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35화 - 국제화 시대(2) >
후대의 인재들. 정확히는 세조 이후 성종 치세의 인재들에 대한 면모도 대략적으로 파악해 두었다. 당장 해전으로 명성을 떨친 남이도 그렇고 탐검사에 속해 개척에 나선 구성군도 마찬가지이다. 구성군 하니 얼마 전에 구성군이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다.
‘인재 하나를 기용하는 일을 주선하였는데 중추원에 속한 유구 대감과 언쟁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중부님께서 조금 도와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중추원은 자고로 왕명을 대행하는 기관이며 종친인 내가 움직이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주상께 직접 간언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구나.’
구성군이 더 이상의 말은 안 했지만 유자광을 대놓고 좋은 관직에 천거하려 하였고 중추원과 마찰이 있었나 보다.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넘겨짚었던 일이 이렇게 돌아오다니.
지금의 중추원은 명예직이 아니다. 기능이 축소되었지만 왕명 출납을 담당하며 궁궐의 경비와 숙위 그리고 왕명을 대행하는 기관이니 구성군의 힘으로도 반대를 뚫기 힘든 것이다.
아버지인 유규(柳規)가 본보기를 위하여 1460년경에 북방으로 자신의 얼자를 보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상세히 파고 들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생각하여 보니 자네는 상왕전하께서 계실 적에 면천을 위하여 북방에 나아간 얼자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닌가. 십 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면천을 받지 못할 연유라도 있던가?”
“분명 면천을 받았지만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가친을 비롯한 집안사람들에게 고개를 들고 다니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도성에 들어온 것도 압구 대감과 구성군 어른의 힘으로 가능하였습니다.”
복잡한 사정이라. 그건 좀 알아보고 싶은데 대체 무슨 일일까. 본래 역사에서 죽고 가문이 멸문당하다 시피 하였던 사육신들이 멀쩡히 살아있고 후손들도 관직에 나서니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은 있었다.
본래 역사에서는 신규 무신간의 세력 분쟁을 조장하고 권력에 몰두하여 연산군의 치세까지 살아남은 인물인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다음 날 유자광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자광은 은근슬쩍 청할 것이 있었는지 우물쭈물 거리다가 진상을 털어 놓았다. 서글픈 표정으로 말하니 억울한 일을 당했나 싶었지만 첫 이야기부터 문제였다.
“실은 가친께서 경원부 일대로 저를 보내실 적에만 하여도 역심(逆心 - 반항심)을 품었습니다. 추운 북방에 나아가 칠 년을 보내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솔빈(현 러시아 우수리스크)이라는 고장에 당도하였지요.”
“고생이 많았겠군. 그런 곳에서 칠 년을 보내게 하다니 춘부장(春府丈)도 독한 자이네.”
“사실 칠 년을 보낼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친께서는 저를 어여삐 여기시어 이듬해에 우부승지(右副承旨)로 계시던 형님이 변방인 솔빈의 수령으로 자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유자광을 먼저 보내놓고 가문의 힘을 동원해서 지원하려 했다고? 심지어 권력의 핵심인 승정원에 있던 유자황(柳子晃 - 유자환의 피휘 이전 이름)이 동생을 보살피려고 사람 몇 명이 전부인 솔빈군으로 내려간 거였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다. 왕위에 있던 형님이 압박을 가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신임을 얻고자 변방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고 오로지 얼자인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유자광은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분명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이로군.”
“실은 솔빈에 도착한 직후 역심을 품고 난행(亂行)을 부리다가 술에 취해 어떤 처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형님이 당도하였으며 당도하신 직후부터 저를 얼자가 아닌 동생으로 칭하며 혼담을 주선하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설마. 하룻밤에 아이가 들어섰단 말인가. 그리하여 혼담은 물거품이 되었고 지금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는 자네의 형은······.”
유자광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혼담은 급격히 진행되어 저를 도성으로 올려 보내 혼인을 치를 일정까지 잡아둔 뒤였습니다. 하지만 관아에 들이닥친 여인과 갓난아이의 모습을 본 형님은 진상을 알아차리고 곤장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체면에 먹칠을 하고 형님에게 실망을 안겨줬는데 둘 다 권신이니 출세의 길이 막힌 수준이 아니고 아예 철판을 대고 용접을 한 수준이지. 구성군도 높은 관직에 천거하려 하였지만 이런 사고를 벌였으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도 영릉에 계신 분(세종대왕)께서 법을 고치신 덕분에 아내를 헤프게 대한 죄를 적용하여 곤장 열 대로 끝나고 형무소에 갈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자네의 체격을 보니 알겠군. 입신체비는 물론이거니와 온갖 일을 행하며 노력 하였던 것이 분명해.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꼴이 되다니.”
“저는 둔재여서 학문도 미숙하였으며. 군문에 나서려고 하여도 아내와 자식을 길러야 하니 답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탐검사에 응하여 구성군 대감에게 발탁되기를 원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분의 힘으로도 도성에 거주하는 일이 한계였지요.”
그렇다고 과거를 봐서 외관(外官)직으로 돌아다니며 아버지와 형의 등쌀을 피할 방법을 택할 수도 없다. 유자광은 수양대군의 총애가 아니라면 관직에 오를 실력도 없다. 과거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폭증한 것은 덤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한명회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압구정의 바지사장 노릇을 하는 것이 전부였으리라. 유자광은 한탄하며 말했다.
“물론 대군어른의 힘이라면 가친께서 반대하셔도 이를 무마하고 관직에 제수할 힘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대군어른께서는 그러한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이네. 재능이 탁월하다면 모를 일이지만 자네를 대신할 인재는 많으니 문제라네.”
“흑질(황열)에 시달려서 체중이 열 근(6.4kg)이나 줄어들고 사지의 근력이 쇠하였는데도 관직에 나설 수 없다니 모든 일이 젊은 날의 치기에서 비롯된 일이라 한탄할 방법도 없습니다.”
흑질? 생각해 보니 구성군이 머물렀던 탄주현에는 풍토병이 있다 했었다. 하지만 유자광이 그 병에 걸리고도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흑질이면 흑사병인데 아프리카에 흑사병이 있나?
“흑질이라니. 듣기는 했지만 이주(아프리카)의 풍토병에 걸리고도 살아남다니 몸 하나는 대단하군. 이럴 줄 알았으면 훈련도감에 입영하거나 갑사로 들어섰으면 될 것이 아니었는가.”
“아이가 딸린 몸인지라 불가하였습니다. 흑질로 사경을 헤매던 때를 기억하니 소름이 돋는군요. 눈과 입에서 피가 나오고, 피가 섞인 시커먼 물을 토해내며 고통을 겪었습니다.”
증세를 들으니 뭔가 떠오를 것 같은데 아마 황열이 아닐까. 노예무역으로 아메리카의 풍토병으로 변한 질병이자 파나마 운하의 건설을 지독하게 방해했던 끔찍한 질병. 최대 치사율이 80%에 달하는 끔찍한 녀석이다.
더군다나 현대의 황열과 이 시대의 황열은 다르다. 말라리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질병은 전염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증세를 약화시키고 환자의 생존 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변화했으니 유자광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참으로 고생이 많았군. 하지만 내가 자네를 천거할 방법은 없어도 주상께서 자네를 어여삐 여길 방법은 염두에 두고 있다네. 자네는 이미 탐검사 도제조의 수하나 다름없으니 그의 후임자로 나서 봄은 어떠한가.”
“후임자라 하셨습니까? 압구 대감의 후임자라 하면 제가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분은 천부적인 자질이 있으시면서 끝없이 학업에 매진하는 분입니다.”
“한 도제조가 배재당에서 학업에 매진하고 관직에 나선 것은 그의 나이가 서른 살일 무렵이라네. 자네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당장 사람이 기피하는 탄주현은 아직도 머무는 이가 없다네. 당장 탄주현에 머물기 원한다 말하여보게.”
어차피 간신배이자 권신이 될 놈이면 외방으로 죽도록 돌리는 것이 답이다. 더군다나 황열을 극복하여 면역이 형성되어 있다면 아프리카에서 일하기 충분한 사람이지. 가족들이 아무리 싫어하여도 능력을 보이고 홍위가 신임하면 그걸로 끝이다.
더군다나 탄주현을 개척하였지만 그놈의 풍토병이 문제였다. 정작 개척해 놓았지만 누구도 나서기를 원하지 않으니 머무르는 사람은 구성군이 요청하여 탄주현에서 지내는 마사이족 사람 몇 명이 전부이다. 하지만 유자광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눈치이다.
“다른 일은 제하여도 흑질과 아국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지독한 학질(虐疾 - 말라리아) 또한 문제입니다. 흑질은 겪어 본 이가 적으니 몰라도 학질은 두창(痘瘡 - 천연두)과 다르게 앓던 이도 다시 앓지 않습니까.”
“풍토병에 대하여 다른 이들과 논의를 나눠 볼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혹여나 탐검사에서 반려하여도 다른 고장을 개척하는 일에 자원하면 품계가 없는 직책이라 하여도 충분한 녹봉을 보장하며 훗날의 일이 편해질 것이네.”
유자광이 기쁨과 억울함이 섞인 표정을 짓고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분명 관직에 나설 길이 열려 기쁘겠지만 머나먼 외방에 근무하니 억울한 마음이 남아 있었겠지. 나는 그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염려하지 말게. 지금은 국제화(國際化)의 시대라네. 언제까지 아국 하나에 얽매어 있으면 아국이 발전할 방도도 없으며 언제까지고 이 좁은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네.”
며칠 뒤. 유자광이 돌아와 고개를 숙였는데 탄주현에 사람을 파견하는 일은 피렌체의 사람들이 돌아가는 오 년 뒤라고 하였다. 대신 한명회가 돌아오는 대로 조선의 영토가 된 좌도도(사도가시마)의 개척단에 파견될 것이라 하였다.
드디어 사도가시마의 개척이 시작되었으니 금광을 발견하면 좋은 일이다. 유자광을 위로하듯이 에둘러 말했다.
“새로운 땅에는 어떠한 자원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네. 좌도도는 왜국에 속한 땅이었으니 은이 산출될지도 모르고 금이 산출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유자광은 그런 행운이 없을 것이라 말했지만 사도가시마의 금광은 존재한다. 비록 일본에 있는 가이(甲斐) 금광을 얻지는 못하지만 사도가시마만 털어내도 화폐를 유통시키고도 남는 수익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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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어의, 내의원의 정(正)인 전순의는 세종대왕님이 돌아가시고 사직을 청하였고 얼마 뒤에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이후 어의가 된 자는 정흥지(鄭興智)이다. 그도 탄주현의 풍토병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탄주현의 풍토병은 끔찍한 놈들입니다. 이미 학질이 아니고 이주학질(아프리카 말라리아)라고 명명하였으니 두창을 넘어서는 괴질로 보아야 할 것이지요. 그리고 흑질은 증상이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당시의 기록은 정흥지를 비롯한 어의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칠 할이 넘는 사망자라 하면 실록에 역병(疫病)이라 기록될 수준도 아니니까 더욱 그렇다. 정흥지는 당시의 목록을 훑어보면서 말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풍토병 가운데 흑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옮겨 다니지 않는 점입니다. 이러한 질병이 사람을 통해 전파되면 도성은 쑥대밭이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구려. 풍토병이라 하면 처음 한 달 동안 탄주현에 머물렀을 때에 흑질에 걸린 이가 속출하여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퉁아니(마사이) 사람들과 접촉한 이후 생긴 것이오.”
“병이 진전되는 시일이 길 지도 모르지 않습······. 그렇다면 말이 안 됩니다. 어찌하여 구성군 어른이 탄주현을 빠져나와 극락도에 머무는 동안에 발병하지 않은 것입니까.”
아무도 없는 탄주현에는 감염원인 모기가 있었지만 마사이족과 접촉하기 이전에는 옮겨올 말라리아 원충과 황열 바이러스가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풍역선이 출항하기 이전에 배를 말끔히 청소했을 것이니 장구벌레가 살아 있을 이유도 없고.
나야 정답을 알고 있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알아차리기 힘든 일이다. 20세기가 되어서야 말라리아의 전파 방법이 규명되었으니 너무 훗날의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약간의 지식을 이용해 말해보자.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흑질과 이주학질이 전해진다면 구성군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오. 보름이 넘게 퉁아니의 마을에서 기거하지 않았소. 그러니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닐까 염려되는군.”
“다른 것이라 하였습니까? 혹여나 짐승을 통해 옮겨진다 하시면······.”
“자고로 문(蚊 - 모기)은 사방을 떠돌며 사람과 사람을 오가며 피를 빨아들이는 사특한 족속들이오. 추측하건데 흑질과 이주학질이 땅과 독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문이 사람을 드나들며 옮기는 것이 아닐까 싶소.”
지금도 궁궐에는 모기가 돌아다닌다. 나야 모기장도 비단으로 만들게 하고 집 근처의 웅덩이란 웅덩이는 모조리 메워버리고 드므(방화수를 담는 물동이)도 뚜껑을 덮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방법은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추천이 아니고 강요해야 하는 입장이다. 정흥지는 내 말을 듣더니 이론상으로는 옳다고 중얼거리면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기껏 해야 문이 빨아들이는 피는 좁쌀 한 톨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러한 피로 질병이 일어난다면 세상천지에 병에 걸리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하면 두창은 어찌하여 숨결만 닿았을 뿐인데 사람을 넘나드는 것이오. 돌아가신 숙부님(성녕대군, 세종의 동생)과 어여쁜 동생인 여(璵 - 광평대군)가 요절한 일은 잊었소?”
광평대군은 죽었다. 정말 어처구니없이 나라의 일을 하는데 병을 앓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덜컥 죽었고 원인이 두창, 천연두라 하였다. 정흥지도 그러한 일은 알았는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소견이며 이론일 뿐이오. 그러하니 문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방책을 취하여 보고 훗날 탄주현에 머무는 이들에게 시험해 볼 것이오.”
역시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실험이 필요하다. 그런 귀찮은 일을 하려면 누가 뭐라 하여도 이현전의 학자들이 최고다. 그들은 내가 저술한 이론을 신봉할 지경이니 약간의 떡밥만 던져줘도 알아서 일을 할 것이다.
“수양대군어른이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다른 일은 아니오. 문(모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왔소이다.”
이현전의 학자들은 요즘 바쁘다 못해 몸이 두 개가 되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홍위의 명령을 받아 물을 한 달 이상 보존하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업무를 주관하는 자배(자파르)는 나를 보면서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대군어른의 심계는 참으로 무궁무진합니다. 저희는 상처가 덧나는 일을 외부의 안 좋은 기운으로 생각하였는데 이를 석감과 주정(고농도 알코올)로 씻어낼 수 있다 하니 많은 참고가 되었지요.”
“상처가 덧나는 일과 물이 상하는 일 간에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 모르겠구려.”
“대군어른이 저술한 서책에는 상처를 닦을 적에 깨끗한 면포를 물과 함께 끓여 식힌 다음 상처를 닦아내고, 주정을 부어 소독하라 하였는데 이 과정이 물을 보관하는 과정과 흡사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전전대 어의 양홍수와 함께 저술했던 의서를 보고 그걸 적용했다고? 이현전의 학자들이 세균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받아들인 것도 놀라웠지만 그걸 응용한 방법도 놀라웠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겸손해야지.
“소가 뒷걸음질을 치다 개구리를 잡은 격이구려. 그래서 효험은 있었소? 한 달을 보관하라는 주상의 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오?”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무 날이 넘으면 상하는 녀석이 생기지만 조만간 나아질 것입니다.”
탐검사를 위하여 제작한 항아리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조선에서 흔히 쓰이는 호(壺) 형태가 아닌 드럼통에 가까운 형태이며 내부에는 은이 약간 덧발라져 있었는데 은의 항균 능력을 활용하려는 방법 같다. 관원 중 하나는 항아리를 열더니 고개를 저었다.
“삼십이 번은 실패했습니다. 역시 입구를 석회(石灰)로 막지 않으면 효험이 급격히 떨어지나 봅니다. 밀랍을 사용한 녀석은 효험이 적군요.”
“계속 행해 봅시다. 정 여의치 않으면 유리병을 만들어 밀랍으로 입구를 막으면 충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대군어른이 청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일은 아니고 문(모기)이 싫어하는 녀석을 찾아줬으면 하네. 생각이 잘못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학질을 비롯하여 병을 옮기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문이 아닐까 싶네.”
내 말을 들은 학자들이 고민하는 눈치를 보내다가 일단 해 보자는 말을 하면서 서로 손을 맞잡았다. 역시 학자들은 뭔가 연구 거리를 던져주면 알아서 잘 한다니까. 그런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생각하지도 않은 사람이 들어왔다.
놀랍게도 한명회가 아무런 말도 없이. 정확히는 홍위에게 보고를 올리자 마자 이현전에 머물고 있던 나를 찾아온 것이다. 갈 때와 다르게 돌아온 한명회는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고 흉터까지 생겨 있었다.
“자네······. 어디 크게 다쳤는가?”
“네 다쳤습니다! 마음도 몸도 아주 크게 다쳤으니 더 이상 항해의 ‘ㅎ’ 자도 논하지 마십시오! 호주? 호주라 하셨습니까! 신농도와 비슷한 크기의 섬이라 하셨습니까!”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한 일이었지. 그저 해류의 흐름을 파악하여 섬을 추정하였을 뿐 더욱 클지도 모르지 않았나. 대체 얼마나 크기에 그러한가.”
한명회는 얼굴에 생긴 두 줄의 흉터를 꿈틀거리면서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내가 종친이 아니었다면 달려들어 사생결단을 낼 정도로 격노하였는데 내 잘못도 있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명회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명국보다 거대한 섬이었습니다. 섬에는 기이한 나무들도 있었고 나무위에 사는 코가 크고 작은 곰처럼 생긴 낙웅(落雄 - 떨어지는 곰, 코알라)과 두 발로 서서 돌아다니는 토끼도 아니며 노루도 아닌 입록(立鹿 - 선 사슴, 캥거루)이 있었지요. 이 흉터가 보이십니까!”
“짐승의 습격을 받은 것인가. 흉터가 깊게 나 있군.”
“입록 놈이 제 뺨을 할퀴어서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뱃속에 자신의 새끼를 길러 충실한 동물인 줄 알았는데 흉포하기 그지없으니 호주(濠洲)가 아니고 흉(凶)주가 아니겠습니까!”
한명회의 푸념은 이어졌다. 걷어차이면 정강이가 부러지는 괴물 새(화식조일 것이다). 물린 사람이 하루 만에 급사하는 흉악한 거미. 동해를 뛰어넘는 끔찍한 파도가 몰아치는 남쪽 바다까지. 푸념을 늘어놓다 지친 한명회는 다 식은 커피를 들이켰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신농도의 분파에 속하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마오리라 칭하는 이들인데 자신들을 아오테아로아(Aotearoa - 뉴질랜드)에 살고 있다 하더군요.”
“참으로 고생이 많았네. 그런데 마오리라 칭하는 이들이 흉포하지 않던가?”
“흉포하다? 그런 일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한 이들 가운데 가장 흉포한 자들은 신농도에 거주하던 이들이 전부였습니다.”
전투종족으로 손꼽히는 마오리족이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한명회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그를 보며 주눅 들어 있던 이현전의 관료들이 천문을 관측한 좌표를 확인하였고 놀라움에 말을 이어가지 못 했다.
“세상에, 도제조께서 대체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명국보다 거대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어. 기껏 해야 신농도와 비슷한 것이 아니라니······.”
“해류의 흐름이 난폭하기 그지없습니다. 어중간한 함대였다면 모조리 난파하였겠지요.”
한명회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간절함과 분노를 숨기지 않고 나를 노려보았다. 이건 내가 잘못한 일이 맞으니 한명회를 달래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은 자네에게 청이 하나 있다네. 한 번만 더 외방까지 항해하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외방이라 하셨습니까! 저보고 미주에 다녀오라는 말씀이십니까! 이번에 미주는 삼 년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입니까!”
“굳이 미주에 다녀오지 않아도 될 일이네. 자네의 후계자로 인재 하나를 정해놨으니 그가 경험을 쌓도록 머나먼 항해를 한 번 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그 후계자는 유자광이구요. 한명회는 후계자라는 말에 미소를 지으려 하다 쌀쌀맞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뒤이어 나온 말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 말이었다.
“주상전하께서 저의 공을 치하하시며 삼 년간 휴식하라 명하셨습니다! 앞으로 삼 년 동안 저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으니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뭘 하는 것인가!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명회가 망가져 버리면 국제화의 시대도 끝난다. 결국 홍위의 말 대로 제자들이나 가르치면서 삼 년은 가만히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