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28화 (외전) (228/573)

< 현대 외전 1화 – 입신체비의 나라 >

왕실 종친 수양대군이자 이유(李瑈), 조선시대의 나는 질병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내심 나의 삶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이는 빙의와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한번 겪었기 때문이다.

철령 전투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겪었을 때의 일이며, 당시 중부인 효령대군과 함께 전국의 사찰을 오가며 마음을 다스렸을 때 기묘한 체험을 하였다.

[손님은 있을 곳이 사라지면 집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상원사에서 홀연히 사라진 스님이 저런 말을 남겼기에 믿고 있었다. 현대인인 내가 수양대군에게 빙의한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스님의 말을 믿기로 했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이부자리에 반쯤 기댄 늙은 몸이 아니다. 사지를 꼼지락거리니 푹신한 감촉이 느껴지며 훈훈한 공기가 맴돌고 있다. 수양대군의 몸에서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갑자기 세상이 변한 것이다.

‘내가 누운 자리가 죽을 당시에 덮고 있던 이부자리는 아니고, 현대처럼 소파에 누워 있던 것도 아니야. 아무리 봐도 촉감과 재질이 빈백(bean bag) 같은데.’

천천히 마음을 정리하니 수양대군의 몸에서 겪었던 일은 깊게 되새기기 이전에는 제3자가 경험한 것처럼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은 일이다. 조선시대에서 40년 이상 살다 온 사람이 현대에 쉽사리 적응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눈을 뜨면 내가 모르는 가족이 생겨날지 누가 안단 말인가? 하지만 사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TV가 켜져 있었는지 국민 농촌 드라마인 농원일기의 주제가가 들려왔다. 집에는 나 혼자 사는 것 같으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찌 된 것이 내가 빙의하기 전 전세방이나 여기나 크기가 비슷한 것 같네.”

불을 켜니 벽에 달려 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각종 자격증과 대회에 입상한 경력을 평소 습관대로 액자에 달아 놓았나 보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좋은 정보가 있었다.

- 제56294호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 성명 최영직(崔瑩直). 등급 특급, 자격종목 입신체비.

국민체육법 제4조 6항·7항에 의거하여 위와 같이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자격취득일 2018년 11월 ○○일. 대한 공화국 체육부 장관

“혹시나 이상한 몸으로 돌아올지 몰라 걱정했는데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군. 대한 공화국?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고 체육부?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내 번호는 4자리였는데 바뀐 역사에서는 5자리의 절반을 채웠다. 하지만 60년대부터 차곡차곡 쌓였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 넘어가자. 액자를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웃음이 나왔다.

“식품영양학부는 아무리 봐도 식이영양부로 변경되었고 원래 역사와 마찬가지로 대학원을 졸업했네. 내가 다니던 대학 이름이 숭신(崇信)대학교가 되었나?”

변한 역사를 살아가던 ‘나’는 본래 역사의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왔으며 거의 같은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축적한 지식도 비슷하니 쉽사리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보니 주소지가 흥인동이 되었다. 여기에 입신체비장 체장(體長 - 가장 높은 트레이너) 명함도 지갑에 여러 장 있었다.

“내가 사는 흥인동이 신당역 근처에 있는 그 흥인동이 맞긴 한가? 그리고 두물 입신체비장······. 이건 좋네. 피트니스 센터나 헬스클럽 대신 입신체비장이라는 말을 써야지!”

서랍 안에 있던 서류의 계약 일자를 살펴보니 두물 입신체비장의 소유주와 계약을 맺은 것이 지난주 월요일이다. 열흘이 지나지도 않았으니 어느 정도 위화감이 있어도 적응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넘겨짚으리라.

“이건 각종 세금 고지서. 내 통장 잔고 총액이 약 6만8천 원이군. 한 달 급여는 2,400원? 이게 많은 거야 적은 거야? 그리고 휴식월 고지는 또 뭐고.”

한 30분 정도 새로운 나의 신상명세를 파악하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활용할 수 있으면 나머지는 이사 온 사람처럼 천천히 파악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하고 가족사진을 확인했다. 말라깽이에 오타쿠였던 남동생이 조금 듬직해지고, 여동생의 안색이 좀 좋아진 것을 제외하면 커다란 차이는 없어 보인다.

아마 역사의 변동에서도 우리 가족이 우연히 만나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역사가 아주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무심코 TV를 본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생각보다 정정한 모습의 배우 김현자가 농원일기에 여전히 출연하고 있었으며. 손자로 보이는 배우의 손을 잡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청년의 몸이 예사롭지 않다.

- 어이구 우리 손자! 열도에서 일하다 얼마 전에 돌아왔다면서? 몸이 아주 홀쭉해졌네?

- 아니에요. 열도도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니 저희랑 별반 다를 것이 없어요. 전쟁은 팔십 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은 고기가 좀 부족한 것을 제외하면 좋아요.

“남자 배우는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몸매 하나는 죽여주는군.”

반팔 와이셔츠를 입어 전체적인 체격이 보이는데 3대 350은 거뜬히 하고도 남을 몸매였다. 배우가 마당으로 들어오자 누군가 방 안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는데 그는 국민 아버지라 불리는 최명암이었다.

본래 최명암은 70대가 넘어 나이를 숨길 수 없는 몸이었지만 변한 역사에서는 아직도 건장한 체격이 남아 있으니 놀라웠다. 훈훈한 할아버지와 손자 간의 대화가 시작되는데 이게 대화야?

- 할아버지를 뵙고 인사를 올립니다. 별래무양하셨는지요.

- 고생이 많았다 들었다. 본래 집을 나서면 고생이 있는 법인데 여기서 입신체비를 하며 몸을 다스리는 것이 좋겠구나. 천천히 쉬다 가거라.

입이 벌어져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현대 기준으로는 3대 350을 하고도 남을 젊은이가 고생이 많아서 몸이 쇠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이 더욱 가관이었다.

- 네가 돌아온다 해서 정성껏 만든 유청이란다. 옛 방식 그대로 만들었으니 어서 먹어봐라.

- 정말로 고맙습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유청보다 맛있는 것이 없었죠!

남자 배우는 유청을 들이켜고 뒤뜰에서 바로 벤치프레스를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칭찬하는 최명암과 하체가 부실해졌다고 눈물을 닦는 김현자를 보니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입신체비를 우대하는 정도가 아니고 종교적 광신이 느껴질 지경으로 대접하고 있지 않은가? 손이 덜덜 떨려서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라 휴대전화를 찾았다. 하지만 휴대전화도 내가 쓰던 녀석이 아니었다.

“성원이! 성원이 녀석이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을 게 분명해! 그런데 은하 9 어디 갔어! 은하 9는 어디 갔고 옴니스 13은 또 뭔데! 창문 모바일을 왜 아직도 쓰는데!”

고등학교 동창이자 어른이 되어도 만나는 성원이에게 연락하려 했는데 휴대전화가 내가 쓰던 모델이 아니다. 동작이 느린 편은 아닌데 도무지 사용 방법을 몰라서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냉장고에 있던 기갈(飢渴)수라는 녀석을 뜯었는데 마셔보니 조청 맛이 은은하게 나는 것이 역사가 깊은 음료수인가? 알게 뭐야. 다시 TV를 보니 정말 저세상 뉴스가 이어졌다.

[최근 들어 대한 공화국의 신체능력 감소가 심각한 수준에 접어들었습니다. 2004년 16세 이상 65세 이하 남성의 삼대 운동 평균 수치가 300㎏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최신 통계에서는 290㎏의 벽이 붕괴하였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성인 남성 삼대 운동 수치를 통계를 내고, 그게 300 아래로 붕괴되었다고 심각한 근력 감소라 했어? 이게 대체 어느 나라냐!”

3대 운동 300은 평균적으로 따지면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성인 남성은 벤치프레스를 자기 체중만큼 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보디빌딩 초보자의 졸업시험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일반인 기준 인외마경, 강박적 근육 애호가의 집합소인 헬게이들이 장난삼아 하는 말이 삼대 운동 300 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정말 사람답게 살고 있는 나라인가. 이어지는 뉴스를 듣고 마시던 기갈수를 뿜어버렸다.

[비만율이 심각하게 증가하였습니다. 체지방률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체지방률 25%인 비만환자가 남성의 4.7%에 이르렀습니다.]

“너무 근육이 많아서 체질량 지수로는 비만 판정이 떨어지니 체지방률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것이 분명하네. 이게 어떻게 돼 먹은 나라야?”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뉴스도 끝났고 가까스로 작동 방법을 이해한 옴니스 13에서 쌀톡과 비슷한 메신저를 찾았는데 성원이 녀석의 개인 상태에 장기 출장이라 적혀 있었다.

성원이의 직장이 그대로라면 문화재 실측 사무소겠지. 출장을 갔다면 그놈의 정밀측정인지 뭔지 문화재 하나를 잡고 닷새고 열흘이고 사진 찍고, 측량하고 그리고 도면을 그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만나자고 문자 하나를 보내놓고 침대에 누웠다.

“세상이 변했으니 내 몸도 변했을 것이 분명해. 본래 삼대 운동 660 정도가 한계였는데 이제는 수양근(1,200근 = 768㎏)에 도전해 봐야지. 하지만 충분하지 못한 수면은 근손실이다.”

뭔가 피곤한 일이 있었는지 잠이 슬슬 잘 온다. 쿵쾅거리던 가슴도 어느새 진정되어 눈꺼풀이 감겨오니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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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가볍게 아침을 먹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고기가 있기는 한데 배양육이다. 본래 역사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서 포장을 뜯고 아침 식사로 준비했다.

여기에 아스파라거스와 마늘 한 통을 다듬어 소형 오븐에 넣고 구워내고. 발아현미로 만든 밥에 데친 브로콜리로 아침을 해결하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다. 특히 배양육이라 말하지 않았으면 고기의 질을 착각할 지경이었다.

“어중간한 우둔살이나 홍두깨살보다 맛이 좋다니. 생각해 보니 전 국민이 입신체비를 하면 육류 생산도 국가 정책 중 하나겠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고 체육부인 이유도 체육부 하나가 부서를 총괄할 지경에 이르러서 독립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마 농림축산부도 본래 역사보다 규모가 훨씬 클 것이 분명하다.

식사를 마치고 평소처럼 준비하기 위해 휴대전화에 있는 내 사진을 확인했는데 입신체비장에 있을 때에는 망건을 두르고 있었고. 출근할 때는 언제나 갓을 쓰고 있었다.

입신체비사의 복장은 자유지만 과거의 ‘나’는 이러기를 즐겨 했으니 이렇게 행동해야지. 휴대전화를 조작해서 지도를 켜고 두물 입신체비장을 검색하니 대충 현대의 왕십리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입신체비장에 들어서니 현대와 차이가 없었지만 기구들이 듬직한 것이 보인다. 빙의하기 이전의 ‘나’는 좋은 입신체비장과 계약을 맺은 것 같다. 적당히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최 체장님. 오늘부터 휴식월이신데 두고 가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휴식월? 잠깐 삼대 운동을 확인하려 하는데 문제라도 있는가.”

“체장님께서 이러시면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까지 휴식월을 지키지 않다 피로골절에 관절파열 심지어 통풍으로 쓰러진 사람 한두 번 보시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보다 덩치가 큰 남자인데 내 얼굴을 보면서 정중하게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가 피로골절과 관절파열이라는 말을 했으니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입신체비에 미쳐있는 대한 공화국에서 입신체비사의 책무는 넘쳐나며 운동량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런 운동량을 수행하는 입신체비사를 방치해 두면 각종 질환이 빗발칠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국가에서도 중요 인적 자원인 입신체비사를 관리하는 것이 분명하다. 휴식월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회원들도 내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 휴식월이면 최소한 2급 입신체비사 아니야? 그런데 왜 저러지?

- 저분이 두물 입신체비장의 새로 들어온 체장이라 했는데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닌가?

- 시기가 시기이니 근찰(筋察 - 근육 경찰)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저렇게 복장을 갖추고 오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생각하지도 않은 복병에 가로막혔지만 방법이 있겠지. 잠시 화장실에 들어가서 어플을 켜고 나의 운동 기록을 확인해 보니 실마리가 보였다. 다시 근찰이라 불리는 사람 앞에 가서 핸드폰을 들고 기록을 보여주었다.

“알다시피 다음 주에 삼대 운동 측정 예정이 아닌가. 특급 입신체비사가 되어서 예정보다 빠르게 휴식월 명령이 떨어지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말이야.”

천연덕스럽게 말을 늘어놓았다. 설마 단 한 번의 삼대 운동 측정을 운동이라 여기지 않겠지? 상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번 단 한 번만 삼대 운동을 측정하시고 제대로 휴식월을 지키시는 겁니다. 윤 교부(敎傅 - 하급 입신체비사)! 최 체장님 평소에 하던 대로 준비해줘!”

몸을 풀기 위해 역기를 들어보니 몸이 정말 잘 발달되어 있다. 특히 피킹(peaking – 최적화된 준비), 내가 창안한 용어로는 정화(征和 - 바르게 화합하다)가 훨씬 잘 되어 있었다. 나의 모습을 본 윤 교부는 천연덕스럽게 공령(플레이트)을 들면서 말했다.

“평소에 하시던 진양근(640㎏)에서 조금 늘려서 720㎏으로 준비할까요?”

“수양근으로 해보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으니까.”

진양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니 수양근이 768㎏을 뜻하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겠지. 나의 자신 넘치는 도전에 근찰이라 불리는 자도, 내 아래 입신체비사인 윤 교부도 헛숨을 집어삼켰고 회원들 모두 나를 돌아보면서 황당하다는 눈빛을 비추었다.

내 과거 기록 최대치는 685㎏이니 갑자기 80㎏을 늘린 것이다. 갑자기 높은 중량을 시도하니 무모하다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내 기준에서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내 입신체비 경험은 55년에 달하고 몸은 아직 여유가 있다.

본래 역사의 중량에 맞추어 몸을 풀고 있는데 여유가 느껴져서 중량을 했다. 경험과 전체적인 근육량 증가를 바탕으로 계산한 것이니 실패해도 좋은 시도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준비를 마치니 윤 교부가 준비한 275㎏의 대역기가 눈앞에 있었다.

“제발 무리하시지 말아주세요, 공부하느라 입신체비도 적게 하신 분이 언제 이렇게 높은 중량을 다루셨다고.”

“그냥 가능할 것 같아. 가장 먼저 삼각근 공좌(로우바 스쿼트) 기록을 갱신해 볼까.”

평소와 마찬가지로 로우바 스쿼트를 시행하는데 근력 여유가 아주 약간 있었다. 본래는 고관절이 무릎 아래로 내려가는 파워 리프팅 스쿼트를 준비했는데 허벅지의 감각을 확인하니 정자세로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최 체장님. 무리하지 마시라니까요! 세상에······ 평상시에는 240㎏도 힘들어하시던 분이 가능한 일인가? 정말 정자세로 성공했다고?”

“좋아! 잠시 쉬었다가 의압(벤치 프레스)으로 넘어가지. 의압 기록이 175였는데 가볍게 갱신해 볼 수 있겠어.”

조선시대의 기억을 되살리니 약간의 여유를 느낄 지경이었다. 시대 차이가 있으니 같은 무게라 하여도 오차가 있어서 좌우 균형을 맞추기 힘들었고. 역기봉은 훨씬 더 두껍고 탄성이 없어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이다.

여기에 변화한 역사의 나는 공부를 하느라 경험이 부족하였는데 이걸 억지로 채워 넣은 것이다. 시거(데드리프트)까지 마치니 삼대 운동 770㎏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은 내 기록을 알고 있으니 놀라움을 넘어서서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빤히 쳐다보기에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땀을 닦고 말했다.

“오늘은 꿈자리가 좋더라니. 다른 회원님들은 저처럼 급격히 중량을 올리지 마시고 천천히 올리십시오! 그럼 정말 휴식월을 즐기러 가볼 것이니 염려하지 말아주게.”

“평소 체격에 비해 중량을 적게 두시던 분이 갑자기 이런 성과를 보이시다니. 수양자(首陽子)께서 가호를 내려주셨나?”

수양대군은 수양자로 불리는군. 입신체비장에서 빠져나오며 일정 어플을 확인했는데 이틀 뒤에 외가댁을 만나러 춘천으로 올라갈 예정이 전부이다. 기념일을 확인하는 와중에 갑자기 쌀톡이 들어왔는데 성원이 것이다.

- 나 지금 미주(迷洲) 출장 나왔는데 만나서 이야기하자니 뭔 소리냐. 다음 출장은 바로 투이도까지 내려가게 생겼는데 그새 까먹었냐. 한 달 뒤에 보자.

미주라. 한명회는 실패했지만 유자광을 비롯한 인재들이 성공했단 말인가? 그런데 머나먼 거리에 있는 나라에 문화재를 만들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니 갈 곳은 정해졌다. 대한 공화국에서 가장 커다란 도서관을 찾아 오늘과 내일 내내 역사와 관련된 정보를 획득해야지. 가장 커다란 도서관을 검색해 보았는데 다른 어디도 아니고 내가 아는 장소이다.

[대한 공화국 최대 도서관은 경복궁 부설 옥당(玉堂) 도서관입니다.]

옥당이면 홍문관(弘文館)의 이명이다. 공화국이 되었지만 조선 시대의 이름을 고스란히 사용한다면 공화 혁명으로 왕족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일은 없었겠네. 변화한 서울, 아니, 한양의 모습을 돌아볼 겸 추억이 서려 있는 경복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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