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93화 (193/573)

< 3장 7화 - 색다르게 맞아보자 >

갑판 아래로 도망간 왜구라 해도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도끼질이 세키부네의 갑판을 박살내자 겁에 질린 이들은 칼을 휘두르며 임해도감의 진입을 막으려 애썼다.

“그러면 비격뢰 한 방.”

화승에 대고 불을 붙인 비격뢰가 갑판 아래로 떨어졌다. 폭발음과 비명이 들리고 갑판 아래에서 움직이는 이가 없었지만 큰 충격으로 선체 하부가 손상되었기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런 젠장할! 뭐 이리 배가 약해! 빨리 들어가서 모가지나 따고 나오자.”

“어르신이 한탄하시겠군. 들어갔다 나오면 모두 죽어버리니.”

임해도감의 제압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백병전을 벌여도 이기고 배 안에서 농성을 벌이면 비격뢰를 던져서 제압하고 도끼로 마무리한다. 한편 풍역선의 갑판 위에서도 신병기의 화력 시험이 이어졌다.

“작렬신기전 쏴라!”

“으아아아악 엄청 뜨겁습니다!”

“뒤에 부는 불길을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나!”

세키부네를 향해 해상용으로 더욱 크고 강하게 개조한 작렬신기전을 쏘았지만 뒷꽁무니로 불길이 솟구치는 부작용이 있었다. 남이는 밧줄에 옮아 붙은 불을 끄라 지시하면서 혀를 차며 말했다.

“이거 왜구로 인한 손실보다 직렬신기전의 불길로 배가 더 많이 상하겠는걸. 비격진천뢰는 어떠한가?”

“낙하뢰(落下雷) 말씀이십니까? 화력 시험은커녕 배 밑바닥을 뚫고 구멍을 만드는데요.”

“상왕전하께서 너무 무거운 녀석을 창안하셨군.”

화력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비격진천뢰의 개수판인 낙하뢰는 갑판을 꿰뚫고 배의 하부에서 폭발하도록 만든 녀석이었는데 왜선을 말 그대로 관통해 버린 것이다.

일방적인 싸움이 이어졌고 정신을 차리고 도주한 왜선은 열세 척에 불과하였다. 그렇게 사천 일대는 평온을 되찾았으나 북쪽에 위치한 진주는 그러지 않았다.

열흘 동안 중간에 낙오한 자들이 사로잡혔지만 아직 스물 가량이 남았다. 시일이 많이 지났으니 수색의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임해도감은 지리산까지 이동하여 왜구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왜구들은 진주 인근의 월아산에 있었다.

그들은 월아산의 사찰인 청곡사(靑谷寺) 인근에 있던 사냥꾼을 죽이고 은거하려 하였다. 하지만 식량이 부족하니 청곡사의 공양미도 훔치게 되었고. 도둑이 나타났다는 제보를 들은 청곡사에는 관원이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조선군이 사찰에 다녀간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이러다가 들통 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계책이 있다. 이 집에 있던 자가 실토하길 이 고장의 이름이 존주가 아니겠느냐. 그리고 내가 알기로 조선 국왕의 성은 존주 이씨이다.”

진스케는 사냥꾼을 곱게 죽이지 않았다. 가능하면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고 고문을 하다 죽였으며.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과 발짓으로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냈다. 그렇게 얻어낸 어설픈 정보가 제대로 전달될 이유가 없었다.

“존주라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본관이니 조선 왕의 친척들이 모여 사는 고장이 아닙니까!”

“바로 그것이다. 국왕의 혈족이 난 고장이라 하면 덴노와 같이 분가하여 미야케(宮家 - 분가)를 만들 수도 있고. 혹여나 쿠교(公卿 - 공경, 율령국의 창설에 기여한 가문)와 같이 가문을 만들고 있겠지.”

“그렇다면 당장 도망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실의 고향이라면 조선에서 군대를 파병해 이를 잡듯 뒤질 것이 분명합니다.”

부하들의 상식적인 반응과 달리 진스케의 어설픈 지식은 참담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진주는 어느 순간 전주로 변하였으며, 한양에 머무는 전주(全州) 이씨 종친들은 진주 일대의 토착 호족인 진주(晋州) 이씨로 돌변하였다.

호들갑을 떠는 부하들을 보면서 진스케는 한숨을 쉬었다. 비록 글은 모르는 이지만 자신의 완벽한 계략을 무식한 부하들이 알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는 한때 사냥꾼이 입었던 옷을 걸쳐 입으며 말했다.

“쿠교라고 말하였는데도 알아 듣지 못하는구나. 쿠교가 어떤 인물들이냐.”

“혈통만 좋은 놈들이지요. 혈통과 글을 읽을 줄 아는 것 하나로 먹고 사는 놈들입니다.(당시 일본에서 한자를 읽으면 좋은 대접을 받았다)”

“그렇지. 실권도 없고 권력도 없으며 가문의 명예에 기대어 사는 밥버러지들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가문 하나는 빼어난 이들이지. 이들을 포로로 잡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중앙집권을 택한 조선과 달리 일본은 봉건제도를 택하였다. 만약 공경 가문에 속한 주요 인물이 포로로 잡힌다면 인척이나 친척이 막대한 보상을 해서 목숨을 부지하려 한다. 신분으로 먹고 사는 집단이니 친인척을 소중히 여기니까.

당연히 혈연을 맺은 가문에서는 공경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일을 무마하려고 나설 것이다. 하지만 조선에서 이런 몸값을 내며 구하려 하는 종친은 머나먼 한양에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은 이들에게 없었다.

“막대한 몸값을 받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쿠교를 잡아서 조선과 협상을 하면 돌아갈 길이 열리지 않겠느냐. 공은 없더라도 살아 돌아가는 일이 먼저가 아니겠느냐?”

“생전 처음 와보는 고장에서 쿠교의 집을 어떻게 찾아냅니까. 혹여나 길거리에서 미도리오니를 만나면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하니 패를 둘로 나누자꾸나. 나는 시바(斯波 - 무로마치 막부의 공경 가문) 가문의 저택에 다녀온 적이 있으며. 공경들은 산 근처에 터를 잡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니 먼 곳에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무모한 계획이었지만 딱히 다른 계획을 세울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왜구들은 두 패로 나뉘어 자신들이 보기에 가장 커다란 저택을 습격하여 쿠교를 사로잡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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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향교의 명륜당(明倫堂) 앞마당에서는 입신체비가 한창이었다. 얼마 전에 사천현에 출몰한 왜구가 소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각지에서 잡색군을 통솔하던 유생들이 향교로 돌아온 것이다.

다들 입신체비에 여념이 없는데 가장 덩치가 큰 자가 대역기를 짊어지고 천천히 공좌(스쿼트)를 하였다. 다른 이들은 완벽하게 펼쳐진 등판을 보면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삼대 운동이 도합 일천 근(약 640kg)에 달하지 않는가.”

“제가 부족하니 구백팔십 근이 전부입니다. 아직 배움의 길은 멀지 않습니까.”

사관으로 일하던 윤사철(尹士撤)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역기를 내려놓았다. 마음먹고 삼대 운동을 하면 천오십 근을 할 수 있지만 유생이라면 언제나 겸손한 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주상전하께서 은혜를 내린 덕분에 조상님이 계신 선산을 정리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이라네. 태상왕께서 계실 적부터 군문에 힘을 써서 왜구들의 준동을 격퇴하지 않았나.”

“그러하니 주상전하의 은혜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공좌를 조금 더 행해야겠습니다.”

그는 홍위가 내린 고가(告暇 - 조선시대의 휴가)를 받고 본관인 진주로 내려왔다. 대부분의 향교에는 대역기와 소역기가 있으니 입신체비를 즐기는 그는 언제나 향교에 머무르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다른 이들과 경쟁하기를 즐겨했다.

등에 얹어진 200근(약 128kg)의 대역기는 사람 두 명의 무게였지만 윤사철은 평소에도 이런 무게를 다루는 이였다. 다시 완벽이나 다름없는 공좌를 보며 유생 모두가 감탄을 마지않았다.

“네놈은 누구냐!”

- 히익!

제례가 끝난 대성전 방향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화들짝 놀란 윤사철의 등에 얹어져 있던 대역기가 바닥에 있던 판석(板石)에 떨어졌고. 주철로 만들어진 공령(플레이트)이 굉음을 내면서 박살났다.

“네놈들은 왜인이 아니더냐! 상투를 틀지 아니하고 머리를 뒤로 묶은 몰골을 보니 왜인이 분명하구나! 감히 향교에 발을 들이다니!”

“왜구? 몰골을 보아하니 동래에서 보는 왜인과 흡사하군. 그런데 왜도(倭刀)조차 없는 놈들이 왜구라고?”

왜구 가운데 날붙이라도 가진 이는 세 명에 불과하였다. 나머지는 몽둥이를 들었으며 길거리에서 주운 돌을 무기랍시고 들고 있었다. 이들이 향교를 습격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제사에 쓰인 향냄새를 보고 즐기기 위해 향을 태운 줄 알았으며. 마당이 정갈하고 건물이 단아한 색상으로 칠해져 있으니 귀한 집이라 여겼고. 화초와 나무가 정원을 이루고 있으니 훌륭한 가문이라 여겼다.

하지만 진주향교는 애초에 귀족의 집이 아니었으며. 여기에 머무는 이들은 울진에서 생산되는 값싼 철 덕분에 모두 입신체비를 즐겼다. 윤사철은 자신의 입신체비를 방해한 왜구들을 보며 분노를 마음껏 발산하였다.

“왜인은 통제해야 한다, 통제는 근육이다, 나는 근육을 통제했다, 그리니 왜인도 근육하면 충분하다! 네놈들에게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

배재당에서 즐겁게 수학(受學)하였던 벗, 최생원의 전시 답안을 읊은 윤사철은 대역기봉을 집어들고 천천히 휘두르며 걸어갔다. 땀에 젖은 입신체비복 위로 비대한 대흉근과 여섯 갈래로 갈라진 복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곱 자(약 240cm)의 쇠몽둥이(대역기봉)를 붕붕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왜구들이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잠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다른 유생들도 입신체비복 아래의 근육을 실룩거리며 아무 것이나 집어 들고 천천히 접근했다.

- 으랴아아아아아아악!

“이 애처로운 놈이! 어디서 고함을 치느냐!”

왜구가 사냥꾼이 쓰던 식도(食刀)를 휘두르며 달려들려 하자 윤사철이 대역기봉을 바닥에 찍었다. 쩡! 하는 소리가 나면서 다시 바닥의 판석이 갈라졌다. 사십 근(25.6kg)의 대역기봉을 보던 왜구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다 쏜살같이 달려갔다.

- 달아나라! 우리가 미도리오니들을 키우는 곳에 잘못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성현들이 머무는 향교에서 다시금 고함을 치며 뛰어다니다니! 네 놈들을 근육 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내수린에 고팠는데 잘 되었습니다!”

“잡아! 잡아서 메친 다음 전신투(全身投 - 바디프레스)로 찍어 누르면 충분하다!”

사방으로 달아난 왜구였지만 향교의 담장은 높았으며. 그들이 침입한 향교 후원은 언덕이었기에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진주향교의 입신체비 방침은 하체였기에 순식간에 사로잡혔다.

- 근육괴물이다! 부처님 살려주십시오!

“네노오오오옴! 다시 고함을 치니 입을 박살내야겠구나!”

- 잠깐! 잠깐 으아아아아아악!

“이런 불순한 녀석은 면직락(파워밤)으로 다스려야지!”

고함과 비명을 듣고 관원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왜구들은 대부분 사지가 꺾이고 몸이 박살나 불구의 신세가 되었으니. 하지만 왜구가 진주향교 하나만 습격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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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북쪽의 비봉산 인근에 입신체비사로 손꼽히는 하위지의 조카인 하포(河浦)집이 있었다. 범죄를 저지른 형인 하강지는 몰라도 동생인 하기지(河紀地)와 우애가 남달랐었다.

하기지는 22년 전인 1447년 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이후 조카를 거둬들여 입신체비사로 키운 하위지는 빼어난 실력을 가진 조카를 본관인 진주로 내려 보내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네 배움이 충분하니 본관으로 내려가 입신체비장을 만들어 널리 퍼트려라.’

그렇게 진주에 사설 입신체비장이 설립되었다. 정확히는 내년에 설립될 예정이기에 입신체비사는 체장(관장)인 하포 한 명밖에 없었고 넓은 터와 하포의 자택만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칠십 칸(間)에 달하는 거대한 저택이었다.

“도성의 입신체비장이면 몰라도 도성에서 벗어난 진주이니 입신체비사들이 머물 곳도 있어야지. 고사 입신체비장에 다녀와 마 체장님에게 사람을 보내 달라 청하여 볼까.”

“이미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몸이 상하실까 염려되니 들어가 쉬시지요.”

“염려하지 마시오. 마무리 운동만 하고 들어가겠소.”

하포의 아내 또한 입신체비에 남달랐다. 삼한국대부인의 직계 제자이자 군부인 한씨의 벗이지만 이런 머나먼 고장까지 내려와도 불평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소역기를 들고 이리 저리 돌리는 하포의 귀에 고함이 들려왔다.

“왜구입니다! 주인나으리! 왜구가 쳐들어옵니다!”

“무슨 소란이더냐! 왜구를 격멸하고 열흘이 지났는데 난데없는 왜구라 하였느냐!”

“이미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왜구가 열 놈이 넘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한 녀석은 무예가 남다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오랜 세월 가족을 모시던 늙은 노비가 얼굴에 큰 자상(刺傷)을 입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대문 밖에서비명이 들려오고 문을 박차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사람이 들어왔다. 진스케가 당당히 칼을 휘두르며 피를 떨궈내고 말했다.

- 숲에서 보니 저택이 크고 남다르던데. 여기가 쿠교의 저택이 맞겠구나!

“금수만도 못한 왜구 놈이! 네 녀석은 공경이라는 말도 모르더냐! 싸우지도 못하는 노인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빼어난 칼솜씨로 노비 여럿을 베고 달려든 진스케지만 놀라서 몸을 뒤로 젖혔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거대한 체격, 꿈틀거리는 거대한 근육,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진스케도 침을 삼키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무리 칼을 들고 있어도 쉽사리 달려들 상대가 아니었으니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 정적을 진스케의 부하들이 깨트렸다.

- 진스케님! 저 놈이 쿠교입니까?

- 덩치는 크지만 여럿이 달려들어 두들겨 패면 될 겁니다!

천천히 다가오는 왜구들을 보며 하포는 침을 삼켰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몰라도 자신을 죽이고 아내를 겁탈하며 약탈을 일삼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무기를 다룰 줄도 몰랐고 무기라 해도 여덟 근(5.1kg)의 소역기 두 개가 전부였다.

“으랴아아앗!”

방법이 없었다. 자신의 완력을 믿는다 해도 칼을 맞으면 죽는 일은 매한가지였으니 공령을 던지고 틈을 타서 밀친 다음 때려눕혀야 했다. 전력을 다해 던진 여덟 근의 소역기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 멍청하기는! 그런 제기 따위로!

진스케는 몸 하나는 좋은 귀족의 발악이라 여기고 코웃음을 쳤다. 처음 본 순간에는 손에 쇳덩어리를 들고 있다 생각한 적도 있지만 분명 공경들이 사용하는 제례 도구이니 나무로 되어 있으리라.

던지는 동작과 속도로 보아도 쇳덩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입신체비사의 강한 완력은 주철로 만들어진 대역기를 나무토막처럼 던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진스케의 마지막 칼은 처참히 박살나고 얼굴에 대역기가 틀어박혔다.

진스케는 코와 입에서 분수같이 피를 쏟으며 바닥에 자빠졌다. 고작 쇠뭉치를 던져 강한 일본도(어디까지나 일본인 기준으로)를 박살내고 힘이 남아 코뼈를 부러트렸다. 상식을 뛰어넘는 현실을 목격한 부하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 저 몸을 보라고! 저런 몸을 가진 자가 쿠교겠는가! 분명 장군의 집을 택한 것이야!

- 칼이 부러졌으니 몽둥이를! 으악 내 다리!

왜구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하포는 다시 소역기를 집어던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소역기는 왜구 한 명의 정강이를 박살내 버렸고. 왜구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을 듣고 도주를 택했다.

“왜구들이 도망간다! 어서 쫒아라!”

“나리! 먼저 나서시면 아니 됩니다!”

“놈들이 나에게 겁을 먹었으니 계속 달려들어서 시내로 접어들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다녀오는 김에 의원을 부를 것이니 조금 참으시오!”

싸움을 모르는 하포지만 기세와 체격은 남달랐다. 겁에 질린 왜구들이 하포의 추격을 피해 진주 시내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얼굴에 칼을 맞은 늙은 노비가 비축해 두었던 오적골(烏賊骨 - 갑오징어 뼛가루. 지혈제로 쓰인다)을 바르고 광에서 나오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 흉악한 놈이 어디로 사라졌지?”

자신의 얼굴을 베고 발로 걷어찬 놈이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숨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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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신명이시어 정말 감사하나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나이다.”

한포의 아내 청산 정씨부인은 남편의 고함을 들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구가 침입했다 하니 자식들을 어떻게든 피난시키고 홍두깨로 왜구를 상대하며 시간을 끌려 했지만 다행이도 왜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던 정씨부인은 여종을 부르려 했지만 집안에 있는 여종들이 자식을 데리고 피신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식은땀을 닦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답답한 속을 물이라도 마셔서 풀어야 했다.

“에구머니나!”

- 네년! 네년이 장수의 아내이니 인질로 쓸 만 하겠구나!

진스케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집안으로 숨어들어 장수의 가족을 인질로 잡으려는 시도였고 단번에 성공했다. 그렇게 정씨부인의 멱살을 잡은 진스케의 팔 안쪽에 정씨부인의 팔이 휘감겼다.

양녕대군의 코뼈를 부순 호신술이 정씨부인의 몸으로 펼쳐졌고 진스케의 얼굴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정씨부인의 온 힘을 다한 박치기가 코에 꽂혔다. 다시 분수같이 피를 쏟은 진스케는 손에 힘이 풀리며 뒤로 물러났다.

-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잡놈의 왜구새끼! 그냥 뒤져라! 뭘 먹었기에 힘이 이렇게 없어!”

고통을 억누른 진스케가 다시 달려들어 정씨부인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진스케의 팔이 천천히 밀려났고 정씨부인의 힘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 뭐야! 아녀자가 어떻게 나를 힘으로 이겨!

“내 입신체비는 삼대 사백오십(약 288kg)이야! 어지간한 남정네보다 강하다고!”

신장이 비슷해도 남녀 간의 근력차를 벗어날 수 없었지만 정씨 부인의 입신체비는 남다른 수준이니 완력에 한해서는 진스케보다 강했다. 결국 진스케의 두 번이나 박살난 코뼈에 정씨부인의 이마가 들이닥쳤다.

- 끄아아아악!

“너 같은 왜구새끼는 사지를 두들겨 패야해! 자근자근 두들겨 패서 더덕마냥 짓이겨놔야지 정신을 차리지! 홍두깨! 그래 여기 있구나!”

양 손으로 홍두깨를 하나씩 잡은 정씨부인은 분노와 흥분으로 핏발 선 눈을 돌리며 온 힘을 다해 홍두깨를 내리찍었다. 진스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홍두깨 찜질을 당하다 옷을 정씨 부인에게 집어던지고 훈도시 하나만 입은 채 뛰어나갔다.

“왜구가 도망간다! 왜구가 대문으로 도망가니 어서 잡아라!”

온 몸에 피멍이 들고 코피를 흘리는 진스케는 어떻게든 도망가려 애썼다. 그렇게 대문을 박찼지만 당겨서 여는 문이기에 움직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대문이 열리더니 우악스러운 손길이 진스케의 목을 감쌌다.

“네 이놈! 이런 비겁한 짓을 하다니!”

의원과 함께 돌아온 한포가 진스케의 목을 잡고 들어 올린 다음 질식투(초크슬램)를 날렸다. 코뼈는 완전히 뭉개지고 전신에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은 진스케의 의식은 다시 끊어졌다.

진스케의 몸은 어떻게든 질긴 목숨을 이어가려 하였고. 조선의 관리들도 장수의 증언이 필요하기에 사력을 다해 목숨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의식을 잃은 진스케가 정신을 차린 곳은 알지 못하는 장소였다.

“여기는······. 어딘가?”

“듣자하니 명국의 북경에 있는 동창(東廠)인가 뭔가 하는 곳이라더군요. 차라리 항복했으면 모를까 개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끌려왔습니다. 너 때문이다 이 똥 같은 놈아!”

평소에는 깍듯이 존대하던 부하가 욕설을 퍼붓고 나무 창살을 넘어 진스케를 향해 침을 뱉었다. 이윽고 금의위의 병사가 들어오더니 부하를 마구 구타하다 정신을 차린 진스케를 돌아보았다.

“네놈이 왜장이 맞느냐? 황상께서 네놈에게 물어 볼 것이 있다 하신다.”

서투른 일본어였지만 황상이라는 말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덴노도 아닌 명나라 황제가 자신을 보려 한다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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