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12화 - 경인년 전쟁(4) >
계속 탐망에 나선 덕분에 진이 빠졌는지 시게스구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지만 좋은 정보를 입수하였다. 조선 함대가 히라시마에 숨어있는 동안 지나간 적선을 파악한 것이다. 대장선에서 마지막 군의가 시작되었다.
“적들의 선박은 세키부네 여든 척과 견명선(遣明船 - 명나라에 조공을 보내는 선박)을 개수한 전투선 열 척입니다. 여기에 고토열도의 왜구를 합치면 백오십 척 규모의 함대입니다.”
“일전에 들은 바로는 명나라와 무역을 행할 적에 집 위에 배를 올린 거대한 선박을 쓴다 하였는데. 그러한 배를 개수하였다면 뇌력포로 쏘아도 단번에 격침하지 못할 것이네”
“아소 씨가 즐겨 사용하던 견명선을 개조한 것이 분명하다 합니다. 적들은 우구지마(宇久島 - 우구도)의 남쪽 항구로 향하고 탐망을 북쪽인 히라도시마(平戸島 - 평호도)에 보냈으니 저희가 여기 머무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한철동이 남이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자신과 같이 평범한 장수는 군략을 모르고 맞서 싸울 줄만 알았는데 남이 덕분에 다른 계책을 구상할 수 있었다. 남이는 그런 시선을 느끼면서 얼굴을 붉히더니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놈들을 몰아치려면 한밤중에 공격하면 아니 됩니다. 놈들이 배를 버리고 섬으로 숨어들면 적게 잡아 일만 명에 달하는 왜구들이 우구도에 머물며 크나큰 화를 불러올 것입니다.”
“옳은 말이라네. 평무적(平茂績 - 타이라 시게스구)에게 묻겠네. 만약 자네가 우구도의 왜장이라 하면 언제 출병할 것인가. 본디 잠들 때가 가장 취약하지만 이런 경우는 출병 직전이니 묻는 것이네.”
천천히 움직이는 배에서 군의가 계속되었다. 미리 챙겨온 가배(커피)를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작전의 상세를 짜내려갔으며. 작전의 핵심은 조호이산(調虎離山 - 유리한 지형에서 끌어내라) 이었다.
먼 동쪽 하늘이 밝아오며 작전의 시작을 알렸다. 잠에서 깨어난 병사들이 졸린 눈을 부비며 아침으로 미수(미숫가루), 육포 그리고 찐쌀을 씹어 먹었다. 한 화기도감 병사는 거대한 벽력포를 발끝으로 걷어차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벽력포에 화약을 모두 넣고 쏴 본적이 없는 것이 말이나 되나?”
“명했는지 빗나갔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네 배가 크게 보이는 천리경을 동원해도 희미한 점으로 보이지. 이현전에서 열 배나 크게 보이는 천리경을 가져오면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열 배가 크게 보이는 천리경? 그게 벽력포보다 값질 것이네. 이현전의 대감들도 단 세 개만 가지고 있다면 주상전하께서 하사하시기 힘든 물품이지.”
본래 문종이 개발한 벽력포의 사정거리는 2,000보에 달했다. 구경은 천자총통과 비슷하였지만 화포가 더욱 크고 둔중하였기에 강한 충격에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전에 나설 때는 1,250보를 쏘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나치게 긴 사거리 덕분에 전력으로 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생겨났지만 천자총통보다 반동도 적고 쉽사리 터지지 않는 안정적인 화포이기에 벽력포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높았다.
좁고 어두운 선창이지만 화기도감 병사들과 잡부들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화포 측면에 연환(鉛丸)을 쟁여놓고 들통에 포도탄도 잔뜩 담아두었다. 이윽고 화포장이 내려와 명령을 하달했다.
“명령 하달이다! 첨절제사께서 놈들의 견명선을 공략하기 위해 대장군전을 장전하라 명하셨다! 한 각 뒤에 일제히 포격하며 전투를 시작한다!”
“얏호! 드디어 벽력포도 화약 다 넣고 쏴보는구나!”
“정량은 다섯 근이야! 평소처럼 네 근이 아니고 다섯 근을 모조리 쑤셔 넣어!”
병사들은 분주히 화약이 담긴 상자를 뜯고 새로 보급된 갈색화약을 꺼냈다. 엄지손가락 크기로 빚어진 네모난 화약은 약간의 불편함을 제외하면 위력에 손색이 없었다.
이윽고 선체 최하부에 적치되어있던 대장군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력포에 맞게 개수된 대장군전이니 무게는 일흔 근(44.8kg)에 달하는 거대한 녀석이었다.
“세총(洗銃) 완료!”
“하화약, 하복지(화약을 넣고 종이로 덮는다) 완료 하였습니다!”
“격목은 필요 없다! 약선혈(도화선을 넣는 자리)에 도화선 대신 보총 화약을 넣어라!”
문종이 개발한 갈색화약은 지발(遲發)이 일어났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총 화약을 도화선 대신 사용하도록 명했다. 덕분에 손이 많이 들었지만 위력이 증가하고 탄연이 덜 발생하였기에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었다.
모든 화포가 장전될 무렵 선회가 끝났다 선창(船窓) 밖 먼 곳에 왜선이 정박한 항구가 보였다. 지금까지 보아온 왜선들과 다르게 누각을 쌓아올린 거대한 왜선도 보였지만 풍역선과 비교할 크기는 아니었다.
“항구를 선회하며 포화를 퍼붓고 남쪽으로 물러나라!”
“명령 받들겠습니다! 포격 후 남쪽 퇴각!”
한창 물자와 병력을 배에 옮기는 중이었는지 뒤늦게 조선 함대를 발견하고 징과 북소리가 울리며 습격을 알렸다. 하지만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풍역선이 기우뚱거리며 예순 발의 대장군전을 일제 방포했다.
항구가 백오십 척의 선박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가장 거대한 견명선은 두드러지는 목표였다. 일천 보(1.6km)거리에서 발사된 대장군전 가운데 한 발이 견명선을 개수한 전투선으로 빨려 들어가 반대편으로 튀어 나오고 바닥에 깊게 박히며 불운한 격꾼들을 휩쓸어버렸다.
벽력포를 제외한 모든 화포가 마음대로 불을 뿜었으며 제대로 된 대응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포격으로 마흔 척이 넘는 선박이 대파될 무렵 빠르게 정신을 차린 함선들이 바다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놈들이 출항을 시작하였습니다! 약이 잔뜩 오른 것이 분명합니다!”
“작전대로 기수를 남쪽으로 꺾어라. 바람을 거슬러 계속 도주하여 놈들을 유인하라!”
일자진을 이룬 조선의 함대는 천천히 선회하여 남쪽으로 도주하였다. 뒤늦게 승선을 마치고 항구를 벗어난 왜군 함대는 저 멀리 보이는 조선 함대를 보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조선 놈들이 남쪽으로 도망친다! 이대로라면 주군이 위험하다!”
“놈들의 선박이 스무 척에 불과하니 포위하고 싸우면 이길 것이다! 우리는 이백 척(허세다)에 달하지 않느냐! 저 둔중한 움직임을 보아라! 저런 굼벵이들을 쫒아가서 짓밟아버리자!”
“놈들을 죽이고 불벼락을 내뿜는 화포를 얻어내면 무훈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본진을 짓밟힌 자존심과 주군을 지키려는 마음이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바람을 거슬러 내려가는 풍역선의 속도를 가늠하였지만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왜장들의 눈에는 불이 켜졌다.
아마 두 시진, 빠르면 한 시진 이내에 적의 뒤꽁무니를 잡아챌 수 있을 것이며. 뒤를 노려 습격하면 화포에 맞을 염려도 없었다. 그렇게 맹목적인 추격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아침을 거르고 새벽부터 출병한 세키부네의 격꾼들은 한 시진이 지나자 피로를 호소하고 손발이 꼬이기 시작했다. 함대 전체가 밀집하여 움직이니 한 척이 느려지면 다른 배도 같이 느려진다.
분명 일본이 사용하는 세키부네는 민첩한 함선이며 조선이 사용하는 풍역선이 바람과 해류를 모두 받을 때에 비슷한 속도를 낼 정도이다. 하지만 민첩함은 어디까지나 격꾼들이 힘을 다해 노를 저어야 발휘되는 것이다.
여기에 억지로 전투용으로 개수한 견명선이 문제였다. 무역선을 개수하여 군선으로 만들었으니 속도가 느렸고. 이로 인해 일본 함대의 속도는 점점 더 느려졌다. 적의 속도가 눈에 띄게 둔해지자 풍역선들은 일제히 반원을 그리며 선회를 시작했다.
“놈들의 측면에서 불벼락이 쏟아진다! 어서 뒤를 노려라!”
“배를 빨리 움직여라! 놈들이 완전히 돌기 전에 접근해야 한다! 지금 왜 왼쪽으로 가고 있나! 격꾼들은 무얼 하고 있어!”
동쪽 방향으로 해류를 타고 빠르게 선회한 조선 함대가 일렬로 정돈하였으며. 측면에 일본의 함대가 위치하였다. 훗날 정자전법(丁字戰法)이라 불리는. 아군의 화력을 적의 전면에 일제 투사할 수 있는 진형이 모습을 갖추었다.
“일제히 방포하라! 놈들의 대장선을 갈기갈기 찢어버려라!”
지금까지 납환이 배를 박살냈다면 수천 발의 납탄은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이 잘린 사지를 부여잡으며 대장선에서 허우적거렸다. 삽시간에 벌어진 참극과 대장선의 침묵으로 인하여 왜선단의 사기는 바닥으로 쑤셔 박혔다.
“놈들의 대장선이 궤멸하였으니 선회하며 포격하라! 마음대로 퍼부어라!”
이윽고 선회를 마친 조선 함대가 바람을 받아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돛을 자랑하며 예순 척 가량 남은 일본의 함대로 일제히 파고들었다. 한철동은 군령을 내리며 전황을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여라! 놈들이 달아날 틈을 주는 척 추격하며 자율 사격을 시행하라!”
“첨절제사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는 항구에서 싸울 것을 염두에 두었는데 어찌 이런 방법을 택하셨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네! 어서 명령을 하달하고 함대가 지나치게 분열하지 않도록 명령을 내리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격꾼들이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도 제대로 된 바람을 받는 풍역선을 떨쳐낼 방법이 없었다. 왜선 사이로 파고든 풍역선은 자신에게 가장 근접한 적에게 아낌없이 화포를 퍼부어댔다.
예순 척에 달하는 왜선이 다시 서른 척이 될 무렵. 더 이상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없이 살 길을 찾아 사방으로 도주하였다. 스무 척의 풍역선으로 여섯 배의 적선을 물리친 대승 중의 대승이며 큐슈 서쪽의 해상 전력을 몰살시킨 값진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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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11일, 후쿠오카 일대를 함락하고 5일이 지났다. 이미 온전한 군영을 차리고 물자의 하역이 완료되었으며 이미 분견대를 보내 사방의 왜군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하카타의 장정들은 급료를 받고 부두 공사에 나섰다. 보급을 위해 풍역선이 드나들 수 있는 부두도 필요하였으며. 이들이 헛된 힘을 쓰다 복병으로 돌아서는 일을 막을 방법이기도 하였다. 권절은 부두가 반 이상 완성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정원을 거닐었다.
“모든 목재에 주칠(朱漆 - 붉은 단청)을 칠하다니. 정신이 사나워 견디지 못할 지경이군. 정원은 마음에 들지만 다른 곳은 발을 들이기도 싫어.”
조선군의 군영은 후쿠오카의 북쪽인 카시이 궁(香椎宮 - 향추궁)을 사용했다. 터는 넓고 언덕 위이니 정탐을 막는 효과도 있었지만 붉게 칠해진 단청은 권절의 눈에 경박하게 보였다.
마당에 차려진 군막에 소 사다쿠니가 보내온 첩자들이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이틀 전과 다를 바 없는 소식에 권절은 간략하게 그려진 작전 지도에 분견대의 복귀를 표시했다.
“적도들이 사십 리(16km) 떨어진 관세음사(観世音寺 - 간제온지) 인근에 집결하여 움직임이 없다 합니다. 사찰 인근에 군영을 만들다니 기이한 일이 아닙니까.”
“관세음사는 보통 사찰이 아닙니다. 관세음사가 있는 고을은 과거에 태재부(太宰府 - 다자이후)라 불리는 군사와 행정의 요충지였습니다. 신라의 소경(小京)이나 아국의 도호부와 같은 곳이지요.”
통역과 협상을 수행하기 위해 신숙주 또한 군영에 있었다. 신숙주의 해박한 지식 덕분에 권절은 적이 모인 장소가 역사적인 요충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군영의 서쪽은 기껏 해야 어촌과 농촌이 전부라 하니 적이 나타날 염려가 없고. 동쪽의 소창(현 고쿠라 시 일대)의 왜적들을 격퇴하였습니다. 적장인 소이교뢰(少弐教頼 - 쇼니 노리요리)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저는 군문의 일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명국의 병부상서께서 항복을 권고하였는데 닷새 동안 소식이 없지 않습니까. 숨겨둔 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무턱대고 기다린다면 무엇을 얻겠습니까. 이틀 전이 마지막 기회였는데 이를 놓쳐버렸지요.”
“저들의 군략이 병판 대감의 심계를 뛰어넘지 못함이 분명합니다.”
어제 밤중에 복귀한 홍윤성이 이끄는 분견대는 고쿠라 일대의 병력을 분쇄하고 항복 문서를 받아냈다. 최소한의 수비 병력을 제외한다면 2만이 넘는 대군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병사들을 동원해 다자이후를 공략하면 북큐슈의 병력을 모조리 격멸하는 것과 같다. 적의 움직임에 대응하기보다 기세를 몰아 선공에 나서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닐까. 그렇게 마음을 먹은 권절이 군막 밖으로 나서자 서쪽에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놈들에게 당했군. 구주는 음력 2월에도 비가 자주 내리는 고장이었어.”
피로를 풀며 병사들을 정비하던 홍윤성도 비가 내릴 조짐을 알아차리고 급히 군영으로 돌아왔다. 조선을 기준으로 삼으면 비가 내릴 시기가 아니었다. 음력 2월이면 한양이 고작 닷새 정도 비가 내리며 동래라 하여도 이레 정도 비가 내리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명백히 비가 내릴 징조였고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권절은 인근의 주민들 가운데 노인을 불러들여 상세한 정황에 대해 알아보려 하였다. 노인은 은자 한 닢이 주어지자 고개를 숙이며 자신이 아는 바를 말했다
“쇤네가 알기로는 이 시기에는 비가 많이 내립니다. 한 달 동안 열흘이 내리지만 장대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지금의 비는 얼마나 내릴 것 같나?”
“아마 이틀을 넘게 내릴 것이 확실합니다. 이렇게 습한 바람이 불면 나흘도 내릴 수 있지요.”
다행이도 장대비는 아니니 화포는 사용할 수 있다. 어차피 움직이지 못하는 화포 위에 천막을 세워 비바람을 막으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신기전과 보총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긴급한 군의가 시작되었다.
“놈들도 배운 것이 있었어. 보총수들이 화승을 상시 휴대하니 사람을 통해 소식을 알았을 것이고. 병사들의 소집이 진작 끝났음에도 비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본래 천문과 기후에 기대는 일은 장수로서 행할 방법이 아닙니다. 만약 보름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격멸 당하고도 남았을 것이 아닙니까.”
“이 할은 기대할 수 없지만 삼 할은 기대하고 남을 일이라네. 노인의 말이 옳다면 적어도 이틀 동안 비가 내릴 것이니 놈들이 공세에 나서겠군.”
권절은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군막이 열리고 백규가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왔다. 병부상서의 자리는 인맥으로 얻은 게 아니라는 듯이 우려가 섞인 말을 토해냈다.
“기후가 돌변하여 비가 내릴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럴 줄 알았으면 병사가 모일 시점에서 치고 나섰어야 하는데 과욕을 부리다 일을 망치게 생겼다네. 보총 하나만 문제가 아니야! 조선의 활은 각궁이니 아교가 풀어지지 않는가!”
“잠시만 진정해 주십시오. 저희도 우천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 홍 지사?”
“물론입니다. 당장 병사들에게 명을 하달하여 여름을 대비한 병장기를 챙기라 명하겠습니다.”
홍윤성이 명령을 받고 밖으로 나서자 백규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권절을 노려보았다. 군문에 있으면서 여름을 위한 병장기와 겨울을 위한 병장기를 따로 두는 일은 없었다. 기껏 해야 추위에 대비하는 옷을 지급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훈련원 삼군은 이미 지독한 습기와 퍼붓는 폭우를 대양도(대만)에서 경험하였다. 본래 여름까지 전쟁이 이어질 때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였지만 조금 일찍 선보이게 되었다. 홍윤성의 명령이 하달되자 병사들은 급히 움직이며 장비를 변용하기 시작하였다.
“배운 대로 움직여라! 장창을 결합하여 대장창을 만들어라!”
조선군이 사용하는 장창은 날을 포함하여 열 자(약 3.4m) 정도이다. 하지만 우천(雨天)시의 전술에 맞추어 대장창을 만들 경우 청동 재질의 고정 쇠에 넉 자의 자루를 덧대 열네 자(약 4.9m)의 길이로 늘어난다.
“반 시진 이후에 모든 준비가 끝납니다!”
“함선에 배치한 완구와 자모포도 모조리 꺼내라! 화기도감에서 모든 화기의 사용법을 숙지하지 않았더냐.”
화기도감 병사들도 바삐 움직이며 풍역선에 장착된 자모포와 대완구를 옮겨 수레 위에 올렸다.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손이 비면 화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궁수들도 바삐 움직였다. 평상시에는 크고 둔중해서 사용하기 힘든 철궁(鐵弓)을 들고 활줄을 매겼다. 평상시에는 연습 삼아 쏘는 것이 전부였지만 연습이 없었다면 사용할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홍윤성의 휘하에 있는 훈련원 삼군 절제사들이 모여 보고를 마쳤으며 갑사들과 정진영을 필두로 한 기병들도 준비를 마쳤다. 당장 출병해도 될 정도의 모습을 보며 놀란 백규를 아랑곳하지 않고 권절은 마지막 보고를 받았다.
“대상 병사 전원 매우(勱雨 - 비에서도 힘쓰다) 무장으로 변용하였습니다.”
“적들이 방심하였음이 분명하니 출병하라! 남쪽의 태재부에 머무는 적도를 궤멸하여 구주 북쪽을 정벌하면 싸움의 절반이 끝날 것이다!”
권절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줄기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상대가 시간을 끌며 비가 내리는 와중에 일전을 벌이려 하니 더욱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었다.
비가 내리던, 폭풍이 몰아치던 조선의 승리는 확고한 것임을 증명해야 훗날의 일이 편해진다. 그렇게 병사들이 출병을 시작하였고. 소식을 접한 쇼니 가문도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며 군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