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119화 - 대양도 정복(2) >
임해도감의 창설은 바람직하였다. 조선에 복속한 원주민들을 이용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이며 안전수단을 강구하였으며 결정적으로 수효가 적었다. 아니 적었어야 했다.
1463년 6월, 정범수는 부관 어유소(魚有沼)를 비롯한 이들과 함께 논의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정말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문제가 아니고 임해도감의 2차 초모. 군문에 뜻을 두기로 마음먹은 자들의 수효가 너무 많았다.
처음 2차 초모에서는 600명 가운데 절반인 300명이 남기로 결심하여 임해도감의 정식 병사가 되었으며 이는 목표한 숫자와 비슷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8할에 가까웠다.
정범수는 식은 찻물을 거칠게 들이켰다. 규정 상 2차 초모에 응한 이들은 신체적 조건이 부적합하거나 하위 3할에 해당되는 성적이 아니고서는 돌려보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거의 모든 인원이 2차 초모에 인원이 응하였단 말인가?”
“훈련 도중 심한 부상을 입어 아예 응하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면 모두 응했습니다. 훈련에서 최하점을 받은 이도 당당히 나섰습니다. 이들을 돌려보낼 방법도 없지 않습니까.”
조정에서는 대양도의 인구를 구만 명에서 많게는 십일만 명 까지 예측하였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정병으로 1푼(1%)인 천 명 안팎의 정병(전투에 나서는 병사)를 모집하면 적당한 비율이다.
그러나 고산족은 특수한 이들이니 징집 비율이 다소 올라갔다. 이들은 무기를 다룰 줄 알았으며 성인으로 대접받는 이들이면 대부분 사람을 상대로 싸운 전적이 있으니 비율을 높여도 적합하다 생각하였다.
결정된 임해도감의 총 인원은 정군 2,000명과 보인 2,000명이 되었다. 사람이 움직이기 힘든 숲을 오가는 특성 덕분에 보인을 부대 인원에 포함하는 특수한 편제가 된 것이다.
병사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평소에는 녹봉을 받아먹으며 훈련에 열중하는 병사들이 많으면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이 줄어드는 것이다 정범수는 신중한 눈빛으로 말했다.
“일전에 관찰사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었네. 대양도의 고산족 가운데 복속한 이들은 오천 호에 이만오천에 불과한데 병사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 하셨지.”
“하오나 성년에 속한 이들은 기를 쓰고 초모에 응하니 저희가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그러한 일이면 내년을 기약하라고 말하면 충분하니 상관없다네. 하지만 임해도감의 2차 초모에 팔 할이 넘는 이들이 응모한 것은 어떻게 보는가.”
“저도 그것이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진정한 성인이 되려면 사람의 목을 베어야 하니 임해도감에서 강해지고 전장에 나서서 상대를 죽일 마음을 품고 있더군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부하의 입으로 전해들으니 더욱 답이 없었다. 타이야족을 비롯한 초창기에 임해도감 초모에 응한 이들은 훈련도감이라는 강적을 상대로 패한 자들이었다. 그러니 패배할 수 있다 여겼고 초모에 응한 이도 상식적이었다.
하지만 임해도감을 선두에 세우고 복속시킨 부족들은 다른 마음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는 비슷했던 상대가 더욱 강해졌다면 자신들도 강해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정범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대로라면 대양도는 식량을 공급받아야 할 지경일지도 모르네. 도감군 오천 명이라니.”
“임해도감의 녹봉을 조금 감면한다면 어찌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이미 임해도감의 녹봉은 훈련도감의 7할에도 미치지 못하네. 더 줄이면 어떻게 하겠나?”
임해도감의 녹봉은 엄연히 대양도에서 생산된 물산으로 지급해야 정상이다. 가까스로 정상으로 돌아온 대양도가 군사비에 허덕이는 모습을 조정에서 이해할 마음도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소식이 하나 있었다.
“다행인 점은 하나 있군. 고구마라는 작물이 그렇게 적응을 잘 하여서 배를 곪는 이는 없다 하던데.”
“그렇습니다. 저도 임해도감 초모에 응한 이들의 가족이 굶을까 염려하였는데 고구마의 소출이 너무 좋은 덕분에 남는 고구마를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합니다. 좋은 일이 아니겟습니까.”
“가장 큰 문제를 내버려 두고 무엇이 좋은 일이라 하는가. 이들의 마음가짐 자체가 글러 먹은것은 자네도 알지 않나.”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정범수는 당연히 알고 있었고 다른 훈련도감 출신 병사들. 정확히는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했다.
대만 원주민들이 알고 있는 전쟁은 적을 죽이는 노략질에 불과하였다. 그렇기에 서슴없이 나서는 것이고 자신의 무용을 뽐내려는 공명심(功名心) 조차도 품지 않았다. 어유소는 정범수의 질문에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답했다.
“근원이 무엇이겠나. 평소에는 비슷하게 싸우던 놈들이 임해도감의 탈을 쓰니 몇 배나 잘 싸우게 되었다고 쓸데없는 마음을 품고 있지! 이게 병사인가? 도적떼인가?”
“바로 그것입니다! 애초에 이들이 전쟁을 알기나 합니까?”
“모르지! 기껏 해야 다른 마을로 건너가서 사람 목이나 따고. 가끔 아국의 선박에 승선하여 기어 올라오는 왜놈들 머리통이나 박살내지 않나!”
정범수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혹독한 전쟁을 경험한 자였다. 홍윤성보다 못하여도 북방을 세 번이나 오갔으며 임해도감을 창설하기 이전에도 계속 람보 복을 입고 얼굴에 짓이긴 쑥을 발라 숲 속에서 지휘를 했었다.
정범수의 기준으로. 그의 보좌관이자 훈련도감 4기 출신인 어유소의 기준으로도 대만 원주민들이 좋아하는 전쟁은 전쟁이 아니고 전쟁놀이에 불과하였다.
“혼을 빼놓는 방법이 없을까. 제대로 된 전쟁에 대하여 알아야 이들의 생각이 변할 것이네. 세상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임해도감이 되면 평생 전장을 전전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할 것인데.”
“어디를 노린다는 말씀이십니까. 왜구들도 여러 패거리로 나누어져 있으니 함부로 할 수 없는 이들입니다. 기껏 해야 달자들이 전부가 아닙니까.”
“이들을 북방에 보냈다가는 겨울 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갈 것이 분명하군. 거양현만 하여도 지독하게 추운 고장인데 하르빈의 추위에 시달리면 사지가 얼어서 죽어버리겠군.”
전쟁은 정말 잔혹한 일이다. 훈련도감 병사가 아닌 군문에 발을 들인 자들 가운데 전쟁을 겪어본 이들에게 물어본다면 전쟁에 나서서 공을 세우느니 편안한 삶을 살고 싶다 하리라.
그러나 지난 세월 조선에서 지독하게 치르고 또 치렀던 전쟁은 더 이상 없다. 전쟁 이후의 평화가 지속되고 있으니 누구와 싸워서 임해도감의 비뚤어진 성품을 바로잡는단 말인가. 그런 염려속에도 훈련은 계속되었다.
임해도감의 2차 초모에 응한 이들은 본격적인 군사훈련에 돌입하였다. 달도 없는 그뭄날 한밤중에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도감 병사들이 임시로 만들어 둔 본영 인근의 산 속에서 정범수가 명령을 하달했다. 훈련도감의 병사들은 본영을 지키라는 명령만 들었을 뿐이지 어디가 임해도감의 목표인지 알지 못하고 수비에 여념이 없었다.
임해도감은 본영을 뚫고 훈련도감은 이를 철저히 방어한다. 몇 번이고 경험한 훈련이었는지 임해도감 병사들은 숲 속에 웅크리고 앉아 정범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훈련을 시작한다! 신호가 떨어지면 전원 훈련도감 병사들이 지키는 본영으로 침투하도록! 목표는 본영의 중앙에 있는 중(中)자가 쓰인 천막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훈련 상황이니 무기가 아닌 나무로 만든 연습 장비를 들고 있어도 경계는 삼엄하기 그지 없었다. 훈련도감군 초병이 조를 이루어 천천히 외곽을 순찰하며 살피고 있었다. 한 병사가 손가락을 들고 배수구를 가리켰다.
“거기 너! 다 보인다!”
“잘못했습니다!”
배수구에 웅크리고 있던 임해도감 병사가 훈련도감 초병에게 들켜버렸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들켰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양 손을 들어올리고 천천히 일어섰다.
경계가 풀린 훈련도감 병사들이 포승줄을 들고 묶으려는 순간이었다. 병사들의 몸으로 쏜살같이 도끼자루가 날아들었고 세 병사 모두가 급소에 맞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두운 밤중에도 보이도록 도끼자루의 날 부분에는 검댕이 잔뜩 묻어 있었다.
급소를 맞으면 시체처럼 쓰러진다. 훈련방식을 철저히 지킨 훈련도감 병사들은 호각을 강탈당하고 장비를 압수당한 채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나이가 많은 병사가 황당한 얼굴로 동료에게 말했다.
“이 친구들 완전 글러먹은거 아니야? 한 명을 미끼로 쓰다니 이 친구는 그냥 죽었다고 봐야하는데.”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고 우리는 당한 처지니까 아무런 말을 하지 맙시다.”
“이런 방법을 쓸 줄은 몰랐네.”
만약 실전이었다면 덮어놓고 창으로 찔러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애꿏은 목숨 하나를 날린 셈이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고참병이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데 다른 병사가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형님은 왜 호각을 불지 않소? 호각만 불었어도 될 일인데. 이러다가 우리 내일 줄초상 나겠구려.”
“낸들 아나. 내가 왜 호각을 불지 않았지? 그런데 너희들은 왜 안 불었어? 응?”
첫 조가 호각을 얻은 이후 임해도감 병사들의 침투는 계속되었다. 고요한 밤하늘 아래에서 긴 호각소리가 들렸다. 훈련원 휘하 병사들이 사용하는 호각은 같은 부대가 같은 호각을 공유하기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이이익!]
날카로운 새소리가 들리면서 훈련도감 병사들이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한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모든 병사가 달려들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이도 있었으며 경계의 눈빛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역시 가짜 호각이었군. 자네들은 왜 당하였나?”
“남 부사정(副司正)님, 시체는 원래 말이 없는 법입니다.”
“배수구 안에 사람의 흔적이 있으니 한 명을 미끼로 두어서 방심하였다가 당했군. 자네들은 내일 반쯤 죽을 각오를 하게.
남이는 입술을 짓씹으면서 훈련을 끝까지 완수하였다. 훈련도감군은 임해도감의 침입을 막아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병사 여럿이 실책을 범했다. 그러한 병사들은 정범수의 애정이 넘치는 교육을 받게 되었다.
“너희들이 일반적인 공좌(스쿼트)로는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 분명하구나! 그러하니 나 또한 오늘은 특별히 축각공좌(스플릿 스쿼트)를 가져왔다!”
“이게 무엇입니까!”
“한 다리로 하는 공좌이다! 수양대군어른께서 창안하였는데 참으로 효과가 좋더구나.”
크나큰 실책을 저지른 자들은 생전 접해보는 운동에 경악할 뿐이었다. 통나무 위에 다리를 얹고 반대편 다리로 몸을 올렸다 내리는 일이니 처음 열 번을 넘어서자 비명이 새어나왔다.
“아픕니다! 다리가 불에 타는 듯이 아픕니다!”
“너희 같은 머저리들을 가르치는 내 가슴에 불이 타오르는 듯이 아프구나!”
“으아아아아악! 살려주십시오!”
“네놈들은 훈련이 아니었으면 비명횡사했을 놈들이다! 그러니 시체같이 입을 다물고 축각공좌를 해라!”
수양대군도 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도감군 사이에서 입신체비가 유행한다는 말을 듣자 야외에서 할 수 있는 입신체비를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스플릿 스쿼트가 끝나자 다음 차례가 시작되었다.
“다음은 보행각굴(워킹 런지)이다! 다들 열두 근(7.7kg) 석쇄(케틀벨)를 하나씩 들어라!”
“이러다가 다리가 거덜 날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이 거덜 날 것 같으니 그냥 시체처럼 하여라. 그리고 네놈들은 훈련도감이지 않느냐! 1기의 눈으로 보니 마음이 더욱 아파오는구나! 그러니 스무 근의 석쇄이다!”
임해도감 병사들은 패전을 거듭하였지만 큰 실수가 아니라면 이렇게 문책을 당하는 일이 없었다. 큰 실수라 하면 전략 전술적 착오, 명령 불복종, 체력 기준 미달 그리고 교육 불이행이었다.
“어금닛소리이며 군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은 소리이다! 정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니 너희들의 몸으로 정음을 알려줄 것이다! 이것이 ‘ㄱ’ 이다!
“저희의 자세는 다리를 들어올리고 있으니 혀끝이 윗 잇몸에 붙은 모양이어서 'ㄴ'이 아닙니까! 어찌 하여 ‘ㄱ’입니까!”
“하나를 가르치면 두 개를 알게 되니 효험이 좋구나! 하지만 운동 횟수를 줄이지는 않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시험이 치러졌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이들은 교육 불이행의 낙인이 찍혀 뙤약볕 아래에서 악랄한 피투체조를 시작하였다. 정확히는 피투체조가 아니었다.
정범수가 이름을 붙이기를 정음체조라 하였으니 행한 병사들은 모두 정음이라는 새로운 문자를 익히는 것에 능숙해졌다. 그렇게 1463년 6월이 되었을 무렵 절제사인 유성원은 정범수를 호출하였다.
“임해도감의 훈련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
“조만간 마지막으로 복속시킨 고장에서 4차 초모에 나설 것입니다. 하온데 어찌 하여 여쭈어보시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아국에 대월국(베트남)의 국서가 당도했네. 다름이 아니고 점파(占波 - 참파)와 전쟁을 치를 것인데 아국의 도움을 요청하더군. 주상전하께서는 임해도감이 참전하기를 원하시네.”
“그렇다면 임해도감의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하여 배려해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유성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병이라 하여도 많은 규모는 아닐 것이며 기껏 해야 훈련도감 천 명 정도에 불과하리라. 갑사와 화기도감은 함부로 파병하기 곤란한 병력이다.
갑사는 기마병이며 철편을 엮은 찰갑을 입으니 더위에 지독히 약했다. 화기도감은 가뜩이나 수효도 부족한데다 새로운 병기를 사용할 것이니 함부로 노출시키기 곤란한 병력이다.
기껏 해야 훈련도감 일부만 파병되겠지만 걱정이 앞섰다. 임해도감은 제대로 된 대규모 군사 작전 경험이 없고 기껏 해야 소규모의 침투 전술만 훈련하고 있었고 마음가짐도 온전하지 못했다. 정범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셨다면 따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경험이 없으니 손해가 막심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손해는 막심하여야지. 자네가 올린 장계를 읽어보니 고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더군. 치기를 부리는 이들이 제대로 싸울 줄 아는 훈련도감의 병사들을 본다면 스스로 배울 것이 아닌가.”
분명 그러할 것이다. 많은 훈련을 했지만 적의 주력과 싸우는 틈을 타서 비어있는 거점이나 경계가 허술한 후방을 노리는 싸움. 전쟁의 일부만 맛본 이들이 임해도감이었다.
이들이 아무리 숲에서 날뛴다 하여도 제대로 된 진지를 공격한 경험은 없다. 어디까지 모의전 개념으로 알려주기만 했을 뿐이니 고민이 샘솟았다.
하지만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어중이떠중이들을 데리고 군대놀이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큰 손해를 보거나 실전에서 제대로 된 병사로 거듭나거나. 정범수는 문종의 제안에 기꺼이 응했다.
“주상전하의 명을 온 몸을 바쳐서 받들겠사옵니다.”
조선의 파병이 결정되었다. 훈련도감은 새로운 실전 기회를 쌓고 새로 도입한 병기인 미늘창(할버드)의 효율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임해도감은 제대로 된 병사로 거듭나기 위하여 베트남과 참파의 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