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69화 (169/573)

< 2장 107화 - 휴식과 성장(2) >

1460년 음력 9월, 한가위가 지나가고 청계천의 보수공사도 마무리 되었다. 작년 말부터 공사가 이어진 청계천에 예전의 모습은 없었다. 기존에 어설프게 아무 돌이나 주워서 쌓은 석 자(약 100cm) 높이의 석축은 모두 해체되었다.

새로 탈바꿈한 청계천에는 정을 쪼아 가공한 자연석을 쌓아 좌우 열 자(3.47m)의 견고한 석축을 쌓고 위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기존 교량은 하부를 돌로 보수하여 더욱 높고 견고하게 개량하였으며 세 개의 교량이 신설되었다.

본래 조선에도 홍예(虹蜺 - 아치) 는 제법 쓰였지만 가장 작은 교량은 새로운 기술을 뽐내고 싶어했는지 과감하게 단 하나의 아치를 사용했다. 그러니 조정에서도 염려하는 의견이 있었고 결국 마지막 작업으로 시험에 들어갔다.

내구성 시험을 위해 갑사 수백 명이 완전무장을 한 채 교각 위를 사정없이 가로질렀고. 모든 갑사가 지나가고 다리를 점검하기 위해 아래에 있던 관원이 크게 외쳤다.

“다리에 이상은 없습니다! 모든 돌이 움직이지 않고 흙이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하면 참으로 튼튼한 것이군. 더 이상 염려하지 않아도 좋겠어.”

지금까지는 좁은 간격으로 쓰였던 아치가 넓은 간격으로 쓰여도 문제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론을 아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일은 천지차이이다.

“기둥이 없이 홍예 하나로 교량을 만들다니. 자네들의 기술은 참으로 대단하군.”

“돌이 단단하여 제법 고생하였지만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조선의 석공들도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더군요.”

“돌을 쉽사리 쪼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네. 본래 홍예교는 여러 홍예를 엮어 기둥 여럿을 두어야 하는데 하나의 홍예만 사용해서 만들다니 참으로 놀라워.”

공사는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고 청계천은 예전에 빈민들이 거주하던 공간에서 신작로(新作路)나 마찬가지로 탈바꿈했다. 점잔을 빼던 양반들이 조심스럽게 땅을 사들여서 자신의 집을 지어나가고 있었다.

“둑을 쌓는 것이 가장 난공사였는데 어떻게든 해결되었으니 나머지 일도 쉽게 풀렸습니다.”

“그런데 이 표시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둑의 석축 위에 석공이 무언가를 조각하고 있었는데 물결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손이었고 예전에 범람한 물의 높이와 비슷한 위치였다. 나의 질문에 피렌체의 화가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홍수가 끝나고 모든 복구가 마무리되면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런 회화를 남깁니다. 강이 더욱 범람하지 않고 이 지점에서 멈추었다고 표시하는 것이지요.”

“종교를 전파하는 일을 허가하지 않았으니 그만 두게. 그렇지만 손이라 하면 덕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니 손을 조각하고 마치게나.”

“알겠습니다.”

성당을 먼저 세우려고 했지만 내가 뜯어 말렸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머물면서 기도를 드릴 성전을 세운다고 했었지만 한양에는 사찰도 세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형님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화를 냈으며. 벌을 내려 이들의 거주지를 강화도로 한정하였다. 하지만 양보한 것이 있으니 강화도 안에 성당을 지어도 된다는 허가를 내렸다.

결국 가톨릭의 전파는 가로막혔지만 이들은 종교에 목숨을 건 자들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당을 지어서 자신들의 건축기술을 뽐내려 하였다던가.

그렇다면 강화도에 지어도 상관이 없었고 강화도는 질 좋은 대리석의 산지였으니 오히려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성당으로 세워질 건물 자리는 입신체비장이 되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대목장들이 지붕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천장이 높고 바닥이 튼튼하니 무엇을 해도 좋은 곳이 아니겠는가.”

“도리와 보를 만들지 않고 저렇게 목재를 맞추어도 지붕이 견딘다는 말입니까.”

“혹시 몰라 수수대로 실험을 하지 않았나. 아국에서 사용하는 방법과 다르지만 라마국(신성 로마 제국)을 비롯한 서역에서는 저러한 방식을 기본으로 삼는 것일세.”

“그렇다 하여도 지붕의 곡선이 우아하지 않고 너무 단조로우니 아쉬울 뿐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네. 나의 집을 만들었던 대목장 천 씨의 아들이 성을 내면서 나무를 깎아내며 말했다. 생소한 공법을 도입해서 처음에는 의견 충돌이 일어났었다.

피렌체의 미술가들은 트러스로 추정되는 지붕 구조를 도입하였고 조선의 대목장들은 생소한 구조를 보면서 불안해했다. 결국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니 내가 나서서 말려야했다. 일단 입신체비장이니 사용하면서 불편한 점을 고쳐나가기로.

목수들이 작업에 여념이 없듯이 화가들도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안견을 시작으로 한 조선의 화가들이 입신체비장의 벽을 꾸미는 일을 도우며 프레스코화를 배우고 있었다.

벽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새로운 프레스코화가 계속 이어져 나갔다. 범람한 청계천의 모습을 시작으로 둑을 쌓고 흙을 퍼내는 모습, 공사가 완공되고 버드나무를 심는 모습이. 그렇게 한쪽 벽면을 보고 있으니 안평대군이 말을 걸어왔다.

“반대편 벽면이 허전하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제가 다른 회화를 그리려고 합니다.”

“회화라 하면 무엇을 그리려고 하느냐.”

“일전의 형님의 모습을 본떠 만든 여덟 폭 병풍을 서역의 방식으로 다시 그리고 싶습니다. 새로운 화풍을 익혔으며 세운 목적도 있지 않습니까?”

슬슬 몸의 근육이 빠져나가는데 참 좋은 제안이다. 프레스코화는 천 년도 간다는데 이런 문화재를 남기면 좋겠지. 그렇게 구석으로 가서 축기(펌핑)를 마치고 돌아오니 조각가가 거대한 대리석까지 하나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우각세(牛角勢 - 프론트 더블 바이셉스)로 시작하겠느니라.”

“형님의 몸이 이전과 같지 않으십니다. 예전에 1,350근을 드실 적에는 잔근육이 조금 더 많지 않았습니까.”

“너도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이제는 1,300근을 드는 일도 힘에 부치는구나.”

담담하게 내 몸의 형태를 잡아나가는 안평대군과 달리 미술가들은 내 몸을 보더니만 바짝 얼어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석공조차도 정을 쪼지 못하고 몸을 바라보다가 깨달았다는 듯이 외쳤다.

“골리아(Golia – 골리앗)가 저기에 있다! 어느 누가 저러한 근육을 가졌겠는가! 신장이 여섯 큐빗하고도 한 뼘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 드디어 찾았구나!”

“용아. 너는 많은 일을 알지 않느냐? 골리아가 대체 누구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냐.”

“저, 저는 모릅니다! 골리아가 무엇을 하는지는 저 사람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이 형님은 알고 있단다. 골리앗의 이탈리아어 표현이겠지? 그래서 덩어리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했더니만 골리앗이라고 부르게 만들어? 아무래도 우리 안평대군에게는 하체가 필요한 것 같다.

그날 밤, 아직 완공되기 전인 청계천 입신체비장에 처음으로 입신체비가 시작되었다. 안평대군은 나와 함께 뜨거운 열정을 담은 하체를 하고 며칠 동안 걷지 못했으며. 이후로 나를 골리앗이라 부르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

청계천 공사가 완료되고 며칠 뒤. 피렌체의 미술가들은 조선에 온 지 일 년이 지났으니 고향의 그리운 음식을 먹고 싶다고 청원했다. 형님은 그걸 흔쾌히 수락하면서 궁중 숙수 여럿을 보내 요리를 베끼게 하였다.

피렌체에서 이주한 이들의 잔치이니 사방으로 서신을 보내 사람들을 불러왔다. 다른 이들은 아니고 피렌체에서 이주한 자들의 가문에서 고용한 전문가들이다. 조선 팔도에서 일하던 이들이 일제히 한양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고용주의 아들에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서 그런지 각자 만들고 있던 물건들을 들고 돌아왔다. 한 사람이 홍두깨 같은 덩어리 여럿을 들고 와서 물어보았다.

“참으로 특이한 녀석이구려. 이 몽둥이 같은 것은 무엇으로 만든 것이오?”

“돼지의 내장 안에 절인 돼지고기를 넣어 훈제하여 만든 살라미입니다. 미리 챙겨온 에르바(허브)를 길러 향을 북돋워 보았지요.”

“아국에도 나물이 있듯이 서역에도 나물이 있구려.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니 한 번 길러나 봅시다.”

“씨앗은 많이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머나먼 이국에서 그리운 맛을 즐기기 위해 가져왔는데 생각보다 잘 자라서 놀랐습니다.”

허브는 약용으로 쓰이기에는 부족하지만 식생활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며. 아무나 텃밭에 길러서 차를 우려내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 그렇게 은근슬쩍 허브 씨앗을 챙기고 잔치요리가 시작되었다.

조선에는 빵이 없다. 다른 모든 문제를 떠나서 밀의 품종인 앉은뱅이 밀에는 글루텐이 적어서 빵을 만들기 힘든 품종이니 더더욱 그렇다. 여기에 밀가루는 진(眞)가루라 불릴 정도로 만드는 것이 힘들다. 쌀가루와 다르게 곱게 빻은 밀가루부터 귀한 물건이니까.

그렇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이탈리아의 겨울 밀은 몰라도 봄밀은 온전히 적응했고. 수확된 밀은 잘 말려서 평양 형무소로 보내서 공짜로 빻아왔다. 오븐은 며칠 전에 미리 만들어뒀다.

밀가루를 매만지면서 질을 확인한 제빵사는 웃으면서 밀가루의 맛을 보았다. 고향의 맛과 다르지 않은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나를 바라봤다.

“죄수들을 일하게 하여 밀을 빻으시다니 참으로 독특한 방법입니다.”

“죄를 지은 자들이 몸으로 값아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다들 궁금해 하고 있으니 자네들의 실력을 보여주게. 파네(pane – 빵)라는 것을 만들겠다 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모시는 분들이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 하시니까요.”

“본래 진가루는 귀한 녀석인데 이렇게 아낌없이 쓰다니. 아국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네.”

이들이 듀럼(durhum)이라 부르는 품종은 봄밀이라 조선의 기후에 온전히 적응했다.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품종이다. 정확히는 회원님들의 변명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

‘듀럼밀로 만든 파스타는 보통 밀가루가 아니라서 살이 찌는 음식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왜 쪘는지 모르겠어요.’

‘회원님? 밀가루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먹는 밀가루 음식은 대부분 염분과 지방을 듬뿍 넣으니까 통밀빵이 아니고서는 몸에 안 좋은 것이 맞습니다. 파스타에 들어간 기름만큼 유산소를 해서 지방을 태웁시다.’

과거의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니 화가 치밀어 오르네. 밀가루는 혈당지수가 높은 것을 제외하면 몸에 나쁘지 않다. 밀가루가 나쁘다면 백미밥은 더욱 나쁘다.

하지만 한국의 밀가루 음식은 잘못되었다. 식빵만 해도 설탕의 단맛과 소금의 짠맛이 느껴지고 버터는 반드시 들어간다. 결국 한국에 전파된 밀가루 음식은 몸에 안 좋은 것이 맞다. 그렇게 빵을 반죽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제빵사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토스카나 지방의 파네는 지독히도 맛이 없으니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맛이 없다 하였소? 머나먼 고장으로 건너왔지만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사연을 말씀드리자면 길지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백 년 전에 피사 놈들과 싸울 시절에 피사 놈들이 비겁하게 소금을 팔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도 전혀 모르는 이야기이니 잠자코 들었다. 집에서 빵을 만들어도 설탕과 소금 그리고 기름은 필수였는데 생소한 이야기가 아닌가. 피렌체 출신 제빵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저희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파네에 소금을 넣지 않는 풍습이 생겨났고. 피사 놈들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으려고 아직도 소금을 넣지 않은 파네를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방법만 배웠습니다.”

대놓고 거짓말을 하지만 눈치껏 넘어가줬다. 이국의 왕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 하지만 자존심은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스트를 대용품으로 탁주에 가라앉은 앙금이 들어가고 반죽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마당에 만들어진 오븐에는 은은하게 타오르는 숯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완성된 반죽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사이 다른 요리들도 모두 준비를 마쳤다.

“이국의 왕제께 이런 초라한 요리를 대접하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조만간 피렌체의 식재료를 조선에서 수확하게 된다면 더욱 훌륭한 요리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소이다. 산해진미만 매양 즐긴다면 몸이 병들고 쇠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오.”

요리사들은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지만 잔칫상 위에는 음식들이 빼곡하게 놓여있었다. 이탈리아인은 풍성한 식사를 즐긴다는데 이 시대에도 그랬나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빵과 치즈를 듬뿍 넣어 만든 파스타를 시작으로 피렌체에서 가져온 치즈와 조선의 작물로 만들어진 이탈리아 요리가 즐비했다. 조선의 유락(乳酪 - 치즈)은 이들의 기준으로 너무 투박하다면서 새로운 방법을 가르친다 하던가.

물론 내 식사는 조선의 방식 그대로 개인용 소반에 옮겨졌다. 먼저 갓 구워낸 빵을 한 입 베어무니 쫄깃한 식감이 느껴지면서 고소한 밀가루의 향기가 올라온다. 하지만 이 빵에는 기름기와 소금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참으로 묘한 맛이로군.”

“파네만 먹어서는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습니다. 저희는 치즈나 살라미를 얹어 먹거나 파스타를 먹고 남은 소스나 고기를 구운 육즙에 찍어서 먹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먹어보도록 하지.”

한국에서 먹어왔던 빵과 전혀 다른 맛이다. 식빵을 먹어도 은은한 단맛이 느껴지지만 피렌체의 빵은 먹으면 다른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들며. 다시 짠 맛에 빵을 먹게 만든다.

식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돌아간 다음 혼자 생각에 잠겼다. 이런 빵은 널리 퍼트리면 좋을 것 같다. 맛이 없지만 식감이 좋으니 밥 대용으로 쓰기 좋을 것 같고. 어차피 만주 일대에는 벼를 재배할 수 없으니 밀과 보리가 답이다.

새로 생겨난 영토에 새로운 풍속이 생겨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생각해 보면 새로운 마을이 흑룡사의 말사(末寺)가 세워진 인근에 생겨났다 하니까 거기서 퍼트리면 그만이다.

“서양의 마을은 제분소와 제빵소 중심으로 세워졌지. 그렇다면 머나먼 북방에서 행정력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밀가루를 제분하고 빵을 만들려면 집약적인 시설이 필요하니까.”

그렇지만 서양의 밀이 조선의 기후에 적응할지. 적응하더라도 수확량이 많이 나올지가 의문이다. 이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일이 진행되는 대로 적용해야지.

----------

업무가 끝났으면 다시 업무다. 명나라에서 새로운 문물을 들여왔을 때와 차원이 다른 작물들과 사람들이 들어왔으니 형님을 시작으로 조정의 모든 관료들은 숨 쉴 틈도 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양도(대만)에서 올라온 장계는 어떻게 되었다고?”

“여기 있습니다. 대양도에서 재배되는 작물만 하여도 열두 종에 이르니 장계를 정리하는 일만 하여도 한참 걸렸습니다.”

분류는 간단했다. 물이 어는 기후에서 버티지 못하는 작물은 무조건 대만으로 보내서 재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분류별로 보고서를 확인하니 아직 소득이 없는 작물이 많았다.

“유감람(油橄欖 - 올리브)은 이제야 싹이 돋아났다 하였는가. 그래도 충분한 소출을 거둘 것 같다고 평가하니 다행이구려.”

“그렇사옵니다. 하지만 농부들이 말하기를 대양도의 기후가 오사만국과 다르니 소출이 적어질 것 같다고 염려하였습니다.”

“이미 들은 바가 있다네. 여름에는 습하지 않고 겨울에는 습한 기후라니. 참으로 신비한 일이로군. 그리고 대첨과(멜론)를 칠백 개나 수확하였다 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조만간 배편을 통하여 대첨과를 보낼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올리브를 시작으로 겨울을 버티지 못하는 품종의 보고가 하나하나 올라왔다. 가장 고무적인 사실은 멜론. 조선의 말로 대첨과(大甜瓜 - 큰 참외)라고 명명된 녀석을 처음으로 수확했다는 점이다.

“대첨과는 오사만국에 있을 시절에 맛을 보고 반드시 가져오리라 마음을 먹었지. 그리고 나무가 자라야 하는 작물들이 제법 많으니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유념해야 할 것이네.”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채소야 추위가 오기 전에 수확하면 충분한 일이지만 나무가 상하면 다시 오사만국에 요청하여 씨앗을 가져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만으로 넘어간 대부분의 작물은 싹을 틔우고 몇 년 동안 길러야 소출이 나온다. 당장 감편도(甘扁桃 - 아몬드)와 개심과(開心果 - 피스타치오)도 올리브와 마찬가지로 수확하려면 몇 년이 걸린다.

이외에 대만에서 자라는 녀석들은 커피, 후추, 유럽산 포도, 오렌지, 사탕수수, 헤이즐넛, 아스파라거스와 한명회가 가져온 작물이었다. 당장 수확이 나오지 않으니 조선에서 기르는 작물을 확인해야겠다.

“구마라와 서총(西葱 - 서쪽 파, 양파) 그리고 아마를 비롯한 아국에서 기르는 작물들은 모아두었는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뒤뜰에 모두 나열해 놓았으니 한번 확인하십시오.”

공조 뒤뜰의 터에는 입신체비 기구들이 사라지고 새로 도입한 작물을 수확한 것이 쌓여 있었다. 마대자루에 담긴 고구마를 확인해보니 현대의 고구마와 다른 생김새라 익숙하지 않았다.

뜰에서 억지로 기른 고구마보다 크고 뿌리줄기도 발달했는지 네 개만 들어도 손바닥이 가득 차버렸다. 하나를 잘라 맛을 보니 녹말의 텁텁한 맛은 느껴졌지만 단 맛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씨앗은 이것이 전부인가? 내가 보낸 양 보다 적은 것 같은데?”

“신묘하게도 꽃이 적게 피고 씨앗을 맺은 일이 적다고 하였습니다. 소출된 종자가 심었던 종자와 같을 정도이니 이를 어찌 해야 합니까.”

아무래도 뜰에서 꽃이 피었던 것은 가혹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번식하려고 악을 써댄 결과물 같다. 소나무가 말라 죽기 전에 솔방울을 잔뜩 만들고 죽듯이 뜰에서 자란 고구마도 마찬가지겠지.

어떻게 번식시킬까 고민하다가 수확이 늦어진 고구마에서 싹이 돋아난 것을 발견하였다. 모르는 척 관원에게 고구마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꽃을 피우기도 하고 이렇게 뿌리를 통하여 싹을 틔우기도 하는 것 같군. 겨울 동안 물에 불려 싹을 잔뜩 틔우고 잘라 심으면 될 것 같네.”

“작약(芍藥)을 다루듯 하면 되는 일이군요. 그리고 대군어른의 말씀대로 줄기를 잘라 한번 삶아 돼지에게 주니 거침없이 먹어치우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합니다.”

“그러하면 정말 훌륭한 작물일세. 두엄을 주지 않은 땅에서 잘 자라나며, 줄기를 돼지가 먹을 수 있다면 사람이 먹어도 충분한 것이 아니겠는가.”

고구마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줄기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독이 있지만 삶으면 사라지니 별 문제는 없지. 귀찮으면 돼지 사료로 먹이면 충분하고.

다음으로 확인한 녀석은 양파였다. 양파 또한 서민의 음식이자 식탁의 지배자다. 이십 년 전에 체지방을 감량할 때 필요했던 고구마와 양파가 한 자리에 있으니까 감회가 새롭다.

“서총은 많은 양이 소출되었습니다. 땅을 가리기는 하지만 국에 넣으면 단 맛이 올라오는 것이 아주 좋더군요. 하지만 장마가 내리면 모두 썩어버리니 다루기 까다로운 작물입니다.”

“그렇다면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하면 그만이네. 오사만국에 있던 시절에는 서총을 날것으로 자주 먹었다네. 느끼한 맛을 잡아주니 아주 좋더군. 그리고 이것이 아마(亞麻)인가?”

“그렇습니다. 상왕전하께서 신신당부 하셨기에 제법 많은 양을 심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아마를 보니 세종대왕님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아마 내수사에서 관리하던 비어있는 경작지에 모두 아마를 심으라고 명하셨겠지.

아직 가공하지 않은 아마, 가공을 마쳐 섬유가 된 아마, 아마로 짠 직물, 그리고 아마로 만든 종이가 모두 한 자리에 있었다. 공조의 관원 또한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마를 바라보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