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89화 (189/573)

< 3장 3화 - 분메이의 난(1) >

홍위의 입신체비를 지도하지 않은 것은 본격적인 세자 생활이 시작된 12년 전. 1457년이다. 당시 19세가 되어서 혼인도 하고 – 세자빈은 정인지의 딸인 정씨이다 – 오스만 제국에 다녀온 덕분에 몇 년을 날려버렸지.

동궁을 오가며 입신체비를 감독하였지만 홍위의 입신체비는 평범한 유생 정도에 머물렀다. 형님은 여진족을 귀부시키며 입신체비를 꾸준히 해서 최고 기록이 900근이지만 마지막으로 봤던 홍위는 750근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방심했다. 오랜 간만에 동궁 입신체비장에 들어가서 입신체비 대신 정구를 하자 하였는데 홍위가 손을 풀면서 정구공과 정구채를 가져온 순간 알아차려야 했었다.

“숙부님! 몸이 많이 둔해지셨습니다!”

“주상과 함께 정구를 행하기로 했던 제가 우둔한 자입니다!”

“입신체비를 행하지 않을 적에 내금위의 병사들과 함께 정구를 행하였습니다. 정구가 제 낙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잘 된 일입니다.”

처음 만들었던 정구공은 굴참나무로 만든 코르크를 가죽으로 감싼 놈이다. 하지만 홍위가 사용하는 정구공은 쓰다 남은 양모를 뭉치고 얇은 가죽을 여러 번 겹쳐서 만든 것이다. 맞아도 별로 아프지 않고 탄성도 훨씬 뛰어나다.

그렇지만 홍위의 실력이 너무 대단하다. 왕의 몸으로 몸을 던져가면서 채를 휘두르는데 현대에 보던 선수들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만난 상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이다. 늙어가는 몸으로 근력을 유지할 뿐이지 순발력은 나날이 줄어들고 체력도 고갈된다.

“주상께서 정구를 행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리도 실력이 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후회가 되는군요. 하온데 정구를 얼마나 즐기신 것입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에는 중전과 함께 우모구(배드민턴)로 친숙해졌으며 이후 같이 정구를 행하게 되어 중전을 위해 많은 것을 고안했습니다.”

그래서 발전이 없던 정구기구들이 급격히 발전해버렸나. 현대에서 나오는 강도를 과거에서 발휘하려면 크기를 늘리면 된다. 대신 반대급부로 사용이 힘들어진다.

생각해 보면 내가 쥐고 있는 라켓도 조선에 없는 물건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다. 열대 지방에서 자생하는 등나무를 이용해 만든 라켓이니 무게도 강도도 이전보다 훨씬 개선되었다. 하지만 홍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다 정구공이 닳아 없어지겠습니다. 어서 선구를 치십시오.”

쓴웃음을 지으며 정구공을 가볍게 던져 올리고 힘차게 서브를 날렸다. 이후로도 공이 계속 오갔지만 점점 홍위의 날카로운 공격에 손과 발이 어긋난다. 바닥에 잔디가 깔린 덕분에 낮게 깔리는 공을 악착같이 이용했다.

“공을 받아내면 손목이 저릴 지경이니 숙부님의 몸은 아직 건강하시지 않습니까.”

“주상께서도 공을! 이렇게 날카롭게 찔러대시니 받아내기가 힘든 지경입니다!”

그러면서도 홍위는 백핸드. 어느 정도 고수가 하듯이 등을 돌려서 원심력을 이용해 공을 쳐낸다. 젊은 홍위의 체력을 당해낼 수 없어서 숨이 가빠오고 머리가 멍해지는데 사고가 터졌다.

“으억!”

“주상! 괜찮으십니까!”

백핸드 실패로 공을 가슴에 맞아버린 홍위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놀라서 달려갔는데 홍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떡 일어서서 가슴을 매만지고 있었다.

“정구를 행하다 몸이 상하는 일은 자주 있습니다. 낭심과 안면으로 공이 오지 않게 주의하면 되는 일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내가 날린 스매시를 가슴에 맞고도 멀쩡하다고? 주변에서 호위중인 내금위 병사들도 자주 있던 일인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으며. 춘추관에 속해 사초를 적는 김종직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경기가 이어져 숙부와 조카 사이의 정구 경기는 나의 패배로 끝났다. 한 세트를 따내고 나서는 체력이 줄어들어 홍위를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이다. 입신체비장으로 들어가서 간단한 정리운동을 시작했다. 혹시 아프지 않은가 했더니 멀쩡한 것 같다.

“주상께서 입신체비에 능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가슴에 정구공을 맞고도 멀쩡하시다니. 참으로 배움이 대단하십니다.”

“아직 삼대 운동 900근에 미지치 못하였습니다. 숙부님께서는 훨씬 어린 나이에 일천 근을 달성하지 않으셨습니까.”

“주상과 저의 체격은 다릅니다. 오히려 주상께서 900근에 근접하시는 것이 훌륭한 일입니다.”

홍위의 체형은 나와 다르다. 나야 보디빌더들이 선망하는 두꺼운 손목을 시작으로 골격이 튼튼하며 어깨가 널찍하지만 홍위는 약간 건장한 체형이니까. 부족하지 않지만 최고가 될 수 없는 체형이다. 그런 상황에서 본론을 시작했다.

“일전에 고사 입신체비장에 다녀와 현판을 만들고 마일용의 소개로 입신체비장을 돌아보았습니다. 모두 마음에 드는데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설립을 정하신 입신체비장이지만 기구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입신체비장에 많은 전답을 하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다른 비용을 절감하는 수 외엔 없습니다.”

입신체비장의 회비는 극과 극이다 향교에서 입신체비를 하는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역기와 엄신대(딥스 머신)같은 간단한 기구만 있다면 일 년에 쌀 두 섬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남는 지경이라 했었다.

그러나 청계천 입신체비장의 회비는 한 달에 쌀 한 섬이다. 기구 하나에 일백 석이니 기구의 도입비용과 감가상각을 생각하는 일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더욱 기구의 비용을 낮춰야 한다. 나는 가장 복잡한 구조인 박압기(숄더 프레스 머신)를 만지며 말했다.

“그러한 점이 안타까워 신이 염두에 두는 방식이 있습니다. 입신체비 기구를 하나의 거대한 철물이 아닌. 철물끼리 조립하여 만드는 방식이라면 가격을 낮출 수 있습니다”

“일전에 공조에서 행하여 보았습니다. 하지만 붕사(硼砂)를 통하여 철물을 접합하여도 몇 번을 사용하기 전에 무용지물이 되니 행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분명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렇지만 제가 구상하는 방법을 보시겠습니까.”

이 시대의 철물 접합 방식은 두 가지다. 조립하기 좋은 요철 형태로 가공해 가열한 다음 접합하는 방법. 그리고 붕사를 뿌려가며 두들겨 억지로 밀착시키는 방법. 공통점은 큰 힘을 만나면 여지없이 분해된다.

하지만 내가 구상하는 방법을 홍위가 보면 어떨까? 그렇게 나무 모형과 함께 구상중인 방법 두 가지를 보여줬다. 홍위는 그런 모습을 보더니만 관심이 생겼는지 한참을 고민하였다.

“예전에 보총을 만들었던 방식인 소라못(나사못)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가망성이 높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안인 유정(鉚釘)은 무엇입니까?”

“쇠가 녹일 때에 가공하기 쉬우니. 반쯤 녹은 연철 못을 박아서 두 철물을 고정하는 방식입니다. 입신체비기구에서 효험을 보인다면 다른 용도로 쓰이기 좋을 것입니다.”

“이건 시험이 필요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입신체비기구의 철물을 연결하는 일에 능숙히 쓰이면 안전함은 보장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입신체비기구는 일백 근의 무게를 수백 번이고 움직이지 않습니까.”

아주 큰 혁신은 없더라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성을 증명하는 일이니 홍위도 마음에 들었나보다. 하지만 홍위에게서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저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도성에서 유능한 야장들이 공조나 군기시의 기술자보다 소라못을 잘 다루고 있으며 철물을 접는 일을 능숙하게 행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본래 기술은 공조와 군기시가 나라의 으뜸이 아니었습니까?”

“이전까지는 그러하였지만 십 년 전부터 화기도감의 운총수들이 본래 총열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제(私製)로 만든 강철 총열을 원하고 있습니다. 보총수가 사용하는 연철 총열에 만족할 수 없다 하더군요.”

그렇다면 운총수들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 피복은 몰라도 훈련원 휘하 삼군의 무기는 교환 및 지급이 가능하다 – 총열을 거부하고 사제 총열을 쓴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현대의 대한민국 군대에서도 사제 물건에 대한 선망이 있으며. 미군은 봉급을 털어 장비를 사들이는 게 정상적이다. 많은 봉급을 받는 화기도감의 운총수는 자신의 생명과 같은 총기의 성능을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당연히 새로 생산된 연철 총열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 보총의 가격을 줄이고 생산속도를 증진시키기 위해 연철로 바꿨을 때에도 성능이 저하되었다고 많은 말이 나왔으니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으니 홍위의 말이 이어졌다.

“숙부님께서는 아바마마와 함께 보총과 운총을 설계하였다 들었습니다. 작금의 공조와 군기시에서는 옛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주상께서 아둔한 저의 마음을 일깨워 주셨사옵니다.”

홍위가 아니었다면 공조 장인과 군기시 장인들을 데리고 허송세월을 하면서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고 노력했겠지. 사소한 일은 몰라도 좋지만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고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홍위가 진취적이고 활달하지는 않지만 이런 왕도 필요하다. 언제까지고 발전하고 확장하며 살아갈 수 없으니 휴식기에 몸을 성장시키듯 홍위의 치세에서 조선은 내실을 다지며 번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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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년 4월, 궁궐의 일이 정리되고 모든 이들이 잠에 들어서는 술(戌)시가 되었다. 경복궁에서도 야근을 서던 관료들이 퇴청하는 가운데 신숙주가 바삐 움직이며 궁궐을 가로질렀다.

“주상전하께 아뢰올 것이 있사옵니다. 급보이옵니다. 왜국에서 내란이 벌어져 대내씨에서 급히 서신을 보내왔사옵니다.”

“왜국의 내전이라 하면 해마다 일어나는 일인데 예조판서는 어찌 이리 경황이 없이 행동하는 것인가.”

“보통 규모가 아니옵니다. 국서도 아니고 서신에 불과하온데 황망한 내용에 도무지 마음을 놓을 방도가 없었사옵니다.”

상소문을 읽다 나온 홍위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신숙주는 오스만 제국으로 다녀오는 일도 거리끼지 않을 정도로 호방하고 태평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그런 신숙주가 창백한 얼굴로 급히 말을 늘어놓으니 보통 일이 아니리라. 늦은 시간이지만 의정부와 육조의 신료들이 모조리 집합하였고 보고가 시작되었다.

신숙주가 파들거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오우치의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최근 항의의 서신이 도착한 이후 벌어진 일들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3년 전부터 시작하겠사옵니다. 왜의 왕 족리의정(아시카가 요시마사)은 가신들의 허언에 넘어가 사파(斯波 - 시바)가문의 후계자를 사파의민(시바 요시토시)로 정하였습니다. 여기에 사파의민을 세 개의 고장을 다스리게 하였사옵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요. 무리하게 관찰사(觀察使)를 배정한 것이 아니겠소.”

“왜의 정치는 복잡하고 다난하며 각 지역은 호족들이 다스리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호족의 처사를 무시한 일이옵니다.”

홍위도 모르는 일은 아니었지만 다른 관료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의문을 품던 관료들은 이해할 수 있다는 눈치를 보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신숙주는 목을 가다듬고 다음 내용을 읽었다.

“이후 왜국의 수도인 경도에 전산의취(하타케야마 요시나리)가 병사를 일으켜 진을 치고. 족리의정과 언쟁을 벌여 정월에 벌이는 의례를 중단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전산의취는 전산 가문의 후계자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이었사옵니다.”

“족리의정과 언쟁을 벌이고. 정월에 벌이는 의례를 중단시켰다면 의례를 지휘한 이가 혹여나 전산 가문의 가주였소?”

“그렇사옵니다. 본래 가주는 세천(호소카와)과 같은 관령의 작위를 가진 이인 전산장정(하타케야마 마사나가)이며 의례를 주관하고 있었사옵니다. 결국 족리의정의 뜻대로 전산의취가 가문을 승계하였사옵니다.”

“말이 되는 일이오? 어찌 국왕이라는 자가 자기 멋대로 호족을 갈아치우고 무력을 행사하는 일을 허용하다니.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오.”

홍위는 이해할 수 없는 눈치로 신숙주를 바라보았지만 신숙주는 그저 전해진 서한을 읽어 내려갈 뿐이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말이 시작되었다.

“이후 전산장정이 사퇴를 청하며 권력의 핵심은 세천씨로 넘어가게 되었사옵니다. 하오나 작년 중순부터 경도에서 내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정확히는 내란이 아니고 정변이옵니다.”

“정변이라 하였소? 그렇다면 족리의정은 어떻게 된 것이오?”

“족리의정과 대립하던 세천씨는 ‘작금의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 쇼군)이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난행을 벌이고 있으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라는 명목으로 족리의정을 폐하게 되었사옵니다.”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라 하여도 용납하기 힘든 일이기에 모두 아무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홍위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여겼는지 분노로 붉게 물든 얼굴로 질문을 시작하였다.

“족리의정이 폐위당하는 동안 어떠한 일도 없었단 말이오? 왜국에 의가 없고 난행이 평범한 일이라 하였건만 정녕 한 명의 의인조차 없었다는 이야기요?”

“이는 족리의정이 난행을 주동한 인물이기에 벌어진 것입니다. 여러 번의 실정과 사치를 행하니 어떠한 호족도 족리의정의 편을 들지 않았다 합니다.”

권력이 양분되었다 해도 야마나 소젠이 없는 정치 구조에서는 대립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심한 모습에 홍위는 입술을 씹으며 신숙주가 읽어가는 서신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족리의정에게는 동생도 있었으며 어린 아들도 있사옵니다. 동생은 한때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하여 족리의정의 양자로 입적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양자가 왕위를 이어나간 것이 불만이어서 호족들이 날뛰는 것이오?”

“아닙니다, 족리의정의 양자인 족리의시(아시카가 요시미)는 정이대장군의 직책을 이어가기로 정해진 자이나 경도에 들어와 화재를 진압하다 급사하였고.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사옵니다.”

본래 역사에서는 호소카와의 지원을 받은 아시카가 요시미와 야마나 소젠의 지원을 받은 히노 도미코 간의 내전이 발발하였다. 하지만 야마나 소젠이 사라지면서 권력의 축은 모조리 호소카와에게 집중되었다.

정변과 친족의 암살이라면 권력에 미친 호소카와의 독단적인 행동이리라. 홍위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아 올라 견디기 힘든 지경이었다. 이미 영의정 한확은 견딜 수 없었는지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썼다.

“독살이 확실하였으나 세천씨가 ‘족리의시의 죽음은 조선의 탓이다. 조선에서 들어온 회화를 건져내려고 금각사에 뛰어들었다가 비상이 섞인 회화가 타들어간 연기를 들이마셔서 몸이 상한 것이다.’ 라고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회화에 비상을 쓰는 일은 라마국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오! 계속하시오.”

홍위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던 피렌체의 미술가가 남긴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상이 섞인 물감이 있지만 궁궐에서 사용할 수 없으니 아쉽다고. 저열한 변명에 신료 모두가 분노에 차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인삼으로 막심한 손해를 입은 다이묘들에게 조선에서 인삼이 아닌 흉물을 보내왔다며 원망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조선의 잘못이 아니고 호소카와와 지방 호족들의 과욕이 부른 참극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를 탓하는 것 만큼 내부를 결속시키기 쉬운 방법이 없다. 신료들 모두가 수근거리는 가운데 신숙주는 묵묵히 서신을 읽어나갔다.

“네 살에 불과한 족리의정의 아들 족리의상(아시카가 요시히사)이 정이대장군직을 물려받았고. 세천씨의 섭정이 시작되었사옵니다. 하지만 왜국의 호족들은 여러 패로 나뉘었사옵니다.”

“참으로 잘 된 일이오. 금수보다 못한 왜국의 역도들보다 네 살에 불과한 족리의상의 정치가 나을 것이니! 그렇다면 여러 패로 나뉜 연유가 무엇이오?”

“족리의정의 난행 가운데 혜택을 입은 호족은 족리의정의 분파가 되었으며. 세천씨와 혈연을 맺은 호족은 세천씨의 분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끼어들지 못한 중립의 호족들이 여럿 있습니다.”

홍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썼다. 문종이 조치를 취하여 일본의 분열을 틀어막고 있었지만 결국 자신이 즉위하고 석 달이 지나기도 전에 대형 사태가 터져버린 것이다.

조선과 친밀한 오우치는 호족의 분파 어디에도 끼이지 못한 친조선 파벌로 남아 있으리라. 그리고 호소카와의 변명은 그런 오우치를 노리고 있는 것이 확실하였다. 홍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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