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55화 (155/573)

< 2장 93화 - 대식국 원정(3) >

항해는 계속되었다. 말라카 해협에 잠시 방문하여 물자를 채우는 시간 동안 조를 편성했다. 이번 사행은 다녀올 곳이 많으니 현재까지의 항해 능력과 인원을 보아가면서 조정해야지.

“이제 사람을 나누어 사방을 돌아다닐 때요. 맹가납국(孟加拉 - 벵갈 술탄국)에는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겠지만 앞으로는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이 좋겠소.”

인도의 대세는 남부에 존재하는 비자야나가르 제국이다. 북인도는 수많은 술탄국들이 난립하는 상황이니 처음 방문하기엔 힘든 장소이다. 하지만 효령대군의 행선지는 티베트 고원이니 방법이 없었다.

비자야나가르 제국의 뭄바이를 방문했다가 돌아오느니 처음부터 효령대군을 떨구고 오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지도 위에 놓인 장기짝을 재정비했다. 먼저 1조는 효령대군이 속한 조이다.

“중부님을 모시고 맹가납국에 머무를 1조는 방패선 3척, 대방선 4척이오. 맹가납국에 머무는 일이 전부가 아니고 사방에 있는 천축국과 통교를 하여야 하니 예조참판인 정척께서는 고생이 많을 거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나하나의 나라를 돌아보며 세상을 주유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같이 대식국(아라비아)로 향할 이는 2조와 3조이며 방패선 4척, 대방선 8척이오. 엄밀히 말하면 대식국에 머무르지는 않고 분열할 것이지만.”

여기서 길이 하나 갈린다. 나와 안평대군은 2조에 속해 대식국에 머물고 외교관계를 주선하며 나머지 3조는 걸프 만 안쪽의 티무르 제국으로 가서 교역을 시도한다.

“그러면 되었소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여기서 마무리 되었으니 모든 일은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이오.”

“저기 대군어른. 아직 분배되지 않은 배와 인원이 있습니다.”

멀뚱히 있던 한명회가 따지고 나섰다. 직급은 정5품으로 제법 높았지만 임무를 받지 않았으니 어디로 따라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한명회를 보면서 신숙주가 친절히 알려줬다.

“4조는 조와국(爪哇 - 마자파힛 제국)이라는 국가가 있는데 수많은 섬과 산야로 이루어져 있다 하더군. 자네는 함선을 이끌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조와국과 수교를 맺게.”

“나……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방패선 3척과 대방선 3척이면 이를 어찌 해야 합니까. 저와 여 호군님이 함께 한다면 큰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불안합니다.”

“혹여나 대양도(대만)를 다녀와서 물자를 보충하여도 될 일이네. 자내가 상재(商材)가 있었으니 이러한 일을 잘 해결할 것이리라 믿네.”

전권을 위임했지만 한명회에게 큰 기대를 걸지도 않는다. 함대를 담당하는 항해사인 여국강은 한명회를 끔찍하게 아끼니까 안전한 항로로만 이동시키겠지.

기껏해야 사방의 빈 섬이나 발견하고 원주민들에게 이런 저런 물자나 받아오고 끝날 일이다. 반면 한명회는 자신이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다 착각하고 두 손을 움켜쥐면서 밖에 나가 환호성을 치고 돌아다녔다.

“가엾고 딱한 자입니다.”

“듣자하니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것이 조와국이라 하였는데 대체 몇 개의 섬을 돌아다닐지 알 길이 없군. 어차피 여 호군(護軍)이 함께 있으니 사고가 날 일은 없지만 고생은 엄청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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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해협을 통과하고 9일이 지나서 가까스로 벵갈의 항구 치타공에 도착했다. 듣자하니 중국과 아랍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의 원산지라 했는데 우리 앞에 있는 배만 해도 수백 척이 넘는다.

함대가 천천히 정선했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느꼈는데 대방선과 방패선은 크고 아름다운 함선이다. 심지어 몇몇 상선들은 주변을 돌면서 배를 구경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북새통이 따로 없구려.”

“염려하지 마십시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미 맞이하기 위한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돛대의 모습이 특이하구려. 세모난 형태가 아니오.”

삼각돛, 현대 분류상으로 라틴세일이라고 했나? 여하튼 그런 돛을 단 함선 여러 척이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그렇게 관원으로 보이는 자가 내려준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대에 있던 아랍인과 매우 흡사한 외모였다.

붉은 터번과 치렁치렁한 수실로 장식된 의복. 여기에 얇은 망토까지 두르고 있으니 정말 현대에서 보던 무슬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외모를 보고 얼이 빠져있는데 관리의 입에서 유창한 중국어가 새어나왔다.

“명나라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삼십 년 만에 찾아오신다니 영광입니다! 지난번에 가져가신 기린을 새로 받아 가시려 하십니까?”

“제법 유창한 명나라의 말이구려. 하지만 아국은 명나라가 아니오, 명나라의 동쪽에 있는 조선에서 왔소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는지 아랍 남성은 생각을 거듭하다가 내 몸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이놈의 몸에 관심을 가지는 놈이 태반인데 정말 짜증난다니까!

“명나라의 동쪽에 나라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런데 체격이 정말 듬직하시군요.”

“과찬은 그만두시오. 여하튼 아국이 방문한 목적은 통교(通交)를 위하여 방문한 것이오. 조만간 머나먼 동쪽의 대식국으로 나아갈 것이니 잠시 들리는 길이오.”

대식국이라는 말이 나오니 상대가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내 어디인지 알아차렸는지 웃으면서 답해줬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맘루크를 방문하신다 하였습니까? 예전에 명나라의 함대는 메카에서 정박하여 있었지만 통교를 원하신다 하시면 일이 복잡해질 것 같군요.”

“일이 복잡해진다 하는 것이 무슨 소리요.”

“메카는 카바 신전이 있는 최고의 성지이며 일생에 한 번은 방문하여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하니 예전 명나라의 함대는 통교를 하지 않고 성지를 오간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태감 정화가 성지만 오고 갔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미 알고 있는 말이지만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적당히 놀라는 척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평대군은 여정이 점점 길어지는 분위기를 느꼈는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통교를 원하신다면 메카에서 북부로 한참을 더 나아가 알 까히라(현 카이로)에 방문하셔야 합니다. 저도 한낱 관원인지라 상세한 일은 알지 못하지만 오래 방문하시기 힘들 것입니다.”

“오래 방문하기가 힘들다 하면 무슨 일이오.”

“본래 많은 무역을 행하던 곳이었지만 근래에 들어 알 까히라에서 배가 온 적이 없으니 불안할 뿐입니다. 혹여나 술탄께서는 알지도 모르니 이야기를 청하시면 될 일입니다.”

더 이상은 관원에게 물어서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항구에 내려서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배에 올랐다. 주변을 살피던 이들은 하나같이 풍경에 감탄하고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여기는 천축, 즉 인도가 아니고 방글라데시다.

그렇게 배가 하염없이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자 수도인 판두르에 도착했다. 예전에 정화의 함대가 방문한 기억이 있는지 물가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도열해 조선의 손님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저게 기린인가 보구나. 살아있는 망루나 다름이 없구나.”

“타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요청하십시오. 제법 불편하지만 사람 몇 명 정도는 태우고도 남습니다.”

“저건 하얀 호랑이가 아닙니까?”

임영대군이 체통에 걸맞지 않게 벌떡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정말 철제 우리 안에 누런색 털이 아닌 거의 하얀색의 백호가 있었다. 그렇게 행렬이 끝나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계단 위에서 술탄이 천천히 내려왔다.

“명나라를 넘어 더욱 동쪽에 있는 조선에서 오신 분이라 하였는데 참으로 대단하오. 이 나라를 다스리는 중인 마흐무드요.”

“과찬이십니다. 본디 아국은 세워지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나라인지라 견문이 부족하여 이러한 일을 추진하였습니다.”

서로의 인사가 끝나고 교역품이 전해졌다. 다른 교역품도 아니고 명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기술자들이 만든 장식품이 가득 들어있는 목함을 열자 술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조선에서 만든 절제되고 수수한 물건이 아니다. 평양 형무소에서 일하는 명나라 출신 노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명나라와 조선의 융합 상품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으니까. 술탄은 천천히 표정을 되돌리고는 말했다.

“삼십 년 전에 전해지던 물건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으니 가장 큰 연회를 시작할 것이오.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소.”

“아국이 정성껏 준비한 물건이니 명나라를 제외한 어느 곳과 교역하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명국에 이러한 물산을 팔게 되면 일이 틀어질 수 있습니다.”

“명나라라? 명나라는 당신들과 직접 거래를 하니 가치가 없지 않소이까.”

그렇게 웃으며 들어간 술탄은 거대한 연회를 시작하였다. 연회장에 진귀한 음식들이 널려 있었는데 익숙한 것들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접히고 꺾인 모습은 현대에나 봤던 요가 수행자들의 모습이다.

“저들은 요가의 수행자들인 사두(sadhu)요, 본래 자신의 수행을 하는 자들이지만 이런 뜻 깊은 날에는 볼거리로 안성맞춤이 아니겠소.”

내가 천축팔이를 했던 것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케틀 벨과 유사한 물건을 축으로 삼아 몸을 돌리는 자가 있었고. 거대한 봉을 사방으로 돌리는 자가 있었다. 그리고 효령대군의 눈이 찌푸려졌다.

“사람이 저렇게 접힐 수 있단 말인가.”

“형님이 힘으로 접어버린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걸 한다 하여도 입 밖으로 내밀지 않는 것이다! 구야 네 녀석은 올해 나이가 마흔이 아니겠느냐!”

연회가 이어졌지만 술을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서로 취하지도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잡담을 나누었다. 그러던 가운데 주변을 둘러본 마흐무드 샤가 본론을 시작했다.

“궁금한 것이 있소이다.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지 않았겠소. 지금에 이르러 가장 강대한 나라는 누가 뭐라 하여도 비자야나가르 왕국인데.”

역시 술탄 자리는 투표로 따놓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머나먼 고장에 왔으면서 가장 큰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고 어중간한 나라를 방문했으니 속내를 드러내라는 신호였다.

“다름이 아니고 북쪽에 주무랑마봉이라 하는 거대한 산맥이 있습니다.”

“기껏 머나먼 길을 와서 초모랑마를 보러 왔다는 말이오? 그런 이야기는 하지도 마시오.”

“주무랑마봉을 넘어 토번에 당도하려 하였는데 토번으로의 길은 여기가 가장 가깝지 않습니까.”

연회장에 정적이 흘렀다. 나라를 방문하면서 길을 내달라는 소리와 다름이 없어서 무례했나 하는데 연회장의 사람들은 나를 미친 놈 보듯이 걱정하고 있었다.

마흐무드 샤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사람을 불렀다. 이윽고 궁정에서 일하는 라마승 한 명이 와서는 인사를 올렸다.

“자네는 트쌍파(당시 티베트를 지배하는 가문)에서 보내온 자이지. 고원이 얼마나 험준한 곳인지를 이야기 하게나.”

“초모랑마를 논하셨으니 어떠한 곳인지는 모르고 계실 것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산의 어머니이며 오를 수조차 없는 산이며 설표조차도 얼어 죽는 험난한 곳입니다.”

“하지만 초모랑마에 오르겠다는 말은 아니오. 그저 토번의 수도인 일객칙(日喀則 - 르까저)에 방문하여 배울 것이 있을 뿐이니까.”

라마승이 한숨을 내쉬고 마흐무드 샤는 너무나 우스운 이야기였는지 배를 잡고 웃음을 참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연회장이 내 말을 통역하여 알아들은 이들의 의견으로 들끓자 라마승의 입이 다시 열렸다.

“좋습니다. 초모랑마와 칸첸중가 사이의 골짜기를 통과한다 합시다. 직접 올라가신다면 체격이 당대하고 건장해 보이니 사람을 많이 고용하시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니요. 나의 중부님과 동생이 가는 것이지.”

“중부님이라 하시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있던 효령대군이 벌떡 일어났다. 노인 치고는 건장한 체격이라 여기겠지만 한복을 입어서 옷의 결이 하나도 살지 않으니까 그냥 살이 찐 노인으로 보이겠지.

“올해 예순 둘이오.”

“지금 연회장에서 재주를 뽐내는 사두(요가 구도자)들을 보십시오. 이들도 고행이 아니고 자살이라 여겨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가체까지 당도하고 몸이 성할 이는 열중에 여섯에 불과합니다!”

“그러하면 당신은 매번 오갈 때마다 목숨을 걸고 있다는 말이오? 그렇다면 일객칙에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겠소?”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자란 사람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들에서 자라난 사람이 산을 오르면 사지가 부어오르고 힘을 쓰지 못합니다. 이러다 간혹 죽는 이가 생겨나고 기력을 되찾지 못합니다.”

고산병에 대한 연구는 없지만 경험적으로 증상에 대해 아는지 라마승이 효령대군을 뜯어 말리고 있었다. 마흐무드 샤 또한 설득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람을 불러왔다.

“머나먼 이국에서 온 왕족들이 나의 영토 안에서 유명을 달리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지 모르오. 그러하니 고집을 그만 부리시고 편안히 머물다 가시오.”

“맹가납국의 군주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지의 힘이 빠져 사람이 죽는다 하면 제 힘을 보여드리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러한 일로 쉽사리 죽지 않습니다!”

설마 하는데 효령대군이 두루마기를 벗어던지고 속에 입은 속저고리도 아니고 입신체비복이다! 자수가 놓인 입신체비복을 드러내자 좌중들이 놀라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배 위에서 머물면서 하체만 줄곧 했던지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 사두들이 재주를 벌이는 가운데로 나아가 조용히 인사를 하고 케틀 벨을 빼앗아 들었다.

“기껏 하여 예순 근(38.4kg)의 석쇄를 가지고 무엇에 이렇게 힘을 들인단 말인가! 석쇄라 함은 중심근육(코어머슬)을 발달시키는 좋은 도구이건만!”

케틀 벨 스윙. 석쇄 휘두르기를 시작한 효령대군은 깔끔한 정자세로 호흡과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릴 지경이었다.

“이걸 보게! 유야! 너도 나와서 이 놈들에게 석쇄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어라! 이 중부가 이렇게 땀을 흘리는데 네가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느냐!”

“그렇지 않아도 몸이 뻐근하였는데 잘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달아올라서 빠져 나올 방법이 없으니 웃옷을 벗어던지고 입신체비복만 입은 상태로 연회장 한복판에 나왔다. 사두들은 내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렸는지 사지를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알아서 앞에 내려놓은 케틀 벨을 들고 한 손으로 편수 석쇄휘(케틀벨 스내치)를 시작하자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심지어 마흐무드 샤는 내가 케틀 벨을 놓칠까 염려했는지 호위병을 앞에 두기까지 했고.

“아이고 시원하다! 이제야 어깨가 풀리는구나!”

“이런 물건을 힘차게 휘둘러야지. 기껏해야 들었다 놓았다 잡았다 풀었다! 네놈들은 배움이 틀려먹었어!”

효령대군이 간만에 땀을 흘려서 기분이 좋은지 라마승에게 푸근한 미소를 보여줬다. 아무리 봐도 죽기 싫으면 꿇으라는 미소였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되었소?”

“되…… 됩니다. 이렇게 건장하신 분이라면 많은 고난이 있겠지만 극복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마무리 되었던 것 같았다. 연회도 끝나고 열흘 뒤에 시가체로 출발할 인원 선발을 마치겠다고 공언했으니까. 돌아가는 날 마흐무드 샤를 만나게 되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마흐무드 샤에게 무역을 지속하기로 약속했으나 부족한 것일까. 그렇게 마흐무드 샤의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아왔다.

“알 까히라에서 맘루크를 만난다 하지 않았소. 그런데 일대에는 몇 년 전부터 페스트가 창궐한다 하더군.”

“지금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회회국의 수도인데 역질이 돈다고 하셨습니까?”

“그러하니 알 까히라(카이로)에서 오래 머물면 조선으로 흑사병을 퍼트릴 지도 모르지 않겠소. 차라리 알 까히라를 통과하고 바로 코스탄티니예로 향하는 거요.”

코스탄티니예면 콘스탄티노플의 터키어겠지. 안평대군은 흑사병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분위기를 보아서 대충 짐작하고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흐무드 샤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코스탄티니예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본래 회회국과 교역을 맺자 하였는데 어찌하여 더욱 먼 곳을 논하십니까.”

“코스탄티니예의 군주인 메메트 2세께서는 승전을 거듭하고 술탄이자 칼리프이며 카이사르인 분이오. 그러한 분과 교역을 하면 세계만방의 모든 술탄들이 반길 것이 아니겠소.”

그러니까 기껏 뚫은 거래선이 흑사병 걸려서 죽는 꼴은 보기 싫으니 가장 힘이 강한 사람을 만나서 살아 남으라는 소리겠지.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갔는데 힘이 쭉 빠지면서 주저앉을 뻔 했다.

“형님. 코스단디니에 라는 곳에 정녕 다녀오실 생각입니까?”

“참으로 다행이구나. 이러한 일을 미리 알아보지 못했다면 역질이 도는 고장에서 머물다 비명횡사할 뻔하였다. 아무리 입신체비를 하여도 질병에는 이기지 못하느니라.”

“그렇다면 여행 일정이 얼마나 길어질 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차피 석감과 주정이 있으니 몸을 깨끗하게 씻으면 충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다고 감모에 걸리지 않더냐? 석감과 주정이라 하여도 효험이 없는 역질이 있느니라.”

정말 천만 감수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카이로에서 머물렀다가는 흑사병에 걸려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겠지. 흑사병의 전파 원인이 벼룩이니 막을 방법도 없으니까 더더욱! 차라리 나중에 돌아오면서 예물을 바치고 내빼던지 해야지.

다시 항해에 나선지 한 달 뒤. 조선의 함대는 가까스로 메카에 도착했다. 중간 보급이 없는 바람에 비상식량을 조금 축내긴 했지만 문제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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