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77화 (177/573)

< 2장 115화 - 손 안대고 코풀기 >

조선이 오스만 제국과 무역을 하여도 구리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구리가 생산되는 명과 인도는 수요가 많아서 오히려 구리를 수입하는 실정이다. 당연히 만주에도 동광산은 없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구리광맥을 조금씩 채굴하고 있지만 소비되는 구리의 2할을 충족하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일본과의 정식 교역과 밀무역을 합쳐서 15만근의 구리를 들여오고 있으니까. 세종대왕님은 한참 동안 고민하시더니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주상께 심려를 끼쳐드릴까 염려되지만 할 말은 하는 것이 법도입니다. 주상께서는 새로운 인맥을 만들지 않으시고 오로지 대내씨(오우치)에게 혜택을 주었습니다.”

“하오나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곡식을 헐값으로 수출하는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대내씨가 옛 백제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인정하고 구휼을 행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내씨는 주상과 족리의정(아시카가 요리마사)의 봉신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일을 좋아하는 자가 있다면 질시하는 자가 생겨남은 당연한 일입니다. 유는 왜국에 대하여 상세한 일을 알지 않느냐. 너의 생각을 듣고 싶구나.”

갑자기 화살이 나에게 돌려졌지만 들었던 말도 있고 일본에 대한 역사적 지식도 알고 있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왜국에 기근이 일어난 일은 신의가 없고 부덕하여 일어난 일입니다. 구풍이 나라를 휩쓸었다 하여도 왜국은 팔도를 합친 것보다 큰 고장인데 모든 영지에 피해가 있겠사옵니까.”

“실제로도 그러하였다. 대내씨가 전해온 장계에 의하면 기근이 발생한 원흉은 서로 경쟁하며 심어댄 인삼이 문제라 하더구나. 아국이 기르는 양의 5배에 달한다 하였지.”

형님은 그런 말을 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설마 했는데 설마가 일어나 버렸으니까. 하지만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고 일본의 잘못이다.

보내준 인삼 씨앗만 재배했다면 약효는 부족해도 내부 소비를 충족하고 남는 물량을 역으로 수출하면 된다. 실제로 인삼 씨앗은 꾸준히 보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니까 소득이 있겠지.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그렇사옵니다. 기근이 이어지며 민란이 생겨났지만 이를 무차별적으로 탄압하였고. 굶주린 이들이 왜구로 돌변하여 명국의 남경 일대를 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아국은 함대를 동원하여 왜구를 격멸하였사옵니다.”

남경 일대에 출몰하는 왜구의 절반은 조선에서 보내온 함대가 처리했다. 처음에는 왜구들의 전술에 익숙하지 않으니 피해를 입었지만 대만 원주민들을 주축으로 한 임해도감 병사들이 승선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백병전을 벌이면 신들린 도끼질에 무기가 박살나고 목이 베어지며. 설령 어설픈 화포를 쏘아댄다 해도 화력전으로 나서면 순식간에 박살난다. 도주해도 체력 문제로 며칠 동안 노를 저을 방법도 없으니 걸리면 무조건 전멸이었다.

형님도 세종대왕님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왜구도 바보가 아니며 남경 일대는 위험한 항로라 인식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 쪽을 억누르면 다른 쪽으로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대마도와 대내씨의 영지 사이를 가로질러 경상도를 노린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러하면 원흉은 누구라고 보느냐.”

“구풍으로 인하여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인삼을 너무 많이 심어 소출이 급감하였고. 마지막으로 전조 말엽 왜구 준동의 원흉인 구주(큐슈)의 영주들이라 여겨지옵니다.”

세종대왕님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여말선초의 왜구는 정말 나라를 박살낼 기세로 사방을 두들겨댔으니까. 잠시 세종대왕님이 분노를 삭일 시간을 드리고 말을 이어갔다.

“하오나 대내씨가 보내온 서한에 의하면 아직 본격적인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조만간 왜국에서 내란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며 내란 이후에는 더욱 준동할 것이옵니다.”

“내란이 기정사실이라면 왜국과의 교역은 끊길 것이며 왜구들의 준동은 더욱 심해지겠지. 이는 최악의 일이 아니더냐.”

“일을 행할 적에는 언제나 최악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일은 내전으로 아국과 친밀한 대내씨가 멸망하여 수많은 왜구들이 몰아치는 일이옵니다.”

형님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고 세종대왕님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왜구의 습격이 여섯 건에 불과하여도 소문을 억누르고 대책을 수립하려고 바쁜 상황이니까. 형님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아직 본격적인 일은 아니라는 말이로구나. 적어도 국서를 보냈으니 아국의 눈치를 보며 당분간 왜구가 준동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구나.”

“그렇습니다. 대마도주도 아국에 밉보이지 않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왜구들을 막아낼 것이며. 대내씨도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일은 당연하옵니다.”

“결국 근본은 구주의 도적떼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리는 것이 답이로구나.”

결론은 내려졌지만 실행할 방법이 문제였다. 병조판서인 권절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지만 인구가 많이 늘지 않았으니 장기전은 불가능한 현실이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를 듣고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상께서 지난번에 정하신 바가 염려되어서 그러는 것입니까.”

“차라리 당장 일어났다면 제가 해결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오나 내후년 세자에게 선위(禪位)할 작정이었는데. 세자가 권좌의 무거움을 깨우치기도 전에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형님이 세종대왕님처럼 양위를 결심했다고? 홍위의 나이도 서른이 다 되었고 형님은 쉰하나다. 연령은 적당하지만 외부 사정이 너무 좋지 않다. 세종대왕님이 형님을 위로하듯이 말했다.

“하오나 세자는 영민하고 사려가 깊사옵니다. 주상께서도 세자와 함께 일을 하시며 느끼신 바가 있지 않사옵니까. 세자를 보필하는 신료들 또한 재능이 출중한 자이니 지나친 심려를 하지 않으셔도 될 일입니다.”

“제가 국정을 제대로 행한 것은 삼 년이 지나서이며. 사 년차에 벌어진 하르빈 전투에서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멋대로 보내어 후회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은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주상께서 정하신 뜻이 명국도 아닌 왜구에 의하여 흔들린다면 옳은 일이 아닙니다.”

형님이 입술을 짓씹으면서 애꿎은 잔디를 발로 걷어찼다. 그만큼 답답한 마음에 울분을 토하고 싶지만 왕이라는 신분으로 그런 일을 벌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침묵이 계속되었다. 세종대왕님은 돌아서서 서역제국기를 읽어 보시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종대왕님의 생각은 무엇일지 궁금했지만 의외의 말이 나왔다.

“신숙주가 편찬한 서역제국기에 의하면 오사만국은 거대한 대포를 만들어 성벽을 무너트릴 정도로 많은 구리를 사용한다 하였습니다. 설령 왜국과의 교역이 끊겨도 오사만국에서 구리를 들여오면 될 일입니다.”

“실은 탐검사(探檢司)에서 여송(呂宋 - 필리핀 일대)이라 불리는 군도를 탐검하여 여러 국가들과 접선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법 큰 소득을 거두었지만 아직 공표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공표하지 아니 하였다면 홍위의 치적(治積)을 쌓기 위하여 남겨둔 일입니까. 주상께서 그러한 일을 하였다니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여송이면 필리핀 일대를 뜻하는 한자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에는 필리핀에 대해서 동그란 섬만 그려댔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한명회의 고난을 상상하는 와중에 형님의 말이 계속되었다.

“작년에 보낸 탐검사의 관원들은 문래국(文萊 - 브루나이)에 다녀왔으며. 이들의 소개로 아직 건실한 세력이 없는 여송도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여송도라 하면 특산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월국(베트남)이나 조와국(마자파힛 제국)과 교역을 행하는 일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탐검사의 관원들이 다녀온 결과. 톤도(Tondo)라 칭하는 국가의 특산물은 금이었지만 실제로는 구리도 많이 소출되었으며. 다만 톤도국에서는 공인(工人)이 적어 구리를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고 쓸모 없게 여긴다 하였습니다.”

“톤도국이라. 그렇게 머나먼 고장으로 사람을 보내 땅을 사들이고 광산을 만들 여유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금 막 떠오른 사실이다. 필리핀에서는 금도 생산되었지만 엄청난 양의 구리도 생산되었다. 다만 식민지배를 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구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근대 이후 부각되었지.

그렇지만 세종대왕님의 말대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필리핀에 구리광산을 만들 여력이 남을까? 형님도 어렵다고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도 생각이 있다.

“톤도국의 사람들은 금을 바랄 뿐이며 구리 광괴는 쪼개져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관원들이 광괴 일천 근을 사들였지만 제대로 된 소출을 얻으려면 새로운 광산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상전하께 아뢰옵니다. 들여온 구리 광괴를 오사만국의 학자에게 보내 보십시오. 톤도국이 아국과 같은 기술을 보유하였다면 모르겠지만 기술이 부족하여 구리 속에 섞인 금을 확인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버려진 광괴에서 금이 소출된다는 말이더냐.”

형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어깨를 잡아챘다. 생각해 보면 일본도 기술이 부족해서 명나라에 구리를 수출하고. 명나라에서는 구리에서 은을 추출해 요긴하게 사용했다. 지금 조선에 있는 기술자들은 보통 기술자가 아니다.

메흐메트 2세가 보내온 오스만 제국의 화학자는 현재 세계 최고의 화학기술을 가지고 있다. 당장 인쇄기에 사용되는 잉크도 그들이 만든 물건이며. 지금은 사옹원에 소속되어 분청사기에 사용되는 안료를 만들고 청자를 복원하는 작업도 같이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구리에서 약간의 은을 분리했다. 이런 자들에게 구리광맥 속에 섞인 금을 분리하는 일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헛되이 버려지는 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이다.

“톤도국의 사람들은 구리 광괴를 쪼개 확인하고 금이 없으면 버릴 것입니다. 만약 버려진 구리 광괴에서 금을 뽑아낸다 하면 돌조각에서 금을 캐내는 일이 아니옵니까?”

“듣고 보니 가능한 일이로구나. 왜국에서 수입한 구리에서 은을 뽑아낸 자들이니 불가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을 다투어 구리 광괴를 가져올 것입니다. 아국에서 많은 사람을 보낼 필요도 없으니 기술자 백 명과 병사 천여 명이면 족할 것이옵니다.”

조선에서 많은 노동력을 제공할 필요도 없다. 그저 기술자들을 철저히 보호할 병사들을 보내서 거점을 만들고. 거점에서 기술자들이 광괴에서 금을 뽑아내서 돌려주고 구리를 조선으로 수입하면 충분하다. 간혹 금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거야 그쪽 사정이다.

일이 성사된다면 구리의 새로운 수입처가 생겨나겠지. 수입하는 장소가 여럿으로 늘어나면 하나 정도는 없어져도 상관없으니 일본과의 전쟁은 거리낄 이유가 없다. 실패하면 광산을 만들면 될 일이고. 세종대왕님은 기쁜 얼굴로 말했다.

“역시 유는 시야가 넓고 생각이 비범하구나. 주상께서는 어서 오사만국의 학자에게 톤도국에서 가져온 구리 광괴를 보내십시오. 혹여나 유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국은 손만 대고 모든 일을 해결할 것입니다.”

“아바마마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눈앞에 답이 있는데 먼 길을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톤도국에서 들여온 구리 광괴는 일천 근에 달하니 충분한 양입니다.”

난제 중에 난제를 해결했지만 걱정되는 사실이 있었다. 필리핀의 지독한 기후에 쉽사리 적응할 사람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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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년 7월, 오랜 간만에 종친 여럿이 궁궐에 모이게 되었다. 개성에서 전령이 내려와 귀부를 청한 신농도의 원주민들을 한양으로 올려보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신농도에 대한 정보는 한명회가 작성한 표류기(漂流記) 라는 서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종친들이 모이는 사유도 제각각이었다. 형님이 나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힘을 숭상하는 원주민들의 기를 꺾으라고 요청하였으니. 그래서 입신체비사들과 함께 나서게 되었다.

안평대군은 피렌체의 미술가들과 함께 생소한 원주민들을 회화로 남기기 위하여 도착하였으며. 임영대군은 자신의 아들인 구성군 이준과 함께 기마술로 원주민들의 기를 꺾는다고 했었다. 그렇게 종친들이 모였지만 원주민들은 생소한 풍경을 보면서 겁에 질려 있었다.

“가만히 있으시오! 주상전하를 뵙는 자리가 아니오!”

“비켜보게. 이들의 말을 대충 알고 있으니 내가 말려 보겠네.”

폴리네시아인은 조선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겁에 질려서 사방을 돌아봤다. 다들 당대한 체격을 갖추고 있으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다. 그런 폴리네시아인을 다루는 한명회는 땀을 흘리면서 사방을 돌아다녔다.

폴리네시아인의 행렬이 경북궁의 외조(外朝 - 정문에서 내조 사이의 공간)에서 멈췄다. 그들은 머나먼 이국의 모습과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을 보고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주상전하 납시오!”

악단이 풍악을 울리고 형님과 홍위가 천천히 걸어 나섰다. 내금위들이 나서며 높은 단을 쌓았고 형님은 단 위에 올라가 팔을 벌리면서 인사를 시작하였다.

“머나먼 이국인 신농도에서 아국에 귀부를 청하였으니 참으로 훌륭한 일이로구나. 조선은 언제나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귀부를 청한 이들을 받아들이려 하노라.”

한명회가 뭐라고 말을 전달하지만 제대로 배우지 않았는지 사방을 기웃거리면서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다. 형님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려는 눈치를 보였지만 억누르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수양대군은 들으라. 이들이 무를 숭상하고 담대한 체격을 떠받드는 일을 좋아한다 하더구다. 이러한 이들에게 입신체비가 무엇인지 알려 주어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도원군을 비롯한 입신체비사들은 앞으로 도열하라!”

나도 많이 늙었다. 올해로 48세이니 근손실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이제 1,250근을 드는 일도 벅차다. 오히려 현동이가 나보다 체격이 비대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웃옷을 벗고 입신체비복을 드러내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우이?”

“마우이! 마우이!”

폴리네시아인들이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왔다. 병사들이 제지하려 했지만 형님이 손을 들어 말리지 않게 하였고. 삽시간에 나를 포함한 열 명의 입신체비사들은 열렬한 눈빛을 보내는 폴리네시아인들에게 둘러쌓였다.

“한명회. 대체 이들이 무어라 하는 것인가.”

“마우이라는 영웅이 부하들과 함께 돌아왔다고 하고 있습니다. 피부가 하얗고 문신이 없지만 머나먼 이국에서 새로 태어났으니 당연한 일이라 합니다. 위대한 마나를 나누어 달라 청하고 있습니다.”

마우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떠받드는 일은 당연해 보였다. 한명회의 체격만 봐도 위대한 마나를 가지고 있다 칭송했는데 여기 모인 입신체비사들은 모두 한명회보다 뛰어난 자들이다.

살집이 두툼하고 뱃살이 출렁거리는 몸과 달리 나를 비롯한 입신체비사의 체지방은 15%를 넘어가지 않는다. 도나텔로는 덩어리라 모욕했지만 폴리네시아인에게는 완벽한 몸으로 보이리라.

“한명회. 이들의 말을 할 수 있다 하였으니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전하게. 정말 위대한 마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주상전하께 복속한다면 가르쳐 줄 것이라고.”

“네? 정말이십니까? 이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친다 하셨습니까?”

“그저 위대한 마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려 준다 하면 충분한 일이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폴리네사이인은 기쁨에 넘치는 환호성을 질러댔다. 한 건장한 청년이 앞으로 나서서 손으로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고. 나는 가볍게 청년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우아아아아! 마우이!”

“대군어른! 저희도 이들을 들어 올리면 됩니까?”

“그렇다네! 이들에게 입신체비가 가지는 위대한 힘을 보여주면 충분한 일이라네!”

아무리 봐도 나의 손을 잡고 마나 어쩌고 마우이 어쩌고 하는 것을 보면 신화 속의 인물과 함께해서 마나를 나눠 받으려는 목적이리라. 하지만 오히려 좋은 일이다.

이들이 가진 식인 풍습은 대만 원주민과 흡사하다. 상대를 죽여 마나를 흡수해서 더욱 강해지려는 공명심에서 시작되어 변질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입신체비를 변형하여 적용한다면? 다른 사람의 마나가 아니고 만물의 마나를 받아들여 강해지는 방법이라고 포장한다면? 무협지에서나 나올 표현이지만 폴리네시아인에게는 절실하게 받아들여지리라.

그렇게 남자들 모두가 나와 제자들에 의해 영압(밀리터리 프레스)을 한 번 경험하고 난 다음 흥분을 억누르며 뒤로 물러났다. 이후 격렬한 하카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봐도 환영의 뜻을 담고 있으리라. 기분이 좋아져서 웃고 있는데 형님의 말이 들려왔다.

“저들을 톤도국에 보내면 일이 수월해지겠군.”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기후에도 온전히 적응할거고 배신같은건 생각도 하지 못할거고. 그렇다면 누군가는 저들을 관리하기 위해 필리핀에 내려가야 한다는 소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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