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8화 - 초읽기 >
굵은 나무창살 사이의 문이 열리고 덩치가 비대한 금의위(錦衣衛) 병사 넷이 진스케의 팔을 감싸 일으켰다. 혼수상태에서 막 회복한 덕분에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진스케의 이상을 감지했는지 금의위의 병사도 한숨을 쉬며 잠시 쉬게 했다. 그렇게 나무창살을 잡고 식은땀을 흘리는 진스케에게 부하들은 침을 뱉으며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댁이 누워있는 동안 우리는 신나게 고문을 당했지. 내 코가 사라진 것 보이시오? 무릎의 연골도 뽑아버리더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몸으로 알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적어도 우리는 시작하면서 고문 한 번 당하고 말았지. 댁은 아는 것이 많으니 할 말도 받을 고문도 많겠지.”
밖으로 나간 진스케의 앞에는 환자용으로 만든 죽과 탕약이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을 쉽게 죽지 않도록 몸을 회복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였다. 하지만 배는 주렸기에 죽을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환관 가운데 한 명이 한숨을 쉬었다. 의술에 소질이 있었는지 진스케의 사지를 훑어보더니만 몸을 움직이지 않아 가늘어진 팔다리를 보면서 한숨을 쉬다 금의위 병사와 대화를 하였다.
- 한 달 가까이 혼수상태에 있어서 쇠약한 자이네. 몸을 좀 더 회복해야 고신을 할 수 있을 것인데 황상께 데려가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르겠군.
- 황상께서 진노하시다 못해 저희를 책망할 지경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일단 데려가고 봅시다.
- 어차피 죽을 놈이지만 황상께서 국문(鞫問)하실 적에 까무러치기라도 하면 아니 되네. 잠시 통변(通辯)을 해주게나.
환관은 죽을 다 먹고 탕약까지 들이켠 진스케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조언을 해줬다. 이 지겨운 일이 끝날 때가 되었으니 기분이 풀린 덕분이었다.
“네놈들 중에 서른이 황궁으로 압송되어 고신을 받고 자백하였다. 이제 장수인 너 하나에 대한 고신이 남았으니 조언을 해주마. 진실이라 하여도 황상께서 싫어하는 말을 하지 말거라.”
- 황상께서 죄인을 들라 하십니다!
다시 진스케의 양 팔을 사로잡은 금의위 병사들은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철문이 열리더니 피비린내와 지독한 누린내가 풍겨왔다. 고문실 안에는 영덕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영덕제는 분노를 억누른 얼굴로 진스케를 노려보았다. 살기가 넘치는 눈빛에 진스케는 고개를 조아렸지만 튼튼한 철제 의자에 사지가 결박되었다. 이윽고 영덕제가 심호흡을 하고 국문을 시작했다. 형식도 절차도 없는 국문이었다.
“네놈은 어디의 누구이며 무엇을 하다 조선으로 침략하였느냐.”
하지만 답이 없었다. 방 안을 돌아본 진스케의 눈에는 사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고깃덩어리들. 예를 들면 사지의 일부나 코와 귀가 들통에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역관이 천천히 다시 말했지만 진스케의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쳐라.”
“끄아아아악!”
이미 대기하고 있던 고문기술자가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둘러 진스케의 등을 두드렸다. 살점이 뜯겨져 나오는 끔찍한 격통과 채찍을 말아 쥐는 소리를 들은 진스케는 영덕제의 질문을 떠올리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시······. 시마즈 타츠히사님의 가신인 진스케 이, 입니다! 성은 없으며 이번 조선에 대한 징벌을 성공하면 성을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성을 받을 예정 따위는 중요치 않다. 다시 쳐라!”
다시 채찍이 바람을 가르고 진스케의 등에서 살점을 뜯어냈다. 이미 오줌을 지린 진스케는 영덕제의 핏발 선 눈을 보면서 삶의 희망을 버리기 시작했다. 영덕제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네 놈은 짐이 얼마나 진노하였는지 알기나 하느냐? 짐은 왜국의 수뇌 족리의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였다. 그렇게 왜국을 다스리며 번국의 의무를 다 하리라 여겼는데. 어찌하여 네놈은 짐의 은혜를 저버리고 조선에 약탈을 벌이느냐!”
물론 진스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고 사람을 죽여 무훈을 쌓으면 되는 단순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영덕제의 분노는 식지 않았다.
“짐은 이미 구주의 호족들에게 감합(勘合)증서를 발부하여 미곡을 베풀지 않았느냐. 너희는 배가 불러도 남을 해하려 하는 짐승만도 못한 족속들이더냐! 산군도 늑대도 배가 부르면 함부로 사람을 해하는 일이 없다!”
“명나라의 황제 폐하께 말씀드립니다. 조선은 저희와 부당한 협약을 맺고 흉물이나 다름없는 인삼 씨앗을 보내 값진 기술자들을 가져갔습니다. 인삼을 기른 덕분에 흉년이 계속되었으니 이는 조선의 잘못이 아닙니까.”
진스케는 정말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시마즈의 영지인 사쓰마와 오스미(가고시마 일대) 그리고 휴가(미야자키현) 일대는 작황이 급감하여 자신의 녹봉조차 지급하기 힘든 세월을 가까스로 견뎌냈다.
물론 모든 일은 일본의, 특히 큐슈 영주들의 잘못이었다.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기에 가장 발전하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인삼을 심은 부작용이었으니. 그렇게 항변한 진스케를 노려본 영덕제는 인두를 들고 허벅지를 지져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처음에는 혀를 지지려 하였지만 아직 들을 말이 많기에 허벅지를 지졌다. 지금 무어라 하였느냐. 인삼 씨앗이 흉물이라 하였더냐? 조선의 계략이라 하였느냐! 이미 수와 당 시절부터 인삼을 기르는데 중원에 기근이 있었단 말이냐!”
중국은 적어도 송나라, 혹은 당나라 무렵부터 장뇌삼과 유사한 방식으로 인삼을 재배하였으나 품질이 좋지 못하여 상품 가치가 없었다. 훗날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인삼 재배법이 있으니 역사가 깊은 것이다.
진스케의 변명을 듣고 영덕제의 화가 솟구쳤다. 조선이 선의를 가지고 인삼 씨앗을 보냈는데 그런 일을 악의적으로 해석하여 침략하려 한다 여긴 것이다. 하지만 진스케는 악을 쓰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의 주군께서는! 그러한 일을 옳다 여기셨습니다!”
“네 녀석은 네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나에게 거짓을 논하였다. 이 자에게 전도주뢰(剪刀周牢 - 주리)를 행하라!”
굵은 육각봉이 진스케의 묶인 종아리 사이로 들어가더니 양 쪽으로 벌어지며 정강이를 뒤틀었다. 삽시간에 정강이뼈가 휘어지며 진스케는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게거품을 물었다. 그의 얼굴에 물이 끼얹어지고 다시 육각봉이 벌어졌다.
주리틀기는 조선시대에도 불법으로 지정된 잔인한 고문이었다. 기껏 해야 이시다키(石抱き - 일본식 압슬형)를 생각했던 진스케는 정강이가 휘어지고 핏줄기가 솟구칠 때마다 고통으로 기절하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이어진 고문을 이겨내지 못한 정강이뼈가 부스러지며 정강이의 살점이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잠시 뒤 영덕제는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를 들어 올리며 정신을 차린 진스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네가 조선으로 어떻게 침략하였는지 그리고 조선에서 어떻게 잡혔는지 모든 일을 상세히 고변하라. 거짓이 있거나 짐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다른 형벌을 시행할 것이다.”
진스케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증언을 시작했다. 영덕제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채찍과 인두가 몸을 가로질렀고. 증언을 마치니 그의 얼굴에 성한 것이라고는 눈과 입 밖에 없었지만 영덕제가 만족할 대답을 얻어냈다.
밖으로 나온 영덕제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신료들과 증언을 대조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서 들어온 증언과 합치니 큐슈의 영주 여럿이 규합하여 대규모의 원정대를 창설하였으며 자신의 뜻을 완벽하게 거슬렀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영덕제를 보좌하는 대학사 팽시(彭時)는 증언을 적은 서류를 돌아보며 영덕제에게 엎드려 절을 올렸다. 자신의 간언과 달리 황상의 뜻이 들어맞은 것이다.
“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신의 염려가 황상의 눈을 어지럽혀 왜구의 부덕함을 가렸나이다.”
“세상을 사는 이라면 누구라도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지. 오히려 실책이 아니라 충실한 간언이 아니겠느냐. 태학사가 짐에게 간언하지 않았다면 명분도 없이 전쟁을 벌였을 것이다.”
“신의 허물을 덮어 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팽시의 간언을 듣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무턱대고 일본에 함대를 보냈다면 명분도 없는 원정을 벌이며 국가 재정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겠지만 지금은 명분도 있고 자신을 대신해 귀찮은 일을 처리해줄 조선도 있었다.
영덕제는 지금까지 이어진 증언을 바탕으로 조선의 전력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수는 적어도 용맹한 병사들이 넘쳐나는 고장이며 철저히 자신의 명령을 따르니 징벌을 행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궁금증이 생겨난 영덕제는 몸을 돌려 고문실로 향했다.
“황상께서는 이미 모든 증좌(證左)를 모으지 않으셨사옵니까.”
“증좌가 아니라 사소하게 궁금한 일이 있다. 녀석들이 어떻게 사로잡혔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헐떡거리며 질긴 목숨을 이어가던 진스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영덕제를 보며 죽여 달라 청하려 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 진스케를 보며 영덕제는 아주 사소하며 보잘 것 없는 질문을 했다.
“네 녀석이 어찌하다 그렇게 심각한 부상을 입고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궁금하구나. 진실을 이야기하면 네 녀석의 질긴 목숨에 자비를 베풀도록 사약을 내릴 것이다.”
“아뢰···옵니다······ 저는 여인에게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장수의 손에 사로잡혀 등뼈가 박살났···습니다.”
“그렇단 말이더냐. 조선의 여인이 너를 힘으로 억누르고 마구 두들기기라도 하였느냐? 참으로 좋은 답이로구나.”
진스케를 잡은 사람의 공을 치하하려 하였지만 여인이라는 거짓말(영덕제가 듣기에는)을 듣고 영덕제의 심기가 뒤틀렸다. 왜구에게 약탈당한 남경 일대의 백성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밖으로 나간 영덕제에게 조길상이 인사를 올리며 물어보았다.
“이미 증좌는 모았으니 저들의 처분을 결정해야 하옵니다. 황상께서는 어떠한 처분을 내릴 것입니까.”
“왜장은 능지처사(凌遲處死 - 살을 발라내 죽임)에 처하고. 왜구들은 요참(腰斬)에 처하라.”
모든 일은 정해졌다. 호소카와에 대한 징벌은 내리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한 큐슈의 영주들에 대한 토벌 칙서가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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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년 10월, 경복궁에서는 이번 전투에 대한 논공행상이 시작되었다. 홍위에게 군권은 없지만 공을 치하할 수 있었다. 이윽고 이번 전투에 공을 세운 이들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진주 목사 권양(權良)은 평소 행실이 올바르며 항상 근면하였기에 왜구의 침략을 적시에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하니 권양에게 은자 이백 냥을 하사하겠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다음으로 육상과 해상에서 왜구를 격멸한 두 장수의 차례이다.”
논공행상은 그렇다 쳐도 사로잡힌 왜구들의 증언을 들으니 소름이 돋았다. 놈들이 사천을 기습한 일은 정말 천운이나 다름이 없었다. 본래 목표인 고성까지 도감군이 이동하려면 전력을 다해 이동해도 두 시진 이상 걸린다.
산악행군은 당연하고 평지에서는 급속행군을 해서 두 시진이다. 잡색군을 몰살시키고 사기가 치솟은 왜구와 싸움을 벌이면 불리하겠지.
놈들은 멍청하게도 서쪽으로 빠져 사천으로 향했다. 상륙 병력은 바로 도착한 도감군에게 철저히 박살나고 왜선은 이순신의 사천포 해전처럼 철저히 박살났다. 두 장수의 품계가 오르고 내 제자의 논공행상이 시작되었다.
“신은 왜구들을 근육하였을 뿐이옵니다.”
“너무 겸손해 하지 마시오. 그리고 근육하였다는 말은 무엇이오? 교육하였다는 말이 아니오?”
“힘으로 철저히 다스리는 일을 근육하였다고 표현하였사옵니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진주향교의 사건이다. 마지막 발악으로 귀족을 잡아 협상을 벌이려는 왜구들이 식칼과 몽둥이를 들고 진주향교로 쳐들어갔다가. 제자인 윤치상의 말 대로 ‘근육’ 당했다.
망설임 없이 내수린 기술을 퍼부어댔으니 세 명은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 나머지 일곱도 몸과 정신 가운데 하나는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덕분에 내수린과 입신체비를 경험한 왜구는 북경으로 압송되지 않았다! 이제 대전 안에 의외의 인물이 들어왔다.
“진주 입신체비장의 체장인 하포와 그의 부인 정씨는 앞으로 나오시오.”
내가 조금 가르쳤지만 대부분 하위지가 가르쳤던 하포가 왜장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일은 하포의 아내인 정씨 부인이 왜장을 사로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었다.
“진주에서 들려온 소식을 듣고 가슴이 뛰며 몸이 요동쳐서 견딜 수가 없었소. 가장 중요한 왜장을 사로잡은 공을 세웠으며. 이를 명국으로 압송할 수 있었으니 가장 큰 공을 세웠소.”
“신은 그저 부모께서 물려주신 몸을 가꾸다 이득을 보았을 뿐입니다.”
“만약 왜장에게 몸이 상하였다면 그것 또한 불효요.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진주 일대에 입신체비를 퍼트리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입신체비기구를 하사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관직을 줘도 입신체비사에게 거추장스러운 직책이니 다른 혜택이 주어졌다. 다음으로 홍위의 앞으로 정씨 부인이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조선 역사 최초로 여인이 논공행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자택으로 숨어든 왜장을 두들겨서 제압하였다 하였는데. 참으로 비범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소인은 그저 살려 하는 몸부림을 치다 이뤄낸 일이옵니다.”
“그렇다 하여도 공은 공이오. 입신체비를 행하여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는 일이 좋은 것이 아니겠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하여 보시오.”
이미 하포에게 막대한 재산, 값비싼 입신체비기구를 하사할 예정이었으니 재산을 바라지는 않겠지. 하지만 정씨 부인에게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주상전하께 너무나 크나큰 청을 올리옵니다. 삼강행실(三綱行實)에 일화를 담아두시면 훗날이 되어 입신체비를 행하는 여인이 늘어날 것이옵니다.”
삼강행실도는 내가 빙의하기 전에 세종대왕님이 만든 서적이다. 충신, 효자, 열녀를 본받아 따르자는 내용이지만 거기에 자기를 넣어달라고? 하지만 홍위는 웃으면서 말했다.
“옳소. 참으로 옳은 말이오. 다음 삼강행실도의 증보(增補)판에는 작금의 일화를 기록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아마 백 년 정도 지나면 별의별 내용이 다 들어갈지도 모른다. 입신체비를 했던 부인이 굴러 들어온 바위를 막아내 자식을 구한 내용이나. 도적을 업어 메쳐 시부모를 구해낸 내용이 생길지도 모르지.
논공행상이 끝났으니 다시 회의를 시작할 차례이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궁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논의가 시작되었다. 영덕제가 분노를 아끼지 않은 칙서를 보신 세종대왕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훌륭한 일입니다. 명국에서 토벌령을 내렸는데 구주 전체를 토벌하라 하였습니다.”
“사로잡힌 왜장 심조(甚助 - 진스케)가 구주의 영주가운데 넷이 이번 왜변에 참가하였다 실토한 덕분에 진노가 하늘을 찔렀다 합니다.”
영덕제의 칙서를 내려 무제한적인 큐슈 토벌을 명했다. 정확히는 큐슈 일대의 영주 모두가 한 통속이나 다름이 없으니 모조리 격멸하라는 말이었다. 형님도 의견을 내놓았다.
“왜인들이 나약하여 세 배나 되는 병졸로도 도감군을 견뎌내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리고 있으니 염려할 일이 없습니다.”
“금상은 얼마 전에 몸이 달아오른 대내씨(오우치)가 서한을 보내 아국에 원병을 청한 일을 기억하십니까. 왜인들도 아국의 힘을 알았으니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홍위와 형님이 말을 주고받으며 분위기가 좋아지는데 조금 따지고 들어가야겠다. 누구라도 자기 고향에서는 삼 할은 먹고 들어간다. 특히 전쟁에서 지리적 이점을 챙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감군이 강해도 사방에서 파상공세를 당하면 난전 중에 손실이 커진다. 결국 손실이 누적되 복구하기 힘든 피해를 입고 전선이 축소될 수도 있다. 그러니 위험 부담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 답이다. 홍위에게는 미안하지만 여기서 제동을 걸기 위해 말했다.
“태조대왕께서 나라를 세우실 적에도 왜구와 싸워 격전을 벌였사옵니다. 작금의 왜인들은 나약하지만 나약한 이들을 헛되이 상대하면 숨은 비책에 손해를 입을 지도 모릅니다.”
태조 이성계를 논하자 모두가 긴장한 눈으로 보았다. 쉽다고 여겨도 전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분위기를 돌리고 다음 소재를 찾아냈다. 조선에 복속하기를 원한 대마도주에게 일감을 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대마도가 전쟁 징후를 탐망하겠다는 서한을 보낸 일을 기억합니다. 대마도주 종정국(소 사다쿠니)의 충심을 확인하여야 하니 이들을 앞세워 구주 일대를 탐망하게 명을 내리시옵소서.”
“명국에서 은자와 미곡을 전하는 일을 내년까지 계속 할 예정이니 본격적으로 토벌에 나설 내년 삼월 까지 시일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위태롭지 않습니다.”
세종대왕님도 내 의견에 동의하는 말씀을 하셨고 흥분을 가라앉힌 홍위와 형님도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 방심하다 큰 패배라도 당하면 조선군의 물자와 병장기가 모조리 호소카와의 차지가 될 것이다. 도감군을 복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다시 국서가 전달되고 인내의 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