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03화 (203/573)

< 3장 17화 - 주인을 때리면 개를 내놓는다(3) >

야마구치 일대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권절이 도착하고 이틀이 지나자 풍역선은 모두 히로시마 만으로 향하였고. 다시 수송 선박으로 사용하는 대방선이 부두에 머물며 가짜 포구(砲口)를 만들고 가짜 화포를 장착하였다. 본래 있는 4문의 호신용 화포는 내버려 둔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오우치가 소유한 말은 화포를 옮기지도 못했다. 말을 징집당한 농민이 아우성을 치건 말건 수레에 두 마리를 엮어 벽력포를 끌게 하였지만 작은 말은 한 시진(2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게거품을 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래서야 네 마리를 엮어도 하루를 버티지 못하겠군. 차라리 입신체비사들이 힘을 더 발휘할 지경인데 데려올 것을 그랬나. 수양대군 어른이면 혼자서 능히 옮기실 수 있겠지.”

오우치에서 징집한 잡부들을 사용해 보았는데 열 명이 달라붙어 수레를 조금 옮기다가 탈진해서 바닥을 뒹굴었다. 권절은 사람도 말도 사용하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에 좌절하려 하였지만 마지막 수단이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전쟁을 시작하기로 정한 협정일은 4월 2일이니 시간이 제법 촉박했다. 호소카와의 진군 재개를 감안하면 전투 시작은 4월 4일 정도일 것이다. 음력 1470년 3월 18일, 긴급히 군의가 시작되었다.

굳건한 동맹이 생긴 마사히로는 기쁘기도 하였지만 전쟁을 결정한 호소카와를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상대도 승산이 있다고 여겨 싸우기로 정한 것이다. 군의의 시작은 구치관의 염려스러운 말로 시작되었다.

“부두에 적치된 화포를 보았다네. 옮길 방법은 모르겠지만 자네의 계책은 해전을 포기하고 화포를 동원하여 수성전을 벌이는 것인가?”

“그렇게 싸우면 부족합니다. 핵심은 단 한 번의 대승을 거두어 적을 격멸하는 것이며. 수성으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힐 방법이 없으니 공방(攻防)전으로 한 차례의 진격을 막아내고 역공을 가할 것입니다.”

“훌륭하군, 야인들을 상대해 본 경험으로 말미암아 볼 때 자네의 판단이 옳은 것 같네.”

구치관도 함경도에 파견되어 여진족을 상대한 사람 중 하나였다. 여러 부족이 모여 난리를 벌여도 기세를 꺾으면 삽시간에 분열하여 사라지는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권절은 무뚝뚝하게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하여 전장을 경산(鏡山 - 카가미야마)으로 정하였으며 여기서 세천(호소카와)이 거느린 적도를 상대로 일전을 벌일 것입니다.”

“카가미야마라 하셨습니까? 그곳은 아버지께서 축성한 산성이지만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지형은 좋지만 기껏 해야 폭이 오백 보(800m)에 불과한 좁은 곳입니다. 차라리 이와쿠니(岩国)가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장소에 틀어박혀 방어에 전념한다면 세천씨는 어떻게 응하겠나? 세천씨 휘하에 있는 호족들이 분열하여 사방에서 약탈과 살육을 일삼을 것이 아닌가?”

분열한 적을 하나하나 추격하여 격멸하려면 일 년이 넘게 걸리겠지. 권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군략을 설명하였다.

“가장 먼저 풍역선과 대방선을 함대로 위장하여 광도(廣島 - 히로시마) 앞바다로 향하게 한 까닭은 적의 함선을 꾀어내기 위한 방법이라네. 적의 함대가 육백 척에 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되겠나.”

“세키부네에 탑승하는 병사가 마흔 명에 달하니 이만 사천 명의 병사가 빠져나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만약 적이 히로시마 만에 머무른 조선 함대를 급습한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적이 싸움을 포기하고 대치할 것이 분명하네. 만에하나 과감하게 몰려오면 즉시 탈출하면 될 일이지. 바다로 나간 적의 병력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전투가 끝날 것이네.”

구치관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마사히로는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듯이 권절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조선 함대의 전공을 생각하면 육백 척의 함대라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니 섣불리 나설 방법이 없었다.

설령 용기를 내서 전투를 벌이려 해도 조선의 함대는 응하지 않고 도주할 것이며. 다시 육전을 위해 상륙하여도 전쟁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으리라. 권절은 묵묵히 설명을 계속하였다.

“경산 일대에 화포를 두되 숲과 언덕 사이에 숨겨놓아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힐 것이네. 자네들은 우회병력을 대비하도록 경산의 북쪽에서 대기하고 있게.”

“알겠습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어찌하여 야마구치에 화포를 내버려 둔 것입니까? 히로시마까지 배를 타고 이동하여 화포를 두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미 자네들의 가신 가운데 상당수가 배반하였으니 이들이 첩자로 돌변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하니 감시의 눈이 적은 산구(山口 - 야마구치)에 화포를 내려놓은 것이지.”

“벽력포라 하는 거대한 화포는 삼백오십 관(약 1.3톤)에 달합니다! 사람이 마소(馬牛)도, 설령 마소라 하여도 한두 마리로는 그런 거대한 화포를 옮길 수 없습니다! 이미 실험해 보시지 않았습니까!”

풍역선에서 내려져 부두에 적치된 화포만 해도 벽력포 105개, 뇌력포 105개, 천자총통 600문이었다. 여기에 비교적 작은 대완구나 자모포가 400문이었다. 하지만 오우치에는 더 이상의 군마가 없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말을 사용하지 않을까 하였는데 권절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갑사들과 북방 야인들이 사용하는 군마를 활용할 수도 있다네. 하지만 군마를 함부로 보여주고 힘을 과시할 이유는 없지. 오히려 거대한 말을 사용하면 첩자들이 쉽게 알아차릴 것이네.”

일시 휴전중이지만 호소카와는 첩자를 보내 사방을 감시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귀중한 군마를 활용해 거대한 화포를 옮기는 것을 보여줄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사람이 옮겨야 하는 것이다.

“벽력포는 튼튼한 수레에 올리면 병사 여덟 명이 운반할 수 있다네. 천자총통 정도는 네 명이면 충분할 것이고.”

“그러고 보니 훈련원 삼군의 병사를 조련할 적에 거대한 맷돌을 끌고 다니는 훈련법이 있었지. 수레만 튼튼하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미 몇 번 정도 군령을 어긴 병사들에게 실시해 보았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훈련원 소속 병사들은 훈련을 받을 때에 다른 군율을 적용한다. 처벌 가운데 완전군장 후 오십 리 걷기, 부와(팔굽혀펴기), 부와도약(버피) 그리고 참호 파기 등이 있었다.

새로운 처벌을 개발하려고 화포를 수레에 올려 끌게 한 적이 있었다. 벽력포는 세 명이 달라붙으면 움직이기도 힘들지만 다섯 명이면 벌을 주기 적당하며. 여덟 명이면 오십 리(20km) 행군을 해도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마사히로는 질겁하며 말했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카가미야마까지 산이 적고 언덕이 많아 움직이기 편한 길을 고르면 사십 리(160km, 일본 리수)에 해당합니다! 화포를 옮기다 전쟁을 끝낼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레면 충분하겠군. 어서 튼튼한 수레를 수배하거나 부족하다면 만들도록 하세나.”

“대체 조선군은 무슨 군대입니까! 이러다가 하루에 십 리(일본 리수, 40km)라도 움직일 지경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정규 훈련 과정으로 산악행군이 있으며, 하루 동안 일백 리(40km)를 걷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이야기 하지 않아도 좋았다. 군의가 끝나고 명령이 하달되었다.

여전히 훈영절제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곽연성(郭連城)은 훈련도감 병사들을 소집하였다. 본래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곽연성은 우물쭈물 거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자신 없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 명령을 하달하였다.

“지금부터 전쟁을 벌일 장소인 경산으로 이동한다. 사백 리를 진군해야 하며 가는 길에 산은 없지만 구릉지는 많다 하더구나. 이레 이내에 경산에 도달하여 군영을 만들고 왜적을 격멸할 것이다.”

“절제사님! 나흘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문제가 있다. 배정된 화포를 운반해야 하는데 훈련도감에 배정된 화포는 벽력포 105문과 뇌력포 105문 그리고 천자총통 200문과 자모포 및 대완구 200문이다. 고로 인원 가운데 절반은 화포를 운송하도록.”

“화기도감 녀석들은 뭘 먹고 산답니까. 저희가 모든 화포를 운반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왜인들은 대체 뭘 하고 있습니까! 구원하러 왔으면 몸을 바쳐서 뒷바라지라도 해야지!”

훈련도감 병사들은 군율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항의했다. 싸우러 와서 소처럼 수레를 끌고 다니라 하니 불만이 치솟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곽연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왜인 여럿을 불러왔다.

아침에 시험해 보았지만 아직도 사지의 힘이 돌아오지 않아 사지를 후들거리는 왜인들은 군영에 있는 벽력포를 쳐다보고 질겁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작은 체격의 왜인들을 본 훈련도감 병사들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시험해 보았는데 왜인들은 힘이 부족하여 벽력포를 끄는데 열 명이 달라붙어서 한 시진(2시간)을 버티지 못하더구나. 그렇다고 갑사들이 사용하는 말을 빌릴 수도 없으니 방법이 없다.”

“임해도감 녀석들은 무엇을 한답니까. 그 녀석들은 무장도 가볍고 힘도 좀 쓰는 녀석들이니 정 절제사(정범수)님에게 요청을 하신다면······.”

“임해도감은 사방에서 염탐중인 적의 첩자들을 추포하는 일에 나설 것이다. 화기도감은 나머지 화포를 운반할 것이니 조금만 고생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

사흘 뒤, 이와쿠니(岩國) 인근으로 향한 조선 병사들은 푸념을 늘어놓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음력 3월 말인데도 일본의 기후는 제법 습하고 무더웠으며 병사들의 이마에서 땀이 송글송글 솟아나왔다.

“왜놈의 새끼들. 힘이 약해도 정도가 있지! 이러다가 적이랑 싸우기도 전에 지쳐 죽게 생겼구먼. 자네는 괜찮아?”

“입신체비를 하면서 하체를 중점적으로 다뤘더니 허벅지가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괜찮군.”

“그나저나 저기 산 속에 보이나? 천리경을 들어 훑어봤는데 뭔가 거무스름한 게 보이던데.”

“몰라. 임해도감 애들이 알아서 하겠지.”

당연한 일이지만 병사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품계가 높은 지휘관들도 솔선수범하여 돌아가며 수레를 끌었다. 이와쿠니 인근에는 이츠쿠시마 신사가 있으며 신성하다 여겨져 많은 순례객들이 있었다.

그런 순례객 사이에 첩자를 숨기기 쉬웠다. 비록 이가나 코가의 닌자는 아니었어도 호소카와가 보낸 척후병들은 조선군의 진군 사항을 면밀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산기슭의 으슥한 곳에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이 들락거리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조선 놈들이 말을 귀중히 여긴다 하였는데 병사들이 수레를 끌게 하는군.”

“그러게 말이야. 사람 여덟 명이 달라붙은 저게 화포 아닐까? 말로 끌기에는 가볍고 사람이 끌 수 있는 물건이니 사람을 동원하는군. 한 백오십 관(약 560kg)정도 하겠네.”

“그럴 만 하지. 수레 무게를 감안하면 백오십 관보다 가벼울 지도 모르겠어.”

“네 명이 달라붙은 수레는 작은 화포나 보급품이겠고. 이게 무슨 고생이래?”

하루를 관찰하였지만 능숙하게 진군하는 모습에 무게를 오판하기 시작했다. 일본 리수 기준으로 6리(24km)를 움직이니 무거운 짐이 아니라 여겼고. 당연히 화포의 크기와 무게도 작게 기록되었다.

실제로 여덟 명의 병사가 옮기는 수레의 무게는 벽력포와 자신들의 군장 그리고 포탄까지 더해 1.5톤에 달했다. 기본적인 힘의 차이가 운반하는 무게를 다르게 여길 수 있게 만들었다.

“나는 내려가서 장계를 전달하겠네. 자네들은 진군로를 계속 따라다니며 특이한 사항을 기록하게나.”

병사 가운데 유일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자가 산을 내려가 마을에서 대기하고 있던 첩자에게 서신을 전달했다. 자신을 제외하고도 이백 명 정도가 인근에 대기하여 정보를 모아나가니 일이 쉽게 풀리리라. 그렇게 여기고 돌아온 병사의 코에 진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당혹감이 들어 칼을 뽑은 것도 잠시. 임해도감의 지휘관 가운데 한 명인 어유소(魚有沼)의 손짓이 떨어지자 병사의 가슴에 도끼가 날아들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병사들의 몸을 살핀 어유소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먹물을 쓴 흔적이 있으니 보고가 한 번은 된 것 같군.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르지.”

첩자를 발견한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으니 상세한 보고는 올리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어중간한 정보로 상대의 혼동을 유발할 수 있다 여겼다.

----------

호소카와가 가진 육백 척의 함대를 통솔하는 이는 무라카미 수군의 두령인 무라카미 요시아키(村上義顕)이었다. 그는 히로시마 만으로 향한 조선 함대 오십 척(풍역선과 대방선은 크기가 비슷하다)를 보며 대규모 해전을 벌일 것이라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호소카와가 파견한 감찰관은 길길이 날뛰며 진군을 요청했다. 스물도 안 된 핏덩어리가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보아도 분노보다는 짜증이 샘솟았다. 요시아키는 감찰관을 무시하며 벌벌 떨고 있는 사내에게 탁주를 한 잔 건네주었다.

“그러니 어서 말해라. 너를 다시 배에 올리지 않을 것이니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라.”

전쟁 이전에 조선 수군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얻으려 노력하였고 결실을 맺었다. 고토 열도 해전에서 생존한 자를 데려온 것이다. 아직도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 사내는 탁주를 들이켜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리며 말했다.

“새벽 동이 틀 무렵 항구에 조선군이 나타났습니다. 단 두 각(30분) 동안 이어진 불벼락 세례에 마흔 척의 함선이 나무토막이 되어버렸고 파편에 휩쓸려 죽은 사람만 팔백 명, 여기에 배에 타고 있다 수몰된 사람이 이천에 달합니다.”

“새벽 동이 틀 무렵이니 때를 잘 잡았군. 새벽이니 날이 어둑하여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네. 그런데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천 보 거리에서 쇠를 덧댄 기둥을 쏘아대서 견명선을 단번에 꿰뚫어 버리고. 서서히 접근해서 육백 보 거리에서 작은 불벼락과 큰 불벼락을 모조리 쏘아버렸지요.”

증거품으로 가져온 대장군전은 기둥보다 작았지만 정확히는 4자(1.38m) 크기의 나무기둥에 쇠를 덧대 만든 흉물이었다. 하지만 무기는 대장군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리라.

“듣자하니 불벼락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하던데. 네가 아는 일을 상세히 말해보거라.”

“가장 끔찍한 불벼락은 이백 보 거리에 접근하자 날린 호두알 크기의 납덩어리였습니다. 당시 대장선의 격군으로 있었는데 다른 포화에는 버텼지만 납덩어리가 배에 쏟아지니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의 일이 떠올랐는지 생존자는 탁주를 연거푸 들이켜더니 손바닥을 펼쳤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는 날붙이에 찔린 것 같이 손을 관통해 버린 상처가 남아있었다.

“반절은 배 안을 훑어버렸고 나머지 반은 나무에 가로막혀 사방으로 나무파편을 날렸습니다. 저는 운이 좋아 파편이 손등을 찌르고 끝났지만 동료들은 몸에 바람구멍이 뚫리며 피보라가······.”

상세한 묘사는 없었지만 어떤 상황인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였다. 사람의 몸이 부서지고 박살나서 어육(魚肉)과 마찬가지로 짓뭉개져 버렸겠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생존자가 구역질을 하자 요시아키는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였다.

“일천 보에서는 쇠기둥을, 육백 보에서는 쇠구슬을, 이백 보 거리에서 호두알만한 불벼락 세례를 쏟아 붓는다? 생존한 것이 대단한 일이니 들어가서 쉬도록 하게.”

“조선군의 불벼락이 무섭다 하여도 별 일이야 있겠소. 약간의 희생은 언제나 일어나는 법이오.”

감찰관은 아직도 자신들에게 승산이 있다 여겼다. 적의 화력이 강해도 해전을 치르라고 주어진 함선은 550척, 조선의 함대가 50척에 불과하다 하니 쉬운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시아키는 난색을 표하며 손사래를 쳤다.

“생각하여 보십시오. 세토 내해의 해류는 동쪽인 교토 방향으로 흐릅니다. 음력 3월의 풍향 또한 교토 방향으로 불지요. 이런 상황에서 일천 보를 주파하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자네들의 배를 타봤지만 이천오백 보에 달하는 한 리(일본 리수)를 주파하는데 한 각이 걸리더군. 길어 보았자 반각이 아니겠는가.”

“측풍을 받아서 속도가 평범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경우는 한 각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백주대낮에 적의 함선으로 일제히 돌격한다 생각하여 보십시오.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쉰 척이 된 지금은 2.5배의 화력이 될 것이다. 오히려 대낮이니 더욱 정확해진 불벼락이 쏟아지는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감찰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요시아키를 노려볼 뿐이었다.

“적게 잡아도 조선의 함선에 달라붙기 전에 일백 척이 수장되거나 침묵하겠지요.”

“그렇다면 사백오십 척이 남는 것이 아닌가. 이미 이긴 싸움이지.”

“다시 조선의 포화를, 그것도 가장 치명적인 호두알만한 납탄을 맞아가면서 배에 갈고리를 걸고 올라타서. 도끼를 들고 날뛰는 미치광이들을 상대로 싸우라는 말씀입니까. 물론 우리 모두가 결사적으로 싸운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모두가 결사적으로, 사기가 떨어지지 않고, 동료의 죽음에 겁을 먹지 않고. 그런 미사여구를 중얼거린 요시아키는 당당하게 말했다.

“만약 저희 무라카미 수군에게 조선 함대 열다섯 척을 상대하라 하면 기꺼이 응할 것입니다. 희생이 크더라도 한 몸이 되어 철퇴하지 않고 싸울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저희가 거느린 함선은 일백 척에 불과합니다.”

“전쟁에 임하면 후퇴하는 비겁한 자는 존재하지 않다네. 존재하여도 목을 벨 것이지.”

“그런 일은 모르는 법이지요. 본래 병사끼리 싸울 적에 일 할이 당하면 돌이키기 힘든 대패라 여기고 이 할이 당하면 전열이 붕괴하고 손과 발이 어지러워집니다. 접근하는 과정에서 이 할이 당하는데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육상전이면 도주하는 자를 추격하여 목을 벨 수 있다. 하지만 해전은 다르다,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 도망가는 이들은 조선군이 노리지 않을 것이고 여러 핑계를 대며 흩어지려는 함선들이 늘어나리라.

결국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는 죽을 것이며,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자는 살아남는 촌극이 벌어질 것이다. 심지어 감찰관인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감찰관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며 목에서 침이 넘어갔다. 요시아키는 이런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싸우지 않아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적의 함선을 히로시마 만에 묶어 두기만 하여도 전력을 봉쇄하는 일이니 전공을 세운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알겠네. 하지만 조선군을 상대로 후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네. 그러니 함대를 이끌고 나아가 적의 동향을 지켜보도록 하지. 혹여나 적이 몰려나와 상륙을 시도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감찰관이 엄히 꾸짖는 척 후들거리는 다리를 숨기고 밖으로 나가자 요시아키는 웃으며 약간 남은 탁주를 들이켰다. 철부지 애송이를 상대로 괜한 힘을 뺐다는 생각이 드니 어처구니가 없어져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어차피 슈고놈들 생각이 다 똑같으니 우리들을 앞세워서 불벼락을 맞게 하겠지. 애송이와 함께 불벼락에 맞아서 죽을 이유가 있나? 적이 맞서 싸우지 않으려 해서 계략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다 하면 될 일이지.”

요시아키의 판단은 틀렸지만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오우치와 호소카와의 운명을 건 일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