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96화 (196/573)

< 3장 10화 - 경인년 전쟁(2) >

병부상서 백규는 명나라에서 파견한 병사들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늘어놓았다. 병사들의 기강은 둘째 치더라도 함선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방길주의 업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수양대군께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저 배는 무엇이오? 어떠한 용도로 쓰이기에 군선으로 쓰이고도 남을 법한 크기를 가진 것입니까?”

“저 작은 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병조선(兵漕船)이며 평시에는 미곡을 운반하다 이런 긴급한 상황일 경우엔 징발하여 병선으로 쓰이는 다용도 함선입니다.”

“얼핏 보아도 일천 석은 거뜬히 나를 배를 미곡을 운반하는데 사용한다? 원정에 사용한다면 왜국까지 충분히 항해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러한 선박을 삼백 척이나 동원하다니 조선의 저력이 두렵습니다.”

“하오나 천병(天兵)을 도와 왜적과 해구를 토벌하는 일만 연연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규가 헛기침을 하였지만 함대 하나만큼은 임진왜란 시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방길주는 죽기 전까지 함선을 만들어댔으며 수없이 많은 제자를 키웠다.

그와 함께 이주한 이들의 제자가 각지에서 조선소를 차렸고. 형님이 표준 설계안을 제시하며 규격에 맞는 함선을 만들라 명령을 내리자 즉각 획일화된 규격의 함선을 만들어냈다. 이런 결과가 쌓여 삼백 척에 달하는 병조선을 동원할 초석이 되었다.

“상왕전하께서 작전을 하달할 예정입니다. 대군어른과 명국의 병조상서께서는 속히 군영으로 들어오시지요.”

군영은 다른 어디도 아닌 동래성이었지만 분조나 마찬가지의 규모였다. 원정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과 형님을 보좌하기 위한 조정 관리들을 보니 아직도 권력 이양이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모든 사항은 정해진 일이니 마지막 확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상께서는 구주의 영주들 가운데 죄상이 엄한 자 넷을 정하였으니 이들을 처단하여 상국의 위엄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황상께서 품으신 뜻은 아국을 범하려 했던 무도한 이들을 처단하며 올바른 이들이 뜻을 바로잡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벌을 내릴 자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태우친번(大友親繁 - 오토모 지카시게), 도진입구(島津立久 - 시마즈 타츠히사), 국지위방(菊池為邦 - 기쿠지 다메쿠니) 그리고 구주의 탐제(探題 - 단다이)인 삽천교직(渋川教直 - 시부카와 노리나오)입니다.”

“칙서를 받들어 반드시 토벌에 나설 것입니다. 이를 명백히 판가름하여 주십시오.”

영덕제가 대상으로 삼은 이는 오토모, 시마즈, 기쿠지의 세 가문과 큐슈의 군사 및 외교 업무를 총괄하는 단다이를 연임하는 시부카와 가문이다. 조선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을 실행했는데 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형님은 칙서를 받아들고 단상에서 내려와 탁자에 놓인 작전 지도에 손을 얹었다. 동래부터 표시된 작전 지도에는 제법 상세한 내용들과 각 영주들의 권역이 나뉘어 있었는데 먼저 손을 볼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현대의 후쿠오카다. 지금 시대에는 하카타와 후쿠오카지.

“황상께서 명하신 바를 충실히 따르려고 하지만 문제가 많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구주의 남쪽에 해당하는 이들이 역심을 품은 것이니 이들을 징벌하려면 다른 영주들을 통해야 하지 않습니까.”

“왜구들을 국문하여 알아낸 바로는 다른 영주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 수하들이 멋대로 조선을 침략하는 짓을 저질렀다 합니다. 이들을 죽이지 않더라도 징벌하는 일은 황상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황상께서 뜻을 정하셨다면 번국으로서 따르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형님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바둑알을 잔뜩 들고 오더니 지도 위에 올려놓았다. 검은 바둑알이 조선의 병력이고 흰 바둑알이 왜의 병력이리라.

“먼저 소이씨(少弐)의 영토인 박다(하카타)에 상륙할 것이며. 이후 다른 영주들이 왜구를 보내 후방을 침탈하지 못하도록 함대를 분열하여 장기(長崎 - 나가사키)까지 왜구를 소탕할 것입니다······.”

형님의 설명이 이어지자 백규의 표정도 변하였고 다른 관원들도 긴장을 아끼지 않았다. 말 그대로 큐슈 전체를 휩쓰는 거대한 작전 계획이었으며 기한은 고작 팔 개월에 불과하였다. 형님의 설명이 끝나자 백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참으로 험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조선의 병력 절반이 대내씨(오우치)의 땅으로 이동하는 것입니까.”

“대내씨는 아국의 신하를 자처하며 한편으로는 왜국의 세력을 이간질하여 화를 입은 영주입니다. 하지만 혹여나 구주로 인한 지원을 차단하기 적절한 고장이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 대내씨가 몰락하면 삿된 뜻을 품은 이들이 관문(関門)해협의 좁은 틈을 통해 마음껏 구주에 원병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황명의 지엄함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가정 어려운 일인 오우치에 대한 지원도 어렵지 않게 납득시켰다. 작전은 전쟁 시작 5분 뒤에 허사가 된다 하지만 이런 커다란 틀은 짜놓으면 흐름이 틀어질 일이 없다.

모든 일을 마친 형님은 해안으로 나아가 도열을 마친 병사들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전투 병력만 4만에 보조 병력이 4만, 함선 운용인원이 2만에 달하는 조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정군을 편성한 것이다.

“좌찬성 구치관(具致寬)은 앞으로 나오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예순이 넘은 노구를 끌고 나온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구치관이었다. 그는 세종대왕님 시절부터 사헌부에서 일하며 신임을 쌓아오다가 홍위의 대에 들어 좌찬성에 역임되었다 이번 원정의 최종 지휘관으로 손색이 없는 자였다.

“자네에게 명국의 황상께서 친히 전달하신 부월(斧鉞)을 하사하겠네. 명국의 황상께서 뜻하신 바를 충실히 이행하게.”

“늙은 몸을 이렇게 신임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간뇌를 쏟을 정성으로 왜적의 토벌에 힘써 평안을 되찾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병조판서 권절과 훈련원 지사 홍윤성은 앞으로 나오게.”

권절과 홍윤성 그리고 훈련원 삼군의 지휘관 모두가 집결하였으니 조선의 최정예가 여기 모여 있었다. 하지만 가장 특이한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완연한 선비의 복장을 하고 있는 장년이었다.

“다음으로 대령현을 다스리는 정충렬의 아들, 정진영(眞映)은 앞으로 나오게.”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사람들도 웅성거리고 백규도 그의 출신을 전해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려보았다. 배재당에서 하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말썽을 부렸던 녀석이었는데 행색만 보면 조선의 선비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자네의 소식을 듣고 잡아다 장형에 처하려고 했던 일이 엊그제 같군. 배운 것은 많은가?”

“어릴 적의 일을 생각하니 송구스러울 따름이옵니다. 하오나 조선의 신하가 되어 왜적을 소탕하는 일에 나설 것이며. 이 몸을 바쳐 충심을 드러낼 것이옵니다.”

오천 기에 달하는 북방 기병들은 대부분 조선으로 이주하였던 여진족의 후손이었다. 아직 교화가 덜 된 야인여진도 있었지만 핵심 병력은 건주 양위에 속한. 완전한 조선화가 진행된 기병이었다.

이들이 전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지만 내가 볼 일은 없겠지. 병력들이 차례차례 승선하고 깃발이 휘날렸다. 신기전 여러 발이 발사되어 축포를 울렸으니 이틀 뒤 새벽이면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리라.

----------

“나리께서는 어찌 이리 다급하실까? 조선에서 우리를 공격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야 모를 일이지. 애초에 주제도 모르고 날뛰던 놈들이 아니었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인데. 덕분에 겨울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게 뭔 고생이야.”

“그놈들은 고작 배 세 척 가지고 주제도 모르고 날뛰니 문제였지. 얼마나 멍청했는지 가까스로 열댓 놈만 살아서 돌아왔잖아?”

본래 지쿠젠, 히젠, 부젠(현 사세보 및 후쿠오카 일대)의 슈고 다이묘 가문인 쇼니(少弐)는 쓰시마 도주 소(宗) 씨와 사이가 돈독하기로 손꼽힌 다이묘였다. 본래 역사에서 오닌의 난 이후 오우치를 상대로 분전을 벌였던 이이다.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쓰시마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는 현재 쇼니 가문의 가주 쇼니 노리요리(少弐教頼)이었다. 많은 사실을 알지 못하였지만 조선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었으며. 왜구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쇼니 노리요리의 뜻이 무엇이던 간에 그 또한 닥치는 대로 인삼을 심어댄 다이묘 중 하나였다. 자연스럽게 왜구가 발생하고 이를 수습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약탈에 맛을 들린 왜구들이 지난 9월 조선을 다녀온 것을 알아차리고 즉각 대책을 마련하였다.

“놀고먹을 것도 없는 겐카이지마(玄界島 - 후쿠오카 앞바다의 섬)에서 뭘 하라고 이러시는 것인지 모르겠군. 조선에서 수십 척의 함대를 동원하기라도 한다고? 큐슈가 아무리 변방이라지만 이래서야 되겠냐고.”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할까봐 탁주를 좀 만들었지. 한 잔 들게.”

대책을 마련해도 제대로 된 경비 체계가 없으니 병사들의 기강이 헤이해지는 일은 당연한 결과였다. 밥을 해먹으라고 보낸 쌀이 술로 변해서 병사들의 목으로 넘어갔다. 한 병사가 취기가 올라 소변을 누러 가다 바다위에 있는 이상한 형상을 보았다.

“이보게, 저거 보이나? 나는 눈이 좋아서 그러는데 저게 배가 맞나 모르겠어.”

“아직 새벽인데 뭐가 보인다고. 자네가 말하니 뭔가 보이기는 하는데 정녕 배가 맞나 모르겠군. 술기운이 돌아 헛것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동이 트기 직전 바다에 거무튀튀한 형체가 보였지만 너무 먼 거리였다.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다 어깨에 쌓인 새벽이슬을 털어낸 초병이 생각을 정리하고 태연하게 말했다.

“방향을 보아하니 오로노시마(大字小呂島) 방향인데 이상이 있다면 저들이 신호를 보냈겠지. 무얼 그렇게 신경 쓰는지 모르겠네.”

“맞아 맞아. 마시자고!”

- 쿠웅!

북쪽에서 들려온 둔중한 소리에 병사들의 고개가 돌아갔지만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북서쪽의 이키섬(壱岐島)에서도 폭음이 치솟고 희미한 불길이 보이고 있었다. 한 병사가 겁에 질려 몸을 떨며 말했다.

“천둥소리가 들리는데 조선에서 쳐들어 온 것 아니야? 조선의 함선은 불벼락을 쏘는 타케미카즈치(고사기에 언급된 뇌신, 무신)의 현신이나 다름이 없다는데.”

“미도리오니들이 수천이 몰려다닌다 하였는데 어떻게 싸우지? 부시(武士 - 사무라이) 나리들도 미도리오니 둘이 협공을 벌이면 이길 재간이 없는데 우리가 뭘 한단 말인가.”

“미도리오니 놈들도 작은 불벼락을 쏘니 백 보 밖에서도 머리통이 날아간다던데! 여기도 안전하지 못해!”

병사들 사이에서 공포가 퍼져나갔지만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었다. 한 병사는 생각을 정리하고 모닥불을 걷어차 꺼트린 다음 다른 사람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일단 하카타(博多)에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겠나. 이봐! 뭘 하나! 배를 타고 돌아가야지!”

다른 이들 모두 북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북쪽 바다를 바라보게 되었다. 좀 전에는 작게 보였던 형상은 어느새 완연한 배의 모습으로 변하였으며. 횃불이 잔뜩 밝혀진 것이 물길을 안내하기 위한 모습으로 보였다.

고작 세 척에 불과한 작은 선박 뒤로 거대한 형상이 보였다. 얼핏 보아도 열 개가 넘는 선박은 몇몇 영주만 가지고 있다는 누각을 설치한 거대한 배(아타케부네의 원형)와 견주고도 남았으며. 주변의 작은 형상들도 빼곡하게 보였다.

어느새 해변에 머물던 병사들도 상황을 눈치 챘는지 산 위로 피신하였다. 지금 하카타로 돌아가 적의 침공을 알린다면 분명 대비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저런 거대한 선단을 상대하면 목숨을 건지기 힘들 것이다.

----------

“적선이다! 조선의 침략이다! 어서 징을 울려라!”

동이 틀 무렵 노코노시마(能古島)를 시작으로 사방에서 징이 울리며 적의 습격을 알렸다. 이미 조선의 침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해안가로 몰려나왔으며 가신들도 장비를 갖추고 출두했다.

하지만 징소리보다 확실한 소리가 노코노시마 방향에서 들려왔다. 조선의 함대가 접근하면서 노코노시마에 설치한 망루에 포격을 퍼부은 것이다. 병사들이 도열하였지만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였으니 한 사무라이가 말에 올라타서 병사들에게 말했다.

“조선의 배가 불벼락을 퍼붓는다 하여도 불벼락(뇌력포)은 이백 보(步 - 약 360m)에 미치지 못하고 포탄은 육백 보(약 1km)에 불과하다. 조선에서 도망친 멍청이들에게 들은 사실이니 변함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승산이 있지 않더냐!”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조선의 선박이 거대하니 좌초를 염려하여 작은 선박 여럿을 보내 물골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하카타 인근 해안에 저런 거대한 선박을 접선할 곳은 흔하지 않았다. 사무라이는 칼을 들어 조선의 함대를 가리키며 연설을 계속하였다.

“놈들이 반 리(2km) 너머에 있으니 조만간 작은 배로 옮겨서 상륙하거나 아예 철수할 것이다. 작은 배에 불벼락을 뿜는 화포를 두면 쏘지도 못하고 배가 박살날 것이니 조금씩 무리를 지어 상륙하겠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뒤를 보아라. 작은 주군이신 마사스케(政資)께서 이 전투를 지켜보신다! 미도리오니가 강해보았자 작은 배에서 일백 명이 내리는 것이 고작이지 않느냐! 놈들이 상륙하여 모래밭에서 뒹구는 동안 활로 쏘고 창으로 찔러 죽이면 이기는 것이다!”

남쪽의 시가지에서 마름모꼴 네 개가 뭉친 가몬이 하늘 높이 치솟아 훗날 가문을 물려받을 쇼니 마사스케의 참전을 알렸다. 이윽고 앞으로 나온 쇼니 마사스케가 나서며 말을 이어갔다.

“조선의 결국 침략의 야욕을 드러냈지만 염려하지 말라. 이미 전령을 보내 세 개의 쿠니에서 병력을 징발하기로 정하였으며 시일이 지나면 시마즈와 아소의 원병이 당도할 것이다.”

“저희가 이길 수 있습니까!”

“물론이다. 조선의 화포는 여기까지 닿지 않으며 설령 상륙을 저지하지 못하여도 좋다! 큐슈 전체의 병사를 집결시키면 도합 십만에 달하지 않더냐! 설령 패하여도 며칠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당당하게 나서······.”

마사스케의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조선의 풍역선에서 연기가 치솟고 굉음이 들려왔다. 잠시 뒤 거대한 물체가 백사장에 내리 꽂히며 사방으로 모래를 흩뿌렸다. 노코노시마와 해안까지의 거리를 가늠한 마사스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조선의 함선까지 반 리 정도의 거리가 있는데······.”

연신 폭음이 들려오며 해안가에서 점점 수비를 위해 급조한 망루를 향해 탄착군이 옮겨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포탄을 바라보던 병사들은 안색이 창백해져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지금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냐! 작은 가주님께서 이렇게 앞서 계시는데 불순하기 짝이 없구나! 놈들이 멀리 불벼락을 쏘아도 거대한 쇠구슬에 불과하다! 보아라! 나······.”

그것이 이름 없는 사무라이의 유언이었다. 뇌력포의 포탄이 그에게 떨어진 것이다. 폭발력이 없는 납덩어리였지만 어마어마한 운동량은 사방의 모래를 뒤엎기 충분하였으니 말 그대로 육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려 버렸다.

----------

대장선에 올라탄 권절은 천리경으로 탄착군을 확인하며 입맛을 다셨다. 천자총통이 세 발을 쏘면 목표에 근접하는 것과 달리 뇌력포는 여섯 발을 쏘았음에도 목표물인 망루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뇌력포의 명중률이 형편없군.”

“방도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정량인 90냥(약 3.6kg)을 넣고 최대 사거리로 발사해본 일이 극히 드물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해전에서 극히 드물게 사용된 뇌력포가 본격적인 전쟁에 투입되었지만 아직 고쳐야 할 점이 너무 많았다. 천자총통의 여섯 배나 화약을 잡아먹는 녀석이니 최대 사거리 훈련이 힘들어 명중률이 부족하였다.

하지만 정박한 함선에서 정지한 표적인 망루를 향해 화포를 쏘는 것은 충분한 훈련이리라. 그렇게 화포가 망루를 타격하기 시작하자 권절은 다음 명령을 내렸다.

“홍 지사! 놈들의 항구인 박다(博多 - 하카타)에 상륙하게. 작전대로 화포를 퍼부으며 놈들의 혼을 빼놓아 시가지에서 몰아내 버리게.”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다들 준비는 되었나!”

훈련도감식 경례를 올린 홍윤성이 두정갑을 펄럭거리며 상륙을 위해 준비한 병조선에 올라탔다. 얕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백 척 이상의 병조선들이 일제히 움직이자 적들도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놈들이 해안을 막아서려 한다! 작전대로 비격진천뢰와 신기전으로 놈들의 혼을 빼놓아라!”

깃발이 휘날리며 명령을 전달하자 병조선 가운데 서른 척이 긴급히 멈췄고 일흔 척은 속도를 줄였다. 정지한 병조선에 탑승한 화기도감 병사들이 손을 놀리며 대완구(大碗口)에 비격진천뢰를 넣고 신기전에 불을 붙였다.

소형 선박인 병조선은 많은 화포를 쏘지 못한다. 설령 사용하여도 천자총통이 아닌 현자총통(玄字銃筒) 여덟 문 정도가 반동을 견뎌낼 수 있는 화포의 한계였다. 바꿔 말하면 반동이 적은 화포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사각은 정했나? 어차피 흔들리는데 뭘 어쩌라고! 발사!”

“신기전 쏜다! 불길에 배가 타들어가지 않게 물 끼얹을 준비해라!”

비격진천뢰는 화약이 잔뜩 들어있는 포환이었기에 강한 힘으로 쏘면 포신에서 자폭하여 끔찍한 사고를 일으킨다. 하지만 약한 힘으로 곡사사격을 하는 대완구의 힘을 빌리면 삼백 보(540m) 정도는 날려 보낼 수 있었다.

연기를 내뿜으며 허공으로 날아간 비격진천뢰가 퇴각과 진격 중 어느 것도 택하지 못한 왜군의 근처에 떨어졌다. 포탄이 인근에 떨어지지 않아 안도한 왜군들은 이윽고 불길과 폭음에 휩싸이며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뭐야! 왜 터져! 왜 터지냐고!”

“놈들이 정녕 타케미카즈치의 가호를 받는 것이 분명하다! 어서 도망쳐라!”

“불화살이 날아온다! 터지는 불화살이다! 이자나기시여! 카쿠즈치를 토벌하였듯이 저희에게도 비를 내려 주십시오!”

사방이 비명과 폭음이 가득 찬 가운데 상륙이 시작되었다. 병조선 일흔 척에 타고 있던 병사는 이천 명에 불과하였지만 해안에 조직적인 저항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저 멀리 달아나는 쇼니 가의 가몬을 본 홍윤성은 침을 뱉으며 말했다.

“진형을 갖추고 해안에서 왜놈들을 천천히 밀어내라! 박다의 영주인 소이씨는 제거할 대상이 아니니 가급적 포로를 많이 잡아들여라!”

“지사님! 놈들이 기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쪽의 복강(福岡 - 후쿠오카, 당시는 서쪽이 후쿠오카 동쪽이 하카타였다) 방면에서 기병들이 모여듭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저희에게 달려들 작정인가 봅니다!”

기병이라는 말을 듣고 홍윤성의 절반도 남지 않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직 일본의 전국시대 이전이며 소수에 불과하지만 엄연한 기병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너무 빨리 출정하였다.

“내가 이렇지. 뭐 기병을 다루는 법을 몰라? 상륙하고 한 시진이 넘어서야 대응할 거라고? 다들 방진을 구성해라! 세 번째 상륙에서 기병이 오기 전에 우리가 버텨야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