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76화 (176/573)

< 2장 114화 - 4년이 흐르고(2) (1218 06:00 수정) >

1465년 6월, 동궁에 있는 입신체비장에서 형님의 입신체비를 돌봐주며 나 또한 몸을 단련하였다. 평소라면 입신체비를 하며 쉬는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겠지만 불청객이 있었다.

“입신체비에 능하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로군. 하지만 상체에 얽매이지 말고 하체를 단련하는 것이 좋을지어다.”

“주상전하께서 명하신 바를 충실히 따르겠사옵니다.”

새로 들어온 사관은 이전과 달랐다. 거리낌 없이 대역기를 들어 공좌(스쿼트)를 하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제자다. 춘추관(春秋館)에서 새로 선발한 관원은 김종직이었다. 삼대 운동 기준으로 900근을 달성한 자이니 형님보다 뛰어난 입신체비사이다.

김종직 한 명만 사관으로 있다면 그가 없는 날에 민감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만 다른 자도 있었다. 역시 내 제자인 윤생원이다. 지금은 춘추관의 수찬관(修撰官 - 정8품 관직)인 윤사철(尹士撤)이지.

김종직과 윤사철은 꿋꿋이 입신체비를 마치고 사초를 적는다. 그러니 예전처럼 민감한 주제를 몰래 이야기할 방법이 없었다. 한참 생각을 거듭하던 형님은 마무리 운동을 마치고 실망하는 표정을 숨기고 사소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주현이가 참으로 놀라운 재주를 가졌더구나. 서역에서 가져온 수많은 물산으로 다채로운 요리를 만드니 대단한 일이 아니겠느냐.”

“아직 미숙한 아이입니다. 부족한 솜씨를 뽐내다 사옹원(司饔院)의 숙수(熟手)들에게 기이한 음식을 가르쳐 드릴까 염려하고 있을 뿐입니다.”

“겸손함이 지나치구나. 네가 본다면 부족한 점은 있어도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새로운 물산을 활용하는 일은 남다른 재주가 필요한 법이다.”

이 시대의 요리사는 대부분 남자이다. 정확히는 직업 요리사가 대부분 남자다. 그런 점에서 주현이의 재능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4년 전에 사위인 정현조(鄭顯祖)와 혼인하였지만 혼인 생활은 나의 집에서 했었지.

작물을 들여온 사람은 나였고. 형님은 공을 치하하면서 새로 들여온 작물이 수확되면 일부를 나에게 하사했지. 그런 작물들은 주현이의 눈에 들어와서 새로운 요리로 탈바꿈했다.

돼지 사료로 쓰이던 고구마 줄기를 이용한 요리는 기본이요. 나도 요리 방법을 말하지 않아 파와 비슷하게 쓰이던 양파는 찌개와 탕에 요긴하게 쓰이게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요리가 주현이의 손으로 탄생하면서 끔찍한 녀석도 탄생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건면포이다. 시험 삼아 보관하였는데 삼 년이 지난 지금에도 건면포가 상하지 않았으니 더욱 마음에 드는구나.”

“본디 음식을 보존하기 위하여 바싹 말리는 일은 흔한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도 참으로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 쌀이 비싼 북방이나 요리가 힘든 수군은 건면포를 비축하여 비상시를 대비하면 좋을 것이다.”

형님이 말하는 건면포는 건빵이다. 주현이는 귀한 밀가루를 사용한 빵이 곰팡이로 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어포를 보관하듯이 바짝 말린 빵을 만들어 보관을 쉽게 하려 하였다.

처음에는 대항해시대에 쓰였던 비스킷처럼 손바닥 크기였지만 먹기 쉽게 만들자고 크기를 줄였다. 여기에 몸에 좋게 한다고(입신체비서의 식이편을 참조했다) 통밀가루를 사용했다. 그러니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녀석이다.

그렇게 현대의 건빵보다 1.5배 정도 커다란 건면포가 완성되었다. 차돌같이 단단해서 입안에 넣고 한참을 우물거려야 가까스로 씹을 녀석이다. 다른 사람들은 좋아했지만 나는 절대 아니다. 아직도 이등병 때의 일이 잊히지 않는다.

‘폭설로 인하여 부식추진이 불가하다. 전투식량도 떨어졌으니 이틀 동안 건빵을 먹는다.’

당시를 생각하면 등골에서 식은땀이 치솟는다. 주현이 앞에서는 맛있다고 먹으며 칭찬했지만 앞으로 두 번 다시 먹지 않으리라. 식은땀을 닦아내니 형님이 의복을 갈아입고 나서면서 말했다.

“세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너와 함께 북방에 대한 일을 하였으나 끝마칠 시기가 되었다 하더구나.”

“내일로 일에 착수한 지 오 년이 되옵니다. 논의를 거쳐 일의 성공 유무를 판가름하고 부족한 점을 파악하여 장계를 올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일이구나. 며칠 뒤에 아바마마와 함께 논할 일이 있으나 네 힘이 필요하다. 명을 내리면 나와 함께 아바마마와 이궁에 들르자꾸나.”

세종대왕님이 무슨 일일까. 경국대전의 수정과 보급은 삼 년 전에 끝나서 더 이상 중요한 업무는 하지 않고 소일거리를 하시면서 지내는 것이 낙이신 분인데. 그렇지만 형님의 표정을 보니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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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 홍위는 대리청정(代理聽政)으로 북방에 대한 업무를 담당했다. 형님도 대리청정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사소한 업무와 병기 개발이 주요 업무였다. 하지만 홍위에게 너무 막중한 업무라 여겼는지 신료들의 우려가 많았다.

결국 자문위원으로 내가 달라붙게 되었고 북방의 일에 많은 지식을 가진 실무진들도 동참하였다. 이제 그런 일도 마무리 지을 시기가 되었다. 육조의 판서들이 모두 동석한 자리에 홍위가 들어왔다.

관원 모두가 지난 일 년 동안 북방을 돌아보고 온 김시습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시습은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담은 서책을 나눠주고 지도를 짚어나가며 보고를 시작했다.

“작년부터 경원을 시작으로 하여 솔빈(우수리스크), 동평(중국 밀산시), 안변(하바롭스크)을 비롯한 여섯 군현(郡縣)과 스무 곳의 마을을 돌아보고 현황을 정리하였사옵니다.”

“고생이 많았소. 그러한데 서책이 제법 두껍구려.”

“간추리기 위하여 도표(圖表)로 정리하였으나 부족한 솜씨로 세자저하의 눈을 어지럽힐까 염려됩니다. 그리고 제가 욕심을 부려 호구조사를 행하였습니다.”

홍위가 서책을 훑어보고 도표를 확인한 다음 김시습을 노려봤다. 평소에 김시습과 사이가 좋던 녀석인데 대체 무슨 일일까. 홍위는 화를 억누르는 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구는 도합 팔만 명에 달하며 개중 오만 명이 아국에 귀부하거나 복속된 여진족이라 하였는가. 그것도 두만강 너머에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것이 분명한가?”

“그렇습니다. 여덟 살 이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팔만이 넘습니다.”

“농은 그만하게나. 호구를 조사하는 일은 천 명이 넘는 관원들이 일 년 내내 행하여도 부족함이 있는 것인데 자네와 함께 나선 관원은 스무 명에 불과했다네. 아무리 돕는 일손이 있다 하여도 불가한 일이 아니겠는가.”

“북변의 백성들은 모두 면포방에 들러 파네(빵)를 사들여 끼니를 해결합니다. 그러하니 현지의 관원이 아침마다 면포방을 돌아보게 만들어서 호구를 조사할 수 있었습니다.”

홍위가 나를 돌아보더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4년 전에 군현을 설치할 시점에 나와 의견이 대립한 적이 있었으니까.

‘숙부님, 백성들을 사방으로 풀어놓으면 스스로 마을을 만들고 멋대로 살다가 화적에게 습격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하니 병사를 동원하여 보호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밀과 쌀은 다른 것이며, 파네와 밥은 다른 것입니다, 병사는 필요하여도 도적을 추포(追捕)하는 일에 주력하게 만들며. 진가루를 만드는 곳과 커다란 화덕을 다루는 곳을 두어 백성들이 스스로 모이게 만들면 될 일입니다.’

형님의 결론은 간단했다. 둘 다 하면 좋은 일이니까 둘 다 하자고. 북방에 이주한 양반을 비롯한 재력가는 나라의 지원을 받아 제분시설을 세웠고, 관아에 속한 관원의 가족들은 제빵 기술을 배우고 큰 화덕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상소가 빗발쳤다. 풍차는 헛되이 돌아 돌가루를 만들 뿐이며 화덕은 벽구들(페치카) 대용으로 쓰인다고.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상소는 올라오지 않았으며 결국 마을의 중심 시설이 되었다. 홍위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하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겠네. 정녕 풍차와 커다란 화덕이 백성들을 모이게 만들었단 말인가. 백성들의 생활을 면밀히 알지 못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군.”

“북방에 이주한 이들은 소출된 곡식을 제분하기 위하여 풍차와 연자방아를 사용하며. 면포방에 들려 파네를 구워갑니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더군요.”

“그러하면 앞으로 호구 조사는 쉬운 일이 되겠군. 하지만 숙부님은 이러한 일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 사저에서 잔치를 벌였던 라마국(신성로마제국)의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모습을 보니 밀을 주식으로 삼는 고장에서는 사람이 모여 힘을 합치는 것이 순리라 여겼습니다.”

서양의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원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식습관이다. 밀은 불편한 식품이다. 현대라면 모르겠지만 이 시대에는 풍차나 연자방아로 밀가루를 빻아야 한다. 매 끼니마다 밀가루를 제분하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소모된다.

설령 밀가루를 만든다 하여도 오븐이 문제다. 현대의 오븐과 달리 이 시대의 오븐은 한번 빵을 구우면 수십 명이 먹고 남을 빵을 굽고 잔열을 활용해서 계속 굽는다. 그런 녀석을 개인이 소유하려면 양반집은 돼야 가능한 일이리라.

그러니 논과 밭을 일구는 한반도와 달리 북방에서는 고을에 풍차와 제빵소를 만들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마을을 형성하게 된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관원이 한 달 정도 제빵소에 머무르며 조사하면 대략적인 호구 조사가 끝난다.

서류의 신뢰도가 보장되었으니 시선이 변했다. 가장 먼저 공조판서인 권람이 공조 외방 관원들이 보낸 물가 목록을 훑어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를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믿을 수 없는 보고였지만 내용을 확인하고 자신감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외방 관원들이 풍차와 연자방아에서 제분되는 밀을 확인하였는데. 한 해에 소출되는 밀이 칠십만 석에 달한다 하였습니다. 이 말도 신빙성이 있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아마 더욱 많을 것일세. 밀을 삶아서 밥을 만들어 먹는 이들도 있을 것이니 실지로는 구십만 석에 달할지도 모르겠군. 그러하면 당분간 북방에서 배를 곯는 이들은 없겠군.”

사람이 일 년 동안 먹는 식량은 쌀 다섯 석, 밀은 열량이 약간 낮으니 여섯 석이다. 그리고 북방의 인구는 기껏해야 10만 명이다. 이미 북방의 생산량은 요구량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조만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겠지.

언젠가는 인구 증가에도 한계가 올 것이다. 또한 신품종 밀인 사종은 혹한에 지독히 약해서 북방 한계선도 생각보다 낮을 것이다. 그렇게 먼 훗날의 일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는데 홍위가 서류를 훑어보더니 김시습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한데 현황 가운데 미심쩍은 부분이 있군. 혁철(赫哲 - 하제족)이라는 이들은 누구인가? 안변군의 북동쪽에 기거하는 야인이라 하였는데 철물을 사들인다고?”

“야인여진에 속하던 이들이 먼 이웃으로 여기던 이들이라 합니다.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수렵을 즐겨 하며, 철물이 귀한지라 모피를 팔고 잡철로 만든 철물을 사들인다 합니다.”

“좋은 일이나 언제까지 좋은 일이라 여기면 아니 되네. 이들이 아국의 부유함을 눈여겨보아 침탈할 마음을 품을지 모르니 철저히 경계에 나서야 할 것이네.”

“율도상회를 운영하는 홍길동이라는 자가 나서서 이들의 풍속을 파악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지략이 뛰어난 자이며 셈이 빠른 이이니 조만간 보고가 들어올 것입니다.”

조선에서는 기록도 없는 정체불명의 부족이지만 대충 짐작 가는 부족이다. 아무르여진이라고 불리는 여진족의 극동지방 분파이며, 훗날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벌에 희생되어 사라진 자들이다.

북방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지만 커다란 문제는 없었다. 아직 관원이 부족한 문제가 있지만 그건 세월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이제 형님에게 보고를 올리고 북방 개척에 대한 일을 넘겨줘야 하리라. 홍위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기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지난 오 년간 정말 고생이 많았네. 특히 새로 육조의 판서로 부임한 이들은 주상전하께 말씀을 올려 노고를 치하하도록 할 것이네.”

논의는 끝났다. 이번 북방 개척에서 얻은 교훈은 훗날 홍위가 왕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때에 요긴하게 쓰이리라. 며칠 뒤 형님이 명을 내렸고 세종대왕님과 이야기를 나누러 이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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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조금 일찍 왔구나. 신숙주가 만든 서역제국기(西域諸國紀)는 참으로 훌륭한 서책이로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지니 구단배(구텐베르크)가 만든 인쇄본을 볼 수 없어서 아쉬울 뿐이구나.”

“아바마마께서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소자가 보기에는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세종대왕님도 이제 68세다. 더 이상 입신체비를 해도 효험이 없고 오히려 몸이 상할 지경이니 유산소와 최소한의 근력 운동만 처방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방법이 없다.

현대라면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노인도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지만 여기는 조선시대이다. 시대의 한계는 거스를 방법이 없으니 미련은 버려야겠지.

아직 형님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책에서 눈을 떼신 세종대왕님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오사만국(오스만 제국)의 군주인 메메드(메흐메트 2세)라는 이는 비범한 자이니 경계해야 할지어다. 무릇 다른 국가를 멸망시켰다면 민심을 불편이 여겨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의심이 많고 잔혹하다 하지만 비범한 이입니다.”

“네가 보총을 전달하지 않고 불편을 무릅쓰고 옛 무기를 보여준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었구나. 그런 자에게 보총이 들어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방도가 없도다.”

세종대왕님이 보는 책은 서역제국기지만 내가 필사한 것이다. 안경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시력이 떨어진 세종대왕님을 위해 큰 글씨로 다시 썼었지. 그렇게 서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형님이 도착했다.

형님은 세종대왕님을 보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형님의 표정은 며칠 전과 다르게 어둡고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조금 늦게 되어 송구하옵니다. 아바마마께 심려를 끼쳐 드리니 제 부족함이 하늘을 어둡게 만들 지경입니다.”

“주상께서 심려가 깊으시니 이는 옳은 일이 아닙니다. 외방(外邦 - 외국)과 관련된 일이니 듣는 귀가 많아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네는 잠시 돌아가게나.”

사관으로 형님을 따라온 김종직은 세종대왕님과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깊숙한 인사를 올리고 궁궐 밖으로 나섰다. 사관이 스스로 물러날 정도면 정말 중요한 일이리라. 세종대왕님은 한숨을 내쉬면서 형님의 어깨를 두드리고 말했다.

“근래에 들어 변방에 변고가 생겼다 들었습니다. 주상의 심려가 깊으시겠습니다.”

“아바마마께서 행하신 일을 잊어버린 이들이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하지 않았습니까. 조만간 소문이 퍼질 것이니 어서 대책을 수립해야 옳은 일입니다. 유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 아니더냐.”

“물론이옵니다. 하오나 아바마마께서도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재작년 11월부터 동래부터 포항까지. 경상도 해안가에 왜구가 출몰하기 시작하였으며 올해 3월까지 총 여섯 번이나 출몰했다. 계해약조(癸亥約條) 이후 23년간 자취를 감춘 왜구가 나타난 것이라 아직 소문이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물론 나를 비롯한 국가의 수뇌부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처음 경주를 습격했을 때는 주민들을 피난시키고 병사들을 소집하였지만 왜구들은 벌써 항구에 있는 곡창(穀倉)을 모조리 털고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잡색군과 지휘관 역할을 하는 훈련도감은 꾀를 부렸다. 항구에 있는 곡창을 수비하기 쉬운 지형에 옮겨두며. 왜구들을 곡창으로 유인해서 유리한 위치에서 전투를 벌였고 대부분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왜구의 침입은 계속되었고 결국 포항까지 출몰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상께서 항의의 뜻을 담은 국서를 보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두 달 전에 보냈던 국서의 답변이 얼마 전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형님이 두 달 전에 입신체비를 하다 질문을 했었다. 과연 조선에 침략한 왜구의 뒷배는 누구일까. 그렇게 세 명을 지목했지만 아무도 답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형님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꺼낸 종이는 일본에서 보내온 답장이리라.

“아바마마께서 행하신 일을 되새겨 대응하려 하여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국서를 받고 혼란한 마음을 정리하느라 며칠 동안 어떠한 업무도 진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세종대왕님도 나도 국서의 내용을 보았다. 거기에는 미사여구와 함께 조선에 대하여 우호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소 시게모토는 ‘저희는 조선에서 보내오는 미곡이 아니라면 명줄이 끊길 지경입니다. 저희가 무슨 잘못을 할 힘이 있다 하십니까.’ 하며 애원하였고.

오우치 노리히로는 ‘저희는 언제나 조선의 편이며 혼슈(本州)의 모든 영주들은 군량을 비축하고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안달이 난 상황입니다. 그러한 마당에 함부로 힘을 분산할 연유가 있겠습니까.’ 하며 조선과의 친분을 과시하였으며.

호소카와를 비롯한 막부에서는 ‘지방에서 왜구가 준동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세토내해(瀬戸内海)에는 제 통제를 벗어난 놈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를 쉽사리 막을 수는 없으니 기다리십시오.’ 하며 책임을 회피하였다.

세종대왕님은 내용을 확인하고 분노로 손이 파들파들 떨릴 지경이었고 나 또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분명하다. 형님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왜국이 겪은 기근을 어여삐(불쌍히) 여겨 곡식을 싼값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왜국은 기근을 이겨내지 못하고 내부가 분열되기 시작하였으며. 급기야 명국이 아닌 아국을 향하여 왜구가 출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461년부터 1464년까지 매년 삼십만 석의 묵은 곡식을 오우치를 통해 헐값으로 일본으로 수출했다. 이는 굶주린 이들이 왜구로 돌변하는 일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늘어나는 화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세종대왕님은 국서를 모두 읽어보시고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예전에 대마도 정벌에 나선 경험을 되새기는 듯이 조용하면서도 냉정한 평가였다.

“주상은 지난 삼 년 동안 왜국을 너무 헛되이 대하셨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저의 부족함을 말씀하시니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왜인들은 야인들과 비교하여도 신의가 부족하며 절제라는 것을 모르는 족속입니다. 이러한 이들을 두어 서한을 전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오나 아국과 왜국은 동맹을 맺었으며 아직도 대내씨(오우치)에서는 아국과의 신의를 지켜 무역을 행하고 있습니다.”

형님의 분노를 억누르는 것은 아직도 유지되는 인삼 무역이 분명하다. 호소카와도 인삼을 사들이고 구리를 파는 일을 중단하면 조선의 손해가 크다 여기고 배짱을 부리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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