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89화 - 지금부터 서로 먹여라 (이게 89화입니다) >
지금 오스만 제국은 서양인들에게 공포의 상징이자 이슬람 세계의 희망이자 패권국이다. 내가 맘루크 술탄국에 사신으로 들어간다면? 당연히 수도인 카이로까지는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소리를 하겠지.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이슬람의 지배자이자 정복자. 위대한 칼리프이자 카이사르이시며 로마의 정통 계승자이신 메흐메트 2세를 접견하실 수 있습니다.’
거절할 명분도 없다. 여기에 비잔티움을 멸망시키고 뽕이 들어찰 대로 들어찬 메흐메트 2세가 머나먼 동방의 사신을 본다? 정통 로마의 계승자라 칭하고 동조하라고 하겠지!
케밥 주제에 로마를 칭하다니! 내가 다른 거는 몰라도 로마의 정통 후계자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런데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고함을 치다니 깜짝 놀랐구나. 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이냐.”
“네? 제가 무어라 하였습니까?”
정신적으로 너무 혼란해서 그런지 이스탄불이라는 현재 존재하지도 않는 지명이 나왔다. 형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정신을 쏟고 있어서 온전히 듣지 못하였다. 이수단이 뭐라고 하였지?”
“아무 일도 아닙니다. 대식국(아라비아)을 방문한다 하였는데 대식국의 국교는 회회교(回回敎 - 이슬람교)이니 어린 시절 망궐례가 기억이 났습니다.”
“망궐례라? 아바마마께서 망궐례를 행할 적에 회회승(回回僧 - 이맘, 이슬람교의 예배를 인도하는 역할)들이 자신들의 경전을 읽는 것을 보았다. 후예들이 조선에 있으니 충분한 효험이 있겠지.”
이스탄불이라는 말은 잘 넘어갔다. 형님은 고개를 한참 숙이고 있다가 생각을 마쳤는지 내관을 불러 회회교도를 찾아내라는 명을 내렸다. 이번 항해를 취소하는 방법은 없을까? 대신들이 불교에 힘을 쓰면 귀찮게 여길지도 모르니 설득해보자.
“하오나 명분이 올바르지 않습니다. 천축으로 향하는 일을 행하는데 토번에서 불자를 들인다면 대신들이 쓸모없는 일에 나라의 힘을 쓴다고 중부님을 손가락질 할 지도 모릅니다.”
“생각 같아서는 어명으로 막아서고 싶지만 종친의 일이니 고민이 되는구나.”
“차라리 중부님을 보내지 말고 다른 이를 보내시면 어떻습니까. 신미는 이러한 일을 행하기에 적합하다 봅니다.”
“너도 효령대군의 성품을 알지 않느냐. 본디 성품이 온화하고 화를 내지 않지만 아바마마와 같게 한 번 정한 일은 되돌리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이지. 효령대군의 성격은 세종대왕님과 같은 면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심사숙고하여 알아내고 정한 일을 되돌리지 않는 굳은 의지가 있었다. 형님도 아는지 나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토번에서 들여올 승려는 언어를 가르치는 이들이라 하여 들여올 수 있다. 기껏 해야 다섯 정도를 들일 생각이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며 효령대군도 만족할 것이 분명하겠지.”
“하오면 제가 대식국으로 향하는 일은 본질을 속이는 방도입니까.”
“그런 것은 아니다. 본질은 네가 대식국으로 향하는 것이며 효령대군이 대식국에 다녀오는 동안 토번까지 나아가 사람을 찾는 것이지.”
형님이 무슨 정보를 입수했는지 몰라도 그놈의 아라비아와의 교역을 죽었다 깨어나도 성사시키려는 것이 분명하다. 하다 못해서 천축만 찍고 돌아와도 행복한데 되돌릴 방법은 없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형님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굳은 의지를 보여줬으니 되돌리려 하면 철저히 논파해야한다. 그렇지만 논파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희생자를 추천해야겠다. 형이 까라고 하면 동생들은 까야지! 형님의 생각도 나와 같았는지 손가락을 꼽다가 희생자를 찾아냈다.
“구(璆 - 임영대군)로 하여금 효령대군과 같이 행동하게 하면 충분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없어 산야(山野)를 돌아다니며 사냥에만 열중하고 있어서 보기 딱하더구나.”
“그러하면 용(瑢 - 안평대군)이는 저와 같이 행동하면 어떻겠습니까? 왜국이 나날이 혼란해진다 하였는데 족리의정도 천축을 다녀온다 하면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왜국에 보내지 않으려는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네가 생각이 깊구나. 분명 용이도 좋아할 것이다.”
형님도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할 일 없는 동생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게 되었고 일 하기 싫어하는 동생은 이스탄불을 오가게 되었다. 임영대군은 산을 좋아하니 좋아 죽겠지! 백두산의 두 배가 넘는 높이의 산을 올라야 하니까!
안평대군은 일본에서 칼침을 맞을지도 몰라 불안해했는데 내가 해결해줬다! 오스만 제국까지 다녀오면 칼침을 맞을 일은 없겠지! 사신이 칼침을 맞으면 왕의 체면에 먹칠을 하는 일이니까.
더 이상 빠져나오지 못할 수렁 속으로 세 형제가 나란히 빨려 들어갔다. 어차피 탈출할 수 없다면 다 같이 망가지는 게 답이다. 그렇게 동생들을 팔아먹은 기쁨을 형님과 같이 나누었다.
“용이의 회화와 서예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머나먼 대식국의 사람들도 즐거워 할 것이 분명합니다. 명국의 황제가 아끼던 실력인데 분명히 통할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도 네가 나서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예조에 사람을 보낼 것이니 기본적인 계획을 세우고 교역을 행할 품목을 정하여라. 상세한 일은 이후에 나와 같이 정하자꾸나.”
“형님께서 정하는 일이 아니십니까?”
“근래에 들어 진휼청(賑恤廳)의 곡식은 남지만 시킬 일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다더구나. 이를 바로잡을 것이니 시일이 많이 걸릴 것이다.”
형님도 일이 바쁘기는 매한가지니까 더 이상 뭐라 말하기도 힘들다. 혹시나 일을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을 모색하다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맘루크 술탄국은 아마 부르지계 맘루크가 지배하고 있으며 그럭저럭 괜찮은 상황이니까 여기만 다녀와도 충분하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형님에게 말을 건넸다.
“머나먼 세상 건너편의 일은 알 방법이 없습니다. 혹여나 대식국이 번국이며 상국이 따로 있다면 번국에 외교를 행하고 돌아오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번국과 상국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본디 외교라 함은 상국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혹여나 대식국의 상국이 거대한 제국일까 염려가 되느냐?”
“그렇습니다.”
형님도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이어지는 답변에 여기서 형님이 천재이지만 이 시대를 사는 사람임을 다시금 느꼈다.
“염려하지 말거라. 혼일강리역대국도에 의하면 대식국 일대는 명국의 사분지 일 조차 되지 않는다. 타요완이야 사람이 기거하지 않는 섬이었으니 찾는 이가 없어서 정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그렇습니까?”
“반면 대식국은 수백 년 전부터 알려진 나라가 아니더냐. 그러하니 지도가 잘못되어 있어도 명국보다 클 이유는 없다. 기껏해야 북경을 오가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까. 그렇고 보니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자신하는 형님에게 뭐라 말하려다가 참았다. 정보가 부족하면 천재도 저럴 수밖에 없으니까. 형님의 의지가 너무나 확고하니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지금껏 내가 행한 일이 불자 가운데 으뜸이라 여긴 중부님께서 천축 너머에 있는 토번에 다녀와 토번의 불자들을 들여올 것이라 하였소.”
“주상전하께서는 갑자기 토번의 이야기를 듣더니 대식국의 이야기를 하셨고 일이 이렇게 되었소.”
“그렇다면 천축 너머 머나먼 대식국까지 향하게 된 원인이 사찰을 돌아다녀 불상을 세우며 시주를 행한 일이 전부란 말씀이십니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도 불공을 올리는 불자이며 재산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내 행동에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지금까지 이르니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겠지.
이역만리(異域萬里)는 지나치게 먼 거리를 뜻하는 말이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움직이는 거리는 십만 리 쯤 되니 부족하다. 아내의 얼굴이 창백해지기에 소매를 걷어서 듬직한 이두박근을 부풀렸다.
“염려하지 마시오. 새로운 선박은 대양을 쉽게 나아갈 수 있으며 항로를 잡는 이는 명나라 출신으로 천축을 넘어 대식국에 다녀온 여국강이니 별 탈이 없을 것이오.”
“북변도 아닌 머나먼 바다를 건너 이역만리에 다녀온다니 너무나 불안합니다.”
“내 몸은 나라에서 으뜸이며 학식 또한 남에 비하여 부족하다 여기지는 않소. 설령 모든 일이 잘못되어도 동생들이 함께 있으니 빠져나올 구석은 충분하지 않겠소.”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콜레라나 열대 말라리아 같은 지독한 병에 걸리면 생명이 위험하며 여국강도 알아차리지 못한 태풍에 휘말리면 물귀신 신세다.
그러니 아내를 위해서라도,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계획을 세우고 모든 위험요소를 줄여야 한다. 아내가 가만히 있기에 조용히 일어서서 뒤뜰로 나섰다. 부부 생활을 한 지 이십 년이 넘어가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하다.
담배를 끊은 일은 현대에서도 십육 년, 조선시대로 넘어와서도 이십일 년 인데 지금은 정말로 담배가 고프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뜰을 보고 있자니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동이와 새아가를 데려오너라.”
“네!”
잠시 뒤에 현동이와 군부인 한씨의 발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평상시에는 온화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일이 있거나 입신체비를 행할 때에는 정말 엄한 사람이 된다.
“지아비께서 머나먼 천축을 건너 대식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라의 일이며 주상전하께서 정한 일이니 되돌릴 방도가 없느니라.”
“정녕 사실이십니까? 대식국이라 하면 문헌에나 나오는 머나먼 나라가 아닙니까.”
“대식국이 그만큼 머나먼 곳이니 험난한 여정임이 분명하다. 현동이는 지아비께서 계시지 않을 적에 집의 가장의 역할을 똑똑히 할 수 있겠느냐.”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제 배움이 깊지는 않으나 다른 이에게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의지가 생기면서 한편으로는 분노도 치밀어 올랐다. 형님에게 대식국에 관한 놈이 원흉이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반드시 잡아다 대식국까지는 보내고 말리라.
----------
다음 날, 궁궐로 들어가자 외교와 관련된 일이니 당연히 예조 관원들이 총집합했다. 전객사(典客司) 관원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예조판서로 부임한 이맹전이 고개를 숙여서 인사했다.
“다들 주상전하에게 명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니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소. 대체 어떠한 연유로 대식국과 외교를 행하려는지 알 길이 없지만 뜻을 따라야 하지 않겠소.”
“짐작 가는 것이 있습니다. 작년에 치러진 전시(殿試)의 답안을 본 적이 있는데 성명은 가려졌지만 대식국과의 교역을 논한 이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자이군! 성명은 알지 못하고 있으니 대체 누구인지 궁금하구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생각이 거기에서 거기인지 이런 거대한 일을 만들어낸 원흉을 잡아내려는 의지가 모두에게서 느껴졌다.
아는 사람은 솔직하게 답하라는 침묵이 이어지자 밀고자가 탄생했다. 나와 인연이 있던 김의정이 헛기침을 하고 조용히 말했다.
“이전에 요동과 교역을 행할 적에 호조에 소속된 한명회라는 관원이 전시 답안에 대하여 논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식견이 있는 자를 내버려 둘 수 없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훌륭하구려. 김 정랑은 요즘 집안에 우환이 많다 하였는데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소. 그러하니 천축으로 함부로 나아갈 수가 없겠구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한명회였다! 원흉을 알게 된 이맹전이 그렇게 김의정을 면책시켜 주었다.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고 처음 정할 일은 교역 상품이었다. 예조 참판인 정척이 자신 있게 나서서 말했다.
“보총을 선사하면 크나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 하여 먼 나라에는 좋은 물건을 선사해도 쓸 만한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아니 된다네. 명이야 상국이며 명이 강해지면 아국이 도움을 받으니 보총을 전해준 것이지 주상전하께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운총과 보총을 헛되이 쓸 셈인가.”
얼핏 들으면 합당한 말이지만 오스만 제국이 너무 강해서 문제다. 조선, 명, 일본, 몽골 정도야 근처에 있는 나라이며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기에 변수를 창출하는 기분으로 이런 저런 일을 해왔고 모두 조선에 이득이 되었다.
하지만 핸드캐논을 사용하는 오스만 제국도 강성했는데 여기에 완성형 머스킷인 보총을 준다면? 이걸 유럽인들이 막아낼 수 있을까? 정척 또한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생각하여 보니 옳은 말씀입니다. 원교근공이라 하여도 아국이 외교를 행하려 사람을 보내는 세상인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 할 수도 없습니다.”
“대식국을 통해 천축으로, 천축에서 다시 대월국으로, 그렇게 왜국까지 보총이 넘어가는 일을 염려하여 보게. 왜구들이 모두 보총을 들고 달려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수십 년 뒤라도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도감군이 훈련시킨 잡색군도 크나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합니다.”
보총을 무역 품목으로 쓰려는 주장은 원천 봉쇄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유럽과 중동을 통제할 방법도 없는데 자칫 잘못하면 정복욕에 미친 오스만 제국이 유럽 모두를 집어삼키겠지.
이후에 벌어질 일은 명백하다. 로마의 영토를 모두 수복하였으니 완벽한 로마라고 칭하면서 케밥을 모든 유럽으로 전파시키겠지. 천주교? 교황? 그딴 것은 없고 모조리 이슬람으로 변할 것이다. 다들 헛숨을 들이키면서 내 말에 동의했다.
“그러하니 보총을 함부로 교역품목에 들이면 아니 된다네. 가급적이면 방패선에서 사용하는 보총도 천축 이후로는 배 밖으로 내놓지 않아야 하고. 그러하면 인삼은 어떨까 싶소.”
인삼은 최소한 같은 무게의 은 가격은 받을 귀중한 상품이지. 이역만리에서 넘어온 귀한 약초니까 누구라도 만족할거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신숙주가 조용히 말했다.
“인삼을 건삼(乾蔘)으로 만들어도 오랜 기간 바닷바람에 시달리면 효험이 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시험 삼아 타요완에 건삼을 보냈는데도 품질이 떨어졌다 하였습니다.”
“타요완에 건삼을? 무슨 일이기에 귀한 약재인 인삼이 필요하였단 말이오?”
“좌찬성께서 여름 더위에 기력이 쇠하셨는데 인삼의 효능이 떨어져 기력을 보하지 못하였다 합니다.”
그건 아니겠지. 잘 말린 건삼이 기껏해야 보름의 항해도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고 한확이 다른 병을 앓는 것이 분명하다. 대신 홍삼을 꿀에 절여 정과(正果)로 만들면 일 년 정도는 확실하게 보관 가능하니 상관없을거다.
“일전에 개성에 있을 적에 인삼을 쪄서 말려 붉게 만든 것을 보았는데. 쪄서 말린 인삼을 다시금 꿀에 절이면 충분한 효험이 있지 않겠나.”
“개성이라 하시면 조정의 대신들이 함부로 움직이기에는 힘든 곳이 아닙니까.”
“염려하지 말게. 그러고 보니 한명회라는 자는 개성에서 궁지기로 일했었는데 개성의 일을 명확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네. 그에게 개성의 상인들을 다루게 하면 충분하겠지.”
한명회가 빠져나갈 구석은 여기서 원천 차단해야겠다. 홍삼을 다루는 방법을 알면 교역 물품으로 공급할 홍삼을 책임져야 하니 빠져나올 길은 없다! 이스탄불은 몰라도 메카까지는 가야지!
관원들도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논의가 계속되면서 예조에서 파견할 인원을 선정하였다. 먼저 일어선 자는 정척이었다.
“천축에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효령대군어른께서 행차하시는데 제가 나서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또한 훌륭한 일이오. 일전에 양계지도(兩界地圖)를 시작으로 하르빈 일대까지 나아가 북변지도(北邊地圖)를 작성하였으니 그대를 믿겠소.”
정척 정도면 훌륭한 인재다. 나이가 60이 넘었지만 효령대군도 움직이는 마당에 자신이 거부할 방법이 없겠지. 그렇게 다음 사람을 정하려는데 신숙주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하면 대군어른과 함께 대식국으로 나아갈 자는 제가 하겠습니다. 먼 길은 젊은 자가 다녀와야 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자네는 참의가 아닌가. 아직 품계가 높지 않고 경험이 일천하거늘.”
“다음 사행인 대월국으로 나아갈 것이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행에 익숙해지면 더욱 먼 곳도 쉽사리 다녀올 수 있을 것이며 대군 어른을 보좌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얼핏 보면 출세를 위한 짓이라 생각하겠지만 신숙주의 눈빛에는 나에 대한 고마움이 깊이 담겨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여정은 정말 험난하다 못해 지독할거다.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희생자가 들어왔다.
“이……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대식국까지 다녀와야 한다니 모두 형님의 뜻입니까?”
“주상전하의 어명이니 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따라야 하느니라.”
내가 만든 첫 번째 희생자인 안평대군이 등장했다. 어서 와! 죽으려면 같이 죽자! 억울해서 혼자는 죽지 못하겠다!