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15화 - 주인을 때리면 개를 내놓는다(1) >
에치고는 현재의 니가타 현이며 유명한 인물은 우에스기 겐신이 있지. 풍부한 농토가 있는 에치고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한다. 그렇다면 우에스기 씨가 전봉을 당했나?
형님은 중요한 정보를 털어놓는 노리요리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지간한 변명 대신 조선에서 알기 힘든 정보를 제공하니 부족한 것이 없겠지.
“변견(집 지키는 개)이라 칭하였는데 네가 반은 변견의 마음이고 반은 투견의 마음이구나. 그렇다면 네가 아는 상세를 낱낱이 고변 하렸다.”
한동안 나도 잊어버리기 직전까지 갔던 일본 특유의 지역 분할, 고키시치도(五畿七道)의 목록이 쇼니 노리요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간단히 요약하면 자신도 중앙 정계에 있지 않아서 변동 사항만 알고 있다는 것이지만 슈고 다이묘의 영지 이동에 대한 상세가 있었다.
일단 가독의 죽음과 호소카와의 견제로 영향이 축소된 가문들이 가이에키(改易 - 개역, 영지를 몰수하거나 변방으로 이주시키는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덕분에 야마나씨의 영지 가운데 3개소가, 이마가와씨의 영지 전체가 몰수당하였다.
형님은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의 정치 구조를 듣더니 질린 눈치였고 안평대군도 눈을 굴리면서 지도를 새로 작성할 지경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 이해가 된 형님이 중요 사항을 정리하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국의 정치를 이해할 수 없지만 금천(今川 - 이마가와)씨는 변방으로 추방당하는 형벌을 받았고. 영지로 배정된 장소가 삽천교직(시부카와 노리나오)의 터전인 비전(肥前 - 히젠) 지역이라는 말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이마가와의 영지를 몰수하여 변방인 히젠으로 좌천시키며 남은 영지는 다케다씨와 잇시키씨를 달래기 위하여 하사하였습니다.”
“이마가와는 그렇다 치자꾸나. 대내씨(오우치)는 모든 영지를 몰수당했다는데 이게 무슨 일이더냐. 이들은 개역을 당한 것도 아니고 멸족이라는 말이더냐.”
“듣자하니 이와미를 전후(前後)로 나누어 우에스기씨와 호소카와가 나눠 가지는 것을 시작으로 오우치가 다스리는 네 개의 쿠니(國)의 새로운 주인을 정하였습니다.”
형님은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는 눈치지만 호소카와의 생각이 명확하게 드러나니 알기 쉬웠다. 이와미 은광을 미끼로 삼아 세력 개편을 단행한 것이 분명하다. 형님도 알아차렸는지 한심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참으로 한심한 이야기로구나. 발묘조장(拔苗助長 - 급하게 서두르다 일을 망친다)도 정도가 있는 법이 아니더냐. 치르지도 않은 전쟁에서 논공행상을 먼저 논하다니.”
비록 오우치가 동맹도 끊기고 고립무원의 상태라 하여도 숨겨놓은 한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을 먹었으면 확실한 승리를······. 그러고 보니 다이묘들끼리 병력을 내놓기 싫어하니 먼저 논공행상을 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번 원정이 실패하면 파급은 끔찍할 것이다. 오닌의 난이 끝나고 전국시대에 접어들어도 어느 정도 권세를 누렸던 가문이지만 다이묘 자리는커녕 쿠교(公卿)로 몰락할지도 모르지. 심지어 중단할 방법도 없다! 공수표를 찍어내는 게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노리요리도 형님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호소카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급작스럽게 침공을 시작한 조선에 대한 소식으로 발칵 뒤집혔을 거다.
닷새도 버티지 못하고 절반 이상이 궤멸당한 큐슈의 병사들에 대한 소식과 명나라의 토벌 칙서까지 전해진 상황이니 호소카와의 몰골이 궁금하다. 형님은 슬쩍 미소를 짓더니 만족스러운 눈치로 노리요리를 바라보았다.
“좋은 정보를 알려 주었으니 너에게 큰 형벌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이 아니더냐.”
“소인은 무엇을 잘 하였는지 영문을 알 길이 없습니다.”
“네가 택할 가장 좋은 책략은 분열하여 지세를 이용하여 아국의 병사들을 사방에서 두들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네가 우행을 범한 덕분에 구주의 왜병 가운데 절반을 몰살 시킨 일과 마찬가지가 아니냐.”
노리요리는 그저 이마를 땅에 박아대면서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아니면 북경으로 끌려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된 고마움에 대한 보답일지도 모르지. 형님은 같이 끌려온 마사스케를 보며 말했다.
“그러하니 다른 이의 죄를 묻지 않겠다. 소이교뢰는 명목상 북방으로 끌려가 감금당할 것이지만 실지로는 거제도에 머물며 포로들을 통솔하다 방면될 것이다.”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쇼니 마사스케도 형님에게 거듭 절을 올리며 감사를 표시했다. 조선의 영토로 삼지 못해도 영향력은 확보 가능하며. 포로들을 통솔하다 방면될 거라 했으나 기한은 정하지 않았다. 십 년이 될지 이십 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문책이 끝나고 형님은 생각을 정리하려 하는지 나와 안평대군을 불러다 차를 마시며 숨을 돌렸다. 그런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이 왜 그럴까. 칙서에 올라와 있는······. 아니다, 형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서 먼저 말을 시작했다.
“혹여나 세천(호소카와)이 삽천교직을 내놓기 전까지 대내씨(오우치)를 도울 작정이시옵니까?”
“네가 나의 심계를 알고 있으니 기분이 더욱 좋아지는구나. 지금까지 후방을 다스린다는 명분만 내세우려 하였다. 하지만 명분이 생겼으니 세천씨의 군대와 맞서 싸울 수 있겠구나.”
분명 처음 오우치를 지원할 때에도 명분이 없었다. 억지로 만들어낸 명분은 ‘큐슈의 토벌 중 적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하여.’ 오우치를 지원하는 것이고. 적극적 교전을 할 명분이 아니니 오로지 수비전만 가능한 반쪽짜리 명분이었다.
하지만 호소카와가 실수를 저질렀다. 토벌 대상인 시부카와 노리나오를 에치고로 보냈으며 위치 또한 큐슈도 아니고 머나먼 북쪽 영지이다. 토벌 대상을 내놓으라는 명목을 받으면 호소카와의 대응은? 시부카와의 태도는? 형님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좌찬성에게 서신을 전달할 것이다. 만약 삽천교직의 일족과 싸우게 되면 가급적 설득하여 포로로 잡아두라 할 것이다.”
“비전(히젠)으로 삽천교직을 불러들여 원정을 마무리 할 뜻은 아니시지 않사옵니까.”
“삽천교직의 일족을 사로잡게 되면 여유분의 풍역선이나 대방선을 동원하여 비전으로 보낼 것이다. 본디 칙서에 삽천씨 전체를 벌하라는 말은 없었고 삽천교직을 벌하라는 말만 있었지.”
그러니까 형님이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지? 결국 도주 방조잖아! 시부카와 일족을 사로잡는 이유? 놈들이 도망갔다가 호소카와에게 사로잡히면 당연히 목을 베어서 배송해주겠지. 조선군을 돌려보내고 오우치를 먹어치우려고!
형님은 정말 끝까지 갈 작정이다. 정확히는 호소카와 정권이 완전히 몰락할 정도로 일본을 두들겨 패 버려서 향후 백 년 정도는 조선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게 만들 작정이 분명하다. 형님은 아쉬운 듯이 서신을 작성하면서 말했다.
“분명 월후(越後 - 에치고)까지 병사를 보낼 방법은 없다. 하지만 주인을 호되게 두들기면 개를 바치지 않겠느냐.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세천씨에게 징벌을 내릴 기회를 얻었구나.”
“만에 하나 삽천교직이 도망가면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왜국의 북쪽에는 하이지(蝦夷地 - 홋카이도)라 불리는 변방 중의 변방이 있다 합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힘이 부족하여 칙명을 수행할 수 없었으나 명국의 황상께서도 아국에 지나친 부담을 주려 하시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것이 좋은 법이다.”
적당한 수준 = 호소카와 정권의 붕괴가 확실하다. 자신의 대도 아니고 아들인 홍위의 대에 호소카와가 조선을 핑계 삼아 권력을 휘어잡고 왜구를 방임하는 행동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지. 침묵이 이어지자 불편한 듯이 헛기침을 한 형님은 엉뚱한 것을 물어보신다.
“그런데 포로를 수용할 장소는 마련해 두었느냐.”
“아직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목책을 박으라 하였지만 포로가 사천 명에 달하니 이들이 기거할 장소로 훈련도감에서 쓰다 손상된 천막을 사용하게 할 작정이옵니다.”
“처음부터 대승을 거두었으니 준비가 미흡할 수도 있구나. 그러나 왜인들은 각지의 탄광과 간척지를 만드는 일에 쓸 것이니 질병으로 몸이 상하지 않도록 하여라.”
다음 날에도 업무는 계속되었다. 숲을 베어내고 어설픈 목책을 만들고 풀숲을 베어내서 벌판으로 만든다. 드넓은 거제도의 구릉 하나가 허허벌판이 되었지만 맨땅 위에 적당히 거적을 깔고 훈련도감에서 사용하던 천막을 설치했다.
물론 불려 나온 인부들은 불만을 표시하며 일을 건성건성 하고 있다. 육 개월 전에 사천과 동래가 습격당한 일을 잊지 않고 있겠지.
“대군어른. 왜인들에게 집이 필요 있습니까? 그저 거적을 덮고 잠을 청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왜구들이 행한 짓거리를 생각하니 ”
“주상전하께서 이들에게 탄광을 만들고 갯벌을 메우게 할 작정이라 명을 내리셨네. 추위와 굶주림에 죽는 것이 나을 지경이라네.”
점차 완성되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왜인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다들 얼이 빠지고 동래 일대의 경비를 담당하는 훈련도감 병사들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키지만 앞으로 친구들이 많이 도착할거니 일이 바쁘다.
일단 먼저 할 일은 포로의 분류다. 전근대까지도 귀족 포로들은 몸값을 받고 석방하는 것이 관례였고 조선이 훗날 큐슈의 일부를 통치할 마음을 먹었으니 이들을 후하게 대접해서 조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나서서 미리 외워둔 일본어로 크게 외쳤다.
“너희들 가운데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는 충분히 치료할 것이며 가신으로 일하며 작위를 받은 이들을 따로 분리할 것이다. 부상을 입은 자는 들어왔던 곳으로 향하고 가신들은 내 앞에 도열하여라.”
이 시대에 가신이라 말해도 보잘 것 없는 사무라이도 있을 것이고 일족도 있을 것이니 제법 많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사천 명의 포로 중에 가신은 쉰 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도 많았으며 가장 눈에 띄는 놈은 사타구니에 붕대를 동여맨 놈이다.
“부상이 심한 자는 들것에 옮겨서라도 살려두어라. 그리고 너는 어디를 부상 입었기에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있느냐. 설마······.”
“시부카와 가문의 직신 진에이(沈影 - 심영)이라 합니다. 화살에 맞아 금적을 훼손당해 남자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참한 인생이라 어서 죽고 싶을 뿐입니다.”
“빨리 의원에게 보내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해라! 하필이면 맞아도 그런 부위라니 소름이 돋는구나.”
이놈의 심영이라는 이름은 저주가 씌워졌나. 포로들의 명단을 확인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정진영을 비롯한 여진족의 돌격으로 본진에 있던 사람들 태반이 죽었다 하더라. 그리고 형님이 찾던 놈이 있었다.
“시부카와 다다시게(渋川尹繁), 에치젠 슈고 다이묘(守護大名)의 삼남입니다.”
“네가 상왕전하께서 찾던 녀석이구나. 살아남은 일이 다행이니 너를 방면할 것이다.”
“방면이라 하셨습니까!”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청년을 보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지만 형님이 알아서 할 일이다. 솔직히 나도 일본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교육을 원했는데 기회를 잡았으니 좋은 일이다.
과거라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며 앞으로 일어나게 할 생각도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단순 노역이라는 명분으로 징용당한 조상님들은 군함도와 사도가시마에······. 그러고 보니 사도가시마가 어디에 있었지?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안평대군이 관리들과 함께 개정하고 있는 일본 전도를 살펴보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보고 안평대군은 지도에서 붓을 떼며 놀라서 되물었다.
“형님? 왜국의 전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내일이면 완성되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잠시 생각이 있어서 그렇다. 활후(에치고) 앞바다에 섬이 있구나.”
“좌도도(佐渡島 - 사도가시마)라 불리는 작은 섬입니다. 듣자하니 오천 명 정도가 사는 작은 섬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어인 일이십니까?”
“아국이 무역을 행하는 장소로 좌도도를 얻어낸다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네가 듣기로 활후 일대는 어떠한 고장이더냐.”
“습지가 많아 개척이 덜 된 곳이지만 물산이 풍부하고 작황이 좋은 고장이라 합니다. 또한 해안의 지형을 이용하여 소금을 만들어 내니 재력이 모이는 곳이지요.”
지도에 작게 표시된 좌도도, 사도가시마는 금광과 은광이 잠들어 있다. 물론 원래 역사에서는 17세기 초반에 개발되어서 아직 숨겨진 자원이며 아는 이도 없다.
기억이 틀리지 않으면 1년 동안 전근대 에도시기 기술력으로 금 400kg, 은 40톤을 채굴했었다. 이보다 매장량이 많은 운산 금광은 화강암층에 덮여있어서 근대 이후 개발할 수 있는 곳이니 동양 최대 광산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니겠지.
만약 여기를 먹을 수 있다면. 어떤 명분으로든 집어삼킬 수 있으면 사도가시마를 유지하는 한 조선의 귀금속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불가능하다 여기는 화폐 도입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지나친 전쟁을 염려했는데 어찌 보면 잘 된 일이다. 형님에게 협상을 진행할 때에 사도가시마를 얻어낼 수 있도록 미끼를 던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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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년 2월 19일, 호소카와를 필두로 진군한 서벌(西伐)군은 교토에서 출발하여 천천히 진군하여 현재의 오카야마시, 이 시대의 비젠 국의 벌판에서 재차 진형을 정돈하고 재차 진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중 봉신인 오우치를 위해 조선이 개입하려는 징후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시기가 적절하게 큐슈의 멍청이들이 난동을 부렸으니 조선의 개입은 큐슈 일부에 국한될거라 여겼다. 하지만 세 장의 서한이 전달되었다.
[왜국 국왕 족리의상(아시카가 요시히사)과 섭정의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명을 따르라······. (중략) 근래에 들어 구주의 사특한 무리들이 감합무역으로 이문을 얻어 쓸데없는 힘을 조선을 침략하는데 사용하고 있도다.
본디 상국과 번국 간에는 신의가 있어야 하는 법이나. 이러한 일은 왜국의 정세로 볼 때 국왕으로 책봉한 족리의상의 연령이 낮음을 업신여겨 벌어진 것이 분명하다. 이에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구주의 무리들을 통솔하는 네 영주를 벌할 것이니······.]
호소카와 카츠모토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조선이 큐슈를 침략했다는 일도 문제였고 닷새 만에 큐슈 병력의 절반을 박살낸 것도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칙서를 읽은 호소카와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말을 내뱉었다.
“명나라의 황상이 하는 말을 정리하면. 와코(왜구)를 격멸해야 하니 큐슈에 조선군을 보냈으며. 와코의 핵심인 오토모, 시마즈, 기쿠지 그리고 시부카와를 징벌하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호소카와는 조선의 공격을 예상하고는 있었다. 첩자도 발견되었지만 규모를 오판하였으며 기껏 해야 산발적인 기습이 전부라 여겼다. 하지만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백 명 정도의 닌자를 보내면 충분하다 여겼다. 정보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한 줌 밖에 안 될 조선군의 배후를 노리면 충분하다 여겼지만 그야말로 실책 중에 실책이었다. 호소카와는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아 한탄하기 시작했다.
“조선이 정녕 큐슈에 상륙하여 다자이후를 함락하였다고? 오 만에 달하는 군세를 이끌고 왔다고? 십만이 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칸레이께서 모범을 보이시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명나라 황제의 칙서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자 호소카와도 계속 숨을 몰아쉬며 진정하려 노력하였다. 이번 원정의 책사이자 부사령관의 역할을 겸임하는 나가오 시게카게(長尾重景)는 조용히 합장한 다음 말했다.
“조선군이 강대하다 하여도 단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큐슈에 머물다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어서 시부카와를 에치고에서 소환하셔서 조선군으로 보내면 끝날 일입니다.”
“그렇다면 내 꼴이 무엇이 되겠나! 영지를 물려주고 바로 팽(烹)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하지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큐슈의 병력은 이미 궤멸하여 부스러기만 남았으니 시간을 끌 방법이 없습니다. 조만간 조선이 병력을 보내 오우치와 함께 진군할지도 모를 일이 아닙니까.”
“그놈의 남만(南蠻 - 큐슈의 멸칭)놈들은 싸울 줄도 몰라! 조선이 아무리 정병이라 해도 같은 수로 싸웠는데 별다른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적어도 심각한 타격은 아니더라도 공세를 지연시켜야 할게 아니야! 그리고······. 아니네.”
나가오 시게카게의 능글맞은 표정을 본 호소카와는 분통을 집어삼키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대로 시부카와가 소환되어 조선군에게 끌려가면 에치고의 슈고 다이묘는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나가오는 평범한 우에스기 가문의 근신(近臣 - 가까운 신하, 심복의 의미)이 아니다. 그는 근신이자 에치고 슈고 다이묘 대리인이니 자신의 영지를 되찾아 만족하고 있으리라. 호소카와는 전쟁에 대한 일은 모두 숨긴 소환령을 작성하였다.
“에치고까지 서신이 닿으려면 이레 정도 걸리겠지. 제발 큐슈에 있는 놈들의 일족이나 가신이 서신을 전달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급보라 적힌 서신은 동쪽으로 향하고 서벌군은 천천히 진군하며 서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조선에서 보낸 대방선이 현재의 니카타 일대에 도착한 것은 닷새 뒤인 2월 24일 일이었다.
쪽배를 타고 상륙한 시부카와 다다시게는 즉시 아버지에게 달려가 목숨이 위험하다 알렸다. 새로 슈고로 임명된 영지를 돌아보던 노리나오는 갑자기 귀금속과 중요 물품을 정리하더니 에치고 주변을 시찰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도, 며칠이 지나도 시부카와 노리나오와 그의 일족. 심지어 일부 근신마저도 자취를 감추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전령은 비어버린 영지를 보고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