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60화 (160/573)

< 2장 98화 - 안평대군은 언제나 바쁘다(2) >

찾아오는 손님은 있어도 모두 어느 가문에서 보내온 사람 혹은 시종이지 회화를 논하고자 하는 이는 없었다. 안평대군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붓을 내려놓고 먹물이 묻은 두루마기를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을 한다는 말인가. 로마라는 고장은 회화를 즐기고 논하는 일이 많으니 참으로 잘 되었구나.”

조선에서 붓놀림의 근본은 서예에 있으며 시, 서, 화라 칭하여도 회화는 가장 마지막에 두니 높은 대접을 받는 직종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양은 이러한 이들을 대접하는 일에 아낌이 없었다.

머리에 백발이 들어찬 노인이 고개를 숙였고 젊은이 셋이 따라 고개를 숙였다. 악수가 이어지고 노인은 흥분을 숨기지 못하는 눈초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베네치아에서 회화를 가르치다 좋은 기회를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야코포 벨리니이며 옆의 둘은 아들인 젠틸레와 조반니. 뒤에 있는 이는 저의 사위인 안드레아 입니다.”

“가족 모두가 회화를 논하는 이들이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소이다.”

“과찬이십니다. 발렌시아 대주교께서 저희를 부르셨지만 찾아오는 시일이 오래 걸렸기에 죄송할 뿐입니다. 잠시 회화를 그릴 준비를 할 것이니 저의 작품을 보시면서 눈을 즐겁게 하시지요.”

야코포 벨리니는 두꺼운 종이 뭉치를 안평대군에게 건네주었다. 이 시대의 스케치북은 회화를 연습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회화에 사용할 소묘(素描)를 비축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게 수많은 회화를 넘겨보는 안평대군은 감탄하면서 말했다.

“형님이 만들다 포기하신 석묵필(石墨筆 - 연필)이라는 녀석을 사용한 것인가. 다시 보니 연(鉛 - 납)으로 필적을 남겼으니 더욱 담대하구나. 참으로 세밀하기가 이를 데 없군.”

수양대군이 개성 일대에서 발굴한 석묵(흑연)을 사용해 필기구를 만들다 실패한 일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한지처럼 씻어서 재활용을 할 수 없으니 오히려 효율이 떨어져서 쓰지 못했다.

다음 날, 안평대군은 의복을 갖춰 입고 초상화(肖像畵)를 그리도록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잘 만들어진 나무판에 숯으로 외곽선을 잡아나가는 방식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먹을 사용하는 조선과 다르게 야코포의 두 아들과 사위는 돌로 만든 절구에 안료를 넣고 빻아대더니 기름을 부어 뒤섞기 시작했다. 코를 찌르는 향기에 안평대군이 궁금해 하며 말을 걸었다.

“어찌 하여 안료를 물이 아니고 기름을 부어 뒤섞는 것이오. 아국에서는 묽게 만든 아교나 물에 녹이는데 참으로 궁금하구려.”

“아버지께서 참으로 담대한 기법인 유화(油畫)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북부의 플랑드르에서 얀 반 에이크라는 이가 발전시킨 기법인데 송진을 끓여 만든 테레빈유에 안료를 녹이지요.”

“기름으로 붓을 놀린다 하였소? 그러고 보니 목판은 먹이 스미지 않으니 아예 기름을 덧씌우는 방식이 바람직한 것 같구려.”

조선과 다른 방식의 회화에 안평대군이 호기심을 보이며 테레빈유를 바라보았다. 그런 기쁨도 잠시, 하인이 달려와 안평대군에게 고개를 숙였다.

“피렌체에서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라는 분이 피렌체의 코지모 데 메디치(Cosimo di Giovanni de' Medici)의 소개를 통해 방문하셨습니다. 머나먼 이국에서 오신 분을 회화로 남기고자 찾아오셨답니다.”

야코포의 눈매가 휘어지며 분노가 솟구쳤고 두 아들과 사위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안평대군을 돌아보았다.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삼은 북부 예술가는 일종의 분파(分派)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당대 이탈리아 예술의 으뜸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는 피렌체이며. 인문주의(人文主義)를 후원하는 으뜸가는 세력이었다. 그러니 로드리고 보르지아가 함부로 만남을 주선하기에 힘든 대상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교황인 비오 2세는 자신의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에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결국 손님은 손님이니 안평대군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서도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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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잠시 동안 이어졌다. 인사가 끝난 순간 야코포는 축객령을 권하였고 필리포 리피는 야코포가 그린 밑그림을 보고 신랄한 비판을 시작하였다.

필리포 리피의 제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자신들의 스승의 일에 아무도 끼어들지 못했다. 안평대군은 황당한 표정으로 두 화가의 언쟁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언쟁을 벌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화를 알지는 못하지만 둘이 아는 사이 같은데 어찌 이렇게 언성을 높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군.”

“한때 같은 곳에서 배우던 분들인지라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서 그럴 겁니다.”

“동문(同門)이란 말인가? 그렇다 하여도 살기가 깃들 지경이군.”

피렌체는 피사와 악연이 있지만 베네치아와도 질긴 악연을 이어왔다. 베네치아의 무역선이 피해를 입으면 피렌체의 상인들은 축배를 든다 하던가. 하지만 도를 넘어선 언쟁이 이어졌다.

“북부 촌놈 따위가 이렇게 오기를 부리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군. 그래서 네가 남긴 작품이 무엇인데 이렇게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지? 네가 회화를 배울 때에는 내 아래에 있지 않았나!”

“그런 네놈은 메디치(Medici) 조합에서 명성을 떨치더니만! 신실한 수녀인 루크레시아를 납치하여 혼인하지 않았나! 한때 너와 친했던 일을 생각하니 분통이 치밀어 오른다!”

“납치가 아니고 서로 사랑해서 벌인 일이다!”

“그래 아주 잘 한 짓이라고 자랑을 하는구나! 너 같은 더러운 놈이 이국의 왕족을 그릴 권리나 있더냐!”

야코포가 고함을 치자 필리포의 안색이 붉게 물들고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며 노려보았다. 함께 찾아온 제자들도 서로 언성을 높이려는 찰나 안평대군이 나섰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이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니! 도저히 인품을 논할 수 없는 이들이니 돌아가시오!”

“머나먼 이국의 왕족께 불쾌한 일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하오나 저희 베네치아 학파와 피렌체 학파는 앙숙이나 다름이 없으니 같이 회화를 논할 수 없었습니다.”

“앙숙이라 함은 서로의 수준이 비슷하다는 말이겠군. 그렇다면 서로 주제를 선정하여 회화를 그려 대결하면 어떻겠소.”

하지만 서로 주제를 정하려고 언쟁을 벌일 기미가 보이자 안평대군이 양 손을 들고 중재를 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주제를 정해야 이견이 없으리라.

“각자 논하고 싶은 주제를 적어 목함에 넣어두시오. 내가 뽑은 주제로 회화를 정하면 가장 공평하지 않겠소.”

연습지로 쓰이는 한지가 북북 찢겨져 배분되었다. 화가들은 하나같이 서로를 노려보며 주제를 적어 목함에 넣었고 안평대군은 목함을 뒤적거리며 투표지를 하나 뽑아냈다.

“이 분은 누구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온데 혹시 회화에 소양이 있으십니까? 분명히 이 종이에 있는 것은 잉크로 세밀하게 선을 표현한 것인데 종루와 흡사하군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가들은 종이를 돌려보면서 안평대군이 실패한 작품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들이 모르는 방식은 언제나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안평대군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옳은 말이오. 비록 회화는 나의 벗이자 스승인 현동자(玄洞子 - 안견)에 다다르지 못하나 아국에서 손꼽히는 화가라 할 수 있겠소.”

“그렇다면 더욱 좋습니다. 머나먼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손꼽히는 화가라 하셨으니 누가 보아도 온전하게 판가름 할 수 있겠군요.”

“나 또한 대진국의 회화를 배우고자 하는데 셋이 대결을 펼치면 어떻겠소. 학파가 다르고 앙숙이라 하였는데 서로를 발전시킬 계기로 삼읍시다. 그런데 예수라는 분이 누구요?”

대결이라 하지만 이국의 회화를 볼 기회로 변해버렸다. 안평대군은 한참 동안 예수의 일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십자가에 매달린 이가 예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안평대군은 들은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주제를 정했다.

“참으로 많은 여정을 겪은 분이구려. 그렇다면 옛 성현이나 다름이 없으니 일화 가운데 하나를 정하겠소. 명절에 성전을 점거한 무뢰배들을 내쫓은 일을 정할 것이며. 기한은 이레(7일)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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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이면 회화를 만들기에 절대 만만한 기한이 아니다. 특히 머나먼 이국의 왕족이 자신의 회화를 평가한다는 말은 듣자 최대한 완성도가 높은 회화를 만들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마르지 않은 물감이 흘러내리는 유화는 아예 선택에서 제외했다. 그렇게 필리포 라피는 계란 노른자에 안료를 섞어 조심스럽게 붓을 움직였다.

“야코포의 콧대를 눌러버리기엔 충분하겠지. 피사 놈들도 싫지만 베네치아 놈들은 더욱 싫어. 승패는 정해지지 않아도 이런 자리를 놓칠 수는 없단 말이다.”

“스승님의 작품이 가장 돋보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위엄을 만천하에 드러내지 않습니까.”

필리포 리피는 붓을 놀려 회화를 마무리 지었다. 성전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는 예수와 무릎을 꿇고 금화를 손에 움켜쥐려는 장사꾼의 모습이 회화에 당당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렇게 두 화가의 작품이 조용히 햇살이 비치는 벽 아래에 전시되었다. 인물을 단 둘만 두어 묘사를 극대화하고 대립 구도를 살린 필리포 리피의 회화와 인물을 여섯 묘사하여 서사에 중점을 둔 야코포는 완벽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런데 조선에서 오신 분의 회화는.”

“잠시 기다리시오. 회화를 목판에 붙이느라 조금 늦었소.”

두 화가를 시작으로 제자들과 가족들 모두가 안평대군의 회화를 보고 입을 벌렸다. 이미 대결은 안중에도 없고 모두 안평대군의 회화에 달라붙어 화풍을 파악하려고 눈을 빛냈다.

그렇지만 그 회화는 지금까지의 것들과 너무나 달랐다. 화폭은 좌우로 길고 웅장하였으며 인물은 기껏 해야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수십 명이 있었다.

모든 공간을 채우고 인물에 중심을 두는 구도가 아니었다. 이 시기의 서양 미술은 풍경화나 정물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니 생소한 모습이리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신전의 앞에 있지 않소.”

화가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꺼운 팔뚝은 금화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집어 던졌고 반대편 손에는 도망치는 짐승을 쫒아낸 듯이 채찍이 들려 있었다.

가끔 유물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몸이 그곳에 있었다. 화가들은 담대한 필적으로 근육의 결과 역동성을 살린 모습에 감탄하며 안평대군에게 질문을 시작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몸을 하셨다니 잘못 알고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이야기 한 행적을 따르면 이러한 몸을 하는 것이 옳소.”

안평대군의 미간에 주름이 그어지면서 조목조목 예수의 몸을 짚어 나갔다. 먼저 두꺼운 팔뚝에 손가락이 멈추며 입이 열렸다.

“분명 당신들의 말을 듣고 심사숙고하여 정한 일이오. 서른 까지 부모의 휘하에서 목수의 일을 도맡아 하였으며. 이후 세상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파하였으니 그러한 일이 쉬운 것이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손이 울퉁불퉁하게 못이 박혀 있습니까.”

“섬세하게 붓을 움직였는데 잘 보았소. 목수의 일은 나무를 베고 치목(治木)하여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인데 이러한 이들의 손을 본 적이 있소? 하다못해 조각을 만드는 이들의 손 또한 비슷하지 않소.”

이 시대의 미술가는 기본적으로 건축과 조각에 대한 지식이 남다르다. 그렇게 두 화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지만 또 다른 문제점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피부가 어찌 이렇게 검습니까.”

“황야를 떠돌고 사람들에게 배움을 전파하는데 백면서생(白面書生)과 마찬가지의 하얀 피부를 가질 이유가 있겠소. 검은 것이 아니고 본디 하얀 피부를 지닌 이가 그을린 것이오.”

“그렇다면 표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군요. 아직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러한 근육은 어떻게 표현한 것입니까.”

어깨의 삼각근과 팔의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의 결이 온전히 살아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을 통하여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아직 온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평대군은 가볍게 말했다.

“다른 것은 필요도 없고 나의 몸과 은경(거울) 이면 충분하지 않겠소? 웃옷을 벗고 나의 몸을 본떠서 움직임을 알고 이를 회화에 옮긴 것이오.”

“자신의 몸을 옮겼다는 말씀이십니까?”

“약간의 차이는 두었소. 목수로 일한 이는 팔의 힘을 조금 많이 사용했으니 팔꿈치 아래의 근육을 조금 더 두텁게 묘사하였지.”

조심스럽게 소매를 걷어 올린 안평대군의 팔뚝에서 근육이 치솟아 올랐다. 자신의 몸을 회화에 활용한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이리라. 안평대군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보시오. 이렇게 안목이 넓어지니 서로가 발전하지 않겠소. 그러하면 두 분이 협업하여 초상화를 완성하는 것이 좋아 보이는구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저의 스승님이신 바르디님(도나텔로, 도나토 디 니콜로 디 베토 바르디)을 만나도록 피렌체로 향하실 수 있으십니까. 노령이신지라 거동이 불편하신 분입니다.”

“대체 어느 분이기에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던 둘이 입을 모으는 것이오.”

“조각에 능하고 회화에 일가견이 있으시며 피렌체 학파에서 으뜸가시는 분입니다. 저 또한 한때 그분의 아래에서 배움을 얻었습니다.”

안평대군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기껏 해야 삼대 운동 700근(448kg)을 넘어서는 자신의 몸이 그렇게나 돋보인다는 말인가.

이런 자리에는 형님이 왔어야 하지만 형님은 지금도 오사만국의 군주에게 휘둘리면서 애를 먹고 있으리라. 안평대군은 가볍게 승낙하며 피렌체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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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화가들과 조각가들이 안평대군의 몸을 본따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안평대군과 마주한 도나텔로는 제자들의 설명을 듣고 몸을 보고 싶다 하였고. 안평대군은 기꺼이 상의를 벗어 근육을 드러냈다.

“그리스와 로마의 석상과 청동상을 수도 없이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이 이렇게 변모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저 스스로를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뿐이오.”

고대 그리스의 조각은 이상(理想)을 드러낸 작품이다. 실존하는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실존 인물로 시작하여 완벽한 이상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시대를 이끈 거장인 도나텔로는 지금껏 어떠한 이를 대상으로 삼아도 부족하다 여겼다. 하지만 머나먼 동방에서 온 왕족의 몸이야 말로 그러한 이상에 가장 근접한 몸이니 살아 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리라.

“머나먼 이국에서 오신 분에게 무례를 범하여 죄송하지만 당신의 몸을 본뜬 조각상과 회화를 남겨 후대의 사람들이 발전할 수 있는 틀을 만들게 도움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나 내 몸이 빼어나단 말이오? 그렇다면 하나 물어 볼 것이 있소이다. 나의 몸과 비교하면 한배 반 정도는 거대한 근육을 가진 이가 더욱 이상적이지 않겠소.”

잠시 안평대군의 몸을 돌아보던 도나텔로는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거장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수양대군의 몸을 상상해 낸 것이다.

“그러한 것은 저희가 찾아나가던 이상적인 몸이 아니고 근육의 덩어리입니다.”

“참으로 좋은 말이구려. 그렇다면 한 달 동안 여기에 머물면서 낮에는 다른 이들의 본보기가 되고 밤에는 거장의 배움을 얻겠소.”

한 달 뒤, 피렌체 학파에 소속된 젊은이들과 몇몇 거장들이 로마로 향했다. 안평대군의 설명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안평대군과 같은 빼어난 몸을 가진 자가 수두룩하다 하였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배움을 주고받아 자신의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먹은 20명의 피렌체 학파에 속한 이들이 조선으로 떠나 배움을 얻으려 하였다. 한편 안평대군은 침대 위에서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근육 덩어리라니! 형님을 놀려먹는데 써야겠구나. 대진국의 거장이 이런 말을 하였으니 형님이 한탄을 하시겠구나.”

며칠 뒤에 요하네스가 돌아오면 다시 오사만국으로 향해야 하리라. 그렇게 20명의 미술가이자 공학자이며 건축가를 들여온 안평대군의 얼굴에는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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