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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172화 (172/573)

< 2장 110화 - 대역기는 답을 안다 >

1459년 11월, 선공감의 관아 인근의 집에서 주연(酒宴)이 시작되었다. 흉년이 예정된 해이니 떠들썩한 잔치는 아니었지만 주연을 베푸는 방길주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방길주의 나이도 올해로 67세였다. 입신체비를 해온 덕분에 허리가 구부러지지도 않았고 나이에 비하여 정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세월의 흐름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런 방길주의 곁에서 여국강을 시작으로 한 항해사들이 잔을 들어올렸다.

“동생! 오랜만에 천축에 다녀오니 어떠한가? 이십 년 전에는 정화 어르신 함대에 있던 하급 항해사에 불과하였는데. 이제는 함대를 이끄는 만호가 되었다니 참으로 대단한 일일세.”

“다른걸 떠나서 보선이 없으니 참으로 편하였지. 둔하고 거대한 놈이 젊을 적에는 참으로 보기 좋았지만. 막상 몰아보니 형님의 배가 훨씬 좋더군.”

두 노인이 술잔을 비우고 서로를 훑어보았다. 조선으로 오기 전에는 그저 면식만 있고 서로 친하지 않은 사이였지만 머나먼 조선에 오자 동질감을 가지고 친구 사이가 되었다.

술자리가 이어졌고 항해사들이 자기들끼리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누었다. 방길주와 여국강은 주안상을 따로 마련해서 잔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실력이 있는 자가 어찌 요동으로 이주되었을까 궁금하네.”

“내가 아들들을 분가시키면서 조금 많이 돈을 썼나? 그리고 낙죽(烙竹)일이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것은 알잖아?”

“설마 뇌물을 주지 않아서 요동으로 보냈다 하였는가?”

“당연한 것 아니겠소? 뇌물로 은자 쉰 냥을 내면 편한 곳으로 이주하고 백 냥을 내면 이주를 면해주겠다 하였지. 그런 돈을 가질 이유가 있겠소?”

“그건 대체 어떤 부랄 없는 고자새끼야!”

차라리 공평하게 사람을 선별하여 이주시켰다면 억울하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방길주가 성을 내자 여국강이 달래는 말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제 조선이니 무얼 바라겠소? 나도 이제 쉰이 넘었소. 아무리 입신체비를 하여 몸을 건사하여도 환갑을 넘기면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것은 당연하지 않소. 하지만 욕심이 생기더군.”

“손자 장가라도 보낼 것이지.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생기기에 그런가.”

여국강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았으며 지독한 고생을 했던 땅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눈을 빛내며 여국강의 말이 이어졌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지. 조와국(마자파힛 제국)의 변방에 있던 토인을 만났는데. 그들은 작은 나룻배로 대양을 건너 섬 사이를 오고 가더군.”

“그렇다 하여도 기껏 해야 탐라도에서 대양도(대만)에 다녀올 정도겠지.”

“기껏 해야 낚싯배로 쓰이는 나룻배로 대양을 오가는 것만 하여도 대단한 일이지. 생각 같아서는 일 년 정도 머물면서 이런 저런 것들을 배우고 싶었는데.”

“그렇게 재능이 뛰어난 토인이면 주상전하께 천거하면 어떠한가? 아국으로 오면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인데.”

방길주의 말에 여국강이 입에 머금고 있던 술을 뿜으면서 방길주를 돌아봤다. 잠시 숨을 고른 여국강이 고개를 저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토인들이 조정에서 죽어라 일하다가 정말 죽어 나자빠지게 만들 셈이오?”

“농담일세. 그렇지만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는 말이 이해는 가더군. 얼마 전 안평대군 어른께서 내가 보기 좋으라고 회화를 많이 내려주셨네. 연습 삼아 그린 각 국의 선박이었지.”

“앞으로 일이 바쁘겠소. 그러고 보니 내가 항해사를 했던 4조의 함선들이 피해가 조금 큰데.”

“또 배를 어떻게 해먹었기에 그러나!”

장난스럽게 말한 방길주였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국강은 쥐구멍에 기어들어가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구풍(태풍)에 한 번 휩쓸리고 난파해서 억지로 수리했지. 후환이 두려운데.”

“후환? 후환이 무섭다 하면 조선으로 왜 왔나?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니 염려하지 말고 가만히 있게.”

다음 날, 선공감의 휘하에 배정된 선소(船所 - 조선소)로 향한 방길주는 할 말을 잃었다. 구풍에 당했다 하지만 배가 아니고 억지로 만든 누더기나 다름 없는 대방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나 하여 보게!”

“구풍이 남쪽으로 향하는 바람에 제대로 휩쓸려 버렸지. 그래서 난파 직전까지 몰렸어.”

방길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선창(船倉)으로 내려가 격벽을 확인하다가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격벽이 깨지고 부서진 것이 태반이며 배의 옆판들 또한 심각한 손상을 입어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심지어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것이 바다벌레(배좀벌레조개)가 파고 들어간 흔적까지 있었다. 아마 선수창을 통해 유입된 바닷물을 타고 들어온 녀석들이리라.

“이래서는······. 이래서는 몇 년도 버티지 못하겠군. 대방선은 모조리 쓰지 못하게 되었네. 그리고 바다벌레가 어찌 이렇게 많이 생겼단 말인가!”

“천축에 다녀온 선박은 대부분 이렇게 변하는데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형님이 알고 있다 여겼는데?”

방길주는 배를 설계하는 사람이었지 배를 모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실상을 알고 경악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숨을 몰아쉬면서 선박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무렵. 궁궐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여국강이 했던 후환이 두렵다는 말은 어명을 받는 후환이리라. 그렇게 방길주는 67세의 나이로 자신이 설계했던 대방선과 방패선의 개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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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 11월, 날이 점점 추워지는데 형님이 나에게 아주 귀한 커피콩을 주면서 조선소에서 한창 작업하는 방길주를 위문해 달라는 명을 내렸다. 최근 1년 동안 작업의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던가.

“아무리 봐도 진귀한 물품이라서 하사하는 것이 아니야. 마시고 잠자지 말고 일하라는 이야기 같은데? 이건 노인학대가 아닌가.”

“아이고 대군어른! 이런 자리에 어인 일이십니까!”

추운 겨울에도 방길주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도 뭔가를 작성했는지 손에 검은 자국이 묻어있는데 설계도를 작성했나. 방길주를 따라 선소 안에 설계실로 들어가자 종이가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놀랍게도 방길주는 아마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깃털붓이 있고 잉크통으로 보이는 녀석도 있으니 조선시대로 보이지 않고 서양의 어느 조선소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방길주의 말이 이어졌다.

“아마는 참으로 좋은 작물입니다. 줄기는 종이가 되고 종자는 기름먹을 만들 수 있으니 종이를 마음대로 쓸 수 있고 편하게 쓸 수 있지요.”

“참으로 좋은 일이요. 여기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가배콩(커피콩)이 있으니 이걸 드시고 힘을 내시오.”

솔직히 말해서 방길주의 나이에 권고할 물건은 아니지만 알아서 적당히 마시겠지. 그렇게 본론에 들어가려 했는데 방길주의 입이 먼저 열렸다.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셨는데 제가 늙은이가 되어 머리가 둔해진지라 여직까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운 내시오.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바를 당신 혼자서 짊어지지 않고 선공감 전체의 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방길주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대방선과 방패선을 만들기 전에도 어렵다는 말을 하였지 불가능하다는 말을 한 적은 없으니까. 혹시 모르니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혹여나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명을 완수하기 전에 몸이 편찮아질 것 같다는 말이오?”

“이미 예순여덟이니 십 년을 살지 못하겠지요. 기껏해야 새로운 선박의 시제품을 만드는 것이 최선일겁니다.”

방길주도 이제 일흔에 가까운 고령이 되었다. 입신체비의 힘과 조선에서의 편안한 생활로 수명을 이어갔지만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설계 개념이라도 잡아야 하지 않을까.

“다른 일은 그렇다 칩시다. 우선 주상전하께서 명하신 바는 크고 튼튼하고 속도는 줄지 않은 배를 만드는 일이오. 여기에 문제라도 있소?”

“문제라 하면 모두 다입니다. 대방선과 방패선은 조선에서 만들 수 있는 한계치에 근접한 배이며 차근차근 문제를 짚어 나가겠습니다.”

한계치라 하는 말은 양산형의 한계라는 말이리라. 그렇게 방길주가 생각을 정리하고 손가락 세 개를 들고 말을 시작했다.

“첫째, 존에 사용하던 활수창(活水艙)을 없애야 합니다. 활수창이 선체 하부에 물을 넘나들게 만들어 배를 지탱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구풍에는 견디지 못하고 구풍을 겪지 않은 배에는 바다벌레가 스며들었지요.”

“그렇다면 선체를 흔들리지 않게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경원에서 나는 흑토를 구워 뽑아낸 역청(瀝靑 - 콜타르)을 발라 어느 정도 보강하였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니 새로 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명회의 경험담에서도 태풍이 지나간 다음 뒤틀린 선체 곳곳에서 바닷물이 새어 화물이 대부분 침수되었다 했었지. 방길주는 손가락을 하나 접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둘째, 배가 거대해지면 물에 잠기는 부분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속도는 줄어듭니다. 이걸 극복하려면 돛을 변용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지금 실험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방법이오? 혹여나 다른······. 이건 용(안평대군)이가 그린 회화가 아니오?”

“서역의 선박을 보니 참신한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돛을 뒤로 약간 기울여서 성능을 보완하며. 선체 앞에 사선으로 세운 기둥과 연결해 돛의 파손을 방지하더군요. 이 아래에 선수상(船首像)을 세우지요.”

피렌체에서 온 미술가들과 같은 배를 타고 온 안평대군이 회화를 남겼다가 방길주에게 선물한 것이리라. 선을 보니 납으로 만든 진짜 연필(鉛筆)을 시험한 연습용이지만 중요한 자료이다.

방길주가 다시 시험 삼아 그린 설계도를 보여줬다. 서양의 선박에서는 비어 있던 장소에 제대로 된 삼각돛이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되면 뒤로 기운 돛이 더욱 많은 바람을 받아내도 버틸 것이며. 삼각돛은 측면에서 오는 바람을 효과적으로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속도에 관한 문제는 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하시오. 역시 뼛속까지 뱃사람이니 믿음직하군.”

방길주의 설계도를 보니 현대에서 보았던 영상매체의 배와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이걸 수렴 진화로 봐야하는가? 다시 방길주는 마지막 손가락을 접었다.

“마지막으로, 더욱 많은 물산과 사람을 적재하려면 배가 둔중한 형태로 변해야 합니다. 배의 길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용적을 키우려면 옆을 키우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보선보다 조금 작은 선박을 만들면 충분한 일이 아니오? 보선은 불가하더라도 길이를 늘이면 될 것인데.”

대방선은 250톤 규모라 치고 두 배 거대한 배를 만든다 하면 선체의 크기가 2배가 될 필요는 없다.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이니 1.3배 정도로 길어지면 충분하리라. 하지만 방길주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목재는 몰라도 대방선과 방패선을 만든 목재 가운데 돛대와 용골의 재목은 경원부에서 구한 물건입니다. 그마저도 특등품을 쓰지 않고 상등품을 사용했지요.”

“해삼위(海參崴 - 연해주 일대)의 목재는 튼실한 참나무가 넘쳐나지 않소. 주상전하께 말씀하여 연동산(延董山 - 충샨의 조선식 이름)에게 더욱 큰 목재를 찾아내라 하면 될 일인데.”

그러고 보면 충샨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제법 놀랐다. 정충렬이 이끄는 병력에게 항복한 다음 귀부를 받아들였지만. 조선, 명 그리고 몽골의 3개 국가를 오가며 줄다리기를 했던 전적이 있었으니까.

형님은 당연히 벌을 내렸다. 귀부가 아니고 항복한 이이니 좋은 대접을 받을 이유는 없었고. 여진족들도 생업을 이어나가기 힘들어 하는 연해주 일대의 원시림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에 스스로 돈을 벌어서 자신의 몸값을 내면 납치당한 이들의 몸값을 나라에서 대주기로 하였다. 그래서 강을 헤집어 사금을 모으고 나무를 베는 일을 주력으로 하고 있지.

건주 양위와 충샨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그렇게 방길주를 바라보니 방길주는 한탄하면서 말했다.

“보선을 말씀하셨는데 보선을 만들 당시 사천성 일대에 금군을 보내 이백 자(74m)가 넘는 나무 수십 개를 벌채하고 개중에 가장 빼어난 녀석을 골라 만들었지요. 그리고 문제가 더 있습니다.”

보선의 길이가 130자였는데 왜 200자가 나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길주의 말을 들으니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나무를 모두 다 사용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모든 나무는 휨과 틀어짐이 드러나지 않으나 말리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뿌리와 끝을 잘라내고 휘어짐이 없는 부위를 골라 용골을 만들려 하면 육 할만 온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방선과 방패선의 길이는 75자에 달하니 120자에 달하는 원목을 사용하였단 말이오?”

“그렇지요. 여기에 나무 가운데 절반은 틀어짐이 심하여 도저히 쓸 수 없으니 판재로 가공하여 다른 곳에 쓰였지요. 연해주에서 쉽사리 구해올 수 있는 목재는 140자가 한계입니다.”

방길주도 최선의 지혜를 쥐어짜낸 결과물로 대방선과 방패선을 내놓은 것이다. 흔히 말하는 가격 대 성능비가 아닌 목재의 한계를 쥐어짜내는 설계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없을까.

“그렇다면 물어볼 것이 있소. 목재의 휨을 막거나 교정하는 방법은 없소?”

“작은 목재야 억지로 휘어 못을 박아 쓰지만 용골은 그런 방법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용골에 함부로 못을 박으면 나무가 손상되기 마련이고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나무가 마를 적에 결정된 휘어짐이라. 그리고 용골은 함부로 가공할 수 없는 목재라.”

생각해보면 나무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이 아니다. 친구 녀석이 전통건축 일을 하는데 대판 깨지고 술을 마셨을 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무가 공장에서 찍어내? 응? 나무가 갈라지고 틀어지는 것은 어차피 당연한 일이고 현대 기술로 그걸 어느 정도 보정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 인간은 대체······.’

녀석과 여러 번 만났지만 너무나 억울했던지 그때의 이야기를 계속 했었고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대에는 나무를 인공건조하면서 휘어짐을 잡는다 하였나.

나무를 잔뜩 쌓아 올려놓고 온도를 올리고 습도를 줄인다. 나무가 휘지 않게 겹치고 맨 위에 무게추로 쓰일 쇳덩어리를 올려서 휘어짐을 방지하며······.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으니 방길주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롯이 대방선과 방패선을 개수하여 더욱 빠르고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 전부입니다. 크기를 키우는 것은 후대에 알아서 할 일이지요.”

“가장 휘어있는 나무는 어디에 있소? 원목 가운데 너무 휘어짐이 심해서 한 눈에 보아도 쉽사리 사용할 수 없는 녀석 말이오.”

방길주는 선소 뒤뜰의 적치장으로 나아가 목재를 보여줬다. 나는 곧은 나무라 생각하지만 방길주의 눈으로 보면 휘어짐이 보이는 것일까. 방길주는 옹이를 더듬으며 말했다.

“열흘 전에 온 녀석인데. 지금 보기에는 튼튼해 보여도 나뭇가지가 한 방향으로 뻗어 나와 있어서 옹이의 방향으로 휘어질 녀석입니다. 빼어난 녀석이지만 참으로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힘을 가해 휘어짐을 방지해 버리면 끝나는 일이 아니야? 생각해 보니 간단한 일인데 왜 방길주도 몰랐지? 아니다, 나니까 가능한 생각이다. 목재를 발로 걷어차면서 말했다.

“세상에는 음양오행의 법칙이 있소. 내 이 불순한 나무에게 오행의 쓴 맛을 보여줄 것이니 대역기봉 마흔 개와 죔쇠 마흔 개를 준비해 주시오.”

“대역기봉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오행에 의거하면 금극목(金克木 - 쇠는 나무를 이긴다)이라 하였소. 아무리 휘어지기로 예정된 나무라 하여도 철물로 보강하고 강제로 휘어지지 못하게 하면 휘어짐이 생기겠소?”

음양오행을 들먹이면서 말했지만 간단한 논리다. 건조하면 휘어지는 나무라면 건조하면서 죔쇠와 대역기봉으로 강제로 휘어지지 못하게 하고 건조를 완료한다. 그러면 휠 일이 없겠지.

대역기봉? 입신체비가 점점 퍼져나가서 한양을 뒤질 필요도 없이 팔려나갈 예정인 대역기봉이 저자거리에 쌓여있다. 한양 시장에서 공령과 소역기를 파는 일은 흔한 풍경이었으니까. 그렇게 성을 내자 방길주가 나를 미치광이 보듯이 쳐다보았다.

“대군어른. 본래 금극목은 쇠로 만든 도끼로 나무를 베어서 만들어진 오행의 상극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어차피 쓸모도 없는 나무가 되었으니 한 번 시험이나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 기껏 해야 일 년 뒤에 결과가 나올 것이니 실패하면 대역기봉을 버렸다 여기지.”

다음 날, 휘어질 예정인 참나무는 대역기봉과 죔쇠로 사방이 가로막혀 버렸다. 만약 이게 성공한다면 약간의 설계 변경 이후로 대방선과 방패선의 크기가 2할 이상 증가하게 될 것이니까.

“참으로 신비한 발상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대역기는 답을 알고 있지.”

정말로 대역기가 답을 알려줄까. 그건 나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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