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4화 - 분메이의 난(2) >
대전 안에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신숙주도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었으나 아직 국서의 내용은 모두 읽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황수신이 나서서 말을 침묵을 깨트렸다.
“예판에게 궁금한 것이 있네. 세천(호소카와)의 전횡을 질시하는 호족이 있을 것이 아닌가? 일개 호족이 권세를 누려 보았자 족리(아시카가)씨는 성조(成祖 - 영락제)시절에 국왕으로 책봉된 이의 후손이 아닌가.”
“우상 대감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경도(교토)일대에서 호족간의 충돌이 빈번하였고 세천씨는 세를 잃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오나 지난달에 사태가 급변하였습니다.”
“지난달에 사태가 급변하였다 했소? 그렇다면 세천씨가 계략을 벌여 위신을 세우고 왜국의 호족들을 통합한 것이 분명하군. 혹여나 왜황(倭皇)이라도 나선 것이오?”
홍위가 생각하는 것은 왜황 하나였다. 실권이 없고 명분만 있는 존재지만 그런 이가 나선다면 섭정의 당위성이 생기고 전쟁을 종식할 수 있으니. 하지만 신숙주는 자칭 황제가 아닌 진짜 황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달에 세천씨는 명국에 국서를 보냈던 일을 공표하였고. 족리의상(아시카가 요시히사)이 다시금 일본국왕으로 책봉 받았으며. 감합무역의 증표를 새로 갱신하였사옵니다.”
“그러한 일을 왜 지금에야 고변한단 말이더냐! 분명 세천씨의 몰락을 염두에 두며 세를 불리다가 화를 입은 것이로구나!”
“명국의 국서가 전달되자 호족들도 모두 몸을 사렸다 하옵니다. 세천씨가 국서에 거짓된 말을 적어 진실을 가렸으며. 수많은 공물을 헌납하였기에 명국의 황상께서도 책봉을 윤허하였사옵니다.”
설립 초기에는 남북조 시대로 인한 권위의 부족과 통치 능력의 부족을 느꼈던 것이 무로마치 막부였다. 이후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대에 남북조의 분열을 종식하고 명나라로부터 일본 국왕으로 책봉되면서 위세를 떨쳤다.
그랬으니 호소카와도 명나라에 기대어 위신을 세우고 권력을 장악하려 하였다. 정변을 일으켰지만 필요한 정변이었으며 다시 명나라의 충실한 번국이 되겠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홍위는 감합무역이라는 단어를 듣자 눈을 밝히면서 신숙주를 보았다.
“왜인들은 이미 남경 일대를 약탈하고 있었소. 그렇다면 감합무역을 증표를 갱신한 것이 핵심이겠군.”
“그렇사옵니다. 상왕께서 대내씨에 싼 값에 묵은 미곡을 보내 왜국의 기근을 억눌렀듯이. 감합무역의 핵심은 미곡의 수입량을 늘리는 것이었사옵니다. 덕분에 대내씨의 영향력이 급감하였사옵니다.”
“참으로 현묘한 이이며 가장 악독한 자이다. 이러한 이가 전횡을 일삼지 않는다면 왜는 평안한 나날을 이어 갔을 것이 아닌가.”
앞으로의 일은 불 보듯 뻔했다. 친조선 인사들을 축출하고 정계를 개편하면 오우치에 대한 집중 공격이 시작될 것이고. 큐슈 일대의 왜구들이 벌떼 같이 준동할 것이다.
지금까지 남경을 공격했던 왜구들은 자취를 감출 것이 분명했다. 감합무역으로 미곡을 수입하니 왜구가 칼을 버리고 합법적으로 곡식을 들여오면 충분한 일이었다. 다시 침묵이 이어지니 한확은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제가 갓 관직에 나아갔을 무렵에도 왜구들이 준동하였사옵니다. 당시에는 대마도의 왜구였지만 조만간 출몰한 왜구는 구주(큐슈) 일대에서 몰려올 것입니다.”
“경의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것이 있소. 태상왕께서는 이종무를 앞세워 왜를 정벌한 적이 있지 않는가. 내일 아침 일찍 태상왕께 나아가 여쭈어 볼 것이니 왜에 대하여 지식이 깊은 이들은 모두 모이라 전하게.”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그리고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두 숙부님 모두 왜에 다녀온 적이 있는 분들이니 모셔오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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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장들과 함께 그놈의 리벳과 볼트를 만들다가 석 달이 훌쩍 지나갔다. 갑자기 이궁으로 모이라는 어명이 내려오고 즉시 나가보니 병조 인사들은 물론이고 의정부 관원, 형님 그리고 안평대군까지 있었다.
“태상왕의 지혜가 필요하옵니다. 작금에 들어 왜국의 정국이 불안한데 이러한 일이 있었사옵니다.”
이어지는 홍위의 말을 들으니 호소카와의 얄미운 얼굴이 떠오르며 내가 역사를 많이 뒤틀어 버린 것이 실감된다. 원래 역사대로 흘러갔다면 일본은 지금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내전을 벌인다.
당연히 동군의 총대장은 내 행동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화병으로 죽은 야마나 소젠이며. 서군의 총대장은 지금 일본의 독재자나 다름이 없는 호소카와 카츠모토이다. 조선은 약간의 왜구 피해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권력에 맛을 들인 호소카와의 전횡, 인삼으로 인한 민심 이반과 이로 인한 준 기근상태, 호소카와에 의한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실각 그리고 두 번째의 일본 국왕 책봉까지. 홍위의 이야기가 끝나자 세종대왕님이 한숨을 깊게 쉬며 홍위를 바라보았다.
“금상(今上)께서는 정녕 왜국과의 전쟁을 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조만간 왜구가 준동할 것이 분명하니 태상왕께서 행하신 치적을 통하여 지혜를 구하는 것이옵니다.”
“당시에는 정국이 불안하며 대마도의 왜인들이 날뛰며 순리를 거스르고 있었습니다. 말을 하여도 듣지 않으며 헌릉에 계시는 분(태종)의 치세에만 60여회의 침략을 감내하셨습니다.”
세종대왕님은 홍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이야기를 하셨다. 이미 명나라와 조선에 왜구가 들끓은 일. 마침내 왜선이 전라도를 넘어 충청도와 황해도 일대까지 출몰한 일도.
세종대왕님은 차근차근 기억을 짚어나가시다가 부끄러운 일을 떠올렸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셨다. 당시 군권을 장악하던 자는 태종이었는데 세종대왕님이 왜 저리 부끄러워하시지? 그런데 이어지는 말을 듣자 이해가 되었다.
“당시에 헌릉에 계신 분에게 이렇게 고변하였습니다. [병선은 있으나 수가 많지 않고 방어가 허술하다. 변이 일어나면 적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근심이 일어날 것이니 전함을 폐하고 육지를 지키겠다.] 그렇게 뜻을 정하였지요.”
“태상왕께서 이루신 치적이라 여기고 있었사옵니다.”
“실지로 헌릉의 계신 분의 치적입니다. 젊을 적의 제가 싸움을 피하려 하자 한나라가 흉노에게 욕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라 하시며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렇게 석 달이 흐르고 왜구의 소굴을 쳐서 없애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신하는 없다. 관료 가운데 가장 먼저 출사한 한확도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니 군문에 속하지 않으며. 영락제의 신임을 얻은 낙하산 신세였으니 세종대왕님의 증언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형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세종대왕님의 입에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세종대왕님은 언해(諺解)한 오우치의 서한을 보더니 눈을 찌푸리면서 형님의 눈을 쳐다보았다. 형님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움츠러들였다.
“향아, 어찌하여 몸을 움츠리느냐.”
“지금부터 이어질 왜구의 침략을 염려하고 있었나이다. 백성들의 고난이 거세어 질 것이니 이러한 일을 심려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대마도와 왜국의 영토이며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던 구주(큐슈)가 같은 땅이라 여기고 무력으로 짓밟을 연유였다면 크게 꾸짖으려 하였으나 그러한 일이 아니라 다행이구나.”
아니에요 세종대왕님. 지금 생각해보니 화력시험을 위해 쳐들어오는 왜구들을 몰살시킬 생각 같은데 잘못 짚으셨어요. 그렇게 형님을 보시던 세종대왕님은 나와 안평대군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마도에 대한 원정 이전에 대마도를 아는 일이 중요하였습니다. 그러하니 유와 용이에게 묻겠다. 너희 둘은 왜국에 다녀온 적이 있으니 고변하여 보거라. 왜국은 어떠한 나라더냐.”
내가 바라던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과의 전면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싸운다면 조선의 압승이다. 하지만 일본을 공격하려면 무조건 원정 전쟁을 벌여야한다. 그것도 육로가 아닌 해로 원정이지.
역사상으로 아직까지 반도 세력과 열도 세력이 전면전을 벌인 일은 없다. 적을 상대하기 전에 적을 상세히 알자는 것이 세종대왕님의 뜻이다. 안평대군은 과거에 나눈 필담을 떠올리더니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폐주(廢主)가 되어버린 족리의정과 많은 필담을 나누어 보았으며 왜국의 강역에 대하여 상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사옵니다. 왜국의 강역은 아국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국 팔도보다 명백히 넓사옵니다.”
“강역이 넓다 하였느냐. 그렇다면 유가 왜국의 산야를 날뛴 일이 있지 않더냐. 왜인들이 얼마나 성하며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더냐.”
“산야를 날뛰며 얻은 일은 없사오나 왜국에서 이주한 야장이 동래 시가지를 돌아보아도 사람이 많다 말한 적은 없습니다. 또한 왜국의 사방은 바다이니 외적 또한 없습니다.”
“금상께서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이러한 것입니다. 더욱 크며 더욱 많은 사람이 있고 변방을 노리는 외적들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왜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은 호족들이 분열되었다는 것 하나이지요.”
홍위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기껏 해야 인구로 이백만의 차이이며 병사의 질적 차이로 무마할 수 있다 여기고 있었겠지만 조선은 북방에도 전선이 있으며 서행사와 탐검사도 있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오우치를 제외한 모든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일본과 달리 조선은 북방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 서행사를 비롯한 필수적인 해군 그리고 예비대를 마련해 둬야한다. 세종대왕님의 말이 이어졌다.
“전쟁은 그만큼 힘든 일입니다. 위신을 세우고 이득을 얻는 일 이전에 이번 전쟁의 목적을 무엇이라 여기십니까.”
“아국을 범하려는 왜구의 근원인 구주를 일소하고 옛 혈통을 간직한 대내씨를 구원하는 것이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왜국과 맞서 싸운다면 사생결단이나 다름 없는 일이지만. 왜군 전체를 상대하지 않고 구주의 왜구 세력을 일소하는 일에 국한되면 상대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오나 예산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적게 잡아도 왜국에서 오만에 달하는 병사를 보낼 것이며. 구주 일대에서 왜구가 쏟아져 나올 것인데 전쟁으로 인하여 아국은 도탄(塗炭)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조선은 인구가 적어 장기전과 대규모 원정이 힘든 약점이 있었다. 특히 지금까지의 수비전과 달리 공격전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하지만 세종대왕님은 한확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병풍이나 다름없던 한확이 화들짝 놀랐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가셨다.
“천운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작금의 영상이 이러한 난국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인재이니 이는 나라의 복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태상왕께서 어찌 신을 어여삐 여기시는 것입니까.”
“왜국은 거짓을 논하여 명국의 힘을 등에 업었습니다. 하지만 아국은 명국을 대신하여 왜구를 소탕하며. 북방을 다스리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사옵니다. 만약 영상이 사행을 나아간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분명 한직을 전전하다 홍위의 권력 승계를 위한 영의정으로 배정된 이였지만 명나라의 시선으로 보면 아니다. 이 시대에 권력에서 멀어진 자가 되찾는 방법은 새로운 왕이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며. 약간만 포장해도 홍위의 정책은 친명이라 여길 것이다.
한확을 사신으로 보내면 옛 은혜를 잊지 않는 충성스러운 번국의 행동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 분명하다. 홍위도 세종대왕님의 말을 눈치 채고 발 빠르게 나섰다.
“우의정이 대양도에 나아가 사람이 머물 터전을 일구었으니 터전의 이름이 서원(西原)이었소. 참으로 훌륭한 일이니 뒤늦게라도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으로 책봉(冊封)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비록 늙은 몸이오나 주상전하의 명이라 하면 노구를 이끌고 명국의 황상에게 고변하겠사옵니다.”
피로해진 세종대왕님이 방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논의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대마도와 일본의 차이점. 장점과 단점을 헤아려 보며 형님과 함께 조선의 병력 동원과 전략에 대한 기초 계획을 수립하였다.
“작금에 아국의 병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구풍으로 바닷길이 끊기는 것이며. 두 번째로 두려워하는 일은 한 해의 농사를 망치는 일이옵니다.”
“금상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국의 병사 가운데 정병은 도감군이며 이들은 농업을 행하지 않으니 언제라도 전선에 나설 수 있습니다.”
“신 수양대군 아뢰옵니다. 대내씨가 경각에 처한 일을 염두에 두시옵소서. 대내씨를 지원하여 왜군의 주력을 묶은 다음 구주를 토벌하는 일을 행하여야 하옵니다.”
“작금에 벌어진 논의는 모두 명국에 나아가 고변할 것이옵니다. 적어도 남경 일대를 괴롭힌 구주의 왜구를 징치하는 일은 명국에서도 바라고 있을 겁니다.”
목표를 정하니 준비할 것이 정리되었다. 먼저 병사들의 훈련과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순찰 강화와 선박 정비. 그리고 전쟁 물자의 수입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확이 최소한 큐슈 일대 왜구 토벌에 대한 칙서를 받아오면 좋은 일이고. 가장 좋은 일은 명나라의 지원병력을 얻어내는 일이다.
지금 명나라의 상황. 20년 전에 수십만의 병사가 죽어나가고 이후 장성을 쌓고 요동 일대에서 보이지도 않는 헛짓거리를 하며 국력을 낭비하는데 병력을 보낼 수 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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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신단은 논의가 끝난 직후 편성되었고 바로 출발하였다. 그렇게 1469년 5월, 다른 이도 아닌 사행으로 출세하여 영의정에 자리에 오른 노신 한확이 자금성에 발을 들이자 영덕제도 관심을 보이며 접견을 허가하였다.
한확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양 영덕제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통곡하였다. 한참의 통곡이 이어지고 한확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황상께서 영민하신 모습을 보이시니 성조께서 다시 치세하시는 일과 같사옵니다. 하오나 성조께서 계실 때와 다르게. 아국이 아둔한 모습을 보이니 이렇게 목 놓아 고변을 올리옵나이다.”
“고개를 들라. 예순이 넘은 충신이 읍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구나. 이는 황명이니라.”
촌수로 따지면 한확은 영덕제의 증조부이니 영덕제도 쉽사리 다룰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억지 눈물을 닦은 한확이 고개를 들자 영덕제는 조선에서 보낸 상소문을 읽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주먹을 들어 옥좌를 내리쳤다.
젊은 황제가 격분한 모습을 처음 본 명나라 신료들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대학사(大學士) 팽시(彭時)가 나서서 고개를 숙였고 영덕제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국서를 건네줬다.
“대학사는 넉 달 전에 왜에서 보내온 국서를 기억하고 있는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왜국의 도읍인 경도(교토)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진압에 나섰던 족리의시(아시카가 요시미)가 급사하였고 족리의정이 친족에게 선양을 청하였다 하였사옵니다.”
“조선에서 대내씨의 증언을 듣고 작성한 국서를 읽어보라. 조선의 말이 옳다면 왜국에서 보내온 모든 말이 거짓된 것이 분명하며. 교묘한 혀를 놀려 짐을 능멸한 처사가 아니겠느냐?”
팽시는 차근차근 국서를 읽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칠십 년 만에 왜국이 고개를 숙인 일을 보며 영락제의 치세가 돌아왔다며 칭송한 일이 엊그제 같은데 조선에서는 상반된 내용이 전해진 것이다. 영덕제는 아직도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왜국의 정국을 통솔하는 세천가(細川家 - 호소카와 카츠모토의 멸칭) 놈은 신(臣)이라 칭하며 새로운 국왕인 족리의상을 일본국왕의 칭호를 내려달라 청하였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황상께서 아무리 영민하셔도 타국의 일을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을 감안하여 조선과 친밀한 대내씨가 어설픈 수를 벌였을지도 모를 일이옵니다.”
“대내씨가 어설픈 수를 벌였다고 하였나?”
“왜국에서 보내온 국서에서도 족리의상이 네 살에 불과한 아이이며, 자칫 상국에서 책봉 받은 국왕의 혈통이 끊길까 염려하여 재차 책봉을 받는 일이라 하였사옵니다. 또한 왜구도 자취를 감추었사옵니다.”
영덕제는 정황을 곱씹어 보았다. 한 달 전부터 남경 일대의 왜구들이 사라졌으니 호소카와가 큐슈의 영주들을 통제하는 것은 분명하였다. 그렇다면 병사를 일으킬 명분이 없다.
영덕제가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하는 황제였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어린 시절을 남궁에서 보냈으며 신하들의 간언을 무시하였다가 화를 입은 아버지가 신하들의 위패를 모아놓고 조석으로 위문하는 일을 똑똑히 보았다.
결국 영덕제는 조선의 손을 들기 직전에 멈추었다. 충성스러운 번국의 고변을 알아차리지 못한 우둔한 황제로 알려지게 된다면 크나큰 실책이지만 신하들의 간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영덕제는 한확에게 친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직 정세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으며. 왜국의 족리씨를 국왕으로 책봉한 일도 있다. 그러하니 왜구가 출몰하여 조선의 변방을 어지럽히면 즉시 고변하도록 하여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왜구가 조선을 향하여 준동한다면 이는 상국을 기만한 것이오. 충성스러운 번국인 조선에 해를 입히기 위한 책략이다. 그러하니 토벌의 칙서는 왜구가 조선을 범한 이후 내려질 것이다.”
한확의 표정이 굳어지고 명나라 관료들의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훗날 칙서가 내려진다 해도 당장 원정을 준비하는 일 보다 몇 배는 나은 일이니까. 하지만 영덕제는 쐐기를 박았다.
“만약 왜구들이 재차 출몰하면 즉각 북경으로 압송하여라. 이는 왜국에서 번국 조선에 해를 입힌 것이며 짐을 농락한 일이니 즉시 칙서가 내려질 것이다. 그날을 위하여 은자 일백만 냥과 미곡 오십만 석을 비축하여 둘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은자 일백만 냥과 미곡 오십만 석이면 원정 비용을 창출하고도 남을 지경이다. 조선의 일 년 예산의 칠 할에 해당되는 물자를 보내는 일은 명나라로서도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다. 신료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지만 영덕제의 말은 이어졌다.
“혹여나 왜의 국왕이 항의를 표하여도 염려하지 말라. 병부상서 백규(白圭)를 파견하여 원정이 구주의 왜인들을 소탕하는 일에 국한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다.”
한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 세월동안 직급에 맞지 않는 잡무를 하며 허수아비처럼 지냈던 나날들이 떠올랐는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만약 왜구가 나타난다면 조선은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겨났다. 심지어 큐슈 일대에 병력 증원을 보내지 못하도록 정치적 압박을 가할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최고의 성과는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가 온다 해도 이룩할 수 없는 성과를 올렸다. 한확은 토벌 칙서 이전에 내려진 조서를 들고 귀환하였고 사방에서 병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순시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석 달이 흘러 8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