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27화 (227/573)

< 에필로그 - 서력 1919년 10월, 한양 국립 대학교(2) >

입신체비의 끝은 예나 지금이나 충실한 영양 보충이었다. 과거 수양대군이 창안하였던 입신체비서에 담긴 내용들은 세월이 지나 과학적인 검증과 분석이 이어졌으니 수없이 많은 과제가 쌓여 있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선에서 대한 공화국으로 발전하는 와중에 학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의 국시이자 사상이었던 유교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철학에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반면 발전한 학문은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역사학과 영양학을 비롯한 생물학이었다.

“자네는 삼대 운동의 합이 800근이 넘어선 상황에서 제적을 당했는데 이제는 500근을 지탱하지도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네. 혹여나 굶주린 채로 돌아다니기라도 하였나?”

“하주도를 비롯하여 일본 열도 곳곳에 잠입하여 돌아다녔습니다. 근손실이 아니고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지요.”

김구는 혀를 차며 입신체비장 구석에 놓인 유분혼합단백 통을 열었다. 조선시대에는 신하가 계속된 격무로 근손실이 심할 때에나 하사하였던 물산이 지금은 개마고원과 대관령에 있는 거대 목장에서 수천 톤 단위로 만들어지니 그렇게 비싼 물건이 아니었다.

“받게나. 자네는 체격도 키워야 하니 단순한 보충제가 아닌 유분혼합단백이 제격일걸세.”

걸쭉한 유청단백을 제자와 같이 마신 김구는 비릿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고로 종가에서 손으로 만든 유청단백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지만 공장제는 냄새가 나는 것이 문제였다.

“이래서야 모친께서 직접 만드신 유청단백이 그리워질 지경이군. 그나저나 자네는 대체 왜국에서 무엇을 보고 돌아왔기에 사선을 넘나든 것인가. 는 조선의 말이 통하니 고생할 일이 없었을 것인데.”

“실은 하주도에서는 편히 지냈지만 곳곳에 있는 불온한 공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왜국에 잠입하여 사방을 떠돌아다녔고. 진상을 파악하여 돌아오는 길에 송재(松齋 - 서재필의 호) 어르신에게 들려 사정을 고변하였지요.”

여운형이 진취적이며 자유분방한 성품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김구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진상을 파악하면 이 세상 어디라도 달려갈 용기가 있는 자이니 훗날 큰 인재가 되리라.

하지만 김구도 쉽사리 추천할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 여운형이 고려 공산당 소속이라는 것이었다. 공화국에서는 사상의 자유가 있지만 눈치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김구는 직접 잔을 정리하며 은근슬쩍 물어 보았다.

“생각하여 보니 왜국 총리대신 용마(龍馬 - 사카모토 료마)가 숨을 거두고 일 년이 흐르긴 하였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지금 하주도를 비롯한 일본 열도 전체가 난리입니다. 모든 힘을 쥐어짜내 중공업과 경공업을 가리지 않고 국가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을 동원하지요.”

대한제국은 초기 산업혁명 시기부터 신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부를 축적하였다. 그 논리는 지극히 단순하고 합리적이었으니 이는 대한제국이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기 이전인 18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증기기관을 보행기가 아닌 물산을 만드는 일에 사용하면 사시사철 매번 같은 품질의 생산품을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더욱 많은 물산을 생산할 수 있으면 남는 시간에 입신체비를 행할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산업혁명 소식을 접한 조선의 왕, 훗날 묘호가 효종(孝宗)이라 지어진 왕은 영국의 기술자들을 불러들였다. 자체 개발한 초기 증기기관으로 입신체비에 쓰이는 보행기를 만들었지만 이를 공장에 접목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저 제임스 와트를 불러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증기기관으로 공장을 만들면 좋은 일은 하루 스물 네 시간을 가동할 수 있다는 점이지요. 늦은 밤에는 불가한 일이니 하루 열 네 시간 정도 일하면 확실한 효율이······.’

‘자네는 지금 제정신인가! 사람이 하루에 열두 시간을 넘게 일하는 것은 고위 관료들 외에는 허가하지 않네! 일곱 시간을 2교대로 일하게 하면 충분할 것이 아닌가!’

조선에서 돌아온 제임스 와트를 비롯한 기술자들은 자신들의 일기에 ‘조선인들은 운동에 미친 민족이다.’ 라고 평가하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인구를 제외한 모든 물산이 풍족하였던 대한제국이 산업혁명을 완수하자 순식간에 발전할 수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 너도 나도 칭제(稱帝)한 국가들은 인구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조선을 따라잡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조선은 1821년 칭제건원을 선언하고 대한제국으로 탈바꿈하였다. 김구는 생각을 정리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래, 총리대신인 룡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 얼마나 많은 멍청이들이 득세하고 있는지 알겠네. 그러하면 자네는 열도 각지에 있는 공장에 잠입하여 정탐한 것이 분명하군. 하지만 순나라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네.”

“새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른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은 임금을 동결하고 각지의 자원을 뼛속까지 긁어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쥐어 짜내 단가를 줄여 경쟁력을 만든다는 방침인데 참으로 잔혹한 처사입니다.”

임금을 동결하고 각지의 자원을 긁어낸다. 아마 더 이상 채굴되지 않아 버려둔 좌도도 금광(사도가시마)과 큐슈 일대의 구리와 은을 모조리 긁어내고 있으리라. 여운형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군함도에 숨어들었습니다. 알다시피 조선에서 채굴하기 힘들어 버려둔 탄광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경험하자 눈물이 쏟아져 나와 견딜 수 없었습니다.”

“대체 군함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격노하는 것인가.”

“동경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높은 급료를 약속하고 천 미터 땅 아래로 채워 넣어 짐승처럼 부리고 있습니다. 하루 12시간을 노역하며 쌀겨와 쉬어버린 콩깻묵을 식량으로 먹지요.”

김구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아무리 나라가 힘들다 하여도 사람이 우선이며 국가는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보살필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자네는 그러한 사실을 알아내고 어떻게 도망쳤는가?”

“틈을 보아 육지를 향해 헤엄을 쳤습니다. 조금 힘든 일이지만 당시에는 몸이 건장해서 충분히 가능하였지요. 돌아온 이후 고려 공산당 당원들의 도움을 받아 본주(혼슈)로 향하였지만 비슷한 참극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여운형의 말이 이어졌다. 탄광을 억지로 개척하다 광부가 매몰되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막중한 노동과 비위생적인 환경이 겹쳐 콜레라의 대유행으로 도시 한 개가 폐허가 된 사건. 김구는 안타까운 눈빛을 감추지 않으며 여운형의 손을 잡았다.

“내가 공산당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네. 마르크스주의자는 결국 독재로 향하는 비정상적인 정치를 요구하며. 언제나 폭력을 수반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피를 흘리지.”

“죄송하지만 고려 공산당은······.”

“하지만 지금의 일본은 어떠한가? 이등박문은 나라의 고삐를 틀어쥐고 독재를 행하며, 폭력을 넘어서는 희생이 늘 벌어지지. 이러한 서글픈 현실을 억지로 되돌리려면 마르크스주의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

여운형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김구는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일본은 급속도로 사회주의가 퍼져나가며 내전을 벌일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답하였으리라.

김구가 삼 년 전에 만났던 일본의 총리대신, 사카모토 료마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입신체비를 즐긴 덕분에 두꺼운 근육으로 암살 위협을 벗어났으며. 칼에 맞아 한 팔을 잃고도 역사의 전면에 서서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굳혀나갔다.

그의 꿈인 사해동도(四海同道 - 세상 사람은 모두 친구다)는 멍청한 후임자로 인하여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이라는 국가는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할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김구는 안경을 고쳐 쓰고 문을 열며 말했다.

“고생이 많았으니 내가 한 잔 사겠네. 진고개에 있는 다방에서 가누를 한 잔 마시면 몸도 마음도 풀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수양대군의 자택이 있는 진고개 인근에는 다방이 많았다. 이는 평소에 가배를 즐긴 수양대군을 기리는 마음도 있었으며. 입신체비에 적당량의 카페인이 들어가면 효율이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운형은 다른 생각을 하며 말했다.

“이를 주연(珠淵 - 원래 역사 고종의 호) 어르신에게도 알려야 할 일입니다.”

“주연 어르신은 지금 아메리카로 건너 가셨다네.”

수양대군의 일파는 훗날이 되어도 여전히 종친의 작위에 있었다. 세조와 친분이 있던 도원군은 수양대군의 사후 왕실 종친을 대표하여 종묘의 제사를 올리는 신설 관청 예진원(禮進院)의 도제조의 직책을 세습하게 되었다.

그러니 황실이 민간인으로 돌아간 지금은 입신체비의 후계자와 마찬가지인 이희(李㷩 - 고종의 휘)가 옛 황실을 대표하는 웃어른이리라. 하지만 상상도 못한 김구의 대답에 여운형은 입을 벌리고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어르신께서 아메리카에 가셨다니요. 거기서 무얼 하시려고 황족이 직접 나서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미 입헌군주국에서 공화정으로 변하였으니 더 이상의 책임이 없다 하시며 종묘제사의 권한을 정헌(正軒 - 원래 역사 순종의 호) 어르신에게 일임하시고 떠나신 것이지.”

“지구 반대편 촌놈들에게 대체 무슨 볼일이 있다고 떠나셨는지 아십니까?”

“자세한 일은 모르네. 지난번에 뉴욕에서 열린 미국 – 아메리카 친선경기를 직관하시더니 쓸 만한 인재가 잠들어 있다 하시며 멋대로 돌아오지 않으셨네.”

김구와 여운형이 한양을 가로질러 진고개로 향하니 수많은 인재들이 보였다. 각지의 운동선수들과 그의 제자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들이 옛 수양대군의 사저이며 지금 이휘의 사저가 된 곳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많은 제자들과 가르침을 원하는 이를 내버려두고 무슨 인재를 찾으러 가신 겁니까.”

“듣자하니 형편없는 아메리카 야구(野球)선수 가운데 한 명은 세상에 둘도 없을 인재라 하더군. 자세한 일은 모르지만 일단 가배라도 한 잔 하고 보세나.”

쭈뼛거리며 주변을 살펴보는 여운형을 앞에 두고 수양대군이 창안한 방식인 가누를 온전히 지켜 우려낸 커피 두 잔과 각설탕이 자리에 놓였다. 대양도산 특유의 떫고 신 맛이 어우러져 있으니 여운형도 다시 맛보는 가배의 맛에 반할 지경이었다.

“세월이 변하고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고, 다시 대한 공화국이 되었지만 이는 시대의 움직임이 아니겠는가. 일본이 어떻게 변하건 대한 공화국을 온전히 지켜나가면 될 일이지.”

“사실 대한 공화국이 된 것도 건양제께서 자신을 책망하라 원하신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당시에는 내각과 건양제께서 정하신 판단이 옳았습니다.”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5년 전인 1909년, 대한제국은 중원의 패권을 거머쥔 순(順)나라와 일전을 벌였다. 서방에서는 이를 한-순 전쟁이라 낮춰 말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국가가 참전한 또 다른 세계대전이었다.

한때 중원이라는 고장을 나눠 가진 3개 국가는 산업 혁명을 완수한 조선의 판매처이자 끝없는 자금 공급원이 되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세력이 큰 순나라는 1862년부터 무역 압박과 과도한 관세 부과로 대한제국의 심기를 자극하였다.

순나라의 뒤를 이어 나머지 두 국가도 외세를 접목하고 대한제국을 견제하였다. 세 국가를 합치면 인구가 오 억에 달하니 대한제국에게도 버거운 상대였지만 당시의 황제인 광무제의 선언은 대한제국을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지금부터 민족자치(民族自決)를 천명할 것이다. 각 민족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서로 간섭받지 않은 온전한 국가를 경영하도록 하라.]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장구한 법률이 있었다. 새로운 고장을 만들 때에 머무는 이들을 교화하고 아국의 사람들로 받아들여 온전히 자립할 수 있게 만들라 하였다.

식민지배를 당한 국가들이 기형적인 국가 체제와 산업 체제로 고통 받을 동안 조선의 영토는 어엿한 연방이나 합중국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십 년 이내에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한제국도 적잖은 이득을 거둘 수 있었다. 병력과 관료를 파견할 이유가 없으니 유지비용도 급감하였고 움직임도 자유로워졌다. 이후 각지의 대한제국 영토는 자신들의 체제를 정비하여 독립하기 시작했다.

1864년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미주 연맹이 자립하였고. 이후 대양도와 북방 영토를 제외한 모든 고장이 독립하며 대한제국은 해가지지 않는 거대 제국에서 같은 뿌리를 가지는 거대한 연합으로 탈바꿈하였다.

이후 30여년이 흐르고 대한제국의 성장을 질시한 순나라는 전쟁을 천명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새로운 국가로 태어난 일본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를 필두로 한 일본 내각은 순나라와의 전쟁에서 대한제국을 지원하여 막대한 이득을 얻어냈고. 연이어 벌어진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대한제국이 주장하였던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하였다.

‘비록 사백 년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는 한때 한 몸이 아니었는가. 그러하니 대한제국의 영토인 하주도에 거주하는 이들은 민족에 맞추어 일본의 영토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제국은 지난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자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으니 다른 열강들의 외교적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임을 진 사람은 총리대신이 아닌 대한제국의 황제인 건양(建陽)제였다.

‘총리대신에게는 잘못이 없소. 대한제국은 입헌군주제이나 권한 가운데 개전(開戰)과 종전(終戰)은 모두 짐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오. 그러하니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짐의 책임이 아니겠소.’

발언은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이미 별궁 가운데 하나인 경희궁을 대학으로 설립하게 내어준 건양제의 행적은 파격적이었다. 황실 종친들을 문화나 역사 관련 공무원으로 임명하고 대부분의 재산을 내어놓았던 것이다.

이를 뜯어 말리기 위해 대학 교수의 직책에도 경북궁으로 뛰어들었던 김구를 내수린으로 제압한 이가 이휘, 원래 역사의 고종이었다. 154cm의 단신이며 일흔이 다 된 노구를 이기지 못한 김구는 다시 대학 교수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에 당하였던 면직락(DDT)을 떠올린 김구는 고통에 몸서리를 치며 진고개 너머에 있는 남산을 바라보았다.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재산을 정리하던 건양제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무리 봐도 웃고 계셨지. 은퇴하시면 마음껏 입신체비를 하실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은퇴하신 것이 분명하단 말이지.”

“정말 사실입니까?”

“내 눈에 보기에는 그랬단 말이네.”

나라의 이름이 변해도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학문인 입신체비는 변하지 않으리라.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김구와 여운형 모두 푸르른 소나무로 뒤덮인 남산을 바라보며 커피를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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