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97화 (197/573)

< 3장 11화 - 경인년 전쟁(3) (지도추가) >

홍윤성의 지시가 하달되자 병사들이 바삐 움직였다. 상륙을 마친 병사들이 장비를 갖추고 집결하여 방진을 형성하고 깃발을 올렸다.

“놈들은 한 각(15분)이 지나기 전에 당도할 것이다!”

훈련원 삼군을 상징하는 표범의 문양이 흩날리는 깃발이 솟구치고 진영이 완성되었음을 알렸지만 홍윤성은 초조한 눈길을 굴리고 있었다.

그의 눈으로 보아도 지형이 너무 좋지 않았다. 개펄도 아닌 탁 트인 백사장이니 말을 몰기 적합한 지형이었다. 고저차를 이용해서 운총수의 조준사격을 기대하기 힘든 일은 당연하였으며 화력 지원은 끊길 예정이었다.

“왜구들이 배에 올라타 풍역선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습니다! 화기도감 병사들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왜구들을 격멸하고 다음 상륙이 당도하는 두 각(30분) 까지는 우리가 버티는 일이 전부이다. 작전대로 실행하라!”

왜구가 적을 뿐이지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병력이 몰려들어 배에 탑승하고 닥치는 대로 조선 선단을 향해 돌진하였다. 더 이상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차라리 진창이면 모르겠는데 말을 달리기 정말 좋은 지형이군. 두 각 이후에도 놈들의 기병이 살아있다면 상륙은 불가한 일이니 전력을 다하여 적을 격멸하라!”

커다란 계획을 수립하는 권절과 달리 홍윤성은 훈련원 삼군에 속한 장수들과 함께 세부 계획을 수립하였다. 적들의 대응이 신속하여 반 시진(1시간) 이내에 조직적인 대응을 취할 것을 염려하여 세운 계획이었다.

처음으로 상륙한 병사들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 4년차 이상의 병사들을 위주로 동원하였으며 최대한의 방어력을 갖추기 위해 피갑의 주요 부위에 갑찰을 붙여 두정갑(頭釘甲)으로 개조하였다.

“갑옷이 조금 무거워졌다고 굼뜬 모습을 보이지 마라! 지금 놈들의 기병을 끊어놓지 못하면 다음에 상륙하는 병사들은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가 이것이었다. 기병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지 못하면 산개하여 상륙하는 병력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홍윤성 또한 작전과 다른 상황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조선군이 기병과 정면으로 대결한 일은 많았지만 적을 공격하는 입장에서. 가장 불리한 상륙 직후의 배수진(背水陣)에서 상대한 일은 없었다. 그렇게 요란한 고함과 함께 적의 기마병이 해안가로 진입하였다.

쇼니 가의 기병들은 기동력을 이용하여 일자진을 만들고 조선군의 진형을 향해 비스듬히 스쳐지나가면서 화살을 퍼부었다. 생소한 전술에 당황한 훈련도감 병사였지만 홍윤성의 대처 또한 신속하였다.

“왜놈들이 줄지어 도열한 것과 마찬가지이니 보총으로 쏘아 붙여라!”

호각소리와 함께 보총의 일제사격이 퍼부어지고 매캐한 탄연이 솟구쳤다. 기병들이 다시 사격을 위해 퇴각하였는지 말발굽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홍윤성은 매캐한 연기를 손을 휘저어 걷어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의 피해와 왜군의 피해는 어떠한가. 이렇게 먼 거리로 궁시를 날려대니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인데!”

“화살이 생각보다 약합니다. 놈들이 기세 좋게 쏘아댔지만 사망자나 중상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참으로 다행이군. 왜인들이 궁시에 미숙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멀리 날리는 것이 전부인 것이 분명해 보이네. 진영 안쪽으로 부상병을 호송하게나.”

연기가 걷히자 피해가 명백히 드러났다. 백사장에 적게 잡아도 일백이 넘는 왜병과 말이 나뒹굴고 있었으며 기병들은 어쩔 줄 몰라 거리를 벌리고 진형을 정비하고 있었다. 반면 병사들은 태연하게 두정갑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고 있었다.

마상궁술의 유효 사거리는 생각보다 매우 짧다. 흔들리는 말안장 위에서 조준은 형편없이 흐트러지고 커다란 활을 사용하지 못하니 활의 사거리와 위력 또한 감소한다. 말과 한 몸이나 다름없는 몽골의 정예병이 아니라면 장거리 사격은 견제의 의미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홍윤성은 적의 시체를 돌아보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였으며 부관인 장효손은 천리경으로 적의 시체를 살피며 거리를 가늠하다 말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보총의 사격이 유효한 것을 보니 놈들과의 거리는 오십 보(약 80m)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보기에는 팔십 보(약 128m)에 달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보총의 사거리 밖에서 대응사격을 실시했는데 이렇게 많이 죽을 수 있나?”

지금까지 적의 공격에 대응하여 갑사들이나 북방 기병들을 대상으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하였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총의 일제사격이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팔십 보에서 이런 결과를 만들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홍윤성은 상념에 잠길 틈도 없었다. 적들은 재차 공격에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일자진을 펼치며 도열하였고 조만간 돌격이 시작될 징후였다. 잔뜩 긴장하며 호각으로 군령을 내릴 준비를 하였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광경을 보았다.

“지금 저들이 무얼 하는 것인가?”

맹렬히 돌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적게 잡아도 오백 이상 남은 적들의 기마병의 절반은 하마(下馬)하여 칼을 곧추 세웠으며 절반의 기마병만 돌격을 실시하였다.

“분명 갑사 가운데 기마에 능숙하지 않은 이들은 저런 행동을 벌인다 하였건만······. 정신을 놓지 마라! 놈들은 아무리 이상한 병법을 사용하여도 기병임에 틀림이 없다!”

필사적으로 돌격하는 와중에도 선두에 선 이가 군기를 등에 짊어지고. 절반의 병사들은 말에 내려서 고함을 지르는 모습을 보았지만 적은 적이다. 홍윤성은 다시 일제사격을 알리는 호각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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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저런 괴물딱지들이 다 있어!”

“저희의 궁시가 효험이 없나 봅니다! 정녕 돌격하실 겁니까?”

그들의 병법은 마상에서 우월한 기동력을 이용한 유미토리(弓取り - 궁술)이었다. 적을 상대하면 먼 거리에서 활을 퍼부어 기세를 꺾고 창을 들어 마무리한다. 하지만 적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칠백에 달하는 기병 중에 백 명 이상이 고혼이 되었다.

그들의 사격은 사철을 사용하는 일본 열도 기준으로는 충분한 위력이지만 두정갑을 관통할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었으니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계속 활을 쏘다가 저희가 당할 지경이 아니겠습니까. 이대로 분열하여 놈들의 상륙을 저지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바다 위에 머물고 있는 함선들이 보이지 않는가? 지금은 불벼락을 쏘아대지 않지만 놈들이 다시 상륙하면 불벼락을 뒤집어쓰고 몰살당할 것이네. 지금 놈들을 몰아내는 것이 먼저이지.”

“하지만 몇 번의 궁시를 마치면 저희가 몰살당할 지경입니다!”

더 이상의 사격전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결국 활을 등에 걸고 창을 거머쥔 다음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가신 가운데 명망이 높은 이가 창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불벼락이 무섭다 하여도 백 명이 당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가운데 절반이 기마돌격을 할 수 있다 하면 삼백 명이 짓쳐 들어가는 것이지 않느냐! 다시 절반이 남아도 백 오십이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숙연해진 가운데 가신이 가장 앞으로 나섰다. 그는 돌격하는 와중에도 가몬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으니 자신을 표적으로 삼으라는 신호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선두에 설 것이다. 가장 먼저 불벼락에 맞아 죽을 것이 분명하지만 주군을 위하여 조선 놈들의 전열을 분쇄하라!”

보병 스물이 모여도 기병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 단순하며 합리적인 계산을 통해 승산을 잡았으며 자신의 희생에 말미암아 사기도 끌어올렸다. 그렇게 돌격이 시작되었다.

돌격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배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기분이 들며 사지에 힘이 풀렸다. 자신의 애마가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뒹굴고 말발굽 소리와 고함이 들려왔다. 가신은 마지막 힘을 다해 고개를 들어 올리다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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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도감의 방패수들은 온 몸을 굳히며 적의 돌격을 막아내려 하였다. 북방 기병이나 갑사들과 함께 했을 때에는 훈련이라 하여도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분이 들었으며 중상을 입은 자들도 생겨났다.

“뭐야? 저게 말이야?”

“놈들이 멀리서 싸운 것이 아니었다고? 저런 말을 끌고 나오다니 지금 뭐 하는 짓거리냐!”

“저딴 비루먹은 말에 겁을 먹다니! 지사님이 보시고 뭐라 하겠나!”

홍윤성을 비롯한 훈련도감 모두가 착각한 것이 있었다. 저들의 말, 체격 그리고 무기 모두 참담할 정도로 작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왜인들과 본격적인 교전에 나서지 않았으니 당연한 착각이었다.

사람의 크기로 거리를 가늠할 수 있으니 작은 체격의 상대가 멀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하지만 기마 돌격의 충격 또한 상상 이상으로 작았다. 보총 일제사격을 뚫고 들어와 창을 휘둘렀지만 소득이 없었다.

“어이쿠! 으억!”

“이 호로 잡놈의 새끼가! 이걸 돌격이라고 하고 자빠져있냐!”

열 자가 넘는 장창을 휘둘러 기세 좋게 장패를 내리 찍었지만 방패수의 몸이 뒤로 자빠진 것이 전부였다. 조선에서 보아온 거대한 말이 아닌 작달막한 조랑말의 머리통에 미늘창(할버드)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말이 땅을 뒹굴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기마민족을 상대한 훈련도감 입장에서 쇼니씨의 기마병은 살아 있는 표적이자 말고기에 불과하였다. 오히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들은 말에서 내린 자를 상대하는 이들이었다.

“보총수! 틈을 노려 방포하라!”

진영 사이에서 자율사격이 시작되었다. 급소를 맞아 쓰러지는 자, 놀란 말을 진정시키다 넘어지고 창에 찍혀 목숨을 잃는 자,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퇴각하려는 자.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고 한 각이 지나기도 전에 전투가 끝났다.

“그러니까 놈들이 궁시에 능숙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작았던 겁니다. 작았으니 가까이 있어도 거리를 혼동할 지경인 것이 확실합니다.”

기병의 크기를 가늠할 때에는 높이가 먼저이며 사람의 앉은 키에 말의 등 높이와 등자를 합산한다. 조선 기준에서 정예 기병은 상등마를 넘어서는 한혈마 혼혈종을 타고 다니니 사람의 신장과 합치면 일곱 자에(약 240cm) 달하는 거구이다.

하지만 쇼니 가에서 보내온 정예 기병은 조선 기준으로 과하마를 타고 있었으며 체격 자체가 작은 편이었다. 결국 이들의 최종 높이는 다섯 자(약 180cm)에 불과하였다. 그런 차이가 이런 오해를 불러왔다.

“적병을 몰아냈으니 모든 일은 끝이다! ”

하카타 일대에서 조직적인 저항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휘관인 쇼니 마사스케는 제 2대의 상륙을 목격한 직후 생존한 병사들을 이끌고 퇴각하였으며 일대는 조선의 차지가 되었다.

상륙 직후 조선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터전을 잡고 군영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윽고 주변 정리가 마무리 되었으며 쇼니 가문의 병력과 일전을 벌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싸움은 바다에서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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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은 함대를 셋으로 나누었다. 전투 및 상륙을 위해 풍역선 15척과 병조선 300척으로 구성된 제 1선단. 1선단의 전투력을 보존하고 해전을 전담하는 풍역선 20척으로 구성된 제 2선단. 그리고 대방선으로 구성된 보급대 제 3 선단이었다.

제 1선단은 후쿠오카 상륙을 마친 이후 이키(壱岐)일대에서 큐슈 북부의 해상 지원을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제 2선단은 방어가 아닌 공격에 나선다.

상륙 이후 대마도로 돌아가 보급을 마친 제 2 선단의 지휘관은 훈련도감 첨절제사(僉節制使 - 종3품 관직)인 한철동(韓哲同)이었다. 해전에 능숙하지 않은 그를 보좌하기 위하여 남이 또한 대장선에 올라타 있었다.

“서둘러 화약을 적재하라! 놈들의 선단을 분쇄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전쟁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큐슈의 아홉 영지 가운데 하나를 공격하였을 뿐이며. 조선으로 따지면 부산진에 상륙하여 동래를 두들기는 일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쐐기를 박기 위해서는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혀야한다.

“조만간 적들이 소식을 듣고 일제히 북상할 것입니다.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익히 알고 있다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자네들이 고토라 부르는 고장이 정녕 왜구들의 본거지인가?”

“그렇습니다. 조선으로 침략한 와코(왜구)들도 고토열도에 모여서 북상한 이들이 분명합니다. 얼마 전까지 남경 일대를 약탈하던 놈들이었습니다.”

타이라 시게스구는 한철동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어설픈 조선어로 답하였다. 지난 몇 달 동안 배웠지만 한철동이 듣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부산포에서 보내온 물자들을 다시 적재한 풍역선 선단 앞에 대마도에서 보낸 세키부네 열 척이 항로를 안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섬과 육지 사이의 통로를 향해 적의 시야를 피해 움직였다.

“바람은 역풍이고 해류는 오른편에서 몰아치는군. 왜구들이 기세를 몰아 북상한다면 삽시간에 대마도와 동래까지 닿겠어.”

지루한 항해는 사흘 동안 이어졌다. 제대로 된 경로를 따르지 못하고 역풍을 거슬러 올라가니 풍역선은 정상적인 속도의 절반을 내지 못했다. 남이 또한 염려되었는지 바다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약탈에 불과하였지만 자칫 잘못하면 상왕전하께서 계시는 동래를 습격할 마음을 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구들의 다른 본거지인 장기(長崎 - 나가사키)에 있는 놈들이 그런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바람을 거스르며 천천히 움직이는 풍역선 앞으로 타이라 시게스구가 몰던 세키부네가 돌아왔다. 군기를 휘두르는 것이 적을 발견한 것이 분명하였다. 시게스구는 밧줄을 타고 올라와 급히 보고를 올렸다.

“하시마(端島 - 훗날의 군함도) 인근에서 적의 함대를 발견하였습니다. 선두에 선 함대가 오십 척 규모이며 후발대는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가몬을 보니 히고(현 구마모토 현)에 있는 아소(阿蘇)가문의 함대가 있었습니다.”

“아소 가문이라 하면 명국 황상께서 명하지 않은 세력인데. 어찌 하여 왜구를 보낸 것인가.”

“대우(大友 - 오토모)씨의 가몬도 있었으니 최소한 세 세력의 함대가 합종연횡 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예상 외로 빠른 대응이었다. 아리아케 해(有明海)에 있는 선단이 전쟁이 시작되고 5일 만에 움직인 꼴이니 아마 지금쯤 전령이 고토열도까지 나아가 소식을 전했으리라.

본래 작전은 적의 선단을 만나면 격멸하고. 선단을 만나지 않으면 나가사키 일대로 나아가 적의 저항을 분쇄하는 것이었다. 한철동은 생각을 거듭하며 말했다.

“놈들은 얼마나 멀리에 있는가.”

“저희가 보았을 때에 여기서부터 십 리(40km – 일본의 1리는 4km)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천리경 덕분에 들키지는 않았지만 두 시진 이후에 놈들의 함대와 마주칠 것입니다.”

“놈들의 함대를 격멸하여야 하니 전투를 준비하라! 화력을 쏟아 부어 격멸하면 충분한 일이다!”

명령이 하달되고 스무 척의 풍역선에서 전투 준비가 시작되었다. 적의 경로를 막아 격멸하는 단순한 전투였다. 하지만 남이는 풍향과 해류를 보면서 한철동의 명령에 의문을 품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절반의 승리에 불과하였다.

남이의 생각이 옳다면. 해전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며 움직임과 규모의 싸움이다. 적의 병력을 절반만 격멸하는 것이 아닌 몰살하기 위한 계책이 남이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소장이 청할 것이 있습니다. 이대로 싸우게 되면 오도열도에서 북상할 적을 막아설 수 없게 되니 주상전하의 명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본디 해전을 벌일 적에는 측면으로 일자진을 만들어 화포를 마음대로 쏟아 붓고 궤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격멸하는 일이 기본이 아니겠는가.”

한철동이 생각을 거듭하다 남이의 눈을 노려보았다. 젊은 장수가 실적을 거두었다고 교만을 부릴지도 몰랐지만 다른 생각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한철동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서 왜구를 격퇴하여도 오도열도의 왜구들은 틈을 노려 원병으로 돌변할 것입니다. 그러하니 저는 지도에 있는 평도(平島 - 히라시마) 인근에서 습격하여 적의 후방을 노리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적의 후방을 노린다 하였는가. 그렇다면 얻는 이득이 무엇인가?”

“왜구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동래 혹은 대마도를 습격하거나 박다(하카타)에 원병으로 참가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왜구들이 합류할 곳은 남쪽이 아니고 북쪽이 분명합니다.”

논리적으로 옳은 말이었다. 해류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면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왜구의 합류 지점은 고토 열도 인근일 것이며 동래로 침략하거나. 후쿠오카를 구원하기 위하여 움직일 것이 분명하다.

“풍역선은 바람을 타고 올라갈 때에는 왜선보다 빠르며. 측풍이 불어도 왜선을 추포하는 일이 불가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하니 저는 적의 합류가 끝난 시점에 몰아쳐 일제히 격멸하는 것을 원합니다.”

한철동도 설득되었는지 남이를 노려보지 않았다. 오히려 설명을 듣고 있던 시게스구에게 눈길이 돌아갔고. 시게스구 또한 지도를 보면서 손가락을 짚어 나갔다.

“옳은 말씀입니다. 아마 고토열도의 해적들이 모일 장소는 우구지마(宇久島)일 것이며. 여기서부터 물살과 바람 모두가 북동쪽으로 나아가기 쉬워집니다.”

“놈들이 사흘 동안 항해하였으니 섬에 머물며 함대를 정비할 것이 분명하군.”

“본래 우구지마는 큐슈 본토에 가까운 섬이며 고토 열도 전체를 대표하는 섬입니다. 머물 장소는 이곳 외에는 없습니다.”

조선군의 함대는 야음을 틈타 하라시마에 상륙하였다. 작은 섬이기에 병사도 별로 없었으며. 임해도감 병사들은 경계를 게을리 하는 병사들을 순식간에 제압하였다.

이윽고 다음 날. 적의 함대가 급격히 북상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조선의 함대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해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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