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26화 (226/573)

< 에필로그 - 서력 1919년 10월, 한양 국립 대학교(1) >

한때 경희궁(慶熙宮)이라 불린 적이 있는 궁궐의 정문 아래로 스무 살 내외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떼를 이뤄 발걸음을 옮겼다. 경희궁의 정문이었던 흥화문(興化門)의 현판은 사라져 있었으며 그 자리에는 국한문 혼용체로 다음과 같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한양 국립 대학교]

기존 궁궐을 사용하고도 모자라 주변의 땅을 침범하였지만 부족한 지경이었다. 대한 공화국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이자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대학교이니 조만간 증축이 예정되어 있었다.

10월의 청명한 가을 하늘이 대한 공화국의 수도. 한양을 내려보는 가운데 정시를 알리는 시보(時報)의 종소리가 울리고 학생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사학과 사 층의 대형 강의실에는 수업 십 분 전이지만 학생들이 들어차 있었다. 좌석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학생들의 체격이 모두 담대하니 사학과 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구십 명의 학생들 앞에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출석을 확인하려던 교수는 구십 명 모두 착석하였음을 확인하고 출석부를 내려놓고 허리를 펴고 당당히 섰다. 이윽고 학생 한 명이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자 모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참으로 반갑습니다. 역시 사학과 학생들답게 체격이 담대하고 목소리가 우렁차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동그란 검은색 안경테와 짧게 정돈한 머리와 대조적으로 새하얀 한복을 입은 교수는 천천히 분필을 들었다. 품이 넓은 한복으로도 숨기지 못하는 담대한 체격과 응축된 근육은 그가 진정한 사학(史學)도 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안경을 가다듬은 교수는 분필을 놀려 칠판에 여러 인물의 이름을 써내려갔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끝나자 십여 명의 인명이 적혀 있었으며. 하나같이 조선 전기의 명신(名臣)들이었다.

“지난 강의에서는 세조(世祖) 이홍위의 치세 전반기에 대해 논하였습니다. 여기서 세조라는 호칭을 수여한 이유가 무엇이라 하였는지 알고 있는 학생은 말하여 보십시오.”

“종계변무(宗系辨誣)라는 외교 분쟁을 당대에 끝낸 업적이어서 얻은 칭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네 이름이······. 등도 해치랑(藤島 亥治郎 - 후시지마 가이지로)이군요? 동경대학교에서 유학을 온 일도 대단한데 다른 학과에서 수업을 들으며 예습하니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쉰 일본인 청년은 다시 수업에 집중하였다. 이과 대학의 목조건축학과에 다니는 사람이지만 역사학을 배우지 않으면 목조 건축을 배우는 의미도 없는 것이다. 교수는 분필을 들어 한명회의 이름 아래에 밑줄을 그었다.

“청해군(靑海君) 한명회는 현재의 호주연방의 투이도에 머물다 돌아온 이후 한참 동안 열산도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다 여든이 다 되어서 대양도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크나큰 사고가 있었지요. 그가 생각 없이 기른 거북이들이 문제였습니다.”

한숨을 내쉰 교수는 교보재로 준비한 거대한 거북이의 박제를 탁자 위로 올렸다. 사람의 몸통보다 거대한 크기에 학생들이 놀랐지만 교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이주가시거북. 서양에서 설카타 거북이라 부르는 것을 길렀지만 수백 마리가 집단 탈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땅을 파는 습성이 있는지라 인근의 왕실 직할령인 대첨과(멜론)밭으로 향했고. 이후 막대한 손실을 끼쳐 이를 수습하는 일에 전념하였지요.”

“하지만 지금 조선에서 유행하는 애완동물이 이주가시거북이 아닙니까?”

“그거야 지금의 사람들은 다 큰 이주 가시거북을 쉽사리 들어 올릴 수 있으니 가능한 일이지요. 백 년 뒤라면 모를까 당시에는 잡아들이는 일도 힘들었다 합니다.”

다시 박제를 내려놓은 교수는 홍윤성, 임사홍 그리고 유자광을 선으로 연결하고 미주함대라는 표시를 하였다. 역사상에 길이길이 남을 미주 개척이니 학생들도 고개를 기울이며 집중하였다.

“1487년 7월, 조선의 함대는 현재의 무진(茂珍) 합중국의 영토였던 연화(蓮花)대도호부(마닐라)에서 출발하여 머나먼 항해를 시작합니다. 이후 한 달 하고 보름이 지나 현재의 남미(南迷)국의 작은 만(灣)인 경해만(傾海)에 도달하게 됩니다. 홍윤성이 이름을 지은 곳이지요.”

능숙한 솜씨로 분필을 놀려 현재의 멕시코, 현재 남미국이라 칭하는 국가의 지도를 완성한 교수는 분필을 내려놓고 설명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남미국에 속한 이들에게 공격당하였지만 홍윤성은 칠 년을 휴식하여도 전장에서 날뛰던 장수였습니다. 그의 병사는 오백 명에 불과하였지만 모두 군기가 삼엄하며 비교할 수 없이 강대한 이들이었지요.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음으로 아즈텍 황제들의 계보를 나열한 교수는 아우이소틀이라는 이름에 동그라미를 표시했으며 전쟁이라는 한자어도 추가하였다. 사학과의 학생들은 한자 삼천 자 정도는 꿰고 있는 이들이었으니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아즈텍의 황제 아우이소틀은 반란을 종용하고 학살을 주도하였습니다. 권위를 높이고 나라를 확장하려는 그에게 조선의 병사들은 오백 명에 불과한 먹잇감이었지요. 하지만 홍윤성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군략이 있었으며 훈련원 병사들은 세계 최고의 정예였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홍윤성의 원정대와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클란에서 화살표가 이동하였다. 하지만 홍윤성에게 다른 선이 이어졌으니 이는 동맹을 표시하는 뜻이리라.

“또한 그의 부관이자 탐검사의 관리였던 임사홍과 유자광은 재능이 뛰어난 자였습니다. 주변 부족들을 설득하여 전쟁을 도우라 하였고. 결국 혈천(血川) 전투를 시작으로 수십 배나 되는 아즈텍의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다만 홍윤성도 실수를 하였지요. 다음 쪽을 보십시오.”

강의서의 다음 쪽에는 아즈텍의 도시에서 난전을 벌이는 조선의 병사들과 수 없이 쌓인 시체를 묘사한 그림이 있었다. 푸른 두정갑을 입은 홍윤성도 온 몸에 피를 칠하고 날뛰니 기세가 흉험하기 그지없었다.

“아우이소틀은 계략을 꾸몄습니다. 화평과 평화를 유도하는 척 복속을 요청하며 원정대를 도시로 끌어들였고 기습했으며 병사 절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고군분투하는 조선인들에게 구원군이 등장하였습니다. 투이도를 비롯한 신농도인에 속한 이들이 결집한 것이지요.”

몇몇 학생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웃어댔다. 갈색의 피부와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도 더욱 커다란 덩치는 폴리네시아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교수도 슬쩍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홍윤성은 마침내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무너트렸고 악습인 인신공양을 철폐하였으며 증거를 그대로 밀랍으로 감싸 석회로 묻어두라 하여 얼마 전에 발굴할 수 있었지요.”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교재에 없는 내용이며 글로만 전해진다 하였으니 발굴중이라는 언급만 있었던 것이다. 교수는 안경을 매만지며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당연히 석 달 전에 발굴된 내용이니 교재에 사진이 실려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직 남미국의 체면을 보아 공개하지 않았지만 가장 확실한 증거 하나만 보여드리지요.”

학생들이 흑백 사진을 돌려 보면서 구역질을 하였다. 수없이 많은 두개골과 석회로 이루어진 탑이 발굴되었으니 명백히 대량살상이 벌어졌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교수는 사진을 돌려받고 다시 분필을 들었다.

“임사홍은 구 년 뒤 현재의 남미국, 당시의 미주 서해안 일대의 관찰사로 임명됩니다. 수많은 황금은 그를 변하게 만들기 충분하였고. 결국 황금을 빼돌리다 평생 형무소에 하옥되게 되지요. 호사가들은 그가 빼돌린 황금이 일만 근이 넘는다 하던데 아직도 찾는 사람이 있더군요.”

“교수님께서는 어디 묻혀있다 생각하십니까?”

“일만 근의 황금이 있었다면 사십 년 넘게 형무소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지요.”

학생들의 웃음과 함께 다음 강의가 이어졌다. 이미 조선 초기의 치세, 세종 – 문종 – 세조로 이어지는 계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 수양대군이며 그의 영향력은 세계 전역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도원수 남이는 맘루크 제국의 함대와 일전을 벌입니다. 당연히 승리하여 이를 인도양 해전이라 부르며. 훗날 포르투갈의 인도 진출에 있어 결정적인 억제제 역할을 합니다.”

“포르두갈의 함대가 얼마나 약했기에 조선 함대가 쉽사리 무찌른 해군을 상대로 이기지 못하였습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당시 주요 선박인 카락의 크기는 풍역선과 동일하였지만 화포가 부족하였고 기동성이 떨어졌습니다. 서로 대등한 선박을 사용하게 된 시기는 개국 148년, 서력 1540년이니 먼 훗날의 일이지요. 개국이라 한 말은 넘겨주십시오.”

불편해 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대한 제국에서 대한 공화국이 되며 공식 연호는 서방의 서력을 따라가기로 하였고 기존에 사용하던 개국기원(開國紀元)을 폐지하였던 것이다. 검은 얼굴의 학생들이 낄낄거리는 모습을 본 교수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솔로몬 연방국의 사람들은 아직도 솔로몬 력(曆)을 사용하던가?”

“옳은 말씀이십니다! 서력으로 기원 전 970년을 원년으로 삼으니 지금은 2889년입니다!”

“솔로몬 대왕은 이스라엘 근처에 살지 않았습니까! 교수님 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연호를 그렇게 정하면 따르는 일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문제는 삼대 운동의 합으로 겨루면 될 일입니다.”

학생들이 정색하며 교수를 바라보았다. 자고로 사학과 교수라 하면 삼대 운동 일천 근은 기본이며. 아무리 부진하여도 팔백 근을 드는 일이 보통이었으니 어지간한 입신체비로는 교수를 이길 수 없었다.

“잠시 조선의 역사는 아니지만 수양대군의 제자 레무아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마사이국을 만든 레무아니는 수양대군의 조언에 따라 솔로몬 제국과 동맹을 맺었고. 이를 문화적, 사상적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사학과의 꽃이자 가장 험난한 강의인 조선사 강의는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학생들이 뻐근한 몸을 뒤틀며 드넓은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고. 교수는 그런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자고로 얼굴이 잘생긴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은 마음이 바른 것만 못하지. 하지만 가장 좋은 일은 마음도 바르고 몸도 건강한 것이야.”

연구실로 돌아온 교수는 천천히 기지개를 펴면서 조간신문을 펼쳤다. 한때 조선의 관료이자 모두에게 독립된 진실한 이야기를 올리고 싶다며 독립(獨立)신문이라 이름을 정하였으니 그도 즐겨 보는 신문이었다.

[이탈리아 왕국. 솔로몬 연방국과 전쟁을 벌여 연전연패 이후 협상단계에 올라]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 년이 지나 전쟁이 벌어졌지만 일방적인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 공화국의 우방인 솔로몬 연방국의 영토를 노린 이탈리아 왕국은 마지막 교두보인 리비아를 포기하고 철퇴하였다.

한때 동맹이었던 두 국가는 리비아의 영토 분쟁으로 사이가 틀어지며 지난 3월 전쟁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기습적 상륙과 함께 포격 지원으로 솔로몬 연방의 병사들을 유린하는 것 같았지만 솔로몬 연방의 핵심 마사이가 참전하자 상황이 급변하였다.

이탈리아의 전투파쇼당 당수 베니토 무솔리니는 열등한 흑인들에게 패배할 수 없다며 전쟁을 독려하였지만 열등한 것은 이탈리아의 군대였다. 수단 남부까지 진군한 그들을 맞이한 것은 마사이 병사들의 중기관총 세례였다.

대한 공화국에서 제작한 14.5mm 수냉식 중기관총을 짊어지고 대한 공화국의 방식을 따라 사용하니 이탈리아 왕국군은 패퇴를 거듭하였다. 궁지에 몰린 이탈리아는 협정으로 사용 금지된 겨자가스 포탄을 육천 발이나 사용하였지만 전세를 뒤집을 수 없었다.

종전 기자가 독가스 공격으로 철수하자 사태가 급진전 되었다. 이탈리아 왕국의 수단 방어선은 닷새가 지나기도 전에 붕괴하였으며 포로로 잡힌 이탈리아 병사는 사천 명에 불과하였다.

“미친 것들. 겨자가스를 육천 발이나 사용하였다고? 마사이에 속한 이들에게 걸렸다면 산채로 살가죽을 벗겨 버리겠군.”

아마 종전 기자들이 철수한 것이 아니고 분노한 마사이족에 의해 적당히 입막음 당하고 전선에서 추방당한 것이 분명하리라. 교수는 혀를 차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한 공화국의 방식대로 천양(泉壤) 중기관총을 사용했다면 솔로몬 연방국의 병사들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이어졌겠군. 구십오 근(60.8kg)의 기관총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것이 기본이니.”

다시 시보가 울리고 교수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일 층으로 향했다. 자고로 사학과 교수는 옛 유생들의 후계자나 다름없으니 근손실은 죄악이나 마찬가지였다.

사학대학 본관 일 층의 가장 외진 방은 교수들을 위한 입신체비장이 있었다. 정확히는 모든 대학의 본관 일 층 가장 외진 방은 학과에 소속된 교수와 대학원생을 위한 입신체비장이 존재하였다.

한복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입신체비복으로 갈아입은 교수는 사지를 뒤틀어 풀고 보행기 위에 올라탔다. 기름의 잔량을 확인한 교수는 레버를 돌려 전원을 올렸고 내연기관 특유의 진동이 시작되었다.

그가 타고 있는 보행기의 정체는 독일에서 초빙된 공과대학 교수. 하이브리드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직접 설계한 하이브리드 엔진 보행기였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부드럽게 올라가는 속도에 만족한 교수는 보행기 위에서 발을 놀렸다.

“처음에는 쓸데없는 자신감으로 교수 자리에 올랐다 생각했지만 이 년 만에 이런 혼합기관(하이브리드 엔진)으로 제대로 된 보행기를 만들다니. 증기 보행기와 비교하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군.”

대한 공화국의 전신인 대한 제국에서도, 대한 제국의 전신인 조선에서도 입신체비는 중요한 학문이었다. 입신체비를 원활히 하려고 첨단 기술을 도입하는 일을 꺼리지 않았으니 기술의 도입이 가장 빠른 분야가 이 입신체비 기구였다.

“조금 더 속도를 내도 좋겠는데. 증기 보행기는 한 단계를 올릴 때마다 덜컥거려서 쓰지 못하였지만 얼마나 좋은가. 벌써 시속 20인데 떨리지도 않는군.”

격렬하게 뛰어 땀을 시원하게 흘린 교수는 보행기의 속도를 줄여 마무리 운동을 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미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입신체비복이 그의 두툼한 근육을 드러내고 있었다.

벽면에 있는 청계천 입신체비장의 수양팔근도 모사품과 흡사한 몸매. 180cm의 장신에 꽉 들어찬 근육에서 땀이 샘솟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교수가 소역기를 들어 올리는데 벌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얼마 전까지 사방을 헤매고 돌아다녔는지 초췌한 기색이 역력한 청년이었다. 학생으로 따지면 졸업을 앞둔 자인데 그는 김구와 눈이 마주치자 구석으로 숨어들며 속삭이듯 말했다.

“백범(白凡) 교수님?”

“자네······. 지난 학기에 제적된 몽양(夢陽 - 여운형) 아닌가?”

“죄송합니다. 교수님! 얼마 전에 일본에 반환한 큐슈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하여 연락도 드리지 못하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거기서 일에 휘말린 바람에 가까스로 돌아왔습니다.”

“자네 그놈의 고려 공산당 활동을 하느라 몸도 관리하지 않고 게을리 살아왔던 것인가!”

김구가 분노하여 소역기를 오른손에 들고 다가오자 여운형은 구석에서 웅크리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김구는 그의 몸을 훑어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여운형의 체격은 담대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난 시일 동안 해외를 다니며 심각한 근손실을 겪었으니 보통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김구는 그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소역기를 건네주고 탄식하였다.

“이래서야! 이래서야! 사학과라 할 수 있겠나!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자네는 어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느냔 말이야!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데!”

“교수님 죄송합니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 왔으니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근손실을 복구하기 이전에는 용서할 수 없네. 잔말 말고 역기를 들게!”

스승과 만학도 간의 어색한 입신체비가 시작되었다.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근력 운동에 전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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