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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174화 (174/573)

< 2장 112화 - 새로운 세대(2) >

1461년 음력 8월, 여름동안 많은 비가 내렸지만 청계천은 홍수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형님은 피렌체의 미술가들을 불러 제법 많은 포상을 내렸다. 특히 희귀한 보석인 청금석의 원석이 주어지자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청금석은 아국에서는 장식을 만드는데 쓰이지만 라마국에서는 회화에 쓰일 안료를 만드는 일에 쓰인다 하지 않았는가. 나는 자네들이 그리는 바다의 풍경을 보고 싶다네.”

“청금석은 참으로 진귀한 재료이니 조선의 군주께서 정하신 바를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청계천을 온전히 만들었으니 이러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 일을 하여 보겠는가. 이번 일도 치수이니 충분히 할 수 있겠지.”

형님이 치수를 부탁한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한강이었다. 피렌체의 미술가들은 한강의 모습을 보고 새파랗게 질려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인식으로 이런 거대한 강은 존재하지 않을테니까. 아마 이탈리아에서 큰 강이 낙동강보다 못하던가.

“바다를 치수하라 하시다니. 그것은 모세가 와야 가능한 일입니다.”

“바다가 아니라 강이다. 지금은 여름인지라 물길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고 가물 적에는 저 아래까지 물길이 내려가느니라.”

형님이 한강변에 머리만 내민 바위를 가리켰는데 높이가 한 15척(5.2m)이나 되는 녀석이었다. 피렌체의 미술가들은 그런 말을 듣더니 불가한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는 도저히 불가한 일입니다. 저희는 여태까지 이것이 강이 아니고 바다인 줄 알았습니다. 차라리 바다를 뭍으로 만드는 일은 쉬울 것 같습니다.”

“바다를 뭍으로 만든다 하면 간척(干拓)이 아니겠느냐.”

“그렇사옵니다. 조선의 군주께서 저희가 거주할 섬을 정하였으나 주변에 갯벌이 제법 있었습니다. 힘을 모아 이런 갯벌들을 뭍으로 바꿔나가면 충분한 효험을 보일 것입니다.”

형님도 귀가 솔깃한 이야기였는지 당장 허가를 내렸고. 덕분에 피렌체의 미술가들은 당분간 강화도에서 갯벌을 간척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물론 간척하는 인부를 동원하고 각종 비용을 정하는 일은 딱히 관직이 없는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강화도에서 업무를 하던 중에 형님이 동궁 입신체비장으로 불렀다.

이런 때에는 사관도 오지 않는 곳에서 – 입신체비장에 들어오면 사관도 입신체비를 해야 한다 -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렇게 찾아갔더니 형님이 서책을 건네주셨다.

“두 번째 호구(戶口)조사가 완료 되었느니라.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더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어서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처음 보는 것이옵니다.”

“네가 만들어 놓고 다른 소리를 하고 있구나. 일전에 네가 작성한 종친들의 근생부(筋生簿)를 보고 따온 것인데 보기에 좋아서 널리 퍼트리고 있노라.”

다시 보니 기억이 나긴 한다. 한명회가 만든 근생부를 보고 더욱 개량해서 목판으로 표를 만들고 아예 인쇄해서 사용했으니까. 이걸 통계 조사에 사용한다면 업무 효율이 몇 배는 올라가리라.

조사내역을 상세히 보니 각 군 현의 성별, 연령대, 거주지 그리고 신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북방은 아직 행정력이 온전하지 않은지 추정치만 기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구가 너무 적었다.

“아국의 인구가 704만에 불과하다니. 여덟 살 이하의 아이들을 더한다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기껏 해야 820만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아직 서책을 만들 양은 아니지만 대양도의 토인들과 북방에서 활동하는 야인들을 합친다면 840만 정도가 한계이겠지.”

“참으로 적어 보이지만 돌이켜 보면 아바마마께서 나라를 다스리실 적 보다 많은 수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세수도 충분히 늘어났을 것이옵니다.”

“호구를 다시 조사한 덕분에 올해의 세수가 미곡으로 240만 석 정도 나오게 되었다. 인삼의 판매 수익을 더한 것이며 오사만국(오스만 제국)과의 교역상품을 판매한 수익이구나.”

재정은 넘쳐나지 않지만 충실한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구가 생각보다 늘어나지 않는다. 지난 십 년 전의 호구조사에서 659만 명이었는데 인구 증가율이 1%는 커녕 0.6%대에 가까웠다. 북방은 인구 증가율이 사민을 제외하면 0.4%대에 머물렀다.

“십 년 동안 새로운 작물로 나라를 풍족하게 만들며 세제를 개편하고. 새로운 영토인 북방에 사민을 하였는데 인구가 많이 늘지 않았사옵니다. 특히 북방이 너무 더디지 않습니까.”

“생각하여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욕심을 부려 사민을 하였지만 북방은 곡물의 소출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곳이니 백성들도 입을 늘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지.”

형님의 말을 들으니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좋은 농지를 써도 논을 만들 수 없는 고장이다. 이 시대에는 밭의 생산량이 논의 7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여유가 생기면 아이를 낳고 그렇지 않으면 절제하고 일을 하느라 애쓴다. 농토가 넓다면 농업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소득은 좋아도 인구는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대양도에 사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구나. 대양도는 더운 고장이라 하여도 제법 풍족한······.”

“주, 주상전하. 급보이옵니다! 황해도의 백정촌에서 교접시킨 미······.밀이.”

“숨을 고르고 이야기 하게.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는가?”

무례하게도 입신체비장에 난입해 형님의 말을 끊은 자는 호조판서 이인손이었다. 보고를 듣자마자 뛰어왔는지 이인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보고를 시작하였다.

“작년 각지의 백정촌에서 오사만국에서 가져온 밀을 접붙이고. 라마국에서 가져온 밀을 접붙였습니다. 두 밀 사이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없었기에 방치해 두었사옵니다.”

“그러한 일은 판적사(版籍司)에서 관할하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오사만국의 밀과 접붙인 아국의 밀에. 다시금 라마국에서 가져온 밀을 접붙였는데 놀랍게도 사분지 일에 해당하는 밀이 이렇게 변하였사옵니다. 오사만국과 라마국의 밀과 닮지 않고 아국의 밀과 닮은 녀석입니다.”

이인손이 보자기에 싸맨 밀을 꺼냈다. 길이는 조선에서 흔히 기르는 토종 밀이나 장안 일대에서 가져온 밀의 교배종과 흡사하였지만 이삭이 너무 늘어나서 기괴하게 보였다. 그리고 밀의 낱알도 조금씩 커진 느낌이 들었다.

“오사만국에서 이주한 농부는 밀을 보자마자 주저앉으며 기적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신이 보기에도 아국에서 기르던 밀과 비교하면 소출이 오 할은 늘어난 것입니다.”

“오 할이라 하였는가?”

“아직 종자가 온전하지 않아 오 할이 넘어설지도 모릅니다.”

유전공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한국의 앉은뱅이 밀이 현대에 보편적인 품종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생각하지도 않고 가져온 4종의 밀이 유전자를 섞으면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아무리 수확량이 좋아도 병충해에 약하거나 토질이나 기후에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니까. 그렇지만 고무적인 성과이며 형님도 이런 사실을 눈치 챘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다른 밀들의 종자와 섞이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산간오지에서 종자를 육성하도록 하여라. 혹여나 일이 틀어질지 모르니 가급적 여러 곳에 분산할 지어다.”

이인손이 고개를 숙이고 퇴청하였고 입신체비장엔 정적이 감돌았다. 북방 개척? 수확량 증가? 정말 북방에서 빵을 먹는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형님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이고 새 땅에는 새로운 곡식을 기르는 법이다. 아국이 획득한 북방과 남방에 각기 새로운 작물을 기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더냐.”

“감축 드리옵니다.”

“감축은 네가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즉시 북방에 대한 계획을 세울 것이니 네가 아바마마께 나아가 새로 수확한 밀을 보여드려라. 아바마마께서도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다.”

북방의 골칫거리중 하나인 식량 문제가 조만간 해결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조선이 정말 제국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인구가 늘어나도 삼십 년 뒤에 결과가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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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도는 음력 11월이 되어도 조선의 봄과 비슷한 기후를 보였다. 습도는 조금 높고 바람이 불어오니 밤에는 쌀쌀하지만 훈련장에서 뒹구는 이들이 그런 감상을 느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조선에게 귀부한 원주민들의 호적을 작성하고 모든 마을에 감시를 위한 병사들을 파견하였다. 그렇게 시일이 지나고 올해 8월이 되자 대양도 원주민들을 위한 혜택 아닌 혜택이 주어졌다.

육백 명에 달하는 토인. 대양도의 원주민이며 각 부족에 속한 젊은이들은 진흙탕을 기어서 빠져나오는 포복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저 멀리 장대 위에 올라있는 정범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원주민의 말로 욕설을 섞은 명령을 내렸다.

“이 개잡놈의 구더기 새끼들아! 니들은 원해서 여기에 왔으면서 엉덩이를 뭉개고 있을 것이냐! 어른이 되고 싶다면서 훈련장에 스스로 들어왔으면 제 몸 하나는 간수해야지!”

정범수의 몸에는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원주민들이 시작하기 전에 정범수를 비롯한 훈련도감 출신 고참병들이 시범을 보였다. 그렇지만 보는 것과 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시범을 보이는 자들이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자 웃음을 참지 못하던 원주민들은 직접 체험하게 되자 끔찍한 난관에 봉착하였다. 몇 명은 아예 진흙 속에 잠겨서 움직이지 못하고 가쁜 숨만 내쉬고 있었다. 정범수는 그러한 이들을 놓치지 않고 파악하였다.

“저 씨○놈을 봐라! 진흙 구덩이에 똥 덩어리가 퍼져있다! 어서 가서 똥 덩어리를 치워라!”

“네! 정 사직(司直)님! 어서 들것을 가져와라!”

“이건 기초 훈련이다! 훈련도감과 화기도감을 졸업하는 이들이면 누구나 겪는 훈련이란 말이다! 지금부터 네놈들의 썩은 정신을 바로잡고자 교보훈련(인터벌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사람의 한계는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혹시나 몰라 입신체비에 능통한 유생을 붙여 놓았으니 알아서 관리하리라. 그렇게 지옥과 같은 교보 훈련이 시작되었다.

“언제나 뛰면 편하지! 언제나 걸으면 편하고! 그런데 사람과 싸우면서 이런 편한 상황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 지금부터 내가 뛰라면 뛰고 걸으라면 걷는 것이다!”

조선에서도 수많은 병사들을 절망에 빠트린 교보훈련이 시작되었다. 서로의 발이 엉켜 넘어지는 이도 있었지만 악착같이 버티면서 탈락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정범수는 훈련이 끝나자 다른 1기생과 오늘의 일을 의논하였다.

“오늘도 악착같이 버티더군. 예전의 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데?”

“악다구니가 좋은 것이지 몸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녀석들이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기나 하였습니까? 그리고 몸이 상하여 퇴소당하는 이들이 벌써 백 명이 넘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골치가 아픈 일이네. 그나저나 주상전하께서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하셨는지 그것이 궁금하네.”

대양도 원주민들의 풍습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목을 베어와 성인임을 증명하는 잔혹한 악습(惡習)이다. 그러나 실상을 파악하면 왜곡된 성인식의 형태가 발전한 것이었다.

평지에서 사는 부족들 가운데는 성인식을 치르지 않는 부족도 있었다. 그러나 산지에서 생활하는 부족은 다른 이의 목을 베어 자신의 힘을 증명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문종은 대양도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계속 파악하면서 이런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성인이라 인정하는 것을 국가가 대신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은 문종은 시험 삼아 대양도에서도 병사를 모집하기로 하였다. 정규전에 쓰이지 않는 특수한 부대인 임해도감(林海都監)을 창설한 것이다.

“초모를 하니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오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저희 병사들과 싸우다가 병신이 된 자들도 응하였으니 돌려보내느라 힘들었습니다.”

“혹여나 말일세. 만에 하나지만 여기서 힘을 얻은 자들이 아국에 역심(逆心)을 품을 경우에는 일이 곤란해 질 걸세. 역도들을 훈육한 자라 하여 여기 있는 자들은 크나큰 고난을 겪겠지.”

“도감군이 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감군의 훈련을 버텨내는 인재들은 아국에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것이 많으니 강한 것이지요.”

“그렇긴 하지. 석 달 동안 죽어라 고생해서 훈련을 마친다 하여도 군무(軍務)에 관련된 일은 일절 가르치지 않으니 속 빈 강정이나 다름이 없겠어.”

훈련도감과 화기도감은 단순한 교육을 하지 않는다. 군사적 지식 외에도 선임자와 기존 전쟁의 전훈을 물려받은 복합적 교육을 택하며 훈련기간도 기존의 7개월에서 15개월로 길어졌다.

반면 임해도감은 2차에 걸쳐서 훈련이 이루어진다. 적개심이 남아 있으며 악습을 가진 이들이니 모든 교육을 할 수 없었다. 특히 처음 석 달은 육체적 단련과 악습을 타파하는 훈육에 중점을 두었다. 정범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낮에 녀석들은 훈육하는데 무어라 하는 줄 아는가? 세상이 그렇게 넓고 사람이 많으면 자신들이 쓰러트릴 적도 많으니 좋은 일이라 하더군.”

“왜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생각하여 보니 얼마 전에 왜구를 만나 싸운 일이 있었지요. 이들을 지금 통솔하지 못하면 그렇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구들과 전투를 벌이다 부상을 입은 스무 명은 어떻게 되었나?”

“아직도 치료중입니다. 상처가 깊지는 않으니 조만간 훌훌 털고 일어날 것입니다.”

보름 전. 조선에서 내려오던 정기 보급선은 왜구들과 접촉했다. 대방선 세 척과 방패선 세 척이 서른 척의 적선과 교전하여 적을 궤멸시키고 아군의 피해는 스물 남짓에 불과하였다.

정범수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난번에 들었던 전훈과는 상반된 결과이기에 의문이 들었다. 왜구들은 화포를 쓰지 않는다 하였는데 왜 스무 명이나 부상을 입었을까.

“조와국(마자파힛 제국)에서 오십 척을 상대로도 싸워서 이긴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고작 칼을 쓰는 왜구를 상대로 큰 피해를 입었는지 이야기는 들어 보았는가?”

“조와국의 해구(海寇)들은 화포를 사용하고 근접전을 벌이려 하지 않았다 합니다. 하지만 왜구들은 화포를 두들겨 맞고 결사적으로 함선에 올라타서 싸움을 벌였다 하더군요.”

“참으로 멍청한 짓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생소한 전술인지라 오히려 허를 찔렸던 것이네.”

“왜구들을 격퇴하고 배를 확인해 보았지만 식량이 이틀 분량이라 합니다. 왜구들이 명국을 노략질하지 않았으면 돌아가지도 못하고 굶어 죽을 것이라 발악을 했나 봅니다.”

큐슈 일대의 기근은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조선에서 곡식을 수입하기는 하지만 지방의 작은 영지에서는 조선의 곡식을 사들일 자금도 바닥난 실정이었다. 그런데 정범수는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생각을 거듭하다가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피해가 컸지? 막상 왜놈들이 잘 싸워봤자 방패선에 갈고리를 걸고 기어 올라와야 하지 않는가. 그런 유리한 상황에서 스물이 넘게 다쳤다고?”

“무기가 너무 거대해서 문제라더군요. 육상에서 진을 치고 싸울 적에야 기세 좋게 휘두르면 충분하지만 배 위에는 밧줄도 넘쳐나고 비좁지 않습니까.”

“그거 마치 대양도 같군. 처음에는 병장기가 너무 크고 둔중해서 숲 속에서 벌어지는 기습에 취약했었지.”

크다고 무조건 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상황에서는 작고 날렵한 것이 도움이 되리라. 그렇게 여기면 도감군의 장비도 배 위에서는 작고 날렵한 형태로 변용되어야 하리라.

멀리서 대양도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흉내를 내면서 나무에 작대기를 던지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 기껏 해야 한자 반(52cm)에 불과한 손도끼를 신묘하게 다루는 이들이 되리라. 정범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물어보았다.

“이보게. 임해(林海)의 뜻이 무성한 숲이라는 뜻이긴 한데 하나의 한자만 놓고 본다면 숲과 바다라는 뜻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임해도감이 배울 예정에 무엇이 있는가. 아니 이건 내가 알고 있지. 체탐인에게 교육을 받기로 하지 않았는가.”

임해도감에 경험을 전수해주는 이들은 다른 도감군과 달리 체탐인(體探人)이었다. 그들은 조선과 명의 국경을 넘나들며 여진족의 정황을 파악하는 현대의 수색대에 해당하는 부대였다.

이미 여진족들이 대부분 귀부한지라 할 일이 없어진 자들이나 그들이 가진 경험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본래 임해도감을 병사로 동원하여 훈련도감과 화기도감을 보조하며 대양도의 정벌을 빠르게 하고자 마음을 먹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장계를 작성해야 하겠군. 이만 돌아가 보게나.”

임해도감의 병사들은 무성한 숲속을 거닐며 적을 습격하고, 후방을 교란하며, 보급을 끊는 일에 특화된 훈련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 자들이니 병장기는 손도끼나 길지 않은 환도가 전부였으니 정면에서 싸우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몸을 움직이기 힘든 공간에서 좋은 무기는 배 위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으리라. 사람들이 돌아가자 정범수는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장계를 작성하였다.

[주상전하께서 정하신 크나큰 뜻을 소신의 아둔한 눈으로 보았사옵니다. 근래에 들어 왜구들이 기승을 부리는데 임해도감의 병사들을 함선에 승선하게 하시어 왜구들을 상대로······.]

“내 생각이 틀리지는 않겠지. 나도 경음당(鯨飮堂 - 홍윤성의 호) 형님과 같이 훈련도감 1기 출신인데 내 눈이 비뚤어지지 않았으면 분명히 통할 거란 말이야.”

장계의 말미에는 ‘이들이 무용을 뽐내기를 좋아하는 바이니 왜구들을 토벌하는 일에 몸을 사리지 않을 것이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정범수의 장계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훗날에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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