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120화 - 대양도 정복(3) >
대월국의 왕은 역사 그대로 훗날 성종의 묘호를 받는 레 뜨탄이 되었다. 즉위 당시에는 나라를 다스리며 내치에 힘쓰던 이였지만 새로운 병기인 보총의 맛에 흠뻑 취해 있었다.
“참으로 훌륭한 기물일세. 명국에서는 주물로 보총을 만들지만 연철로 보총을 만들다니. 이러한 방법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 몰라 명나라에서 수입한 보총과 비교해보아도 조선에서 들여온 보총의 성능은 우월하다 못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위에 서 있었다. 여기에 다른 소식이 성종에게 들려왔다.
조선에서 오스만 제국을 오가는 서행사(西行司)의 관원들이 머물면서 연회를 즐겼으며 천축의 초석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것이다. 유능한 왕인 성종은 그런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천축의 초석이 그렇게 질이 좋단 말인가. 천축에 다녀와 초석을 수입하도록 하여라. 조만간 날뛰는 참파 놈들에게 짐의 분노를 느끼게 할 것이다.”
본래 역사에서는 참파의 왕 반 라체트안의 선공으로 벌어진 전쟁이었으나 여기서는 달랐다.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놓은 듯이 모든 일이 호재로 돌아서고 있었다.
동남아시아의 기후에서 화약병기는 힘을 쓰지 못한다. 정확히는 화약의 원료인 초석의 생산량이 높은 습도로 인해 감소해 비용이 상승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석 산지의 발견은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탈바꿈시켰다.
값비싼 화약을 생산하는 대신 수입하니 비용이 절감되었고 보총을 충분히 마련하고도 물자가 남아 돌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보총에 대한 갈망에 사로잡힌 성종은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엉뚱하지만 충분히 효과적인 생각이었다.
“우리가 조선에게 배운 것은 보총을 사격하는 방법이 전부인가.”
“그렇습니다. 애초에 도감군이라 하는 정예병 셋이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참파와의 전쟁에서 도감군이라 불리는 병사를 요청한다면 어떠할까 하네. 보총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려면 전장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본래 가르치는 일은 스승의 뜻에 의해 걸러지지만 실전에 나서면 모든 일을 필사적으로 행해야 하지 않사옵니까.”
그렇게 도감군을 요청하는 국서가 전달되었다. 하지만 성종이 예측하지 못한 일이 있었으니 화기도감 병사를 제외한 훈련도감의 병사와 임해도감의 병사만 도착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여도 정예병은 정예병이었다. 전쟁은 시작되었고 병력과 사기 그리고 장비에서 모두 앞서는 대월국의 군대는 삽시간에 참파의 수도인 비자야의 코앞까지 진격하였다. 그렇게 수도 인근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훈련도감군을 지휘하는 한철동(韓哲同)은 임시로 마련한 단 위에 올라 전선에서 지휘를 하였다. 그의 천리경에 거대한 회색 덩어리들이 지축을 뒤흔들며 돌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몇 번이고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전투코끼리들이었다.
“상병(象兵)이다! 점파(참파) 놈들이 상병을 보냈다! 전원 대열을 갖추어 막아내라!”
“시간 끌어! 사람보다 빠른 놈이니 미늘창(할버드)과 장창으로 견제를 하면서 뒤로 물러나라고! 그냥 빠지다가는 다 죽는다!”
“우리 상병은 왜 뒤에 온다는 거야!”
“화포 소리를 들으면 상병들이 미쳐 날뛴다 하잖나. 이럴 줄 알았으면 화기도감 애들이나 데려오는 것인데!”
전투가 시작된 순간 참파의 진영에 있던 수십 기의 코끼리가 대열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화약병기를 즐겨 사용하는 대월국은 전열이 붕괴된 순간을 노려 화포 사격을 중단하고 전투코끼리를 투입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참파는 전통적인 전략을 고수했다. 적의 전열을 전투코끼리로 분쇄하고 연속적인 공세를 취해 적을 꺾으려 하는 것이다. 이윽고 최전선에 선 훈련도감 병사들의 앞으로 여섯 마리의 코끼리가 달려들었다.
훈련도감에서 배운 전투 코끼리의 상대법은 다음과 같았다. 후퇴하면 대열이 붕괴되니 대열을 유지하며 천천히 후퇴하라. 지원 사격으로 기수를 죽이면 코끼리가 달아나니 때를 놓치지 마라. 코끼리는 둔중하니 틈을 보아 발목을 노려라.
갑주를 입은 코끼리가 날카로운 상아와 코를 휘둘렀지만 훈련도감 병사들은 주눅들지 않았다. 창날과 머리통보다 거대한 할버드가 날을 번뜩이면서 코끼리를 위협하였다. 보통 병사들과 다른 모습에 코끼리는 사방으로 몸을 돌리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지원사격 들어온다! 놈들이 돌격할거야!”
“코 조심해라! 상아도 조심해! 방패병들 힘 줘서 막지 말고 차라리 뒤로 날아가!”
다른 병사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훈련도감 병사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 화살을 난사하였다. 하늘에는 화살의 비가, 땅에는 강철의 파도가 몰아치는 가운데 억지로 몸을 움직인 코끼리는 기수에 명령에 응하며 대열로 파고 들려 하였다.
거대한 코에 치인 방패병 두 명이 뒤로 날아가 나뒹굴었다. 팔이 꺾이고 코피가 터져 나온 것으로 보아 중상이 분명했지만 거기서 코끼리의 돌격이 멈춰졌다.
비어버린 틈 사이로 창날의 물결이 우뚝 서 있었다. 파고들면 자신의 몸에 창날을 박아 넣는 꼴이 될 코끼리는 머리를 돌리고 물러나려 하였다. 그런 틈을 놓칠 병사들이 아니었다.
“발목 찍어! 찍으라고!”
“코도 찔러!”
“이런 씨부럴! 그냥 뒤져 상준(象尊 - 코끼리형 술잔)이랑 하나도 닮지 않은 짐승아!”
대열 사이에서 창들이 어지럽게 코끼리의 약점인 코를 노렸다. 코끼리가 겁에 질려 몸을 돌리려는 순간. 미늘창수들은 전력을 다해 코끼리의 약점인 발목을 향해 거대한 할버드를 휘둘렀다.
육중한 무게의 할버드에 찍혀 아킬레스건이 손상된 코끼리는 더 이상 전장을 뒤흔드는 괴물이 아니었다. 자기의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거대한 덩어리에 불과하였다.
기수를 자신의 몸에 깔고 뭉갠 코끼리 하나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동료들을 불렀으나 공포는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훈련도감의 대열 앞에 선 코끼리들은 그렇게 허둥거리다 고작 스무 명의 병사를 쓰러트리고 모조리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상준보다 못한 고깃덩어리를 앞세워놓고 우리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나? 적어도 대총 한과 싸워보기는 해야지!”
“본진에서 다음 포격을 마치고 상병을 보낸답니다! 상병과 발을 맞춰서 진격하랍니다.”
“무슨 소리냐! 그냥 진격해! 놈들이 겁에 질려있는데 지금이 기회다!”
한철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선에 수십 마리의 전투코끼리가 있었지만 도감군의 근처에 있던 코끼리들은 억지로 몸을 틀어 다른 전선을 향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열을 정돈한 도감군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자 참파의 병사들은 겁에 질린 눈으로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코끼리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맞서 싸운 이들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전원 진격하라! 놈들을 몰아쳐 분열시키고 상병들이 나아갈 길을 만들어라!”
“너무 빨리 나서지 마라! 버둥거리는 상병에게 치이지 마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본진에서 수백 발의 화포가 날아들었다. 포격에 당한 참파 병사들의 대열이 다시 흐트러지고. 훈련도감 병사들이 일제히 진격을 시작하였다.
그런 모습을 고지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정범수를 시작으로 한 임해도감 병사들이었다. 한 병사는 입에 흐르는 침을 닦을 정신도 없이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양도라는 작은 섬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가 삼만이 넘는다는 말을 믿지도 못했지만 드넓은 벌판을 병사들이 메꾸고 있었으며. 사람보다 수십 배는 거대한 짐승들이 날뛰었다.
서로 천리경을 돌려 쓰며 전장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두는 임해도감 병사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일렁였다 하지만 정범수는 전장의 모습을 보면서 도감군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고 우리 철동이는 참으로 잘 해요. 반 각(7분)만 머물러 있었어도 놈들이 대열을 갖추어서 뚫고 들어가기 힘들었을 텐데. 우리도 잘 해야 하지 않겠나.”
“저게······. 뭡니까? 사람이 저럴 수 있습니까? 저 괴물은 무엇이고 사람이 이렇게 많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아는 분입니까?”
“아래의 훈련도감을 지휘하는 한철동은 훈련도감 5기이며 방패수이다. 내가 가르친 녀석이고 무과에도 일찍 합격해서 나와 품계가 같지. 너희가 지금까지 해왔던 전쟁은 전쟁이 아니었다.”
바닥에 침을 뱉은 정범수는 솟구치는 오한을 억지로 꾹꾹 눌러 넣었다. 수도 없이 전쟁을 벌인 그였지만 앞으로 또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임해도감 병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정범수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상대를 죽여서 성인이 된다면 나는 세 번은 늙어 죽었을 몸이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고 두 번째 전투에서는 정말 죽을 뻔 했었지.”
다시금 포성이 임해도감 병사들이 머무는 산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범수는 철령 전투에서 기마돌격에 당했을 때 입었던 배의 흉터를 보여줬다. 전투가 끝나고 뱃가죽의 사이에서 피가 솟구쳤고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맸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전장에서 수도 없이 나뒹구는 말이 보이느냐. 내 상처는 저렇게 짚단처럼 죽어나가는 말이 입힌 것이지. 이러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적이 있더냐. 죽이거나 죽는 일은 전쟁이 아니다. 싸움에 불과하지.”
“저희는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 정말 겁이 나면 이번 전투가 끝나고 돌아가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을 벌이는 중이니 탈영으로 간주하여 사형을 당하기 싫으면 전투에 임하여라.”
말을 마친 정범수는 목함 속에 천리경을 집어넣었다. 이미 전선은 붕괴되고 있으며 참파의 손실이 막심하다. 내일 전투에선 본진에 대기시킨 예비대를 모조리 털어넣어 결전에 나설 것이 분명했다.
“지금부터 작전에 나설 것이니 명령을 모두 통역하여 제대로 전달하라. 우리 임해도감은 정찰대가 알려준 길을 따라 들어가 오늘 저녁 놈들의 본영을 기습할 것이다. 총원은 천 명에 달하지만 모든 병사가 나설 필요는 없다.”
아직 글을 아는 이가 없으니 하나씩 설명해서 입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지난번과 같은 뼈아픈 실수를 반복하기 싫은 정범수는 차근차근 임무 하달을 끝냈다. 그러자 쿨론족에 속한 병사가 손을 들며 물어보았다.
“저희가 싸우라는 말씀은 어떻게 싸우면 된다는 겁니까?”
“싸워? 본영에 있는 초병만 하여도 이천 명은 될 것이다. 장수를 호위하는 이들이니 무장도 완벽할 것이며 상병도 대기하고 있겠지. 싸우면 한 각 이내에 몰살당한다.”
침을 삼키는 소리만 나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지만 정범수는 환하게 웃으면서 임해도감 병사들을 돌아봤다.
“너희들은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병사가 아니다.무장을 갖추지 않은 보인들을 척살하고 보급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며 놈들이 다음 날 전투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하지만 저희가 싸워왔던 일이 많지 않습니까.”
“너희의 병기가 갑주를 가진 이들에게 효험을 보이더냐? 너희의 병장기가 길고 튼튼하더냐? 싸우는 일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 않더냐.”
임해도감의 장비는 아주 간단했다. 손도끼 네 자루, 가죽 투구, 도감군 병사들과 공용으로 사용하는 피복류 그리고 람보에 나설 때에 갖추는 추가 장비였다. 정범수가 람보복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놈들의 본영은 숲을 끼고 있으니 진입하는 일은 염려하지 마라. 먼저 초병(哨兵)을 제거하고 놈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손상시키면 될 일이다. 너희들이 배운 것을 충실히 활용한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힐 수 있다.”
잠시 뒤. 참파의 본영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마지막까지 아껴둔 예비 전투코끼리를 관리하는 우리에서는 보고를 받은 사육사가 짜증을 내며 부하에게 되물었다.
“오늘만 예순세 마리가 죽었다고? 지금 장난하는 건가?”
“내일은 더 많이 죽어나갔겠지요. 다음 전투에 예비대로 빼둔 백 마리 모두 투입하라는 명입니다.”
“당장 갑주 준비해라! 아침부터 입혀야 하니까 다들 움직여! 여기 있는 코끼리 스물다섯은 크기가 작은데 어찌 하란 말이지.”
코끼리는 너무 거대한 짐승이니 한 곳에 보관하기 힘들었다. 울타리 안에서 서성거리는 코끼리들을 돌아본 사육사는 부하들에게 갑주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선가 절벅거리는 진흙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첩자가 염탐하러 온 것인가? 그렇게 여긴 사육사는 밖으로 나가 초병을 부르려 하였지만 바닥에 쓰러진 초병을 본 순간이었다.
“거기 누······. 으헉!”
“람보를 행할 때에는 숲이 아닌 지형에서도 효험이 있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은 몸에 진흙을 바르면 흙 위에서도 모습을 감출 수 있다. 참으로 좋은 말이야.”
임해도감 병사들 가운데 겁에 질리지 않은 이들은 실전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훈련에서 상대했던 훈련도감 병사들에 비하면 이들은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었다.
훈련도감의 초병은 언제나 셋이 조를 이루고 호각(號角)을 가지고 있으며. 입구를 지키는 이들은 저격을 방지하기 위해 두 패로 나뉘어 같은 사선에 서 있지 않는다. 하지만 참파의 초병은 이러한 일을 지키지 않았다.
적이 습격하면 횃불을 밝히고 기습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 고정관념이 초병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한 병사는 쓰러진 사육사의 옷을 벗기더니 몸 위에 대충 걸치면서 묻은 피를 대충 닦아냈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슨 훈련을 받았는지 알지도 못했는데 이런 때에 쓸모가 있군.”
“뭘 하시는 겁니까?”
“이놈이 높은 사람 같은데 옷을 바꿔 입으면 코끼리들이 발작하지 않겠지.”
하나를 배우면 둘을 아는 병사들이었다. 잠입을 할 때에는 투구라도 훔쳐서 몸을 보호하고 적을 속이라는 말을 곧바로 실전에 활용한 것이다. 병사들은 목책의 입구로 들어가지 않고 서로의 몸을 밟고 목책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울타리 안의 코끼리들은 임해도감 병사들의 모습에 움찔거렸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사육사의 옷차림을 보더니 관심을 끊어 버렸다. 이윽고 병사들은 자기병에 담아둔 기름을 울타리에 적시고 바닥에 흩뿌리며 화공 준비를 마쳤다.
“코끼리가 날뛰면 동료들도 피해가 크겠지?”
“아주 클게 분명하네. 전장에서 날뛰던 모습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나.”
잠시 뒤. 참파군의 본영에서 세 번의 새소리가 울리고 사방에서 새소리가 울렸다. 생소한 울음소리에 초병들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윽고 코끼리 우리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면서 재앙이 시작되었다.
스물다섯 마리의 코끼리들은 울타리가 불타오르자 발작하며 사방으로 날뛰었다. 그들을 진정시킬 사육사는 갑주를 챙겨오거나 잠을 자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상황을 파악한 것은 목책을 부순 코끼리떼가 밖으로 나온 직후였다.
“진정해! 불이 왜 났는지 모르지만 너희가 여기서 날뛰면 큰일 나니까 조용히 하자고. 착하지? 응?”
“이건 선물이다!”
“잠깐 진정!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마지막까지 숨어있던 임해도감 병사가 온 힘을 다해 도끼를 던졌고. 도끼는 한 코끼리의 상대적으로 얇은 뱃가죽을 깊숙이 뚫고 들어갔다. 약점을 공격당한 코끼리는 사육사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전쟁의 축은 급격히 대월국을 향해 기울었다. 본진에서 코끼리가 날뛰며 수많은 병사들이 죽고 사기가 떨어진 참파의 왕 반 라체트안은 아예 전투를 포기하고 도주에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본진으로 복귀한 임해도감 병사들의 태도는 극명하게 갈려 있었다.
먼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참파군의 본영에 불길이 치솟고 고함이 빗발치는 것을 똑똑히 목격한 정범수였다. 하지만 고개를 꼿꼿이 들지 못한 병사들이 절반에 달했다.
“고개를 숙인 이들은 어찌 하여 저러는 것인가.”
“이들은 본영을 습격하는데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저 후발대로 남아 급한 일에 대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항명이나 다름 없으니 엄벌에 처해야 하지만 그렇게 따져도 분수를 아는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전쟁에 참가한 경험이 여러 곳에 전파된다면 임해도감 초모에 응하는 광적인 열기도 어느 정도 사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여섯 달 뒤인 1464년 4월, 전쟁은 대월국의 승리로 끝났다. 가장 중요한 소득은 대양도의 혈기 넘치는 고산족들이 진정한 전쟁을 목도하고 소문이 퍼져 임해도감을 탈퇴한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보인을 포함한 인원이 4,000명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하지만 탈퇴한 이들이 원래의 생활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임해도감에서 훈련받으며 배운 조선의 문자를 배우고 말을 배워 작물의 재배와 기술흡수에 힘쓰게 되었다.
대양도는 점차적으로 조선의 확고한 영토가 되어가고 있었다. 설탕과 커피를 비롯한 작물의 재배는 당연한 일이 되었고. 서서히 조선의 말을 배우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점점 조선의 땅으로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