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52화 (152/573)

< 2장 90화 - 강근지족(強近之族) >

안평대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임영대군도 들어왔다. 평소에는 사냥이나 하면서 한량처럼 살아가던 녀석이니 우울한 얼굴을 보이며 조용히 말했다.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셨으니 중부님을 모시고 천축 정도야 기꺼이 다녀올 것입니다. 무료하던 차에 잘 되었습니다.”

“일전에 북경에 다녀왔을 때 설표(雪豹)를 보았던 적이 있다. 듣기에는 토번 인근의 고원에서 설표를 사로잡아 조공으로 바쳤다 하는데 네가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니더냐.”

임영대군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현대의 정보를 슬쩍 흘렸다. 설표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임영대군의 표정이 달라진다.

“천축 북쪽의 토번에 귀하디귀한 설표가 산다는 말씀이십니까?”

“설표뿐이겠느냐. 아국에서야 보총으로 산군을 몰아내니 산군의 씨가 마를 지경이지만 천축과 토번에는 산군이 넘쳐난다는 말을 들었다. 아국의 산군과는 모양새가 다르다 하더구나.”

“중부님이 일을 보시는 동안 사람을 사들여 사냥에 나서면 충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천축으로 나아가 즐거운 일을 하니 참으로 좋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몸을 조심하고 본분을 잊지 말거라. 네 행실이 아국의 모습이나 다름이 없으니 사람을 함부로 해치지 말고 언제나 정중하게 대하여라.”

물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야하며. 티베트 고원에서 백두산 따위는 동네 뒷산으로 취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쏙 빼놓았다. 그렇게 임영대군을 설득하자 안평대군이 고심하다가 말을 시작했다.

“천축만 하여도 머나먼 곳인데 어찌 대식국을 논하십니까.”

“일이 그렇게 되었다. 네가 족리의정과 연을 맺었지만 왜국은 가기 싫어하지 않았느냐. 천축에 다녀온다 하면 오랜 시일이 걸리니 몇 년이고 왜국에 갈 일이 없을 것이다.”

“형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왜국에 있다가 봉변을 당할지 몰라 노심초사 하고 있던 차에 좋은 변명거리가 생겼지만 너무 먼 곳에서 너무 오랜 시일을 소요하게 될 것입니다.”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안평대군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어명이라고 해도 의지가 없으면 짐짝을 끌고 다니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의욕을 만들어낼까 하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조금 늦었습니다. 호군 여국강 방금 전에 입궐하여 지금 당도하였습니다.”

“마침 잘 되었소. 만약 아국의 선박으로 대식국을 오간다면 기한을 얼마나 걸리겠소?”

“단순히 대식국을 오가는 일이면 여섯 달이면 충분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국강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 만든 지도를 가져왔는데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대방선 한 척당 방패선 한 척을 동원한다 하면 보급이 없이 한 달간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예조 참의께서 대월국(베트남)에 다녀오실 것이니 일이 편해졌습니다.”

벽란도를 출발한 선박은 당연히 대만을 거쳐서 신숙주가 먼저 다녀올 베트남에 멈췄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다음부터가 문제다.

“대월국에서 천축까지는 시일이 많이 걸릴 것인데 중간에 정선할 곳은 있는 거요?”

“다음에 정선할 곳은 만랄가(滿剌加 - 말라카 해협)입니다. 정화 어른의 함대를 타고 나아갈 적에는 들릴 연유가 없었지만 아국의 함대는 필히 거쳐야 하는 곳이지요.”

만랄가? 익숙한 단어이기에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마 말라카 해협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정화의 함대는 무사통과고 우리는 반드시 들려야 한다고? 이놈들 해적 아니야?

“혹여나 만랄가라는 곳이 해구(海寇)가 머무는 곳이기에 통행세를 물어야 하는 것이오?”

“정 반대입니다. 만랄가는 해구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타국의 함선이 머물면 보호를 위하여 교역을 행하며 병사를 파견합니다. 하지만 정화 어른이 함대를 몰고 갔을 적에는…….”

“이해하였소. 만랄가의 병사보다 함대의 병사가 많았으니 당연한 일이겠구려.”

“그러하니 만랄가에서 출발하여 북서쪽으로 보름을 나아가면 천축입니다. 이 모든 일은 바람이 좋고 파도가 험하지 않으면 더욱 빨라질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대만까지 열흘, 베트남까지 보름, 말라카까지 열흘, 천축까지 보름으로 총 50일이다. 이마저도 여유기간을 넉넉하게 잡은 것이 분명하지만 안평대군이 다시 따지고 들었다.

“이전에 방길주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말이 다르지 않소. 명국의 함대가 대식국까지 나아가고 돌아오는 시일이 일 년 하고도 반이나 흘렀다 하였는데.”

“당시에는 보선이 지나치게 느려서 벌어진 일입니다. 하루 종일 배를 몰아도 이백 리(80km)를 나아가지 못하였고 각지에 정박하여 조공을 바치라 하니 시일이 너무 오래 걸렸지요.”

“아국의 선박이 훨씬 빠르다는 말이오?”

“물론입니다. 물살과 바람이 모두 좋으면 하루에 오백 리(200km)까지도 나아가는 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실제로 타요완까지 여드레만 항해하는 일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여국강의 말에 안평대군이 뭐라 답변하려고 우물쭈물 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안평대군도 거절할 방법이 없었는지 나와 같이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나보다.

“그렇다면 여기서 큰 흐름을 잡으면 어떠한가. 먼저 중부님과 구는 토번으로 향하는 분견대를 만들어두게. 토번으로 나아가서 돌아오는 일은 적게 잡아도 여섯 달은 걸릴 것이네.”

“분견대를 둔다 하였으면 사람을 보내고 함선은 따로 오간다는 말씀이십니까.”

“다소 고생하겠지만 정척 자네가 사방을 돌아다니며 아국과의 수교를 맺는 일에 힘쓰게.”

“대식국을 오가는 대군어른보다 고생할 일은 아닙니다.”

시간은 중요하니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봐야 한다. 그렇게 지도 위에 압정을 꽂아 넣고 대식국에도 압정을 하나 꽂았다.

“다른 일은 몰라도 대식국을 오가는 일이 여섯 달은 걸릴지도 모르네. 대식국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 아무도 모르니. 그러하니 여기는 어떠한가.”

지도에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내가 지목한 곳은 걸프 만 안쪽의 투르크메니스탄이다. 다른 이들은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아는 곳이고 흑우의 고향이기도 하지.

“여기는 옛 돌궐(突厥)의 땅이 아닙니까.”

“듣자하니 이 고장의 말이 한혈마라 하였네. 한혈마는 귀한 물품이다 못해 달자들도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물품이니 종마를 수입하면 나라의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한혈마라는 말에 예조 관원들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당연하지만 종마를 들여와 2세가 태어나면 공을 세운 예조 관원들에게 우선적으로 지급되겠지. 그렇게 계획을 구체화 시키니 어느덧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 늦어졌으니 조용히 논의를 마쳤고 예조판서인 이맹전을 시작으로 관료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렇게 나도 일어나려는 찰나 신숙주가 조용히 말했다.

“한명회는 빼어난 인재이니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주상전하께 말씀드리면 업무가 더욱 많아질 것이니 한명회가 스스로 움직이게 하실 수 있으신지요.”

평소의 신숙주 답지 않게 악랄한 청원은 아니고 부탁이 들어왔다. 형님이 어명을 내리지도 못하게 만들려는 방법이다. 진급조차 막아버리겠다는 생각이겠지.

어명을 받아 일을 하면 주상전하가 신임하는 신하로 발탁되는 것이니 승진의 길이 열린다. 반면 한명회가 멋대로 일을 추진하면 그건 그냥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힘든 일이지.

“한명회가 근래에 무엇을 하였는지 모를 일이네. 타요완에 다녀왔을 당시는 모르겠지만 요동에 있을 적에 무엇을 하였는지 아는가?”

“제가 알고 있습니다. 한명회와 같이 요동을 오갔을 적에 홍길동이라고 불리는 상인과 친밀하더군요. 천일염을 파는 자였습니다.”

“홍길동이라? 천일염을 파는 상인이라고?”

“요즘에 들어 천일염을 나라에서 사들이는지라 벌이가 좋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김의정의 말을 들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생각이 떠오른다. 개성 일대에서 소득을 거둔 홍길동과 아는 사이인 한명회라면 쓸 방법이 있지.

“한 번 노력해 보겠네. 그런데 신 참의는 언제쯤 대월국으로 향하는가?”

“올해 십일월입니다. 이미 호조에서 품목을 정하고 있을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대만으로 보낸 함대를 정비하느라 한창이겠지. 다음 날 아침부터 호조에 들어가서 한명회를 찾았다. 한동안 기다리자 손에 먹물이 묻어있는 한명회가 불쑥 달려 나왔다.

“대군어른께서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근래에 들어 일이 많은지라 찾아뵙지 못하였습니다.”

다행이도 한명회는 호조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숨을 고르는 한명회에게 중요한 목적은 숨겨야 하니 미끼를 물 수 있는 떡밥을 뿌렸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네. 좌찬성은 여전히 기력이 쇠하였는가?”

“얼마 전에 기력을 회복하셨습니다. 타요완의 더위가 한 풀 꺾인 이후에 기력을 찾으셨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한확의 안부에 대해 묻자마자 칼같이 답하는 모습을 보니 친척이 맞네. 무슨 방법으로 기력을 되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사소한 문제고 본론에 들어가자.

“다른 일은 아니고 조만간 대월국에 보낼 물건과 관련된 일인데 자네가 미리 알아둬야 할 것이 아닌가 하여서 찾아왔네.”

“대월국에 보낼 물품이라 하면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건삼을 보내고 수우(水牛 - 물소)를 받아오기 위해 한창 마련하는 중입니다 특히나 건삼이 많으니 고민입니다.”

“건삼을 준비하였단 말인가? 타요완에 보낸 건삼의 효험이 없으니 좌찬성의 병이 쉬이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 분명한데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건삼을 보내도 문제없고 생삼을 보내도 문제없는 거리지만 한명회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어깨가 움츠러들였다. 건삼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습니다! 이런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였는데 대군어른께서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자칫 잘못하면 대월국에 보낸 건삼이 모두 상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호조의 일인데 자네가 물품을 선적하고 관리하는 일을 도맡아 하지 않는가. 내가 자네를 아니 이렇게 말한 것이네.”

“그렇다 하여도 제가 인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 이러다 주상전하께서 노하실 일이 아니겠습니까.”

걸렸다 요놈!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웃음을 머금으면서 말했다.

“자네는 삼에 대하여 모르겠지만 자네가 예전에 머무른 곳에 잘 아는 이가 있지 않던가.”

“제가 머물렀던 곳이라 하시면 송상(松商)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렇다네. 듣자하니 개성에서는 홍삼(紅蔘)이라 하여 삼을 쪄내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는데 홍삼을 보낸다면 약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한명회는 입신체비를 하며 체격을 키워 절친한 이들도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당연히 개성에서 돌아다녀도 알아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라의 일이기에 내가 나서가나 주상전하에게 알리려고 하였네. 하지만 내 체격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오. 주상전하께서 어명을 내려도 개성의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나.”

“저 또한 홍삼은 시전에서 몇 번 본 것이 전부입니다. 더군다나 제가 호조에서 일하지만 시전 상인들의 일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자네는 개성과 연줄이 있는 사람을 알지 않는가. 홍길동이라는 상인 말이네.”

“길동이 말입니까? 대체 그런 일은 어떻게 아셨……. 아닙니다, 대군어른께서 알만한 일입니다.”

홍길동을 이번 상행에 참가시킬 이유는 없다. 얼자 출신의 상인이 끼어들면 조정에서 반발이 거셀 테니까. 하지만 개성에서 홍삼을 찾는 한명회를 소개하는 연줄로는 사용할 수 있다.

한명회도 할 만한 일이라 생각했는지 손을 굳게 거머쥐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조만간 벌어질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기에 다시 부추기기 시작했다.

“혹여나 홍삼을 만드는 법을 알아낸다면 일이 정말로 편해질 것이 아닌가. 아니면 아예 상인을 설득하여 조정의 일에 끼어들게 하여도 충분한 일이고.”

“상인을 설득하여 조정의 일에 끼어들게 하다니요. 그러한 일은 제가 정할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방법이든 좋다네. 내가 할 일은 모두 하였으니 이제 자네만 믿겠네.”

한명회가 뭐라 말은 했지만 더 이상 손을 대봤자 한명회가 나에게 의지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냉정하게 손을 놓아버리고 준비를 마친 다음 효령대군에게 돌아와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였다.

“주상전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일을 허락하셨지만 제가 중부님을 모시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대신 구(臨 - 임영대군)가 중부님을 모실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구 녀석과 함께 나서야 한다고? 용(안평대군)이는!”

예상대로의 반응이 나왔다. 임영대군은 요즘에 철이 들었을 뿐이지 예전에는 정말 난봉꾼이 다름 없었으니까. 그렇게 안색이 붉어진 효령대군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용이는 저와 함께 대식국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 사행의 주역이 아니겠습니까.”

“대식국,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향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주상께서 혜안을 보이셨구나. 그러한 일이면 내가 천축으로 향해도 나이를 먹은 종친이 객기를 부린 것으로 알겠지.”

수긍했으니 다음 단계에 들어가자. 자칫 잘못하면 고산병에 시달린 효령대군이 급사할지도 모르니까 고산병 방지를 위한 입신체비를 시작해야지.

고산병에 대한 명확한 지식은 없지만 등산하기 편하게 근지구력을 향상시키고 심폐기능 위주의 훈련을 시키면 왕성히 움직일 수 없어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 바꿔 말하면 하체라고.

“그러하니 중부님과 구에게 특별한 입신체비를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토번으로 향하는 길에 주무랑마(珠穆朗玛 - 에베레스트)라는 거대한 산이 있는데 근방을 지나가야 하니 고생이 심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특별한 입신체비라니 조금 무섭구나.”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 중부님을 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걸을 수 있으면 하체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마. 그렇게 얼떨떨한 표정의 효령대군을 연희당으로 데려와 회축기(사이클 머신) 위에 앉혔다.

“이건 회축기가 아니더냐. 그런데 어찌 좀 뻑뻑한 것이 이상하구나. 아니 조금 뻑뻑한 것도 아니고 내가 온 힘을 기울여야 움직이는구나!”

“회축기는 축에 연결된 륜(輪)에 공령(플레이트)을 꽂아 하중을 조절합니다. 평상시에는 다섯 근(3.2kg)에 불과하지만 지금 연결된 공령은 마흔 근(25.6kg)입니다.”

“뭐? 마흔 근이라 하였느냐? 지금 이 나를 죽이려고 작정하였느냐!”

안 죽여요. 죽어라고 하체를 굴리고 유산소를 굴릴 뿐이지. 그렇게 나를 이스탄불까지 보내게 된 중부님에게 조용히 말했다.

“중부님께서 주무랑마봉을 오르실 일을 생각하니 조카로서 마음이 아프다 못해 찢어질 것 같습니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사람의 목숨과 연관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잠깐! 지금이라도 천축행을 취소할 생각이다! 이건 미친 짓이다! 여기서 당장 나가겠다.”

“중부님, 주상전하의 어명은 함부로 되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느냐 구야? 네가 열심히 하였으니 설표를 한 마리 더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

연희당 구석에서 시체처럼 엎드려 있는 임영대군이 고개를 들면서 뭐라 말을 하다가 다시 누워 버렸다. 아마 살려달라는 말 같은데 나도 잘 모르겠다.

평소에 산야를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던 임영대군이 하체를 열심히 했던 모습을 보자 효령대군의 눈빛에 공포가 들어차고 있었다. 하지만 무서워 할 일은 아니니까 아주 정중하게 시작하자.

“저는 사람의 한계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효심을 가득 담아 중부님을 올바른 하체 입신체비의 길로 인도하겠습니다.”

“유야! 아니 된다! 조금이라도 쉬운 길이 있을 것이다!”

“입신체비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저는 중부님을 바른 길로 인도할 마음을 먹고 이 자리에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날 효령대군은 평상시처럼 말을 타고 돌아가지도 못했다. 내 등에 업혀서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가마에 올라 시체처럼 돌아가게 되었다.

“역시 하체는 이래야 제 맛이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느냐?”

“형님 그냥 죽여주십시오.”

입을 열었다는 것은 아직 하체를 덜 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임영대군도 내 눈빛을 보자 이해했는지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치려 하였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어디서 들은 말인데 기억도 나지 않네. 그렇게 임영대군이 가마에 실려 돌아가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하체를 해야 제 맛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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