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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163화 (163/573)

< 2장 101화 - 크나큰 소득(3) >

요가수행자들에게 신상명세를 파악하고 가재도구를 챙겨놓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일과를 마쳤다. 효령대군과 임영대군이 귀환하기까지 한 달이 걸리니 당분간 항구에 머물러 있어야지.

아니다. 효령대군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안평대군은 함대를 지키게 하고 효령대군을 모시려 다녀올 준비와 인도에서 가져올 마지막 물건을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정척이 나에게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대군어른께 필히 보여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천축에서 신비한 것을 구하기라도 하였나? 향신료라 하면 충분히 있으나 혹여나 흑단(黑檀 - 흑단나무)이라도 구한 것이오?”

흑단도 꽤 쓸 만한 교역상품이지. 하지만 정척이 고드름과 같은 투명한 덩어리를 꺼내더니 자랑스럽게 건네줬다. 가죽 부대에 담겨있었으니 제법 귀중한 물건이 아닐까.

“보십시오. 아국에서는 염초전을 만들어 오랜 시일에 걸쳐 화약을 만들지만 천축에서는 이렇게 염초를 땅에서 캐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염초전에서 솟아나온 염초를 뭉치면 비슷한 것 같구려. 얼마나 좋은 염초인지 시험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한데 직접 시험해 봅시다.”

“화기도감의 병사와 함께 시험하여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아국에서 사용하는 염초보다 위력이 월등하니 칠 할을 사용해도 충분할 지경이었습니다.”

정척이 보여준 염초는 조선에서 만든 것처럼 가루로 되어있지 않고 불투명한 고드름과 같은 형태였다. 슬쩍 만져보고 일부러 놀란 눈으로 긁어보고 냄새를 맡아보니 정척이 웃으면서 염초 자루를 풀어서 보여주기까지 했다.

자루 여러 개를 보여줬는데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들인 염초가 종류별로 있었다. 나에게 보여준 녀석과 같이 고드름 모양도 있었고 약간 갈색이 섞인 가루 형태의 염초도 있었다.

“화기도감의 경험 많은 병사라면 즉석에서 염초로 화약을 만드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지. 어떻게 시험하였소?”

“천자총통으로 시험해 보았는데 규정대로면 30냥이 쓰입니다. 하지만 시험 삼아 24냥을 넣어도 오히려 위력이 뛰어났습니다. 훌륭한 염초이니 아국이 필히 교역해야 할 것입니다.”

나도 인도 각지에서 염초가 대량으로 생산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은 이유는 혹시나 오스만 제국이 염초 무역을 시행하여 유럽이 초토화될까 염려하기도 했고. 나 혼자 공을 세우지 않으려는 일종의 배려였다.

만약 정척이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염초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내가 나서야 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여기에 화력시험까지 했으니 더 할 나위 없다. 그렇게 웃고 있는 정척에게 정제된 염초를 돌려주고 말했다.

“그러하면 수량이 문제이며 들여오는 일이 문제요. 혹여나 맹가납국(벵갈 술탄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구하면 맹가납국의 군주와 맺을 협약이 깨어질지도 모르지 않소.”

“천축 곳곳의 다섯 국가 모두가 염초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효령대군 어른을 맞이하러 향하는 길에 염초를 생산하는 고장이 있으니 방문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평소의 일이라면 다른 이에게 일임하였을 것이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알아내다니. 혹여나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확인하러 직접 가야겠네.”

정척에게 일임해도 좋지만 직접 체험하는 것 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렇게 관원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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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을 따라 북상해 코시 강과 합류하는 구간에 이르렀다. 코시 강을 경계로 협정이 맺어져서 서쪽은 델리 술탄국. 동쪽은 벵갈 술탄국으로 나뉘었을 것이다. 아직 효령대군이 도착하려면 20일이 넘게 남았으니 여유는 충분하다.

강가를 지키는 델리 술탄국의 병사들이 경계를 하지만 정척이 나서서 말을 건네자 환영으로 변하였고 정척 또한 웃으면서 나를 염초를 생산하는 곳으로 안내했다. 나는 모르는 척 드넓은 진흙 벌판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가에 염초 광산을 두었다면 땅 속으로 물이 스며드니 일하는 이들의 고역이 이만 저만이 아니겠소.”

“아닙니다. 대군어른께서 놀라시겠지만 이 지방은 덕리소단국(德里蘇丹國 - 델리 술탄국)과 맹가납국의 사이에 있는 마을인 비하르이며 염초가 땅에서 솟아나는 고장입니다.”

“놀리지 말게. 그렇다면 진흙 위에 하얗게 일어난 것이 염초라는 말인가? 천일염이라 하여도 이 땅 한 토막을 차지하기 위하여 아귀다툼을 벌일 것인데.”

그러나 신숙주는 달랐다. 너스레를 떠는 나를 제쳐두고 진흙 위에서 작업에 여념이 없는 인부에게 긁어낸 염초와 진흙을 한주먹 얻어온 것이다.

“대군어른, 잘 만들어진 염초는 짠 맛과 단 맛이 감돈다 하였는데 맛을 보겠습니다.”

“어허! 그만두게! 어떠한 풍토병이 있을지 모르니 반드시 끓인 물을 마시라 하였거늘 자네가 병에 걸리면 큰일이네!”

“항하(恒河 - 갠지스 강)일대의 물을 마시면 독한 병이 걸린다네! 아국의 관원 스물 이상이 피해를 입었고 열이 죽었어! 자네도 토사곽란을 일으키며 비명횡사를 하고 싶지 않거든 그만 두게나!”

정척과 눈이 마주쳤는데 지금 뭐라 했지? 토사곽란? 비명횡사? 그럼 조선 최초의 콜레라 피해자가 생겼단 말이야? 그렇게 물을 끓여 마시라고 강조했는데? 그러자 정척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지금 뭐라 하였는가. 아국의 찻잎을 긁어모아 휴대하게 하고. 심지어 미곡으로 차를 우릴 재료를 준비하였는데 열 명이 넘게 죽었다는 말인가?”

“몇몇 관원이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 하여 아무 물이나 마시다 보니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몸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신신당부를 하였거늘.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고 아국으로 번지지 않게 절대 유념하게. 그리고 이게 염초라 하였는가?”

염초 생산량이 많다는 기록만 봤지 이런 광경은 상상하지 못했다. 안내를 받아 인부의 작업장으로 향하니 벽에 하얀 결정이 올라와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땅에 질산칼륨이 꽉꽉 들어찬 것이 분명하다.

“네?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신다 하셨습니까? 별 것 없습니다.”

“보십시오. 아국에서는 귀한 염초가 저렇게 손쉽게 만들어집니다.”

정척이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나도 인도에서 염초를 방법이 궁금하긴 했다. 밖에서 갈퀴로 긁어온 염초가 피어난 흙이 구덩이 안에 쌓였다. 그 위로 강물을 쏟아 붓고 밟아 다져서 걸쭉한 진흙물을 만들었다.

진흙이 가라앉고 물이 떠오르자 다른 인부는 물 위에 갈대로 만든 돗자리와 비슷한 물건을 깔아뒀다. 시간이 흘러 말라버린 구덩이로 향하자 돗자리 위에 염초 결정이 빼곡하게 솟구쳐 있었다.

“아국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염초를 한 번 생산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정제하여 더욱 높은 순도의 염초를 만듭니다.”

“그렇다면 아까 전 보여준 고드름과 같은 염초는 세 번 정제한 염초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생산하는 염초의 양만 하여도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듣기로는 한 해에 이십만 근(약 128톤)이 넘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생각보다 적은 양이 생산되고 있었다. 18세기 무렵 영국이 인도에서 수입한 염초의 양이 1,000톤이다. 물론 무굴 제국이 염초 생산을 독촉하지도 않고 영국에서 대규모 발주를 하지도 않았으니 양이 적어도 이해는 간다.

그렇다 해도 엄청난 양이다. 지금 조선의 한 해 화약 생산량은 만 이천 근이며 비축하는 양은 오만 근에 조금 미치지 못하며 실제 염초 생산량은 팔천 근 정도이다. 그렇다면 가격은 얼마일까?

“염초를 구매하려 하는데 가격과 양이 궁금하군.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을 구매할 수 있나?”

“염초의 가격이라 하셨습니까? 가장 농축된 녀석은 1문드(maund)에 은화 2댐(dam)이며 농축이 덜 된 녀석은 1댐입니다.”

“대체 얼마가 얼마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군.”

“아국의 단위로 따지면 염초 24근(15.36kg)에 은으로 4냥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쌀 한 섬에 염초 6근이자 흑색화약 8근이다. 조선에서 죽어라 노력해서 쌀 한 섬에 화약 반 근으로 가격이 형성되었는데 인도산 염초와 비교하니 각종 비용을 따져도 열 배의 가격차이다.

신숙주는 잠시 손가락으로 셈을 하더니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말했다. 메흐메트 2세가 인삼의 값이라고 하사한 황금만 백 근(64kg)에 달했으니까 그걸 모두 염초로 바꿀 때의 가격을 계산했으리라.

“지금 아국의 함선에 비축된 금만 하여도 염초 십오만 근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십 년을 쓰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많은 양을 한 번에 사들인다면 다른 이들 모두가 경계할걸세. 여기서 염초는 일만 근만 구매하도록 하고 천축의 각 나라마다 천천히 거래량을 늘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단 한곳에서 수입해 독점하게 만드는 방법은 바보 같은 짓이다. 가급적 조금씩 여러 곳에서 사들여 가격 증가를 막고 상대도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지게 만들어야지.

당연히 조선에서 생산하는 염초도 그대로 생산하게 만들어야 한다. 염초를 가져오는 무역선이 사고라도 난다면 끔찍한 일이니까. 이런 사소한 것을 제외하면 완벽하다.

내가 나섰다면 시간에 쫒기면서 벵갈 술탄국에 주문을 의뢰하고 끝이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렇게 정척을 돌려보내 염초를 구매하게 만들고 코시 강의 북쪽인 비랏나가르라는 곳에서 효령대군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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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9년 3월. 도착하기로 한 시일보다 약간 늦게 효령대군과 임영대군이 돌아왔다. 둘 다 지독하게 시달리다 돌아왔는지 뺨이 움푹 패어있었고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갔으니 고생을 알 만 하다.

열 달 만에 나를 다시 보게 되어 기쁜지 효령대군은 환갑의 나이에도 훌쩍훌쩍 걸어와 양 손을 맞잡았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으니 부담될 지경이었다.

“네 덕분에 이 중부가 목숨을 건졌구나. 연희당에서 죽어라 몸을 놀리고 배 위에서도 몸을 굴릴 때에는 네가 참으로 미웠다. 하지만 네 도움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오르지 못할 험준한 곳이었구나.”

“대체 어떤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까? 주무랑마봉(에베레스트)이 높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산이 높은 것이 아닙니까.”

“주무랑마봉이 속한 희마납아(喜馬拉雅 - 히말라야 산맥)일대는 너무 높은 곳이다. 한여름에도 살을 에는 바람이 몰아치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곳이었다.”

현대였다면 효령대군도 욕을 하면서 오갔을 곳이지만 이 시대는 어떠한 도움도 없다. 포장도로도 없고 튼튼한 등산화도 없으며 현대식 방한장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길을 맨몸이나 다름없이 돌아다녔으니 효령대군의 손끝은 아직도 상처가 가득했다. 그런 손을 만지며 나도 눈물이 한 방울 나왔다. 임영대군이 잘 모셨는지는 모르지만 자랑스럽게 웃는 모습을 보니 제 역할을 했겠지.

“그러고 보니 구(임영대군) 녀석은 주제도 모르고 일객칙(시가체)에서 뛰어다니며 두 번이나 쓰러졌었다. 한 달이 지나자 녀석도 적응해서 사방을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아느냐?”

“내려오는 길에 중부님을 업고 하루 종일 걸어간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것이야 감모(감기)덕분에 열이 올라 그렇게 된 것이고! 네 녀석이 설표를 잡는다고 사람을 동원하여 내가 얼마나 노심초사 하였는지 아느냐!”

사람은 고생을 해서 변하는 사람이 있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임영대군은 자랑스럽게 눈 표범 모피와 백호 모피를 들어서 나에게 자랑하고 있었으니 변하지 않았으리라. 그건 되었고 소득은 어떨까?

“사람을 보내지 않고 직접 행차하였으니 얻으신 것이 많을 것입니다.”

“아무렴. 주상전하께 말씀드리기는 토번과 안면을 트기 위해 다녀왔다 하였지만 실지로는 황모파(겔룩파)의 대사인 겔와…… 겔와 겐뒨둡이라는 대사에게 수계(受戒)를 받았다.”

“설마 승려가 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끼! 수계에는 종류가 여럿 있지 않느냐! 당연히 출가하지 않는 몸으로 수계를 받았느니라. 가장 존귀하신 분이 어떻고 제일제자가 어떻고 하는데 그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거라.”

겐뒨둡?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역사상의 중요한 인물이 아닐까. 여하튼 효령대군의 수계는 일국의 왕족이 티베트 불교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효령대군을 따라온 티베트 불교의 라마승들이 합장을 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총카파께서 조선이라는 머나먼 이국에 가르침을 전파하라 명하셔서 이에 따르게 되었습니다. 비록 접하기에는 먼 곳이지만 배움의 길은 어디에나 열려 있지 않습니까.”

티베트에서 보내온 교역상품은 청금석이나 사파이어를 사용한 장식품에 원석을 잔뜩 가져왔다. 앞으로 조선에 머물 사람들이니 좋게 대접해야지. 그렇지만 한명회가 속한 4함대는 아예 모습을 비추지도 않았다.

결국 한 달을 더 허비했고 음력 4월 중순이니 조만간 태풍이 생기는 계절이다. 시일이 지체될수록 태풍에 휩쓸릴 확률은 늘어나고 자칫 잘못하면 대만이나 베트남에서 가을까지 머물러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결단을 내렸다.

“어쩔 수 없구려. 맹가납국의 관원에게 말을 전해 여국강을 비롯한 이들이 도착하면 소식을 전하게 하고 먼저 말란가(말라카)로 향하는 것이 좋겠군. 시일을 더욱 지체하면 대양도에 다다르지도 못하겠소.”

“옳은 말씀입니다. 설령 돌아오는 길이라 하여도 천축으로 향하려면 말란가를 들려야 하지 않습니까. 혹여나 교역에 성공하여 대양도로 먼저 돌아가고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렇게 말라카 해협을 향해 항해한지 사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대군어른! 아국의 대방선과 방패선입니다! 그런데 천리경을 통하여 보니 대……. 대방선이!”

“무엇이라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인가. 여국강이 고생을 많이 했나 보군.”

그러나 망원경을 받아들고 바라보자 할 말이 없었다. 4조에 속한 대방선 세 척 가운데 두 척은 완전히 박살난 배를 억지로 이어붙인 듯이 처참하게 박살나 있었고. 방패선 또한 이곳저곳에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천만 다행이도 누구에게 나포당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닻을 내리고 4조의 기함에서 여러 사람이 내가 있는 배로 건너왔다. 놀랍게도 한명회와 여국강이었는데 둘 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대군어른! 느닷없이 불어온 태풍(颱風)에 대방선 두 척이 휩쓸려 난파하였다가 가까스로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살기 위해서 조와국과의 교역에서 얻은 모든 물산들을 바다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목숨을 건졌으면 되었네. 사람이 살아 있으면 충분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나마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교역을 허락하는 서류는 챙겼지만 정작 중요한 물산들이 사라졌으니 이 일을 어찌 해야 합니까.”

정말 살아 돌아온 것이 다행이다. 적도 일대에서 느닷없이 불어오는 태풍에 휩쓸렸다면 나도 할 말이 없지. 결국 베트남에 들려 배를 수리하고 다시 항해를 시작한 것은 5월 말이 다 되어서였다.

“밖에 무슨 소란이지.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배가 너무 흔들려서 밖으로 나오니새벽 동이 트는 바다가.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모두 먹장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태풍을 조선시대에 직접 보게 되니 소름이 돋는다.

여국강도 바보는 아니니 이런 태풍으로 배를 몰고 들어가는 미친 짓은 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우리 선단은 태풍을 보내고 천천히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벽란도에 도착한 것은 7월 초가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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