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19화 (219/573)

< 3장 33화 - 말년의 제자들 >

1473년 4월, 한명회의 함대도 출발하고 평온한 나날이 이어지나 했지만 홍위가 나를 호출했다. 복식을 갖춰 입고 궁궐로 나서니 홍위와 안경을 쓴 효령대군이 나란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상전하께서 어인 일로 신을 부르셨나이까.”

“숙부님에게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퉁아니 사람들에 대한 교육입니다. 이들이 정음을 능숙하게 익히고 아국의 사람들과 어울릴 준비를 마쳤으니 입신체비를 비롯한 아국의 모든 일을 가르칠 차례입니다.”

“드디어 때가 되었으니 좋은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하온데 정녕 이들에게 모든 일을 가르칠 것이라니 너무나 큰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모든 일이라 하면 학문은 물론이고 기술도 포함이다. 너무 많은 일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자칫 잘못하면 조선의 여력을 갉아먹을지도 모르고 수많은 정보가 새어나갈지도 모른다.

“퉁아니에 속한 이들을 교화시키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이들이 너무 많은 일을 안다면 아국의 기술이 다른 곳으로 유출될 일도 있을 것이옵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훗날 불온한 일로 되돌아올지 모르지 않사옵니까.”

“퉁아니의 사람들이 아국에 머물 기한은 앞으로 팔 년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팔 년을 머물며 기술을 배우고 학문을 익혀도 대성(大成)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혹여나 주상전하께서 뜻하신 바는 퉁아니 족을 교화하는 것이 아니고 퉁아니의 국가를 만들어 아국의 배후지로 삼으려 하심이시옵니까?”

홍위가 은근슬쩍 웃으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폴리네시아인이 머무는 섬은 땅이 좁고 바다로 이동해야 하니 불가능한 일이지만 마사이족은 드넓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분명 많은 고난이 있겠지만 토착 세력을 조선의 편으로 만들고. 조선의 문물을 전달하여 그것을 기반삼아 국가를 형성하게 만들면 믿음직한 동맹이 생기는 것이다. 홍위는 웃음을 멈추고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이미 아국은 많은 손해를 보았습니다. 물산과 사람이 다치는 일이 손해가 아니며 머나먼 이국이 아국을 질시하거나 해를 입힐 마음을 먹는 것도 손해입니다.”

“그러한 일은 들었습니다. 이미 우방이라 여겼던 오사만국이 도리를 어겼고 구주(유럽)의 수많은 국가들이 아국을 질시하는 형편입니다.”

“그러하니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탄주현은 너무나 머나먼 고장입니다. 혹여나 사특한 이들이 점거할지도 모르니 아국의 우방이 필요함은 당연한 일이지요. 또한 이들이 아국의 우방이 되면 포도아를 비롯한 서역인의 동향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홍위는 지난번 한명회의 보고. 머나먼 서방에서 조선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팽배하다는 소식을 듣고 신숙주를 비롯한 예조 관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조선이 외교 정책을 펼칠 기반을 마련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첫 번째 정책은 백양 왕조에 대한 지원이었고 지금 밝히는 두 번째 정책이 마사이족의 국가 형성 보조이다. 철기에서 정체된 이들이 다음 단계까지 나서야 하는데 이걸 조선에서 배우게 만들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마사이족의 교육을 담당했던 사람은 종친의 웃어른인 효령대군이었다. 종친 가운데 효령대군을 능가할 연령을 가진 자도 없었으며 효령대군보다 항렬이 높은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효령대군은 가장 먼저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을 가르쳤고 이들의 생활을 연구하였다. 속속들이 마사이족의 생활 방식, 이 시대에는 퉁아니라 자신들을 칭하는 부족의 생활 방식이 알려졌으니 나도 듣고 놀랄 지경이었다.

마사이족이 평등을 추구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들에게는 혈통에 의거한 신분제가 없다. 10년 정도의 주기로 세대를 규정하고. 그 세대 안에서는 정말 평등하게 지낸다. 같이 성인식을 치르고 같이 먹고 같이 지내며 아내도 공유하고 있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아내를 공유한다는 말을 듣자 사람들이 발칵 뒤집혔다.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짓이며 형사취수(兄死娶嫂)는 교화되지 않은 여진족에게나 있는 풍습이라 한 것이다. 하지만 효령대군은 세 제자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 중니(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고로 천하위공(天下爲公 - 천하가 모두의 것이다)이 올바른 모습이니.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가 아닌 이도 공경하여 노인은 대접받고 편안히 지내며, 젊은이는 일을 나누어 같이 행하니 참으로 옳은 일이 아니겠느냐.

- 이들은 사냥을 즐기고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내를 남에게 대접하는 악습이 있으니 토인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 구성군의 말을 들어보게나. 지독한 더위가 이어지니 농사를 지어도 소득이 없을 것이며, 항시 맹수들의 위협을 받으니 남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풍습일 것이다. 이들의 습속이 온전치 않아도 올바른 뜻이니 교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몇몇의 사람들이 효령대군에게 따지고 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연륜을 바탕으로 한 입담과 왕실 웃어른으로서의 권위였다. 마사이족이 조선의 생활에 적응하는 와중에 이들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효령대군의 입담에 휩쓸린 이들은 마사이족을 요순의 치세와 같이 사는 대동(大同)의 사람들이라 평가하였다. 마사이족이 다른 부족의 가축을 약탈하기를 즐겨한다는 말은 쏙 빼놓은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효령대군이 왜 빠지게 되었지?

“청년들을 가르치는데 효령대군의 도움이 필요한데 어찌 하여 저에게 일임하시는지 연유를 모를 일이옵니다.”

“예끼! 이 중부의 눈에 있는 안경이 보이지도 않느냐? 이제 일흔다섯이 넘어서 노안(老眼)이 심해지니 더 이상 글을 읽기가 힘들어지더구나. 정음은 가능하여도 한자는 읽으려면 한참 걸리는구나.”

“그러한 일이니 방법이 없습니다. 본디 숙부님은 여진족을 교화시키고 신농도에 속한 이들을 가르쳤던 분이니 충분한 효험이 있을 거라 여기겠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지만 양 어깨에 걸린 책무가 막중하다. 단순한 교화가 아니고 이들에게 조선의 배후지이자 동맹국이 될지도 모르는 세력을 만들 기술을 가르쳐야 하니까.

효령대군과 함께 배재당으로 향하니 이미 이야기가 전해져 있었는지 마사이족 청년들 모두가 도열해 있었다. 2년이 지나 조선의 풍속을 익힌 덕분인지 한복을 입은 차림새가 제법 좋았다.

“스승님과 수양대군 어른을 뵙습니다.”

“말년에 새 제자들을 두었으니 이러한 복이 있다니. 그런데 본래 서른두 명이 아닌가? 두 명이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두 명이 죽었습니다. 한 명은 작년에 산군을 사냥하다가 변을 당했고 한 명은 폐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겨울 추위에 시달리다 죽었으니 아쉬운 일입니다.”

서른 두 명이 아닌 서른 명의 청년이 되었나. 이들이 사자를 사냥할 때처럼 당당하게 나서니 매복을 즐기는 호랑이에게 당한 것이 분명하였다. 아쉬운 일이지만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웬 나무상자 두 개가 대청마루 위에 있었다.

“혹여나 저 나무상자에 있는 자들이 목숨을 잃은 자들인가?”

“그렇습니다. 큰 어른(효령대군)께서 몸을 불에 태워 뼈를 남겨주셨으니 이렇게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묻어줄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유골 가루가 손상될지 모르지만 좋은 일이니 내버려 두기로 하였다. 일단 홍위가 원하는 일은 이들이 조선의 기술을 배우는 일이지만 강압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조선은 베푸는 입장에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일단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전사의 몸을 만들 수 있는 입신체비이다. 새로운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입신체비를 가르치기 위한 기구들이 몇 년 만에 창고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들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네. 입신체비는 내가 창안한 학문이며 부모에 대한 효도를 위하여 몸을 단련하고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저희 모두 입신체비를 바라고 있었으니 대군어른이 당도하시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여나 입신체비를 몸을 기르는 방법으로 잘못 생각하지 말게. 어디까지나 학문을 익히며 몸도 다스리라는 뜻이니 몸을 놀리면 글을 배워야 할 걸세.”

청년들이 웃옷을 벗자 짧은 바지와 아직 달라붙지 않아 헐렁거리는 입신체비복이 보였다. 얼마나 군살이 없는지 헐렁거리는 옷을 보고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청년들은 나의 몸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정녕 망륙(望六 - 51세)이 넘어선 분이 맞습니까? 구성군 어른과 비견하여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며 오히려 상체가 더욱 튼튼하지 않습니까?”

“자네들도 참 많은 것을 알고 있군. 준이(구성군)와 비교하면 삼대 운동의 합은 비슷하거나 조금 위일 거라네. 그렇다면 땀이 돋아오를 수 있도록 조금 뛰어 보겠네.”

마사이족, 그것도 정말 초원을 거닐던 마사이족과 같이 뛰어보다니 오래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를 뛰고 돌아와 땀을 슬쩍 올린 다음 대역기를 보여주었다.

청년들은 이런 거대한 쇳덩어리를 본 적이 없었는지 두들겨 보기도 하고 긁어 보기도 했다. 기껏 해야 약간 제련된 강철을 쓰던 이들에게는 상상조차 못한 물건이리라.

“이것이 입신체비의 기본이자 끝인 대역기라네. 잘 제련된 강철봉에 주철로 만든 공령(플레이트)을 엮는 것이지. 나이가 들어 몸의 근육이 줄어들어 삼대 운동 합이 일천 근에 미치지 못할 지경이지만 자네들을 가르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거라네.”

“일천 근이라 하셨습니까? 일천 근이면 대체 무게가 얼마지요?”

“자네들은 체격이 크지만 군살이 없으니 기껏 해야 백이십 근에 불과할걸세. 삼대 운동은 가장 기본인 의압(벤치 프레스), 공좌(스쿼트) 그리고 시거(데드리프트)를 뜻하는 것이지.”

이들은 팔다리가 길어서 근육량에 비교해서 초기 근력이 낮을지도 모르고 부상의 위험도 크다. 이럴 때에는 수양대군의 몸매가 좋다니까. 부상에 주의하면서 간단히 삼대 운동을 시작하려 했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삼대 운동을 직접 보여주십시오!”

“원하는 것도 많군. 그렇다면 간단하게 의압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힘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의압은 아직 삼백 근(약 192kg)은 거뜬하다네!”

“오우와루(사자)도 들어 올릴 수 있으니 대단한 일입니다!”

하긴 청년들의 무게 기준은 맹수겠지. 예순이 다 되어도 수사자를 짊어질 수 있는 괴력의 사나이라니 아직 근손실이 심하지 않군. 여하튼 삼대 운동을 끝냈지만 청년들은 내 몸을 돌아보다가 대역기를 번갈아 보면서 청년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엇이 그렇게 걱정인가? 혹여나 허리가 아프거나 어디 문제라도 생긴 것인가?”

“돌아간 뒤의 일이 걱정되어서 그렇습니다. 저희가 학문을 익히고 몸을 튼튼히 만들어도 저희는 철이 귀하고 이런 뛰어난 강철을 만들 기술이 없습니다.”

“허어, 그러한 일이 문제라면 아국에 머물며 배우면 될 일이 아닌가? 주상전하께서 명하시기를 자네들이 관직에 나설 길도 열려 있으며 기술을 배울 길도 막지 말라 하셨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다. 이들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잘 제련된 강철 대역기봉이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청년들이 놀라서 되물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저희도 이런 잘 제련된 강철을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강철 정도는 비밀도 아니라네. 원한다면 군기시에서 일하며 온갖 무기를 만드는 법을 익히면 될 일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광맥을 찾는 일도 문제이겠으나 원한다면 탐광자를 통해 배우면 될 일이 아닌가.”

“그러하면 벼락을 쏘아댈 수 있는 무기는······.”

“무기라니! 그러한 삿된 것은 학문을 배우는 자리에서 논할 것이 아니네! 원한다면 관직에 나서 배워 가면 충분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미 북방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한 빈공과(賓貢科)가 있으니 거기에 응시하면 충분한 일이라네.”

알게 모르게 호통을 쳤지만 청년들의 의욕이 무럭무럭 샘솟는 모습이 보였다. 학문을 배워 조선의 제도에 맞춰 움직이면 모든 비밀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강압적으로 기술을 가르칠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겠다.

“그렇다고 모두 철물을 만드는 일에 매달린다면 아니 되네. 퉁아니에 속한 이들은 연배가 같으면 모두 평등하다 들었으니 자네들이 각기 다른 일에 나서면 모든 일을 배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저희 서른 명 모두가 제각기 다른 일을 배운다면······. 조선과 같은 고장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확실한 답을 줄 수는 없다네. 풍토도 다르며 아국에 있는 것이 이주에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서로가 없는 물산을 나눈다면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겠지.”

청년들이 이후에도 조선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조선의 좋은 점을 은근 슬쩍 늘어놓았다. 머나먼 고장까지 다녀올 수 있는 선박도 있으며. 질 좋은 철이 지천에 널려있고 옷감도 넘쳐난다고.

이렇게 조금씩 조선의 기술을 가르치고 조선의 영향권 내에 둔다면 미래가 기대된다. 이들이 과연 어떠한 국가를 만들까, 혹은 국가를 만들지도 못하고 부족사회로 퇴보할까. 하지만 가장 기대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입신체비의 본 뜻은 효도이지만 자네들의 재능을 보니 마치 흑요석(黑曜石)과 같군. 입신체비 자세 가운데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흑룡세(빅토리 포즈)가 있지만 자네들이 입신체비에 통달하여 흑룡세를 행하면 장관이 따로 없겠군.”

절대 사리사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훤칠한 팔다리, 군살도 없이 단련된 몸과 검은 색이면서 잡티도 없는 피부를 가진 마사이족 입신체비사 서른 명의 흑룡세라. 장관이 따로 없겠군.

----------

1473년 10월, 조선에서 첩목아국(티무르 제국)의 분파 가운데 강성한 백양국(백양 왕조)에게 지원을 보낸 결과가 도착하였다. 기술 고문이자 포병대의 지휘를 담당하였던 성담로가 홍위에게 보고를 시작하였다.

역사상에 명장으로 남은 우준 하산. 이십만이 넘는 오스만 제국의 정예병을 상대로 칠만 에 불과한 기병으로 난전을 거듭했던 인물에게 상대에 대한 정보와 화포가 주어졌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신 성담로 보고를 올리옵니다. 백양국의 군주는 아국의 행동이 전쟁을 독촉하는 일이라 여겨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사옵니다. 하지만 신이 당도하고 두 달이 지나자 오사만국의 입김이 거세졌고 아국의 화포를 거래하며 신을 고문으로 고용하였사옵니다.”

“덕분에 일 년 반을 머물러 있지 않았소. 이제 전쟁은 끝난 것이오?”

“그러하옵니다. 신은 지난 7월 3일 전선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오사만국에서 이십만이 넘는 병력을 보냈으며 이는 허세가 아니고 빼어난 정병이었으니 백양국의 모든 이들이 전쟁을 포기하려 할 지경이 되었사옵니다.”

서아시아의 패권을 결정 지은 오틀룩 벨리, 혹은 테르잔 전투의 시작이다. 성담로의 보고를 들은 홍위도 이십만이 넘는 병력이라는 말에 숨을 들이켰고 신료들도 놀라움이 앞섰다.

수비전이 아닌 공세에 이십만의 병사를 보내는 것은 명나라나 가능한 일이다. 그마저도 전성기의 명나라나 가능한 일이니 오스만 제국이 얼마나 강대한 국가인지 실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담로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백양국의 제후들과 군주가 모은 병사의 수는 칠만 명에 불과하였고 제후들은 도주하기를 원하며 화포를 쏘아 적을 교란하는 일이 먼저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백양국의 군주 우준 하산이 막아섰습니다.”

“참으로 잘 된 일이오. 현자총통이 오백 문에 달하여도 오사만국이 화포의 존재를 알면 다른 전략을 펼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실로 그러하니 우준 하산은 비범한 이가 분명합니다. 백양국의 병사들이 침묵하자 오사만국은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여 섣불리 도하하였고 이것이 첫 전투의 패착이었사옵니다.”

성담로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도하 병력에 대한 포위 섬멸을 시작해 적의 병사 삼만 이상을 몰살시켰으며 선봉장을 포로로 잡았다고. 이후 기세가 오른 제후들이 추격전에 나서는 일 까지 모두 역사상에 있는 오틀룩 벨리 전투와 같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미 조선을 통해 예니체리의 편제와 화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우준 하산은 제후들을 설득하였고 제후들 또한 전투를 통해 얻은 정보를 비교하며 조선이 제공한 정보를 신뢰하게 되었다고.

“난전이 이어졌습니다. 백양국의 군주 우준 하산은 신묘한 책략가이니 큰 승전과 작은 패전을 반복하게 하여 보름에 걸쳐 적이 퇴각하지도, 진군하지도 못하게 하며 힘을 빼놓았사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화포를 사용하지 않았단 말인가. 참으로 비범한 자가 아니겠는가. 본디 군문의 일은 기세를 올릴 적에 모든 힘을 동원하는 것이 아닌가.”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우준 하산이 뜻하던 일은 오사만국의 병력을 최후의 결전으로 궤주시키는 것이었으며 마침내 이어지는 전쟁에 지친 오사만국은 결전을 단행하였사옵니다.”

조선이 제공한 약간의 정보를 기반으로 본래 역사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혀 버렸으니 메흐메트 2세의 얼굴이 볼만하게 일그러졌을 것 같다. 내 생각으로 큰 효과를 보였으니 홍위는 나를 슬쩍 보더니만 다시 이야기에 집중했다.

“오사만국은 포병들을 끝까지 보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우준 하산의 지휘를 무시하고 돌격한 제후들의 기병이 화포에 맞아 궤주하였지만 오사만국 포대의 위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신이 가르친 이들이 현자총통을 돌려 응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대포병 사격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하르빈 전투에서도 적이 소수의 화포로 대포병 사격을 시도하자 사람들의 눈에 공포가 스미는 것이 보였으니까. 홍위도 고개를 끄덕이며 성담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실로 그렇소. 최후의 수를 서로 숨겨두었지만 오사만국이 먼저 꺼내 들었던 것이구려.”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화포 오백 문을 사방에 스무 문씩 숨겨두었고 일제히 명령을 내렸습니다. 현자총통은 가볍고 다루기 쉬우며 먼 거리로 쏘아붙일 수 있는 화포였으니 적의 본진 사방이 공격당하였고 이윽고 불기둥이 솟구쳤사옵니다.”

“오사만국이 비축한 화약고에 포탄이 적중 당한 것이구려.”

“그러하옵니다. 다루기 힘든 거포를 사용하니 첨병을 보내 화포의 위치를 파악해도 조준하는데 너무 많은 힘이 들었습니다. 또한 우준 하산은 적의 첨병이 나타난 직후 군마를 보내 화포를 옮기는 일을 도왔습니다.”

처음 접해보는 병기를 다루는 우준 하산이지만 사용법을 알고 있으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화포가 사정거리가 일천 보(약 1.6km)에 불과하며 현자총통의 사거리가 이천 보(약 3.2km)에 달하는 것을 숙지하였던 것이다.

현자총통의 화력은 형편없지만 화력이 전부가 아니다. 신속한 이동과 방열이 가능하니 이동이 불가능한 적의 포병을 말 그대로 유린하였으리라.

“덕분에 화포를 맞아 궤주하던 백양국의 제후가 거느린 병사들이 속속들이 전선으로 복귀하였고. 신은 현자총통 모두가 불타오를 지경으로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오사만국은 가까스로 퇴각하였지만 손해가 막심하며 십만에 달하는 병사가 죽거나 포로로 잡혔사옵니다.”

“그러한 일을 행하였다니 고생이 많았소. 그런데 이후의 경과는 어떻게 되었소?”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주상전하의 심계가 효험이 있었사옵니다. 메흐메트가 보낸 사신이 화평을 제시하였고. 오사만국의 영토를 내어줄 것이라 하였지만 현자총통의 출처를 궁금해 하였사옵니다.”

당연하지만 현자총통이 노획되더라도 조선의 물건이라는 흔적은 남기지 않았으나 한 가지의 방법을 더 마련해 두었다. 홍위가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자 성담로는 웃음을 집어 삼키며 보고를 이어갔다.

“그······. 그리하여 오사만국의 재상이 협상장에 나와 화포 기술자들을 만났사옵니다. 천축에서 건너왔던 사두(요가 수행자)들이 화포 기술자라 자신을 소개하였고. 화포의 출처는 머나먼 조와국(마자파힛 제국)이라 하였습니다.”

“혹여나 천축의 사람들과 조와국의 화포가 건너온 이유를 묻지는 않았소?”

“재상이 화를 내며 백양국의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출처를 재차 물어보았지만 우준 하산은 놀랍게도 ‘맘루크 국이 노예들을 마구 팔아버린 덕분에 인재를 얻을 수 있었다.’ 라고 둘러대었사옵니다.”

완벽하다. 우준 하산도 승리를 안겨다 준 조선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했으며 주변 국가와 이간질을 시키기 위해 맘루크 술탄국과의 분쟁을 유도한 것이다.

홍위의 웃음을 시작으로 대전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경박한 행동이지만 역사상에 남을 명장이 조선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의리를 지킨 일이니 좋은 동맹이 생긴 것이다. 홍위는 눈물을 닦으며 성담로의 공을 치하하였다.

“앞으로 백양국과의 우호 관계를 위하여 약간의 화포를 지속적으로 팔도록 하겠소. 또한 수양대군이 가지고 있는 준마(駿馬) 흑우를 백양국으로 보내 말년을 편히 보낼 수 있게 만들어 주시오.”

이간질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우준 하산이 판을 깔아줬으니 앞으로 계속 전쟁에 시달리도록 만들어야지. 홍위도 나와 같은 마음을 먹었는지 다음 어명을 하달하였다.

“또한 내년부터 맘루크 국이 통행세를 너무 많이 걷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서행사가 보내는 인삼을 삼백 근으로 제한한다고 통보하며 이백 근을 맘루크 국에 팔도록 하시오.”

역시 홍위다. 전쟁에서 크게 패배한 메흐메트는 죽을 때 까지 전장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가진 여력과 홍삼으로 얻어낸 힘을 토해내야 하리라. 그리고 우리 흑우는 우준 하산의 총애를 받으면서 말년을 편안히 보낼 수 있겠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