었다.]
[세종과 문종의 도움을 통해 완성한 입신체비를 통해 질병에 시달리던 세종과 과도한 업무로 몸이 쇠약해지던 문종의 신체를 정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세 부자(父子)가 밀접한 관계를 맺어 한 몸과 같이 움직였음을 뜻한다.]
혹시나 해서 떡밥을 뿌려뒀다. 만에 하나 내가 빙의자나 시간을 건너 뛴 초월적인 인물이라 여기는 사람이 생길 것 같아서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세종대왕님과 형님의 입신체비를 할 때마다 지나가는 소리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뒀었지.
실록에는 몇 가지 내용만 올라와 있었을 것이지만 일차 공문서의 모음집인 승정원일기는 다르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이 책에서 근거로 삼은 세종대왕님과 나의 대화 내용을 읽어보았다.
[수양대군이 입신체비서를 저술하며 세종과 문종과 의논한 결정적 자료를 완역된 승정원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세종 23년 4월에 16일에 기록된 내용이다.]
동궁 입신체비장에서 입신체비를 행하시던 임금이 말씀하시길
“일전에 네가 하였던 이야기를 곰곰이 따져 보았다. 본디 명궁으로 이름난 태조대왕께서 단단한 철궁으로 육체를 단련하였으니 이러한 방식이 옳지 않더냐. 철물을 들고 휘둘러 몸을 단련하는 일은 옳지 않도다.”
하니, 이유가 숙고하여 다시 아뢰길
“서책을 읽는 목적은 옛 성현이 남긴 정수(精髓)를 받아들이는 일이니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평시 몸을 잘 단련한 이들이 행하는 동작을 단순히 만들게 되었사옵니다.”
하니 임금이 크게 웃으며 이르길
“사람의 신체는 모두 다른 법이다. 혹여나 네가 취합한 방안이라 하여도 사람의 몸에 따라 다르게 적용 될 것이다. 혹여나 헛된 일을 행할까 염려되는구나.”
그러자 이유가 부끄러운 낯빛으로 말하길
“소자의 가장 큰 스승은 아바마마이옵니다. 아바마마 덕분에 많은 지식을 얻어 입신체비를 온전히 만들 수 있었사옵니다.”
임금이 잠시 숙고하다 크게 웃으면서 이르길
“그러하다. 생각하여 보니 몸을 다루는 학문을 처음 창안하였는데 네 배움이 부족한 것 같구나 조만간 서신을 통하여 네가 배울 서책을 정해 주겠다.”
역시 승정원일기다. 부자간에 나눈 시시콜콜한 잡담도 빠짐없이 기입하니 이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겠지. 내 의도대로 흘러가서 천만 다행인데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나의 행적을 철저히 조사한 덕분에 엉뚱한 곳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수양대군이 삼대운동 일천 근을 달성할 당시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문종이 입신체비서의 초본을 작성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는 말이 있었으며. 양녕대군과 만나 태조 이성계에 대해 논한 일도 있었다 하였다.]
[이를 통해 훈민정음을 만든 이가 세종이며 보조한 이가 문종과 수양대군인 것과 마찬가지로. 입신체비서를 만든 이는 수양대군이지만 반대로 세종과 문종이 보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웃음이 나왔지만 입을 억누르며 참았다. 사료로 삼은 대화 내용을 학문을 논하는 사이좋은 부자라 하였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니까.
세종대왕님은 나의 PT를 받으시면서 어떻게든 하루라도 빠지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그러니 내가 부족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배워야 할 것이 많다면서 각종 서적을 내려줬고.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세종대왕님을 입신체비장으로 끌어들였다.
부자간의 공격, 서로 주고받는 육체적 공격과 학문적 공격을 좋은 말로 돌려 말한 덕분에 멋대로 해석하는 결과가 나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오며 휴대전화를 켜는데 쌀톡이 도착해 있었다.
- 오빠, 이번에 외할머니 생신이니까 춘천으로 꼭 와야 해? 이번에 휴식월인데 지난번처럼 입신체비 하느라 빼먹었다 하면 진짜 절교할 줄 알아!
“나란 놈은 대체 뭐하는 놈이냐. 입신체비 하느라 외할머니 생일을 빼먹어? 내가 그런 후레자식으로 보이나? 그런데 주소······. 외할머니 집 주소는 또 뭐고!”
외할머니에게 전화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주소도 같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한자로 된 주소를 보자 할 말이 없었다. 외가인 강원도 춘천은 대한 공화국의 땅이 아니었다.
- 대명국 강원성(省) 춘천부(府) 온의동
대명국 강원성 춘천부면 명나라의 행정구획이 맞다. 바티칸 시국이야? 무슨 놈의 행정구역에 대명국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