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12화 (212/573)

< 3장 26화 -승하(昇遐) >

1470년 8월, 탐검사가 다음 항로로 출발하였고 국정은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엄밀히 따지자면 전쟁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당장 내가 진행하던 사업이 완전히 허탕이 된 것이다. 지난 육 개월 동안 절망만 남아 버렸다.

입신체비기구를 조립해서 만들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커다란 나사못을 이용해서 각 부위를 조립하면 대량생산은 힘들더라도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현대를 기준으로 하는 나의 실수였다. 전근대의 시대적 한계는 나를 좌절하게 만들고 남을 지경이었다. 오늘도 유정(鉚釘 - 전근대식 리벳)을 박는 야장의 소리가 들려왔다.

“일에 진척은 있는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평소의 방법대로 한 사람이 한 부위를 만들어서 만드는 방식이 효율이 좋을 지경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팔분지 일 치(약 0.44cm)의 오차도 없이 거대한 철봉을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 하여도 만들어야 하는 일이라네. 보총의 크기는 잘 맞추면서 철물의 크기를 맞추지 못한다니.”

오늘도 실패다. 두 철물을 접합하는데 한 철물이 여지없이 휘어버렸으니 정밀한 가공을 위해 힘쓰다 강도를 맞추지 못한 것이다. 물론 더욱 많은 비용을 들이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장인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애초에 새로운 방법으로 더 싸게 만들어야 하는데 더욱 많은 손이 들어가니 이전의 방법이 쉬울 지경입니다. 두꺼운 철물을 깎아 요철(凹凸)을 만들어 결합하고. 다시 구멍을 오차 없이 뚫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공임비를 줄이려면 가공 시간을 줄여야한다. 가공시간을 줄이면 리벳이 제대로 결합되지 않거나 철봉이 충분한 강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모두 정밀 가공능력 부족이 만들어낸 것이다.

조선에서 가장 정밀한 보총은 철저한 검수를 통해 크기를 맞추었지만 서로 비교해 보면 많은 점이 달랐다. 이 시대의 정밀함과 현대의 정밀함은 요구치 자체가 다르다.

보총의 기준 구경은 황종척 기준으로 반 치(약 1.74cm)지만 실제로는 제법 오차가 있었다. 가장 큰 녀석과 가장 작은 녀석을 비교하면 대략 0.3cm정도의 오차가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검수봉이 두 종류인데 하나는 약 1.7cm, 다른 하나는 2.0cm라 하더라.

천자총통? 군기시에서 생산한 녀석들도 시기에 따라 구경의 차이가 반 치 가까이 날 지경이었고 길이 차이는 반 자 가까이 난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군기시에서 건너온 장인에게 한숨을 쉬고 물어보았다.

“군기시에서 일하는 이들이 이렇게 화포를 다르게 만든다면 장졸들은 어떻게 숙련하는지 그것이 의문일세. 구경이 다르다면 각자 포탄을 만든다는 말인가?”

“수철연의환(水鐵鉛依丸 - 철로 만든 탄환에 납을 덧씌운 것, 표준 발사체다) 깎아낼 수 있으니 깎아서 씁니다.”

“그렇다면 화포가 망가져서 새로 지급받을 때 마다 화기도감 병사들이······.”

“당연한 일입니다. 화포를 십여 회 정도 쏘면서 적응하고 화포의 규격을 익히는 일이지요. 그나마 상왕전하께서 정하시기 이전에는 오차가 더욱 컸습니다. 당시에는 한 날 한 시에 만든 천자총통도 크기가 달랐지요.”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눈대중으로 대충, 혹은 그날그날 대충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보편적 기술이며, 잘 정련된 강철로 만드는 입신체비기구는 길이와 형태를 맞추는 것이 전부이다. 강철에 구멍을 뚫어 정교하게 길이를 맞추는 일은 머나먼 훗날의 일이 되리라.

그렇지만 의외의 사람이 내 일에 대하여 관심을 보였다. 이현전에서 건너온 오스만 제국 출신 이주민. 카심은 내가 작성하고 있던 이론을 읽더니만 감동을 받았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말했다.

“대군어른께서 행하시려는 일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군어른은 단번에 너무 높은 경지로 나아가시려 하여 진척이 없는 것입니다.”

“대감이 그렇게 칭찬하니 낯을 들 면목이 없소. 그런데 너무 높은 경지로 나아간다는 말은 무슨 뜻이오?”

“세상에서 대군어른과 같이 철저하게 길이와 무게를 따지는 이는 저희 이현전에 소속된 장인들 외에는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천리경을 만드는 공정입니다.”

“세성(목성)의 달을 볼 정도로 정밀한 천리경을 하나 만드는데 석영 다섯 근이 필요하다 알고 있소. 아주 정밀한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20배 확대가 가능한 망원경을 만드는 방법? 알고 보니 소름이 돋았다, 그냥 석영을 강철 줄칼(단단한 것을 깎는 도구)로 갈고 갈아서 볼록렌즈를 잔뜩 만든 다음 하나씩 망원경 틀에 넣어보고 배율을 측정하는 것이 전부이다.

현대라면 원하는 배율의 렌즈를 만드는 표준 공정이 있고 오차가 거의 없는 틀이 있으니 깎아내서 쉽사리 만들 녀석이지만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무한 반복 작업이다. 가심은 내가 천리경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눈을 빛냈다.

“하지만 대군어른이 창안하신 방식 덕분에 영감을 얻었습니다. 두께와 길이를 정교하게 측정하니 석영의 소모도 줄고 장인들도 헛손질을 하지 않아 좋은 일입니다.”

“그것 참 잘 된 일이구려.”

결국 내가 원하는 값싼 입신체비기구는 불가능한 일이다. 표준화와 정밀화는 천천히 추구해야 할 일이지 당장 나설 일은 아니라는 것을 얻은 것만 해도 대단한 소득이다. 정 정밀한 물건을 만들고 싶으면 망원경과 같이 값비싼 물건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을 상담하고 발전시키려면 이현전 관료들과 대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출신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지나치게 강력한 오스만 제국에게 중요한 내용을 전달했다가는 유럽 전체가 초토화될지도 모른다.

덕분에 이현전에 있는 오스만 제국 이주민들은 보총에 대한 정보는 알아도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정도에서 끝났다. 그러고 보니 세종대왕님이 황종척을 만들었는데 나도 길이 표준을 제정해야 하나. 카심이 인사를 올리고 돌아가고 나도 집으로 향했다.

“애초에 미터나 킬로그램을 지정하는 방법이 문제란 말이지. 본초자오선 길이를 바탕으로 미터를 지정했는데 이걸 뭘 어떻게 한다고.”

한강을 가로지르는 나룻배에서 생각을 거듭하였지만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길이의 지정은 자오선의 정밀한 측량이 필요하다. 자오선의 정밀한 측량? 아마 오차가 없는 시계가 필요할 것이다.

결국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위인이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미래의 지식을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를 변혁시키려 노력할 뿐이지. 선착장에 내리니 나를 찾아왔는지 관리가 내 얼굴을 알아보더니 나룻배에서 내려서 뛰어왔다.

“무슨 일이오. 혹여나 주상전하께서 찾으시는 일이라도 있소?”

“태······. 태상왕께서 방금 전에 승하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어의는 무엇을 하고 모시는 이들은 대체 무얼 한 것이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확히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왕의 죽음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승하하는 징후를 알면 생명 연장을 위하여 어의는 물론이고 대신들 모두가 나선다. 하지만 관리는 분명하게 말을 이어갔다.

“한 시진 전의 일입니다, 태상왕께서 이궁에서 간단히 참(오후 3시경 먹는 간식)으로 다과를 드시고 세자저하의 강의를 위한 경서(經書)를 다듬고 계셨습니다. 내관(內官)이 다 떨어진 먹을 가지러 잠시 자리를 옮겼습니다.”

“계속 말하시오.”

“먹을 갈고 돌아오니 태상왕께서 붓을 쥔 채로 서안(書案 - 책상)위에 용안을 대고 계셨으며, 내관은 혹여나 다과를 드시고 잠에 드신 줄 알고 조용히 말을 올렸지만 답이 없으셨습니다. 징후가 심상치 않아 어의 전순의가 긴급히 달려와 시침(施鍼)을 하였지만······.”

입술을 깨물려다 핏물이 솟구쳐 올라올 지경이었다. 이미 세종대왕님이 승하한 사실이 퍼지고 있는지 관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흑우와 함께 선착장에 매어둔 새 한혈마, 장고(長考)에 올라타 이궁으로 향했다.

“상위복(上位復)! 상위복! 상위복!”

“아바마마! 어찌하여 소자를 두고 세상을 떠나시었나이까?”

내시가 경망스럽게 세종대왕님의 평상복을 들고 지붕 위에서 옷을 흔들고. 형님은 먼저 도착했는지 흰 옷으로 갈아입고 곡을 올리고 있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나 또한 옷을 갈아입고 곡을 올렸으며 다른 종친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태상왕께서 승하하셨다!”

“아이고 태상왕님!”

길거리에서 백성들이 쏟아져 나와 절을 올리는지 곡소리가 한양 전체를 들끓게 만들었다. 상주이신 형님을 대신하여 대소신료들이 모여 장례를 위한 빈전도감(殯殿都監)을 비롯한 기관을 설치하고 신하들을 임명하였다.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신료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세월이 흘러 대왕대비가 된 소헌왕후님은 눈물을 숨기지 않으면서 여든에 가까운 고령으로 장례 의식을 진두지휘하였다.

사흘 동안 물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이는 고인을 애도하는 의식이기도 하였지만 뱃속에서 뭘 먹으라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비록 현대인이지만 세종대왕님은 나의 다른 아버지이기도 했고 역사의 위인이기도 하였다.

삼일이 지나고 수의를 갈아입힐 때가 되었다. 여름날인데도 소헌왕후님이 명령을 내려 시신을 석빙고에서 가져온 얼음으로 감싸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당시 전순의도 어찌나 다급하게 움직였는지 세종대왕님의 몸에는 침 자국이 수두룩했다.

전순의는 죄인의 몸이라 여겼는지 산발을 하고 이마에서 피를 흘린 채 곡소리를 올렸다. 하지만 형님은 그런 모습을 보고 오히려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상왕전하! 신의 잘못이옵니다. 신이 조금만 더 빠르게 태상왕의 변고를 알아 차렸다면.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빨리 어의가 도달하였다면 변고를 막을 수 있었사옵니다!”

“아니옵니다! 태상왕께서 승하하신 일은 신의 의술이 부족한 탓입니다. 신에게 엄벌을 내리옵소서!”

“어의와 내관은 가만히 있으라. 태상왕께서 온전히 승하하지 않은 동안 소란을 피우면 아니 된다.”

이후 닷새가 지나고 시신을 묶는 대렴(大殮)이 진행되었다. 완전한 죽음의 확정이며 세종대왕님이 생전에 마련했던 관에 들어가고 찬궁(欑宮)이라는 집 같은 틀에 옮겨졌다. 모든 일은 세종대왕님이 이궁에 마련해 두라 하였으니 이궁에서 치러졌다.

모든 일을 마친 소헌왕후님은 상복을 입었음에도 당당하게 나섰다. 흰머리가 가득하였지만 눈빛은 옛날의 일과 다르지 않으니 형님도 나도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소헌왕후님은 세종대왕님이 빈전에 들어간 다음 형님을 비롯한 종친들을 불러 모았다.

“본래 왕세자가 즉위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상왕도 양위를 하였고 작금의 주상은 젊습니다. 그러하니 상왕이 나서서 국상(國喪)을 진행하면 충분한 일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대왕대비께서 나서심은 하명할 것이 있으심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작년부터 상왕을 비롯하여 금상은 물론이고, 종친과 친분이 있던 대소신료들에게 유교(遺敎 - 왕이 남기는 유서)를 작성하고 계셨습니다. 이를 전달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종대왕님이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 계셨는지 작년부터 작성한 유서는 수십 장이나 되었다. 각각의 유서가 정갈한 비단 봉투에 담겨 있으니 눈물이 치솟으려 했지만 눌러 참았다.

“모든 종친들과 신료들은 집으로 돌아가 국장을 준비하십시오. 이미 능으로 정해둔 장소가 있으니 모든 일은 순리대로 치러질 것입니다.”

냉정하지만 합리적인 말이었다. 사람이 죽은 것은 죽은 것이고 일은 일이다. 소헌왕후님의 말을 듣고 어깨를 푹 숙인 채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 늙어서 고향으로 돌려보낼 상황만 보고 있는 흑우도 내 기분을 알았는지 얼굴을 부비며 나를 위로하였다.

“세종대왕님이, 아니 아바마마께서 유교를 남기셨다고.”

방 안에 앉아서 한숨을 내쉰 다음 비단 봉투를 열었다. 유서를 읽다가 눈물이 왈칵 나와서 소리 없이 흐느꼈다. 지난 삼십오 년 동안 세종대왕님과 함께 지냈던 일이 떠올라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흉통이 있으며 몸이 쇠해가고 있으니 운이 다한 것이라 여겨 고명(顧命)을 남기는 대신 유교를 작성하였다. 훗날을 위하여 보관하여도 좋고 이를 불태워도 좋은 일이다.

네 나이도 망륙(望六)이 넘어 어엿한 어른이 되고 남음이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거만해지고 권세를 누리면 방만해지기 마련이지만 네 모습은 한결같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그러하니 유(瑈)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 내가 오랜 삶을 이어가며 가장 빼어난 자식으로 꼽아 왕위를 물려준 것은 향이이다. 하지만 가장 사랑한 자식은 어느 누구도 아닌 너이니라.

네가 입신체비를 처음 선보인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몸이 건장한 일은 알았지만 입신체비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고. 거대한 쇠를 엮은 공령(플레이트)을 짊어지는 모습을 보고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네 진정한 뜻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몸을 다스려 나의 소갈을 치료한다 하였으니 어린 시절부터 너를 궐 밖에서 지내게 한 것이 아직도 후회가 되는구나. 내가 베푼 것은 없지만 너의 효성이 지극함을 아니 너에게만 당부할 것이 있다.

대왕대비의 자리에 오른 너의 어미를 항시 보살피도록 하여라. 헌릉에 계신 분(태종)께서 외척의 힘을 꺾으려 하시어 젊은 시절부터 화를 많이 입었느니라. 내명부에서 물러나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피접(避接 - 궁에서 나와 다른 집에 머무름)함을 권하여라.

향이는 효성이 지극하며 심려가 깊으니 우행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왕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삼년상을 고스란히 치를 것이며. 이를 금한다 하여도 향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니 네 도움이 필요하다.

헌릉에 계신 분께서 승하하셨을 때에는 나를 염려하여 권도(權道 - 목적을 위한 편의상의 수단)를 따라 상중에도 고기를 거르지 말라 명하셨다. 하지만 네 지식이라면 권도가 아닌 정도(正道)를 따르더라도 삼년상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왕의 자리에서 은퇴한 대신들과 모여 나라의 제도를 변혁하고자 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삼년상을 치르며 과중한 업무로 몸이 상할지 모르니 당분간 네가 나서서 일을 진행하여라.

용이(안평대군)는 라마국의 인재들과 어울리니 날이 갈수록 발전할 것이다. 혹여나 다시금 라마국으로 돌아가 회화를 배우려 하거든 이를 금하도록 하라. 오사만국의 행적이 변하면 아국도 피해를 입을 것이다.

구(璆 - 임영대군)와 유(瑜 - 금성대군)는 모두 부족한 점이 없는 이들이니 향이가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부족한 일을 함께 행하면 좋을 것이다. 다만 중책(重責)을 하여 종친에게 너무 많은 힘이 주어지게 만들면 아니 될 것이다.

금상에 대하여는 염려할 일이 없으나 국정을 도우며 종친의 직위를 활용하여라. 금상이 왜를 토벌하였으니 당분간 나라가 번창할 것이고. 혹여나 왜인들이 사특한 수를 쓸지도 모르니 왜의 소식에 밝은 너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효령대군과 다른 숙부들은 염려하지 말라. 효령대군은 적게 보아도 십 년은 정정할 것이며, 숙부들 또한 젊은 시절부터 사방으로 나아가 일하였으니 몇 년 동안은 평안할 것이다.

젊은 시절에 헌릉의 계신 분의 말을 따라 몸을 놀리고 고기를 줄였다면 나라가 변하는 모습을 더욱 많이 볼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구나.

네 도움으로 나라의 근본을 다지고 훗날을 위한 대비를 충분히 하였으니 이 나라를 변천(變遷)하며 발전할 기반을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의 지식이 아니겠느냐. 이로서 종묘사직이 오백 년은 이어질 것이니 훗날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

유서를 다 읽고 고이 접어서 비단 봉투 안에 넣었다. 잠시 고민하였지만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유산으로 남기는 것 자체가 욕심이니 대청마루에 있는 화로에 던져 넣었다.

모든 일을 예측하신 분이니 형님은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삼년상을 온전히 치를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대왕님의 뜻을 따라 형님을 보필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옆에서 콧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현동이가 있었다.

“다 큰 사내가 눈물을 흘리면 아니 된다.”

“하오나 태상왕께서 남기신 유고가······.”

현동이의 눈이 충혈되어 있는데 나도 한참을 울어서 눈이 붉어졌겠지. 현동이에게 전해진 유고 또한 화로에서 불타버리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형님을 보좌하려면 준비할 물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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