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88화 (188/573)

< 3장 2화 - 왕, 상왕, 태상왕(2) >

마음을 다잡은 한명회는 다음 순서인 보고로 넘어갔다. 탐검사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관료들이 많으며 예산에 민감한 이들은 충분한 수익을 보장하는 서행사로 충분하다 여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탐검사가 다녀온 고장에서 충분한 소득을 거뒀다. 소득이 적었던 여송(필리핀)일대도 꾀를 부려 충분한 소득을 창출하였으나 손해가 이어지면 탐검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한명회는 서행사로 이직할 것이 분명했다.

안전한 항로를 따라 교역을 하는 것이 주 목적인 서행사를 다니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한명회는 인사를 올리고 보고를 시작하였다. 자신이 덧붙이는 설명을 약간씩 부정적으로 바꾸면 탐검사의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날 것이니까.

“지난 일 년 반 동안 신농도에서 귀부한 이들과 함께 옛 항로를 따라 선물을 전해주며 교역을 행하였사옵니다. 하오나 너무 작은 섬이었기에 특이한 물산이 없었으며. 작물도 아국에서 기르는 것과 같았사옵니다.”

“신농도에 살던 사람들과 동속이어서 그러한 것이겠지.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소.”

보고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값싼 잡철로 진주를 사들일 수 있는 고장이며. 이미 입신체비를 퍼트려 급격히 친밀해졌다는 긍정적인 보고가 이어졌다. 하지만 부정적인 보고가 시작되었다.

풍속과 인구를 따지면 기껏 해야 하나의 섬에 일만 명이 거주할 뿐이니 모든 사람을 합쳐야 십만 명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바다에 넘쳐나는 것이 진주를 품은 조개이지만 한명회는 몇 년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을 곡해하였다.

“잡철을 귀하게 여기는 자들인지라 섬 안에 있는 귀중한 물산을 모조리 끌어낸 것이며. 몇 년이 지나야 충분한 양이 모일 것입니다. 매번 오간다면 오히려 소득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원정을 나선다 하여도 오 년 뒤에 시행해야 할 것이 분명하군.”

“옳은 말씀이옵니다. 아마 매 년 오가게 되면 탐검사의 원정 비용을 충당하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탐검사의 원정비용은 제법 높았다. 한 척을 일 년 동안 끌고 다녀도 녹봉으로 지급되는 액수가 외방 관원의 위문비와 험지를 거니는 선원들의 위험수당을 포함하여 미곡으로 삼천 석, 금으로 12근에 가깝다.

여기에 보급품의 비용과 소모되는 자재 그리고 선박의 감가상각(減價償却)비용을 합치면 선박 한 척은 일 년마다 육천 석의 비용을 소모하는 상황이었다. 원정 소득이 한 척당 육천 석. 금으로 24근이 넘지 않으면 손해인 것이다.

홍위도 안정을 추구하는 지이니 무리한 원정으로 국고를 낭비하는 행동은 피할 대상이었다. 한명회는 탐검사의 다음 원정을 몇 년 뒤로 미뤘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홍위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다음 탐검을 행할 장소를 정하여 주겠소. 근래에 들어 오사만국(오스만 제국)과 맘루크국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는 상황임을 아시오?”

“제가 일호천도(타히티)에 있을 무렵에 생겨난 일이옵니까?”

“그렇소. 서로 사이가 좋았던 두 나라가 분쟁을 시작하고 있으며. 특히 서행사가 드나드는 맘루크국은 통행세를 부과하고 있소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니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소.”

안정을 추구한다면 하나의 방안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문종이 뒤늦게 새로운 구리 수입처를 만들었으니 먼저 행동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맘루크 술탄국을 경유하지 않는 다른 경로로 서행사를 보낼 방법을 찾아야한다.

물론 새 항로가 너무 길어지면 항해비용으로 인한 수익감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좋은 일이 분명하니 가급적 빠르게 시행해야 하리라.

“서행사의 관원들에게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 정보를 모아오라고 하였소. 이번 탐검에서 얻은 수익의 일 할을 하사할 것이니 편히 쉬며 몸을 단련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적어도 몇 년 동안 찜통 같은 더위와 습기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인 한명회가 서류를 들고 퇴청하였고 다음 논의가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논할 주제는 서행사에 관한 것이오. 정녕 맘루크국에서 통행세를 유지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오? 아국과의 교역에서 충분한 수익을 거두고 있지 않소.”

“아국이 중간에 들리는 맘루크국의 가배를 수입하고 있지만 통행세를 면제하지 않을 거라 하였사옵니다. 다음 해부터는 통행세가 두 배로 오를 것이며 보급품의 가격은 별도라 합니다.”

한확의 보고가 이어지자 관료들 모두 숨을 들이켰다. 올해부터 부과된 통행세 덕분에 무역에 차질이 생길 정도는 아니지만 태도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자들이군. 그렇다면 맘루크국을 오갈 때마다 선박 한 척당 금 다섯 근의 통행세를 내는데 보급은커녕 박대를 하는 것인가?”

어마어마한 통행세지만 서행사의 소득에 비교하면 적은 통행세였다. 선박의 유지비용을 다른 상품으로 충당하여도 주요 수출품목인 인삼의 가격이 월등했던 덕분이다.

“홍삼은 오사만국을 넘어 라마국과 서반아(스페인)에 퍼지게 되었고. 신묘한 동방의 명약이자 기운을 북돋워 주는 효험이 있다 하여 금의 네 배나 되는 가격이 되었다 하옵니다.”

“금의 네 배라 하였소? 흑진주와 값을 비견할 정도가 아니오?”

“아국에서 학문을 배우며 일하는 라마국의 기술자들에게 보내진 서한을 검열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인삼을 사서 돌아오라는 말이 가득하였사옵니다. 이미 왕족이 아닌 양반과 상인들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홍위는 세계전도. 오스만 제국의 학자들과 합심해서 만든 세계지도를 펼쳐보았다. 지도에는 조선의 항로에서 통행세를 받아내는 맘루크 제국 남쪽으로 거대한 대륙이 달려 있었다.

“이프라키야(Ifriqiya – 아프리카의 이슬람식 표현)이라 하였는가. 듣던 바로는 명국과 비견할만한 거대한 땅이라 하였는데 이프라키야······. 너무 늘어지는 말이니 이주(離洲)라 칭하겠소.  경들 가운데 이주의 이야기를 들은 자가 있소?”

“신 한확 들은 바가 있습니다. 이주의 크기는 너무 넓어서 오사만국도 끝을 돌아본 적이 없다 하옵니다. 각지에 토인들이 넘쳐나고 맹수들이 들끓으며 끝없는 모래벌판이 있는 험준한 땅이라 하였사옵니다.”

“만에 하나일세. 만에 하나라도 이주의 연안을 따라 라마국 일대로 나아가는 시일이 일 년이 걸리지 않는다면 아국이 굳이 맘루크국에 통행세를 내며 억지로 교역을 행할 필요가 있겠소?”

의정부 관원 모두가 침묵하는 와중에 황수신이 손을 꼽아가며 계산하다가 말하였다.

“없사옵니다. 함대가 열 척이라 하여도 이 년 이상 지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소득이 많아지게 되는 일이옵니다.”

“그렇다면 좋은 일이오. 일 년 뒤에 출발하는 서행사와 한명회가 이끄는 탐검사가 동시에 출항하는 것이 좋겠군. 이주가 너무 거대한 땅이면 거점을 만들어야 하니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오.”

그렇게 한명회의 아프리카 연안해로 탐사가 결정되었다. 그 무렵 한명회는 울분을 토하며 김시습과 술을 들이켰다. 당밀주(럼) 한 병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아직 네 병이 남아 있었다.

“형님! 압구형님!”

“무언가. 우리 동생은 참으로 고생이 많아. 머나먼 북방에도 나가보고 추위도 타보고. 나도 좀 추워봤으면 좋겠어.”

“이러시다가 몸이 축나실 것입니다. 아직 보(한보, 한명회의 장남)가 과거에 급제하지도 못했는데 형님이 무너지시면 아니 됩니다.”

“뭐어? 내가? 무너져? 매월당! 자네 내가 술이 얼마나 늘었는줄 아는가! 오늘 사 온! 사왔던 당밀주! 모조리 마셔버리겠어! 그러니까 다음 병을······.”

한명회는 두 번째 당밀주의 뚜껑을 뜯어낸 직후 옆으로 넘어져 버렸다. 계속된 항해로 술이 제법 늘어났지만 그의 주량은 현대로 따지면 소주 두 병 정도가 전부였던 것이다.

술독에 빠져 몸을 망가트리려 하여도 주량이 적으니 마실 수 없으며. 입신체비로 단련된 몸은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의 몸을 온전히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다음 날, 지독한 숙취에 시달린 한명회는 청계천에 신설된 입신체비장으로 향했다.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비명횡사 하는 일은 피해야 하니 몸을 단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명회의 입신체비는 나이를 뛰어넘어 날이 갈 수록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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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년 1월, 마일용의 귀환이 늦어진 덕분에 새로운 입신체비장. 고사(高寺 - 노량진 일대의 옛 지명) 입신체비장이자 사설 입신체비장이 드디어 문을 열게 되었다.

도성 내인 사대문 안의 입신체비장이 모두 왕족 혹은 양반들을 위해서 세워진 곳이라면 여기는 양반과 평민 모두를 받아들이는 장소이다. 이건 서자 출신인 마일용의 뜻이기도 하지만 형님의 정책이기도 하였다.

내가 관여하지 않았지만 조정에서 찬반 논쟁이 있었고 형님은 사대문 밖도 아니고 한강을 건넌 노량진 일대에 입신체비장을 세우게 되었다. 고작 반상(班常)의 구분으로 이렇게 멀리 지어두다니. 하지만 내가 다니기에는 좋은 장소다.

청계천 입신체비장에 들려도 은근슬쩍 눈치를 보는 이들이 있지만 이런 먼 곳에 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게 내 앞에 현판에 쓰일 재목이 놓였고. 오랜 간만에 글 솜씨를 자랑하게 되었다.

“대군어른께서 현판을 친히 남겨 주신다니. 대대손손 가보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대대손손 체장을 물려줄 자신은 있던가? 앞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하겠군.”

“제 아들도 도원군 어른과 견줄 정도는 되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스운 소리는 하지도 말게. 현동이는 산야를 떠돌며 금석문을 헤집는 일에 여념이 없지 않은가. 입신체비에 몰두했으면 진작 나를 뛰어넘을 아이라네.”

붓을 놀려 현판을 완성하자 소목장(小木匠 - 가구를 만드는 목공 기술자)들이 나서서 현판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향교와 흡사한 형태인 고사 입신체비장은 동반과 서반으로 나뉘어 있다.

동반은 양반가 자제들이 숙식을 하며 입신체비와 학문을 닦는 곳이고. 서반은 일대의 주민들 가운데 재력이 있는 자가 입신체비를 행하는 곳이다. 훗날 조선에 세워지는 서원과 비슷한 녀석인 것 같다.

연산군을 시작으로 사화가 이어지면서 지방으로 낙향한 학자들이 학문 연구와 제자 육성을 위해 만든 곳이 서원이다. 하지만 이 역사에서는 서원과 입신체비장이 대립하거나 입신체비장과 서원이 같은 의미로 쓰일지도 모른다.

“이곳이 양반가 자제들이 머물 동재(東齋)입니다. 어차피 서재는 생길 필요가 없으니 손님들이 머무는 장소로 만들었지요.”

“상왕전하께서 참으로 많은 고심을 하셨군.”

전체적인 건물 배치는 비대칭형이다. 반상의 구분이 있는 것이 당연한 시대이니 서로 배우는 장소를 격리하여 단을 나누고······. 그런데 거대한 원탁이 들어가는 큰 건물에는 별다른 가구가 없었다.

입신체비장이면 입신체비 기구들이 있어야 하며. 배우는 곳이면 탁자와 서적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근면육연화 기억술이 있어도 배움과 입신체비는 공존하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원탁 하나가 가구의 전부였다.

“저 건물은 무엇인가? 분명 입신체비를 행하는 곳은 아닌데 ”

“학진당(學振堂) 말씀이십니까? 듣자하니 라마국(신성로마제국)에서 유행하는 우니베시타(universitas)인가 뭔가 하는 것에서 창안하신 건물이라 합니다. 거주하는 이들이 다양한 주제로 배움을 나누고 학문을 가다듬는 곳입니다.”

우니베시타는 어원만 들어도 대학같이 보인다. 아마 피렌체에서 온 미술가들이 대학물을 먹은 사람이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형님과 이야기 하다가 흘렸겠지.

하지만 대학을 다녀본 미술가의 말만 듣고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으니 시험 삼아 고사 입신체비장을 설립하고 대학과 같이 학문 연구기관을 만들어 성과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는 내가 가장 쓸 만한 공간이다.

적당한 야장을 불러 입신체비기구에 쓰일 철물을 만들게 하고. 조선시대에 가능한 구조를 실험할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뭇조각만 주물럭거리니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요즘 들어 여러모로 알아보는 것이 있는데 마침 잘 되었군. 당분간 학진당에 오가며 연구할 것이 있는데 상왕전하께서 아주 좋은 장소를 마련해 주셨네.”

“대군어른께서 오신다면 충분한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할 것이 무엇이기에 여기까지 오신다는 말씀입니까?”

“입신체비기구의 가격을 절반으로 줄일 방안이지.”

당장은 불가능하고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인 다음 시작해야겠다. 지방에 있는 제자들 가운데 나이가 많고 관직에 뜻이 없는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 소집하였으며 필요한 재료가 하나 둘씩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제자들의 도착을 기다리며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다 한 달이 흘렀다. 1469년 2월. 봄기운이 완연한데 세종대왕님이 대모산의 장지를 보러 가자 하셨다. 당연히 거절할 수 없는 일이니 형님과 함께 나섰고.

태상왕인 세종대왕님이 오셨으니 궁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현전의 정인지를 대표로 한 관료들이 고개를 숙이며 세종대왕님께 인사를 올렸다. 대부분 세종대왕님 아래에서 열정적으로 일했던 자들이다.

“영전사(領殿事)가 여기까지 어인 일인가. 근래에 들어 경의 천문에 능통함이 더욱 늘어났다 하는데 언제까지 일할 셈이오.”

“태상왕의 아래에서 업무를 할 적에는 꾀를 부렸사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꾀가 없어져 밤하늘의 별을 헤다가 졸할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젊은 나이에 꾀를 부렸다니. 더욱 엄하게 다스렸어야 하는데 후회가 되는군.”

세종대왕님이 관료들과 잡담을 나누며 장지를 돌아보았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이 있지만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니 세종대왕님의 몸에 별다른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님의 증상 가운데 흉통은 많이 사라졌지만 심장 자체의 힘이 약해지시는지 형님의 부축을 받으면서 움직이셨다. 그렇게 장지 중앙에 오자 정인지가 대뜸 말을 시작했다.

“일전에 최양손의 일을 기억하시옵니까? 무례한 자의 일을 떠올리니 피가 솟구칠 지경이옵니다.”

“후손이 끊어지고 장남이 요절하는 흉당이라 하였던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논하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본래 역사에서 세종대왕님이 머물고 계시는 영릉은 말 그대로 흉당이었다. 2년 만에 장남인 문종이 급사하였으며. 계유정난 이후에도 예종이 급사하면서 장지를 옮기게 되었으니.

하지만 장지가 뭐가 문제란 말인가. 요절? 나이 50을 요절이라 부르는 것은 현대에도 하지 않는 일이다. 세종대왕님은 형님의 어깨를 두드리시며 말했다.

“내가 여기에 묻히거든 네가 요절한단 말이더냐. 네 나이가 쉰이 넘었는데 요절을 하겠느냐?”

“아마 최양선의 말은 환갑 이전에 죽으면 요절이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고 보니 최양선은 환갑이 되기 전에 죽은 자이니 정녕 요절을 한 사람이 맞습니다.”

세종대왕님이 손짓하자 신료들이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이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나 본데 역시 홍위의 통치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주상의 치세가 시작된 것이 석 달이 지났사옵니다. 아바마마께서 보시기에는 어떠하옵니까?”

“신중함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한 일을 따지면 주상의 행적은 부족함이 없을 뿐입니다. 다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유의 행적이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화살이 나에게 돌려지는데 세종대왕님은 작게 웃으시면서 말했다.

“주상과 친밀하게 지내던 유가 거북이처럼 움츠려서 칩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삼대 운동 일천 근을 행할 시절을 돌이켜 보면 우스운 일입니다.”

“하오나 제 사돈인 한확이 영의정에 제수되면서 안 좋은 소문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의정이 무엇이 대수라 하더냐. 내가 벌하기 힘들었던 자가 시대의 흐름에 권세를 잃었다가 가까스로 영의정에 오른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생각해 보면 내가 움츠린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다. 고사 입신체비장에서 입신체비 기구를 연구하는데 필요한 인력을 배정해달라고 청원이나 해 볼까.

그러고 보면 홍위의 입신체비 실력도 궁금하다. 몇 년 동안 입신체비를 지도한 적이 없는데 녀석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정구(테니스)를 잘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지금의 몸으로 상대가 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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